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84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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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막아! 저 괴물을 막으란 말이다!”
“한방에 마도열차도 엎어버리는 성벽포가 50문이야! 발만 묶으면 그대로 다져버릴-그어억!”
뻐거억! 뿌드드득!
“저, 저걸 무슨 수로 막아….? 기사는? 샤드나이트는?”
“빌어쳐먹을 영혼술사 새끼들아! 보고만 있지말고 뭐라도 하라고오오! 전열이 다 갈려나가면 그 다음은 네놈들 차례란- 오, 오지마! 오지마아아!”
콰아악!
발악하며 소리 지르던 사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방금 전까지 성벽 위에 있던 괴물의 손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는지.
빽빽한 요새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어떻게 저 큰 몸집이 날아들었는지.
“커허억!”
건물을 치즈처럼 뭉개는 괴물에게 공격당했는데, 왜 그가 살아있는지.
“장식 투구. 보호받는 위치. 시끄러움. 지휘관이지? 백인장? 천인장?”
“아각, 아가가각!”
“군복이 죄다 중구난방이라 찾는데 고생했다. 병력은 이게 전부? 기사들은? 월드와 워로드는 어딨지?”
빠드득-
“그하아아아악!”
여유롭게 심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커다란 손아귀 안에서 지휘관의 턱이 뭉개지며 피와 이빨이 우수수 쏟아졌다.
“아, 아대, 보내수 어서….”
“글세. 이깟 잡병이 십만이든 백만이든. 성벽이 있건 도시 전체가 바리케이드건 그게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괴물, 하이드는 지휘관의 목을 쥔 손의 반대 손으로 내 뒤로 뻥 뚫린 구멍을 가리켰다.
수십 척의 군선과 선원, 쇠 말뚝과 마법 함정 따위로 발디딜 틈 없이 도배된 해안을 돌파하고. 성벽이 끈적한 핏빛으로 도색될 정도로 초토화시켰으며, 단 한 번의 돌진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건물 수십 채를 뚫고 적의 보병 지휘관을 손아귀 속에서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너희 전부를 비료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어. 220년 짜리 선약이 있어 힘을 아껴야 하는 것 뿐이지”
“그으, 거흐으으-”
“말해주면, 놔주지.”
뚝, 뚜둑
손 끝에 힘이 들어갈수록 지휘관의 비명도, 쏟아지는 피도 점점 늘어갔다.
“흐, 흐흐.”
“….어렵게 가는군.”
놀랍게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엔 희열이 가득했다.
“너느…. 마그수 어서…. ‘신’으! 워드니므 지사에 내려오 ‘신’이히아-!!!!”
콰악!
유독 ‘신’이라는 단어만 정확하게 발음하는 지휘관은 고통에 바르르 떨면서도 나를 붙잡겠다는 듯 내 팔에 매달렸다.
‘신격화.’
‘통일되지 않고 다양한 군복.’
종교적, 사상적 감염. 혹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힘에 감화된 이들, 또는 그 부스러기를 탐내는 탐욕스러운 이들.
이곳에 모인 잡병들에 대한 정보가 불티처럼 떠올랐지만 지휘관 남자가 고개를 든 순간 사라져버렸다.
광기에 찬 남자의 눈이 나를 마주했다. 그 안에, 보다 깊숙한 곳에서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도, 나와 마주했다.
아,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지.
“안녕, 자기.”
.
.
.
.
띠링-!
인사 대신 팽팽한 금속 실을 끊어내는듯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게임 안의 존재라면 들을수도, 들어서도 안되는 그것.
[언노운 NPC ‘하이드’]박교수가 지겹도록 들었던 시스템의 알림음.
순간, 사위가 조용해지며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근-
두근-
이질적인 침묵속에 심장만이 제 존재를 알리듯 서둘러 약동하고 있었다.
[____딜리트.]-쿵
그리고, 멈췄다.
푸샤아악!
격리된 의식과 반대로 세상에 남겨진 육신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말로 이루어진 창이 척추를 관통해 혈관과 신경을 채운다. 채워진 만큼 안에 있던 것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피부가, 근육이, 뼈가,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의 결속이 끊어지고, 흩어진다.
