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47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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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숨어야겠구나.’
‘네가 그의 일부이기에 시스템과 이 세상의 연산에서 벗어나 있다한들, 네 주변의 사람들마저 그러한 시스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니.’
‘정녕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의 가호가 적의 손아귀에 들어간 다음에야 완성될 계획을 꾸미고 있다면…. 너는 철저히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만 움직여야 한단다. 너를 보지 못하는 시스템이 다른 누군가의 눈을 빌어 염탐하지 않도록. 그녀가 너를 찾았을 때는, 이미 스쳐지나간 네 흔적만 더듬을 수 있도록.’
‘혼자가 되렴, 하이드.’
‘힘을 잃은 세계수가 건넬 수 있는 조언이라곤, 고작 이것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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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 후웅-
쐐애액!
아침. 반쯤 박살나 기울어진 선실 안에서, 마찬가지로 반쯤 박살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선실을 가득 매웠다.
[음? 검을 배우고 싶다고? 기사단에서 쫓겨나 겨우 교단에 몸을 의탁한 나 같은 기사에게?]베고. 찍고. 속도가 죽기 전에 허리 힘으로 감아 휘두르고.
파도 소리가 선명한 검광에 수차례 베여 나갈 즈음엔 기울어진 선실안에 후끈한 열기가 가득 차 있었다.
텔드랏 지역 출신인 내가 제국의 검을 쓰는 이유는 그걸 가르친 사람이 제국 출신의 성기사였기 때문이다.
‘이, 이건 대체…. 하이드. 광명의 빛 아래 맹세코 검술을 배운 적이 없니? 고작 내게 3개월을 배워 이렇게 까지 자세가 나온다는 것을 내게 믿으란 말이냐?’
음, 정확히는 그 사람에게 배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한참 전에 그 검술의 본토에서 끔찍할 정도의 훈련과 실전을 거쳐 체화한 것이었다.
[제국검의 기초는 하체다 하체! 기사란 부동! 검을 뽑아 앞으로 나아갈 때는 살아있는 충차(衝車)되며, 멈춰섰다면 그 자리에 살아있는 철탑이 되는 것!]아침부터 칼춤을 추어댄 것은 기울어진 선실에 휘청인 순간 떠오른 기억 때문이다. 뭐, 기사는 그 어떠한 상황에도 중심을 잡고 검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나? 나를 가르친 맹인 근위기사는 철저하게 옛 방식으로 나를 훈육했다. 굴리고, 패고, 욕하고.
기억은 이어지는 검술처럼 끝없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출생, 이번 삶처럼 방랑벽에 휩쓸려 떠도는 삶, 선명하게 기억나는 부분과 아직도 흐릿한 부분.
평생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내게 그것은 평생의 물음에 대한 대답 같은 것이었다.
‘혼자가 되렴, 하이드.’
번뜩이던 검광이 잦아든다.
‘그림자의 삶이라. 어떤 기사는 그런 것을 감내할 운명을 타고났지.’
기억이 흘러나온 자리엔 눌어붙은 끈적한 감정이 남았다.
‘미안하구나, 하이드’
사그라들 듯 소멸하던 은빛 목소리.
‘….황제폐하 만세.’
마도제국의 융단폭격 앞에 부서질 듯 검병을 잡은 노기사.
철컥!
기능 잃은 검이 부서진 검집으로 돌아갔다. 선실 구석에 고인 바닷물로 대충 몸을 닦고, 옷을 챙겨입었다.
오트만과 교수를 떠나온 지 사흘.
마법의 기적으로 사흘을 떠내려온 배는 어느새 육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겠어. 팔자려니 해야지.”
그건 늘 그렇듯 혼자가 될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며, 기억을 되찾는게 썩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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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우우우. 와서 밥먹어라 밥. 맛없는 밥.”
타리무스와 에그윌은 한손에는 그릇을, 다른 손에는 몸을 묶은 밧줄을 쥔 채로 나를 맞이했다.
“아, 미안. 같이 준비했어야 하는데.”
“준비는 무슨. 선창의 건량더미에서 젖지 않은 것을 찾아내기만 했을 뿐이오만. 간밤은 잘 지내셨소?”
“나야 뭐. 타림이랑 에그윌은?”
“나는 해먹에서 자는것에 익숙한 터라.”
“트롤은 잠을 설치는게 뭔지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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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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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달칵달칵.
상투적인 아침 인사 다음에 찾아온 것은 물에 불린 건량만큼이나 텁텁한 침묵이었다.
“이세나는?”
내가 운을 띄우자 타리무스가 한숨처럼 답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오.”
“그렇겠지.”
“내가 다시 가서 말해본다. 이세나 이해하지만 그런 태도는 잘못됐다.”
“됐어. 가족을 둘이나 잃은 사람한테 뭔 쓴소리를 한다고.”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에그윌의 어깨를 붙잡은 다음, 나는 어색해진 동료 선원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아마도, 내가 꺼내야 제일 편한 소리를.
“우?!”
