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35
Chapter. 20. 오프로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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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팍.
찰팍.
‘아. 또 이건가.’
하루라도 좀 편하게 자자, 제발.
가끔보면 내 무의식이 이렇게 축축한 동네인가 싶다. 자면서 땀이라도 흘리는건가.
매일 꾸는 꿈. 이젠 저 얕은 물이 찰팍이는 소리만 들어도 ‘이게 꿈이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밤의 의식.
이제 저 발소리의 주인이 다가오고, 내 귓가에 ‘찾아~ 뭔진 몰라도 찾아~’를 속삭이면, 나는 끔찍한 초조함과 함께 침대에서 벌떡-
[세계수님. 뭣 좀 물어봐도 됩니까?]벌떡…. 일어나게 될 터인데.
‘….달라?’
평생에 단 한번도 바뀌지 않던 꿈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다.
같은 공간, 같은 목소리.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그리고, 처음 듣는 목소리.
하이드는 항상 그에게 뜻 모를 탐색을 명령하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녀인지, 성년인지, 중년인지 모를 은발의 누군가.
[두렵니?] [예. 그쪽만 없었으면 엉엉 울고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어미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온 아이가 울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니.] [어, 음…. 그 비유는 좀 받아들이기 힘든거 아시죠? 제 음…. 생산자는, 어…. 처녀잉태? 총각잉태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좀 거시기 해서.] [그가 들으면 길길이 날뛸만한 이야기로구나.] [증거 인멸을 위해 절 없에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죠.]소소한 농담과 웃음사이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평소 그의 꿈속에 속삭이던 목소리와 같지만 전혀 다른, 결연한 두려움이 가득한 떨림.
[세계수님.] [듣고있단다.] [저는 모든 것을 잊게 되겠죠?] [그래. 다른 모든 데이터 소울처럼. 이것 만큼은 무슨 수를 써도 바꿀 수 없는 것이란다. 이 세계의 규칙이니까.] [이런. 세계수님 정도의 높으신 분이면 어떻게 야료를 부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미안하구나. 나도 네가 기억을 간직한 채로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면 참 기뻤을텐데. 분명 좋은 광경이 될테지.] [뭐 어쩌겠어요. 안되는걸 안된다고 하는건데.]나란히 걷던 두 사람의 앞에 환한 길이 펼쳐지자, 익숙한 목소리는 은발 여성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다른 쪽을 부탁드려야겠네요.] [다른 쪽?] [예. 이 정도는 되겠다, 싶은거요.]의문이 가득한 여성의 모습에 남자는 악동처럼 씨익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쿠르르르-!
‘윽, 이런?!’
바닥의 얕은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는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가 뭍혀버렸다.
꿈속의 시점임에도 느껴지는 감각. 고막을 울리는 소리와 희미하게 들리는 ‘깩깩!’ 소리.
‘하필 왜, 지금!’
잠이 깨고 있었다. 어떻게든 꿈속의 대화하려 집중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명료해지는 정신이 더욱 그를 현실을 향해 끌어당기고 있었다.
[….죠?] [….나. …. ….지만, ……. …..렸지.]하이드는 눈을 부릅떴다. 목소리는 가라앉았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 만큼은 아직 눈에 들어왔다.
여자와 갈라서, 거대한 빛의 흐름으로 몸을 던지는 남자.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은 여자가 그 빈자리를 향해 남긴 말.
필사적으로 읽어낸 그녀의 입모양.
부디, 네 뜻이 마지막에 닿기를.
하이드.
.
.
.
.
-화아아악!
****
-벌떡!
“크허어억!”
“깨애애액!”
끌려오듯 깨어나버린 꿈.
분명 은발 여자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는데, 정작 잡힌 것은 고블린의 깡마른 팔이었다.
“깨애액! 놔라! 놔라 인간! 잠버릇 고약하다!”
“으으음. 미안, 꿈을 좀 꿔서.”
“개객! 다음부턴 좀 얌전한 꿈을 꿔라! 이상한 인간!”
다른 꿈이라.
그래, 다른 꿈을 꿨다. 평생 그를 괴롭혀오던 목소리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꿈이었다.
평생에 단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침인가?”
“점심! 그것도 늦은 점심! 종일 끙끙거리길래 내가 깨웠다!”
