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63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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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뮤트들을 만나고 느낀게 있는데.
“언어라면 필요해서 내가 만들었다. 로드와 그 무리 간에는 정신파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다른 로드의 무리들과는 그런 식으로 소통할 수가 없으니. 우리 여왕께선 과서의 여왕과 같은 권능이 없으시니 말이다.”
“….예?”
그건, 얘들이 대답을 할때마다 내가 바보처럼 ‘예? 예?’ 거리는 것만 반복하게 된다는 거다. 아니 뭐 하나라도 평범한 게 있어야지.
‘언어를 만들어? 직접?’
어디보자. 니그미에 대한 소문을 어디서 들었더라? 바위도시의 뉴스보이 그녀석이 지나가는 말로 했었는데. 분명히….
“니그미가 워로드를 만나고 패퇴한게 18년 전쯤이라고 했으니까, 당신이랑 니그미가 만난 것도….”
“정확히 18년 9개월 사흘 이다.”
18년.18년 9개월이라.
그러니까 이 녀석은 18년 9개월 동안 전쟁을 수행하고, 다른 무리를 합류시키고, 제국의 역사를 조사하는 동시에 종족 고유의 언어를 창안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거다.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인 것만은 아니었지. 아까 네가 말했듯이 우리 ‘가족’은 그리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뮤트라는 종족에 대한 ‘가족애’를 가지고 있는 여왕폐하의 곁에 모인 것일 뿐,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서로를 죽여 파편을 빼앗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 굳이 비유하자면, 같은 어미를 둔 아비가 다른 형제들이 서로를 여기듯 하지.”
“군주론. 제국론. 군왕 통치론 같은 책이 말하길 고유의 언어는 해당 민족의 결속을 강화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더군. 문화적 폐쇄성이 오히려 해당 민족의 구심점을 만든다던가. 여러모로 우리 뮤트 제국의 건국에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들었다.”
“허, 허어어….”
“그리 대단치 않다. 서고의 장서 중 공용어의 문법에 대한 책이 있어 그것을 그대로 차용했을 뿐이니. 공용어를 아는 이라면 우리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뮤트의 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꺼낸 말은 인류 역사상 모든 언어학자를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세상에, 난 뮤트가 자기들 고유의 언어를 쓰기에 어떤 기적적인 패러다임 같은게 일어난줄 알았는데, 여기 앞에 계신 분이 그냥 전술, 문화적으로 필요해서 열심히 만들었단다. 혼자서, 책보고, 독학으로다가.
“대, 대단하네….”
“그럴 리가. 누군가 이토록 많은 지식을 기록으로 남겨둔 덕분이지. 개인적으로 나는 인간의 기록하는 습관을 매우 존경한다. 그들은 현재를 산다 말하지만,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질 것들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 종족 전체가 죽음을 초월한 면이 있는 것이지.”
“그럼, 대법관의 서재에 있는 책을 다 읽으신 겁니까?”
“아직 다 읽진 못하였다. 이것 말고도 떨어진 건물이 많았으니. 지혜의 신전은 정말 기이하더군. 어떻게 그 작은 신전에 그만한 양의 책이 다 들어가있는지 내 짧은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덜 읽었다는 부분에서 약간의 인간미가 느껴져 안심했다가, 이어지는 말에 또 벙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방. 대법관의 서재에는 놔두고 볼 책만 놔뒀다고 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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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번 보고 만 책은 다른 방에 있다는 뜻이네?
내가 또 어버버 하고있자 카울드는 뼈 채찍 같은 꼬리를 튕겨 책더미에 파묻혀 있던 문을 잡아당겼다.
덜컹!
와르르르르르르!
무너진다. 책이.
책마다 선명하게 지혜교단의 인장이 찍힌 책들이, 빈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대법관의 저택, 응접실 옆방은 파티 홀이었다.
귀족 100명은 족히 모여서 먹고, 마시고, 춤출 자리까지 있을만큼 넓고 천장도 높은 공간이, 오직 책과 종이 묶음으로 가득 차 있었단 말이다.
“….이걸 다?”
“법. 통치. 치수. 농사. 건축. 예술. 외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국을 만들어야 했던 내게, 그 신전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아둔 보물상자 같았지. 그곳의 신관들에게 개인적으로 크게 사례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건물이 추락할 때 모두 죽고 말았더군. 신전은 내 건물째 나의 거처 옆으로 옮겼다. 그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원본은 신전안에 그대로 두었지.”
“원본은? 그럼 여기있는건….”
