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78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4)
****
‘한셴, 기억하궈라! 쥐이-구멍에도 볕 들 나리이 있고, 우리 가튼 인쉥에도 기회는- 오온단다!’
소년, 한센은 그를 주워다 키운 구두장이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기사에게 얻어맞아 이빨이 다 빠졌다는 할아버지는 한센 말고도 많은 고아들을 거두어 키웠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저런 소리를 하곤 했다.
‘치! 언제요! 도대체 언제 오는데요! 지난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지지지지지난달에도 오늘처럼 쓰레기나 주워서 먹고살잖아요!’
‘어언줸간!’
‘그러니까 언제요!’
‘쥐이-구멍에 볕 들날!’
‘그게 언젠데요!’
‘어언줸간!’
언젠간. 쥐구멍에도 볕이 들, 언젠간.
“한센. 13세. 소속된 신문사 없이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이야기를 팔아 먹고사는 뉴스보이.”
“마, 맞습니다만, 기사님께서 저 같은 천한 놈에게 무슨 일로….”
“세금을 내지 않으며, 다소 불온한 무리와 친분이 있고, 여러 경범죄로 경비대에게 쫓겼으나 잡히지 않고 도주한 것이 34회. 맞나.”
“히이익!”
안되는줄 알면서도 도망가려 했지만, 한센과 그 동생들이 살던 판잣집은 철제 갑옷에 둘러싸인 기사의 발길질 한 방에 박살나버렸다.
이젠 죽었구나, 싶어서 발버둥치는 한센의 목덜미를 잡아올린 기사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성주님 명령이다. 얌전히 따라오도록.”
“성주….님이요?”
세상에. 으리번쩍한 갑옷을 입은 기사님도 말이 안되는데, 성주님이 나를?
기사는 그를 꼬치구이처럼 나무에 꿰어 가지도, 꽁꽁 묵어서 자루에 넣어가지도 않았다.
되려 발버둥을 멈춘 그를 땅에 내려놓고 예절이니, 괴물이니, 보수니 하는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으며, [우리 형 죽이지마-]를 외치던 어린 동생들은 울음 섞인 눈에 선망을 담고 [잘다녀와-!] 라며 그를 배웅했다.
한센은 생각했다.
‘아, 어제 하수도에 떠내려온 이끼가 지독하게 상했구나!’
꿈이구나.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 했으니, 이 지독하게 멋들어진 꿈은 죽어가는 내가 꾸는 마지막 꿈이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난민 신청도 안 한 열세살짜리 고아가 이렇게 화려한 성에도 들어가보고, 너무 떨어서 기억도 안나지만 영주님과도 만나고, 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질 것 같은 예쁜 하녀들이 셋이나 달라붙어 그를 씻겨줄 리가 없지 않은가.
찰싹!
찰싹찰싹!
아프네.
이상하다. 왜 꿈에서 아프지?
이상하게 조급해보이는 기사들의 지시에 게눈감추듯 씻고, 입고, 치장당한 한센은 슬슬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민. 듣고있나.”
“어….예? 예, 예! 예예! 듣고있습니다!”
“….다소 위험한 임무지만, 그만큼 네 인생에 다시 없을 명예로운 임무임을 명심하라.”
“예! 명심하겠습니다요!”
윈드홀 요새도시에 뭔가 커다란 문제가 생겼고, 근엄한 기사들이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릴만큼 시급한 일이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주님이 유능한 뉴스보이를 찾았단다.
그게, 이 몸. 윈드홀의 쥐새끼 ‘약삭빠른 한센’이라는 것이고!
‘할아버지, 이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어언줸간-]인거죠?’
전쟁터의 고기방패라기엔 바쁘신 기사님들이 몇이나 동원됐다.
위험한 곳으로 간다기엔 따로 어딘가로 이동할 기미도 안보이고, 씻기고 입힐 이유가 없다.
짜악!
“아으으으, 정신차리자, 정신!”
한센은 마음을 다잡았다. 귀한 사람은 귀한 대접을 받고, 귀한 대접을 받으면 귀하게 쓰인다고 했다.
“이제…. 어, 어디로 가면 되죠?”
“도시의 입구에 있는 검문소로 가면 된다. 칼리츠, 병사 50을 붙여줄테니 이놈과 함께 가도록.”
“옛!”
