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51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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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님! 정말로 돌아오셨군요!”
“흐흐흐. 저도 세니카도 많이 컸죠? 아직 성체는 아니지만 이정도면 헤츨링 딱지는 땠다고 봐야죠.”
“—! –, —….”
“….예. 아틀라헤바님이 다른 드래곤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신 것은 느꼈습니다. 하이드님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시스템이 어떻게 미쳐가고 있는지도 전해들었구요.”
“마도제국, 텔드랏의 광기는 확실히 외부의 개입이 의심되는 수준입니다. 마도제국은 미쳤어요. 텔드랏 농민 대부분이 군수품 공장과 마정석 광산에 끌려가 죽도록 노동하고 있습니다. 저 황금의 곡창지대를 가진 나라에서 국민의 1할 가까이가 아사(餓死)한다는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건 명백히 이상하잖아요.”
“—-. —-.”
“시스템. 그녀일 수밖에 없죠.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겁니다. 단단한 흙보다 무른 흙이 더 주무르기 쉬운 것처럼, 시스템은 세상을 제 마음대로 재구조화 하기위해 끊임없이 이런 대형 사건들을 일으킬 거에요. 그건, 높은 확률로 하이드님의 계획에도 걸치고 말겠죠.”
“부족하지만 한마디 조언하자면, 이 세계는 결국 GG라는 게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시스템도 ‘게드로이츠의 게임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존재에요. 그녀와 우리 관리자가 사용하는 툴(Tool)도 게임 운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이 극도로 현실적인 세계에 동화되었다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면, 결국 시스템이 앞으로 벌일 온갖 재난과 방해공작도 모두 그러한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교수님이 입버릇처럼 얘기하셨죠. ‘답은 있다’. 그거에요. 펜으로 선을 하나 그으면 시작과 끝이 생기는 것처럼, 게임이란 틀 안에서 생성된 ‘이벤트’는 어떤 식으로든 해법과 함께 탄생한다는 뜻입니다.”
“플레이어인 교수님의 지식을 모두 공유한 당신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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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틀라헤바님이 맡겨두신 물건이 있었네요. 예? 더러워 보인다구요? 이게 이래봬도 드래곤이 만든 아공간 망토인데, 연식이 오래돼서 그렇지 성능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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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열심히 문지르고, 하얀 잿가루를 솔솔 뿌려서-”
“….”
“이이익, 하이드님! 하이드님!!”
“음? 아, 응. 뭐라 그랬지?”
“빨래하는거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고라 할아버지가 노는 사람은 밥 먹을 자격도 없다던데.”
“아. 그랬지.”
하일라 사제의 긴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아이들과 함께 환자들의 더러운 옷을 빨고 있었다.
“그 나이 먹도록 빨래 하나 할줄 모르고 뭐 하신 거에요?”
“정말 기사는 검술만 수련하면 돼요?”
철퍽거리며 빨래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나는 수도 생각을 잠시 접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빨래. 평생 떠돌아다닌 내가 빨래 하나 못하겠나. 이 시대의 빨래하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냄새나는 옷을 잿가루에 한번, 고운 모래에 한번 마구 비빈 다음, 기름과 이물질이 섞인 모래와 재가 떨어질 때까지 마구 털어내면 끝이다.
철퍽 철퍽, 촤아악!
절대로, 이 사치스런 꼬맹이들처럼 물을 마구 쏟아가며 옷을 빨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이 얼마나 귀한데.
“넓고. 안전하고. 심지어 안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우물까지 있다니.”
애들이 이렇게 물을 팍팍 쓰는 이유는 이곳 동굴결계 내부에 커다란 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님이 말해줬어요! 오래전 제국에 마도공학자 사냥이 불길처럼 번질 때 여러 의로운 마학자들이 그들을 숨겨주기 위해 만들어둔 장소라고!”
“물 말고도 안에 식용 이끼도 자라고, 조금이지만 햇볕이 들어오는 자리도 있어요!”
“식용 이끼?”
내가 궁금하다는 듯 반문하자 빨래를 널던 아이들이 내 손을 이끌고 동굴의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여기요! 빨래 다 했으면, 그 다음엔 여기에 물을 줘야해요!”
“너무 많이도 안되고, 막 쏟아 부어도 안돼요! 이렇게 입에 가득 머금고-”
푸우우우!
“이렇게! 안개처럼 촉촉하게 뿌려줘야 잘 자란다고 고라 마법사님이 얘기했어요!”
아이들은 분무기처럼 입으로 물을 뿜어내더니, 제 몸통 만한 녹색 덩어리가 촉촉해진 모습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이끼?”
