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79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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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쏴아아-
철썩
쏴아아-
언덕을 올라서면 펼쳐졌던 광활한 바위계곡은 낮고 둥근 분지와 염수호가 되었다.
메마른 바람은 소금기어린 바닷바람이 되었으며, 이제는 언덕이 아니게 된 폭풍의 언덕은 ‘바람의 눈’이라는 지명으로 달리 불리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정말 눈을 닮았지요. 둥글고 매끈하게 푹 꺼진 분지의 중심에 파란 염수호가 찰랑거리는게, 꼭 땅에 생겨난 눈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의 이야기를 꽤 잘 아는군. 그런 옛날 이야기는 뉴스보이가 선호하는 ‘돈이 되는 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다를텐데.”
“그렇죠 뭐. 사람들이 돈주고 사는 소식은 이번에 들어온 배에 어떤 상품이 얼마나 실려있었나, 귀하신 분들 중 뒷골목에 들락거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들 뿐이니까.”
끄응차-
한센은 암벽을 타듯 어깨와 팔의 결을 타고 내려가더니 뾰족한 돌조각을 하나 들어 근처 바위에 슥슥 문지르기 시작했다.
“대신 겁이 많아 밤마다 잠 못 이루는 동생들이 있는 집의 뉴스보이에겐 이런 신비하고 쓸모없는 얘기들이 아주 요긴합니다요.”
“그래서 이렇게 잘 알고 있었군.”
“그렇기도 하고~ 또 저같이 소속 없는 뉴스보이는 사람이 많은 대로에서 소식을 팔았다간 다른 정직원 뉴스보이들에게 얻어맞기 십상이거든요. 자연히 다들 기피하는 곳에서 영업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괴짜중에 괴짜라는 마법사님들과도 어찌어찌 말을 트게 된 것 뿐이죠.”
슥슥, 삭삭삭-
“어, 음…. 계속 이쪽 얘기로 해드릴까요? 아니면 이쯤하고 다른 얘기로 넘어갈까요.”
“계속해라. 충분히 흥미롭군.”
“옙, 그럼.”
언덕에 올라온 순간부터 뉴스보이 소년은 떨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있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내 상실감이나 허탈함 같은 것을 느꼈겠지. 아이들은 어른의 분위기를 읽어내는데 능숙하고, 지금 내 분위기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니까.
긴장이 완전히 사라져 본연의 입담이 살아나기 시작한 한센은 그야말로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슥슥슥, 타각!
“짠! 대충 그렸지만 이게 원래 이 지역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몇백 년 전에 와보셨다고 했죠?”
“….그래. 잘 그렸군.”
주저 앉아서 뭘 하고있나 했더니 돌조각으로 바위를 긁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나보다.
커다란 갈비뼈 같은 곡선 기둥이 겹쳐져 만들어진 반구형 건물.
바위 위에 새겨진 펠릭스 홈 너머로 텅 빈 분지를 보고있노라니, 새삼 사라진 것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바위에 걸터앉은 소년의 입에서 대마법사 펠릭스 드릭시엘과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 그의 죽음과 홈의 탄생, 편지마법, 제국, 성자 전설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온 시점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린 소년을 위해 아공간에서 물 주머니를 꺼내준 시점이었다.
“혹시 여기서 꼭 마셔야 하나요?”
“….동생들 줄 물은 따로 챙겨주마.”
“엇, 감사합니다. 깨끗한 물은 워낙 귀해서.”
꿀꺽, 꿀꺽, 캬아아.
“보자…. 그렇게 양대 제국전쟁의 결말이 대폭발과 함께 같이 폭발해버리고, 가뜩이나 홈에 쏟아지는 비공정 폭격을 막아내느라 녹초가 되어있던 아스트라드님은 세상을 찢어발긴 대폭발까지 마주하게 되신 겁니다. 마법사들 말로는 그때 이후로 뭔가 크게 잘못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목을 축이며 술술 말하던 한센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돌연 자세를 고쳐앉았다.
과연 괴팍한 마법사들과도 잡담을 나눌만한 녀석이었다. 내가 방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눈치채고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야기에 앞서, 잠시. 뮤트 선생님, 혹시 밖에서 바람 마법사가 어떤 취급 받는지 아십니까?”
“….역귀, 혹은 순례자.”
“캬아~ 선생님께서는 정말 인간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알다마다. 이 시대의 마법사들 중 마도열차에 가장 많이 타는 부류가 바람 마법사였으니까.