“그 무슨….”
“말했잖아. 관찰하는건 내 특기라고. 그게 아니라도 사흘동안 분위기도 못 읽을 정도의 바보는 아니지. 이세나는 나를 원망하고 있지? 너희 둘은 아침마다 나를 죽이겠다고 날뛰는 그녀석을 말리고 있고?”
“….”
“아닌 척 하지마. 트롤도 흉터는 남으니까. 이세나도 발톱이 꽤 날카로웠지.”
에그윌은 황급히 손으로 팔뚝을 가렸지만, 이미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세나 어리다.”
“괜찮아. 이해하니까.”
“에그윌이 설득한다.”
“설명은 못 하지만 이 배는 무사히 육지에 도착할거야. 저기 보이는 땅은 아마도 옛 서제국의 어딘가일 것이고. 너도 봤잖아. 그 심해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 난폭한 바다에서 다 부서진 배가 아무 일 없이 떠내려온게 기적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건,”
“침수됐어도 마도엔진은 마도엔진이니까 팔면 꽤 돈이 될거야. 세 사람이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는데는 충분하겠지. 난파선도 배인 만큼 약탈자보다 귀족 군대가 먼저 올 것이고, 제국 풍습상 완전히 날로 먹지는 않을 테니, 아마-”
“그건 하이드의 잘못 아니다!!!!!”
콰앙!
성난 트롤의 주먹질에 반쯤 부러진 돛대가 더욱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건 사고다! 바닷 배는 언제 어디서나 침몰할 수 있다! 폭풍! 바다괴물! 해적! 파도! 그때 우리 배가 만난 것도 그런 것이다! 그저, 시기가 안 좋았을 뿐!”
“그래?”
“그렇다! 이세나, 유일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슬프다! 안다! 하지만 화낼 사람을 잘못 찾았다! 발톱을 넣지 못해서 휘두를 뿐인, 에, 에그윌보다 더 멍청한 상태다!”
“그렇구나.”
후욱, 후욱, 후욱
나도, 타리무스도 잠자코 감정을 쏟아내는 에그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숨을 가라앉힐 즈음, 조용히 답했다.
“….윌.”
“듣는다.”
“정말, 내 잘못이 눈꼽 만큼도 없다고 생각하냐.”
놀란 듯 들이쉬는 숨과 동요하는 눈.
“그, 그건!”
“미리 말하는데, 나는 사물보다 사람을 더 잘 봐. 특히나 너는 거짓말을 못하는 편이고.”
“우우….”
“나 봤다. 내가 선장의 목을 벨 때, 네가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결국 밖으로 나온 말에 좀 전보다 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파편 폭주로 말로가 된 선장의 목을 벨 때, 에그윌의 눈을 봤었다. 그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과 답답함, 스스로가 선한 사람이라 더욱 인정하기 싫었던 순간의 감정.
지난 사흘을 기다렸지만 결국 이 착해빠진 사람들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쩌겠어. 내가 얘기해줘야지.
“정말 조금도 생각해본 적 없냐. 눈꼽 만큼도 내 탓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자부할 수 있어? 그 심해에서 나와 워로드의 모습을 본 네가, 그곳에 워로드와 그 부하들이 찾아와 웨일호를 습격한 것이 우연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내가 없었다면 워로드도 없고, 선장과 이세나의 형제들도 무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지난 사흘간, 단 한번도?”
“우으, 으….”
“이세나, 타림, 에그윌. 너희 셋은 이미 가족이야. 서로 떼어놓을 수 없지. 그런데 가족중 하나는 나를 피붙이의 원수로 여기고 있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네 가슴 속에도 어느정도 내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분명히 남아있지.”
에그윌의 자책하는듯한 얼굴이 그것이 사실이라 얘기하고 있었다. 나의 첫 항해, 너무 공교로운 시간, 너무 공교로운 장소. 의심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사람이지.
억울하진 않았다. 이 상황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알았다.
“타림, 당신은 오래 살았으니까 이런 상황에 우리가 계속 함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있지?”
아마,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엘프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분명히 알겠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시간을 먹고 몸을 불리는 법. 잃어버린 이들의 빈 자리가 커질수록 의심과 증오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오.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한 일이겠지. 나 또한…. 그것이 완전한 우연이 아니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오. 하이드가 그들을 끌어들였다는 소리가 아니라, 하이드가 의도하지 않은 그의 일에 우리가 휘말렸다는 뜻으로.”
“그, 그럼 결국 하이드는 잘못이 없는거다!”
“그렇지. 하지만 형제를 잃은 이세나가 원인을 제공한 이를 증오할 자격이 있는것도 사실이외다. 우리가 그것을 말릴 수 없는 것도, 함께하면 언젠가 둘 중 하나를 도려내야 한다는 것도.”
타리무스가 침울한 목소리에, 이미 결론에 가까워진 것을 안 에그윌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에그윌.”
“그, 그래도…. 이렇게 하이드를 버리는 것은 나쁘다.”
