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34
Chapter. 20. 오프로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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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짝, 깔짝
게에에, 게호오오….
게익? 으음….
“기묘한 구조…. 이성이 포함되지 않은 계산…. 호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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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고칠 수 있겠어?”
“께엑! 말 걸지 마라, 야만인!”
머리에 큼지막한 혹이 난 고블린은 하이드를 향해 빽 소리를 지른 다음, 커다란 렌즈가 몇 겹이나 겹친 안경으로 눈앞의 유물을 살폈다.
급하게 작업장으로 옮겨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난 뒤, 가타부타 말 없이 칼부터 내놓으라 소리치던 녀석.
“고칠 수 있다!”
“정말로? 못해도 130년 전의 기술로 만들어진, 당시에도 내구도 문제로 실패작이라 알려진 물건을?”
“그 말, 130년이나 낡은 기술이라는 뜻! 마도시대의 기술이 사라진 만큼 새로운 기술도 많이 나왔다! 카이부엔 거짓말 안 한다! 고칠 수 있다! 장인의 이름을 걸고!”
놀랍게도, 고블린 마도공학자 카이부엔은 지난번 사용으로 반파된 파산검을 고칠 수 있다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끼익! 지금 파손된 부위는 검신, 검집 입구의 전환식 마력 트리거, 내부 반발 장치 세 곳이다.”
“그렇게 말하면 비 전문가인 내가 참 잘 알아들어요, 이 녀석아.”
“그냥 그러려니 해라! 아무튼, 제일 큰 문제처럼 보이는 검신은 신경 쓸 것 없다! 검집의 기능만 회복되면 각인된 회로가 알아서 수복시킨다! 일주일이면 가능!”
“오, 그거 다행이네.”
“입구의 마력 트리거는 내가 고친다! 검을 휘두르는 압력이 너무 높아서 부품이 터져버린 것! 6천만! 6천만에 해준다!”
켁.
“….엄지 손가락 만한 부품 두 개 고쳐주는데 6천만? 너무 바가지 아니냐?”
6천만 실링이 뉘집 개 이름인가?
일반적으로 영혼술사의 감정을 받지 않은 무색파편이 5만 실링,
감정을 받은 것 중 농사, 자수, 춤 등의 능력을 담은 가장 낮은 등급이 2만. 주조, 야금, 계산력 등 상업이나 실생활에 유용한 능력이 담긴 게 대략 15만. 근력, 지구력, 순발력, 시력 등 전투와 관련된 무색 파편이 50만~ 500만 실링 사이.
감정받지 않은 유색 파편이 1200만, 감정 받은 것은 최소 4천만~ 8천 만 실링 정도에 가격을 형성하곤 한다.
물론 이름있는 샤드나이트가 쓰던 유색파편이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아무튼 비싸도 8천만 정도면 초짜 샤드나이트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는 돈이라는 소린데. 부품 두 조각 수리하는데 6천만이라니?
“게엑! 이거, 고대 마도제국 시절의 기술! 고블린 아니면 못 고치고, 고블린 중에서도 나 정도 공학자 아니면 못 고친다! 나 밖에 고칠 수 없는 물건! 매우 합리적인 가격!”
“아니, 아무리 그래도 유물 하나 고치는데….”
“싫으면 고치지 마라! 이 상태로 내게 팔면 2억까진 쳐주겠다! 게겍! 그 돈으로 다른 마도공학 장비를 사서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끄응.”
물론 효율만 따지면 카이부엔의 말이 맞겠지. 2억 정도면 최상급 마정석으로 도배된 고출력 아케인 슈터를 수십 정 사고, 성벽포 급 화력의 투척형 마력 폭발물을 원없이 사고, 그 외에도 ‘간이 활강 장치’ 라던가, ‘마도공학 지형 극복 장비’ 라던가, ‘기사 사냥용 초고압 트렙’ 같은 평소에 침만 질질 흘리던 물건도 잔뜩 사고, 내가 모르는 기상천외한 고블린 장비도 아공간 망토가 미어터지도록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어떠한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만능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
“6천만, 지불하지.”
“끽끽. 그럴 줄 알았다.”
….만, 목숨이 걸린 전투에 있어 ‘효율’을 따지는 것 만큼 멍청한 것이 또 있을까.
마도공학 장비의 화력이 막강하다 한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전투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로드의 둥지에서 나오는 고위 뮤트는 맨몸으로 대형 마력포를 튕겨내며,
오러나이트의 오러는 그 어떤 마력 사출장치보다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고,
광역 투사에 있어서는 마스터급 샤드나이트의 화력을 따라갈 수 없다.