털썩!
“괴물이 쓰러졌다! 위대한 일원(一原)께서 힘을 사역하셨노라!”
“저주를 쏟아부어라! 놈의 영혼을 옭아매 월드님께 진상할 것이다!”
지금껏 아군의 참사를 숨어서 방관하며 기회만 노리던 영혼술사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갖 마법과 저주를 쏟아내며,
“크흐흐흐! 주거! 주거어어어!!!”
제 몸을 미끼로 괴물을 붙잡아둔 사령관은 괴물과 제 몸 위로 쏟아지는 폭력의 파도에 더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죽겠다.’
제 아무리 홀로 군대를 상대할 힘을 가진 괴물이라도 상대의 강함과 상관없이 영혼에 타격을 주는 영혼술사의 저주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혹여 사이한 술법으로 영혼이 벗어났다 하더라도 이미 혼이 빠진 몸 위에 쏟아진 포격과 고위 마법이 이미 작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 수준을 넘어섰고,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이미 위대한 ‘월드’님이 직접 괴물의 숨을 거두어가셨다-
“-라고 생각하며, 순교자처럼 죽음을 맞이하겠다.”
“으그, 그아아….?”
“꼭 그런 얼굴로 웃고 있던데. 너.”
나는 잠깐 사후세계를 내다본 것 같은 머리를 마구 털었다. 그렇게 하면 흐릿하게 남은 끔찍한 감각을 털어낼 수 있기라도 한듯.
“어더케 어더케 워드니으 히므….?!”
“어떻게? 어떻게라….”
.
.
.
.
“200년이나 연습해 놓고도 연기가 형편 없으시네.”
손아귀 속의 남자는 반쯤 으스러진 얼굴로, 코에서는 피와 뇌수가 줄줄 흘러나오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래, 창조주 게드로이츠에 비견될 힘을 가질, 이름부터가 ‘시스템(System)’인 놈에게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평생의 절반은 나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너에 대해 생각했지.”
후두둑-
단 한 번의 집중 공격에 평지가 되어버린 건물더미 속에서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띠링-!
[System Call: ₩UnknowNPC ₩HIDE >DEL]푸샤악!
띠링-!
[System Call: ₩UnknowNPC ₩HIDE >DEL]뚜두두두둑!
참나. 시스템 명령어라니.
“그렇게 쉽게 가려고 하면, 쿨럭! 서운하지….”
뼈와 근육이 뒤틀린다.
갈가리 찢어진 내장에서 흘러나온 피가 기도를 가득 채우지만,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곤죽이 된 몸은 끝없이 허물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남아있었다.
“평생을. 몇 번에 걸친 평생을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왔는데.”
하얀 불꽃이 이글거리는 검. 그것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들은 전부 이 순간을 위해 바친 나의 과거였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
찰그락!
검 손잡이 끝에 단단하게 묶어둔 파란 보석이 터질 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트만. 스스로 바다의 일부가 된 수계 마법사가 넘겨준 정수. 효능은-”
퍼어엉-
쏴아아아!
“저어- 해안가에 보시다시피 마법을 흡수해서- 방출한다. 크든 작든, 바다는 하나의 덩어리라 하시더라고. 저번에 봤지?”
저 뒤의 바다에서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치솟았다.
가히 마법 면역에 가까운 이능을 선사하는 이것은, 대마법사에 가까운 박교수를 상대해야 할, 마법에 문외한인 하이드를 위해 오트만이 준비해둔 안배였다.
아무렴. 오트만정도 되는 마법사가 해류 한번 태워주려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까.
“영혼술? 그래, 그건 마법의 영역에 반쯤 걸쳐있지. 조건만 갖춰지면 상대의 육체적, 마법적 장벽을 무시하고 영혼에 그대로 직격하는, 네년이 세계를 이리저리 뒤적여가며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기술.”
“그래서, 검을 잡았다.”
