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5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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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___딕___딕___
띠링-!
『전체 알림 : 중대한 업데이트로 인해 해당 게시판이 잠시 휴면 상태가 되었으며, 일련의 과정이 끝나 모든 기능이 정상화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로 [OFFLINE] 만 깜빡이던 화면에 다시 빛이 돌아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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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798]
↳ palace : 오, 게시판 1번 글 귀한 것 보소. 리셋됐네 이거.
↳ gigiguegue : 이 역사적인 순간에도 이 지랄을 하고 있네.
2.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257]
↳ 아기돼지3인분 : GG는…. 살아 있는거지!
↳ 글루미선데이 : 언젠간 이 짓도 끝장 날거라곤 알고 있었는데, 막상 까만 화면 보니까 숨이 턱….
↳ 볼보808 : 쓰바 손목 그었는데 집에 지혈제가 없네. 죽나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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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은, 아니 생존자가 있는 모든 쉘터는 기쁨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물론 멸망 이전의 관점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하나가 두 시간 정도 점검 때린 것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멸망 이전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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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야, 각자 주 활동하는 게시판에서 사망자 확인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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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후의 황무지에서 GG 게시판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사와 직결되는 어마무시한 이벤트였다.
돔의 영역안에 사는 생존자의 삶은 단순하다. 돔에서 할당한 작업을 수행하고. 작업에 대한 보수로 식량, 생필품 따위를 받으며. 다른 부업이 없다면 지정된 생존지로 돌아와 칼로리 소비를 최소화한다. 즉, 잔다.
이것이 ‘민간인’이라 통칭되는 돔의 영역에 기생해 사는 일반 생존자의 삶.
만약 돔의 영역 밖을 기준으로 한다면? 더욱 단순해진다.
규칙적인 기상, 쉘터 점검, 보수, 남은 물자 확인, 청소, 3평 남짓한 온실 가꾸기, 그리고 모든 정비가 끝났을 경우, 칼로리 소비 최소화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자는거다.
돔 생존자는 정해진 일과라도 있지, 이쪽은 본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일과 밖에 없다.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은 대부분 오전이 다 가기도 전에 끝나버리며, 오래전 개인 생존자 박씨처럼 발전기가 맛이 간다거나 하는 특별한 ‘일’이 생기면…. 대응하지 못하고 죽는게 평범한 수순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삶.
그런 황무지에서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장, [GG 게시판]은 가뭄의 단비요,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우울증을 비추는 햇살이요, 누군가에게 내보이기 위해 내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채우게 하는 활력의 원천이다.
그런 GG 게시판이 무려 2시간이나 아무런 전조도, 공지도 없이 픽-! 하고 꺼져버렸으며, 더욱이 게시판과 더불어 황무지 여가생활의 쌍두마차인 게드로이츠의 게임마저 갑작스레 다운되며 플레이어를 모조리 튕겨내 버렸으니.
내심 ‘언젠가 GG를 구성하는 위성도 고장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품고 살던 유저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오늘이 둠스데이였구나!’ 하고 절망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단순히 좌절한 것을 넘어 ‘앞으론 뭘 기대하며 살지?’ 같은 불안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생존자들이 폭도가 되어 어퍼 돔으로 향하기 직전.
게드로이츠의 게임과 GG 게시판은 떠날 때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돌아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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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관리자 ‘professor’ 공지☆
– professor :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생존자 여러분.
박교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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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을 자축하는 흑백의 물결 속에, 오색 찬란한 빛을 번쩍이는 특별한 글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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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두비두 : ????
↳Bulls-oneShit : 뭐고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28기 : 라투라!
↳迫心 : 돈 많으면 이런 것도 해주냐
↳Jokass : 저 새끼 여기서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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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축제의 장 한가운데 홀로 튀어버린 그 글은 흥분한 사람들의 관심과 환영, 시기를 한번에 불러 모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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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관리자 ‘professor’ 공지☆
– professor : 에에- 다름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부터, GG는 제껍니다.
