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50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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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찾아와줬건만 해줄 것이 없어 미안하구나. 내가 드래곤이라 한들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쩔 수 없지.”
“—, —-….?”
“무얼. 다른 드래곤들이 그랬듯 나 또한 사막과 밤하늘이 맞닿는 곳 너머로 가야할 때가 온 것 뿐이다. 관리자로서 내 권한은 알다르와 세니카가 잘 이어받았으니, 그 아이들과 얘기하는게 좋겠구나. 어리지만 어리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야.”
“시스템은 올 것이다. 지금은 그 실체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바깥에 있지만, 놈이 교수를 손에 넣고자 한다면 분명히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야.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안의 관리자인 우리 드래곤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니.”
“—. –, —-….”
“나약한 소리를 하기엔 네 태생이 비범하지. 잊지 말거라. 너는 어떤 면에서는 그 성자보다도 더욱 특별한, 이 세계에 유일한 존재이니.”
“….이제 가거라. 졸립구나.”
“알다르에게 네게 줄 선물을 맡겨뒀으니 찾아서 요긴하게 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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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넓군. 표면이 매끈한게 물리적으로 파낸게 아니야.’
‘냄새가 끔찍하군. 살 이 곯아들어가는 냄새에 뭔지 모를 역겨운게 섞여있군.’
‘인기척은 많은데 딱히 움직임은 없는걸?’
마법사를 업고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내부는 여러모로 쾌적하진 않은 곳이었다. 일단 아이들 말처럼 도움이 필요한 곳은 확실해 보인다고 해야하나.
“사제님! 사제니이이임!!!”
카일을 비롯한 아이들이 뛰어들어가자 동굴 안쪽에서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들! 기어이 밖에 나갔다 왔구나! 내 누누이 말했지만-”
“뒤에! 고라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마법사님이? 그 사람, 그렇게나 고집을 부리더니 기어이….!”
놀란 목소리와 함께 뛰어나온 것은 반백의 여성. 풀물과 피고름이 가득한 앞치마와 장갑을 낀 여성은 나와 내 어깨위의 마법사를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누, 누구십니까! 설마, 당신이 마법사님을….!”
“오해는 나중에 풀고 일단 사람부터 살리죠. 고위계 마법을 연이어 쓰려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습니다. 증상에 대해 아시는게 있으십니까?”
“이곳은 대체 어떻게-”
“애들이 들여보내줬습니다.”
내가 가감없이 얘기하자 여성은 성난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곤, 한숨을 쉬었다.
“….라투라, 엘 사미아.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오셨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겠지요. 이리로. 우선 눕혀야겠습니다.”
‘자비의 성도님이셨군.’
사제를 따라 들어가자 안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동시에, 이 동굴에 가득한 악취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여기, 이곳에 눕혀주세요.”
“사제님. 이 사람들은….?”
“도나푸르 시에서 탈출한 사람들이에요. 의기 있는 기사님 몇 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가까스로 탈출했죠.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발병 조짐을 숨기고 섞여든 사람 하나를 놓치고 말았어요.”
“발병?”
“수도에서 퍼진 저주병 말이에요. 정확히는 병이 아닌 확산형 저주의 일종이지만. 혹시 어디서 오신 분이죠?”
“아, 저는 옛 텔드랏 지역에서 왔습니다.”
“텔드랏이면…. 바다건너 마도제국 말입니까!”
와락!
그늘이 한가득이던 여사제의 얼굴에 별안간 화색이 돌았다.
“혹시 구조대에 속하신 분이십니까! 탈출한 이들이 그곳에 닿았단 말입니까! 기적처럼 바다를 건넌 것도 모자라 우리의 구조요청에 응답한 선한 위정자를 만난겁니까!”
“아니, 저기….”
“지금 어디쯤에 계십니까! 텔드랏에 당도한 이들과 함께 오셨습니까! 혹여 파비앙 신부님과 함께 오신 것은-”
“쿨럭, 카악!”
속사포처럼 이어지던 사제의 질문은 마법사의 각혈에 끊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차차 얘기해 드릴테니 우선 치료부터 하시죠. 별로 말할 것도 없지만.”
