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5
Chapter.4 눈꺼풀(17)
***
챠각!
교수에게 수선화가 핀 언덕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락샤샤는 테이블에 꽂혀있던 단검을 뽑아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피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단검이, 저 여려 보이는 여인에게 저렇게까지 잘 어울리다니. 날카로운 날 부분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님. 관계라는 건 말이에요. 서로가, 서로의 감춰진 부분을 하나씩 알아가는 거랍니다?”
팅-!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칼의 옆면을 튕기자, 붙어있던 피딱지가 단번에 떨어져 나가며 섬뜩할 정도로 깔끔한 은빛의 검신이 드러났다.
“그리고 의뢰라는 것도 일종의 관계를 맺는 것이니, 우리 서로 하나씩 상대방에게 대답을 주는 것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교수는 약에 취한 듯 멍청한 얼굴로,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고수다. 저 칼…. 아주 손에 붙어있는 수준이군. 단검술에 굉장히 능숙해 보여. 적어도 딱지치기로 마스터 자리를 얻은 건 아닌 것 같고. 들어올 때의 약. 그리고 저 의상과 행동. 마지막에 가하는 약간의 긴장감. 전부 상대방의 의식을 흐리고 대화에서 주도적인 자세를 취하기 위한 장치다. 그래, 이게 달 그림자식 의뢰 수주란 말이지….’
좋게 보면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고, 그냥 보면 길드라는 이름이 아까운 녀석들이다. 나쁘게 보면? 더러운 새끼들이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놈들. 이런 놈들이 로드릭 제1의 도둑 길드라니. 명성에 비해 수단이 저급하다.
“자아, 그런 첫 번째 질문을 하겠어요?”
사각-
뒤로 돌아온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내 머리칼을 파고들며, 단검이 뒷머리를 조금씩 잘라나갔다.
“이건….”
“수배서를 봤는데, 아주 야수처럼 그려놨더라구요? 머리라도 정리하면 조금 괜찮아 보일까…. 해서?”
서걱!
날카로운 칼날이 뒷목에 스치는 감각이 섬뜩했다. 아주 매혹적인 위협.
“우선, 저는 의뢰를 받는 입장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답니다. 당신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어요?”
교수는 어디까지 말해줄까 고민하다가, 어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름은….교수. 스무살이고······. 가문이 몰락한 이후 뮤트와 전쟁에 휩쓸려 감염이 됐고…. 마법사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해서 여기까지 왔다.”
“어머, 저런.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전쟁, 그리고 감염. 거기에 마법사의 협력자라니. 죽지 않고 살아있는게 대단한걸요?”
사각-
뒷머리를 다듬은 다음은, 옆머리. 그녀의 세심한 손길에 수더분하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칼날이 관자놀이에 스친다. 내 질문을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의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교수씨는~ 어떤 목적으로 이 도시에 찾아와, 여기까지 오신 걸까요?”
의뢰 내용에 대한 질문이다. 정말 이런 식으로 의뢰를 받을 생각인가?
“마법사…. 마법사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그러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해.”
교수는 보았다. 마법사라는 단어에, 칼날에 비친 그녀의 눈이 이채를 띄는 것을. 그녀는 교수를 유심히 살피더니, 머리칼을 정리하며 생긋 웃었다.
“복수, 중요하죠. 음~ 좋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사각-
그녀의 단검은 앞머리를 다듬고, 이제 수염을 깎아내고 있었다. 섬섬옥수 같은 그녀의 손가락이 내 한쪽 볼을 감싸고, 정밀한 기계와 같은 손놀림으로 수염을 깎아내고 있었다. 턱밑을 긁어내듯 밀어 올리는 칼날에, 살기가 담겼다. 목에 닿는 순간까지 느끼지 못했을 만큼의 조용한 살기가.
“마지막 질문은, 우리 교수씨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약에 취한 척 연기를 하신 걸까-에 대한거랍니다?”
“이, 이런!”
서걱-!
그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않았다. 조용하게, 피부를 쓸어내리듯 그녀의 단검이 교수의 목을 그었다.
그녀는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생긋 웃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답니다? 교수씨.”
살짝 피가 튄 그녀의 미소는, 섬뜩하리만치 아름다웠다.
***
락샤샤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쿨럭! 크헉! 크으으, 일말의 망설임도 없으시구만?”
하지만 뒤쪽에서 들려오는 분명히 죽었을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붇들었다.
“쿨럭! 그쪽이 아까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관계라는 건, 서로 알아가는 거라고.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인데 말이야.”
치이이익-
잘려나간 동맥이 거짓말처럼 다시 이어 붙는다. 다리를 묶은 밧줄이 썩은 동앗줄 처럼 끊어져 나가고, 팔목을 묶은 얇은 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실은 힘을 줘도 끊어지지 않고 더 살을 파고들어갔다.
락샤샤는 환한 얼굴로 입가를 가리고 미소 지었다.
“어머. 거짓말쟁이. 그렇게 재미있는 재주가 있는데 알려주지 않으셨네요?”