“사본이다. 읽으면서 옮겨적었다. 마침 언어를 공부하던 중이라 필사하는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지.”
“카울드, 아, 아니 선생님, 그…. 전하?”
복도에서 삐딱선 탄줄 알고 말 놔버렸는데, 도저히 존댓말을 참을 수가 없다.
지혜의 교단이 뭐하는 놈들인가?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는게 자기네 신앙이라며 온갖 희귀서적부터 동네 소문까지 싹 다 긁어가는 놈들이란 말이다. 교단 특산물이 더 많은 글을 담을 수 있는 ‘압축 서적’일 정도로 세상의 지식에 미쳐있는 놈들이 지혜 교단인데.
여기 눈앞에 계신 뮤트 왕님은 그만한 양을 2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죄다 독파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필사를 해서 이렇게 모셔뒀단다. 니그미의 일대기를 기록하던 카울드의 필체가 왜 그렇게 멋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엄청난 지식량.
그것을 활용해 여왕과 그 추종자에 불과한 무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다듬어 나가는 실행력.
전투력이 부족한 벨라벨 같은 낮은 계급의 동족도 차별하지 않는 인성과, 그들에게도 사랑받는 포용력.
거기에 나를 압도하던 그 무시무시한 기세, 무력까지.
‘카울드, 그는 신인가?’
처음 뮤트의 왕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그야말로 나라를 집어삼키는 괴물 같은 느낌이었다. 막 그런거 있잖아. 구워어억- 하면서 일격에 성벽을 박살내고. 군대를 견과류 퍼먹듯 입에 털어먹는 그런 괴물.
하지만 지금 눈앞에 계신 분은…. 그것의 정 반대에 위치한 인물이었다.
‘진짜 왕이군. 그것도 전쟁군주 유형도 아니야. 제대로 된 건국제 유형의 왕이다.’
그야말로 꽉 찬 육각형 스타일 캐릭터가 아닌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얘들 그냥 가만-히 어디서 자리잡고 나라 키웠으면 지금쯤 뮤트 왕국이라 불리는 나라 하나 건설하는 건 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을 블록 쌓듯 쌓아올릴 수 있는 힘 좋은 대형 뮤트도 있고.
‘이렇게 무의미한 제국 박치기로 소모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워로드의 영혼술사와 그들이 움직이는 군대에 맞설만한 세력이 됐을지도 몰라.’
니그미와 박교수는 확실한 적대관계다. 니그미가 워로드를 무서워하는 만큼 그녀에게 속한 뮤트들은 어떻게든 워로드를 제거하려 들테니. 내가 카울드와 독대를 하게 된 것도 놈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니까.
뮤트의 강점은 주변의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흡수해서 마구 생산해내는 물량에 있다. 하지만 이 땅은 황제가 뿌린 저주에 잔뜩 물들어 있고, 덕분에 여러 로드가 뿌리내린 뮤트 생산기관이 제대로 양분을 흡수할 수 없는 상황.
만약 니그미와 그녀의 뮤트들이 제국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자리잡아 평범하게 무럭무럭 성장했다면…. 어쩌면 ‘워로드 군 VS 뮤트 제국’이 4월드의 메인 전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클리어 가능한 월드가 됐을수도 있겠지.
‘시스템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렇게 진행되는 미래를 이미 봤을 것이고.’
게임 외적인 존재. 박교수, 혹은 내가 포함되지 않은 미래는 GG의 시뮬레이션에 의해 모두 드러나게 된다. 18년 전 니그미의 무리를 워로드가 습격했다는 대목에서 이미 월드가 미래를 보고 미리 개입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주변 환경, 일어나는 사건을 교묘하게 배치해서 교수놈이 니그미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졌고, 죽기 직전까지 공격당한 니그미는 지금의 유아퇴행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렸고.
“….왜 안 죽였을까.”
의아한 점은, 왜 마무리를 하지 않고 살려보냈냐는 것이다.
“안죽이다니. 누굴 말하는 것이지?”
“박- 워로드요. 그놈이 왜 니그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보냈는지가….”
빠드드득!
“아, 아아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적이 우리 여왕폐하를 살려보냈을 리가 없으니까 니그미 여왕폐하께서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힌게 아닌가, 서로 동수를 이룬게 아닌가 하는 추측중이었습니다!”
순간 이빨을 갈다못해 씹어먹는듯한 소리가 카울드의 입에서 들려와 재빨리 둘러댔다. 여왕의 죽음과 관련된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한지, 대화 내내 현자처럼 고요하던 그는 으르렁거리며 답했다.
