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3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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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삑-
규칙적이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나를 반긴다.
쿠당탕탕!
뭔가 철제 의자가 뒤로 나자빠지는 것 같은 소리도,
“….수, 교수! 내 말 들려? 여기 있어?”
어렴풋이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도,
드르르륵-
쾅!
그 목소리의 주인이, 좀전의 의자로 추정되는 것으로 그녀와 나 사이를 가린 쇳덩이를 서툴게 내리치는 소리도.
끄극- 끼기긱!
쇠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스며든 LED의 건조한 빛이 눈에 아렸다.
삑— 삑—
심박을 펄스로 표현한 화면 옆으로 쇠지레를 들고 숨을 몰아쉬는 여자가 보였다.
투명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 긴 병상 생활로 인해 조금은 마른 체구와, 덕분에 피부처럼 어울려 보이는 하얀 환자복에 그에 대비되는 길고 윤기있는 흑발.
“다….ㄴㅏ-”
“말하지 말고 숨 쉬는 데 집중해.”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혹은, 스피드 웨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이며. 나의 가장 오랜 인터넷 친구 중 한 명이며.
“당신이 들어간 지는 9시간 38분이 경과했어. 37분 전부터는 GG에 연결된 접속기란 접속기는 모두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고, 20분 전에는 활동중인 운송용 드론과 GG 게시판이 동시에 다운됐으며, 3분 전에는 당신 계정과 연동된 돔의 언론/방송부서에 대량의 데이터 덤핑을 이용한 디도스 공격이 확인돼서 다들 그쪽으로 넘어간 상황이야. 2분 전에 당신의 몸이 움직였고, 플레이어 로그에 ‘로그아웃’이 확인됐으며, 그 순간 접속기가 과부화를 일으켜 먹통이 되어버려서 내가 억지로 벗긴거야. 그것 말고도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얘기해 줄 테니까 당신은 온전히 ‘돌아오는’ 것에 집중해.”
“숨을 쉬고, 심장의 박동을 의식적으로 느끼고, 손끝과 발끝의 감각에 집중해.”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아서, 안부를 묻기도 전에 상황 파악부터 시켜주는, 나의 연인.
확실히 왜 내가 있는 연구실에 그녀밖에 없는지, 뭐가 과부하고 다운이고 디도스는 뭔 소린지 당장 알아야겠다 싶은 게 산더미 같긴 했지만.
툭.
“….미안.”
지금 당장은, 이것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9시간 38분.
찰나였어야 할 접속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나 버렸다.
눕자마자 일어난다고 호언장담했던 놈은 다나가 저 고운 손으로 고장난 접속기를 때려 부술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월드 클리어 이후 접속 종료가 고작 일주일 전의 이야기였던 그녀에게 있어, 또다시 일주일만에 빌어먹을 가상세계에 들어가 또 제 시간에 나오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늦어버렸다.”
그 감정은, 아마도 내 뒤에 내던져진 작은 철제 의자와 물집투성이가 된 다나의 손에 쥐어진 쇠지레. 아직도 그것을 놓지 못한 채 바르르 떨고있는 팔과 그 팔보다 더욱 떨리는 눈동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온 사방에 울리는 경고음, 알아보진 못해도 뭔가 한참 잘못됐다고 떠들어대는 것만큼은 분명한 여러 화면과, 아마 방금전 까지 우수한 해커이자 프로그래머로서 그 복잡한 화면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을 다나.
내가 멍한 정신을 억지로 붙잡아가며 저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고 너와 함께한 기억이 얼마나 의지가 됐는지, 왜 늦어졌는지 따위를 막 말하려는 순간-
“….미안….해?”
갑자기 뚝- 하고 멈춰선 그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장난 목각인형처럼 손에 든 쇠지레를 천천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어….”
어째서인지, 무수한 생사의 경계에서 단련된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크드드드드득- 철컹!