“알겠….습니다. 제가 흥분하고 말았군요.”
여사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애로운 엘 사미아의 손길을 빌어 사이한 고통을 몰아낼지니….”
자비 교단의 기도문과 함께 작은 성광이 어렸다. 환자들의 숨소리가 편해지고, 주변의 역한 공기가 가실 때까지 사제의 기도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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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괜찮을거에요. 고라 마법사님은 병증 자체는 그리 깊지 않으셨으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제 짧은 견식으로 여쭤보자면, 사용하신 기도가 병의 치유가 아닌 사악한 것에 대한 정화 기도 같던데…. 맞습니까?”
“기사님이라고 들었는데. 종교에도 조예가 있으신가요?”
“예. 신전 고아원 출신이라.”
지친 듯 땀을 닦던 사제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성함이?”
“하이드입니다.”
“하이드…. 부끄럽게도 제 견식이 좁아 모르는 성자님이시군요.”
“아, 제 이름에는 사정이 좀 있어서. 광명교 소속 고아원이었습니다.”
“광명의 성도님이셨군요. 저는 엘 사미아의 작은 손가락, 하일라입니다.”
잠시 하일라 사제가 기력을 회복하는 동안 미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가 오갔다.
“난파를…. 하셨다구요.”
“예.”
“그럼, 구조대가 온 것은 아니군요.”
아쉽지만, 그럴줄 알았다는 듯 체념이 어린 목소리.
“실례가 안 된다면 이곳 서제국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국에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딱히 어려운 얘기도 아니니, 그럼요.”
하일라 사제는 마법사의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마도제국 지역 출신이라면 오면서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하셨나요?”
“뮤트가 배회하고 있는 것?”
“역시 만나셨군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은 못느끼셨나요?”
“음….”
이상한 것. 이상한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텔드랏 지역 출신인 것과 연관지어 떠올릴만한 것이라면….
“….선로가 없다는 것?”
“눈이 밝으시네요.”
하일라 사제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긴 이야기가 좋으신가요? 짧은 이야기가 좋으신가요?”
“음. 짧은 쪽이요?”
“뮤트가 강성해졌고, 황가는 금기를 건드렸으며, 악과 독이 얽혀 제국 땅은 멸망해가는 중입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군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사제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국전쟁이 끝나고 용맥 뒤틀기의 영향이 세상을 뒤덮은 다음의 이야기에요.”
희어진 머리카락 만큼이나 세월의 무게를 담은 사제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제국은, 그 어떤 대륙보다 용맥 뒤틀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느새 모여든 아이들처럼, 나도 사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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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제국이 용맥 뒤틀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그것은 마도제국에서 서제국을 향해 용맥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기 위한 장치였으며, 중간에 폭주했다곤 하나 기틀이 된 그 방향성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블루라인 서부 전체를 아우르던 제국의 영토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지요. 땅이 갈라지고, 찢어져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올 정도였어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도 그때 갈라진 땅의 흔적인데, 자칫 조금만 더 각도가 틀어졌으면 수도가 그 영향에 휘말렸을 정도로 수도에 가까웠답니다.”
“아, 거기.”
어쩐지. 3월드 시절 제국 수도 주변에는 바다가 없었는데, 난파선이 도착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도가 있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다. 이렇게 된거였구나.
“균열. 대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폭발해 찢어발겨진 균열은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던 종족의 씨앗을 세상에 흩뿌렸지요. 아직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뮤트의 재 발호를 연구한 수많은 마학자들은 멸종 한 줄 알았던 그들의 씨앗이 지하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새로운 여왕을 잉태할 양분을 모으던 중, 그만 대폭발에 휘말려 세상에 흩어지고 만 것이지요.”
“문제는 저희 제국이 용맥 대폭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만큼 지하 깊숙한 곳에서 흩어져나온 ‘여왕의 파편’또한 가장 많이 흩뿌려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가장 많이라면, 얼마나?”
“….초기에 흩뿌려진 것은 500조각 이상. 제국과 제국내 모든 교단이 총력을 동원하여 그것들이 자라나기 전에 회수했지만, 고작 200여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300개. 개당 하나의 뮤트로드로 자라났다면, 뮤트로드가 300개체.