제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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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응집된 관심의 한 가운데에, 폭탄을 던졌다.
혼란, 불신, 경악, 그리고 수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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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티얄 : 그래도, 박교수 정도면 뭐.
↳느금마예토전생 : 박교수가 돌린다면 뭐.
↳UWU : 박교수 님! 님! 그분이 당신 친구에요?!
↳느금마예토전생 : 응 나 동네 생존자1이야~ 아무도 못찾아~
↳IN and OUT : 어쨌든 최악은 피했다는 느낌입니다. 정말 GG가 누군가 소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면, 그간 행보로 봤을 때 그 주인이 박교수씨가 되는 것 만큼 이상적인 결과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Jokass : 뭔소리여. 제일 이상적인 건 본인인 내가 주인이되는거지. 저놈이 아니라. 어우, 씨발 배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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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착실히 쌓여온 이미지 덕분에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것을 떠나 과거의 GG보다 더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정신병 양산머신’이라 불리던 GG의 난이도가 완화되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여러 월드의 모습을 설정해 글로 올렸으며, 심지어는 GG의 온라인 화를 통해 진정한 ‘탈 황무지’며 꿈에 그리던 ‘통속의 뇌 라이프’며 하는 이야기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게시판은 박교수 찬양으로 들끓고, 돔 구석탱이에 천막치고 살던 ‘광명교단 황무지 지부’의 관계자들에게 무수한 개인 메시지와 입교 문의가 빗발쳤으며, 상의도 없이 폭탄을 터트린 박교수의 개인 메시지도 총장, 우진 영감, 레빗 프린세스 등 기타 고위급 인사의 통화 요청에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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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관리자 ‘professor’ 공지☆
– professor :거 대단히 해피하신 가운데 죄송합니다만.
오늘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여러분이 그동안 사랑하고 즐겨왔던 GG의 서비스 종료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미안하게 됐수다. 좋게좋게 가려다보니 다 부숴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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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는 그 환호의 중심에 폭탄을 또 터드렸다. 첫 번째가 피냐타였다면, 이번엔 생화학무기나 뭐 그런 쪽으로.
환호성은 비명이 되었고, 찬양은 저주가 됐으며, 사람들은 서랍에 넣어둔 밧줄을 다시 높은곳에 묶어 목매달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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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관리자 ‘professor’ 공지☆
– professor : 대신, 박살나기 전에 확실히 마무리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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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자신을 찢어죽이려 이를 박박 갈고있을 생존자들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본론을 적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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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or : 서버룸,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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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지친 다나는 아직도 그가 나온 접속기 안에서 자고 있었다.
바깥의 수많은 생존자들이 한 마음으로 환호하던 소리도, 비명을 지르던 소리도, 굳게 걸어잠근 연구실 문을 마구 두드리던 요원들의 소리도 한 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잠든 다나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타닥, 탁, 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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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or : 좌표도 찾았고, 보안코드도, 갈 방법과 이동 수단도 전부 확보했습니다.
정확히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이 안되었지만.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본인이 직접 남긴 영상 기록은 그가 핵전쟁 이후 황폐화된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 준비한 기술들이 잠들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안상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제가 경험한 온갖 악독한, 치밀한, 개씨발 좆 같기 짝이없는 권한 획득 과정을 생각하면…. 정보의 신빙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마 그만한 개지랄을 떨었는데 뻥카를 치겠습니까. 게드로이츠쯤 되는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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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안전한 40번대 구역, 나아가 위험지역으로 여겨지는 30번, 50번대 구역에서도, 쉘터에 숨어있는 생존자도, 오늘도 사람을 죽일 궁리에 골몰하던 스캐빈저도 작은 화면을 뚫고 들어갈 듯 모여들었다.
이전의 충격이 GG라는 게임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충격은 황무지 생존자 전체, 아울러 전 인류에게 해당되는 소식이었다.
