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41
Chapter. 20. 오프로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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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륵-
딥 블루라인 탐사의 위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바다 자체가 함유한 독성 비정제 마나.
마시면 속이 뒤집어지고, 오래 노출되면 피부에서부터 붓고 갈라지는 등 여러모로 몸에 해롭다. 그냥 두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공마석 가루가 주재료인 중화재를 쓴다.
둘째, 바다의 해류와 비정제 마나의 흐름이 엉키며 발생하는 돌발성 난류.
이곳에 올 때 만났던 매복 태풍이 이러한 자연현상이다. 비정제 마나는 은은한 녹색빛을 띄기 때문에 바닷속에서 커다란 녹색 띄와 같은 형태로 확인 가능한데, 이게 갑자기 꼬이기 시작하면 열일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늦으면? 글쎄. 범선도 찢어버리는 해류에 사람이 휩쓸렸으니, 좋지 않겠지.
마지막으로, 셋째.
해양생물.
부그르르륵-!
[으읍! 으으으읍! 부그흐으읍!]지금 내 등짝에 달라붙은 거!
어깨와 갈비뼈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조여오는 촉수와 살점이 떨어질 것 같은 빨판, 그리고 그 중앙에서 나의 척추를 향해 파고드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느껴졌다.
‘여, 여긴 도대체 뭐하는 동네야!’
30분 전에는 빼곡한 이빨마다 한뼘 길이 마나를 뿜어내는 상어를 피해다녔고, 10분 전에는 포탄을 닮은 오징어때의 육탄 폭격에 시달렸으며, 지금은 심해의 어둠과 완벽히 같은 색의 문어에게 피를 빨리는 중이다.
쿠르르륵-
[하이드, 침착해라. 그냥 떼어내면 네 등가죽을 통째로 벗겨낼 수도 있는 놈이다.] [부그흐윽! 그르르륵! 그흐으읍!] [천천히. 호흡기 물고, 마음을 가라앉혀라. 단거리 통신기는 호흡기를 물어야 작동하게 되어있다.]에그윌은 등뒤로 향하는 내 손을 제지하더니, 호흡장비의 주머니를 터트려 내 입속에 중화제를 흘려넣었다.
내가 입안에 들어온 알싸한 공마석 가루를 꾸역꾸역 삼키는 동안, 잠수장비를 덕지덕지 매단 에그윌은 내 등뒤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쿡쿡, 꾸우욱!
….망할 문어의 거무튀튀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이?] [그웍. 동반자 문어. 숙주의 등에 달라붙어 살아간다. 억지로 뜯어내려 하면 등가죽과 척추를 몽창 뽑아가기 때문에 걸리면 평생 같이 살아야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 여기서 떼어내면 잠수복에 구멍난다. 세 시간동안 내려온 길 돌아가야 한다.] [안 떼어내면 내가 돌아가시겠는데?] [안 죽는다. 동반자 문어 약간의 피만 빨아먹는다. 대신, 숙주 지킨다. 포식자 접근하면 맹독 먹물로 쫓아낸다. 감각이 좋아서 위험을 느끼면 숙주에게 알리기 위해 등을 찌른다. 핏값을 후하게 쳐주는 상도덕을 아는 생물. 심해 잠수부의 동반자. 그래서 동반자 문어.] [….그래? 독은 괜찮나?] [그웍. 등에 박아넣은 이빨로 이미 해독성분을 흘려넣었다. 숙주, 면역.] [오오.]조금 진정하고 보니, 확실히 등 언저리가 조금 뻑뻑하고 따끔한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등짝에도 한 마리 매달아온 에그윌의 모습을 보니, 나름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올라가서 소금기 없는 물을 뿌리면 알아서 떨어진다. 떨어진 녀석, 별미. 경매 붙이면 5천 실링은 족히 나오는.] [정말 괜찮은 녀석이구나!]이런 식으로 딥 블루라인의 심해는 온갖 희귀한 생명체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이었다. 에그윌이 말하길 과거 블루라인 산맥이 영험한 마나로 온갖 영수와 마수를 키워낸 것처럼, 딥 블루라인은 폭발한 용맥의 마나가 스며든 바다가 지금 보는 것 같은 수많은 해수(海獸)를 키워냈다고.