귀한 대접에, 북슬북슬 이상한 장식이 잔뜩 달린 귀족 옷에, 평소에 만나면 두들겨 맞기나 했던 도시의 병사님들의 호위까지. 이유는 몰라도 그가 대단히 중요한 인사가 됐다는 것은 확실했다.
‘우리 가튼 인쉥에도 기회는- 오온단다….’
“….예, 할아버지. 기회를 잡을게요.”
한센은 다짐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붙잡겠다고. 더는 구멍난 판잣집에 살며, 썩은 물에 떠내려온 이상한 풀뿌리로 배다른 동생들이 배를 채우게 하지 않겠다고.
‘와라, 뭔지 모를 귀하신 분! 나 한센, 눈치와 재담 하나로 저 무시무시한 언덕의 마법사들과도 수다를 떠는 몸! 내 모든 것을 다해 네놈의 비위를 맞춰주마!’
활활 타오르는 의지로 두려움을 불태우며, 50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한센은 보무도 당당히 요새도시의 검문소에 도착했다.
『뭐냐 그것은.』
“기, 기다려줘서 고맙소, [붉은 뮤트]공. 지금부터 이 소년이 도시의 안내를 맡을 것이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임무’와 마주했다.
“어, 어어어….”
검문소.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선 도시에 몇 없는 커다란 공터.
그 공터가 좁아보일 정도로 커다란, 시뻘건 덩어리.
와, 움직이네. 저거 살아있는건가봐.
『어린 소년이라.』
.
.
.
.
『간식인가?』
소년의 13년 인생 최대로 타올랐던 의지는 그 한마디에 픽 하고 꺼져버렸다.
“어으, 으? 어어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한센의 등에 차가운 갑옷이 닿았다.
“기, 기사님. 저는 모,못할 것-”
“네 쓰레기같은 동생들이 도시 밖으로 추방당할 것이다.”
“으으으….”
“무슨일이 있어도, 설령 저 괴물이 너를 간식거리로 씹어먹어도 괴물의 심기에 거슬리지 말도록. 일이 잘 끝나면 그 하수구의 쥐새끼들은 윈드홀 시민권을 얻을 것이다.”
이거였구나. 그래서, 나 같은걸 불러다 썼구나.
한센은 목구멍에 가득한 울음을 집어삼키고, 허벅지를 마구 두들겨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켰다. 고개를 들면 소년의 주먹만한 괴물의 눈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쥐이-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어어-!]“으윽, 윽,읍…. 아, 안녕하시십니까!”
‘볕들 날은 있어….’
한센은 그를 배웅하던 동생들을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거둔게 열 셋이고, 지금은 다섯밖에 남지 않은 배다른 형제들.
더 늦기 전에 그들을 위한 햇살이 필요했다.
‘내가, 내가 햇볕이 될거야…!’
시민권. 그것만 있으면 적어도 난민지구에 들어가 살 수 있다. 열한 살인 볼든은 정식 신문사에 들어가 진짜 뉴스보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 여기서 나만 잘하면!
저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씹혀드는 순간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선생님의 윈드홀 안내를 맡은…. 한센입니다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환한 미소가 무시무시한 괴물을 맞이했다.
****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도시의 단단한 바닥을 걷는 발소리.
탁탁탁탁탁!
거기에, 괴물의 커다란 보폭을 뛰지않고 맞추려 안간힘을 쓰는 발소리가 추가되었다.
“여, 여기 있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윈드홀의 자랑, 바람 마력 응집기입니다요!”
“이야아. 어찌나 체구가 당당하신지, 이,이렇게 넓은 대로가 좁아보이네요! 아하하, 하하하하….”
“성벽 위에서 이보다 더 넓은 길을 봤는데. 저쪽에.”
“흐어업! 아, 거, 거긴…. 이이이이쪽이 더 볼거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요!”
슬쩍 말을 걸었을 뿐인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지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손발을 휘저으며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인다.
‘콧물이라도 좀 닦고 하던가.’
“윈드홀은 용맥 뒤틀기 이후 마구 생겨난 다른 요새도시와 달리 유우-서 깊은 도시거든요! 여, 여기! 이쪽을 보시면 우리 윈드홀에서 가장 큰 시장이 있는 거리가 있지요! 우와아,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장의 활기가-”
“괴, 괴물이다!”
“괴물이 도시에 들어왔다!”
