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60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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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벨! 나 벨라벨이야!”
새로 동행하게 된 뮤트(정말 뮤트인지 아직도 못믿겠지만)는 여러모로 특이한 녀석이었다.
예를 들면, 방금 나한테 공격받아 부러진 손을 덜렁이면서도 저렇게 살가운 성격이라거나.
허약한 개체 주제에 고유한 이름이 있다거나.
“벨라벨 콰두르부! 콰두르부 가문의 벨라벨이야!”
“?”
뮤트 주제에 성에 가문까지 있다거나.
“가문?”
“가문! 로드 ‘멈출 수 없는 콰두르부’께서 벨라벨을 만들었으니까, 벨라벨은 콰두르부 가문이야!”
“오호.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립되는건가.”
여왕.
왕.
생산이 가능한 뮤트 로드들이 귀족.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로드 각자의 무리.
여왕 하나 밖에 없던 과거와 달리 서제국령의 뮤트는 고유의 언어는 물론 인간과 비슷한 계급 체제까지 갖추고 있었다.
‘정말 이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은 걸까?’
지금까지는 희망적인 편이다. 이들이 문명화됐다는 것은 대화를 통해 거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얼마나 종으로서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이 이 협곡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인간 기사를 잡아먹기 위해 이런 대규모 위장을 펼쳤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휘우우우-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불던 것이 사방으로 난잡하게 흩어지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앞에 뭐가 있군.’
무언가가 바람을 가로막고 있는 것. 벽이라기엔, 바람구멍 소리가 많고 또 그 간격이 규칙적이다.
“건물이군.”
“응, 맞아! 여기가 ‘안쪽’! 전하도, 로드님도, 위에 있지 않은 형제들은 모두 이곳에 있어! 네가 말한 너 닮은 형제들도!”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 앞에 얼마나 될지 모르는 규모의 뮤트 던전이 있고, 혼자서도 요새도시를 초토화시키는 파편 3개급 로드가 몇 마리나 있으며, 거기에 더해 그놈들을 모조리 휘어잡을 정도로 엄청난 ‘왕’뮤트에 날 아주 싫어할 가능성이 높은 ‘여왕 니그미’까지 있단 말이지.
아무리봐도 마굴이잖아 그거.
‘여차하면 튀자.’
싸워선 답이 없다. 아니, 깊이 들어가기만 해도 답이 없을 것이다. 입구까지만. 따악- 입구 언저리에서 이래저래 시간 끌면서 분위기 한번 살펴보고, 애매하다 싶으면 죽자고 달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공간에 들어있는 기척 제거 마도구라던가, 체취를 지울만한 연막이나 탈출에 도움이 될만한 소도구를 계산하는 사이,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시종일관 흥얼거리던 벨라벨이 저만치 앞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떼어놓고 아군 진형으로 달려갔어?’
‘역시 미끼였나? 적을 충분히 끌어들였으니 제대로 된 전투 개체를 부를 참인가?’
녀석의 돌발 행동에 슬금슬금 몸을 돌리고 있던 그때.
“저언-하아-! 다녀왔습니다 전하-!”
“푸흡!”
나사가 한 다스는 빠진 듯한 목소리로 ‘전하-’를 부르며 오도도도 달려가는 벨라벨의 목소리에, 다리의 힘과 함께 ‘더 그레이트 뮤트 다이네스티’에 대한 나의 상상도 와장창 무너졌다.
‘뭐, 뭐야, 저건?’
아무리 봐도 전투에 도움도 안되는 8급~9급 일반 뮤트인데. 왕과 여왕이 기거하는 곳이라 제 입으로 말해놓고는 ‘다녀왔습니다 전하~’ 라니?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왕과 여왕, 로드와 그 아래 무리로 이어지는 눈부신 뮤트 제국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시 저 녀석이 뮤트 왕국에서 황족 같은건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제 입으로 ‘멈출 수 없는 콰두르부’에게서 태어났다고 했으니.
내가 충격에 빠져있는 사이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니던 벨라벨의 발소리가 끊겨있었다.
그리고,
[그르르륵-]어둠 저편, 마치 동굴안에서 울려오는 듯한 맹수의 그르렁거림과 함께,
“손님을 데려왔구나. 벨라.”
거칠고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히히. 전하, 벨라벨 명령 지켰어요! 황제군은 막고, 길 잃은 인간 기사는 안내 했어요!”
“그래. 저 위에서 싸우는 누이들처럼, 네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구나.”
