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55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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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맹목이란다. 혹자는 정확한 증거와 기록, 논리하나 없는 교전을 어떻게 믿고 따르냐 묻지만, 그것이야 말로 종교의 본질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자의 질문이지.’
‘논리가 없어도 믿을 수 있는게 아니라, 논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순수한 믿음을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고작 100년도 안된 어리고 영글지 못한 이성으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이성에서 벗어난 순수한 믿음을 가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 종교라 부른단다.’
‘-건…. -무래도 미— —?’
‘어느 정도는 네 말이 맞단다. 순수한 믿음이란 판단의 잣대를 제거한 강렬한 사상이기에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저 밖의 수많은 사교도, 이교도들이 바로 그런 경우란다. 그렇기에 나나 너 같은 신의 돌봄을 받는 이들이 더욱 정진하여 성도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것이란다.’
‘광명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네가 그렇게 말해서야 쓰겠니? 교수야.’
‘아 그래. 하이드야. 그것 참, 마음의 병 치고는 유별나구나. 가장 위대한 성자님의 이름을 받은게 마음에 안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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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라투라. 여신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에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텅그렁-
쿵!
해질 무렵쯤 되어 돌아온 자비의 신전.
주교는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세상에. 그럼 프라우크 형제와 하이드 경 두 분 이서 그 ‘저주받은 교관 베델’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단 말입니까?”
“유명한 기사였습니까?”
“지난 3년간 사용인 도시에서 그자의 방패에 죽은 이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주 명망 높은 기사였지요. 듣기로는 근위기사가 될 수 있었음에도 병사를 훈육하는게 좋다며 평기사로 남은 인물이었습니다.”
주교는 보랏빛이 감도는 갑옷과 검, 대방패를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생존자들을 구해 오는일이 쉽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군요.”
“예. 생각보다 황제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더라구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돌아다녔다곤 해도, 숨어다니는데 소모한 시간이 8할 정도. 그렇게 고생해서 도착해도 사람들은 프라우크가 말한 것처럼 신전으로 옮겨 가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아했다.
나야 답답했지. 주교가 사람 데려와야 성수랑 길안내 붙여준다고 했는데, 정작 사람들이 집 주변에 득실거리는 저주받은 군대를 보고 겁을 먹질 않으니. 오히려 황제님의 은총을 저주따위로 취급한다고 쏘아 붙이기까지 했다니까?
“라투라. 그건, 황제의 저주가 그들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 믿는편이 그들에게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더 편하다구요? 온 몸에 식물 뿌리가 박혀서 몸이 울퉁불퉁 부어오른 병사가 『황제…. 황제….』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그게 제대로된 힘이라 믿는 쪽이 편하단 말입니까? 수도를 봉쇄한 것은 거의 황제군 쪽인데?”
“그렇지요. ‘황제의 저주받은 군대는 뮤트 대군에게서 수도를 지키기 위함이다.’ 위 명제는 미래에 대한 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뮤트를 물리치면 수도도, 자신들의 삶도 원래대로 돌아올수 있다는 희망적인 미래지요. 하지만 황제의 저주가 그들을 천천히 잡아먹고 있다는 우리의 의견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편이 아닙니까. 우리 또한 수도에 감금되어 못 나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진실과 상관없이 보다 믿고 싶은 쪽을 믿을 뿐이다….”
“저주 때문에 심신이 미약해진 사람들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하여 크게 탓할 수는 없겠지요.”
주교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주변의 사제들에게 갑옷과 방패의 수습을 명했다. 들러붙은 기운이 충분히 정화되면 녹여서 다른 성기사들의 창칼을 만드는데 쓸 거라나.
“그래도 한 분이나마 구해 오셨으니 하이드 경에게는 확실히 여신의 손길이 닿아있는 모양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멜다 성도님?”
“예, 예…. 주교님….”
“허허허허. 너무 그렇게 두려워 하실 것 없습니다. 이곳은 여신의 자비에 가장 가까운 곳이니. 따라오시지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이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예에에….”
딱 한명, 프라우크와 나를 따라온 생존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지금 내 뒤에 숨어서 두리번 거리는 이 여자, 아멜다였다.
어느 귀족 가문의 주방 하녀 출신인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을 대단히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저주받은 기사와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신전에 몸을 의탁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저, 저는 이 두 분 기사님과 같이 있으면 안될까요?”
“허허허. 그러고보니 아멜다 성도님은 프라우크 형제님과 하이드 경의 신위를 보고 따라오셨다 하셨지요?”
“예에…. 저런 강인한 기사님들이 신전을 지키고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서….”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저 두분 말고도 많은 형제님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고 계시니, 너무 저 두분만 그리 위해주시면 다른 형제님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고된 임무를 마친 두 분 형제님도 쉬셔야지요.”
“음, 으음….”
“걱정하실 필요 없소. 다들 나만큼이나 신실하게 여신을 모시는 훌륭한 형제님들이니.”
“예….”
결국, 주교와 아멜다의 뒷모습이 신전에 자욱한 제향(祭香) 사이로 사라졌다.
프라우크와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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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소, 하이드. 뜻하지 않게 주어진 일 이상을 하고 말았군.”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고생하는 건 익숙해서.”
주교에게 보고를 마친 뒤, 나는 배정받은 내 자리로 돌아와 프라우크가 마주하고 있었다.
“주교님이 약속한 보수는 내일 아침에 지급될 것이오. 자비의 성수 두 병, 상급 포션 다섯 병에 추가로 그대가 가져온 갑옷과 방패에 대한 대가로 축성받은 화살촉 한 줌이 지급될 것이오.”
“오오. 가진 게 없다더니. 많이도 주십니다?”
