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72
Chapter. 21. 어나더 솔로 플레이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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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경계로 바깥과 안이 완전히 다른 공간.
보랏빛 안개 사이로 거짓말처럼 나타난 거목은 황성 내부의 모든 구조물을 제 가지와 뿌리로 휘감고 있었다.
“황성은….황제가 상상하는 제국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지.”
교수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그는 텅 비어버린 넓은 알현실에서 홀로 왕좌에 앉아있는 늙은 황제와 만났다.
루실라와 이드라실은 아예 통나무집과 오래된 건물이 가득한 이상한 마을을 헤매었다.
옛 황제 시오드 4세는 홀로 남은 외로운 왕좌에 그의 몸을 두었고, 과거 기사들과 제국을 종횡하던 시절의 막사에 황가를 상징하는 검 라이오넬을 두었다. 그에게 제국은 황제 홀로 다스리는 곳이고, 동시에 젊은 시절의 투쟁이 여전히 멈추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황성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목이라….”
황성 안을 가득 채운 것은 가이낙스가 바꾼 제국의 상징과 매우 유사한 한 그루의 거목이었다.
철퍽!
“….미친.”
바닥은, 예의 숨 쉬는 살덩이들로 두텁게 뒤덮여 토양을 이루었다.
푹! 푸욱!
“크후욱-!”
“….푸후, 후우-”
거대한 말뚝 같은 뿌리가 거미 다리처럼 살아 움직이며 살더미를 쑤실 때마다 피와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튀어올랐으며.
[충….성을…] [오롯이 위대….하신 폐하께….] [맹세에 따라, 모든 것을….]제 기반을 고문하는 뿌리 위로 칼과 갑옷, 그 주인으로 이루어진 은색의 굵은 나무줄기가 이곳에 가득한 불길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뿌리는 시민. 줄기는 기사. 그렇다면 그 위는…. 아마도 이번 황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
천천히 그 역겨운 광경에서 시선을 들어올리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아래의 아비규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외형만큼은 아름다운 저주화가 만개한 가지와 금방이라도 선선한 공기에 흩날릴 듯 생기 넘치는 굵고 풍성한 가지.
기이한 보랏빛 과실이 가득 열린 아름다운 가지 사이에 잠든 듯 파묻혀있는 노인이 있었다.
‘황제다.’
수도에서 만난 모든 역겨운 것들의 주범. 황제가 거기에 있었다.
퀭한 눈, 부러질 것 같은 팔에 말라붙다 못해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에, 왕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얇은 목.
“네놈…. 이로군. 짐의 원대한 책무에 파고들어 소란을 놓은 것이….”
뿌드득, 뿌득!
황제의 몸을 감싼 잔뿌리가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잠에서 깬 듯한 황제는 숨을 쉴 때마다 짙은 보랏빛 안개를 토해내고 있었다.
“예를 갖추라…. 명하진 않겠다. 죄인이 스스로 짐의 앞에 나선 시점에서, 천한 야만이 가진 눈꼽 만큼의 예를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지극히 오만하고, 자신 외의 모든 것을 천하게 여기는 성격.
“이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발틴 제국인가? 황제?”
“어느 정도는…. 그렇지.”
“보아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합일인가…. 실로 제국이 하나가 된 모습이 아니더냐? 백성은 양분이 되어 기사 계급을 키우고…. 기사 계급은 보다 높은 군주를 위해 휘둘러지며…. 그 끝에 빛나는 과실을 맺는 모습이, 참으로 참으로…. 참된 제국이로다. 과거의 제국이 그랬듯이.”
황제는 자신이 만들어낸 역겨운 결과물이 참을 수 없이 자랑스럽다는 듯 앙상한 두 팔을 벌려보였다.
“너희 무지렁이들은 모르리라. 드넓은 제국이 얼마나 갈라지고 흩어졌는지는, 나와 같이 드높은 자의 시선으로 내려봐야만 보이니.”
“누대에 걸쳐 충성해온 가문이 스스로 제국을 떠나고, 양민은 천박한 돈 몇 푼에 주제를 모르고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며, 귀족은 감히 혀끝에 ‘의견’이란 이름의 불경으로 황제의 뜻과 나란히 서고자하니. 이 시대가 쪼개어 놓은 것은 필경 땅덩어리 뿐만은 아님이라.”
“역겨운 벌레들에게 제국의 수도가 짓밟힌 순간 짐은 깨달았노라.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꽈아악!
발끝을 조여오는 느낌에 재빨리 몸을 날려 벽에 붙었다.
“이건….”
무언가 나를 붙잡은 게 아니다. 나무 뿌리가 살아있는 토양의 피를 마구 빨아들여 말라붙은 살더미가 그 사이에 빠져있는 내 다리를 조여온 것 뿐.