조심히, 아주 신중하게 팔을 당겨봤지만, 역시나 굵은 쇠사슬은 내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몸이 몸인 만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구속해놓은 것이겠지. 음음. 저번에도 그랬고.
“바로,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꽈아악!
“시스템은 먹통이고, 당신 계정에는 초 단위로 페타바이트급 압축 데이터가 쏟아지고, 과부하에, 경고음에, 그 가운데 당신이….”
“다, 다나?”
높이 들어 올려진 쇠지레가 깜빡이는 경광등의 빛을 받아 번쩍였다.
음. 내 접속기는 충분히 벗겨진 상태고, 나는 온전히 정신 차렸음을 충분히 표현했으니, 저 쇠지레가 건전한 이유로 들어올려질 이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지난 아홉 시간 사십 분 동안 내가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이, 일단 진정하고. 이쪽 내 몸이 튼튼하다지만 지금 그걸로 맞으면 정말 돌아오지 못할 강을-”
“….일주일. 그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고, 죽다 살아 돌아와서는 겨우 일주일 만에 다시 기어들어가서는…. 심지어 그 전에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날, 나를…. 아,안아주고, 꼭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다나! 자, 잠깐만!”
“이, 이이이- 무책임한 남자야!!!”
쐐애애액-!
까앙!
끝내 휘둘러진 쇠지레는 티 없이 맑고 고운 소리를 울리며 내 머리 바로 옆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고, 고정하시옵소서 마마….”
“안해. 아니 못해.”
“옙.”
와. 다나는 이렇게 화를 내는구나.
그러고보니 다나는 살랑살랑 부드러운 아가씨였지만, 스피드 웨건은 제법 시니컬한 면이 있는 사용자였지.
귀여워라. 당장 접속기에 박힌 쇠지레를 잡고 끙끙거리고 있지만 않았으면 더 여유있게 감상했을텐데. 빗맞춘 게 아니라 빗나간 거구나. 하긴. 다나가 제법 무거운 쇠지레를 풀 스윙으로 휘둘러 내 귓가에 박아넣을 만큼 컨트롤할 근력이 있을 리가 없지.
어쨌든, 이렇게 돌아와서 분노한 다나의 빠루에 맞아죽을 순 없기 때문에 나름 필사적으로 변명을 자아냈다.
“저…. 다나. 사실은, 이게 나름 세계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섞여있는 사한이었겠지. 당장 드론에, 서버에, 게시판까지 모조리 내려가 있으니까. GG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가 얽혀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아…. 그리고 사실은 저 안에-”
“아무 관계없는 사람 수만명의 목숨도 걸려있고, 당연히 미룰 수 없을 만큼 코앞에 닥쳐있고, 당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을거야. 그 정도가 아니면 교수 당신이 그렇게나 진지하게 한 약속을 어기고 이렇게나 애를 태웠을 리가 없으니까.”
“옙. 맞습니다.”
그리고, 모조리 격추당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지만 다나는 유-명한 정보꾼 출신이고, 당연히 나만큼이나 주어진 정보를 가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모해. 무모한 만큼 다정하고, 다정한 만큼 몸을 사리지 않아.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 좋은 쪽으로 브레이크가 없어.”
탱- 탱그랑!
기어이 쇠지레를 뽑아낸 다나는 손아귀에 힘이 빠져 그것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스스로를 챙기라곤 말하지 않을게.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도 좋아했고, 알아서 좋아했으니까.”
피투성이가 된 다나의 손이 나의 뺨을 감싼다.
“그래도. 당신의 행동에 박교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그 자리에 나를 세워줘.”
“더 노력할테니까. 당신이 다시 한번 모두를 위해 몸을 던지려 할 때, 내가 대신 당신을 멈춰 세울 수 있게, 그만큼 당신의 안에 자리잡도록 노력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혼자 두고 가지 말아줘.”
투둑, 툭.
흘러내린 눈물이 내 얼굴을 적셨다.