“그래서 내일 지급하는거요. 그 보수를 위해 여러 형제가 오늘 밤을 지새워 기도를 올려야 하니.”
“으음….”
“고생많았소. 살펴가시오.”
투벅 투벅 투벅 투벅-
천을 덧댄 판금장화 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뭔가, 미묘하게 쌀쌀해진 것 같은 프라우크의 모습.
물론 내일이면 헤어질 사람이니 딱히 신경 쓸 것은 없지만,
‘….뭐지. 이 애매한 느낌은?’
뭔가, 그냥 뭔가가 좀…. 거슬렸다.
경험상 이런걸 그냥 무시하면 낭패를 보곤 했었지. 마도열차 정거장에 남은 밀항자의 흔적을 무시했다가 열차강도랑 대판 싸우거나, 눈빛이 영 좋지 않은 귀족의 유적탐사 의뢰를 받았다가 일 다 끝나고 소리소문 없이 처리당할 뻔 하거나.
적어도 교수 그놈보다 관찰력 하나 만큼은 뛰어나다 자부했다. 놈은 나처럼 평생 뭔지도 모를 것을 찾아다닌 적이 없으니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돌부리처럼 툭 튀어나온 것이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지 않게, 불쑥 솟아있는 무언가가.
뭘까?
“신전?”
신전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고향처럼 익숙한 제향의 연기와 향이 신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환자들은 신음하고, 사제들은 자애로운 미소로 그들을 보살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전 안에 은은한 신성력이 흐르고 있기도 하니 장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사람?”
성기사 프라우크가…. 갑자기 날카로워진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좀 더 날이 섰다고 할지, 엄격해졌다고 할지. 밖에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며 잘못을 인정하던 성기사는 어디로 갔는지, ‘일 했으니 보수 받고 꺼져라’ 같은 식의 말만 남기고 제 할 일 하러 가는 기사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멜다. 그녀가 언제부터 내 뒤에 숨어 있었지? 하녀 출신인 그녀와는 다른 세계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고위 기사 둘이 그녀를 호위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즐거워 했고,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 새 터전을 잡는것에 꽤나 기대감을 품고 있었는데. 신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불안해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라투라. 편안하신지요.”
“아, 예.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
그리고. 치유 마법을 걸며 돌아다니던 사제가 내 쪽에 온 순간, 뭐가 이렇게 거슬렸는지 알게 되었다.
‘사제들의 상태가 너무 좋아.’
자비의 신전은 누구에게든 손을 내민다는 교리답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 신전은 걸어다니다 사람을 밟지 않게 조심해야 할 정도로 수많은 생존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전부 쇠약해져가는 환자였고, 사제들은 그들이 숨쉬는 피떡으로 변하게 하지 않기 위해 수시로 신성력을 퍼부어야 했다.
하일라 사제는 더 적은 인원을 보살피면서도 머리가 다 세고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렸다.
이곳의 사제들은 그 몇 배나 되는 인원들을 보살피면서 피부도 탱탱하고 눈에 힘도 남아 있었다.
신전이니까? 신전의 신성력이 풍부해서?
글쎄. 저주의 기운을 몰아낼 신성력이 부족해서 이렇게나 많은 제향을 피운 것일텐데.
그렇다면, 이곳의 사제와 성기사들의 마르지 않는 신성력의 원천은 뭐란 말인가?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토의 아공간을 뒤적거리며 바라본 곳은, 주교와 아멜다가 사라진 자욱한 연기 너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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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교단의 신전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광명은 눈이 아프게 밝다.
풍요는 항상 음식냄새가 나고,
용기는 더러우며,
지혜는 책이 쓰레기처럼 쌓여있고,
자비는 신전에 싸구려 건축자재를 사용한다.
이는 보다 멀리 있는 이를 밝히겠다는 의지, 풍요의 영역에서 배불리 있을 권리를 주겠다는 것, 신전의 피 얼룩과 전흔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지식에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청, 누구나 받아들이기 위해 부족한 예산으로 큰 신전을 지어대는 대책없는 자애에서 비롯한 특징이라는 것. 세간에 알려진 5대 교단 신전의 특징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교수와 함께 광명 교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삶을 경험한 하이드는 한가지 특징이 더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각 교단은, 알려진 것 처럼 마냥 선한 이들은 아니었어.’
저마다 다른 5대 교단의 신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지하 감옥이다. 교단의 적을 가두고 그들의 절대자인 신을 욕보인 죄를 묻기 위한 시설.
신전에 환자가 그리 빼곡하게 들어차 있을 정도로 자리가 모자랐다면 신전 지하에도 환자들을 수용했어야 할텐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하 비슷한 곳을 오가는 사제나 성기사를 본 적이 없었다. 지상에는 환자의 자리가 부족해 줄을 세워 눕혀둘 정도지만, 지하에는 환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지하에는 무엇을 뒀을까.
자욱한 제향을 뚫고 흔적을 더듬었다. 주교의 흔적은 그의 눈에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지만, 방금 막 밖에서 들어온 아멜다의 더러운 신발은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신전 가장 안쪽, 여신의 성상 아래에서 끊긴 발자국.
지금도 주변에 사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여신상 위에 걸린 커다란 청동 향로가 뿜어내는 자욱한 제향 덕분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의도된 것이겠지.
….덜컥!
판석의 틈을 들어올리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아멜다의 발자국도 그리로 이어졌다. 도대체 방금 온 사람을 신전 지하로 데려가서 시킬 일이 뭐가 있을까?
‘허허허. 따라오세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일이 많습니다.’
주교의 인자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비좁은 통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저 밖의 수도를 뒤덮은 것과 똑같은 보랏빛 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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