‘가드가 풀렸어.’
제 말에 도취된 황제의 목소리가 고조되어감에 따라 피를 머금은 거목또한 한껏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회다.’
저주라는게 그 주체를 죽인다고 해서 해주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잠깐 망설였으나, 망설이다 실패하느니 달려드는 것이 백배는 나았다.
단단하게 감겨있던 가지와 줄기가 황제의 감정을 대변하듯 마구 날뛰고 있었다. 칼과 방패에 뒤덮인 줄기가 성 내부를 갈아댔지만 황제를 감싼 벽은 사라졌다.
적은 마법사, 그것도 일반적인 마법에 비해 촉매와 의식 등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한 흑마법사. 시간을 주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 틈이 생긴 지금이 가장 유리한 기회였다.
“당연한 권리다! 짐이 온당히 누려야 할 제국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너희 찬탈자들이 짐의 눈앞에 나타나기 전부터, 제국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이 분열하고 있었으니! 더 늦기 전에…. 단단히 하나로 뭉쳐야 한다! 오롯이 제국으로-”
뿌드득-
“나의 제국으로-!!”
투화악!
급작스럽게 돌변한 황제의 태도와 함께 칼과 갑옷으로 뒤덮인 거목의 줄기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130보 거리. 점프로 뛰어오를 수 없는 높이.’
차갑게 가라앉은 뇌가 상대와 나의 거리, 고저를 계산한다. 방해를 뚫고 접근하는 것은 어렵고, 사방이 적의 신체인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적과 나의 전투력. 질량. 유지력. 모두 이쪽이 뒤진다.’
맞으면 죽는다. 막아도 으스러지거나 쓰레기처럼 튕겨져 나갈 뿐이다.
무수한 파공성과 흩어지는 안개속에, 바늘구멍처럼 찰나에 드러나는 황제의 모습. 그 모든 것을 사진처럼 뇌리에 담아 늘어놓고 그 위로 나의 모습을 그려넣는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저기에 닿을 수 있을까.
‘….다섯.’
‘다섯 번만.’
적을 살피고, 길을 살피고, 무수한 갈림길 속에 깃발을 세운 다음, 몸을 날렸다.
타닷!
카각! 까앙!
신전 기둥만한 나무줄기 수백이 휘몰아치며 만들어낸 장막이 나를 맞이했다.
‘하나. 내가 가진 유일한 이점.’
촤좌작!
정직하게. 하얗게 일렁이는 오러로 첫 번째 나무 줄기를 깎아내듯 쳐낸다.
투우웅-!
‘튕겨나간다.’
압도적인 질량의 공격을 막아낸 대가로 몸이 뒤를 향해 튕겨나간다.
그 순간, 왼쪽으로 쳐낸 줄기에서 무수한 팔들이 검을 휘둘러 좌반신 전체를 노려온다.
‘둘.’
쐐애애액!
땅을 박차자마자 발끝에 칼날이 스친다. 가까스로 유지하며 밀려나던 몸의 중심을 옮긴 대가로 공격을 피해낸다.
피했지만, 내 몸은 이제 공중에 떠 있다.
세 줄기의 칼날 덩어리가 황성 벽을 갈아버리며 나를 향해 찔러들어온다.
….짤칵
‘셋, 넷. 이동과 위치 선정.’
폭탄을 활성화시켜 등 뒤로 흘리고, 이를 악 문다.
만신창이라곤 하지만 무자비의 기사를 일격에 보내버린 혼합폭탄.
콰앙!
성인 남자 한명을 날려버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드래곤이 만들어준 넝마같은 망토가 흠집하나 없이 충격만 전해준 덕분에,
“커헉! ….커, 흐으-!”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을 온 몸으로 맛볼 수 있었지만.
콱! 콰과곽!
덕분에 내 몸을 꿰뚫었을 줄기들이 허공을 갈랐다. 피를 뿌리며 날려간 몸은말라붙은 살더미위로 형편없이 나뒹굴었지만, 원하던 자리에 도착했다.
코에서 뭐가 흐른다. 피구나.
앞도 잘 안보여.
‘바닥. 바닥. 바닥에, 이리로 튕겨나왔으면, 분명히 이쪽에….’
칼날, 아니야. 뼈. 갑옷조각, 뼈, 아니다.
몇 초가 지났지? 0.5초? 1초? 뻗은 줄기가 회수 될 때까지 앞으로 여유가 얼마나 있지?
갑옷. 뼈. 뼈. 방패-
‘방패!’
덥썩!
혈관과 잔뿌리 같은 것에 뒤덮인 두터운 타워실드가 손에 닿은 순간, 폭발로 멍해진 머리를 억지로 깨우며 그것을 들어올렸다.