[정말 뒤집어진 산맥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군. 생긴 것도, 사는 생물도 말이야.] [그웍. 그래도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쉽다. 가라앉기만 하면 되니까.]해구의 경사가 가팔라지는 구역부터는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생 문어의 바짝 쪼그라든 머리를 보고있는 사이, 나와 에그윌을 제외한 다른 인양꾼들이 전부 올라갈 준비를 하는게 보였다.
[벌써 가?] [크륵. 우리 남매가 수생종의 피를 이어받긴 했지만, 트롤이나 오러나이트의 몸과 비교할 수는 없지. 저 아래부터는 잠수장비의 성능만으로 수압을 버틸 수 없다. 몸이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폐가 쪼그라들어서 호흡곤란으로 기절하고 말지.] [내려오면서 계곡에 박아넣은 쇠고리 기억나지? 올라가면서 거기에 줄 연결해 놓을테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당기라고. 선장이 엔진 돌려서 우다다닥 끌어 올릴테니까!]각자 가지고 있던 비상 소모품, 인양용 갈고리와 여분 중화제를 넘기고 수면을 향해 올라가는 삼남매와 엘프.
등에 쪼그라든 문어를 매단 체 깊은 바다에 둘만 남겨진 에그윌과 나는, 점차 작아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원래는 나도 이쯤에서 돌아간다. 혼자 있는 것,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선장은 더 깊이 가보기를 원한다. 이번엔 정말 감이 좋다고, 분명 비공정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나도 더 들어가고 싶다. 깊을수록 용맥 마나 짙어지니까. 마법사는 원래 죽기 딱 직전에 만들어진다니까.] [흠.] [하이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겠다. 용맥의 조각쯤 되는 물건이면 저 아래에 가야 있을테니 원한다면 내려갈 수 있다. 아니면, 여기서 돌아가도 좋다. 잠수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이정도 성과를 낸 것만 해도 인양꾼 역사에 없는 일이다. 피로가 쌓였으니, 다음번 항해에 참여해서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원래 미탐사 지역은 시간을 두고 세 번 정도에 나눠서 탐사하는게 보통이니까.] [….] [선장 말은 무시해라. 원래 매 항해마다 ‘이번엔 틀림없다!’며 더 깊이 들어가라고 칭얼거린다. 하지만, 잠수는 어디까지나 인양꾼의 판단을 가장 우선시 하는거다.]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에그윌의 목소리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몸 상태를 봐선, 웬만하면 그냥 돌아가고 싶다.’
말이 10분에 한번씩 죽을 뻔 한 거지, 사실상 칼날 위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주일이었다. 배 위에서 밤을 보내는 것만으론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축적된 피로는 그대로 컨디션 저하로 이어져 내 몸을 둔하게 만들었다. 저 아래는 위쪽보다 더할테니 지금까지의 행운을 기대하긴 힘들 터.
위험하기도 하고, 눈 닿는대로 걸어올린 인양물이 벌써 5백만 실링에 육박했다는 선장의 말을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자리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음에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충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건만 봤을 때는 이번 조업은 여기서 끝내고, 용맥석은 다음에 찾던지 해야 될 것 같단 말이지.] [그웍. 그럼 줄 당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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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다른게 느껴졌다.
첫 잠수 이후, 내게 ‘익숙한 감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재분류 한 기묘한 ‘감’.
어째서인지, 유적에 들어가면 ‘그냥 저기에 뭐가 있을 것 같다’라고 느끼게 하던 그거. 생소한 낯익음. 처음 왔음에도 한번 와봤던 곳처럼 길이 눈에 밟히는 현상.