시대가 변해도 마나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바람 마법사는 이 시대에도 마나와 함께 받아들인 방랑벽을 따라 이리저리 헤맸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용맥의 폭발로 대기중의 마나가 대폭 줄어들었고, 마법의 위력은 줄어들었으며, 바람 마법사는 옛날처럼 날아서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
뮤트와 약탈자들이 들끓는 지상을 여행하는 것은 자살행위이고, 바람 마법사는 그 자살행위를 평생에 걸쳐 반복해야 하는 저주받은 마법사란 말이다.
그런 이유로 [바람의 마나 =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처럼 여겨지는 가운데, 더욱이 바람 마법사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대신 꼭 한 명의 제자를 만들어 대리고다니는 풍습이 있으니. 일반 도시에선 바람 마법사가 떴다 하면 아동 연쇄 납치범이라도 등장한 것마냥 문을 걸어잠그고 아이들을 숨기기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역귀. 깃들면 안전한 요새도시를 떠나 황량한 죽음의 땅을 떠돌게 되는 바람의 마나를 몰고다녀서, 역귀.
그래서 순례자. 세상에 그들을 위해 내정된 단 하나뿐인 집, 유일한 성역 펠릭스 홈을 향해 여행하는 마법의 순례자.
이 시대의 펠릭스 홈은 마법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바람 마법사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되어있었다.
“아스트라드 정도 되는 마법사가 그토록 홈의 보수에만 매달려 있던 것은 그 때문인가.”
“바람마법사들에게 그렇게나 존경받는 이유죠. 사라지기 전에 그분의 경지가 무려 8위계였답니다, 8위계. 세상에, 8위계면 그 대마법사 펠릭스 드릭시엘과 동급이잖아요?”
“대단하군.”
“그냥 대단하신게 아니죠! 홈에 발이 묶여서 남들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세상의 다른 마학자들과 지식을 나누지 못했는데도 혼자 독학으로 그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란 말입니다! ‘자유’를 상징하는 바람의 마나를 지닌 사람으로서 그 긴 세월을 한 자리에 머물며 역사에 단 둘 밖에 없는 8위계 바람 마법사에 올랐다는 것은 기적이라구요 기적!”
“그래서 다들 존경의 의미를 담아 ‘고임 바람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겁니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로나 흘러가는 다른 바람들과 달리 한 자리에 맴도는 바람. 그럼에도 세상의 그 어떤 바람보다도 광활한 바람이 되셨으니 앉은 자리에서 이미 세계를 발아래 둔 것과 같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에 시작이 있다면 이분이 계신 곳이다. 마법사 아스트라드 딜런 델하스트는 유일하게 방황의 끝에 도달한 바람 마법사다, 뭐 이런 의미죠.”
“….그런가.”
녀석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꽤나 열심히 살아온 모양이었다.
어려서는 어린 나이로 홈의 대들보가 된 귀엽고 안타까운 아스트라드로.
젊어서는 이미 폭풍의 언덕과 바람마법사들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믿음직한 마법사로, 외환에 휘말린 고향을 무력으로 지켜낸 리더로.
말년에는, 언제나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로.
떠돌이의 삶을 타고난 바람 마법사는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바람 마법사로 살아온 인생에 가장 오래 머문 곳, 홈에서 만난 이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년 정도 펠릭스 홈에 머무는 마법사들은 그렇게 부족한 마음을 채우고 또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신기하죠? 다른 마법사들은 기를 쓰고 버텨도 5년이면 또 방랑벽이 도져서 홈을 나가게 된다는데 아스트라드님은 무려 135살이 될 때까지 홈에서 사셨다고 하니. 어떻게 하신걸까요? 역시 대마법사의 자질 덕분일까요?”
“….혹은,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 때문이겠지.”
예를 들면, 숨을 거두는 순간에 자신의 모든 꿈을 소박한 기적으로 만들어낸 어떤 마법사의 스승이라거나, 아버지라거나.
녀석. 덕분에 그렇게나 지키고 싶어하던 고향을 120년이나 유지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렇게 남을 수 있었던 덕분에 평생을 언덕을 지키며 살다 끝내 무덤하나 남기지 못했으니 운이 나쁘다고 해야하나.
‘좋은 쪽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렇게 열심히 살다 죽은 덕분에 이렇게 무수한 ‘양자’들이 어떻게든 사라진 ‘아버지’를 찾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까.
