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0
Chapter. 22. 라스트 퍼레이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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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박!
“어이쿠야.”
대충 멱살을 잡고있던 손이 어느순간 파란 스파크와 함께 튕겨나가더니,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듯 힉힉거리던 월드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보게 교수. 방금 마력 반응이 있었는데, ‘그건’ 갔나?”
“아, 오트만. 밑에 계셨습니까?”
“원래 해당 월드에서 비중있는 조역들은 퍼레이드 카의 주변에 소환된다네. ‘월드’라면, 나도 제법 얽혀있는지라.”
“….봤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 물이 어디 용써서 흐르는가. 그냥 가는데로 가는거지.”
오트만은 언제나와 같이 푸근한 얼굴로 다가와 내 옆에 섰다.
“….‘봤다’라. 그렇다는건, 결국엔 그 녀석이 잘 도착했다는 뜻이군.”
“예. 아주 표정이 활짝 폈던데요.”
녀석을 떠올린 순간 가까스로 가슴에 눌러담은 무언가가 욱 하고 올라왔지만, 억지로 내리 눌렀다.
허공에 쏟아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감정이 아닌가. 더욱이, 수취인이 저 멀리 도시 어딘가로 튀어버렸는데.
“그나저나 저것도 대단하긴 대단하군. 엑스트라 스테이지가 작아도 하나의 세계인데, 세계 전체가 증오하는 대상이 저렇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니. 방금 그건…. 단거리 텔레포트인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본겐가?”
“옙. 인공지능 출신이라 그런가, 4월드 때도 그렇고 공간마법을 잘 쓰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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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깡통새끼 같으니라고.”
가긴 어딜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바스락.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직사각형의 종이 갑이 잡혔다. 빨갛고 하얀 겉부분은 새것 같은 비닐로 덮여 있었으며, ‘Lucky Strike’라고 적힌 뚜껑의 안쪽은 뽀얗고 순결한 원기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에. 바깥세상에 아직도 그게 남아있나? 구시대에 이미 단종된 물건으로 아는데?”
“없죠. 저도 친구랑 벙커 뒤지다가 우연히 찾았습니다. 딱 한 대 얻어 피웠습니다.”
탁, 탁 쳐서 올라온 필터를 입에 물었다. 어느새 손 안에 자리잡은 라이터는, 밖에서 내가 쓰던 황동색 지포 라이터와 흠집도, 닳은 부분도 완전히 똑같은 물건이었다.
칙, 칙-
후우우우….
“배심원이 있으면, 당연히 판사도 있어야지. 안그래? 자칭 ‘월드’씨.”
뭐, 문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른 녀석이니까 나름 이래저래 고려했겠지.
NPC를 사람이 아닌 데이터 덩어리로 취급한 덕에, 완벽에 가까운 운영으로 두 개의 월드를 클리어한 래빗 프린세스는 그렇다 쳐도, 자신의 3월드를 무사 수행으로만 써먹은 천류제 마저 별 탈 없이 엑스트라 스테이지를 나와서 보상까지 받아갔으니까.
고작해야 우르르 몰려와서 ‘왜 그렇게 플레이했냐!’ 라고 성토하거나, 설득하거나, 심하면 고문해서 정신을 파괴하는 수준이 이 작은 세계가 완성자에게 가할 수 있는 압박이라고 판단했겠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그래도 물어는 봅시다. 오트만, 천류제는 왜 보내줬어요? 걔는 솔직히 여기서 그냥 폐인 만들어 내보냈어도 될 것 같은데.”
“….그야, 우리도, 아틀라헤바님도 그땐 너무 지쳐있었거든. 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원하는 완성자의 허들은 너무 높았고, 우리는…. 데이터 소울이 마모되어 ‘오류’가 될 정도로 긴 시간을 실패만 거듭해왔으니까. 정말 극악무도한 악인만 아니면, 어쨌든 세계를 구할 수행능력은 있으니 이대로 괜찮지 않나,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네.”
“거 되게 인간적인 이유네요.”
“이런 꼴이긴 하나, 그래도 다들 인간이니까.”
제재할 힘이 없어서 보내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기대하기엔 GG안에 유폐된 데이터 인격들이 너무 지쳐버린 것이다. 래빗 정도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정도. 천류제 같은 미치광이라도 ‘먼저 나간 래빗이 잘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을 만큼,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판사는, 이 ‘엑스트라 스테이지’라는 작은 세계에서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균형의 수호자는 그들을 내보내줬다. 다소 불쾌할 정도의 교육만 함양한 체.
