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52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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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잡았다! 낚아챘어!’
‘녀석.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 너를 저 간악한 것의 손에 넘기진 않을테니.’
‘불쌍한 녀석. 도대체 몇 번을 죽을 생각인 게야.’
‘하이드, 이 미련한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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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삭!
제국 수도라 불리는 영토 중 ‘사용인 도시’라 불리던 외곽은 한때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벽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겨우 남아있는 모습.
달도 없는 밤, 그 야음을 틈타 폐허가 된 도시를 향해 달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대형 열둘. 중형 서른 다섯. 소형 백…. 에라이. 세는 게 무의미하군.’
3월드의 뮤트와 4월드의 뮤트 사이에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통일성이다. 3월드의 뮤트는 악신 여왕이 고르고 고른 유전자들을 모아 용도별로 최적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몇 종의 뮤트라면, 4월드의 뮤트는 각기 다른 로드가 제 마음대로 생산한 개체들이다보니 어떤 종이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 개성이 달랐다.
장점이라면, 당연히 후자쪽이 전자에 비해 월등히 열악한 개체라는 것. 단점이라면, 워낙 생겨먹은게 마구잡이라 어떤 뮤트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분류라고 해봐야 크기별로 나누는 정도?
‘드,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아미스님! 감사합니다 사제님! 기도가 통했나-’
-덜컥!
‘으으으읍-!!!’
스스로의 엄청난 침투능력에 감탄하려던 찰나, 헐거운 벽돌이 밟히는 소리에 온 몸의 털이 바짝 설 정도로 놀랐다.
분류가 안될 정도로 각양각색의 뮤트라는건, 어떤 개체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제발 귀 밝은 놈 없게 해주세요, 로 하람님, 아미스님, 제가 뵐 일은 없지만 하느님 부처님!!!’
“끄욱! 욱!”
정식으로 종교에 입문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내 기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코트를 걸친 것처럼 나풀거리는 가죽을 가진 뮤트 한 마리가 분명히 뭔가 들은 것 같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
‘잡아야 하나?’
잡는 것도 어렵지 않고, 소음을 죽이는 것도 어느정도 해볼만 하지만, 혈향이 퍼지는 것 만큼은 쉽게 막을 수 없었다.
박교수였다면 이 대목에서 살아움직이는 고기 분쇄기가 되어주셨겠지만…. 나는 패스파인더란 말이다! 길잡이라고! 숨어들고 파고들어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특화되어있지 다 때려부수며 영광의 승리를 쟁취하는 그런 직종과는 거리가 멀단 말이다!!
차박.
싫든 좋든, 펄럭거리는 뮤트는 정확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차박.
세 걸음. 거미줄을 만지듯 신중하게 칼을 뽑았다.
차박.
두 걸음. 박교수만큼 힘이 셌다면 순식간에 목을 부러뜨리는 것도 가능할텐데.
차박.
한 걸음. 여차하면 죽이고 후퇴를….
“….꺼우우?”
막 칼날을 찍어내리려는 순간, 내가 숨어든 골목 바로 앞까지 걸어온 녀석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잘 참았다! 진짜 잘 참았다!’
자칫 서둘렀으면 지난 6일간의 개고생이 모두 허사가 될 뻔 했다.
그래. 6일이다.
수도 인근까지 오는데 하루 반.
인근 종탑에 올라 진입로를 찾는데 하루.
그리고, 걸어서 세 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은밀하게 기어 들어오는데 삼 일 하고도 한나절!
‘빌어먹을, 뭐가 이렇게 많아!’
제국에 뮤트가 많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로 많아야 뭘 해볼 생각이나 들지. 이건 거의 3월드 전성기 수준의 뮤트 군단이 아닌가?
팔락-
‘[사용인 도시 동문 방향. 베럿&브레티 양장점 건물 내부 지하]로 가라고 써있는데. 여기가 맞겠지?’
하일라 사제가 건네준 지도는 그림이 조악한 대신 귀퉁이에 특정 지점을 나타낸 글귀가 써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동문 앞이고. 지도에 따르면 문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곳에, 음, 저걸 등지고 있는 방향이….
[–럿 & 브레ㅌ–]‘찾았다!’
6일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건량도 침에 녹여 먹으며 숨어들어온 끝에 표시된 길의 초입에 당도할 수 있었다. 반쯤 무너진 가게의 바닥 문을 들추자 희미하지만 시큼한 와인 향 같은 것이 코끝을 감돌았다.
‘주류를 밀반입하던 곳이었군.’
아무리 봐도 양장점 지하로는 볼 수 없는 시설. 여기저기 박살난 오크통과 후려친 자국은 먼저 온 이들이 여기서 꽤나 길을 헤맸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덜컥!