텔드랏 지역에선 가장 위험한 수준의 전초기지가 크고 작은 던전 세 개를 마주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것만 해도 마력포의 포신이 녹아 성벽위에 층을 이룰 정도로 전투가 끊이지 않는데.
가장 많아도 도시와 도시 사이에 4개체 정도 자리잡는 뮤트로드가 한 대륙에 300개체?
이건 이미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한순간에 제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라기 시작한 여왕의 파편을 어떻게 제 시간에 회수하고, 또 봉인한단 말인가?
용맥 대폭발 이후 10년. 제국은 기나긴 양대 제국전쟁에 이어 다시 한번 찾아온 뮤테이션 블러드와 생존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저도 참전했었답니다.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제국에, 그 정도 물량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지요. 모든 전선에 패색이 짙었고, 모든 도시에서 지원요청이 날아들었어요. 통신을 담당하던 사제 모두가 제국의 죽음을 예상했어요.”
뮤트 종족전쟁. 양대 제국전쟁. 그리고, 용맥 대폭발과 연이어 이어진 두 번째 뮤트 종족전쟁. 외부의 개입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악의로 점철된 역사다.
다른 대륙이 도시국가 단위로 분열한 것을 생각하면 제국이 국가의 기틀을 유지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으니. 서제국의 힘에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그들을 기어코 죽여버리겠다 마음먹은 듯한 누군가의 집요함에 감탄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일 이유는 못 된다.’
다른 대륙도 거의 멸망 직전에 겨우 살아남은 것은 마찬가지다. 아직 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제국의 역량이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 비해 월등했다는 것. 즉, 이쪽도 간당간당하게 싸워서 살아남을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면 서제국 지역도 다른 지역처럼 국가의 기틀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도시는 도시국가로 변모하며, 그렇게 요새도시와 뮤트가 자리싸움을 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갔을 거라고.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블루라인 서쪽 전체를 하나의 국가로 아우른 대제국 발틴이었다는 것. 천년에 가까운 역사동안 단 한번도 쓰러지지 않은 제국이었다는 것이다.
그 제국이, 자신의 대에 무너질 운명을 앞뒀다면. 제국의 주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황제가 뭔가 했군요. 이 땅에서 발틴 제국이란 이름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한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집이었습니다. 망령든 황제의 아집. 제국이 사라질 바에는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게 더 낫다는, 그런 악독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하일라 사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제국과 저주가 연이 깊은 것은 아실테지요. 위대한 광명의 성자와 얽힌 이야기이니.”
“알고는 있습니다만….”
잠깐만. 그때 얘기가 왜 나오지? 설마?
“….지금 제국 수도에 자욱한 기운이 설마 그때 그 저주란 말입니까?”
“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메아 마리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게, 알드리치님이 그녀의 남은 잔재와 함께 망자를 인도하는 의무까지 함께 받아들였잖아?
“예. 타락한 성녀는 정화되었습니다.”
성녀는. 그렇다면 그녀가 남긴 저주는 남았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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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빼돌렸군요. 저주화가 수도 전체를 뒤덮었으니.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한 성기사들이 남은 잔재를 전부 정화하기 전에 한둘쯤 빼돌리는건 일도 아니었겠군요.”
가이낙스의 검격이 수도를 뒤덮은 기운을 몰아낸 직후에 도착한 이들이 있었다. 제 몸을 사리면서 수도 주변에서 눈치만 보다가, 저주를 한방에 베어가르는 어마어마한 힘을 보고 ‘이겼구나!’ 싶어서 달려온 승냥이 같은 이들이 절대로 있었겠지.
코를 싸매고 지옥처럼 변한 수도의 거리를 둘러보던 중 기운을 잃고 시들어가는 저주화를 봤겠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제국의 수도가 난장판이 된 모습도. 탐이 났겠지. 힘은 어느 정도를 넘으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와 같은 것이니까. 가져가서 조금만 손보면, 이 혼란한 시국에 자신의 가문을 우뚝 세울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거라, 그렇게 생각했겠지!
