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
Chapter.4 눈꺼풀(21)
***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머리가 좋군. 뮤트의 강인한 근력과 공마석이라는 버려진 소재를 이용한 공격이라니….. 이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짜자작! 짜자자자작!
아이작의 등 뒤로 늘어선 수십 개의 푸른 채찍이 허공을 후려칠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마찰열로 공기를 데울 정도로 강맹한 공격.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저 마법이었나. 저 정도면 맞은 부위가 그냥 다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겠어.’
이상했다. 저 많은 숫자의 채찍이 동시에 쏘아져온다면 아무리 나라도 살아남기는 힘들었을텐데, 아이작의 채찍은 허공을 난타할 뿐 좀처럼 앞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이작은 반대로, 내가 그를 눈앞에 두고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것이 인상적인듯 했다.
“대단하군. 위협적인 공격을 눈앞에 두고도 흉성을 폭발시키지 않다니. 심지어…. 나를 관찰하고 있나? 나를 죽일 방법을 찾고 있는 게로군! 이 순간에도 학습하고 있다니! 역시 뮤트라는 생물은….”
파앙!
“놀라워!”
아이작의 말과 함께 허공을 난타하던 채찍 두 가닥이 락샤샤와 나를 향했다.
‘제길,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끝난다!’
내가 몸으로라도 막으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던 순간, 락샤샤의 팔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왜….”
나의 질문에 그녀는 그저 생긋 웃어보이며 손을 들어,
끼리리릭-!
“주식(紬式), 암리타(अमृत)”
허공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녀의 손 끝에 걸린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어그러지고 있었다.
‘스킬? 그것도 주술계열? 락샤샤는 암살자가 아니었나?’
주문과 함께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녀의 손 끝에 무수히 많은 실이 연결되어 아이작과 그녀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탄처럼 허공을 깎아지르며 다가온 물의 채찍은, 현악기를 튕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저런 공격에 당할 정도로 허술하진 않답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현을 튕기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아이작의 채찍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을 난타하는게 아니라, 락샤샤의 실을 막아내고 있던 건가?’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실은 거미줄처럼 방을 가득 메우고, 그녀의 조종에 따라 사방에서 마법사들을 조여들어 가고 있었다.
“주식(紬式), 실을 사용하는 무예라…. 대사막 너머 극동부 부족국가에서 이것과 비슷한 기예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지. 동부의 미개인이 로드릭에는 무슨 일이지?”
“어머나, 숙녀의 비밀을 캐려 들다니. 남자로서 실격이에요?”
끼리릭-!
하얀 손끝에서 실을 당기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 옅게 흩어져있던 실들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모여들어 순식간에 뒤쪽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조여들었다.
“그런 허튼수작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몇 번이고 확인 시켜줬을 텐데!”
피싯-!
아이작의 오른손이 락샤샤를 가리켰다. 그리고, 단숨에 움켜쥠과 동시에 락샤샤의 피부에서 작은 물방울 하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가며, 피부에 붉은 반점이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
락샤샤가 입술을 깨물며, 방안에 가득 들어찬 그녀의 실들이 모여들어 북 처럼 울리며 내부의 공기를 환기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유도에 따라 교수가 들어온 구멍으로 시원한 공기가 흘러들어오며 내부의 온도를 낮췄다.
‘이 후덥지근한 온도….제기랄! 상대의 체액을 이용한 공격이라고?’
교수는 락샤샤의 몸 여기저기에 번져있는 혈반의 정체를 깨달았다. 6 위계라면 물에 대한 지배력이 엄청날 것이다. 비록 몸속에 포함된 수분은 그 사람의 신체에 속하니 웬만한 지배력으로도 컨트롤 할 수 없지만, 몸 밖으로 배출된 수분, 땀 정도는 공마석으로 약화된 지배력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여러 가지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락샤샤의 압박에 공마 수정으로 인한 약화. 아이작도 그리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야.’
뒤쪽의 마법사들을 향해 죄어들어가던 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아이작을 향하고, 아이작은 락샤샤를 향하던 손을 회수해 수인을 맺으며 다시 물의 채찍으로 허공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방어를 단단히 굳히고, 방어와 동시에 주변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며, 계산적으로 적의 전투력을 깎아나가는 전투방식. 수계 마법사의 정석적인 전투방식이다.
안에서부터 피가 배어나오는 락샤샤의 팔에 허공에서 모여든 실이 감겨들었다. 그녀는 부상을 입는 그 순간까지 교수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고,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게 정보를 주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공격한거야.’
어느새 손목까지 자라있는 왼팔을 확인하며, 교수는 상황을 정리했다.
