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48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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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읍-
숨을 참고, 조용히 몸을 숙인다.
용수철처럼 굽혀진 몸에 밀려난 발끝이 흙을 파내고, 마른 표면에 가려져있던 촉촉한 흙내음이 코를 파고들었다.
‘이런.’
실수다. 옛 텔드랏 지역의 땅은 전부 먼지덩이 같은 땅 뿐이라 흙냄새 같은 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됐는데. 낭패라는 생각 한 켠에 부사토가 어쩌고, 산성토양이 어쩌고 하는 박교수의 지식이 연기처럼 스며나왔다. 그러고보니 그녀석, 나름 쉘터 안에서 농사도 짓고있었지.
내가 이렇게 웅크려 숨을 죽이고 있는 이유는, 조금 떨어진 길 위를 걸어가는 일단의 무리 때문이었다.
걸음걸이도, 생긴것도 각양각색인 종족불명의 무리.
“그음? 타 부아크! 구아레! 구아레!”
“게아? 두 아케….”
뻐어억!
“구아레! 비 마르가타!”
“에그극!”
‘걸렸군.’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던 무리의 선두가 뭐라 소리치는 것을 보니 저쪽도 내가 맡은 흙냄새를 느낀 것 같았다. 선두의 덩치 큰 녀석이 작은놈에게 뭔가 명령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들고있던 조잡한 메이스로 작은놈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그러자 겁을 먹은 나머지가 슬금슬금 이쪽을 향해 오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고작 흙내음이 조금 난 것으로 임전태세에 돌입했다. 저들도 조심해야할 적이 있다는 뜻이고, 자주 이런 일을 겪었다는 뜻이지.’
‘상하관계가 있어. 언어도 트롤이나 고블린의 전통언어처럼 뒷발음이 세지만 전혀 다른 언어야. 고유의 언어와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다.’
아마 저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텔드랏과 달리 토양 생태가 살아있는 이 땅에 사람의 흔적이 이렇게나 없는 것은.
피묻은 메이스를 들고 이쪽을 노려보는 큰놈과 겁먹은 표정으로 좁혀오는 작은 놈 여섯. 개머리, 돼지머리, 4족, 2족, 어째 비슷한 점 하나가 보이지 않는 외형들이다.
‘메이스든 놈이 생각보다 신중하군. 작은 놈을 보내 상대가 드러나면 공격할 심산이야.’
‘엉성하지만 포위하면서 들어오고 있고. 이쪽이 사냥하는 쪽이었다는 뜻이겠지.’
‘….전투지능은 어떨까?’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작은 구슬형 마도구 두 개.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다음 허리춤의 검집을 풀어 내려놓았다.
다가오는 쪽에서 보면, 바위 왼쪽으로 살짝 나온 검집이 보이도록.
“?! 소우다! 흄! 흄 소우다!”
그걸 발견한 왼쪽 놈의 시끄러운 외침에 나머지가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카캌?”
바위 왼쪽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맞이한 것은 놈들을 끌어들인 파산검의 검집과 양산형 마력폭탄.
양산형 싸구려 폭탄인 그것은 마력 밀봉도 제대로 되지 않아 오래두면 폭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쓰레기지만, 오히려 그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러 묵혀서 쓰는 이들이 많은 특이한 물건이었다.
마력이 다 세어나간 폭탄은 퍽- 하는 답답한 소리와 함께 터지며 그 안에 쑤셔넣은 가루를 흩뿌렸다. 폭발력이 떨어지며 소음은 줄어들었고, 간당간당하게 남은 마력은 가루같은 것을 단숨에 확산시키는데 아주 유용했던 것.
“으게엑! 마구에! 게아아아아!”
“아에가! 아에가아아아!!”
한순간에 터져나온 가루를 뒤집어쓴 작은 놈들은 눈을 부여잡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도시의 공장 주변에서 긁어온 석탄 가루지만 눈에 들어가면 당연히 앞을 보기 힘들다.