첫 공격을 막아낼 때 오러로 잘라낸, 나무 줄기에 붙어있던 기사 방패다.
첫 공격은 나를 뒤쪽으로 날려보냈고, 그 덕에 두 번째 공격은 황제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뻗어나왔으며, 나는 폭발의 충격으로 나무 줄기를 뛰어넘어 앞으로 몸을 날렸다.
거목, 나, 이미 뻗은 나무줄기 순으로 나열된 위치. 방패를 들어올린 나를 향해 내 뒤에 뻗어있던 줄기가 돌아온다. 비스듬히 아래를 찍어내리듯 다가오는 공격.
쾅! 쾅! 콰앙!
뿌려둔 폭탄이 정확히 연달아 터지며 충돌 직전의 나무줄기를 살짝 들어올리고-
떠어어엉-!
“으극, 그그으윽! 다-서어엇!”
방패를 비스듬히 올려치며, 위를 향해 날려보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말이 안되는 기예. 완벽에 가까운 계산과 찰나를 사진처럼 기억하는 눈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
우득, 우드득!
‘죽을, 것, 같…..으으으윽!’
비록 방패와 오러로 보호했을지언정 정통으로 얻어맞은 덕에 방패를 든 팔의 뼈가 완전히 조각나고 말았지만,
‘오른팔 하나면…. 싸게 줬다!’
다 부서진 탄환처럼 날아가는 몸은, 줄기를 다 뻗어 훤히 드러난 황좌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쐐애애액-!
30걸음. 바싹 마른 황제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인다.
20걸음. 피를 가득 머금은 저주화가 흘리는 핏방울이 비처럼 나무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10. 황제의 가느다란 팔이 커다란 수정을 들어올린다.
5. 축 늘어진 오른팔이 방패를 붙잡지 못하고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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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으으읍!”
한 걸음. 서로 숨결이 마주 닿을 거리.
검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쥐고,
“….어찌 이다지-”
촤아아악!
날아간 속도와 합쳐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옆구리부터 어깨까지 양단해버렸다.
쿵!
털푸덕!
사선으로 양단된 황제의 몸과 만신창이가 된 기사의 몸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위를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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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만개한 저주화에서 떨어진 핏방울들이 밀폐된 황성 안을 피비린내 나는 빗소리로 가득 채웠다.
“허억, 허억, 허억!”
참았던 숨을 쉴 때마다 그 비릿한 맛과 역겨운 단냄새가 코와 목구멍을 태우며 밀고 들어왔다.
거목은 움직임을 멈추었고, 황제는 두 동강 났으며, 나는 만신창이긴 하지만 여전히 서 있었다.
‘….왜, 왜 끝나지 않지?’
황제는 죽었다. 내 발밑에 뭔가 말하려던 모습 그대로 잘려나간 몸통이 나뒹굴고 있어며, 나무에 뿌리내린 하반신은 힘을 잃고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뜨득, 드드득-
불길한 소리는 멈춰있던 나뭇가지가 다시 움직이는 소리였다.
“….어찌 이다지도 어리석은, 어리석-그극, 천하안-끄그극!”
잘려 떨어진 황제의 몸이 마구 경련하더니 무수한 나뭇가지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제기랄!”
콰악!
놈이 완전히 뒤덮히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베었지만 황제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이—- 처언하아아안- 놈이이이이!!! 제구극,끅,그극-의 하늘에, 한낱 쇠꼬챙이이익,긱-기이익!!』
‘….타격이 없진 않아.’
뭔가, 둑이 터진 것 같은 느낌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극, 제, 제구우욱-은! 역사다! 750년가아아안!!! 누대에 걸쳐어어 이어진- 숭배!!! 응당 내가 받았어야 할 것이 아니더냐아아아!!!』
『부족-해에에! 고작 벌레 무리이이이- 따위도 막지 못하는 반푼이 제국이 아니야아아악! 부족하다! 내 손에 쥐어 졌어야 할 당연한 보상! 나의 것! 나의 당연한 권리가아아-! 부족해에에!!!』
쿵- 쿵- 쿵- 쿵-
나무로 된 고치 안에서 무언가 거세게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오러가 나무 고치를 벗겨내는 동안 들이받는 소리는 찐득한 액체가 섞인 소리로 변해갔다.
촤아악!
이윽고, 겹겹이 쌓인 고치를 전부 베어냈을 때는.
상체만 남은 시오드 8세가, 손에 든 무언가를 들이받아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순간이었다.
스륵, 사삭!
“아, 아아….”
발밑에서 올라온 가지가 그의 품안에 있던 커다란 덩어리를 순식간에 낚아채 나무 안으로 끌어들였다.