“바람이 숭숭 나오는구만 뭘 이걸 찾는다고 난리래.”
작은 횃불로 반대쪽 출구가 비치지 않을 정도의 길이였다. 통로가 긴 것은 좋은 소식이다. 이 지하통로가 긴 만큼 한걸음이라도 더 안전하게 수도의 중심을 향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게 아니라도 며칠 만에 뮤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안전지대와 같은 곳이다.
몸의 피로를 생각하면 이 통로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회복한 다음 본격적인 수도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정작 통로에 기어들어온 팔다리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에 움직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바바바박!
한 손에 든 횃불의 일렁임 때문인지, 좁은 통로를 채워가는 연기 때문인지. 분명 들어오기 전만 해도 곧게 뻗어있던 통로가 구불구불하고 물렁한 통로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꼭, 거대한 창자 안을 기어가는 것처럼.
“으아아악! 이래서 저주같은 게 얽혀있는 곳에는 오기 싫었다고! 개같은 시스템! 병신같은 황제!”
파바바박!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은 반쪽이나마 오러나이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런 방면에 있어선 신성력에 버금가는 정신방벽을 제공하는 것이 오러의 독립성이니까.
탱그렁!
“….갑옷?”
출구가 가깝게 느껴질 즈음, 손과 무릎에 갑옷으로 보이는 것이 걸리적 거릴 정도로 많이 널려있었다.
‘공격당한 흔적이 없어. 견갑과 그리브 모두 버클이 풀어져있어. 직접 벗은거야.’
먼저 왔을 기사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나와 같은 환영을 보고, 겁에질려 필사적으로 좁은 통로를 기어가는 기사. 어느순간, 기사는 스스로 제 갑옷을 벗어던지고 출구를 향해 기어나가기 시작한다.
‘출구다!’
한시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덜컥!
“나왔-?!”
탈출과 함께 앞으로 내뻗은 손에 느껴지는 공허함.
‘절벽!’
콰악!
통로의 끝은 그 앞에 아무것도 없는 절벽 끝자락을 향해 열려있었다. 홀린 듯 기어나와 몸을 던진 나도, 균형을 잃기 전 가까스로 붙잡은 문의 귀퉁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굴러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아….아아아아—….』
스산한 바람이 몰아치는 절벽 너머로 환청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사의 최후. 새로 태어나듯 알몸으로 기어나와 황홀한 표정을 하곤 추락하는 남자.
슬쩍 돌아보니 좁은 통로 안에는 멀리서 보이던 보라색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분명히 들어서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좋아. 이런 분위기. 이런 느낌이라 이거지.”
용맥 대폭발의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힘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과거의 아름다움이 남은 사용인 도시 한 가운데를 갈라놓은 거대한 균열은 제국의 수도가 맞이한 운명을 암시하듯 불길했다.
절벽을 기어올라 보게된 것은, 오랜 전쟁에도 꽤나 형태를 유지한 사용인도시의 가옥들.
제국에서 가장 비싼 땅 답게 빈틈하나 없이 빽빽하게 늘어선 건물들은 어딘가 부서진 듯, 부서지지 않은 듯 상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어색하게 섞여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묘한 것은 묘하게 기울거나 건물 전체를 조금씩 회전시켜놓은 듯한 그 배치였다.
“라, 라투라…. 정명하신 광명께서 우리의 앞길을 비추사, 올곧은 이를 인도하시고….”
마치 빽빽한 건물이 모두 창문과 입구로 만들어진 안면이라도 된 것처럼, 어딘가 한 곳을 응시하듯 조금씩 기울고 돌아있는 저택들.
“시, 신전. 수도에 고립된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신전이 있다고 했어….”
지금으로선, 이 망할 보랏빛 안개가 없는 공간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사각사각-
“제기랄. 이 지도를 유포한 놈부터 족치던가 해야지…!”
가느다란 숯으로 하일라 사제가 준 지도에 급히 기록을 남긴 다음, 지도와 주변 지형을 비교해가며 더듬더듬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아—….』
어째서인지, 첫 번째 길 끝에 그려넣은 낭떠러지 표시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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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수도. 황성을 중심으로 동심원형태로 세워진 세 개의 성벽은 각각 수도의 세 구역을 나누는 경계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외곽에 위치한 사용인 도시의 경우, 수도가 미어 터지도록 모여든 귀족들의 허드렛일을 하기 위한 하녀, 하인, 전속 미용사, 요리사, 유모등 온갖 사용인들이 머무르며 출퇴근하기 위한 위성도시가 그 시작이었다.