‘좁고 제한된 공간. 사방에 락샤샤의 실이 깔려있지만…. 그녀 역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해서 큰 위력은 못 내고 있어. 적은 방어와 동시에 마법을 쓰기 쉬운 환경을 구축하고, 방안의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회피가 불가능한 공격을 시전한다. 중앙의 저 커다란 물의 구체는…. 아마 도시로 흘러들어가는 여덟 개의 강을 통제하는 리드 플로우 마탑의 마력원이겠지. 저게 아이작이 사용하는 마력의 원천이다.’
[극복된 정신쇠약]으로 마구잡이로 하이라이트된 사건들이 순식간에 정리되며 유의미한 정보로 치환되고 있었다.락샤샤의 실이 뒤쪽의 마법사들을 공격하는 장면. 그리고 아이작을 방어하던 채찍의 일부가 그쪽으로 쏘아지고, 일부가 취소되며 다급하게 락샤샤를 공격하는 아이작.
‘아이작은 필요하다면 도시 단위의 민간인들도 버릴 수 있는 냉혈한이다. 전투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제자를 보호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저 주문, 그리고 저 마력의 움직임….. 아하. 1 위계 마법, [흐름 조작] 이로군’
교수도 어설프지만 깨달음을 얻은 어엿한 마법사. 교수의 눈에 마력원에서 제자로, 제자들로부터 아이작을 향하는 마력이 선연하게 보였다.
‘이렇게 마나 반발장이 형성된 공간에서 마나를 흡수하면서 동시에 시전하기는 어렵겠지. 뒤쪽의 제자들은 마력원으로부터 마나를 확보해서 그 마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작에게 몰아주는 역할이군.’
교수는 시스템의 시계를 확인했다.
[죠크만의 달, 18일. 새벽 1시]‘시간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브룬의 병력이 마탑으로 몰려올거야. 그 전에 놈을 제압하고 상황을 정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텐데.’
중요한 것은 상대도 그런 상황을 알고 있다는 점. 아이작은 매우 방어적으로 마법을 운영하고 있었고, 지금으로서는 저 방어를 뚫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도박을 해야 한다는 건데….’
락샤샤의 희생으로 적의 약점은 숙지했다. 뒤쪽의 제자들을 잡으면, 아이작에게 가는 마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락샤샤가 아이작을 잡을 수 있다. 그 약점에 다가갈 수단, 마법사가 구축한 환경을 바꿀 획기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짜자자자작!
“붉은 뮤트. 대단히 깊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로구나. 그렇지, 지능이 높다 하여도 배움이 부족하다면 원시인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마법전은 처음인 게냐?”
아이작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가르침을 배풀듯 교수에게 따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자신의 승기를 확실히 인지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닥쳐라, 인간. 어머니를 위해, 네놈을 죽이겠다!”
일부러 가래 끓는 것 처럼 긁어낸 목소리에, 아이작의 신경이 한눈에 이쪽으로 집중되는것이 보였다.
‘락샤샤의 부상이 생각보다 깊이 보인다. 수 많은 실을 제 몸처럼 조종하는 기술. 저런 섬세한 전투기술은 작은 상처에도 기술의 예리함이 많이 줄어드는 편이지. 더 이상 락샤샤가 부상을 입게 된다면, 우리쪽에 승산이 없어질 거야.’
놈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놈의 관심사.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에서도 드러내는, 나에 대한 흥미.
“그르륵, 인간…. 이곳에서 형제들의 피 냄새가 난다. 나의 형제들을 어디로 끌고갔지?”
교수는 최대한 뮤트 처럼 보이게 말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서 몸으로 락샤샤를 가렸다.
채찍과 같은 물리적 실체를 가진 마법과 달리 대상을 지정하는 마법은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시전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만 해줘도 더는 락샤샤가 그 수분 마법에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교수의 말에 아이작은 한층 더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형제들의 피 냄새라…. 그래. 그래서였던가. 그쪽에서도, 뮤트를 연구하는 우리를 경계하고 있군? 그래서 우리를 노리고 ‘말하는 뮤트’라는 귀중한 패를 도시 한가운데에 던진 것이야. 이것 참 영광스러운 일이로군….”
아이작의 말에, 교수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역시 여기서도 뮤트 연구를 하고 있었군. 녀석들의 본진인 만큼 어쩌면 백작가의 지하 연구실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하고 있을지도 몰라.’
띠링-!
[뮤테이션 광폭화 발동. 혈액을 소모합니다.]치이이익!
몸이 바짝 말라붙는 감각과 함께 전신에서 붉은 증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뮤트의 피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워어어억!”
타앙!
