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8
Chapter.4 눈꺼풀(20)
***
쿠웅- 쿠웅-
무겁다. 이거 진짜 더럽게 무겁다. 뽑아내는 것도 일이었지만, 옮기는 것은 더 큰 일이었다.
교수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공마 수정에 뿜어져 나온 보라색 파장에 닿은 도시의 마력등이 우수수 꺼져나가며 그가 지나온 길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서둘러야 하는데…. 이렇게 눈에 띄게 접근했으니, 마탑쪽에서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는데….’
근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근력이라면 지금 당장 이 수정을 들고 뛸 수도 있을 정도로 충분했는데, 관절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교수는, 6미터가 넘는 거대한 강철 구조물 수준의 짐을 들고 무릎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살살 걷고 있는 것이었다.
화아악! 화악!
전방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위협 신호가 감지되었다. 고개를 들자 마탑의 창문에서 뭉치기 시작하는 여러 개의 물덩이가 보였다.
“젠장, 역시 너무 시선을 끌었나?”
진행 자체는 사전에 계획했던 시간보다 살짝 늦은 정도였지만, 눈에 띄어도 너무 눈에 띄었다. 저 멀리서 꺼림칙한 기운을 가진 커다란 수정이 보랏빛 광채를 마구 뿜어내면서 도시를 어둠으로 물들이며 접근하는데, 마나에 예민한 마법사가 아니라 장님이라도 이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촤아아악!
점처럼 보이던 물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물덩어리가 일곱 갈래로 갈라지며 교수의 급소를 노리고 쏘아져 들어오다가-
철퍽-
보랏빛 파장에 부딪히며 평범한 물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흐흐흐흐…. 로만, 역시 당신은 천재야….”
사실 이 공마석의 가치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모든 마법사가 기피하던 물질을 연구한 마법사. 오랜 기간 모아온 마나를 잃어가면서도 마도 공학이 인류에 새로운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려진 공마석을 깎고, 다듬어 끝내 공마석의 마력 반발장을 이용하여 다 쓴 마나석을 충전하고, 더러는 마나를 한계 이상으로 압축하여 쏘아내는 장치를 발명한 천재.
로만 가치아 맨슨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공마석 연구의 선구자가 된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새로운 물질을 연구하니까 그렇게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거지. 마리 퀴리가 방사성 원소를 연구하다가 사망한 것처럼 말이야.’
철퍽, 철퍽 철퍽!
탑에서 끝도 없이 마법이 날아왔지만 공마 수정의 범위 안에 들어오자 전부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막는 것이 아니다. 아예 마법을 구성하는 마나를 흩어버리는 것이다.
‘로만이 만드는 물건 중 잭팟 목록에 디스펠 머신이라는게 있었지. 이건, 그 원시적인 버전이라고 봐도 되겠지?’
쿠웅-
어느세 마탑은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가능할 것 같았다.
“후우우-”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법사들의 얼굴을 보니, 만달리우스 저택에서의 고통스럽던 나날이 떠올랐다. 무력하게 감금당하여, 가축처럼 여겨지며 신체의 일부를 헌납당하던 나날.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
“흐흐흐흐…. 어디 마법을 못쓰게 되어도, 그 잘난 낮짝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까!”
쿵, 쿵, 쿵, 쿵쿵쿵쿵!
앞으로 나아가는 교수의 몸에 점점 가속이 붙었다. 조급한 마음을 참고 여기까지 다리를 아껴가며 살살 움직였다. 무릎이 재생을 한다고 해도 그 동안은 이 공마석 기둥을 들고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목표지점이 눈앞에 있다면…. 이제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
교수가 달려오는 속도로 그 주변의 모든 마력등이 꺼지며 주위가 어둠에 물들었다. 그 어둠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마탑으로 다가가고, 그 끄트머리가 탑의 가장자리에 닿는 순간-
투확!
교수는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차며, 공마석 기둥을 짊어진 교수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탑의 벽면이 가까워지며, 눈앞의 장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당황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거다. 이게 보고 싶었다. 세상 모든 것이 제 발아래 있다는 듯 구는 마법사 놈들의 저런 얼굴을 보고 싶었다!
교수는 공마석 기둥을 짊어진 팔에 힘을 주어 단단히 잡은 다음, 참을 수 없는 희열속에 환희에 차 소리쳤다.
“Fucking Bastard Incoming(좆 같은놈 나가신다)! 문-열어 이새끼들아아아!!!!! ”
콰아아앙!