왕과 천민이 아닌, 아버지와 딸이 나누는 듯한 대화에 도저히 분위기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알고보니 왕은 한 백만 명쯤 있는 관리직의 이름인가?
초거대 뮤트왕조는 어디에?
스캠인가?
니그미 그 쫄보가 여왕이랄 때부터-
“앞에 손을 놔두고 한눈을 팔았군.”
“어…. 예? 예?”
“불안한 것은 이해한다. 인간은 시력에 많이 의지하는 생물이니 이곳의 환경이 답답할 수 있겠지.”
“아, 어…. 예.”
여왕 니그미와 뮤트 ‘왕’을 만나면 해야할 태도, 나눌 이야기, 수도의 정황과 무엇을 거래할지에 대한 내용 같은 앞으로 해야 할 말들을 수백가지는 떠올리면서 왔는데,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들어오라. 서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테니.”
“어, 음….”
“그 앞에 밧줄이 있을 것이다. 안의 인간들이 눈을 대신해 길을 더듬기 위해 매어둔 것이지. 기사들은 누군가에게 부축 받는 것을 모욕으로 여기더군.”
“옙. 감사합니다.”
머리를 마구 흔들어 머릿속에 가득한 혼란을 털어낸 다음에서야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뮤트 왕조고, 여왕이고 나발이고 지금까지 가정은 전부 다 잊자고. 눈앞의 사실만 대하는거다.
뮤트 왕. 눈앞의 킹- 뮤트님.
대화가 통하는가?
나만큼 유창하다.
인격자인가?
우리 쪽 왕족 어쩌고 하는 새끼들보다 백배는 나은 것 같다.
공격적인가?
허약한 일반개체 벨라벨이 ‘저언 하아~’ 하고 부르는걸 용인하고 따스하게 맞아줄 정도로 가족적이다.
.
.
.
.
‘….진짜 뮤트 맞아?’
슬쩍 살펴봤지만 연기로 보기는 힘들었다. 앞을 가로막은 건물로 가는 계단, 계단의 단차가 인간 정도 보폭에 알맞게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다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앞이 안보이는 이들이 길을 수월하게 다니기 위해 밧줄을 메어둔 것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연극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섬세했다. 내가 기사단도 아니고 혼자 더듬거리면서 왔는데 뭣하러 그렇게까지 수고를 하겠는가.
‘….가짜 왕은 아니겠지?’
저놈들 종족 특성상 필요에 의해서라도 왕을 사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이젠 그마저도 의심이 가는 상황.
“나는 가서 여왕께 말씀을 드려야하니. 벨라벨과 함께 천천히 뒤따라오도록.”
왕은 그렇게 말한 뒤, 조용히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
타다닥!
“하이드! 어때, 우리 전하 멋있지? 존경스럽지?”
“하, 하하….”
나는 잔뜩 신이 난 벨라벨의 말에 어색한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 사라지고 나서야,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검 손잡이까지 손을 옮긴것만 해도 기록에 남겨 대대손손 자랑해도 될 것 같았다.
“저게 왕이 아닐 리가.”
막혔던 숨을 뱉어내며 탄식처럼 떠올렸다.
만약 저게 왕이 아니고, 여기에 저놈보다 더 쎈놈이 있으면, 난 그냥 여기 눌러살아도 되겠다고.
박교수 그놈이 세계 정복하겠다고 여기까지 오면, 이 괴물같은 뮤트와도 한판 붙을테니까.
계단을 오르는 내내 긴장과 함께 집어삼킨 숨을 몇 번이고 내뱉어야 했다.
인간의 왕과 달리, 이들의 왕은 누가 그리 부르지 않아도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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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폐하를 뵐 때는~ 헛기침을 크게! 아주 잘 들리게 크게 하면서 들어가야 해.”
“발을 좀 끌어. 발소리가 나야 어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조금 조용히 말해야하고.”
“무기도 놓고 가야해! 수치스럽지 않은 선에서 몸에 걸친 것을 전부 벗어 둬! 앞서 이곳에 왔던 기사들이 이것 때문에 많이 소란을 일으켰어. 몇몇은 그것 때문에 전하께서 손을 쓰기도 하셨고. 당연한 일이잖아? 여왕 폐하를 뵙는데 무기를 들고 가다니.”
“전하는 괜찮냐고? 벨라벨 질문을 이해 못하겠어. 전하를 뵐 때 무기를 가져가고 안 가져가고에 차이가 있어? 들고 있으면 달라져?”