둥글둥글한 이끼 뭉치 한 덩이가 성인 남성 한아름 정도 크기였다. 높이는 내 정강이 좀 아래까지 올 정도. 전체적으로 슬라임과 비슷한 모습에, 손가락으로 누르면 제법 탄력이 느껴질 정도로 밀도도 높았다. 그게, 어둡고 습한 동굴 벽면을 따라 한 가득 자라있었다.
‘식용 이끼라면 이걸 먹으려고 키운다는 말인데.’
“혹시 버섯은 안 키우니? 기둥 버섯이라거나, 드워프목 버섯이라거나, 갓은 식용으로쓰고 기둥은 목재 대용으로 쓰는, 어느 도시에서나 대량으로 키우는 거. 몰라?”
“버섯? 그게 뭐에요?”
내가 텔드랏 지역의 주식인 버섯에 대해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보아하니 그쪽 지역과 환경이 다르다 보니 거대버섯 대신 이런 커다란 이끼를 키워 주식으로 삼은 모양.
물어보니 이끼 덩어리의 녹색 겉부분은 보통 생으로 먹고, 둥근 부분 안쪽의 가느다란 뿌리가 뭉친 덩이는 굽고 삶는 등 조리해서 먹으며, 뿌리쪽은 잘게 두들겨 뽑아낸 섬유로 옷감이나 종이도 만든다고 한다. 상당한 고부가가치 식물이지만 여러모로 손이 가서 잘 가꿔줘야 한다는게 아이들의 설명이었는데.
“그러니까, 내게 목숨 빚이랍시고 도와달라 한 일이 빨래랑, 이끼 삶는 거랑, 이끼 뿌리로 면포 만드는 일이라 이거지?”
“맞아요!”
“음, 그것도 있지만. 사실 기사님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어요.”
휙, 휘익-
카일은 누가 들을세라 주변을 둘러보더니,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내 귓가에 두 손을 대고 말했다.
뭐, 비밀이라고 해봤자 지금껏 시킨 일들을 보면 별것 아니겠지. 가득찬 화장실을 비워달라거나, 검술을 가르쳐달라거나. 뭐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이 아니겠나.
“사실, 저희 대신 밖에서 ‘성물’을 좀 구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어요.”
아니네.
“성물?”
“쉬잇! 쉬이이잇! 하일라 사제님이 들으면 귀에서 땀이 나도록 혼난다구요!”
어디 교단의 주교님이나 할법한 부탁을 들먹이는 소년의 모습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들은 게 아니란다. 진짜 성물좀 찾아달란다.
“그러니까, 원래 너희들이 밖에 나온 목적은 그 ‘성물’이라는 것을 찾아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고.”
“예. 지쳐서 잠든 하일라 사제님이 잠꼬대처럼 말했거든요. 성물만 있으면~ 오염되지 않은 성물이 하나만 더 있으면~ 이라고.”
음. 일단 착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 것은 알겠는데.
“카일. 혹시 성물이 뭔지 아니?”
“아뇨?”
“어디 있는지는 알고?”
“어…. 아뇨?”
“야이-”
“하, 하지만 사제님이 이야기해주셨어요! 100개가 넘는 성물이 우리 제국 땅에 뿌려졌다고! 100개면, 어, 하나 둘 셋 넷, 음, 하나 둘…. 아, 아무튼 엄청 많은거니까! 며칠 돌아 다니면 분명히 찾을 수 있겠죠! 안 그래요?”
“어휴.”
안 그래요는 무슨.
어린아이의 순수한 상상일 뿐이었다. 아직 셈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100이라는 숫자는 무한에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성물이 얼마나 귀한지, 뭐하는 물건인지도 모르지만 매일같이 지쳐 쓰러지는 사제님이 필요하다니 찾아볼 요량으로 몰래 동굴결계를 빠져나왔겠지. 그러다 나를 만나 말도 안되는 억지를 써가며 데려온 것이고.
‘하일라 사제가 성물을 원한다. 부족한 신성력을 보충해서 단번에 저주병을 씻어낼 생각인 것 같은데.’
대충 봐도 하일라 사제의 신성력은 바닥까지 쥐어짜진 상태였다. 신성력을 모으려고 해도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 때문에 소모해야 하고, 환자들이 있는 방에서 저주병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해야하니 신성격리 구역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또 써야하고, 그 와중에 얼마 없는 인력이 픽픽 쓰러져나가니 사제의 업무 외에도 할 일이 늘어만 가고.
하일라 사제는 그냥 아쉬운 마음에 푸념 한번 해봤겠지. 성물이 어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물건은 아니니까.
그만큼 사제의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끝장나겠군.’
대충 일주일. 짧으면 사흘안에 하일라 사제도 쓰러질 것 같은데.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과 이 아이들도 전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겠지?
남겨두고 떠나기엔 영 뒤가 찜찜한데.