루실라의 기사-하이드 시절 유독 저주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제국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당연하지만, 눈치나보는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품에 안고 있기엔 저주화가 제국에 남긴 상처가 너무 컸다.
황제의 명으로 저주화를 숨긴 가문은 초토화되고, 시들시들한 보랏빛 꽃은 황가에 회수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하나만 빼돌려졌다는 보장은 없다.
서제국 황가에는 저주에 대한 경계심이 뿌리깊게 박혔다.
그리고 지금. 제국에는 다시 저주가 퍼지고 있으며, 하일라 사제는 황제의 어리석음을 성토한다.
추측으로 이루어진 단서가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황가는 회수한 저주화를 연구했군요. 비밀리에, 다른 어떤 교단에도 알리지 않고.”
“….맞습니다.”
다시는 저주에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마법을 막으려면 마법을 알아야 하듯, 제국의 숨통을 끊을뻔한 저주받은 꽃을 연구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힘’이다. 결과를 예측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당면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힘.
“가이낙스 황제 이후에도 황위 쟁탈전이 있었겠죠. 황금기라 불린 시절에도.”
“패색이 드리운 황족은, 당연히 황가의 직계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금지된 힘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흉성 이후로 저주화가 몇 번이나 더 세상에 등장했습니까?”
슬슬 내 목소리에도 두려움이 섞이기 시작했다.
“두 번.”
“최소 두 번이겠군요. 교단에 알려진 것만 두 번이니.”
제국 황가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도움을 요청한 것 만 두 번이라는 뜻이다. 다행히 저주를 이용한 미치광이가 승기를 잡는 일은 없었지만, 정신나간 황족들이 황성 밖으로 빼돌린 저주가 개량된 만큼 황가의 ‘방어적인’ 저주 연구도 깊이를 더해갔을 것이다.
그렇게 연구하고. 조금이라도 저주를 다루는 흑마법사가 있으면 납치하고. 또 연구하고. 다른 누구도 저주의 힘으로 제국을 넘볼 수 없도록, 그 누구보다 저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있도록.
제국의 지하에 잠든 저주는 그렇게 끝없이 깊이를 더해갔을 것이다.
그리고. 물밀 듯 밀려오는 뮤트를 마주한 황제도 떠올렸겠지. 제국 지하에 잠들어있는 금기라 이름 붙은 힘을.
“언제입니까.”
“….3년 조금 더 됐을 거에요.”
3년. 어쩌면 시스템이 ‘월드’라는 개체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일지도 몰랐다.
“수도는 어떻게 됐습니까.”
긴 옛이야기를 돌아 지금으로. 그래서, 수도는 어떻게 됐는가.
“한 순간에 저주에 잡아먹혔다고 들었습니다.”
“그 큰 수도 전체가 말입니까?”
“네. 전란을 피해 몰려갔던 피난민들도, 수도만큼은 지키겠다는 각오로 수도에 들어선 군대도 모두 저주의 권역에 잡아먹혔다고 들었습니다.”
“빠져나온 이들은….?”
“….수도는 여전히 뮤트 대군에 포위되어있는 상황이니까요.”
모조리 저 짙은 보라색 안개속을 헤매고 있다는 뜻.
“인근 영지로 퍼진 저주의 영향을 생각하면, 그리 빠르게 스며드는 저주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탈출한 영지에서도 기사님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전부 쓰러지셨지만 아직 돌아가신 분은 하나도 없으니.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강인한 기사와 마법사들이니 아직까지 버티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3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까.”
“….예. 3년이 지났음에도. 자비의 형제님들도 그곳에 계시니.”
하일라 사제는 강한 확신이 깃든 눈으로 말했다.
내 생각은? 글쎄.
흉성의 그늘에 가려졌던 수도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3일도 어려울 것 같은데.’
황성 앞에서 충혈된 눈으로 서로의 목을 베던 근위기사들의 모습.
메아 마리아의 저주화는 단 하루만에 그것을 가능케 했다.
힘의 근원은 사라졌지만, 200년간 연구를 거듭한 황가의 저주화.
부디,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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