다나.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너는 내게 28년간 그런 존재였다.
기억이 사라지고, 존재가 뿌리부터 변질되는 그 고통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북극성처럼 변치않고 빛나는 이정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오직, 돌아오라는 그 말만이 망망대해 속에 길잃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었기에 길을 잃지 않고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이곳에 돌아왔지만.
“알았어.”
다나에게만큼은,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끄드드득!
까각! 끼기익!
쇠사슬을 끊어낸 팔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웨엥-! 웨엥-!
탁탁탁탁!
[박교수님 담당! 담당자 어딨어!] [벌써 몇 분전에 접속 신호가 끊겼는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야! 그 방에 남아있는 게 또 누가 있지!] [다, 다나 양이 혼자 남아서….] [큰 소리가 났다! 서둘러!]슬슬 돌아오기 시작한 청력이 불청객의 등장을 알리는 가운데.
“….보고싶었어, 다나. 네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접속기 안으로 파고든 그녀를 품에 안은 나는, 조용히 떨어져나간 뚜껑을 들어 부서진 부분에 맞추었다.
끄기이이익-!
그리고, 연결부위를 손끝으로 사정없이 비틀어 뭉개버렸다.
벌컥!
척척척척!
“변종 진압 조, 진입!”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게.
“다나 양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음!”
“박교수님의 접속기에 생체반응 확인!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만.”
“똑바로 보고해! 움직임은 없는데!”
“그…. 접속기 안에 생체반응이…. 둘 입니다!”
“….음?”
그리고, 다소 낯을 가리는 내 품안의 누군가가 수줍음에 도망가버리지 않게.
“교수, 잠깐…. 읏! 밖에 사람들이…. 당신은 의사도 봐야하고, GG쪽 전문가 소견도… 아앗!”
“글세. 지금 이 순간 내 건강에 제일 필요한게 뭔지 나는 알 것 같은데.”
그렇게, 9시간 40분과는 비교도 안될 불안을 헤쳐온 사람으로서, 마침내 품안에 들어온 행복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꼬옥 품고 말했다.
『….박교수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
분위기 조지지 말고 냉큼 나가라고.
문앞에서 웅성거리던 인물들이 돔의 정예로서 위기시 대응 매뉴얼을 따르는 것과, 우그러진 접속기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륙 단위 학살자 박교수의 살기 어린 경고에 따르는 것 중 고민하는 사이.
탕! 타앙!
“자자, 보다시피 저 안에서는 BDSM의 미래와 관련된 매우 심도있고 역동적인 회의가 준비중이니까…. 경사임을 감안해 경고 사격은 두 발 까지로 해주지. 장전된 총알은 아직 많이 남았고, 나는 더 이상 천장에 구멍을 낼 생각이 없다. 1초도 낭비하지 말고 꺼져.”
“이, 이안님! 하지만, 자칫 교수님의 상태가 온전치 않으면 다나 양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저 둘…. 방,해하면…. 앞으로 태어날 내 조카를 사, 살해한 것으로 가, 간주할….거야! 키히힛!”
“우, 우아악! 저, 저는 47구역에 아내와 딸이!”
헐레벌떡 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익숙한 두 목소리가 총성과 비명으로 불청객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후우우.
“좋네.”
“….변태.”
“그거말고. 악! 아니, 다나! 그…. 안 좋다는건 절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친구들, 메말랐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황무지의 공기.
경험으로 따지면 저쪽에서 산 시간이 더 오래됐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피와 화약, 죽음과 괴물이 넘치는, 멸망이 진행중인 나의 세계.
딱히 저쪽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지만, 분명 GG안에도 수많은 인연과 좋은 추억이 가득하지만….
“정말로. 고향에 돌아왔구나, 해서.”
그래도, 나의 고향이었다. 내가 돌아와야 할. 나의 자리.
“….잘 돌아왔어.”
“그래.”
내 사람들이 기다리는, 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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