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69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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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란,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내 공격을 상대에게 맞추는 행위다.
부와아악-!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메이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내 몸의 어디를 노리는지 관찰해야 하며. 휘둘러지는 무기가 잔상을 남기는 수준의 전투에 이렀다면 관찰은 무기가 아닌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게된다.
쩌어엉!
“어지간히…. 형편없어지셨군.”
앞서 으스러진 다른 기사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만신창이가 된 프라우크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아야 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단단한 판석 바닥을 찍어 산탄처럼 쏘아낼 정도의 힘으로 고장난 인형처럼 부서져가는 몸을 휘두르는 모습이라거나.
우그러진 갑옷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라거나,
그럼에도 알아 들을 수 없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메이스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라거나.
‘전처럼 힘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한다.’
사용인 도시에서 그와 함께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저주받은 기사의 몸 위에 드러난 작은 꽃 세송이를, 거의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에서 휘둘러 박살내던 그 삼연격은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인간의 몸이란 단련을 통해 그 정도까지 통제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지금은 달랐다. 전력으로 휘둘러지던 메이스의 궤도를 직각으로 세 번 꺾어내던 정교한 힘은 모조리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쏟아지고 있었다.
콰아앙!
후두두둑!
또 한번의 공격이 빗나가고, 충격파에 비틀거리는 내 몸위에 으스러진 살조각 같은 것이 마구 흩뿌려졌다.
‘쓰러지기 직전의 몸이다.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거야…!’
이미 미쳐버린 그를 위해 굳이 제압용 싸구려 폭탄을 꺼내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짐을 덜기 위해서였다.
투두둑!
둥글둥글한 마공학 폭탄이 내 발치에 떨어졌다.
‘신전 지하는 비좁은 계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어.’
신전을 떠나서부터 지금까지 18시간 정도 됐다.
프라우크가 18시간동안 줄지어 들어오는 황제군을 상대할 수 있었다면, 살아남은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상대의 수가 어떻든 계단에서 마주한 한 명만 상대하면 됐을테니까.
후웅-!
잠시 손을 비운 틈을 타 프라우크의 건틀릿이 내 인중을 향해 날아들었다.
‘니그미의 군단이 움직이자 성하도시의 모든 병력이 협곡을 향했다고 했지.’
황제가 뮤트의 뒤를 치기 위해 명령했을 것이다. 내가 협곡의 어둠으로 다시 발을 들인 그때, 프라우크는 지친 몸으로 신전에서 물러가는 황제군을 마주했을 것이다.
콰직!
쳐낸 건틀릿 안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그 대신 훤히 열린 내 몸을 향해 성기사의 메이스가 휘둘러졌다.
‘그리고, 프라우크는 황성을 향했다.’
갑자기 끝나버린 전투.
제 손으로 으스러뜨린 성도와 형제들 사이에 홀로 남은 자신.
의무를 다하고 삶을 포기한 프라우크가 그 고요한 참상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남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부우우웅-!
메이스가 휘둘러진다. 내가 있던 자리, 폭탄을 떨어트려놓은 곳으로.
말도 안되는 가정이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내가 뮤트군을 움직인 덕분이며, 그게 아니라도 그와 함께 신전 지하에 남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니까.
하지만, 내 머릿속에 ‘나는 살아서 계획을 완성해야해’ 라는 이기적인 생각 또한 있었음을, 내가 알았다.
여기서 그를 죽이는 것이 내가 짊어져야할 또다른 선택에 대한 결과라면 도피하고 싶었다.
그냥, 이 비극에 휘말린 성기사가 살아만 있어줬으면. 싸구려 마력 폭탄이 그를 지쳐 쓰러질 정도로만 상하게 했으면.
까작.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기분이다. 메이스에 짓눌린 마도구가 찌그러지고, 그 사이로 마력광이 세어나왔다. 가난한 패스파인더가 즐겨쓰는 싸구려 답지않게 짙은 마력광이.
‘…내가, 폭탄을 몇 개 준비해왔지?’
찌그러져가는 마도구의 형태가 익숙한 듯 낯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뿜어져 나온 빛이 숨막히는 열기가 되어 성기사를 덮쳤다. 충격과 함께 오래된 기억이 덮쳐왔다.
‘딱딱딱딱’
외딴 섬의 절벽위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금속조각을 만지작거리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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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수 있어. 나가야 해. 나갈거야!’
‘남서쪽 갈매기 바위에서 수평선을 지나는 대륙선을 봤어. 거, 거기까지 갈 수만 있으면, 이 섬을….’
‘배를 나포해야겠지. 다소 무력을 써야 할 거야.’
‘그, 그래! 혼자 세상을 떠도는건 위험하니, 내 몸을 지킬 수단 정도는 갖춰야겠지!’