엄청난 힘으로 공마 수정과 함께 허공을 가로지른 교수는, 그대로 들고 있던 공마 수정을 마탑에 쑤셔 박았다.
***
불야성의 도시, 마법사의 도시 토브룬에서도 가장 밝은 빛을 뿜어내던 리드플로우 마탑이 암전되었다.
탑을 표면을 휘감은 여덟 개의 물줄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마법사라면 그 생명력이 전과 같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탑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힌 공마석 기둥을 타고 들어온 교수는, 형편없이 박살 난 다리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리랑…. 허리도 좀 나갔군. 재생까지 3분, 아니 4분인가….’
하도 많이 다치다 보니 상태창을 안 봐도 대충 재생에 필요한 시간이 계산되기 시작했다.
4분. 이런 상황에서는 말도 안 되게 긴 시간이고, 그의 주변에 수십 명의 마법사가 널려있었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째서! 어째서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이야!”
“아, 안돼! 돌아와! 제발! 마나가, 내 마나가!!!!”
“우웨에엑! 우웩! 으웨에에엑!”
왜냐하면, 마탑의 마법사들은 죄다 이 꼴이 났으니까.
그때, 바닥을 기는 교수의 옆으로 부드러운 차 향이 훅 끼쳐 들어왔다.
“….락샤샤.”
“혹시, ‘은밀하게’ 라는 단어의 의미가 제가 모르는 사이에 바뀌었나요? 그 이상한 가면은 또 뭐고요?”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건 내 고향의 전통이고. 큰일을 앞둔 사람은 이렇게 구멍이 세 개 뚫린 복면을 쓰곤 했거든. 자, 받아요. 내가 이거 탐낼 줄 알고 누님 것도 준비했지.”
꿈틀거리며 다 떨어진 바지에서 복면을 꺼내던 교수는, 자신의 피에 흠뻑 젖은 복면을 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대신 내거라도 드릴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농담을 하는 교수에 락샤샤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잊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교수 당신은…. 정말 예측하기 힘든 남자에요?”
“흐흐흐. 그게 제 매력 아니겠습니까, 누님.”
“쿡쿡쿡. 건방지지만, 이번에는 부정하지 못하겠네요.”
교수를 부축하여 벽에 기대게 해준 락샤샤는, 눈을 반짝이며 교수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찌 됐건, 일이 계획했던 것보다 복잡해졌으니 보수를 추가로 받아야겠어요?”
“아이고, 제발. 그런 건 다 끝나고 정산하면 안 되는 겁니까?”
“괜찮아요. 지금 바로 받아 갈 테니까.”
쪽-
락샤샤는 교수의 복면을 들어 올린 다음, 그의 흉측한 입술에 짧에 입을 맞추었다. 서양에서 하는 가벼운 인사 같은 ,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담긴 행위.
– 홀리 : 꺄아아악!!!
– 노루Drug해요 : 가능! 가느으으응! 가아아악! 느아아아아악!
– takealook : 보물은 가장 위험한 바다에 숨어있다고 했나! 교수는 광증의 위험을 해치고 끝내 보물을 발견했다!!!
– 간장게이바 : 이 시대 최고의 워라벨! 이 시대 최고의 워라벨!
– 화약과 피 : 커흠! 그, 캡처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거라고 했지?
교수는 정신이 멍해졌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부드러운 거? 꽃인가? 뭐지?
[@)&락샤샤*(!*!#가악!)(!&*(나!@)(*!#]“어버… 어버버버…”
“어머, 그런 귀여운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설레잖아요?”
“이, 이게… 무슨….”
“음, 일종의 계약금부터 받았달까?”
“….계약금?”
“네, 계약금! 추가 보수를 한~참 더 받을 생각인데, 지금은 상황도, 장소도 좀 그러니까?”
락샤샤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예의 그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거기서 쉬고 있어요? 지금 얘기는, 나중에 일 끝나고 이어서 할 거에요?”
락샤샤는 그렇게 교수의 정신에 거대한 충격을 남긴 뒤,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
몇 분 뒤.
멍-
– 간장게이바 : 교수야, 다리 거의 다 재생됐다.
머엉-
– 간장게이바 : 교수야, 다리 다 나았다니까? 일해야지? 아직 다 끝난 거 아니라고?
“어….그래…. 일…. 일해야지….”