바닷물이 검은 빛에 가까워지는 구간에 들어서면서부터, 유적 탐사에 참여할 때마다 내가 귀한 유물을 한가득 안겨준 그 기시감이 저 바다 깊은 곳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정이지만, 내가 유물찾는 능력이 단순 관찰력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거라 치고.’
‘가정이지만, 카이부엔 말처럼 정체모를 누군가가 내가 유물을 쏙쏙 골라낼 수 있도록 세뇌든 뭐든 안배를 했다 치고.’
‘가정이지만, 만약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뭔가를 쑤셔넣었다면, 그건 평생 내 귓가에 속삭여온 그 망할 목소리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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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저 아래에, 나를 하이드라 부르며 방랑자의 삶으로 몰아세운 그 목소리가 나를 위해 안배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성적인 판단과 이유 모를 편안함은 위를 가리키고.
감성과 본능, 끌림은 저 바다 더 깊은 곳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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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님.’
‘저는 모든 것을 잊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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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쪽을 부탁드려야겠네요.’
‘예. 이 정도는 되겠다, 싶은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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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현 듯 떠오른 꿈속의 목소리가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
[더 내려가자.] [그웍. 신중하게 선택해라. 저 아래는 여기보다 더 어둡다. 눈으로 찾는 것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도 힘들다는 뜻이다.] [괜찮아. 어디로 가야할 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굳이 안 보여도.] [….그럼 탈출용 줄 닿는 곳까지만 내려가보자.]에그윌은 결국 동의하더니, 먼저 올라간 선원들이 늘어뜨린 쇠사슬을 붙잡고 아래를 향하기 시작했다.
분명 미쳐날뛰어야 할 심해의 난류도 잠잠하고, 배를 통째로 삼키는 해수들도 어째서인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반짝.
착각이지만, 저 아래에서 푸른 빛을 본 것 같다고 하이드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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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로록!
“그래서, 둘만 남고 늬들은 올라왔다고?”
“예. 뭐, 생각좀 해보겠다던데? 에그윌이야 그동안 우리가 못 따라가서 더 안내려갔던거고. 하이드는 반쪽 나이트라도 몸은 괜찮잖아? 심해 잠수의 기본 조건은 달성했다고.”
“에그윌 녀석, 어느새 문어도 잡아다 붙여놨던데? 걔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저기 저 타림녀석이 나무만 보면 헐떡이는 것만큼이나 마법사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고. 하이드가 동의하기만 하면 냉큼 내려갈거요 아마.”
“….내려갔단 말이지. 심해로.”
그림 록은 방금 막 배로 돌아온 선원들의 보고를 들으며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심해 탐사를 한번도 안해본 것은 아니었다. 배 위를 타리무스에게 맡기고 에그윌과 같이 심해로 잠수한 게 몇 번은 되니까.
‘번번이 실패했지. 해류는 미친것처럼 세차게 위로 흐르고, 해수들은 무슨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들고.’
심해. 딥 블루라인의 중심은 마치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침입자의 방문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번만큼은 달라!’
치직-
[생각보다 조용한- 치직! 더럽게 어둡- 치직!] [치지직- 운이 따라준 거다. 그우…. 치직!]선원들이 잠수중에 사용하는 단거리 통신기. 그리고, 배 위쪽에서 선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값비싼 스테이션 용 장거리 통신기.
저 잡음 섞인 목소리가 바다유령의 장난이 아니라면, 에그윌과 하이드는 이미 심해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저들 말로는 위쪽 바다보다 오히려 잔잔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전하게!
‘심해가 잠잠해지는 주기가 있나? 아니면 어떤 조건이 있는 건가? 오늘이 몇월 며칠이지? 심해 화산 분출? 심해 해수의 영역 다툼? 동반자 문어의 종류? 잠수 지점? 또 뭐가 있지?’