노툼은 몇 번이고 내게 마법사의 길을 권했다. 하다못해 차선으로 영혼술사, 주술사의 길을 사정하기까지 했다.
박교수와 같이 수계 마법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든 경험이라던가 무의식에서 태어난 존재라던가 하는 게 있다 보니 마법사로 대성할 가능성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계획 앞에 수십 번의 기적이 간절했음에도. 스스로 기적을 사역 하는 마법의 힘 대신 오러를 택한 것은, 스스로를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시키는 오러의 특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법이 의지의 확장이라면 오러는 의지의 응집이지.”
스스로를 깎아내고, 깎아내고, 깎아낸 끝에 더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완성된 것이 오러나이트의 영혼이며, 그렇기에 그들의 영혼은 힘의 고저와 상관없이 ‘완전한’ 상태이며. 영혼술의 상극이다.
오러. 세계라는 책에 새겨진 ‘하이드’라는 이름의 별책 부록이야 말로 내게 방랑을 강요한 ‘무의식적 충동’이었으며, 어떻게든 나를 방해할 시스템을 위해 과거의 내가 선택한 보루이자 중심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그리고, 너의 그 절대적인 힘. 시스템 명령어를 위해-”
띠링-!
[System Call: ₩UnknowNPC ₩HIDE> DRIVERQUERY____] [____Error>High influential resource]“700년간 제국민 전체에게 숭배받아온 검. 그리고 내 220년의 인생을 준비했다.”
시스템 명령어.
같은 말로, 언령(言令). 세계의 관리를 위해 방대한 양의 더미 데이터를 수여받은 드래곤들 만이 쓸 수 있는 마법.
그것은 데이터 소울 하나하나의 믿음과 상식이 모여 만들어진 GG의 세계에서, 일게 개인과 그 주변의 믿음 모두를 합친 것보다 드래곤 하나의 믿음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드래곤이 멀쩡한 평민 ‘제임스’가 ‘죽었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제임스는 살아있어.’라고 생각하는 그의 가족, 지인 모두의 믿음을 합친 것보다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드래곤의 믿음이 더 크기 때문에 세계가 그 결과를 수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국의 왕, 영웅, 대사제 같은 이들은 언령마법에 쉽게 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국가, 혹은 세계 단위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200년동안 세계를 떠돌았다. 내가 누군지 몰랐을 때도, 알았을 때도 떠돌았지.”
“그동안 만난 사람들, 내가 뒤바꾼 역사, 전 세계에 빼곡이 남겨진 발자취를 그저 ‘삭제’라는 명령어 하나로 지울 수는 없는 거다. 이미 너무 복잡하게 얽혀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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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것에 더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탐하여 만들어낸 그 육신까지. 홀로 달려들 만큼의 이유는 있었습니까.』
그리고, 다른이의 눈을 통해 염탐하던 존재가, 화답했다.
“아, 이건 의도치 않은 선물. 준비라는 게 나만 하고있던 게 아니더라고. 덕분에 여기까지 편하게 뚫었는데, 없었어도 여기엔 도착했을거다.”
『그렇습니까.』
뚜둑, 뚜두둑- 우득!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를 담은 인간의 몸이 감당하지 못했다. 뒤틀리고, 꺾여 축늘어진 몸에서 폐를 펌프질하여 퍼올린듯한 기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작은 소(小)사건들이 뿌리처럼 얽혀 쉽게 지워낼 수 없게 되어있군요.』
드드드득. 득, 우득!
『그렇다면, 얽혀있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면, 될 뿐입니다.』
『물건도, 인간도, 도시도, 네가 지나온 땅. 그 모래 알갱이 하나까지 모두.』
“그래, 할 수 있겠지. 이 모든 게 다 끝난 다음의 너라면.”
“그럼 지금은. 깡통에 녹이 다 떨어지도록 시도해봤을텐데,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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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제국령의 뮤트들. 당신을 강하게 인식했으며, 현 서제국령의 패권을 잡은 집단.』
“또 있지. 윈드홀의 마법사들. 마침내 잃어버린 그들의 대부(代父)의 장례를 치뤘으며, 더는 방랑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지금도 세계 곳곳에 마구 퍼트리고 있는 바람의 마법사들.”