“지켜야 해…. 제에국…. 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제에구욱….”
퍽. 퍽. 퍽.
갈라진 머리로 그것이 사라진 부분을 두드리는 모습은. 마치 허공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하는 모습과 같았다.
그 귀기어린 모습과 함께 떠오른 생각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형도…. 동생도…. 아버지도 숙부님도 다 죽였어…. 의무, 황제의 의무를, 제국을 지켜어어….”
툭. 툭….
“황제의 의무….”
툭.
“제왕은…. 다스리는 자아아…. 모든 것을 휘둘러…. 가장 영광된…. 내게 온당한…. 제국으로!”
순간, 우연일까.
완전히 이성을 잃은 황제의 눈이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퍼석!
그리고, 나뭇가지에 들이받은 그의 머리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허물어지는 그의 작은 몸과, 경련하는 거목.
커다란 무언가가 사라진 자리에 황제의 피로 떠오르는 글귀.
[제국은 스스로의 역사(歷史)로 역사(役事)한다.]역사로 역사한다. 과거를 통해 스스로 쌓아올린다.
‘완성됐다.’
어떤 종류의 저주인지는 모르나, 이 순간 황제가 그토록 수도의 모든 것을 쥐어짜 만들어낸 저주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국의 가장 높은 고위 귀족.
충성스러운 기사.
몇 세대에 걸쳐 제국민으로 살아온 시민.
그리고, 황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완성된 주문.
‘메아 마리아가 만들어낸 저주화는 뿌리내리고, 확산하며, 그 자리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생기를 빨아들인다.’
‘빨아들인 생기는 시전자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는데 사용된다.’
‘….다소 뒤틀린 방식으로.’
저주가 마리아를 타락시켰는지, 마리아가 타락했기에 그런 저주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메아 마리아는 하나라도 더 많은 버림받은 영혼을 구하고자 했기에, 저주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모든 영혼을 죽여 타락한 망자로 만들었다.
‘제국을 자기 손아귀에 완전히 넣고 싶은게 아니었어.’
‘그렇게 해서라도, 양대 제국전쟁때부터 계속 흩어져가던 제국의 결속을 다잡고 싶었을 뿐.’
자색 꽃이 만들어낸 저주가 그런식이라면, 황제의 염원은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솨아아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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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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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가지에서 내리던 핏방울의 비가 멈췄다.
툭. 투둑. 툭.
그 사이로, 잘 익은 열매가 떨어지듯 묵직한 무언가가 연달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뿌리. 줄기. 가지. 그리고 열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황제가 제국을 그 상징처럼 나무로 여겼다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칼을 휘둘러 빽빽한 나뭇가지를 쳐내자 아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황성에 들어왔을 때 지나치듯이 봤던 보라색 열매.
가까이서 본 그것은 열매 같은 것이 아니었다.
투둑, 투두둑!
그저, 보랏빛 저주를 가득 머금은 채, 나뭇가지에 목매달려 있던 사체들일 뿐.
“이, 이런 정신 나간 자식이….!”
떨어지던 사체들 중,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돌아버린 황제의 마지막 말의 의미.
[모든 것을 휘둘러…. 내게 온당한 제국으로.]세월과 함께 무너져간 그의 제국이 아닌,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제국으로.
제국은 그 역사가 역사하듯, 그 과거가 미래를 쌓아 올리기에.
그토록 바라고 동경하던, 과거의 위대한 제국을.
이 순간,
이 자리에.
쿠웅-
마지막까지 매달려있던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끝으로 거목은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급격히 시들어갔다.
열 둘. 수도 전체에서 3년에 걸쳐 흡수한 생명력을 전부 모아 나눠가진 열 두구의 사체.
반쯤 썩거나 뼈가 드러난 그들의 모습과 달리 그들이 걸친 물건은 하나같이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한때 제국에서 가장 위세 높은 가문의 문장이 박힌 갑옷을 짊어진 자.
제국의 무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검가의 인장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단 세명만 받은 아홉 검 조각 인장을 목에 걸고 있는 자.
가장 천한 자에서 가장 귀한 이를 모시는 자로, 처형인에서 기사로 거듭난 대형 도끼를 휘두르는자.
유령마를 타고 왕관을 쓴 자, 두 뼘은 넘는 책을 든 자, 혹은 검게 타오르는 불꽃을 전신에 휘감은 자.
그리고.
철컥.
한때 사자머리 장식이 있었으나, 오래전 누군가를 위해 사자머리 장식만 떼어낸 거검. 황가의 역사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검을 든, 누군가.
“….가이낙스.”
다시 만날 계획이 없었던 친구가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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