‘바닷속보다 더 많은 괴물이 있을지도 몰라. 그보다 더 괴물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더 많은,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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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갇혀 미쳐가던 마도공학자에게 매달리고 의지할 것이라곤 기약없는 미래에 대한 준비 뿐이었다.
산더미 같은 마력 폭발물과 온갖 도구를 쌓아가던 그는, 2년 만에 수평선 너머로 배의 그림자가 보이는 순간 그의 모든 작업물과 함께 바다로 나섰으며.
그의 노력은 파도에 휩쓸린 작은 어선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바다는, 작은 배 위에 실린 그의 몸과 희망을 그를 기다리는 이에게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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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망토?’
‘예. 아틀라헤바님이 드리라고 하던데요.’
‘어…. 나 마법같은 거 쓸 줄 모르는데.’
‘몰라도 됩니다. 대충 집어넣으면 들어가고, 꺼낼때는 안에 있는 물건을 떠올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돼요. 하이드가 잃어버린 물건은 다 그 안에 넣어뒀으니까, 기억나면 꺼내서 쓰세요.’
‘나 잃어버린 거 없는데.’
‘그런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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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떠올리며 꺼낸다.’
‘아공간은 사용자가 인식한 물건만 꺼낼 수 있다.’
‘인식. 기억.’
이럴 수가.
하필 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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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이-
“윽, 으윽.”
충격에 아주 잠깐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눈을 떠도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이명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말라붙은 눈을 억지로 깜빡이자 황성 앞을 가득 채웠던 으깬 살덩이와 사체들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 보였다. 아마 나처럼, 충격에 휘말려 여기저기 처박혔겠지.
“끄륵, 끄르륵….”
프라우크는 내 반대쪽 건물더미에 처박혀있었다.
….내가 잘못 본줄 알았다.
“섬에 있을 때 난, 도대체 뭘 만든거야….”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섬의 철광석, 육지보다 바다에 더 풍부하게 매장된 질 좋은 마정석과 갈매기 똥, 질산염, 연쇄반응, 폭발물 만드는 법을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메탈조와 그것을 흘려듣는 교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전신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박살난 모습. 특히, 폭심지와 가까웠던 팔과 상완은 겉에 있던 것을 대부분 발라낸 수준으로 상해있었다.
메이스에 스친 갈비뼈가 욱씬거렸다. 부러졌나?
‘살 수 없다.’
프라우크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길이 뚫렸어.’
나도 모르게 뻥 뚫린 황성으로 향하는 길을 눈에 담았다. 좋은 일이다. 예상보다 더 빨라.
“프라우크.”
“자비, 여….”
몸이 반쯤 날아간 그에게 다가가는 지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나의 면피를 위해 묻는 것 뿐.
“왜…. 그런거냐.”
“쿨럭!….신전을 나와, 황성으로 향하던 길에 다른 사람을 만났다. 나와 같은 곳으로…. 향하는.”
프라우크의 목소리는 죽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명료했다. 가슴 안쪽이 반쯤 밖으로 드러난 사람이 저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건가.
“황제를 구출하려…. 했다. 기사들은.”
“….그것 뿐?”
“그것 뿐이다.”
“고작 그것으로, 저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빠져나가는 피와 함께 충혈된 눈도 원래의 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프라우크는 하나 남은 팔로 목을 더듬어 자비의 성표를 손에 쥐었다. 성기사의 입에서 피가래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 고작 그것으로.”
“평생을 헌신해온 내가, 고작 그것으로.”
붉었던 눈이 맑아지고, 흐려진다.
생기를 잃어가는 눈이 나를 마주했다.
“자비의 여신께서 말씀하시길, 인간은 닳는다.”
“주교도.”
“사제도.”
“성기사도.”
“나도, 그리고 너도.”
“인간의 마음은 닳는다. 나쁜 기억은, 끝없이 쌓인다.”
아마, 과묵한 그의 성격상 평생 마음속에 담아왔을 그 말들은, 가슴이 열리고 나서야 세상으로 쏟아져나왔다.
외진 산골마을에서 목숨을 걸고 몬스터 무리를 막았을 때, 그들이 감사하긴 커녕 울타리를 부쉈다고 성냈을 때의 억울함.
그들의 친절이 무상이기에 한없이 이용하려 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오직 베푸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기에. 한없이 원하는 이에게 한없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
그러한 오물과 같은 감정을 모두 그러안고 견디는 자는 보다 높은 자비의 신성력을 허락받지만.
