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81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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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
“….”
콰아아아아-
“….”
콰아아아아아아아-!!
“이야아.”
가끔은,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진짜 같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 그런 종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폭포다. 세찬 물소리, 안개처럼 퍼지는 물보라, 계곡 특유의 바람 등등….
콰아아아아!
파라라락!
차이가 있다면, 이 앞에 세차게 쏟아지는게 전부 종이라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장엄하게 쏟아지는 것은 무리를 이룬 편지이며, 신비스럽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닳고 닳은 편지들이 부대껴 생겨난 종이 먼지였고, 바람은…. 저만한 면적의 물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당연히 생기는 그런 것이었다.
-탁!
멍하니 편지로 이루어진 장엄한 세상을 구경하다, 코앞에 날아든 편지 한 장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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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 이쓰신 음마께
음마, 제이니가 아파요.
마니 아파. 아프고 배고파.
아빠가 세밤 전부터 집에 안와요.
도라와요. 보고시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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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봐도 어린 아이가 쓴 듯한 조악한 편지. 내용은 뭐, 익숙하다면 익숙한 흔한 시골 농가의 비극.
나름 가슴 아픈 사연이다만,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낡은 편지의 내용 따위가 아니었다.
“수취인의 이름이 없군.”
철자가 다 틀린 글에, 심지어 ‘음마께’라고만 썼을 뿐 이름 한 자 써있지 않은 편지. 의심할 여지 없이 미발송 편지다.
팔락! 팔락 팔락!
“어디보자. 이것도, 이것도, 음. 이건 멀쩡해 보이는데…. 암살지령? 아, 가명이구나?”
이것 말고도 수취인 이름에 눈물이 떨어져서 잉크가 번졌다거나, 미들네임을 몇 번이고 고쳐쓴 흔적이 있다거나 하는 등 편지 마법의 완성에 문제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럼, 정말로 여기가 그때 펠릭스 홈에서 봤던 ‘미발송 편지’들의 아공간이라는 소리네.”
내가 제대로 왔다는 뜻이며, 이 장엄한-
“콜록, 콜록! 어우, 무슨 먼지가….”
음, 다소 기관지에 치명적인 장소가 그 옛날 펠릭스 홈이 만들어낸 ‘미발송 편지’들을 위한 아공간과 동일한 장소라는 뜻이다.
“흠. 이거 공간만 늘어난게 아닌데.”
대충 둘러봐도 그 옛날 꼬맹이 아스트라드가 틀어박혀 있던 참담한 아동노동의 현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단, 넓다. 뮤트가 되며 맹금류에 비견되도록 좋아진 내 시력으로도 끝을 알 수 없이 넓은 공간이다.
콰아아아아아-
팔락 팔락 팔락 팔락!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이 어디 하나 빈틈없이 편지로 가득 차 있다. 벽도, 천장도 온통 쏟아지는 편지고 눈앞에 있는 편지의 폭포가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처럼 몇 개나 늘어 서 있었으며, 쏟아진 편지들은 유사(流沙)처럼 끊임없이 흘러 편지로 이루어진 지평선(紙平線)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구조는 뭐랄까…. 어항? 분수대?
“어디보자, 저 편지는 발신만 됐고 수신이 안 된 편지니까, 아직 주인을 찾아가려는…. 욕망? 설계? 가 남아있어서? 저렇게 계속 순환시키는건가? 순환은 안정이고, 안정은, 어, 음, 유지의 상징…. 으이이익!”
제기랄. 좀 파악해보려고 해도 도통 알 수 가 있어야지.
박교수는 나름 마법에 조예가 있었지만 나는 아니다. 마법은 감각의 영역이라 녀석의 기억을 훔쳐본 수준으로는 이 정도 고위 마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고.
기껏해야 폭포에서 쏟아진 편지가 바닥을 흘러 벽으로 향하고, 벽을 거슬러 올라간 편지가 다시 천장과 이어진 편지 폭포를 통해 쏟아지는 식으로 순환한다는 외적 구조만 엿보는 정도?
도대체 왜 저런 방식으로 편지를 돌리는진 몰라도 하나는 알겠다.