조용하고, 저렴하고. 필요하면 저 석탄 분지에 불똥하나만 튕겨도 충분히 살상력 있는 폭발로 연계되기까지.
[숙성된 양산 폭탄]으로 불리는 저것은 텔드랏령의 바운티 헌터 대부분이 애용하는 마공학 병기다. 반응을 보니, 검을 경계하는 것과 달리 마공학 병기 특유의 마력 발광은 아직 경계할줄 모르는 모양.눈을 부여잡은 놈들을 가볍게 베어내는 사이 커다란 놈이 기다렸다는 듯 돌진하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카부우! 흄! 다쿠바 퀴네아!”
검을 뽑아 휘두르고 회수하는 타이밍을 기다렸는지 절묘하게 떨어져내리는 메이스.
“작은놈도 그렇고. 큰놈도 유독 검을 조심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채애앵!
힘으로 기술을 커버한 공격은 적당히 내어준 빈틈을 쉽게 파고들었고, 내 손을 떠나 날아가는 검을 보는 놈의 얼굴엔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그러면서 마도구는 또 잘 모르는 느낌이고.”
왼손의 검이 튕겨 나가는 동안 놈의 안중에도 없었던 오른손이 앞으로 나섰다.
언뜻 보면 무기하나 없는 맨손.
하지만, 사람이라면 그 안에 깜빡이는 푸른 마력광에 기겁하며 대비를 했을 것이다.
틱-
엄지 손가락으로 튕겨 올린 은색 구슬이 큰놈의 코앞에서 금속 실을 뿜어내었다.
슈르르륵!
“크와아악! 가아아아아!!!”
전투 자체는 예상했던 것보다 한참 싱거웠던 전투.
“온갖 종족 특성 짬통. 고유언어에 학습능력. 인간 사냥에 익숙한 모습이라….”
다만, 전투의 내용 자체는 제법 알찼다.
“뮤트네. 뮤트가 로드의 던전 밖을 그냥 돌아다니네.”
던전이 포화상태가 되면 뮤트가 밖으로 나온다곤 하지만, 내가 알기론 그런 경우에는 로드와 함께 우르르 쏟아져나와 근처 요새도시를 공격한다고 들었다.
이놈들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경우. 어슬렁거리다 인기척을 느끼고 나서야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딱히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던 모습.
내가 전혀 모르는 종류의 행동.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야겠구만.”
고유 언어를 가진 뮤트. 던전 밖을 배회하며 인간을 사냥하는, 뮤트치곤 약하기 짝이없는 뮤트.
패스파인더로서의 내 지식은 물론 되살아난 기억속 지식으로도 듣도보도 못한 제국의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자마자 저런 걸 마주쳤으니, 대단한 우연이 아니라면 저런 배회하는 무리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겠지. 당연히 약한 놈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어쩌면 저런 변화의 원인이 된 여왕의 파편을 가진 ‘로드 급’ 뮤트도 돌아다닐수도 있고. 가는 길에 소란이 일면, 전통적인 땅굴벌레가 우르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서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알아낸 것이 ‘상당히 귀찮은 장해요소’라는 것은 방랑자의 어깨에 힘이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환경이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면, 이것도 병이 아닐까 싶다. 방랑 증후군, 후천성 새것 탐닉 증후군,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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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 해. 나는,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해! 이 비좁아 터진 섬에서 해조류만 먹다가 미칠 순 없어!’
‘섬에 두 개밖에 없는 조각배는 작은 만조차 벗어날 수 없어. 큰 배가 필요해. 바닥이 철판으로 뒤덮여 있고, 커다란 엔진이 달린 대륙간 항해선 같은 게.’
‘그러고보니 섬 끝에 사는 맨슨씨가 분명 촌장님의 마력 스토브를 고쳐주셨지. 그 사람은 마도공학자야! 그걸 배워서, 최소한 대륙선이 지나는 항로까지라도 나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 봐야겠어. 그게 아니면 이 섬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어!’