“버리는게 아니라, 내가 떠나는거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것을 털어놓았다.
“이세나가 맞을거야.”
“그욱, 우….”
“내가, 그놈들을 끌어들였을 수도 있어.”
이세나가 있는 선창과 내가 있는 선실이 배 끝에서 끝이라지만, 그렇다고 죽어라 날뛰는 수인과 트롤의 소동이 안 들릴 정도는 아니다.
악을 쓰며 제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짖은 이세나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생각했다.
‘내 탓이다.’
‘어쩌면. 높은 확률로, 나 때문에 이들이 죽었을 수도 있다.’
시스템은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GG의 계획 안에서 탄생한 존재가 아니므로.
내 주변도 쉽게 볼 수 없다. 불확정 변수에 영향을 받은 환경은 노이즈가 심한 화면처럼 불분명하다고 하니까.
하지만, 흐릿한 화면도 계속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은 잡히는 법이다.
‘시스템이 정확한 순간으로 우리 모두를 끌어들인거야.’
만약, 내가 웨일호에 머무는 동안 시스템이 흐릿하게나마 내 위치를 특정했다면? 자신의 옛 흔적을 회수하는 것까지가 교수의 자유의지였다면, 그 시기를 우리와 만나도록 정확히 조종한 것은 그의 옆에서 ‘월드’라는 이름으로 녀석을 조종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혼자서도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수계 마법사가 굳이 선단과 수하들을 끌고 오게 한 것은? 어떠한 방비, 혹은 복적이 있었다면? 이게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
에그윌은 나를 믿었고, 내 탓이 아니라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내 탓이 아니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울부짖는 이세나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더 남아있다가 또 다른 ‘우연’이 이들을 덮쳐오는 것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갈라서기로 한 것이다. 흐릿한 끌림을 따라 홀로 방황한 옛날처럼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조종하는지 알고 사고한 끝에 홀로 떠나기를 결정한 것.
쿠웅!
“어이쿠. 떠드는 사이 배가 해안에 닿았나본데.”
뱃전에 모래 쓸리는 소리에 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래톱에 밀려온 배는 쓰러질 듯 멈춰선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타림, 나무만 챙기지 말고 애들 좀 잘 챙겨줘요.”
“으음.”
“에그윌은 너무 자책하지 말고. 사실 내가 도망가는 것에 가까우니까.”
“우우, 하이드.”
….개인적으로는 혼자 있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편이다. 자아가 생기고 2년동안 한 것이 모든 생각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와 대화한 것뿐이니. 내겐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숨쉬듯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그간 경험과 패스파인더로서 생각해도 다들 한가락 하는 웨일호의 선원들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실리적이고 나의 목표에도 부합하는 방향이고.
….하지만.
‘같이 있으면 언제고 시스템이 손을 뻗어오는 게 분명한데, 내가 나 좋자고 여기 남을만큼 모진 놈은 아니지.’
기억으로도, 경험으로도 내가 머문 곳에 불행이 따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세나한테는 미안했다고 전해줘.”
“….그게 그녀의 증오에 확신을 줄 것이오만.”
“다 잃은 사람한테 목표라도 남아 있어야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배에서 뛰어내렸다.
배를 등지고 도망치듯 해안을 벗어나자, 바위가 많은 언덕 아래로 황량한 새 대륙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해변의 모래톱에도 자갈이 섞여 있을 정도로 암반이 많이 분포한 대륙.
내가 있던 옛 텔드랏 지역보다 조금 더 습하고, 약간이나마 식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모습.
“결국, 여기로 돌아오게 됐구나.”
익숙한 듯 낯선 모습이 불러온 감상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오트만이 우리의 약속을 제대로 기억했다면, 이곳은 제국이다. 텔드랏이 성장해 제국으로 불리기 전에는 유일하게 제국이라 불리던 땅.
나의 목표는 그 드넓은 제국의 땅에서도 심장부에 위치한 수도에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트만.”
그리고, 위대한 바다의 마법사는 그의 마지막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다.
인근의 작은 언덕에서 올라 망원(望遠) 마도구를 꺼내든 것 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수도가 보이는 곳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을 보니.
제국의 수도는 기억 속 그 모습처럼 보통 도시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했다.
동심원처럼 세 개의 성벽으로 나뉘어진 형태와, 그 가운데 우뚝 선 황성은 도시의 크기에 어울리는 장엄한 규모를 자랑했고.
그리고, 보는 것 만으로도 나의 오래된 향수를 자극하는 제국의 수도는.
“….라투라, 빌어먹을.”
짙은 사기(邪氣)와 음산한 기운에 뒤덮여 좋지 않은 부분마저 과거의 향수를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내 모든 경험과 되살아난 기억이 절대로 저런 곳에 가선 안된다 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계획은 전-부 차선책을 마련해 뒀다지만, 제국의 수도에 있는 물건만큼은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까.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 언덕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한결 같구만.”
제국은 이번에도 대단한 경험을 시켜줄 모양이었다. 여러모로.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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