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77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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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열차를 타고 세상을 떠돌다 보니, 죽을 날이 정해진 사람을 만날 일도 꽤 많았다.
뭐, 대표적으로 말로에 가까워진 샤드나이트가 있고. 혹은 큰 돈을 빌렸다가 갚을 수 없게 되어 내장의 절반 가까이가 저당에 잡힌 노동자라거나, 마정석 광산에서 일하다가 비정제 마력에 중독된 사람이라거나, 사소한 원한으로 4000 실링 정도의 싸구려 암살 의뢰가 단골 식당 간판에 떡하니 붙어있는걸 보게된 사람이라거나.
아무튼 그런 사람들을 봤을 때, 죽음을 직감한 그들의 행동은 신분과 나이를 불문하고 대부분 비슷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유로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는 그런 식이었단 말이다.
물론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처 못다한 말들을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한이 쌓인 상대를 찾아가 정말 부담없이 ‘너 죽고 나 죽자!’를 시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당시의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평생 뭔가를 쫓아온 사람으로서 시간 제한이 생기면 더 악착같이, 시간이 다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뭔가 이루고 죽을 생각을 하지 쓸데없이 뒤에 남겨질 것들을 신경쓴다는게 좀 이해가 안갔거든.
“아~ 날씨 좋다.”
죽을 자리에 제 발로 찾아가는 지금은 이해가 됐다.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은데.”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속세의 굴례에서 벗어났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머리가 비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각하던 것과 달리 마음에 여유가 아주 그득해졌다, 이 말이다.
‘마음에 부담이 하나도 없어.’
어려서는 정체모를 무언가를 찾겠다고 정신병자처럼 방황하고, 기억을 되찾고나선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대비하겠다고 전전긍긍왕왕끙끙거리면서 머리를 싸매고 숨돌릴 틈 없이 살았는데, 드디어.
교수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지 220년 만에, 그 모든 불확실성과 불안감에서 해방됐다는 것.
최선의 준비와 함께 확실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나의 정신은 열반에 들어선 수도승처럼 맑고 평온하다는 뜻이 되며.
그것은,
퍼엉-!
푸슈우웅-
『하하하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뮤트로그악!』
까앙!
『뮤…트로서, 이곳 윈드홀 요새도시에 사소한 볼일이 있어-』
뻐어억!
『있어서….』
“쏴라! 포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쏴라!”
“바람의 고향에 괴물이 접근하게 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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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몸에 팔 토시(망토) 하나라는 간디도 울고 갈 비무장 비폭력주의적인 나체의 하이드에게 대(對) 뮤트용 성벽포를 마구 쏴갈기는 저 악독한 인간들의 행태를, 어느정도 참아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그득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맨몸이 피처럼 검붉은 피부에 근육이 우락부락한 괴물의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서 멀리서 소리도 지르고 내가 먼저 말도 걸고 했잖아? 평화적인 제스쳐를 위해 두 손을 높이 들고 걸어서 다가갔다고.
‘나는 다르다. 나는 박교수와 달라! 내 오러가 그것을 증명한다!’
쾅쾅쾅쾅꽈릉서걱쾅쾅!
『잠,푸억! 잠까-으각! 꺽! 마, 말을 좀-!』
‘나, 나는 다르다! 좋은 기억밖에 없는 윈드홀을 그때 그놈이 토브룬에 한 것처럼 할 수는-’
“몸을 재생하는 타입이다! 쉬지 말고 쏴라! 공격에 신경쓰지 못하게 해!”
“자폭이다! 기를 쓰고 다가오는 것을 보니 성벽에 붙어서 자폭할 생각이다!”
“벼락을 쓸 수 있는 자는 벼락을! 폭풍의 언덕의 바람 한 올도 저 짐승들에게 내어주지 마시오!”
‘테러 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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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
아아, 나의 친구, 나의 선배, 나의 아버지 박교수여. 오늘도 한 수 배웁니다.
나름 박교수와 일전을 앞두고 있으니, 예행연습 겸 그놈과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투둑.
마력 포격에 맞아 날아간 턱과 함께 나의 부처와 같은 인내심도 바닥나고 말았다.
기억속의 광명께서 말씀하사, 누군가를 도둑이라 부르면 도둑이 될 것이고, 성자라 부르면 그는 성자가 될 것이니.
….촤라라락!
“아아. 폭발에 휘말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란, 좋구나.”
너희가 나를 ‘초재생형 자폭 뮤트라’ 부른다면, 그는 그리 될 것이니라.