‘….이렇게 있을 순 없어. 나가야 해. 뭔가 찾아야만 해. 나를 하이드라 부르는 머릿속 목소리는 무엇인지, 내가 왜 이렇게 한 자리에 머무르면 미칠 것 같은지, 모든 해답은 이 섬 밖에 있을거야.’
‘나간다.’
‘나가고 만다.’
‘여기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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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깍, 짤깍짤깍,
“에…. 그러니까…. 잘 닦은 은사 뭉치를 이렇게 감아서, 여기 안쪽에 환형 용수철을 감으면서 마정석을 활성화 시키면….”
틱. 틱. 틱. 틱….
위이이잉! 슈르르륵!
“돼, 됐다! 진짜 됐잖아?”
칼날처럼 날카로운 은사(銀絲)에 몇 번이고 베이며 손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지금 그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여행과 잔머리 빼곤 일자무식이었던 이 패스파인더 하이드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방금 사용한 고블린 마공학 병기 ‘실버티클’을 재사용 가능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했으니까!
“고맙다! 작은 섬에 갇혀 방랑벽에 미쳐가며 마도공학을 배운 전 세대 하이드여! 너의 노고는 헛되지 않았어!”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은 막 죽인 뮤트 무리를 해부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혹시나 얘들도 파편이 있을까, 옛날 뮤트처럼 피에 독성이 있는건 아닌가 하며 시체를 헤집고 있는데, 큰놈을 째면서 놈의 몸을 파고든 은사를 풀어내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폭발형 마도구랑 달리 원형은 다 남아있는데. 이거 어떻게 감아서 못쓰나?’
파산검은 선장을 보낸 그날 두 번째로 휘둘러진 덕에 이제는 뽑을 때 불똥이 튀기는 특이한 검 정도로 전락했고, 아공간에 쌓아둔 마공학 도구도 마냥 무한한 것은 아니고.
서제국령에 오자마자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입장에선 ‘남아있는 걸로 충분하려나?’ 하는 생각이 한 번쯤 들 법도 하잖아. 그래서 살을 파고든 실을 조심스럽게 회수해서 씻어내고 감아보고 이래저래 용을 쓰던 바로 그 순간! 우리 금이 간 기억의 댐 님이 기다렸다는 듯 전 세대 ‘하이드’의 기억을 솔솔 풀어주셨다는 말씀.
저어-기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타리그덴 군도에서도 아주 외진 섬에서 태어난 하이드는 나와 마찬가지로 교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건과 불운으로 끝내 그 섬에서 탈출하진 못했지만, 탈출을 위한 노력 중 직접 마공학 엔진이 들어간 배를 만들겠다며 배운 마도공학은 세대를 건너 나의 손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물론,
“어휴, 이건 어떻게 되먹은 물건인지 알아 보지도 못 하겠네.”
오랫동안 섬에 갇혀있다보니 중증 정신불안에 시달리던 섬-하이드는 보다 심도있는 마도공학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고, 덕분에 작은 기대를 가지고 살펴봤던 파산검은 다시금 내동댕이쳐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지금같은 상황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기술이 생겼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오오, 나 같은 초짜도 공학자도 손댈 수 있는 심플한 구조에 경의를. 고블린 마도공학에 찬사를.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배회하던 뮤트 무리의 시체는 대충 아공간에 쑤셔넣고 흔적도 지웠다.
“배회하는 뮤트라니. 로드가 따로 명령을 내린 걸까? 아니면 포화된 던전이 웨이브가 아닌 다른 형태로 뮤트의 인구를 조절하게 됐나? 이 좋은 땅을 뮤트가 배회한다는 것은 서제국령 인간 세력이 뮤트에게 밀렸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이렇게 기다리다 다음 배회뮤트를 만나면, 놈들의 규칙성이나 순찰 간격, 혹은 이게 순찰인지 방황인지 여부를 가려볼 수도 있겠지?”
아는건 없고, 궁금한 것은 많고.
쉬이 움직일 수 없다보니 일단 얼떨결에 안전을 확보한 환경에서 최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움직이자는 생각이었다.
짤깍, 짤깍,
마침 옛날에 쓰고 아공간에 넣어둔 소일거리도 있고.