“미발송 편지, 편지 하나하나에 걸린 작은 마법이 이 정도는 모여야 대마법사의 라스트 스펠을 깰 수 있다는 뜻이군.”
라스트 스펠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다.
폭풍의 언덕에선 죽어가는 가우만이 3위계 쩌리 꼬맹이를 잠시나마 무려 7위계 대마법사로 뻥튀기 시켰고, 펠릭스 홈은 이 중세 판타지 세상에 통신 혁명을 일으켜 왕국이었던 국가 발틴을 무시무시한 제국으로 키워냈고, 오트만님의 소소한 대마법은 마법사를 정령체에 가까운 것으로 되살아나게 하기까지 했다.
충분히 입이 떡 벌어지는 엄청난 일이고, 비 마법인으로서도 하나같이 ‘저건 진짜 기적의 영역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은 맞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
파스슥! 파스스스스스슥!
“헤에에….”
마법의 규모가 소마법 단위로 나뉘어 그 규모가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난 지금, 그동안 ‘대충 엄청난 기적’ 정도로 생각했던 라스트 스펠이 세상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마법사 한 사람분의 세계가 실현된거니까. 작은 세계라 쳐도 무방하구만.”
사락-
“거기까지 이해하셨다면 기초적인 설명은 불필요하겠군요.”
순간, 멍하니 종이 폭포를 바라보던 내 뒤에서 누군가 말을 이어받았다.
누가 올 줄은 알았지. 아스트라드는 이 공간을 만들어낸 주인과 같은 존재고, 심지어 정해진 인물만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백발이 성성한 대마법사 아스트라드님이 나타나서 ‘용케 눈치채고 들어오셨군요~’ 하면서 반겨줄 줄 알았지.
“당신은…!”
설마, 아스트라드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반겨줄 줄이야.
나는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쪽은….
“날…. 알아요?”
“실제로 뵙는건 이번이 두 번째군요. 지금, 그리고 마법사들이 준비해준 기구가 추락했을 때, 숲에서.”
“….아!”
맞다. 폭풍의 언덕을 떠나며 얻어탄 기구, 그게 제국 전역에서 쏟아지는 편지 무더기에 맞아 추락했을 때.
하우누만으로 가던 숲속에서, 교수의 옆구리에서 튀어나온 검은 덩어리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하이드’로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사락. 사락.
하얀 맨발이 유사처럼 흐르는 편지 위를 가볍게 걸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하이드.”
“….이드라실.”
이드라실. 하프엘프 이드라실.
“어떻게?”
넋이 나간 내 목소리가 우스웠는지, 이제 노년에 가까워진 엘프의 눈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배우는 것이 빠른 편이라.”
대답을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키는 이드라실. 그녀도 나와 같은 추론을 통해 이곳에 도달했다는 의미겠지.
“푸흐흐흐….”
“뭔가 제가 즐겁게 해드렸는지?”
“아니,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그냥…. 웃겨서요.”
“?”
가면서 얘기하자는 듯, 앞서 걷기 시작하는 이드라실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저는 이곳에 들어오는 방식을 보고, 아스트라드가 저를 노리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의 과거사를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입구를 찾을 수 있는 방식.
간단하면서, 마법을 모르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는 설계.
아닌걸 알면서도 마법의 공간이 딱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혹시 아스트라드 이녀석, 그때 퇴짜놨던게 날 위해….?’ 라거나, ‘도와주러 왔구나! 믿고 있었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단 말이다.
“음,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역시 그렇죠? 하긴, 걔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아니, 그런게 아니라.”
화아아악!
너스레로 부끄러움을 무마하려던 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잊고 말았다.
벽, 그러니까 내려온 편지들이 다시 연어 떼처럼 천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흐름이 좌우로 갈라지며, 누런 종이와 흐릿한 잉크의 칙칙한 색으로 가득한 세상에 눈부신 은백색 광체가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섬. 폭포의 수원지로 보이는 커다란 편지의 섬이 하늘에 떠 있었으며.
그 중앙을 관통한 은백색 기둥은 위로는 어린 가지를, 아래로는 미약한 뿌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이것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 시위하듯 섬과 나무 주변을 철새처럼 맴도는 편지들까지.