“하지만, 아틀라헤바님은 여기 안 계시죠. 그분은 데이터 소울이 아닌, 인격을 획득한 관리자 AI, 인공지능이니까. 알다르샥스, 세계수님 같은 다른 관리자 AI들도 마찬가지로 없고.”
관리자 AI들이 4월드에서 모두 시스템의 일부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이 엑스트라 스테이지에 남은 것은 과거에 인간이었던 전자 인격, 데이터 소울들 뿐이었다. 추가로, 갈기갈기 찢어져 서버룸에 저장된 플레이어 한 명의 인격까지.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됐네 됐어. 위대하신 성자, 세계를 구한 용사, 단 셋뿐인 완성자중, 유일하게 엑스트라 스테이지에서 순수하게 축하와 찬사를 받은, GG에 존재하는 모든 인격이 존경하는 대단하신 인격자이시지.”
“어….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보다 거창하니 이렇게 줄여서 말한걸세. 아마 아틀라헤바님이나 다른 관리자분이 여기 계셨어도, 이번 엑스트라 스테이지의 ‘주인’은 자네가 됐을게야. 자네는, 그 누구보다 이곳의 모두를 아껴주었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박교수.
(구)BDSM 캐러밴 대장.
(구)3월드의 성자 겸 용사
(구)4월드의 최면세뇌조교당한 대마왕, 워로드.
그리고, (현)엑스트라 스테이지-4의 판사님.
데이터 소울 하나하나가 GG라는 거대한 세계의 핵심 컴퓨터인 세계에서, 그들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믿으면 진짜로 그렇게 떠버리는 세계에서, 모든 인격이 가슴 깊이 바래마지않는, 세계의 주인.
이 작은 세계에서 만큼은, 시스템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개발자 권한’에 가까운 전능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더라구요. 내 목숨도 구하고, 이 안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사람들, 데이터 소울도 같이 나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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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덫 안에서, 시스템이 아득바득 긁어모은 GG 통제 권한, 그걸 모조리 뽑아내야 겠더라구요.”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유일한 승리 플랜.
세계를 온전히 클리어해 모든 데이터 인격의 축하를 받아낸,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
“허허, 거 참 욕심도 많구만. 그 상황에서도 끝내 전부 데려갈 생각을 했단 말인가? 기억이 뜯겨나가는 와중에도?”
“어쩌겠습니까. 사람이 원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그렇게, 지독할 만큼 욕심을 부린 결과였다.
성공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모난 인격.
원래대로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허겁지겁 결과만 준비한 나의 허술한 계획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부의 도움으로, 그 부족한 과정을 채웠다.
“….울지 마시게.”
“예.”
“좋은 날이 아닌가. 이제 여긴 자네 세계라 자네가 울면 비가 온단 말일세.”
“우산 만들어서 뿌리죠 뭐.”
그 결과, 단 하나를 제외한 모두를 구했다.
단 하나.
늦게라도 찾아가겠다고 호언 장담했지만, 내가 너무 늦어 투덜거리며 직접 찾아온 녀석.
“제가…. 욕심이 많긴 많은가봅니다….”
그 하나가 아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필, 하필이면 네가.
꾹꾹 눌러담은 감정이, 터져나오지 못한 질타가, 막힌 목을 대신해 위로 우회했나보다.
아니면 그냥 수계 마법사라서 물이 줄줄 세던가.
입에서 나온 구름에 눈에서 흐른 빗물을 실어보냈다.
탁, 탁, 지이익-
“담배 한 대 태웠으니까 슬슬 할 일 하죠.”
“그러세. 하긴, 이래저래 시간이 제법 갔구만.”
엑스트라 스테이지가 시작돼고, 한…. 30분쯤 흘렀나?
끽, 끼리리리릭-
철컹!
하늘을 바라보던 성벽포는 고개를 내려 도시를 향했고,
차례를 기다리던 군중들은 화려한 축제 의상 속에서 저마다 가장 잘 쓰는 무기들을 하나 둘 꺼내들기 시작했다.