“아,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원래 남녀 사이라는 게 좀 비밀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하더라고?”
숫제 목이 베인적이 없다는 듯 평온한 어조. 락샤샤는 눈 앞의 남자에 대해 조금씩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쿡쿡쿡…. 점점 더 마음에 드는걸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그 실은 더는 잡아당기지 않는 게 좋아요. 엘더 스파이더의 실은 정말 튼튼하고 날카워서, 제가 애용하는 무기랍니다?”
“오, 엘더 스파이더. 비싼 거 쓰시네. 어쩐지 쑥쑥 파고들더라니.”
“그래요. 그러니까 얌전히….?”
서걱-
쑤욱-
락샤샤는 하던 말을 잇지 못했다. 교수의 한쪽 손이 거짓말처럼 결박에서 쑥- 하고 빠져나간 것이다. 손은 아래로. 팔은 위로.
교수는 입을 떡 벌린 길드원들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린 손목을 주워 절단면에 가져다 댔다. 잘린 부분에서 촉수처럼 근섬유들이 튀어나와 단단하게 손을 이어붙였다.
까딱, 까딱
손목이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교수는 어느새 칼을 뽑아든 다른 길드원들과 락샤샤를 향해 말했다.
“나도 질문 세 가지만 할 테니까 잘 듣도록.”
뚜둑, 뚜둑.
교수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첫째, 나는 의뢰자로서, 달 그림자 길드원들이 경비대부터 기사단까지, 도시의 주력 집단이 움직일 만큼의 소요를 일으킬만한 실력이 있는지를 알고 싶고.”
사삭-!
“등을 보이다니! 멍청한 자-커걱! 커어억!”
콰아악!
기회를 노리고 달려들던 도적은 교수의 손에 목이 붙잡혀 버둥거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두 번째로, 이 의뢰를 거절하면! 안 그래도 이 박정하기 짝이없는 대접으로 심사가 매~우 뒤틀려있는 내가 심각하게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가 궁금하고.”
휘익-
빠각!
교수는 손에 들고있던 남자를 던져, 나가는 쪽의 문을 부숴버렸다. 양쪽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남자는 잠시 신음하다 축 늘어졌다. 한 걸음. 이제 팔을 뻗으면 칼날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교수의 발걸음이, 락샤샤 앞에 멈췄다.
“마지막으로, 내가 심각하게 화를 낼 경우, 너희들의 이 너절한 길드가 단순히 피해를 입는 것을 넘어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자아, 어디 대답해주겠어? 마스터 누님?”
까드득.
훤히 드러낸 상체. 그녀라면 찰나의 순간에 급소를 여섯 번은 찌르고 나올 수 있는 거리.
어디 한번 마음껏 해보라는 듯 팔을 벌린 교수의 도발적인 자세에 락샤샤의 단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교수씨? 그런 짓을 하고도…. 제 앞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흐흐흐. 잘 생각하라고 누님. 머리 잘라준 게 마음에 들어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거니까. 어지간히 칼 좀 쓰는 것 같은데…. 누님은 몰라도 과연 옆에 있는 떨거지들은 몇 명이나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마스터 혼자 있는 길드도 길드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몰라?”
교수는 허리를 숙여, 서릿발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라나야와 눈을 마주쳤다.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도둑 길드원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가녀린 여성을 겁박하는 악당 그 자체였다.
***
정적.
영원과도 같은 찰나가 흐르고, 그 긴장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순간-
짜악!
“좋아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할까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울리는 박수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튀어나갈뻔 했다.
저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발을 헛디디는 녀석이 몇 명 보였다.
‘휴우! 공갈이었는데 먹혔구나!’
사실 진짜 정면으로 붙었으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띠링-!
[명예로운 영혼 : ‘레이디를 겁박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 비록 몰락했지만 기사 가문의 명예를 짊어진 자로서, 나는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스스로의 사악한 면을 알아버린 충격으로 30초간 ‘경직(대)’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 연달아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될 경우, 5 분간 ‘자살 충동 Lv 25’ 에 시달리게 됩니다.]아까부터 상태창에 빨간불이 겁나 깜빡거리더니, 끝내 길드원의 목숨을 입에 담는 순간 이런 메시지가 뜨면서 몸이 굳었다. 센 척 했지만, 눈만 깜박이고 혓바닥만 나불거리는 상태였다고. 자살 충동 25레벨은 뭔데. 이 게임 스킬레벨 10이 최고 아니었어?
아무튼 그런 관계로, 이 녀석들과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단 말이다. 보나 마나 ‘레이디를 때리다니! 불찰이다! 목숨으로 사죄!’ 이런 메시지나 떴겠지.
“음~그럼 의뢰자님?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할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한번 당한 게 있는지라, 누님이 권하는 자리는 좀 무섭습니다만?”
“쿡쿡쿡,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성이 남성을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는데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요? 상처받는답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더니, 한쪽 벽면이 열리며 나타난 통로로 사라졌다.
화아악!
정신쇠약이 경종을 울렸다. 주변의 칼 든 녀석들은 무시한 채, 오직 저 검은 통로만을 보여주면서.