망토주머니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그것을 품에 안은 뮤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좋아. 평화롭고 신사적인 뮤트-하이드는 방금 저- 앞에서 포격에 맞아 죽었다 치자구.
흠흠, 옛날에 걔가 어떻게 했더라. 크흠, 아. 아아-, 크하, 크하아-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악!!!』
“온다!”
“놈이 본성을 드러냈다!”
“기사단은 성문으로! 전면전을 대비하시오!!!”
제법 괴물다운 포효와 함께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자, 자신만만하던 성벽 위 사람들의 얼굴이 공포에 물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아, 세상 즐거워라.
그런데 어쩌지. 이렇게 겁에 질려서 정말 저쪽이 밀려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데.
잠시 이곳에 온 원래 목적을 상기한 나는 우왕좌왕하는 적(?)들의 구성을 살피며 생각했다. 쓸만한 것은, 아마 상당한 숫자를 자랑하는 저 녹색로브 친구들이겠지.
성벽에 닿기까지 30걸음 정도. 그대로 성벽을 향해 몸을 던지며 뮤트의 거친 목소리로 포효했다.
『인간!!! 대마법사 아스트라드의 유산을 넘겨라아아아!!!』
넘겨라- 넘겨라-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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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포성 속에서도 거친 포효는 메아리를 남기며 흩어졌고.
그 순간, 나름 열심히 마법을 펼치던 녹색 로브의 마법사들이 거짓말처럼 굳어버렸다.
“….은게.”
“감히…. 스의 동풍에 맹세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서는, 눈알을 희번뜩거리며 음산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한 마법사들.
자고로 바람 마법사만큼 충동적으로 사는 존재가 없으며. 그들은 살고 죽는 문제를 앞두고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끼이이이이이이익-!
“이런 개 버러지 같은 짐승새끼가 감히 고임바람의 유산을 노리느냐아아아아!!!”
“네놈의 익다 만 육신이 숯이 될 때까지 태워 그 재를 영구동토의 땅까지 날려보내주마!!!”“감히! 감히이이!!!”
“더럽고 축축한 굴에서 기어나와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네 구역질 나는 창자를 *&#^%#해서 &#%&@-!!!”
“ %^#%@!!!!”
“ &%@8!!”
왁! 와악!
순식간에 의욕이 충만하다못해 터져버린 바람 마법사들의 마법이 날아들고,
『크하하하! 그래! 소문의 폭풍의 언덕이 이따위로 약할 리가 없지!!』
“죽어! 죽어어어어!!!”
“바람을 모독한 그 혓바닥과 함께 뒈져라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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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아아아아앙!!!!
그리고, 천지를 쪼개는듯한 폭발이 요새도시 윈드홀의 성벽을 뒤흔들었다.
….그래, 그 윈드홀.
옛날에 박교수가 폭풍의 언덕에 올라가기 전, 일행과 하루 묵었던 그 작은 마을 말이다.
블루라인에 인접한 바위투성이 땅.
산맥 하나를 두고 마도제국을 마주하고 있던 바람마법사들의 고향은 제국의 통신을 전담하는 가장 중요한 시설이며, 당연히 양대 제국 전쟁의 중심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을은 전초기지가 되고, 전초기지는 도시가 되고, 블루라인 산맥을 기점으로 쪼개지며, 앞으로는 바다와 인접하고 밑으로는 드넓은 암반지대가 자리잡은 윈드홀은. 200년의 세월을 건너 마을에서 제법 규모있는 요새도시로 거듭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박교수가 있는 텔드랏 지역으로 가는 배를 얻어타던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던가 할 생각이라 매우 협조적이고 평화로운 하이드로 도시를 마주할 생각이었지만.
쿵- 쿠궁!
화르르륵!
터벅. 터벅. 터벅.
『한심하군.』
“으으으으, 이 괴물….!”
『나약하구나. 한없이 나약해….!』
어쩌다 보니, 성벽이 쩍쩍 갈라질 정도의 폭발 속에서 사지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도시 습격 괴물로 마주하게 되어버렸다.
“안 된다…. 이곳은, 그분께서 사라진 이곳만큼은…. 쿨럭!”
폭발의 충격을 다 막아내지 못한 마법사들이 비틀거리며 지팡이를 들어올리고.
“저, 저 뒤에는 내 가족이 있어…!”
못쓰게 된 성벽포 대신 창과 아케인 슈터를 손에 잡은 병사들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비장한 각오로 다가서며,
기사들이 저마다 검을 뽑아들고 살기를 피워 올리는 가운데.
….털썩!
불타는 성벽을 등지고 걸어나온 괴물은, 돌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스으윽-
처음 이곳에 다가올 때처럼, 평화적으로 두 손을 들어올리며 말이다.