당장이라도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해두고 싶었지만 그의 펜과 종이는 선장실에 있었다. 혹시 자리를 비운 몇초 사이에 심해에 들어간 두 사람의 정보를 놓칠까 싶어 앉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통신기에 붙어있는 실정이었다.
호로로록-
“선장. 거 앉던가, 서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하지 그래? 보는 내가 다 불편해서 그런데?”
“시끄러! 너는 임마, 너는, 넌…. 이해 못해! 그림 록이라는 남자가 제 발로 이 정신나간 바다에 기어들어온 이유가, 이 드넓은 딥 블루라인을 십 몇 년 동안 쑤시고 다닌 노고가 이제야 막 빛을 보려하는 중이란 말이다!”
“에이, 심해가 저 위쪽 해구보다 좁긴 해도, 이제야 제대로 그 속살을 구경하기 시작한 거 아뇨? 첫날 저 둘이 뭘 찾아오길 기대하면 그건 도둑놈 심보가-”
빠악!
“재수 없는 소리 할꺼면 바다 밑에 들어가서 해! 부정탄다!”
“니미 틀린 말 했소? 이러다 빈손으로 돌아오면 선장 또 실망해서 술이나 퍼먹을거 아니까-”
빠악 빠악!
“투아다아아알! 내가 너네 막내 혀 잘라버리든, 골을 깨버리든 하기 전에 데려가!!”
“염병, 내발로 간다 가! 괜히 욕심내지 말고 제때 끌어올리기나 하쇼!”
“넌 고대 비공정 찾으면 배당 받아서 뭐 할지나 생각하고 있어! 쓸데없이 재수없는 생각 하지말고!”
결국 수인족 중 맏이가 초치던 녀석을 끌고간 뒤에야 갑판이 조용해졌다.
호로로록-
타리무스가 공마석 들어간 차를 마시는 소리위로,
달달달달달달달달-
선장이 다리를 떨어대는 소리가 겹쳐지고.
[치직- 뭐가 보여야- 치직!]다시 그 위로, 저 깊은 바다 아래의 탐사부들이 나누는 목소리가 섞여드는, 초조하고 기대에 찬 시간.
“….록.”
“타림, 흙 얘기면 항해 끝나고 구해줄테니까 지금은 좀 놔둬.”
“아니. 뭔가 배를 향해 접근하고 있어서 불렀소만.”
갑판을 부술 듯 떨어대던 선장의 다리를 멈춘 것은 눈이 좋은 타리무스의 경고였다.
“난 안 보이는데? 위험한 바다생물이면 네가 이렇게 앉아있을리는 없고. 뭔데?”
“….사람이다.”
푸웁!
“뭐? 다른 배?! 씨발 해적이잖아 그거! 이 넓은 바다에서, 그것도 연안도 아닌 곳에서 몇 대 없는 배를 만난 일이 어디 있다고!”
다들 한가락 하는 뱃사람이다보니 어선이 깃발만 바꿔 달면 해적선이 되는 것도 일상 다반사였다.
흥분한 그림 록이 당장 비상종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타리무스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아니. 배는 아니오.”
“뭐? 사람이라며?”
“그래. 사람.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그럼, 설마 표류자냐? 이 바다에서 배를 잃고도 살아남은 기적의 사나이가 있다고?”
“으으음….”
그림 록의 물음에도 쉽게 답하지 못한 채 인상만 찌푸리는 엘프.
선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타리무스가 왜 그렇게 어정쩡한 대답만 늘어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이다. 그들처럼 바다 위에 있는 사람.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배 위에 있고, 저쪽은 바다 위에 있다는 거다.
“저, 저게 뭐, 뭔….”
“말했잖소. 사람. 배는 아니고, 표류자도 아닌.”
남자 하나, 여자 하나.
헝클어진 긴 머리에 누더기 같은 망토, 어딘가 균형이 어긋난 듯한 걸음걸이. 제법 큰 몸집을도 다 가리지 못한 등 뒤의 거대한 쇳덩이와 함께,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남자.