저 염수호를 품은 분지에 다닥다닥 세워진 건물들, 난잡해 보여도 죄다 마법을 연구하고 조사하기 위한 장소다. 하나하나가 뒷골이 땡길 정도로 돈을 쏟아부어서 만든 시설이고, 재산따위를 쌓아두지 못하는 바람 마법사들이 세우기엔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하일라 사제님이랑 같이 계시던 고라 마법사님, 그분도 펠릭스 홈의 증발 이후로 돈 벌기 위해서 수도에 있었다고 하셨지.’
홈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안그래도 가진 것 없이 떠도는 바람마법사들은 완전히 알거지가 됐고. 목걸이, 반지, 펜던트 같은 집 대신 마음을 붙여둔 추억이 담긴 물건을 팔고. 용병, 궁정마법사, 귀족가 마법고문 따위로 취직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바람 마법 입문], [4위계 바람 마법사가 직접 깎은 구멍 네 개짜리 지팡이] 같은 상품까지 팔아서 이렇게 사라진 홈과 아스트라드를 찾기 위한 시설과 인력을 구비했단다.
단 하나, 그들의 고향이 되어준 집과 사람을 찾기 위해.
저들 말로는 ‘실종이지 사망이 아니다!’, ‘마나는 안남았지만 바람은 남았다! 난 느껴져!’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만, 폭풍의 언덕이 사라진 지 60년이 넘었으니 저들도 내심 아스트라드가 살아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저 마음을 정리하기에 60년이 모자랐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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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은 여기까지. 남들보다 과거가 많다보니 옛날 생각에 빠지면 끝도 없었다.
정리할 건 정리하고, 할 일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지.
부스럭-
“아, 벌써 가시게요?”
“그전에 잠깐 내려갔다 올 생각이다.”
내려간다는 한 마디에 공포, 불안, 기쁨, 해방감, 아쉬움, 약간의 탐욕 같은 것이 소년의 얼굴에 드러났다. 음, 다채로워라.
“어…. 아까 듣기로는 뮤트 선생님께서 아스트라드님의 유산에 털끝 하나라도 댔다간 막 갈아서 뿌려버린다고….”
“영주가 제 이름을 걸고 허락했다. 부탁이 아닌 거래이니 내가 누릴 것은 누려야지.”
“제가 방금 바람마법사들이 얼마나 저 공터에 집착하고 미쳐있는지 충분히 설명해드리지 못했다면, 딱 3분만 주시면 엄선된 바람마법사 괴담을 풀어드립지요. 말이 마법사지 저놈들은 그냥 미친 사람들이라니까요! 눈돌아가면 영주가 아니라 황제가 찾아와서 박치기를 해도 들어먹지 않을 놈이란 말입니다요!”
“괜찮다. 저쪽에서 갈아버리겠다고 달려들면 원 없이 갈려주면 그만이니. 소란이 일 수도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어, 어어! 아잇, 선생님! 뮤트 선생님!”
촤아악!
옆에 자연스럽게 풍화된 형태의 계단이 있었지만, 내 보폭과 너무 맞지 않아 그냥 가파른 분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거, 멀리서 봤을 때도 정신 없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아주 가관이로군.”
중앙의 염수호를 향해 다가갈수록 온갖 종류의 기이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나 장치들이 늘어갔다. 렌즈가 사방으로 달려있는 망원경이라거나, 전통적인 마법사의 실험장비가 가득 담긴 이동형 마차라거나, 심지어는 마도공학 장비가 분명한 무언가라거나. 주먹만한 보석이 잔뜩 달린 장비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녹이 슬어가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지 관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괴물. 난 경고를 경고로 듣지 않는 사람을 싫어해.”
스아악!
“싫어하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취미도 없고.”
실험장비의 숲을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내 목에 바람의 칼날이 몇 개나 드리워져 있었다.
성문 앞에서 끌려간 그 늙은 마법사다.
“….집이 엉망이로군. 좀 치우고 살지 그런가.”
“그럴 수 없지. 홈은 나만의 집이 아니거든.”
트드득-
바람의 칼날이 피부를 파고든다. 이 인간, 진짜 영주의 부탁 따위는 한 귀로 흘려듣는군.
“죽일 생각인가.”
“아아, 나도 네놈에 대한 이야기는 좀 알고 있지. 아주 오래된 괴물. 붉은 뮤트. 폭풍의 언덕과는 좀 인연이 있다지? 뮤트 종족전쟁 당시 이곳을 습격해서 기둥을 두 개나 부러뜨렸다고 했나? 온몸이 갈갈이 찢겨 겨우겨우 도주했다가, 이제 홈이 없어졌다니까 200년 묵은 원한을 갚으러 오셨나? 우리가 약해진 줄 알고? ‘아스트라드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니면 뭐냔 말이다!!!”