“점심이라고?”
심지어 늦잠도 잤다. 기계처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그가 점심 늦은시간까지 잠을 자다니.
내가, 패스파인더 하이드가 늦잠을 자다니!
“끄으으으-음!”
“뭐, 뭐하냐?”
“아니, 사람들이 늦잠 자면 이렇게 한다길래.”
이 귀한 경험이 날아가기 전에, 서둘러 침대에 도로 누웠다.
팔다리가 제 몸에서 뽑혀나갈 정도로 쭉 펴고, 배에 칼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신음을 흘려봤다.
늦잠을 자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 기지개.
“….별거 없네?”
세상에서 제일 상쾌한 기분이라던 다른 사람들의 말과 달리, 머리는 지끈거리고 목은 칼칼했다. 푹 쉬었다는 자각이 있는 건 좋지만 하루의 절반을 날려버린 것 치고는 좀.
“허, 헛짓거리 하지 말고 와서 밥이나 먹어라!”
“오, 밥도 해줬어?”
“거래! 숙소와 식량제공! 카이부엔 가치 소중하다! 돈 받은 만큼 한다!”
“고블린이 차려준 식사라….”
내가 늘 꿈꿔오던 ‘늦잠 후 기지개, 상쾌한 기분으로 먹는 아침 겸 점심’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보였지만, 어쨌든 앞으로 또 언제 늦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니 필요한 것은 다 경험해보는게 좋겠지.
앞치마까지 두른 카이부엔의 뒤를 따르며, 하이드는 꿈속에서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하이드. 평생 나의 꿈속에 속삭이던 그놈이 나를 부르던 이름.
이제는 내 이름이 되어버린 이름.
꿈속의 여자가, 그놈을 부르던 이름.
하이드는, 도대체 누구인가.
평생 사람을 관찰한 끝에 훑어보기만 해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본다는 놈이 정작 자기 정체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다니.
“….카이부엔.”
“개객?”
“아침 메뉴는 뭐냐?”
“이것저것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볶은거다! 맛있다!”
“….적어도 잠깨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은 이름이구만.”
하이드는 스스로의 모순된 상태에 헛웃음을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이 덜 깨서 그러겠지.
뭐라도 먹으면 좀 생각이 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
달칵 달칵.
“끽끽! 그러니까, 너 매일 꿈꾼다! 어떤 남자 속삭인다?”
“우음, 그렇지. 야, 그거 한그릇 더 줘봐.”
달그락, 우걱우걱!
“꿈속의 남자가 너 ‘하이드’라고 부른다!”
“그래. 대충 다섯 살때부터 그랬으니까 23년째 계속.”
“오늘 꾼 꿈에서는 남자랑 여자가 나왔고!”
“음음.”
“그 여자가 꿈속의 목소리랑 똑같은 목소리의 남자를 ‘하이드’라고 불렀다! 맞나?”
“음. 잘 이해했네. 역시 고블린은 머리가 좋은 종족이 맞다니까?”
꾸울-꺽!
“그럼 꿈속의 인간, 하이드 맞다! 너, 본인!”
“그게 애매하다니까!”
“꿈, 인간이 잃어버린 기억 아니냐?”“신전 고아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콩알만큼도 비는 기억이 없는데, 잃어버린 기억이 어디 있다고?”
“진짜 하나도 없냐!”
“없어!”
“은발 여자는?”
“그렇게 생긴 여자는커녕 은발인 여자를 만나본적도 없는데?”
“게호오오…. 에에엥, 끄으응….”
식탁.
카이부엔이 자신있게 들고 온 ‘이것저것 형체가 없어질때까지 볶은 것’은 놀라울 만큼 입에 잘 맞았고, 손바닥만한 그릇을 비우자마자 득달같이 추가요금을 요구하는 녀석에게 아예 작은 솥 가득 든 그것을 통째로 사서 퍼먹어버렸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머리도 비울 겸 녀석에게 꿈에서 봤던 이야기를 해줬다. 그동안 내게 찾으라 명령하던 목소리, 같은 목소리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던 오늘의 꿈, 놈의 이름, 놈이 부르던 나의 이름까지.
타악!
“카이부엔, 알았다!”
“오, 뭔데?”
“그거, 개꿈! 너 돈 꼴아서 돌아버렸다!”