벨라벨은 그들이 ‘안쪽’이라 표현한 곳의 내부를 안내하며 여왕을 만날때의 주의사항을 몇 번이고 반복해 알려줬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전부 요약하자면, ‘네가 어디 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여왕이 계속 알 수 있게 인기척’을 내라는 것이 전부. 호칭부터 옷, 걸음걸이, 말투, 심지어 눈을 깜빡이는 간격까지 따져묻는 평범한 국가 총수 알현법에 비하면 너무나도 간소한 편이었다.
내 관심사는 여왕 니그미 알현법보다 이곳 건물 자체에 쏠려있었다.
스으윽-
밧줄을 잡고 더듬어 가는 동안 무릎과 손 끝에 닿는 벽면의 요철들.
‘오래된 제국의 세공법이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닳아서 제대로 판별하긴 힘들지만, 가이낙스 황제 이전 시절 방식 같은데?’
우선, 과거 뮤트 여왕의 ‘둥지’와는 달리 이곳은 자연암을 산성 체액으로 녹여내거나 한 곳이 아니었다. 조금 부서지고 기울긴 했지만, 원래는 대단히 화려했을 제국 양식의 건물. 아마도 수도에 균열이 생길 당시 위에 있던 건물이 떨어진 것이겠지.
이들이 ‘안쪽’이라 부르는 곳은 그렇게 균열 사이로 떨어진 건물을 통쨰로 옮겨서 통로끼리 이어 붙인 느낌이었다. 이런 부분을 보면 또 원시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어설픈 건물 구조만큼 여왕의 알현실으로 가는 길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하이드, 다 왔어.”
대리석과 먼지, 벨벳과 엘프목 특유의 향, 또 알 수 없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추측컨대 고위 귀족의 응접실…. 같은 방이 아닐까 싶었다. 이 균열 위쪽의 성하도시는 고위 귀족의 저택이 즐비했으니까.
“말해준 것 다 기억해?”
“헛기침. 발끌기.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여왕 폐하를 공격하지 말 것.”
이번만큼은 벨라벨의 목소리에도 진지함이 섞여있었다. 그들의 왕을 대할때와는 또다른 모습.
뭐랄까. 왕을 대할 때는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존경과 애정이 묻어났다면, 니그미를 말할 때는….
‘숭배. 박교수를 보던 광명교 신자들이 저런 모습이었지.’
대상을 너무 높이다보니 스스로를 너무 낮추게 되어, 결과적으로 자신이 대상의 앞에 서는 것 자체를 불경으로 여기는 단계. 그럼에도 마주하고 싶어 어쩔줄 몰라하는, 그러한 수준의 감정이었다.
‘대체 무엇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길래.’
3월드의 여왕이 악신의 위를 얻은 것처럼, 니그미도 그러한 권능을 얻은 것일까? 그 힘 덕분에 ‘겁쟁이 니그미’에서 ‘여왕 니그미’가 되었고, 자신의 종족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일까?
끼이이익-
벨라벨은 내 상념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문들과 달리, 일부러 기름칠을 하지 않은 듯 소리를 내며 열리는 알현실의 문.
“큼. 큼.”
“그륵.”
“흥. 흥.”
벨라벨이 말했던 것처럼 규칙적으로 인기척을 내는 뮤트들.
알현실은 파티 홀로 써도 될 정도로 넓었으며, 붉은 벨벳과 멋들어진 엘프목 가구로 장식된 알현실이 그 크기가 무색하게 고작 다섯 명의 뮤트에 의해 가득 차 있었다.
‘빛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부의 광경을 눈에 담을 만큼 옅은 빛이 이곳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고작 몇 시간 밖에 안됐는데도, 다시 마주한 빛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흥. 흥.”
벨라벨의 콧소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앞서 만져서 확인했던 것처럼 팔이 길고 마른 편이었다. 인간의 얼굴에 설치류의 동글동글한 느낌을 섞은 듯한 얼굴. 긴장으로 달달 떨리는 다리, 아직 맥없이 덜렁이며 빨갛게 부어있는 손목.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녀와 비슷하게 팔이 긴 괴물이 있었다. 피부가 붉고, 코가 납작했고, 긴 팔은 지방 한점 없는 근육을 끝없이 이어 붙인 듯 굵고 강해보였다. 목울대에 선명하게 빛나는 여왕의 파편 일곱 개로 보아, 아마 저 녀석이 ‘멈출 수 없는 콰두르부’겠지. 벨라벨을 만든 뮤트 로드.