사용인 도시가 비상식적인 크기를 가지게 된 것은 그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커다란 수도에 빈틈 하나없이 귀족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데, 수도에 자리잡을 정도의 고위귀족은 평균 1인 당 30인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그 말은 귀족이 머무르는 곳의 30배 크기의 사용인 거주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니까.
실제로는 귀족보다 작은 방을 쓰니 30배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끔찍할 만큼 빽빽한 주택 밀도와 복잡한 길, 그 미로같은 도시가 엄청난 넓이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소리다.
“끄으으으…. 불충…. 불충한….!”
“좀 죽어라 제발!”
채앵!
그리고 패스파인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몸은, 부끄럽게도 길을 잃고 말았다.
지금 나와 칼끝을 나누고 있는 분으로 말하자면- 제국 병사의 옷에 제국 병사의 무기를 들고, 제국 군인 특유의 말투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제국민이다.
목과 어깨, 머리 위에 커다란 보라색 꽃이라는 다소 징그러운 악세사리를 하고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만 빼면.
“충성을…. 다하라….!”
투확!
콰아아아앙!
허리를 부러질 듯 뒤로 젖혀 피한 검격이 내 가슴을 스쳐 건물을 가격하고, 그대로 무너뜨렸다.
‘이런 망할! 병사잖아! 기사도 아니고 병사잖아!’
넋이 나간듯한 모습. 온몸에 솟아오른 핏줄과 그 혈관에 뿌리내린 듯 몸을 파고든 보라색 꽃. 말로만 듣던 황제의 저주받은 군대는, 넋나간 칼질 한방에 건물 하나를 썰어버리는 괴물이었다.
제국 상비군이 몇이었더라? 20만? 30만? 수도 경비대만 3만 정도 되지 않았나?
-찰칵!
“고블린 마도공학은 세계 제이이일!!!”
슈파파팍!
곡예하듯 검격을 피하며 발생한 작은 틈을 이용해 비장의 실버티클을 던졌지만-
“폐하의 명령은….”
틱, 팅!
“절대적이다!!!”
티티티팅!
단단한 자연암에도 베인 자국을 남기던 실버티클의 은사는 놈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고, 엉킨 은사에 묶여있던 저주병은 끔찍하게 질긴 연금술 은사를 완력만을 끊어내며 검을 휘둘렀다.
촤악!
….툭. 데구르르.
“후욱, 후욱! 자, 잡았다!”
물론, 잠깐이나마 구속된 상대의 목을 따지 못할 정도까지 내가 약하진 않았지만.
“….이거, 정면 승부를 해선 될게 아닌데?”
고작 저주로 강화된 병사 하나를 잡는데 이렇게 용을 쓰고 있으니, 기사라도 만나면 덮어놓고 도망가던가 연막을 뿌리던 가 해야할 판이었다.
“흠. 역시 파고든 저주화의 뿌리가 숙주를 강화하는 건가? 근육과 혈관 사이 사이에 뿌리가-”
절망도 잠시, 앞으로 이런 녀석을 계속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적의 약점을 연구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니.
적어도 이 저주병이 어떤 구조로 이렇게 강한 힘을 내는지나 파악해볼 요량으로 절단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쉬익
“….세.”
“?!!!”
잘린 머리가 입을 뻐끔거리고, 떨어진 몸통의 목구멍이 바람을 불어대고 있었다.
“이, 이놈의 저주! 또 나를 홀렸구나, 홀렸어!”
눈을 깜빡이고, 닦아도 보고, 머리를 흔들거나 주워들은 광명의 기도문을 읊어보기도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슈르르륵-
“….세.”
“황제ㅍ… 만세….”
“이런 미친.”
퍽! 퍽! 콱! 퍽!
뻐끔거리던 입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목구멍에서 기어나온 뿌리가 둥근 관 모양으로 달라붙었을 때였다.
파산검은 비싼 값을 했다. 고장난 상태로도 이렇게 단단한 머리를 까부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전투가 정육의 단계로 넘어간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허억. 이놈들은…. 죽지를 않나?”
다진 고기 비슷한 상태가 되고서야 비로소 움직임을 멈춘 저주병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치를 떨었다.
적당히 으깬 것도 아니었다. 한방 한방 아주 제대로 힘을 실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으깼는데, 이미 겉가죽이 다 터지고 전신의 뼈가 가루가 된 상태에서도 그 이상한 뿌리들은 꿈틀거리며 몸을 수복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불사 맞네. 반쯤은.”
“!”
순간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검을 휘두르는 대신 칼집에 집어넣는 동작.
기사 하이드로서도, 고아원의 하이드로서도 가장 오랫동안 배워온 검격. 납도하는 동작이 포함됐음에도 그냥 휘두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본능에 가까운 일격!