영겁같은 찰나의 기다림 끝에, 유달리 오색찬란한 글이 마침내 게시글 상단에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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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or :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추워졌습니다. 31번구역 초입에 있던 돔의 방사능 제독용 전초기지가 30번대 구역으로 이전할 만큼 방사능도 많이 내려왔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비참한 삶이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삶을 붙잡아야 하는 것은, 이렇듯 어딘가 우리가 찾지 못한 희망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지만, 그 너머에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왔던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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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정보를 내포한 글이다. 눈치 빠른 자는 충분히 그 암시를 이해할 수 있겠지. 당연히 영 총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이런 내 행동을 말리고, 비판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기어이 총장이 술에 취할 정도로(장담컨대 입김에 불이 붙을 정도로 마셨다.) 대작을 한 다음, 곧바로 내 접속기가 있는 연구실로 돌아와 글을 올렸다.
가짜였으나, 누군가의 메시아로서 두 번이나 세상을 구한 사람으로서. 당장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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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낙원 게드로이츠의 게임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푸른 바다의 시원함도, 녹음이 짙은 숲의 상쾌함도, 가상 세계의 유쾌한 주민도, 신비한 모험도 즐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짜 낙원은 사라졌지만, 저는 여러분이 고작 그것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갈 곳을 잃고 그저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우리의 삶에 지금 이 순간 명확한 이정표가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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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살아남는 것. 그 외의 시간은 오직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하는데 쏟아붓던 사람들에게, 사라진 가짜 낙원을 대체할 것을 쥐어준다.
희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에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하고 제자리만 맴돌던 사람들에게 서버룸이라는 가장 명확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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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룸. 금방 가서 후딱 찾아오겠습니다.
사랑하는 생존자 여러분. 언제나 우울증은 우리 세대의 가장 악명높은 사신이자 전염병이었으며, 서로가 서로의 치료제이자 버팀목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다들 장수합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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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끈적하게 고여만 가던 사람들에게 생의 가치를 상기시켰다. 스스로의 움직임이 무언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멍하니 죽음을 기다리며 현실을 도피하던 플레이어에서, 이 시대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류로 탈바꿈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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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or : 아, 하나 더.
수여받은 권한에는 GG드론 통제권도 포함됩니다. ‘느금마예토전생’, 너 어디 사는지 다 안다 이 말임. 갑자기 삑- 삑- 소리 나면서 운송드론이 뭘 잔뜩 짊어지고 떼로 달려들면 내가 보낸 줄 알고 얌전히 뒈져라.
↳느금마예토전생 : 사, 살려주시옵소서….
↳PiloPilo77 : 쩐다 시바
↳Jokass : 너 우리 쪽으로 넘어와봐…. 주세요. 빨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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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음, 이쯤하면 되겠지.”
황무지 인구가 100이라면, 게드로이츠의 게임이 주는 가상의 즐거움, 혹은 방송을 통한 간접경험에 심각하게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이 90이다.
당장 ‘GG 서버 종료합니다-’ 하는 순간 그 생존자의 9할이 지독한 심심하게 빠지게 된다는 뜻.
심심함이라 표현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앞으로에 대한 기대 한 점 없이 맛없는 밥을 살기 위해 씹으며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죽음과 폭력의 공포에 노출되어있는- 그런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무더기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장담컨대, 갑작스런 GG의 소멸은 생존자 대부분의 우울과 무기력을 촉발할 것이다.
그래서 극비로 취급되어야 할 서버룸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내일에 대한 기대이며, 실존하는 도시전설이자 모든 황무지 생존자의 뇌리에 ‘그나마 희망’이라고 할 만큼 남아있는 것이, 지금껏 우리를 살려둔 기술. 쉘터, 드론, 게드로이츠의 게임과 그것을 위한 위성들, 경매장 따위를 남겨둔 안드레이 게드로이츠에 대한 믿음. ‘서버룸’이라는 마법과 같은 해결책에 대한 동경이니까.
쾅쾅쾅!
“박….교수! 문….여시오! 이런, 이이…. 우욱! 중대차한 일을, 다른 것도 아닌 서버 룸….의 존재를, 상의도 없이…. 우욱!”