– Jokass : 체리는 이래서 문제라니까. 야! 교수! 아무 생각하지 말고 곧장 창밖에 머리 내밀어봐!
“어, 어….”
교수는 시청자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촤아아악!
창밖에는 마탑을 타고 오르던 강줄기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탑의 벽면을 왕복하고 있었다. 그 차가운 물의 감각이, 교수의 정신을 일깨웠다.
“푸하아악! 으, 어어! 미안! 잠깐 기절했다!”
– Jokass : 효과 직방이네.
– takealook : 기절 같은 소리하고 있네 ㅋㅋㅋㅋㅋ 잘하는 짓이다, 체리 새꺄.
시청자들이 놀려댔지만, 교수는 이번만큼은 어떻게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젠장. 첫 키스를 게임 캐릭터와 하게 되다니. 하지만 그 감각만큼은 진짜나 다름없었다고.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향기, 뜨거운 숨결, 그리고….
.
.
.
.
촤아아악!
“푸하아악! 으아아! 집중을! 집중을 할 수가 없어!”
– 화약과 피 : 미안하지만, 그 기억은 자네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하게 될 걸세.
– Jokass : 고롬 고롬. 남자한테 첫사랑과 첫 키스는 영혼에 새겨지는 기억이라고.
결국 교수는 연거푸 세 번이나 물속에 머리를 담근 다음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으으으, 일하자 일. 뭐라도 해야 살겠다.”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굴비처럼 줄줄이 묶여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아무래도 락샤샤가 지나가면서 패닉에 빠진 마법사들을 제압해둔 모양이다.
“슬슬 서문 쪽에 어그로가 끌린 병력이 복귀할 때가 됐으니, 나도 탑주의 신병을 확보하고 협상할 준비를 해볼까….”
교수가 위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 어슬렁 거리고 있는 그때,
짜자자작!
콰자작!
위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음이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수계 마법의 소리는 확실했다.
마법이 시전됐다는 것은 이 거대한 마력 반발장 안에서 그 반발력을 이겨내고 마법을 시전할 만큼 강한 마법사가 있다는 뜻. 그리고 이 위에 있는 것은….
“젠장, 락샤샤!”
콰각!
마음이 급해진 교수는 계단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창밖으로 비집고 나와 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탑의 가장 위층, 그 외벽에 매달린 교수는 벽 바로 너머에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자, 오른손으로 벽을 단단히 잡은 다음 그대로 왼손을 전력을 다해 벽을 후려쳤다.
콰삭!
모든 방어마법을 잃은 마탑의 벽은 낡은 건물에 불과했다. 교수의 주먹에 박살 난 벽이 허물어지며 숨을 헐떡이는 락샤샤와 만달리우스 백작,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드러났다.
***
짜자자작!
벽에 난 구멍으로 교수가 얼굴을 들이밀자마자 푸른 색 채찍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촤악!
“윽!”
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공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던 채찍은, 교수의 망가진 왼팔을 순식간에 잘라낸 다음 다시 주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균형을 잃고 밖으로 떨어질 뻔한 교수를 무언가가 잡아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몸에 가느다란 은색 실 같은 것이 감겨있었다.
엘더 스파이더의 실. 주인이 누군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빨리, 나았네요?”
짧은 시간동안 제법 치열한 공방을 치뤘는지, 락샤샤의 안색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가진 재주가 힘 센 거랑 그것뿐이라. 상황은?”
“음, 미안하지만, 굉장히 나빠요. 아래쪽 떨거지들은 공마석으로 다 제압됐는데, 가장 골치아픈 상대가 멀쩡하게 남아있었지 뭐에요?”
교수는 마법사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곁눈질로 락샤샤의 상태를 살폈다.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지만, 팔과 다리, 드러난 부분 곳곳에 혈반(血斑)이 보였다.
“네가 소문의 그놈인가. 붉은 뮤트.”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아이작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위기감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하는 뮤트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지. 아쉽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 뮤트가 그렇게 지능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지.”
한쪽 팔을 잃고 락샤샤의 옆에 시립한 교수를 보며, 아이작은 그의 냉막한 얼굴에 미소를 피워올렸다.
“그런데 네가, 제 발로 찾아와 줬구나.”
짜작! 짜자자작!
백작의 등 뒤로, 수십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피어올랐다. 입장과 동시에 자신의 팔을 날려버린 채찍 같은 물줄기가, 한개도 아니고 수십개가 아이작의 등 뒤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