결국, 정점에 선 이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이 ‘안티 오러소드’같은 비정상적인 출력의 장비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진짜’들과의 싸움은 되도록 피하는게 상책이지만, 마냥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화력이 부족한 내가 그들과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장비가 이 ‘파산검’ 인 만큼 효율 따위는 깨끗이 잊고 수리하는 수밖에.
‘6천만.’
으드득.
‘여러 인맥과 마도열차 노동경험까지 포함해, 잡부 역할을 포함한 열차표가 300만. 도시 20개를 건널 수 있는 금액.’
빠드드득!
‘오러 못쓴다고 귀족들이 값 후려치는거, 다른 기사들이 비웃는거 참아가면서 전투 한번 뛰는게 40만. 유적 탐사로 개고생하고 받는 보수가 100만. 쪽박차면 그 절반인 50만!’
“깨끗이, 후욱! 깨끗이 잊고, 나아가는 수밖에….”
“….이, 인간? 너 괜찮나?”
“그럼 괜찮고 말고. 비록 이제야 겨우 실마리를 잡아 ‘탐색’에 탄력이 붙고 있지만, 6천만이면 적어도 1년은 돈 걱정 없이, 고생 안하고, 돈 번다고 시간 안날리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금액이지만, 망할 마른 버섯스프 말고 돼지기름이 좀 들어간 괜찮은 음식 먹고 다닐 수 있는 돈이지만! 괜찮고 말고! 난 그 망할 파산검이 필요하니까!”
[필연적 과소비 인간]이라는 옛 지인의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아아, 빌어먹을 내 인생아. 오러없는 반쪽짜리 오러나이트야.
순식간에 허망해진 주머니만큼 헛헛한 가슴을 달래고있는데, 내 돈을 6천만이나 털어간 고블린 개자식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한 얼굴로 내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게엑, 게…. 우이….”
“뭐. 여기서 더 할말 있어? 뭐, 수리비 추가 결제나 뭐 그런 소리 하려고?”
빠드득!
“께엑! 아, 아니! 수리비는 더 안 들어간다! 카이부엔, 양심있는 공학자! 능력만큼의 돈만 받는다! 6천만, 끝! 여기서 더 없음! 이지만….”
점점 흉악해지는 내 표정에, 카이부에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카, 카이부엔 미리 말했다! 이거 고치는데 1억 필요하다고!”
“수리비는 6천만으로 끝이라며!”
“[수리비]는! 검신은 자동수복, 검집 입구는 내가! 고장난 곳은 세곳이라고 사전에 분명히 설명했다! 카이부엔 손님한테 전부 사전에 공지했다! 나, 나머지 가격은…. 저거!”
근처에 굴러다니던 공구를 방어적으로 들어올린 고블린은 깡마른 손가락으로 공방 반대편을 가리켰다.
마도공학 공방답게 온갖 기상천외한 물건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된 투명한 진열장.
그 중 녀석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저거, 표 같은데?”
“대, 대륙 간 항해선 표다! 밀수꾼, 너처럼 장물도 들여온다! 저거 훔친 표! 하지만 무기명, 누구나 쓸 수 있는 정품!”
“….?”
“너, 배 타야 한다! 이거 고치기 위해!”
맥락을 뚝뚝 끊어 말하는 고블린 특유의 화법 때문에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파산검은 검신보다 검집의 마도공학 장치가 핵심! 막 쓰다가 동력원인 핵심 마정석이 깨져버렸다! 대체할 것 없음! 같은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우리 작업장, 그거 가진 놈 없다!”
“그래서.”
“저런 물건에 쓸만한 소형, 고출력 마정석! ‘빅 블루 라인’ 심해에서 나온다! 나머지 수리는 내가 다 끝내면, 너 마정석 구해서 박는다! 파산검 부활!”
“내가 배를 타고 나가서, 세상에서 제일 거친 바다인 ‘빅 블루 라인’으로 간 다음, 직접 잠수해서 여기에 맞는 마정석을 구해와라? 우리 파산검 님의 부활을 위해?”
“인간, 머리 좋다! 나머지 4천만은 그걸 위한 대륙간 항해선 푯값! 잠수 장비! 그쪽 지인 공학자 소개비! 다 해서 정확히 1억! 1억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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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해.”
“게에엑?!”
안티 오러소드. 일명, ‘이격 파산검’.