“취, 취한 총장님이다.”
“취한 총장이야.”
“이럴 수가. 총장님이…. 취했어!”
“내가 오늘 죽는 건가? 살아 생전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총장님을 보다니!”
언제 찾아왔는지 내가 우그러뜨린 문을 두드리는 총장의 고함과 그런 그를 귀신이라도 보듯 바라보는 돔 요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
“과도한 흥분도…. 집단에 있어선 독….이야! 당장 몇 시간 안에…. 주변 모든 생존자들이 행정부 건물로…. 달려들거요! 이런건…. 단계적 절차를 거쳐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 우욱!”
음음. 역시 영 총장이야. 이미 벌어진 일 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집중하는군. 물론 그거야 나도 알지. 기쁨의 총량으로 따지면 만년 리그 꼴찌만 하던 축구팀이 프리미어 리그 우승하는걸 본 훌리건의 백만 배쯤 될 테니까.
지금만 해도, 당장 창 밖에 흥분한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거든. 막 괴성도 지르고. 허공에 기관총도 갈기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시장 구석에 세워진 사이비 종교 건물도 박살내고 그 자리에 실물 사이즈 내 간판을…. 으음. 이건 좀.
아무튼.
“거기서부터는 댁들이 할 일이고, 난 내가 해야 할 일만 한 것 뿐입니다~!”
대충 난리가 난 문밖을 향해 나몰라라~ 하겠다는 의향을 시원하게 비춰주었다.
뭐라뭐라 욕하는 소리, 당장 빔 커터로 문 뜯어내라는 소리, 혹시나 변종 박교수가 날뛸까봐 특별히 튼튼하게 제작된 문이라는 변명과 취한 총장의 입김을 정면에서 들이쉰 요원이 쓰러지는 소리가 이어지고.
“후우. 후어. 그렇다면 적어도…. 자네가 말하는 그 ‘내가 할 일’이 뭔지는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의 언동과 행사가, 이렇게나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을 알고 있다면!”
결국 속을 게워낸 총장이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문 너머를 향해 물어왔다.
타닥, 탁. 탁!
“내가 할 일이야 뭐. 정해져 있는 거 아닙니까.”
경쾌한 타자소리에 난리가 난 게시판이 꺼지고. 그 뒤에 가려있던 내 계정의 상태가 커다란 화면에 떠올랐다.
플레이어 이름, 플레이 기록, 박교수, 소속된 대화방 목록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익숙한 글씨들 아래로 추가된 생소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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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된 콘텐츠/서버에 보관됨]1. 에블린 리거-의 인격 데이터
2. 에이브릴 퀼-의 인격 데이터
3. 엔브라이스 마르퀼트-의 인격 데이터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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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z25. 젠 브나우-의 인격
Taz26. 제이드 오슬로우-의 인격
Taz27. 조성환-의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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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메시아. 구원자. 뭐가 됐든,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해보려고.”
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끝도 없이 내려가는 글자들.
내가 구해낸 사람들의 이름 앞에 말했다.
내가, 당신들이 만들어낸 완성자로서 여기에 있다고.
과거와 달리 힘도, 권력도, 정보도 모두 손아귀에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었고,
그만큼, 내 손이 닿는 사람들의 범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하고싶었다. 뭔가, 주변에 등 떠밀려 흘러온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이렇게나 무언가 하고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
“세상. 나의 월드를 내 손으로 구해보고 싶어.”
와장창!
투타타타타타! 펑! 펑!
『47구역 돔 집행부 치안유지 부대 입니다! 지금 당장 해산하고 지정된 작업으로 돌아가주십-』
“비켜! 행정부에 입대 신고하러 갈거다!”
“BDSM 본부가 텅 비었어! 전부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
“할 일을 가르쳐줘!”
“숨겨둔 식량이 있다! 어디에 기부할지 알려줘!”
“박교수님을 만나게 해줘!”
『진정하고 돌아가십시오! 더 접근하면 최루탄을-』
끼이익- 우지끈!