“흠…. 제국, 제국이라….”
장치의 용수철을 되감으며 차분히 기억을 떠올렸다. 제국에 대한 가장 최근의 기억이라면, 음…. 비공정. 융단폭격. 대규모 전투?
“양대 제국전쟁? 그럼 100년도 더 전이네?”
보아하니 용맥 대폭발 이후에는 서제국령에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섬-하이드가 마도공학을 배웠으니, 적어도 용맥 대폭발 이후 한세대는 꼼짝없이 그곳에 갇혀있었다는 뜻이 되는군. 아무튼 내가 알고있는 제국에 대한 상식은 모조리 쓸모 없어졌다는 뜻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열 배의 시간과 강산이 한방에 증발하는 이벤트까지 겪었으니 아예 다른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먼발치에서 본 제국 수도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도 괜찮아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지. 이상한 안개 하며, 소름돋는 기운하며, 건물의 형태는 남아있는데 사람의 움직임은 없는 것 하며.”
제국 수도의 지반은 분명히 밀도 높은 암반이었다. 박교수랑 제국 수도에서 날뛸 때, 황성이 분명 커다란 절벽 같은 것을 빙 둘러 고립되어 있었거든. 고대 주술이 걸린 골렘들이 우르르 걸어나와서 손으로 다리를 만들어 줬고. 그때 봤던 끝이 안보이던 절벽이 전부 바위였으니 수도는 암반지형 위에 세워진게 맞다.
지금 확인한 것으로 볼 때 제국은 뮤트 세력에 상당히 밀리고 있는 상황.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볼 때 제국의 수도만큼 그 경쟁의 중심이 될만한 곳이 없었다. 성벽 좋아, 지형 좋아, 인프라 좋아, 내가 확인하지 못한 온갖 고대 주술이며 마법걸린 방어시설 즐비해…. 아무리 봐도 제국에서 제일 붐볐으면 붐볐지, 저렇게 조용할 도시가 아니란 말이다.
“….혹시, 전부 죽었나?”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서제국령의 인류가 뮤트에 완전히 패배했다면 가능한 상황이다. 마지막 보루인 수도가 무너지며 이곳 전체가 뮤트의 땅이 됐다면 가능한 상황이지.
하지만 진짜 그런 상황이라면 내 계획도 여기서 그냥 끝났으므로, 칼 물고 죽는 수밖에 없으니 이쪽 가정은 제외.
“전염병?”
끔찍한 전파속도와 사망률을 동시에 갖춘 전염병이 창궐했다면 도시를 비우고 격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사제나 신관들이 단체로 파업하지 않는 이상 이것도 불가능. 종교의 힘과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일지언정 질병 치유 같은 ‘작은’ 권능은 분명히 발휘되고 있었다. 이쪽도 좀 억측인 것 같고.
짤깍짤깍,
끼릭끼릭-
“음, 설마, 그냥 감이긴 한데….”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묘하게 그럴듯한 가정이 하나 더 떠올랐다.
수도를 봤을 때 느꼈던 불길함. 단순히 을씨년스러운게 아니라 텅 빈 자리를 무언가 매우고 있는듯한 느낌. 무엇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의 수도를 뒤덮은 짙은 보라색 안개.
“….저주?”
3월드 시절 제국 수도를 뒤덮었던 저주화가 딱 저런 색을 하고 있었는데. 수도의 중심으로 갈수록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보라색 꽃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타락한 성녀의 저주에 제국이 홀랑 엎어질 뻔했는데, 루실라랑 가이낙스 황제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주같은 게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뒀을까?
이건 내 전세대 기억에도 분명히 남아있었다. 제국전쟁-하이드가 듣기로는 서제국의 모든 역량이 마도제국과의 전쟁이 집중되어있던 시점에도 저주의 ‘ㅈ’만 꺼내도 복면쓴 기사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황성 지하로 끌고 간다고 했으니까. 제국민들 사이에서도 저주에 대한 신고정신이 아주 팽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속만 하진 않았을테니, 무언가 저주에 대한 국가단위 방비도 해뒀겠지. 성물이나, 신전이나 뭐 그런 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쪽도 좀 이상한 것 같고.