그 옆에는 알현실의 남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한 뮤트가 있었다. 형태는 슬라임이되, 몸은 반투명한 그들과 달리 지방과 같은 불투명한 누런색이 낀 하얀 빛. 몇 개나 되는 여왕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두터운 지방질을 뚫고도 핵의 보랏빛이 선명한 것을 보아 이녀석도 상당한 숫자의 파편을 가졌을 것이다.
벽처럼 알현실을 두른 슬라임 앞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 평범해 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키는 알현실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안 닿는 정도에, 언뜻 보면 극한까지 단련한 사자 수인처럼 보이는 외형.
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달랐다.
갈기, 코, 송곳니, 콧잔등, 수염.
어딘가, 다른 생물의 비슷한 부분을 조금씩 모아서 사자처럼 만들어진 듯한 얼굴.
어색한 사자의 형상에서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있다면, 눈이었다. 바로 얼마 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나를 압도했던 그 기운이 일렁이는 눈.
‘저놈이 왕이었군.’
왕, 콰두르부, 그리고 정체모를 슬라임은 이쪽이 들어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한쪽으로 시선이 몰려 있었다.
“으응, 이이익.”
무언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안먹어….!”
“전하. 세상에 몇 남지 않은 귀한 음식이옵니다.”
“뱀은 풀 안 먹어! 우리 고기 많잖아, 고기!”
“말부르아드 공이 이 세계수의 잎사귀 하나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의 절반 가까이를 소모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아지지 않았습니까?”
『우드부- 그쉬아, 카 호, 네 소르 마 퀴네 부르후. 크후후후….』
“저 봐. 본인도 몸이 작아져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좋아하잖아.”
“그렇다면, 제 얼굴을 봐서라도 드셔주시지요.”
팔이 긴 뮤트의 등에 가린 무언가를 향해, 사자를 흉내낸 왕이 무릎을 꿇었다. 일순간 기세만으로 살아있는 어둠을 밀어낼 정도의 강자가 저렇게 쉽게 무릎을 꿇다니.
“으음, 으으응….”
결국, 망설이던 목소리가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하얀, 눈처럼 하얀 비늘에 뒤덮인 손가락이 지방 덩어리가 공손히 올려든 잎사귀를 받아들었다.
아삭, 아삭!
신선한 무언가를 씹는 소리와 함께, 군데군데 비늘이 벗겨진 뱀의 꼬리가 바르르 떠는 것도 보였다.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뮤트들 사이로 그 얼굴이 보였다.
분명 기억에 있는, 하지만 어딘가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진 얼굴.
푸른색과 녹색의 비늘은 창백한 흰색이 되었다.
‘나가’종족과 같은 생김새는 보다 인간에 가까운 이목구비로 변했다.
표독스럽던 눈매는, 어딘가 울 것 같은 쳐진 눈으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분명 기억에 있던 그 녀석이 맞다.
네임드.
여왕의 직계.
독과 수중전의 달인.
“….니그미?”
아삭!
내 목소리에, 풀을 씹던 소리가 멈추었다. 하얀 뱀 인간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 움직였다.
하얀 석순이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듯한 의자 위에서, 반쯤 먹은 이파리를 든 니그미가 나와 마주했다.
쳐진 눈이 가늘어지고,
커지고,
휘둥그레졌다.
“서, 성자?”
힉, 히끅,
딸꾹!
.
.
.
.
.
.
.
.
“사, 살려줘….”
촤촤촤촤촤앙!
우드득, 뚜두두둑!
반응은 극명했다.
순식간에 창백해진 여왕의 얼굴과, 마치 그녀와 한몸인 듯 반응하는 알현실의 로드들.
누런 창날과 두터운 팔뚝이 사방을 조여오는 순간, 나는 그대로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이 모습으론 처음!!! 뵙겠습니다! 하이드입니다! 성자 아니고, 교수 아니고, 하이드! 입니다!”
목덜미에 느껴지는 예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알현실의 주의사항. 전부다 누군가를 [놀라게]하지 않기 위한것들 뿐이었지!’
뮤트는 상상하던 뮤트와 달랐고. 왕은 상상하던 왕과 달랐으며, 여왕도 상상하던 여왕과 달랐다.
….히끅!
“하이….드?”
외형을 제외하면,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겁쟁이 니그미였다.
성격도, 행동도 200년전 그대로였으며.
그녀의 비늘이 벗겨진 몸 어디에도, 보라색 여왕의 파편은 박혀있지 않았다.
그것을 수십개씩 가진 로드들이 그녀를 숭배함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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