교수의 거대한 몸이 포탄처럼 아이작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어리석은! 압박을 못 이겨 달려들 뿐이라니, 실망이구나!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좀 더 강하고 지혜로워야 해! 새로 태어날 인류의 모태가 되기 위해서는!
짜자자자작!
허공을 후려치던 물의 채찍들이 쏜살같이 교수를 마중 나왔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단 말이다!”
“이런! 위험….!”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교수의 뒤로 락샤샤의 실이 급하게 모여들었지만, 아이작은 공격권 안쪽에 홀로 들어온 교수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압하겠다는 듯 수십 갈래의 채찍으로 락샤샤의 실을 튕겨내며 교수를 공격했다.
파방! 파바바앙!
“끄흐으윽!”
창 처럼 찔러들어오는 물의 채찍이 교수의 몸을 강타했다.
팔에 두 발. 다리에 세 발. 그리고 가슴에 한 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됐지만, 그 충격 때문에 달려드는 속도가 죽었다.
“주제를 알거라 짐승아! 나는 물의 흐름, 직진, 가변, 중압, 생명, 압박의 깨달음을 얻은 6 위계의 마법사일지니! 너 따위에게는 나와 손을 섞을 자격조차 없느니라!”
교수는 순식간에 그를 쳐내고 아이작의 곁으로 돌아간 채찍을 주시하며, 동시에 아이작이 밟고있는 바닥을 살폈다. 기둥없이 나무로 기반을 만들고, 벽에서부터 돌을 짜맞춰 만든 방식. 거기에 구조물을 보강하는 마법을 짜넣는 것이 이 시대의 고층건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마탑의 보호마법이 없다면 단순 건축물로서는 살짝 불안정한 구조지.’
타닥!
너덜너덜한 몸으로 아이작의 앞에 도착한 교수가 물의 채찍에 의해 빈틈없이 방어되는 그의 몸을 향해 깍지 낀 두 손을 도끼처럼 휘둘렀다.
쿠확!
으직, 으지직!
어찌나 빠르게 휘둘러지는지 거의 구체처럼 보이는 물의 채찍이 교수의 팔을 받아내며 건물을 울리고,
퍼엉!
그 충격에 뜯겨져 날아가는 교수의 양 손을 보며 아이작이 굳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같잖구나. 그정도 공격으로 나를 해 할수는….”
“나도 알아 임마!”
그대로 신장의 차이를 이용해,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찍어내리듯 휘둘렀다.
콰앙!
폭발하듯 흩날리는 물방울. 휘둘러지는 채찍에 교수의 다리가 날아갔지만, 그 위력은 아이작의 몸 주변에 둘러진 물을 표면을 타고 허무하게 주변으로 흩어져버렸다.
‘제기랄, 아직 멀었나!’
공격을 받아냈다고 해서 그 충격량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선 두번의 공격에서 비롯한 충격은, 아이작의 몸에 털끝만큼의 피해도 주지 않고 그의 몸 주변에 둘러진 물의 인도에 따라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가 밟고있는, 지면으로.
으직, 으지직!
‘사실 이쯤 되면 부서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하지만 거의 다 왔다. 아이작의 발 밑으로, 살짝 갈라지고 부러진 목재 사이로 아래층의 빛이 세어들어오고 있었다.
교수는 쓰러지는 자세 그대로, 몸을 최대한 뒤로 젖혀 활 처럼 만들었다.
‘머리…. 뮤테이션 광폭화가 있다고 해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서져라아아아!!!”
교수의 남은 왼쪽 다리가 땅을 딛고, 탄력적인 코어 근육이 한껏 뒤로 젖혀진 몸을 해머처럼 바닥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앙!
교수의 온 힘을 다한 박치기가 마탑 7층의 바닥에 작렬하고, 그동안 쉼없이 휘둘러진 아이작의 채찍에 깎여나간대다 앞 선 두번의 충격으로 반쯤 가라앉은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
쿠르르릉!
바닥이 무너져내리며, 7층의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탑의 마력을 총괄하는 마력기관까지 아래층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락샤샤였다. 그녀는 실을 풀어 곧바로 주변을 장악하고, 정신을 잃은 채 떨어지는 교수를 감아 사뿐하게 착지시켰다.
교수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아무리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 정도 상처가 정말 낫기는 하는 걸까요?’
교수의 상태는 심각했다. 양 손과 한쪽 발이 떨어지고, 얼굴은 문자 그대로 피떡이 되어 두개골이 함몰되고 안이 드러난 상황.
물론 한 시라도 더 빨리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는 있었다. 가장 위험한 마법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를 마친 마법사이며, 아이작은 전투를 하면서 자신만의 전장을 구축하는 게 가능할 정도의 마법사였으니까.