여자 쪽은 당장 세이렌에 홀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은 미녀였다. 남자를 수행하듯 반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모습에 그림 록은 몇 번이고 그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지 볼을 꼬집어 봐야했다.
“….이 바다위에서 마법사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림 록이 아는 한, 저게 가능한 것은 수계 마법사뿐이다. 그것도 과거에 그의 배를 탔던 마법사보다 아득히 뛰어난, 바다의 마력을 이겨내고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타림. 여차하면 쏠 준비해.”
“선장.”
“여차하면 내가 달려들테니, 시간끄는 동안 애들보고 해수용 대포좀 잡아두라고 하고.”
“….선장.”
찰팍. 찰팍. 찰팍. 찰팍.
긴장감이 고조되는 사이, 남자는 그림 록의 눈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배에 다가왔다. 그림 록은 뱃전에 엎드려 총안(銃眼)너머로 바다 위의 행인들을 확인했으며,
털그럭!
“이런, 미친….”
그만, 충격에 총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앞서 확인한 타리무스가 왜 저렇게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가장 깊은 바다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은 눈.
얼굴은 깊은 흉터들이 거미줄처럼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흉터를 타고 흐른 피딱지가 굳어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든 모습.
그럼에도 그림 록은 그의 일그러진 흉터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 갑판 위에 있었던, 그의 신입 선원.
인양꾼으로서 재능이 하늘을 찌른다 믿어 의심치 않는 복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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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불안증이 있어? 정신병자였나?’
‘에휴우. 그런게 있수다. 뭔가 찾지 않으면 미쳐 돌아가실 것 같은 뭐, 그런건데.’
‘뭘 찾길래?’
‘몰라.’
‘응?’
‘뭔가 찾는데, 찾아야하는데, 정작 내가 그게 뭔지를 모른다고.’
‘….진짜 미친 새끼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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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한숨처럼 여행의 목적을 털어놓던 유쾌한 녀석.
하이드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 바다 위의 남자.
“뭔가 있는 놈이다, 싶었지.”
남자와 눈을 마주한 그림 록은 조용히 떨어트린 총을 집어들어 장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바다를 10년이 넘게 항해한 그림 록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덕분에 저런 눈을 한 놈들이 어떤 놈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눈. 똑같이 생겼으나 전혀 다른 것을 담은 저 눈.
“….하이드 녀석. 순 맹탕이였잖아.”
패스파인더라 불릴 정도로 찾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녀석이 평생 찾아다닌 ‘무언가.’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된 나도 찾아버린 것을 그렇게 오랬동안 찾아다녔다니.”
뭐가 패스파인더고, 뭐가 탐색의 귀재냐. 모자란 자식.
본능처럼 그림 록의 총구가 남자의 이마를 향했다.
방아쇠 위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치직!
[찾….다! 치직- 찾았다! 찾은 것 같…. 아마도! 치직!] [….어어억! 비공정! 비공…. 높다! 아직도 형태를…. 치직!]끔찍하게 내려앉은 침묵을 가르며 흘러드는 하이드와 에그윌의 목소리. 바다에 나온 이후로 평생 기다렸던 그 환호성.
그리고,
“….찾는 수고를 덜었군.”
낮고 갈라진 남자의 목소리가.
심해처럼 가라앉은 눈이 통신기를 향하는 순간.
타아앙-
총성이 울렸다. 잡음 섞인 하이드의 환호성 속으로, 각기 다른 총성이 섞여들었다.
[선…. 치직! 선장! 그림…. 치직! 듣고있냐! 찾았다! 내가 패스파인더라고 몇 번을….치직!]그림 록은 남자가 짊어진 쇳덩이가 거대한 총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불균형한 모습이 왼팔의 유형화된 파편 때문이라는 것도.
무수한 파편으로 만들어진 팔에 석양이 비산하는 찬란한 광경이, 그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도.
환호성 위로 조각난 석양이 흩뿌려졌다.
단호하게, 매정하게.
서글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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