….피싯!
초 단위로 쪼개어 날아든 검격은 등 뒤의 검은 로브를 입은 이의 귀를 반쯤 파고든 상태로 멈춰 있었다.
“엄청난 반응이군. 코앞에서 휘둘러졌는데도 눈이 쫓아가질 못했어.”
“누구냐.”
“저주병은 인간이 아니지. 딱 봐도 저주화에 지배당한 상태가 아닌가? 뿌리내린 꽃이 드러나 있을 때 꽃을 파괴하는 것이 놈들을 잡는 방법이야.”
“어떻게 기척도 없이 내 등 뒤에 접근했지?”
“아니면, 자네처럼 무식하게 곤죽으로 만들거나.”
늙수그레한 목소리.
귀를 파고든 검끝은 놈이 뒤집어쓴 후드의 옆면을 긁어내었다.
펄럭.
“이런.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얼굴은 아닌데.”
“당신….”
“기척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이미 망자에 가까운 흑마법사가 기척따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있나. 유령이나 다름없거늘. 흘흘흘흘!”
검은 후드가 잘려나가며 드러난 얼굴.
그것은 눈, 코, 입술이 모두 사라져 일그러진 해골같은 얼굴이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신전 밖에 나와봤더니, 아직도 수도에 죽어 나가떨어지지 않은 기사가 있었군 그래. 새로 왔나?”
“….”
“불신.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훌륭한 덕목이지. 그럼 나는 지금부터 용기의 신전으로 갈테니, 뒤를 따라오는 것은 자네 판단에 맡기겠네.”
얼굴이 흉하게 녹아내린 흑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골목 너머를 향해 느릿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세….”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잘 다진 저주병 무더기에서 뿌리로 만든 입술 같은게 자라나더니 다시금 황제찬양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다져진 무더기 사이에서 보라색 꽃잎 하나가 스며들 듯 모습을 감추는 것이 보였다.
푹.
검끝으로 정확히 찌르자, 이제야 잠잠해지는 저주병.
‘….자신을 망자라 표현한 흑마법사는 적어도 진실을 말했다.’
‘나보다 저주병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사실.’
‘뒤를 잡고도 내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도 사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겠지만, 이곳은 저주에 뒤덮인 땅이다. 방금 전에도 통로인척 사람을 잡아먹는 좁고 긴 통로에 된통 당하지 않았나.
‘이곳의 위험은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저주의 환각과 환청이 만연한 곳. 하지만 이대로 길을 헤매며 몇 번이고 소모전을 펼치는 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는 길일 뿐이다.
….뚜벅.
“호오. 따라올 작정인가?”
“….노인장께서 의심이 미덕이라 하셨으니, 그 미덕은 품고 동행하도록 하지요.”
“흘흘흘흘! 칼보다 혀가 날카로운 기사였군!”
뒤따라온 나를 돌아본 흑마법사는 귀에 거슬리는 웃음을 토하더니, 복잡하게 얽힌 사용인 도시의 골목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다니던 마찻길을 이용했으면 이리 복잡하게 다닐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 길은 땅이 쪼개지며 부서져버렸지. 오면서 봤는가?”
“….”
“봤군. 생각해보니 아까 그 자리도 길을 잃었어도 쉽게 올만한 곳이 아니었는데, 설마 절벽쪽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겠지?”
“….표시가 된 지도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지도? 그럼 설마 그 밀수꾼 통로로 들어온게야? 거길 기어나왔다고? 흘흘흘흘! 아이구 맙소사!”
지금도 사방에서 뮤트의 고함소리와 금속음, 저주병의 황제 찬양이 들려오는데 노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무릎을 두드려가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됐습니까?”“흘흘흘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야! 늙은 다리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말고! 아이구 세상에, 아이구!”
끝까지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뻥 뚫린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흑마법사의 모습에 다시한번 의심이 불쑥 솟았지만.
“어때? 잘 왔지? 공기부터가 다르지?”
“….”
적어도 길 안내만큼은 확실했다. 흑마법사의 말처럼 숨쉬는 것 부터가 다르게 느껴지는 편안함.
일부러 무너뜨린 듯 막힌 골목의 틈으로 기어나오자, 거짓말처럼 부드러운 성광이 가득한 신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 앞에 선자, 누구도 버림받지 않으리니]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신전 벽에서 밝게 빛나는 글귀.
흩뿌려진 피와 깨진 자국 사이로 빛나는 신성한 글귀는 마치 이 저주받은 수도 한가운데 자리잡은 신전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신성하지만, 촛불로 그믐을 밝히려 하는 것처럼 덧없는 빛줄기.
나는 흑마법사의 뒤를따라 신전의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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