“우와아아악!”
“어…. 활기가…. 느, 느껴지네요! 아아, 활기차다! 활기차!”
이 녀석.
뭔가 대단히 필사적이다. 하도 떨어서 주머니속의 동전 짤짤거리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리고, 내가 입만 열었다 하면 맹수 앞에 떨어진 염소마냥 딱 굳어버리는 주제에 길 안내는 또 나름 생각을 하면서 하고 있었다.
가령, 방금 슬쩍 얘기한 큰길이라거나.
‘도시에서 가장 큰 대로는 언제나 귀족들이 사는 곳이지. 마차도 지나다니고, 군마도 지나다니고, 영주님 행렬도 지나다니고.’
‘당연히 도시의 귀족들이 사는곳도 큰길에 붙어있지. 귀족님들이 사는 곳에 나같은 괴물이 들어가는 것은 높으신분들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지만, 그건 성주와 귀족들 입장일텐데….’
한센인가 하는 뉴스보이는 저렇게 겁에 질려서도 성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엄청난 보수를 약속했겠지. 아니면 당장 심사가 뒤틀린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더한 공포를 줬거나.
혹은 둘 다거나.
‘에휴우.’
보기 안쓰러워서 슬쩍 놓고가려고 빠르게 걸었더니 악착같이 쫓아온다. 헐떡거리면서도 또 철저하게 영업용 미소는 유지하는 게 탐욕을 넘어 어떤 각오마저 엿보였다.
‘내가 또 저런 거에 약하지.’
악착같은, 특히 어린 애가 저렇게 악착같은 걸 보면 뭔가 처음 4월드에 떨어졌을때의 내 모습 같아서 외면하기 힘들단 말이지.
음, 뉴스보이라. 괴물, 약속, 그리고 성주가 직접 붙여준 어리고 어리숙한 소년이라….
‘윈드홀 성주가 제법 일머리가 있군.’
대충봐도 딱 보이는게, 저 녀석은 그거다.
급하게,
막써도 되는,
필요한 능력을 갖춘 버림패.
항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됐는지는 몰라도 당장 몇 달 안에 도시가 말라죽을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수도에서부터 시작된 문제로 내륙이 엉망이니까 제대로 된 교역로는 바닷길 뿐인데, 항구는 파괴되었고. 현생 인류의 생존지인 암반지형은 단단한 만큼 척박한 땅이라 이끼나 버섯 같은 것 밖에 키울 수 없고, 당연히 바글바글한 도시의 인구를 먹여살리기 빡빡하고.
거기에 온 동네에서 몰려온 난민들 입까지 채워야하니 하루라도 더 빨리 항구를 고쳐서 다른 항구도시와 교역을 재개해야 했겠지.
그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너무나도 탐나는 괴력을 가진의 뮤트와 철거 및 재건축 거래를 했다만, 아무리봐도 얌전히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가기보단 살육파티를 벌이게 생긴 외모라 이거지.
그래서 일종의 시험지로 이 한센이라는 뉴스보이를 던져 넣은 것이다. 말은 통해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미리 공격을 당해 주변에 경고할 수 있는 존재를 감시역으로 붙여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일처리는 아니지만, 도시의 수많은 생명의 입장을 책임지는 성주라는 자리를 놓고 보면 합리적이고 이해할만한 일처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어차피 오래 머물 것도 아닌데 뭐.
“윈드홀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지?”
“흐읍! 어…. 예! 그러믄요! 거미줄처럼 복잡한 골목은 물론 귀한 분들만 다니는 하얗고 깨끗한 길, 또 옆에 병사님들께는 비밀이지만 이것저것 복잡한 물건을 거래하는 놈들이 파둔 개구멍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요! 아, 선생님 몸집으론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잘 알고 있다는 것이군.”
덥썩!
“우와아앗! 아, 안돼! 으아아아! 저, 저는 잘 씻지도 않고, 하수구에 살고! 먹는것도 상한 쓰레기만 주워먹어서 맛도 쓰레기에요!”
“안 먹는다. 느려터진 네놈과 발맞춰 가는게 답답해서.”
“태워…. 주시게요?”
“계속 떠드는 용도의 인간이니 굳이 다리를 쓰게 둘 필요는 없지.”
“허억! 아, 아닙니다! 다리 필요해요! 쓸모없지 않아요! 자르지 마세요!”