“뭐지? 뭐가 수도를 저렇게 만든거지?”
어느새 사용한 실버티클을 세 개나 고쳤지만 제국 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짤깍.
“아.”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네 개째 실버티클에 손을 뻗을 즈음이었다.
‘발소리 넷.’
‘나름 기척을 죽였지만 숨소리는 못 숨겼군. 초짜야.’
‘적의….는 아니군. 긴장인가?’
딱히 경계할 필요도 느껴지지 않는 무리. 모른 척 기다려주자 조심스레 다가온 이들이 인기척을 내었다.
“흠, 흐흠!”
‘….애잖아?’
다가온 무리는 많이 쳐줘도 십대 중반이 될까 말까한 아이들이었다. 발소리를 죽였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체중이 덜 나간 것 뿐 이었는데. 아까 떠올린 ‘제국령의 인류는 완전히 패배하고 멸종했다-’는 최악의 가정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이 위험한 곳에 저런 애들이 돌아다닐 정도면 완전히 망한 거랑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 이것 놔!”
“카일! 너 그러다….”
“여기까지 와놓고는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은 뮤트를 죽였잖아!”
“그래도, 잘못하면-”
“그럼 너희들끼리 도망가! 저, 저기요! 아저씨!”
당황한 나를 깨운 것은 그중 제일 키가 큰 소년의 목소리였다. 불안한 눈으로 붙잡는 다른 아이들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온 더벅머리 소년.
“아, 아저씨 기사님이죠! 다른 기사들처럼 수도로 향하는!”
….기사?
마치 엄청난 비밀을 속삭이듯 긴장한 얼굴로 말하는 소년.
뒤에 있던 녀석들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보니, 기사라는게 마냥 좋은 의미로 사용되진 않는 것 같았다.
“가면 죽어요! 수도는 지금 부나방을 끌어들이는 횃불이나 마찬가지에요!”
“수도로 가면 죽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자신의 말에 답하자 조금 용기를 얻은 듯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소년.
“아, 알려주면 수도에 안갈거죠?”
“들어봐서.”
“그럼, 내 덕에 목숨을 건진거죠? 내게 목숨 빚을 진거 맞죠?”
“음?”
뭐야 이 날강도 꼬맹이는.
“목숨을 빚졌으니, 그 대가로 우리 좀 도와줘요!”
“카일, 제발!”
“가만 있어봐! 기사는 약속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고! 파라드 아저씨가 말해줬잖아!”
소년은 자신의 엄청난 논리에 감탄했는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기사들‘처럼’ 수도를 향하는 기사라 생각했고.
수도는 기사를 끌어들여 죽이는 마굴이고.
그걸 알려줘서 내가 수도로 안가면, 저 카일이란 녀석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니 그 목숨값을 바로 갚아라? 이게 서제국 스타일 사기인가? 언제부터 제국 기사가 털어먹기 쉬운 호구취급을 받았지?
“….뭐, 좋아.”
“헤익!”
“지, 진짜요?”
“그래. 수도가 왜 가면 죽는 곳인지 설명해주면, 너희들을 좀 도와주지.”
어떻게 들어도 애들이나 생각할법한 억지지만, 이곳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또 이런 아이들만 모여서 살아갈 리는 없으니 애들을 따라가면 다른 어른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제대로된 이야기는 그쪽과 하면 되는 것이고.
“거봐! 내가 된다고 했잖아! 어른들이 못움직이면 우리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했지!”
“오, 오오오….”
“카일, 나 기사님 칼 한 번만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봐 줄 수 있어?”
내 허락에 자신만만해진 소년은 조악한 창을 흔들며 말하자 덩달아 자신감이 생긴 나머지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따라오세요, 기사님! 괴물이 안 나오는 길로 안내해 드릴테니까!”
“음. 그래.”
일단은, 애들 장난에 좀 어울려 주는것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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