‘위험하다.’
아까 진심으로 공격할 생각으로 마주하니 알 수 있었다. 다른 특성의 제약이 아니라도, 이 상태로 그냥 붙으면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락샤샤는 나를 완전히 경계하고 있다. 그 상태에서 나를 따로 불러들였지. 모르는 장소, 그것도 저런 수준의 암살자의 심처로 따라간다니…. 너무 위험한 도박이 아닐까?’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 위치한 대화창이 마구 요동치는 게 눈에 띄었다.
– 간장게이바 : 뭘 망설이고 있는 게냐! 당장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 노루Drug해요 : 가! 교수! 어서!
– takealook : 지금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뒤로 물러서 봐. 그 시간부로 커뮤니티에는 네 건포도 만한 불알과 의심스러운 성 정체성에 대한 글이 끝없이 도배될 테니까. 나는 진지하다.
– 홀리 : 저요! 저도 보고 싶어요! 다른 여성의 방이라니! 너무 궁금해요!
– 뉴트리아지나 : 빨리 들어가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알았어! 알았다고! 들어가면 될 거 아냐!”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모 아니면 도다. 어차피 여기 말고 다른 길드가 있는 곳은 모른다고.
생각을 마친 교수는, 그를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린 어두침침한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교수는 어두운 통로의 벽을 더듬으며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뭔 놈의 통로가 이렇게 길어!”
“그야, 비밀 통로니까?”
“우와악!”
갑자기 귓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교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벽에 난 주먹 자국과 함께, 교수의 손이 형편없이 부러졌다. 등 뒤에서 락샤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신기해라.”
“언제부터 따라온 겁니까?”
“음…. 통로 안쪽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쭉 옆에서 걷고 있는 걸요?”
역시 암살자라 이건가.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자, 이쪽으로. 통로 안에도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밤눈이 밝지 않으면 찾기 힘들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락샤샤가 내 팔에 손을 얹는 것이 느껴졌다. 새틴처럼 부드러운 감각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팔을 더듬어 내려가, 막 재생 중인 손가락에 닿았다.
“이건 정말…. 보기 드문 재능이네요? 저도 인간의 신체구조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모로 공부하고 있는데…. 교수 씨처럼 이상한 몸은 처음이에요. 잘 단련되고, 부드럽고, 빨리 낫는 몸이라니. 어떻게 이런 몸이 있을 수 있담?”
그녀는 정말로 궁금했는지, 견갑골 부근을 꾹 눌러보기도 하고, 손목 관절 부분을 한번 잡아봤다가 광배근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꺼,껍데기, 나, 나는 더 못 버틴다. 이건…. 이건 네 지식에 없던 자극이야…. 버틸 수가 없어….]‘어떻게 좀 해봐! 너 내 머릿속에 있잖아! 호르몬이라던가 감각이라던가 조작해보라고!’
이곳에 들어온 것은 실수였다. 락샤샤는 좀전의 반응을 토대로 공격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내가 잘하는 부분에서 내가 완전히 약한 부분으로!
사락, 사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얇은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상상력을 자극했다.
“마법사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육체…. 마력 반응이 몸에 골고루 있는 걸 보니 마법도 익히셨네요?”
“아, 그, 예, 뭐.”
“와아, 진귀해라.”
– 간장게이바 : 교수야! 정신 차려라! 남녀 간의 대화는 창칼 없는 전쟁이나 다를 바 없다! 휘둘리면 끝이야!
– 간장게이바 : 그런 어정쩡하고 어리숙한 모습만 보이면 홀랑 잡아먹힌(?)다고!
– professor : 어떻게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듣는걸 어떡해! 그리고 창칼이 없기는 뭐가 없어! 저쪽은 크고 흉악한 무기를 두 개나 달고 있다고! 나는 맨손이고! 불공평하다!
– 노루Drug해요 : 없기는! 너에게도 부모님이 주신 강력한 자주포가-!
– professor : 닥쳐어어어!!! 상상력 자극하지마아아아!!!!
– 화약과 피 : 가망이 없다. 전투 경험부터 전투력까지 뭐하나 상대와 비교하면 우위에 선 부분이 없어. 얌전히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자의 전리품이 되어라.
“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실까?”
“도,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것에 대하여 잠깐 고찰을….”
“?”
염병!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제발 그만 좀 달라붙어! 아니 더 붙어줘! 아니 그게 아니라 – 이런 제기랄!
달칵-
그렇게 교수의 내적 자아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중, 갑자기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어머. 벌써 도착했네요? 아쉬워라.”
‘사, 살았다! 이겨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 보십쇼! 소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위험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체됐다면 다 포기하고 ‘엉엉! 누님, 날 가져요!’ 하면서 무릎 꿇을 뻔 했다고.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토브룬 외곽의 썩은 내가 아니라 들이쉬기만 해도 폐가 정화되는 것 같은 상쾌한 공기. 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부드러운 다향(茶香).
“여긴…. 찻집?”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살롱이에요.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고급 살롱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