“안 잘라.”
대답 대신 소년을 내 어깨위에 올려두고 크게 성큼성큼 걸었다.
“햐아아…. 허읍!”
소년이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필사의 각오와 두려움만 가득하던 눈에 이제야 제 나이대에 어울리는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하긴, 집채 만한 무시무시한 괴물의 어깨를 타고 도시를 활주하는건, 이 나이대 소년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볼 법한 일이긴 하지.
“저, 정말 대마법사님의 흔적만 보러 오신겁니까요?”
“아는 인간이다. 한 200년 전에 봤었지. 너보다 한두살 많은 정도였나.”
“우, 우와아! 그 고임바람의 마법사를 직접이요! 아니, 괴물-으허업! 어, 뮤트…? 님들도 아는 인간이 있어요?”
성벽 앞에서의 걸걸한 목소리도 죽이고 나름 컨셉을 유지하는 선에서 살갑게 대하자, 갈대처럼 와들와들 떨던 소년의 목소리가 어느새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한 십대 소년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음, 역시 애들은 이래야지. 이건 내 사라진 유년기에 대한 보상이다.
“인간이 사는 땅을 배회하니 있을 수밖에. 뉴스보이도 하나 알고있지.”
“이야아! 저 말고도 선생님을 모신 도시의 소식꾼이 있었군요! 어느 도시의 친굽니까?”
“위겐이다. 바위가 많은 대도시지.”
“위겐! 저도 아는 도시네요!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만나셨는데요?”
“지금처럼. 일 때문에 만났고, 지금은 죽었지.”
“아.”
부르르르르!
이 녀석, 알기 쉬워서 좋군.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결과가 썩 좋은 결말은 아니었나보다.
너무 긴장하지도, 또 너무 굳어져있지도 않은 딱 좋은 상태로 빠릿빠릿해진 뉴스보이 소년은 잠시 잊고 있던 길 안내에 다시 열과 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파블로. 그런 이름이었지.’
내 어깨 위에서 허겁지겁 지나온 곳을 가리키는 소년을 보니 잊고있던 다른 뉴스보이가 떠올랐다.
박교수는 텔드랏 지역으로 향했다. 나와 그 바위투성이 도시를 헤매고, 같이 싸구려 버섯스프를 퍼먹고, 웃고, 욕하고, 끝내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던 그 소년은, 지금쯤 도시와 함께 불타 없어졌을 것이다.
굳이 녀석뿐만 아니라 텔드랏에서 만나고 알아온 모두가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내가 잠깐의 평화를 만끽하는 사이에도, 세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꾹 꾸욱-
“선생님, 저깁니다! 저기가 고임바람의 마법사, 바람의 대부(代父) 아스트라드 딜런 델하스트의 유적, 그와 펠릭스 홈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 있는 곳입니다요!”
씁쓸한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길고 튼튼한 다리는 성큼성큼 도시를 가로질렀다.
“음.”
완전히 달라졌지만, 분명 눈에 익은 지형이다. 지금은 도시 안이지만, 윈드홀이 작은 마을이었을 당시 마을의 경계였던 곳. 여길 나와서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야트막한 언덕이(지금은 작은 집들이 바퀴벌레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언덕이)나오고, 어느순간 좁고 가팔라지는 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눈아래 펼쳐진 드넓은 바위계곡과 길다란 절벽 끝에 자리잡은 하얗고 둥근 건물이-
철썩.
쏴아아-
철썩.
쏴아아아-
….없었다.
드넓은 바위계곡도, 하얗고 아름다운 건물도.
구멍이 많은 건물에 바람이 오고가며 남기던 노랫소리도, 하얀 폭포처럼 쏟아지던 편지들의 군무도.
비공정의 포격에 암석이 녹아내려 흘러내린 자국도, 무수한 철책과 방벽이 세워졌던 자리도, 목숨을 바쳐 달려든 기사와 병사들의 흔적도
“정말…. 사라졌군.”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언덕이 아니게 된 폭풍의 언덕은, 홈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둥글게 깎여나간 분지가 되어있었다.
파도소리는 가장 깊이 깎여나간 중심에 바닷물이 차올라 생긴 염수호에서 나는 소리였으며.
그곳을 중심으로, 마법사들이 세운 온갖 어설픈 천막과 구조물이 따개비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