“에라이. 야, 뭔가 연관성이 보이지 않아? 꿈속의 ‘세계수’와 목소리가 말했잖아, ‘그’라는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이상하게 자꾸 엮이는 워로드 녀석이 그놈이라고 봐도 되지 않겠어? 목소리는 워로드를 기다리고. 나를 세뇌해서 워로드 놈을 찾게 만들고. 응? 뭐 떠오르는거 없어?”
“개꿈! 밥도 못 먹게 방해하는 쌍 개꿈! 나, 아직 반도 못먹은!”
“그래 그래, 미안해 임마. 밥 마저 먹어라.”
혹시나 공학자 특유의 번뜩이는 발상으로 뭔가 얘기해주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한참을 끙끙대던 카이부엔은 녀석 몫의 식사가 차게 식은 것을 보며 개꿈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뭐, 모자란 부분은 나중에 또 확인할 기회가 있겠지.’
최근 들어 연이어 벌어지는 이변. 우연이라 치기엔 연결된 부분이 너무 선명했다.
‘꿈속의 하이드는 [그]라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녀석은, 나를 하이드라고 부르며 내게 워로드를 찾도록 했어.’
‘나는 워로드의 기억, 때때로 감정마저 공유한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직접 경험했으니 이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나는.
꿈속의 [하이드]인가, 아니면 놈이 기다리는 [워로드]인가?
아니면 패스파인더 하이드인가.
각각의 드러난 부분이 너무나도 눈에 띄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얽혀있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지금으로선 그냥 이렇게 꼬인 채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어쨌든 나는 워로드를 계속 쫓을 것이고.
앞으로도 워로드의 기억과 감정은 내게 찾아올 것이며.
지금까지 알아낸 것처럼, 앞으로도 더 알게 되는 것들이 있겠지.
전체적인 그림을 맞추는 것은 앞으로 정보의 조각이 모인 다음이 되어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알지도 못할 꿈 생각은~ 여기까지.
지금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 집중해야지. 예를 들면-
딸깍!
“이거야?”
“230만 실링! 깊은 바다 숨쉬는 물부리! 마력 농도가 높은 곳에서 쓸거라 골격과 외장제를 전부 공마석으로 만들었다!”
조각난 대륙에서 가장 악명높은 바다인 ‘딥 블루라인’에 잠수하기 위한 장비라던가. 어제 이곳 작업장을 돌아다니면서 구매한 희한한 마도공학 장치라던가,
“그리고 이거! 파산검! 이 정도 물건을 만질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 제법.”
겉만 보면 완전히 새것처럼 재탄생한 내 검, 안티오러 소드라던가.
스릉-
검을 한번 뽑아보니 확실히 공마석 검에 예기가 살아난 게 느껴졌다. 뽑을 때 입구의 마찰부에서 튀어오르는 불꽃도 조금 선명해진 것 같고.
“괜찮은데?”
“께엑! 카이부엔 고생했다! 공마석 검, 녹일 수 없음! 이곳 지하 작업장의 공마석 저장고에 쑤셔넣고, 다른 조각들이 달라 붙으면 깎아내고! 쑤셔넣고 반복! 공마석 가공은 그렇게 밖아 안되는!”
“어쩐지. 다른 대장장이나 마도공학자한테 날좀 세워달라면 다들 손사래를 치더라니.”
“매우 특이한 장치! 검집의 장치가 검을 붙잡고, 그걸 뽑는 힘이 다른 마정석을 활성화 시키는! 발검(拔劍)하는 힘이 곧 출력을 조절하는 매우 특이한 방식! 정형화된 현대 마도공학에선 구경하기 힘든 참신함이다! 돈 많은 고대 제국 귀족이 썼으면 그냥 마력 포대 언저리의 출력만 보였을 것! 억울한 악명, 그래서 붙었을 확률이 높다! 매우매우 대단한 장치! 훌륭한! 압도적인!”
“그건 그렇지. 그래서, 개선했다는 부분은? 내구도와 관련된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며.”
“고쳤다! 카이부엔, 역사에 다시 없을 천재적!”
“오오! 그럼 하루에 열 번 정도는 휘두를 수 있는거야?”