‘그렇다고 내가 남아서 돌볼 수도 없고.’
“….아.”
뜻하지 않은 걸림돌에 고민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요 녹색 덩어리 하면 떠오르는 놈.
“엘프 약사 정도면 내가 수도에 갔다올 동안은 이 사람들을 돌볼 수 있지 않으려나?”
사실 얘들도 마음에 걸렸던게, 생각보다 서대륙 상황이 개판이라 애들이 새로 자리잡고 뭐 할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옆에 있으면 괜한 불똥이 튈까 해서 떠났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쟁터에 끌어들인 다음 버리고 튄 것 같은 모양새가 된 상황.
“여기 데려다 놓고 가면 되겠네.”
웨일호 애들은 안전한 곳에 머물러서 좋고, 하일라 사제님은 조금이나마 쉴 쉬간을 제공할 일손을 들여서 좋고.
나는 뒤에 뭐 놓고온 것마냥 찜찜하지 않아서 좋고.
“가서 얘기해봐야겠다.”
고라 마법사가 곧 깬다고 했으니 일어나면 부탁해야지.
이정도면, 여길 떠날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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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걱 수걱 수걱 수걱
“사과할 생각은 없네. 자네가 수도로 가겠다는 결정을 되돌리지 않았다면, 이곳의 위치를 알고있는 자네가 저주받은 기사로 변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니.”
“음, 꿀꺽. 예, 뭐.”
수걱수걱, 아삭 아삭!
“….대신, 나를 죽이지 않은 것, 하일라 사제님을 도운 것, 아이들을 무사히 이곳으로 데려온 것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를 표하도록 하지. 고라 하우드. 그리 자유롭지 못한 바람의 조각일세.”
“예, 저는, 우음- 하이듭니다.”
“아이들 말로는 하이드 경- 이라고 하던데. 실례가 안된다면 그대를 서임해준 이가 누군지-”
와삭와삭와삭와삭!
“거 그만 좀 처먹을 수 없겠나!!!”
마법사 고라 하우드는 다짜고자 마법부터 날려대던 행동 만큼이나 입과 성격도 거친 늙은이였다.
“음음, 거 식사 자리에서 밥먹는 것도 죕니까?”
“사람이 진지하게 인사하는데 입에 음식을 쑤셔넣는 건 뭔가 잘못 되었지!”
“글쎄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살인 마법을 날리는 것보단 괜찮은 것 같은데.”
“애, 애들이 보고 배우지 않나!”
에이. 당신이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식사 예절 정도는 봐 줘야지.
고라 마법사는 조금 전에 깨어났다. 정신이 든 그는 하일라 사제에게 자초지종에 대해서 물었고, 이렇게 아침 식사 자리에서 대뜸 사과의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사제님이 나에 대해 꽤나 좋게 설명해준 모양.
아침 식사로 제공된 것은 어제 봤던 그 식용 이끼였다. 처음엔 저걸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막상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는 이끼 덩이를 한 입 베어 물자 꺼림직했던 기분이 눈 녹듯 날아갔다.
‘식감 죽인다!’
그러고 보니 패스파인더-하이드의 삶에서 제대로 된 신선한 풀을 언제 먹어봤는지 모르겠다. 거의 평생을 말캉하고 뽀득거리는 버섯 갓만 먹었으니, 식물 비슷한 이끼의 식감이 심금을 울릴 수밖에. 씹다보면 단맛도 도는게 아주 입에 착착 감겼다.
“사제님. 이거 좀 싸가도 됩니까? 처음 먹어보는데 입에 맞네요.”
“얼마든지요. 식용 이끼는 계속 자라고, 또 피난올 때 들고 온 건량도 아직 한참 남아있으니까요.”
잘됐군. 얼마든지라고 했으니 한 일주일치는 아공간에 담아가야지.
“고라 마법사님.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게 아쉬운 목소리로 말 안 해도 찾아갈 생각이네. 인력도 인력이지만 약초학에 해박한 엘프라면 두 손들고 모셔와야 할 인재지. 저주병의 효과는 사람을 쇠약하게 하는 것 뿐이지만, 그 쇠약해진 몸은 온갖 병마에 취약해지고 마니까. 모래톱이 있는 해안이라면 어딘지 알 것 같으니 염려하지 마시게.”
“감사합니다.”
이쪽도 됐고. 자잘한 일이 말끔히 처리됐으니, 남은 것은 식탁을 깨끗이 비우고 일어나는 것 뿐이었다.
“가시는군요.”
“가야죠. 나름 할 일이 있어서.”
“….혹시 도중에라도 마음이 변하시면 얼마든지 돌아오세요.”
“그럴 일 없습니다.”
“음. 기사들이란.”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사제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체념하듯 말했다.