“….여왕께선 워로드와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금하셨다. 우리가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께서도 우리를 아시지. 놈에 대해서 알면 우리가 놈을 찾아갈 것을 알고 계시는거다. 우리의 힘이 미약하여, 그분을 지키지 못하고 놈의 손에 찢겨 죽일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이겠지.”
으드득!
“하지만, 그분을 처음만났을 때 몇가지 들은 것이 있다. 악몽속에 허우적거리며 비명처럼 내뱉은 한 마디. 내가 워로드라는 놈과 여왕폐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 뿐이다.”
“뭐라고 했습니까.”
흐읍- 후우우.
“….‘너는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니었잖아.’ 악몽에서 깨어나 겁에 질린 폐하께 묻자, 그렇게 말하셨다. 바다까지 쫓아 들어와 그분의 목을 찍어내리던 도끼가, 그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그 겁에 질린 말 한마디에 비틀거리며 도망쳤다고.”
‘니그미가 의도치 않게 약점을 제대로 파고들었군.’
18년 전이면 4월드에 들어온지 몇 년 안된 시점이다. 꽤나 정신이 온전한 시점에서, 교수는 그 한마디에 자신이 저도 모르게 시스템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놀란 것이다. 제 딴에는 충분히 경계하며 스스로의 뜻으로 움직인다 여겼는데, 눈앞의 결과물은 시스템이 원하던 그 장면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놔줬겠지. 당장 시스템이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고.
‘니그미는 그때 심각한 상처를 입고 여기까지 떠내려왔다. 만약 아예 전투가 없었다면, 서대륙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됐을까? 지성이 있는 대규모 뮤트 무리가 발생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변수에따라 무수히 갈라지는 미래를 알 방법이 없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제국의 현 상황. 로드의 무리 단위로 움직여야 할 뮤트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 하며, 황제가 저주를 뿌려서 수도가 미쳐 돌아가는 것 하며. 내 예상과 달리 서대륙이 뒤집어진건 시스템이 원하던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제국 수도의 상황이 시스템의 ‘완벽한 예측’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것은 놈이 박교수의 주변 상황을 이용해 놈을 움직인다 해도, 박교수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나와 박교수. 이 4월드 전체와 비교하면 티끌만큼도 안되지만, 그 티끌만큼의 모자람이 100%를 99.999….%로 만든다.
거의 다 죽은 뮤트 하나가 악에 받쳐 외친 한마디가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뚫은 것이다.
“….이쪽으로 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딱히 워로드 군이 손대지 않아도 제 풀에 넘어가기 직전인 서제국령같은 쉬운 먹이를 내버려두고 텔드랏 지역으로 간 이유가 있었어.”
시스템은, 불안한 것이다. 모든 것을 눈아래 두고 행동하는 그녀에게 있어, 이미 예측에서 아득히 멀어진 이 서제국령이.
제 아무리 GG의 수많은 권한을 획득했다곤 해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예 월드 전체를 리셋하고 새 월드를 파면 모를까, 박교수라는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박교수의 4월드’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것이다.
18년 9개월 하고도 사흘 전, 니그미의 비명에 정신을 차린 박교수는 시스템이 예상한것과 달리 니그미를 살려보냈고, 그렇게 살아난 니그미가 나비효과가 되어 제국 전체를 시스템의 ‘완벽한’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난 땅으로 만들었다.
‘기회다. 지금의 제국, 아니 이 [니그미의 뮤트 제국]이라는 무리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난 집단이야! 시스템이 플레이어라면,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대 뮤트]를 죽이는 중요한 이벤트에서 실패했고, 그 결과로 18년 후의 미래에 서제국령 전체가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거야!’
지금껏 이곳 협곡의 뮤트 무리를 황성으로 가는 수단으로만 생각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들은 거대한 장막이다. 세계 전체를 내려다보는 신적인 존재에게 있어,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도 접근하기 꺼려지는 보이지 않는 구멍.
“카울드. 아니, 카울드님.”
“존칭은 하나로만 통일하지.”
조금 진정했는지 다시 평온해진 카울드에게 말했다.
“니그미는 우군(愚君)입니다.”
까드득!
“그녀의 말을 따르면,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될겁니다.”
“….안다. 그리고, 상관없다. 너희가 무의미한 상승곡선을 향하듯, 우리도 그녀를 따르는 것이 우리 종을 이루는 것의 전부가 된 것일 뿐.”
카울드는 분을 삼키듯 숨을 몰아쉬었다. 하긴, 입구에서 봤던 그정도 기세라면 나나 그는 몰라도 이곳 가득한 책은 충분히 상할테니까.