“아니! 내구도 결험을 수정하고, 그 만큼 출력 허용범위를 넓혔다! 여전히 하루에 두 번! 전보다 더 강력한!”
“그냥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를 수 있게 했어야지!”
따악!
“게에에엑! 장인 우대! 배은망덕!”
“장인은 무슨! 기껏 고친게 여전히 두 발짜리 조루무기잖아!”
“두 발도 필요없는 초강력 조루! 궁극의 힘! 일격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스스로 자멸하겠다는 무기의 긍지!”
카이부엔은 눈을 반짝거리며 그 외에도 안티 오러소드가 가진 마도공학적 경이로움을 열렬하게 설명하더니, 마지막으로 검집 안쪽에 타원형으로 파인 홈을 비춰보였다.
“딥 블루라인, 이름처럼 바닷속에 산맥이 있다. 폭발과 함께 땅속을 향해 솟아오른, 끝이 보이지않는 바다 절벽.”
“나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봐서 알지.”
“설명으론 모른다! 거기, 세상을 돌며 퍼졌어야 할 마나가 모조리 폭발한 곳! 바다 전체에 짙은 마나가 가득하다! 마나의 폭포수가 마나 공허위를 넘나드는 미친 바다!”
탁탁.
“그 덕에 이상한 마정석 생겼다! 폭발의 압력으로 온갖 물질이 녹아든! 산 하나 만큼의 마나와 온갖 이상한 힘, 개념이 모조리 녹아서 응축된 귀이이이이이-한 마정석! 유명한 샤드나이트라면 누구나 갖고있는 살아있는 무기, 파편무구를 만들 때 반드시 들어가는 그 마정석! ‘용맥의 조각’이 그 바다의 깊은 곳에서 나온다! 검집의 홈에 그걸 박으면, 파산검 부활! 살해 아니면 자살의 전설을 가진 고대 마도병기, 그 정도 마정석 아니면 감당 안됨!”
“거기, 위험하겠지?”
“온갖 기사가 익사한 바다! 파도가 배를 던져서 물수제비 띄우는 곳! 폭주하는 마나가 바다에 괴물도 잔뜩 풀어놨다! 건드리면 터지는 물고기, 쇠를 뜯어먹는 게, 물 위를 떠다니다 배에 달라붙는 강산성 해초! 너, 얕보면 죽음!”
“그렇지. 내가 들었던 소문도 비슷했으니까.”
하아아아.
가기싫다.
구 로드릭 지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그쪽 배를 타는 것만 아니었다면, 아니 그렇다 해도 내가 지금 찾아가는 놈이 한 지역 전체를 씹어먹었다는 미친 살인마가 아니었다면 그런 위험한 바다에 잠수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했을 것이다.
“오러만 있었으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꽈아악!
분한 마음에 힘껏 검병을 쥐어봤지만, 남는 것은 부르르 떨리는 검과 손에 남은 자국뿐.
“어쩌겠어, 모자란 놈이 더 노력해야지.”
찰칵!
한숨과 함께 검을 집어넣고,
슥슥.
남은 돈으로 산 보존식과 소모성 장비등을 망토의 주머니 속에 잘 구분해서 담았다.
….달칵!
마지막으로, 카이부엔의 테이블 위에 엄중히 보관된 유리상자를 열어, 로드릭 방면 배 표를 꺼내들었다.
항구까지 가는 길은 카이부엔이 다 준비(소개료 및 탑승료 포함 300만 실링. 현금 및 아이템으로 지불)해뒀기에, 나가서 이곳에 잠깐 멈췄다 가는 마도열차의 밀수를 도와주고 잡아 타기만 하면 됐다.
“게엑. 이제 가냐?”
“그래. 덕분에 잘 쉬고, 잘 먹고, 잘 썼다. 기회가 되면 또보자고, 카이부엔.”
“….끽끽! 그전에, 하나! 질문!”
슬슬 시간이 되어 나서려는데, 나를 잡아서는 녀석.
“너, 하이드! 파산검 말고도 고대 유물 많다! 서른 아홉 개 주머니중 열 세 개가 아공간 주머니인 마법 개조 망토도 그렇고, 그 안에 든 아이템,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귀한 것! 어떻게 구했냐! 전부 샀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비싼! 말도 안되는!”
“뭐야. 그게 궁금했어?”
“궁금하다! 비정상!”