수계 마법의 장점은 구체적이면서도 형태가 자유로운 ‘물’ 이라는 매개를 사용함으로서 마법과 마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수력구에서 만들어진 물이 아이스 필드로, 아이스 필드가 다시 히트 앱소버(Heat absorber)로 연결 되듯이.
7층 내부의 습기가 점점 높아지며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부담이 생기던 상황이었다. 시간을 더 줬더라면, 이런 극단적인 수단조차도 쓸 수 없었으리라.
치이이익-
교수의 몸에서는 여전히 붉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바싹 말라가는 중이었다. 락샤샤는 그의 몸을 실로 고치처럼 감싸 보호한 다음 주변을 살폈다.
‘여긴….. 실험실?’
천장이 무너지며 떨어진 곳은 상당히 그로테스크 한 공간이었다. 여기저기에 보관된 생물의 표본에, 알 수 없는 시약이 담긴 병과 여러 가지 칼이 즐비한 모습. 교수가 봤다면 ‘거기랑 완전히 똑같이 만들어놨네!’ 라고 표현할 법한 모습이었다.
콰앙!
실험실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건물의 잔해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온 몸에 두텁게 물의 장막을 두른 아이작의 뒤로 그의 제자들과 탑의 마력원이 위치해있는데, 세어보니 두 명 정도 마법사가 줄어있는게 추락하면서 잔해에 깔려 명을 달리한 모양이었다.
몸을 감싼 물의 장막을 다시 마력원으로 되돌린 아이작이 말했다.
“정석적이군. 마법사가 환경을 구축했다면, 전장을 바꿔라. 마법전에 대해 배운적이 있는건가? 아니…. 감각적으로 그걸 느꼈을지도 모르겠군. 녀석은 여왕이 만든 걸작 중 하나일테니 말이야.”
따각, 딱, 따각!
아이작의 손이 락샤샤의 공격이 완성되기 전에 재빨리 수인을 맺는다. 구축한 환경을 잃어버린 것은 아이작 만이 아니었다. 락샤샤가 재빨리 주문을 방해하기 위해 실을 풀었지만, 아이작이 한 발 더 빨랐다.
“보르트 아이거의 [헤비 레인]”
“….!”
주문이 영창되고, 아이작의 뒤쪽, 마력원 역할을 하는 물의 구체에서 튀어나온 작은 물방울들이 아이작의 손짓에 따라 살아있는 어군(漁群)처럼 실험실을 헤집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한방울 한방울에 ‘중압’의 깨달음이 가미된 물방울.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닿은 것을 부수고 찌그러뜨리는 거력이 담겨있었다.
콰가가가각!
“흐읏!”
헤비레인은 살아있는 어군 처럼 락샤샤의 뒤를 쫒으며 주변에 닿는 모든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시약을 담은 병들이 깨지며 연기를 내뿜고, 금속으로 만든 단단한 실험대도, 수 많은 연구자료가 저장된 책장도, 고풍스러운 조명도, 그리고,
퍼버버벅!
이름모를 뮤트의 사체들도. 모조리 휩쓸려 터져나갔다.
뮤트의 시체가 그 압도적인 폭력에 휩쓸려 허공으로 떠오른다. 조각난 파편 사이로 피보라가 뿌려지며, 그 작은 핏방울들은 중력을 거슬러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뮤트의 피로 이루어진 작은 실이, 천장에 고정된 하얀 고치를 향하고 있었다.
슈우우우-
락샤샤를 쥐잡듯 공격하던 아이작도, 필사적으로 마법을 방해하기 위해 실을 뿌려가며 벽과 천장을 뛰어다니던 락샤샤도 어느순간 실험실의 한쪽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구실에 있던 수십구의 뮤트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이건 대체…?”
“호오. 새로운 능력인가? 그래. 말하는 뮤트라는 명성에 비해 실망스럽기는 했지. 역시 그냥 죽지는 않는게로군!”
얼마 지나지 않아 실험실을 떠도는 마지막 핏방울 까지 흡수한 붉은색 고치가 다시 하얀색으로 변하고, 스르륵 흩어지며 인영을 뱉어냈다.
“스으으읍- 하아아.”
마치 죽음에서 되살아난 망자가 무덤의 흙냄새를 맡는 듯한, 깊고 여운이 있는 첫 숨.
잠시 이해가 안된다는 듯 바짝 말라붙은 자신의 손과 발, 전신을 두루 살피던 교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건….. ‘밖’ 이구나?”
교수의 눈이, 오랜 감금 끝에 다시 세상에 나온 범죄자의 그것과 같은 기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