파산(破産)이름에 걸맞게 수리비로 1억 실링이 통째로 들어간다는 말은, 내 이성이 허용한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아니, 돈은 그렇다 치자고. 1억, 까짓거 없었던 샘 칠….수도 있지! 어쨌든 위겐에서 워로드라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또 지난 15년 간의 여정처럼 더럽고 구질구질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멸시받는 여행을 계속하면 되지! 아이 좋아라! 아이 씨발 좋아라!!!
하지만 빅 블루 라인이라니. 다른 바다도 아니고 여길 들어가는 일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과거 용맥과 함께 융기한 산맥, 블루라인이 있었던 지역이라지.’
대륙이 이렇게 개박살나기 전, 동서 제국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신비한 산맥, 블루라인.
지금 ‘빅 블루 라인’이라 불리는 곳은 과거의 산맥과 정 반대나 마찬가지인 지역이다.
대륙을 쪼갠 대폭발, ‘용맥 뒤틀기’의 폭심지가 그 블루라인 산맥이었으니 참상의 크기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블루라인 인근의 땅은 폭발과 함께 문자 그대로 ‘증발’해버렸으며, 용맥의 마력으로 융기한 산맥은 그 산맥의 크기 만큼이나 강한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결과, 한때 산맥이 있던 곳은 너른 바다가 되었으며.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한 블루라인은 바닷속을 향해 깎여나간 깊은 해저 절벽, 해구(海溝)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과거의 드높은 블루라인이 바닷속을 향해 거꾸로 선 것 같다 하여, 빅 블루라인.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바닷속 무저갱.
전 대륙에서 가장 거친 파도와, 가장 혼란한 마력분포로 유명한 곳이 과거 블루라인의 터를 지나는 바다다.
그런 바다에 잠수해서 마정석 캐오라는 소리는 ‘실례지만 가서 뒈져주실래요?’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단 말이다!
“안티 오러소드를 고치는 이유가 만약의 사태에 목숨을 구하기 위함인데, 이거 고치겠다고 죽으러 가라는 소리만큼 말이 안되는 소리도 없지. 거래는 취소다. 내가 1억 실링까지는 감수하겠는데, 사망 확률이 99.9%인 그 미친 바다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감수 못해. 차라리 열차 판 돈에 안티 오러소드까지 팔아서 3억 챙기고 그 돈으로 걸어다니는 마도병기 요새가 되는게 훨씬 낫지. 안 그래?”
“게겍, 음…. 인간, 인간이 하나 더 생각해야 할게 있다.”
“30초 간격으로 대마법급 자연마력이 몰아치는 심해로 잠수하는 것보다 더 고려해야 할 상황이냐?”
“어, 어쩌면 인간 너의 상황에 따라서는?”
“상황?”
“그래, 상황. 너, 아까 옛 로드릭 지역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파산검을 보내주고 홀가분하게 쇼핑이나 하려고 마음을 놓았는데.
부스럭부스럭-
딸깍!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부엔이 예의 진열장에 다가가더니, 잘 포장된 배표를 꺼내들었다.
“꼭 가야만 하냐?”
“그렇지?”
“네 목숨이 위험해도 가야하나?”
“어…. 위험을 무릅쓸 정도는 될걸?”
“그럼 너 배 탄다.”
카이부엔은 확신한다는 듯 내 허벅지 어림에 착! 하고 표를 내리누르며 말했다.
“로드릭 방면, 선로 끊겼다. 가려면, 배 타고 항구. 그것 뿐!”
“….뭐?”
내가 방금 뭘 들은거지? 선로가 끊겨? 로드릭 지역으로 가는?
“확실하다! 텔드랏 귀족, 겁에 질렸다! 거기서 오는 모든 것 막고 싶어서, 제 손으로 선로를 끊고 땅을 뒤집었다! 아주 확실하게! 북쪽의 난리가 넘어오지 못하게!”
“허….”
“다시 연결하려면 공사에만 적어도 1년! 그쪽 넘어다니던 밀수꾼이 전해준 정보! 한명 아니고 여럿! 같은 말! 자명함! 너, 못가!”
“어차피 타야 할 배! 배 탄 김에 마정석 채취! 나 사기꾼 아니다! 손님인 인간에게 가장 유효한 방법을 제시한 것 뿐!”
“허어어어….”
선로가 끊기다니. 그것도 워로드나 뮤트같은 적의 습격으로 파손된게 아니라, 귀족이 제 손으로 뿌리까지 뒤집어서 길을 끊다니!
귀족이 얼마나 선로와 열차, 다른 교시와의 연결에 집착하는지 아는 나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귀족들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길래 그토록 두려워하는거지?’