『이제, 나와 대화할 마음이 생겼는지 물어봐야겠군.』
처음 했던 것과 같은 말이다.
다만, 아까는 살아있는 과녁마냥 포격을 얻어맞던 괴물 한 마리의 외침이었다면, 이번에는 단신으로 상처 하나없이 윈드홀의 성벽을 돌파한 괴물의 말이라는게 다를 뿐.
‘폭력, 오오 폭력! 세상에 이토록 쉬운 길이 있다니! 가히 패스파인더로서의 자아에 모욕적일 정도로 쉽구나! 역시 힘이 최고야!’
간단한 원리다. 원래 싸워서 질 것 같은 놈이 혀가 길어지는 법이니까. 처음엔 매뉴얼 대로 했던 윈드홀 사람들도 ‘아, 이거 보통 좆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싸우지 않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는거지.
“이이, 감히 고임바람의 유산을 노린 주제에 이제와서 대화 같은 소리를-”
물론 머리에 뇌 대신 말초신경이 가득한 바람쟁이들은 변함이 없었지만,
“우웁! 웁! 이것 놔! 내 저놈을 기필고 도륙을- 우우웁!”
“성주! 속지마시오! 괴물이 그분의 유산에 털끝하나라도 손을 대면 내 기필코!!”
저봐. 손짓으로 맛이 가버린 마법사들을 물린 높으신 분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하잖아.
『….마법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괴짜로군. 그렇지 않은가, 인간 지도자?』
“꼭 인간을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군, 괴물.”
귀족, 아마도 성주로 보이는 인물은 내쪽에서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자, 그럼 여기서. 아무리 기본 조건이 갖춰졌다 한들 ‘뮤트’와 ‘인간’이 마주하고 입을 놀리는 이 비정상적이고 범상치 않은 상황을 어떻게 저 귀족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 주느냐.
『인간이라…. 크후후후. 잘 알지. 잘 알고말고. 몇백년을 인간이 만든 참상속을 떠돌며 너희를 증오하고, 죽이고, 눈에 담아왔는데 나보다 잘 아는 존재가 또 있을까?』
“….뭐라?”
간단하다. 범상치 않은 상황에 어울리게, 범상치 않은 상대가 되어주면 된다.
‘몇백 년’
‘인간을 증오했다.’
‘뮤트.’
‘마법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눈앞의 정체불명의 괴물이 궁금해 미치겠는 상대에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 정보는 대단히 귀중한 단서가 되어 머릿속에 꽉꽉 눌러박히고.
거기에 유창한 언어, 아주 오래 살아온 존재라는 암시, 특징적인 붉은 피부까지 더해지면-
“뮤트 종족 전쟁시기의…. 붉은 뮤트?”
『그렇게도 불렸지.』
굳이 내 입으로 떠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서 확정해버린다.
범상치 않은 상황.
범상치 않다 못해 20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 속의 괴물.
‘뮤트가 어떻게 대화를-’ 이라는 생각은 ‘그 전설 속의 붉은 뮤트라면 가능할지도-’ 와 같은 방향으로 물 흐르듯 변한다.
“하, 하지만 붉은 뮤트는…. 전설 속의 성자 교수께서 힘을 위해 죄업을 짊어진 형태가 아니었나?”
물론, 어찌나 유명한 전설인지 아직까지도 팩트가 전해져 내려오고는 있지만.
카아악!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간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의 머리를 뽑아서 짜낸 즙으로 성벽을 색칠해주지.』
“크, 크흠! 실례…. 한 것 같군.”
무려 세월이 200년인데 지가 어쩔거야? 낡은 책, 그것도 자기네 이야기 부풀리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종교단체가 찍어낸 책에서 나온 낡은 이야기인데 그걸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시대에 남아있기나 하겠냐고.
가뜩이나 ‘뮤트를 학살하던 위대한 성자님은 너무 위대해서 뮤트의 힘까지 다룰 수 있었어요!’ 같은 말도 안되는 사실인데, 그걸 철썩같이 믿는 놈이 있으면 교단에 들어갔어도 진즉에 들어갔어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럼. 슬슬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할까? 평화롭고, 인간답게.』
뭐, 다소 복잡하고 음습하고 폭력적인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이 거친 바다건너 텔드랏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한 대화의 포석이었을 뿐이다.
생긴게 이렇게 생겨먹은 덕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 + ‘성주가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드는 대단한 놈’으로 인식되기까지 좀 필요한 자격이 많았던 거지.