“죽을텐데요?”
“그리 따르다 죽는다면, 그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이루며 살아간 것 뿐이지.”
“내가 말한건 당신들이 아니라, 니그미를 말한 겁니다.”
“….멈추어라.”
“내가 멈추면, 세상이 멈춰준답니까? 그렇게 머리가 좋으면서 이걸 몰라?”
“크르으으윽!”
그들의 역린을 건드리자 확연하게 반응이 나타났다.
카앙!
발작적으로 날아드는 왕의 꼬리와 내 칼끝이 맞부딛혔다.
“우군을 모시는게 기쁨이라니 뭐, 댁 말대로 그건 그쪽 종족적인 특징이니 내 알바 아닌데.”
카각, 까드득!
“모시려면 제대로 모셔야지. 응? 지금 어린 군주께서 다 같이 절벽에 뛰어들자고 하시는데. 그걸 좋다고 따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그냥 따르는게 행복하니까 따르는건?”
“감히….”
“제국을 원한다는게 정말 지금 이런 행동을 원하고 말한걸까? 다 같이 돌격에서 저주 퍼먹으며 죽어가는 것?”
이 지혜로운 사자머리 왕이 이런 간단한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놀랍게도, 그럴 수 있었다.
‘이들은 결국 뮤테이션 블러드다. 스스로 다르다 여기지만, 결국 다르지 않아.’
왕과 대화를 나눈게 두 시간이 넘었다. 사람 보는게 장기인 하이드로서, 이 카울드라는 인격이 어떤 모양새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이들의 의식은, 구조적으로 여왕에 대해 나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어.’
나는 3월드의 뮤트도 봤고, 이 시대의 텔드랏 령의 뮤트와 서제국령의 뮤트도 봤다.
텔드랏 지역의 뮤트는 사실상 우두머리가 있는 짐승에 가깝다. 서제국령의 뮤트와 텔드랏령의 뮤트가 다른 것이라곤, 이쪽은 여왕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는 것 뿐이었다.
‘뮤트는 여왕이라는 종족의 정점을 모시는 종족이다. 지금까지는 여왕이 없었던 것 뿐이야.’
벌집의 경우, 여왕이 사라지면 일벌들중 하나가 로열젤리를 먹고 새로운 여왕이 된다.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필요한 것은 유일한 자격, 여왕에게 이어받은 ‘종족 정신’을 보유한 뮤트일 것.
그녀의 대가없는 종족적인 감정을 공유받은 카울드는 자연스레 그녀를 새로운 여왕으로, 종족의 정점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그 순간 카울드에게 세계의 중심은 새로운 여왕인 니그미가 되었다.
연회장 하나를 가득 채울만큼의 지식을 소유했지만, 니그미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갑자기 세계가 무로 돌아가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카울드를 비롯해 온갖 뮤트가 모여있지만 이들 무리의 머리는 어린아이가 된 니그미 하나 뿐이다. 아무리 카울드가 엄청난 지혜를 쌓아도, 결국 움직이는 것은 니그미의 대책없는 어린 마음일 뿐이야.’
그걸 깨야한다.
이들 종족이, 뮤트 제국이란 이름의 변수가 되기 위해서는.
“제국을 세우고 싶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자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보다 완벽한. 니그미가 원하던 것처럼 백년, 천년을 당신들의 이름으로 이어져갈 제국 말입니다.”
카울드라면. ‘니그미’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만으로도 현자에서 야수로 돌변한, 오직 그녀를 위해 도서관 몇 개 분량의 책을 독파하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제국 돌진을 감행하는 이 모순된 뮤트라면.
“원하던 것을 달성한 니그미 옆에, 행복해진 당신의 여왕 곁에 남아있고 싶지 않습니까?”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저 여왕을 위해 움직이는 행복이 아닌, 그 이상을 탐하게 하는 것.
그가 말한 ‘뮤트라는 종의 이상’에 인간의 색을 물들이는 것.
후욱, 후욱….
흥분한 카울드의 숨소리가 잦아들고, 목을 찌른 꼬리 끝에서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었다.
왕은 아무 대답도 없이 돌아섰지만,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들은 뒤였다.
“거보쇼. 기왕이면 사는게 좋잖아.”
카울드의 눈은, 충격적일 만큼 순수한 탐욕이 한가득 일렁이고 있었다.
살고싶어졌다.
그러니, 워로드와 맞서게 될 것이다.
놈인 지금의 4월드에서 살아있는 죽음과 같은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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