워로드가 구 로드릭 지역을 초토화시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대귀족 소속의 영혼술사들이 대거 배신하여 그쪽에 붙었다는 것도, 워로드의 ‘군세’라 불리는 만큼 개인이 아닌 집단을 이루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훔친 것은 전쟁물자를 옮기기 위한 열차. 당연히 로드릭 지역에서 버티고 있는 다른 가문을 위한 것인줄 알았는데…. 길이 없어?’
‘그렇다면 위겐에서 뻗어나온 요새도시를 위한 물자라는 소린데. 귀족들이, 구 로드릭 지역 전역을 포기했다? 이미 그쪽을 적진으로 보고 최전방을 안으로 당겼다고?’
도대체 언제부터? 아니, 도대체 얼마나 빨리? 한 지역을 통째로?
워로드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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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잉-!
“끄으으윽!”
통증. 마치 머릿속을 불에 달군 집게로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
‘이건…. 그때 그….’
이 고통이 익숙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머릿속에 진한 환상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 느껴지는 짙은 감각.
코를 찌르는 피 냄새와 마력 증기의 향연.
그리고,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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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내 손으로 이룩한 광경이지.”
콰득!
“….네놈의 말은 듣지 않아.”
“….”
“잊지마라. 나는 통제하에 있다. 네놈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이렇게 협조적인 것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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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윽!”
“이, 인간, 인간? 너무 충격이 심했냐! 인간!”
옆에서 카이부엔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그보다 더 짙은 감각이 내 머릿속을 해집고 있었다.
극한의 고통.
스스로 살점을 뜯어내 씹어먹는 듯한, 그런 환상이 느껴질 정도의 정신과 그 가운데 차갑게 가라앉은 고요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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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아직 기억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끝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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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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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차가운 늪 속에 가라앉은 듯한 감각.
촤아아악!
“푸웁, 허억!”
“인간, 인간! 정신차려라!”
“허억! 허어억! 나, 어, 이건, 대체….”
“너 눈 뒤집어졌다! 손발 떤다! 소리질렀다! 나, 나 무섭게 했다!”
내 몸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짙었던 기억은 카이부엔이 급하게 끼얹은 구정물과 함께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거다. 그때 그거야.’
위겐의 난민촌에서 봤던 환상과 동일한 종류의 것.
하지만 이번에는…. 마치 영혼이 통째로 뽑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놈의 손 끝에 말라붙은 핏자국, 살을 찢고 파고드는 파편, 달아오른 바람까지 내가 겪은 것처럼 선명했다.
무엇보다, 감정.
‘놈은 도대체….’
평생 사람을 관찰해온 사람으로서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서도 만나본적 없던 짙은 감정.
그것이 악의인지, 결의인지, 책임감인지, 도피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카이부엔. 물 한 잔만…. 마실 수 있을까.”
“끼익! 무, 물 한잔 정도는, 서비스로 줄 수 있다! 당장 준다!”
터질 듯 뛰는 심장과, 뇌를 통째로 절여버린 것 같은 기억.
놈에게, 내가 압도당했다는 것.
워로드. 만난적도 없는 살인자는, 도대체 나와 무엇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인가.
어떤 원리로 나는 놈의 감정을, 기억을 공유하는 것인가.
그리고, 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놈을 찾고 있었나.
“여, 여기! 여기있다!”
카이부엔이 급하게 떠온 물이 잔 위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워로드. 놈이 있는 전장, 로드릭 지역.
끊겨버린 선로. 하나만 끊었을리는 없으니, 적어도 텔드랏 지역과 로드릭을 연결하는 선로는 모두 끊었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내가 가야할 길도, 하나.
“운명 같은 건 별로 믿고싶지 않은데….”
하이드는 물과 함께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토악질을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부엔.”
“겍?!”
“….천. 아니, 오백만 정도만 깎아줘.”
“어…. 그럼?”
파산검과 표를 번갈아 보는 고블린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네 말대로, 가야겠다. 바다.”
무슨일이 있어도 안티 오러소드는 고쳐야 한다.
지금 망토 안에 준비된 장비도 하나하나 보통이 아니지만, 절대로 모자랄 것이다.
잠깐이나마 환상인지, 기억인지 모를 것을 통해 느껴본 놈의 힘에 비하면, 절대로.
심장은 터질 것같고, 머리는 울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돈은 1억이나 날리고.
“멋져라, 내 인생.”
하이드는 한숨과 함께 주저앉으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본 이상,
느껴버린 이상.
이미 그의 마음은,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초조함과 불안함에 미쳐버릴 지경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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