어쩐지, 충동적이기로 소문난 바람 마법사라도 좀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했더니. 내가 해묵은 원한을 갚으러 이곳을 방문했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원한이라.”
옛날 같으면 ‘대단한 오해십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저러한 존재로서, 오래전부터 아스트라드님께 존경과 선망을 품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뭐 이런 식으로 혀를 놀려서 상대를 구워삶기 위해 애썼겠지만.
“그렇다면.”
뚜두둑, 끄기기기기기긱!
“어쩔 생각이지.”
“이, 이럴수가. 4위계 절단 마법을 맨몸으로….”
지금은, 굳이 그렇게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될 힘이 있었다.
“성벽에서 일어난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면 가만히 있어라.”
“그분의 유산에 털끝 하나만큼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장담컨대 세상에 퍼진 모든 바람들이 네놈이 죽을 때까지 쫓아갈 것이다! 여기서 나를 죽여도, 그 소식은 바람을 타고-”
“말 잘했군. 나도 옛 적에 빌린 바람 한 자락을 되돌려주러 왔을 뿐이다.”
팔락-
행여 내가 난동이라도 피울까 노심초사하는 늙은 마법사에게 나는 작은 편지 한 장을 꺼내서 보여줬다.
입모양으로 보건데 ‘개소리’의 개-를 막 꺼내려던 마법사는, 아공간에서 내 손아귀로 떨어진 편지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알아보는군. 대마법사 아스트라드 빌런 델하스트, 그가 젊은 시절 직접 보낸 편지지.”
“흐어억!”
순간, 세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악과 독기로 가득하던 마법사의 눈이 놀란 금붕어의 그것처럼 휘둥그레지고,
다음 공격을 위해 바람을 잔뜩 모아둔 마법 지팡이가 떨어지며 해방된 바람과 함께 펑- 하고 하늘로 치솟고,
“주, 주시오! 나 줘! 그거!”
방금전까지 괴물, 죽어라, 갈아버리겠다 따위를 외치던 노인이 마치 가족의 납치법에게 부탁하듯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내 팔에 매달렸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몰라! 부끄러움은 25년전 베니슨가의 승전 파티에서 40만 실링 받고 핑크색 토네이도를 만들어 줬을 때 다 없어졌어! 나, 나줘! 정말 잘 쓸게!”
“내게도 개인적으로 귀중한 물건이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네! 미안합니다! 제가 귀하신 분을 몰라봤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아니 한달, 이, 일년만 빌려줘! 그게 아스트라드님의 자필 편지라면, 마법이 살아있던 시절의 편지 마법으로 보내졌다면 아직 그분의 바람이 남아있을 거란 말이야!”
“….놔라.”
“모, 못놔! 줄때까지 못놔!”
세상에. 아스트라드는 120년 동안 이런 놈들을 어르고 달래서 훌륭한 사회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단 말인가.
“알았다. 넘겨주지.”
“저, 정말! 고마워! 넌 정말 좋은 괴물이야! 후흐흐히히히히!”
“당장은 말고.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아아아아….”
바람으로 몸을 띄웠는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길래, 결국 늙은 마법사를 팔에 매단체로 중앙의 염수호를 향해 걸어갔다.
“편지를 보낼 생각이다.”
“편지를….아?!”
“그래. 나도 마나를 느낄 수는 있으니. 여기 온 김에 한번 해보는거지.”
“오오오…!”
대마법사 아스트라드가 직접 자필로 쓴, 그의 마나가 남아있는 편지.
건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바람마법사들이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이곳.
딱히 이렇다 할 목표는 없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하는거지.
“명심해. 주문은 ‘바람에게 실어보낸다.’야. 지금과 200년전의 언어는 성조나 어투의 차이가 좀 있는 편이니까 ‘실어’ 부분을 좀 높여 말하듯이-”
“나는 그 시절을 살아온 존재다, 마법사.”
염수호를 마주하고, 손에 든 편지를 향해 말했다.
스읍-
후우우.
좀 긴장되긴 하는군.
“바람에게 실어보낸다.”
-꿀꺽.
긴장한 마법사가 침을 삼키는 소리.
염수호의 물이 찰랑이는 소리.
그리고, 작게 편지의 귀퉁이를 흔드는 바람.
“우, 움직인다!”
편지지는 날아갈 듯, 말 듯 커다란 손 위에서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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