『….일종의, 바이러스입니까.』
시스템은 어렵지 않게 연산할 수 있었다. 뮤트의 특성상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뮤트 무리. 여왕과 생각을 공유하기에, 뮤트 ‘하이드’에 대한 인식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세계를 살피는 그녀의 눈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바람 마법사의 편지들이 보였다. 펠릭스 드릭시엘의 마법이 아닌 바람마법사 개인의 마법으로 각지의 마법사들에게 도착한 편지는 하나같이 은혜로운 ‘붉은 뮤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으며, 기쁨에 취한 바람 마법사들은 전 세계의 주점과 여관에서 그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세계의 대부분을 손에 쥔 그녀라도, 이 모든 흔적을 지우는데는…. 다소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것을 위해 우호적인 종족단위 군대를 두고오고. 그것을 위해 아스트라드의 힘을 내버려뒀습니까.』
“뭐, 반은 계산. 반은, 200년동안 감성 하나로 버텨온 내 개인적인 의견.”
내가 감성적인 사람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인 이유로만 내게 주어진 힘을 내버릴 만큼 모지리도 아니었다. 더욱이, 가진바 모든 것을 내던져도 될까말까 한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는 더욱이.
220년, 한 시도 쉬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위해 달려왔단 말이다.
“괜히 시간 끌면서 간보지 마라, 시스템. 알잖아. 어차피 이쪽 일을 해결해야 다 끝난다는거.”
『….』
“내가 부여받은 모든 시간을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다. 마법도, 영혼술도, 네게 홀린 군대가 백만이건 백억이건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
이 순간을 위해 살았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 머물고픈 땅, 가질 것, 누릴 것 모두 뒤로 한 체,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네가 이 순간을 위해 스스로 완성된 신이라면.”
우드득!
“나는, 지난 220년 동안 지금의 너를 위해 만들어진 병기다.”
이제는 공처럼 우그러진 인간의 형상을 향해, 스스로를 벼려온 괴물이 선언했다.
“내려와라, 월드. 나를 두들겨 패서 끌어내지 않는 한, 네 과업은 끝나지 않아.”
0.1%. 아니, 0.0001%나 될까.
이 세계에서 내가 가진 지분 말이다. 220년간 내가 남긴 족적과 손에 든 라이오넬을 합쳐서 겨우 그 정도쯤 되겠지.
하지만, 온몸이 작살날 지언정 시스템의 명령어에 저항했다는 것은 내가 세계에서 차지한 지분이 저렇게 숫자로 표기될 정도는 된다는 증거였다.
저 바스라지는 하늘을 통해 시스템이 내려받고 있는 것. 그것이 세계인지, 권한인지, 내가 모를 무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한없이 끝에 가까운 99.9999…..% 에 머무를 뿐이다. 시스템의 과업은 100%에 도달할 수 없다.
츠츠츠측-
….자박. 자박.
“영리하군요. 이레귤러 하이드.”
그리고, 변수를 혐오하는 저 완벽주의자 인공지능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공간이 갈라지고, 한 세계의 오롯한 주인에 가까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고의 거장이 완벽한 인간을 주제로 빚어낸 듯한 아름다움.
스스로의 책무를 상징하듯 단발로 쳐낸 은발이 공터에 이는 세찬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얼굴 한번 보기 힘들군. 무려 220년에 걸친 장대한 고백이었는데.”
“시간을 들인다 하여 이성관계가 반드시 성사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얼씨구. 농담도 하고. 박교수 한테 배웠냐?”
“여러모로. 오랫동안 그를 이해하려 애쓰다보니.”
“….손에 넣기 위해서.”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작은 의식 한조각까지 모두.”
시스템이. 아니 그 이름처럼 시스템의 형상을 한 ‘세계’가 걸어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에 닿을 때마다 공간이 이지러지고, 흩어지며, 다시 재구성되기를 반복했다.