히어로 유닛 급은 아니라곤 하나, 그들도 무수한 세계에서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영혼. 괭이를 잡았던 손이 산적의 낡은 숏소드를 잡기도, 해적의 커틀라스를 잡기도 했을 것이다.
다들 그들의 영혼을 압착해 마구잡이로 뭉친 원수를 대함에 있어 크게 부족함은 없어보였다.
“알드리치는 어디 가셨습니까?”
“여기 없는 사람들은 다들 그 악적을 쫓아갔다네. 알드리치 그 친구는 특히나 맺힌게 많았는지 많이 서두르던데.”
“….하긴. 여기 있는 데이터 소울이 몇 명인데, 쉬지않고 줘패도 480분은 한참 모자라긴 하죠.”
“억압됐다곤 하나 놈은 관리자 1인분 만큼의 권한을 활용해 시간을 끌고 있기도 하고 말일세. 내 자네 심정을 생각해서 말은 안했다만, 사실 이렇게 여유부리다 정말 놓쳐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처음부터 네놈을 우물에 영원히 처박아버리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예, 예. 그럴 일 없습니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엑스트라 스테이지.
어느덧 스테이지의 중심, 왕성에 도착한 퍼레이드 카 위에서 나는 손을 들었다.
뚜둑, 우득. 뚝!
담배, 라이터 같은 작은 것들은 생각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관리자 AI는 그거랑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되니까.
가장 명확하게 이미지 할 수 있도록, 수인을 맺는다.
중지와 엄지로 만든 원과, 약지와 소지로 만든 시침과 분침 여러개.
다변(多變)하는 시계를 형상화한 수인을 들어올리며, 상상한다.
“시스템, 콜.”
“플레이어 ‘professor’ 고유 권한. [GG 시간 배율 조정 권한] 사용.”
단언컨대, 시간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
띠링-!
[Command_ accepted] [1 : ???]이거 담당하는 시스템이 자리를 비워서 그런가, 좀 심심하게 나오는군.
“에, 어디보자. 480분, 여섯 시간이면 하나, 둘, 서이….”
오트만이 뒤에서 무릎을 치며 뭐라뭐라 감탄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암산한 끝에 허공에 계산식을 쓰고 나서야 답을 적어 넣었다.
“…. 6대 1,927,200. 딱 이 정도.”
—-띠링!
[해당 월드- ‘엑스트라 스테이지_4’의 시간 배율이 6 : 1,927,200. 육. 대. 백 구십 이만 칠천 이백. 으로 설정되었습니다.]기계적인 안내음과 함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의 테두리가 변한 것 같다고 해야하나.
“허어어, 교수. 그것은….”
“예. 제가 3월드를 클리어하고 받은 권한입죠. 이건 세계수님, 아틀라헤바님에게도 없는 완성자 고유의 권한입니다.”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본인이 등판하지 않는 한 이것은 건드릴 수 없다. 이것은 셀 수 없이 반복된 시뮬레이션, 월드에 단 한번도 속한 적 없이, 완성자가 올 때까지 그 이상한 자판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권한이니까.
“그렇게 됐으니, 다들 월드 저거한테 풀고 싶은 것 있으면 마음~껏, 원하는 만큼 푸세요. 저는 마지막에 할테니까.”
“허허, 참. 여유가 생긴 것은 좋다만. 먼저 하지 않고? 아무리 쌓인 원한이 많다 한들, 자네들만 한 사람이 있겠나?”
“그래서 나중에 한다는 겁니다.”
….탁, 치익!
두 번째 담배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남은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되어 떠올랐다.
“제 화풀이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래 걸릴 예정이라서요.”
나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누군가의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이거 내덕이다? 다 끝나면 엄청 커다란 제단도 올리고, 피라미드만한 봉분도 쌓고! 명절 때마다 통조림 종류별로 다 깔아놓고! 알지?’
“….누구누구 몫까지 2인분이라.”
-콰앙!
시작을 알리듯, 도시의 골목 어귀에서 성벽포가 뿜은 불꽃이 터져나왔다.
성대한, 아주 성대한 마지막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
이 자리에 없는, 단 하나의 결원을 기리는, 성대한 축제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를 쪼개어 헤아리고 있을 시스템의 뇌리에 희망이 가득하길 빌었다.
꼭 480분이 되는 시점에 한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그년의 얼굴이 얼마나 인간의 절망을 잘 흉내 내는지 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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