“여차하면 아이들과 함께 빠져나갈 어른이 있었으면 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히셨으니 어쩔수가 없군요.”
팔락.
하일라 사제가 끝까지 아쉬워하며 내게 건네준 것은 꼬깃꼬깃한 지도 한 장이었다.
“이건 제국 수도의 지도 아닙니까?”
“감사의 인사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지금 수도에서 요긴하게 쓰일만한 물건이에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지도 곳곳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와 그것을 이은 선이 있는 것 정도?
“수도에 저주가 퍼지고, 저주받은 군대와 뮤트 대군에 봉쇄된 다음에 흘러나온 물건이에요.”
“봉쇄된 다음에 수도 내부에서 흘러나왔다는 건….?”
“밖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위한 지도라는 뜻이겠지요. 수도가 저렇게 된 뒤, 어느정도 영토의 방비를 끝낸 제국 곳곳의 군대와 기사단이 황가의 수복을 위해 수도로 향했으니까요.”
“표시된 선은 그나마 확보한 길, 동그라미는 신전이나 방어용 첨탑처럼 봉쇄된 제국 안에서 생존자들이 뭉쳐있는 곳을 표현했다고 들었습니다.”
“!!!”
보물이다. 이 지도야 말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 아닌가! 맨땅에 헤딩하는게 아니라 남들이 닦아놓은 길로 갈 수 있다니! 이런 보물을 넘겨주다니! 정말 감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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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선은 길이고, 동그라미는 집결지라고….[들었다]고?’
지도를 받아든 내가 쳐다보자, 여사제는 고개를 숙였다.
“내부랑 연락이 되는겁니까?”“1년 전까지는 조금씩 신성 통신이 닿았습니다.”
“….그 사실과 이 지도를 숨기셨구요.”
“죄송합니다. 정말로 이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할 누군가가 남아줬으면 했습니다. 꼭 하이드 기사님 같은 분이었으면 했지요. 이것 말고는 빠트린 이야기는 없습니다. 제 신앙을 걸고 모두 진실만 말했어요.”
“크흠. 흠!”
그러니까, 좀 희망적인 얘기는 빼놓고 개떡같은 수도 상황만 얘기해주면 내가 수도로 가겠다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단 말이지. 기어이 가겠다고 하니, 이제야 알려주는 것이고.
‘마냥 착한 사제님은 아니셨군.’
좀 괘씸하긴 했지만, 의도가 선해서 그냥 불편한 헛기침 한번 해주고 넘어갔다. 따지고보면 내가 가서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그그그극!
잠깐 사소한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잘 쉬고, 배도 채우고, 뜻하지 않은 진입로까지 얻었으니 이제 정말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갑니다. 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들를테니까, 그렇게 죽으러 가는 사람 보내는 얼굴로 마중하지 마시고.”
“우릴 탈출시켜준 기사들도 그렇게 말했지. 조심해서 가시게. 혹여 황제군에 잡힐 것 같거든 자결해줬으면 참 고맙겠- 끄아악!”
“그러다 천벌 받습니다, 고라 마법사님.”
반백의 여사제는 늙은 마법사의 옆구리를 한 손 가득 움켜쥐고는 남은 손으로 자비교단의 성호를 그어보이며 나를 배웅했다.
“이곳에서 엘 사미아의 손길이 그대에게 머물길 기도하겠습니다. 라투라, 엘-사미아.”
“운좋게 살면 사제님의 기도가 먹힌 것으로 여겨야겠군요. 음, 라투라.”
아주 미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축복의 기운. 내가 돌아보자 하일라 사제는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흐읍- 우드드득!
하아아.
“잘 쉬었으니 이제 고생해야지.”
어휴 내 팔자야.
뮤트가 제국을 포위했다고 했지. 보나마나 가까워질수록 배회하는 놈의 숫자도 늘어날테니 접근하려면 고생좀 할 것 같았다.
“….음? 포위?”
그러고 보니 뮤트의 이상행동에 대해선 하일라 사제님도 모르셨지.
각각 개별의 종족이나 다름없는 뮤트 로드와 그들의 개별적인 무리인데. 다 같이 모여서 제국 수도를 포위했다는 것은 뮤트쪽에도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당장 황성으로 가는데 있어 장애물은 저주받은 제국군과 수도 그 자체고. 어쨌든 로드급이 우글거리는 뮤트 대군은 그놈들 적이니까. 잘 이용하면 길 치우는데 쓸 수 있지 않을까.
“음, 안되겠다.”
출발 한지 10분이 넘었는데, 발도 못떼고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궁상떨어봤자 당장 어떻게 할수도 없는 노릇.
“가서 생각해, 가서.”
지금으로선, 직접 확인하고 나머지를 구상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발이 수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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