“….세계수 님?”
“정확히는, 그분이 돌아가시며 남기고간 세계수의 어린 가지이며.”
사박. 사박.
“보다 정확히는, 관리자 ‘WORLD tree’의 권한에 걸린 락(lock),을 푸는 키-코드(Key-code)라고 할 수 있겠죠.”
쿠웅-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가볍게 흘러나온 이야기가 내 심장을 내려앉혔다.
게임 안의 존재, NPC는 입에 담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말.
종이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앞에 선 이드라실은, 나를 향해 돌아서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하이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지만 무게와 깊이가 다른 인사.
“남겨진 세계수의 가지를 보호하는 다섯 엘프 중 하나. 하이엘프 이드라실이라고 해요.”
“이드라실 당신이…. 하이엘프? 하프엘프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눈앞의 누군가가 용사님 몸속의 괴물에서 인간으로, 다시 제게 익숙한 붉은 뮤트로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말입니다.”
“그 정도 변화에 비하면, 어린 하프엘프가 늙은 하이엘프로 변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겠지요.”
“아니, 그….”
뭔가 물어봐야 했지만, 질문이 너무 많아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왜? 하이엘프? 세계수님은? 권한을 잠가? 키 코드? 아스트라드는? 여기서 내가 모르는게 더…?
이드라실은 나의 간절한 눈빛을 받았음에도 말없이 몸을 돌렸다.
사박. 사박.
“따라오십시오. 아스트라드는 위에 있습니다.”
“그-”
“….지금 엄청나게 눈치를 주며 닦달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도, 같이.”
“예, 옙!”
어, 어렵다. 이 내가, 한 때 ‘방랑하는 혀’라고도 불리는 이 하이드가 압도당하고 있어! 옛날에 그 어리고 탐구심 넘치던 엘프 이드라실이 아니야!
“하이드.”
“예, 옛! 이드라실! 지금 갑니다!”
사박. 사박.
푹석 푹석!
“….만나서 반갑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나, 그 모습이.”
헤엄치듯 편지더미를 밀고나가는 내게 이드라실이 말했다.
그 모습에, 문득 엘프에 대해 떠오른 게 있었다.
‘쉽게 변하지 않고, 한번 변하면 그 모습이 오래 가는 종족.’
마치 나무에 생긴 상처가 옹이가 되어 평생 나무와 함께 자라나듯, 쉽게 변치 않지만 한번 변하면 그것을 영원히 품고 가는 이들.
‘그렇다면, 반가움을 따로 설명해야 할 만큼 감정이 굳어버린 엘프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교수와 떨어진 뒤, 이드라실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와 만나지 못했다 뿐, 그녀도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회복, 황금기, 전쟁, 멸망, 그리고 지금.
인간을 배우러 세상에 나왔던 하프엘프는, 제 감정을 입으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무엇을, 얼마나 배웠기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정말 밑바닥까지 휩쓸리면 아스트라드가 직접 꺼내주기 전까지는 찾아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되는데요?”
“마법의 흐름에 따라가지요. 여기선, ‘하이드’라는 이름의 책 한권 분량의 편지 무더기로 분해될겁니다. 굳이 밑바닥까지 안들어가도, 그렇게 편지 사이에 몸을 담고 있으면 머지않아, 곧.”
“흐어억!”
잠시 떠오른 생각은 고저 없는 농담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이드라실도 내가 무슨 생각을 떠올리는지 알았고, 나도 그녀가 일부러 가벼운 주제로 질문을 막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푸확 푸확 푸확 푸확!
“가, 갑니다, 가!”
“인상적이네요. 근력이 강하면 정말로 여기서 헤엄을 칠 수 있군요.”
결국, 둘 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어 넘길 뿐이었다.
[이드라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따로 물을 필요 없이, 그 질문의 대답은 내가 지나온 길에 대부분 적혀 있었다.
이드라실이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것을 묻지 않는 이유도, 아마 같은 의미이리라.
털어놓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었고, 너무 많은 일이었으니까.
“그대로 편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교수님께 보내드리면 찬찬히 읽어보고 옛 기억을 되찾으실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싫어요! 내가!”
지금은, 그냥 반가운 것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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