이상하게 진지한 녀석의 모습에, 아무래도 대충 둘러대면 놔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말해줬다.
“뭐, 자잘한 것들은 너나 케루자루 같이 지나가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거고. 마도제국 유물같이 귀한 것들은 대부분 내가 찾은거야.”
“너, 찾아? 유물?”
“그래. 가끔 도시에서 열차랑 대지마법사 보내서 무른땅에 유적지 파러 나가잖아. 그런 일 있을 때 주로 참여하거든. 가서, 찾고, 슬쩍하는거지.”
“게에에에…. 그거, 돈으로 산다는 말보다 더 이상하다!”“음? 왜?”
“쓸만한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지, 바퀴벌레 눈물만큼 적음! 너 스물 여덟살! 그 정도로 많은 유물급 아이템 소유했다면, 최근 몇 년간 발견된 유적의 발견자에 모조리 네 이름이 붙어있어야 한다!”
“….그 정도인가? 난 그냥 있겠다, 싶으면 거기 있던데.”
“그 정도다! 비정상! 말도 안되는 비정상!”
카이부엔은 길길이 날뛰더니, 한참을 끙끙거리다 말했다.
“역시, 너 지워진 기억이 있다!”
“없다니까. 여기서 일기라도 써줘? 다섯 살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 쓸 수 있는데?”
“아무튼 있다! 네가 말한 사건들, 흐름, 그 결과 네가 옛 로드릭 땅으로 가게된 것! 하나의 흐름! 준비된!”
게호오오…. 끄응, 끽끽, 께에엑….
“카이부엔 더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 누군가 너를 위해 준비했다! 꿈속의 ‘하이드’가 끊임없이 중얼거린 끝에 너를 지금의 너로 만든 것처럼! 너의 능력! 너의 도구! 네 머릿속의 누군가, 알려준 것! 너를 위해 준비한 물건이 있는 곳으로!”
카이부엔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너, 뭔가 아주 중요한 인간! 너도 모르는 가치가 내재되어있다!”
“어…. 카이부엔, 지금 좀 흥분한 것 같은데….”
“가치, 변한다! 카이부엔, 너의 가치에 관여했다! 네가 대단한 사람이 될수록 카이부엔의 가치도 높아진다! 아주 대단한 거래! 좋은, 돈도 안드는 완벽한!”
좀 흥분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고블린 식 응원 비슷한 것 같으니 뭐.
“어, 음, 그래. 고, 고맙다.”
“가라, 가! 늦으면 가치 사라진다! 너, 내가 못알아본 대단한 무언가! 변한거 보고싶다! 빨리 가라!”
녀석의 손에 떠밀려 선로까지 나오자, 꽤나 속도를 늦춘 마도열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화물칸 문이 반쯤 열려있는게, 아무래도 공방 안쪽까진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물건을 두고 회수하는 식으로 일하는 모양.
속도가 붙으면 매달리기 힘들어보여서 나도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을 받았다는 듯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주는 기관사.
『뿌우우우우우-!』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 속도를 붙이는 열차 옆으로, 선로까지 나와 꽥꽥거리는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기차의 소음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악악 거리는 새된 목소리.
“-증거! 너! 증거다!”
“지금 기분나쁘지 않은! 너 아무렇지 않은! 그게 조종당하지 않는 증거!”
“준비다! 너! 지금을 위해 준비됐다!”
열차를 따라 달리는 작은 달음박질이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준비라. 내 능력과 상황이, 내게 일어나는 모든 기현상이 어떤 순간을 위한 준비라….
“재미있는 의견이군.”
나름 일리있기도 하고.
….덜컹!
“안녕하십니까!”
“어이, 패스파인더! 이거 소문의 수배자 아냐?”
“용빼는 재주가 기가 막히다고 하더만, 과연 명불허전이군 그래! 고블린 놈들이랑 친분도 다 있고!”
“흐흐흐흐. 길찾는 놈이 제 몸하나 빼낼 길도 못찾으면 장사 접어야지요! 그래서, 어디 붙으면 됩니까?”
준비라면, 무엇을 위한 준비인가.
하이드는 워로드를 만나면 물어볼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생각하며 기관사들의 틈속으로 파고들었다.
항구는 제법 멀리 있으니까.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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