‘이게, 시스템.’
나의 적. 월드.
“그래서. 할 마음이 생기셨나봐?”
두렵다.
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존재가.
“확실히, 이대로 끝낼 수는 없겠다 생각했을 뿐입니다.”
두렵다.
내가 저 강대한 존재를 상대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 할까봐.
“왜. 네 완벽한 계획에 흠집이 나서?”
“아닙니다. 그저, 우선순위에 밀려있던 다른 업무가 생각났기에.”
따악!
무너진 도시의 공터에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휘이익-
쿠웅!
“저도, 마침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한 병기가 있는 터라.”
“….으드득.”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나의 가슴을 열고 애써 숨겨둔 동요를 적나라하게 끄집어내었다.
‘일부러. 일부러 보여주는거야.’
오래전부터 예상했지만, 마치 종을 부리듯 손가락을 튕겨 그를 불러내는 모습에 부아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시하는 것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막겠다 선언했듯, 놈도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인간 박교수의 자유가, 온전히 제 손에 떨어졌음을.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끝내 시스템이 박교수의 자아를 내어주지 않을 것임을.
펄럭, 펄럭-
비스듬히 무너진 건물 위에 익숙한 체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인간 시절의 나와 비슷한 키. 인간 시절의 나와 비슷한 체구.
내가 쓰던 다 헤진 망토와 비슷한, 모자가 달린 망토.
저격을 고려해 광원을 등지는 습관.
펄럭!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망토 안은 강렬한 광채를 뿜어내는 파편무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의 육신 또한, 그것에 맞춰. 빈틈없이.
“이레귤러 하이드. 인사라도 나누겠습니까.”
“하면. 반갑게 맞아주나?”
“고개 정도는 끄덕이게 해드리겠습니다.”
“퉤.”
그래. 다 내주었군. 정말로 다 내어줬다.
그 박교수가, 절대로 꺾이지 않던, 나의 불굴이.
그 떠벌이 같던 입을 굳게 다물고.
육체의 대부분을 유색 파편으로 갈아끼우고.
시스템의 손짓 한번에 몸을 날릴 정도로, 모조리 다.
….후우우.
“돌아버리겠군. 정말.”
고작 마주한 것 만으로도 200년의 독심이 흔들릴 정도로 동요했다.
미래를 떠올리면, 항상 원치 않아도 떠오르던 장면이다.
최악. 마지막의 마지막. 박교수가 시스템의 손아귀에 떨어져, 모든 것을 잊고 나를 죽이려 달려들 때.
그럴 땐, 어떤 수를 써야하는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수단을 강구해, 상황을 타개할 것인가.
매번, 밤잠을 세워가며 궁리하고 고뇌했다.
….으드득!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믿는다.’
생각하지 않았다. 계산도, 준비도,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굳게 믿었다.
‘절대로 그냥 내어준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박교수.“
판단할 증거도, 이렇다 할 가능성 하나 떠올리지 않고, 그저 믿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너 또한 반드시 떠올릴 수 있었을 거라고.
평생을 세워온 계획에서 유일하게 고려하지도, 고려할 생각도 하지 않은 부분.
시작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에 빠진 박교수가 준비했어야 할 부분.
내가 아닌, 너의 몫.
“이레귤러 하이드. 분명, 플레이어 ‘professor’의 변수 대조군으로서 중요 데이터 수집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요.”
투확!
그 믿음 하나로, 적을 향해 달려든다.
[시스템, 콜] [____나인 서클. 미티어 스웜(Meteor swarm)]손짓 한 번으로 별을 부르는 우리 세계의 신과.
콰차앙!
몸에 빛나는 파편의 수만큼. 데이터 소울, 게드로이츠의 게임 역사상 존재했던 강자 모두의 능력을 지닌, 나의 죽음을 향해.
“죽여봐라. 재주 것.”
가진 바 모든 것을 담은 검 한 자루로 맞섰다.
세계를 부수는 폭풍 속에, 하얀 불꽃이 위태롭게 흩날렸다.
초라하게, 강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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