버티지 못하고 끝내 가진 ‘자비’가 모두 닳아 없어진 자는 세상이 ‘무자비’라 표현하는 성도가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여신께선 그것을 이해하신다. 무자비에게 허락된 강력한 힘은 평생 타인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성도를 위한 보상이니. 마음과 함께 닳아 없어져 얼마 남지 않은 수명동안, 다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말고 생에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데로 살다 가라는 여신의 마지막 전송이 그것이다.”
무자비의 기사.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며, 목표를 위해 정도 이상의 폭력을 불사하는 난폭한 무력집단.
자비의 교단은 성기사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하는 이들을 계도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이들이 일으키는 금전적 손해를 보상하고, 외교적 문제를 무마하며, 교칙을 어기고 교단의 뜻을 따르지도 않는 이들에게 ‘무자비의 기사단’ 이라 이름을 붙여 교단의 품안에 보호하려 노력했다.
이들의 활동은 대부분 개인이 일으킨 사소한 문제로 기록되었을뿐, 기사단이라는 이름과 달리 단체로 행동한 적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성녀의 실종과 같이 그들 모두의 자비가 동시에 모두 닳아 없어질 만큼의 비극을 마주했을 때 뿐.
“….황제가 미웠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써버린 프라우크는, 그저 황제가 미웠다.
황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하는데 그의 남은 전부를 바친 것 뿐이었다.
쿨럭, 쿨러억! 끄르륵!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신성력마저 다했는지, 프라우크는 쉴 새 없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이 어찌나 편협한 인간인가. 오직 명예와 충성심으로 이곳까지 찾아와 갖은 시련과 노고를 버틴 끝에 겨우 기회를 잡은 기사들을, 고작 ‘황제 폐하’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하게 도살하다니.”
쿨럭, 쿨럭!
“그야말로 광인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황제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참을 수가, 참을 수가 없구나….”
자조어린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전히 황성을 향해 증오를 불태우는 성기사.
차르륵.
“….본디 이렇게 되기 전에 반납해야 하나, 받아줄 이가 없었다.”
“가져가다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성표를 내게 쥐어주었다.
“하이드. 나는 네게서 자비의 성도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
“….”
“너 또한 닳는다. 네가 지나왔다 여긴 고통은, 네 등뒤에 쌓여 무너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난…. 괜찮아.”
“내 눈을 보고 말하라.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입을 연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른 무언가가 한없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정확히는, 그와 비슷하게 한없이 닳아버린 누군가가 떠올라서 목이 매었다.
“스스로를 살펴라, 하이드.”
성기사의 말라붙은 입이 쓰게 웃었다.
“형제여.”
“….”
“자비를.”
그 말에, 말없이 그의 옆에 꿇어앉은 무릎을 들어올렸다.
주변에 그을리고 널브러진 것들 중에서 프라우크의 투구를 찾았다.
옷소매로 그을음을 닦아내니 그럭저럭 매끈한 빛을 내었다. 엉망이 된 성기사의 얼굴에 씌우니 지금보단 그에게 훨씬 잘 어울렸다.
푸욱.
아마, 이 행위가 프라우크에게서 앗아간 시간은 얼마 안될 것이다. 30초, 길면 1분.
“….속이 좀 풀립니까.”
하지만. 고작 1분일지라도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의 모습을 죄스러워하던 프라우크에겐, 그러한 죽음이 스스로에 대한 단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후두둑.
탁탁.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제자리에서 몸을 풀었다.
약간 욱씬거리는 갈비뼈.
폭발의 충격에 저릿한 몸.
그것을 제외하면, 만전에 가까운 몸.
“….덕분에 쉽게 와서 해주는 거야.”
성기사의 말대로라면, 그의 수명을 고작 1분 줄인 것으로 내 자신이 크게 닳아버렸을테니까.
받은 만큼 준 것 뿐이라 생각하며 끔찍하게 무거운 칼을 들어올렸다.
몸에 엉겨붙은 핏덩이를 털어낸 다음 머리 위로 한없이 치솟은 황성의 성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스터 나이트를 데려와도 한 시간은 썰어야 한다는 성문, 온갖 고대 주술과 상징, 방어마법이 겹쳐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성벽, 그것을 지독할 정도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뒤덮은 보랏빛 저주받은 꽃.
하나같이 그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었지만, 내 시선은 그보다 한참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타닥, 타닥….
참상이 벌어진 성문앞에, 누군가 한가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불을 쬐고 있었다.
전신을 가린 두터운 검은 로브.
가려졌지만,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얼굴.
“이제야 왔나?”
여유롭기 짝이 없는 그 목소리에, 나는 그 앞의 모닥불을 걷어차는 것으로 대답했다. 튀어오른 불똥은 그의 로브와 몸을 통과해 뒤편에 뿌려졌다.
다리크.
협곡에 들어서며 모습을 감춘 흑마법사가, 성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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