『원하는 것은 대마법사 ‘아스트라드 딜런 델하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남긴 흔적이다. 그저 보고, 확인하고 싶을 뿐이지. 이것마저 싫다고 한다면 그저 내 존재가 혐오스러워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 더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
“그저, 보고 감상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인가? 그걸 소유하거나, 파괴하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광이라?”
『너희 인간은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똑같이 귀로 들은 것도 제각각 다른 머리로 받아들여서 곡해하지.』
“이런.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우리 도시의 성벽이 저만큼이나 피해를 입다니….”
“우우웁! 속지마! 놈은 괴물이야! 아스트라드님의 유적에는 절대로- 우아압!”
잠시 병사들의 구속을 벗어난 마법사가 난동을 부렸지만, 성주의 생각은 이미 내 쪽으로 기운 것 같았다.
음, 약간 긴장하는 것을 보니 뭔가 요구할 생각이로군.
“….항구. 근래에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몰려와 도시의 항만 시설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지반이 깎여나갈 정도라 복구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지. 항구의 잔해를 밀어내고 깎여나간 절벽과 지반을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복구해준다면, 나 또한 윈드홀의 성주로서 ‘붉은 뮤트’가 바람 마법사의 고향을 견학하는 것을 정식으로 허가하지.”
『거래인가. 건방지군.』
….꿀꺽!
성주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아무나 볼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바람 마법사들은 하나하나가 이 도시의 중역이고, 성주라해도 그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네가 나와 우리 도시의 시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전투를 재개하겠다.”
『흠….』
안그래도 흉악한 얼굴에 인상까지 찌푸리자 옅어져가던 긴장감이 다시금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사들은 여차하면 영주를 보호하며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은 제 손에 쥔 무기를 부서질 듯 움켜쥐고.
오. 개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뭐, 항구의 잔해 치우기? 지형 공사?
지금의 힘이면 좀 규모가 큰 찰흙놀이로 받아들여도 될 수준이지.
성주가 마법사들을 존중하는 만큼, 이 험한 세상에서 도시의 보호 안에 머무르는 바람 마법사들도 어느정도 성주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고. 당장 나를 태우니 죽이니 해도 성주가 정식으로 견학을 허가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시늉 정도는 해야겠지.
아스트라드의 유적을 찾아왔다는 말은…. 핑계였다.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뮤트와 같은 전설속에 등장한 마법사. 성주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어울리는 구실이니까.
견학과 소일거리. 작은 거래가 끝나고 나면, 어느정도 의심을 떨친 성주와 텔드랏으로 가는 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원래 거래라는게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턴 계산의 영역이니까.
‘아스트라드. 고임바람의 마법사라.’
아스트라드와 재회한 것은 루실라가 죽고난 뒤 제국 전쟁에서 날뛸 무렵이었다. 폭풍의 언덕은 제국 전쟁에서 가장 격렬했던 전장이었고, 녀석은 펠릭스 홈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하이드씨. 죄송하지만 홈은 더 이상 옛날처럼 사람을 돕지 못합니다. 이미 마법의 총량을 아득히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그 형태를 유지하고 바람 마법사들의 상징으로 남아있는게 고작이에요.]‘….되게 미안해 했었지.’
90살의 아스트라드는 계획을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나의 부탁을 슬픈 얼굴로 거절했다. 온갖 종류의 마법 아이템을 한아름 안겨주고도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하던 녀석에게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 말해주었으며.
삶과 죽음을 오가는 바쁜 계획속에, 그날 이후로 폭풍의 언덕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다만, 용맥 뒤틀기로 대륙이 갈라지고 20년 정도 지났을 때, 펠릭스 홈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낡고 허름한 소식지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다.
‘죽었겠지. 아스트라드는. 녀석이 유지하던 홈이 아스트라드의 뒤를 따랐을 뿐이고.’
홈의 결함과 내막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아스트라드와 홈이 함께 사라진 원인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유적 견학은 핑계일 뿐이다. 아주 조금 많이 관심이 가는 핑곗거리.
터억.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성주가 떨지 않기위해 무진 애를 쓰며 내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렇게 됐으니…. 윈드홀에 온 것을 환영하오. 오래된 존재여. 부디 그대가 도시를 안전하게 즐겼으면 좋겠군.”
『그래.』
그의 손을 잡아 흔들며 사소한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처음부터 성주를 겁박해 대륙 넘어로 가는 배를 요구했어도 됐을거라던가, 굳이 이렇게 빙빙 돌려서 요구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던가 같은 사소한 생각 말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덤에 인사 정도는 하고 가야지.’
그냥 그 정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뭐, 그 정도도 누릴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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