와아아아아아!!!!
펑- 펑-!
콜록 콜록! 케엑!
와아아악!
밀어어어!
그렇게, 수많은 고련 끝에 이제야 스스로 뜻을 세운 성자의 탄신일은. 흥분한 군중의 고함과 행진, 악을 쓰는 민중과 그보다 더 악을 쓰는 군인, 쏟아지는 최루탄의 매캐한 향기와 뒤엉킨 달아오른 공기로 성대하게- 성대하게- 다분히 그의 취항에 맞게-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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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의 한 편에서 희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갈 즈음.
잊혀진 다른 한편에서도 또다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우우우우—-』
쿠우웅!
….치익-
[헌팅 팩, 팩 리더. 대상 개체의 침묵을 확인.]치익-
[울프 팩. 리더 사망으로 직위 인계. 본인을 끝으로 피해보고 마침. 아군 생존자 전무.]치익-
[팩리더, 울프 헤드다. 살아남은 인원은 내가 지정한 인원의 발신기를 중심으로 팩 단위로 부대를 재편성, ‘사냥물’을 네스트로 옮긴다. 신속하게 움직이도록.]치익-
[확인]치익-
[확인. 재사용 불가능한 아군을 처리하고 합류하겠음.]치익-
군용 수신기 특유의 잡음이 무전의 끝을 알렸다. 스스로를 울프 헤드라 말한 남자는 방독면 너머의 참상을 눈에 담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끔찍한 참상이군요.”
“참상이라. 그래. 참상이군. 몇이나 죽었지?”
“팩 리더를 포함한 팩 단위 부대 여든 아홉. 중점으로 편성된 사이보그 부대 서른 둘. 그리고, 스웜알파 레드 캐딜락의 친위대와 노이지 팩, 그의 휘하 정예 군단이 대부분 죽거나 피폭되었습니다.”
“쯧쯧쯧. 빨갱이 녀석, 참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는데 말이지. 언제나처럼 열정이 과했어. 아무리 내 자리가 탐나도 그렇지 원….”
“그건, 렙터께서 사냥물의 정체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흘려서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이런, 들통났나? 이거이거, 자네 밑에서 일하는 노이지 팩도 꽤나 수완이 좋은 모양이군. 아아, 내 밑에 놈 모가지를 몇 명이나 쳐내야 될지 원.”
현대전의 기적이라 불리는 광학 병기의 흔적 하나 없는, 과거의 대전쟁을 방불케 하는 끔찍한 전장.
무수한 포격을 받아낸 대지는 벌겋게 달아올라 녹아내렸으며, 두텁게 쌓여있던 방사능 낙진은 흐르는 땅의 열기와 가스에 섞여 다시금 희생자를 찾아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도의 중심에, 생물이라 표현하기 힘든 거체가 쓰러져 살이 타는 냄새를 자욱이 피워올리고 있었다.
“이거 보고 있으니 식욕이 당기는 군. 자네, 작전 지휘한다고 어제 저녁부터 걸렀지? 가서 나랑 점심이나 함께하지. 새로 들인 주방장이 스테이크를 아주 제대로 굽거든.”
“그전에…. 각하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탁.
거울보다 더 말끔한 구두를 신은 남자는, 쇳덩어리 요새 위에 발을 멈춰서며 생각했다.
지금 말을 걸어온 상대에게 자신의 권유를 유보하고, 그의 행사를 지연시키며, 그에게 감히 질문을 해올 권한이 있는가.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여, 저자를 살려둘 가치가 있는가.
“….그럼. 되고말고.”
남자, 구스타브 알 하르브-렙터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자네같은 효율 결벽증 환자가 무의미한 질문을 할 리가 없으니. 내 발걸음을 멈출 만큼 궁금한 것이 있다면 들어봐야겠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종전의 작전은 감히 눈앞에 두기 혐오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울프 헤드, 그가 말하는 참담함은 여기서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원자력 발전소 중심부에 가까운 방사능에 작전 인원 전원이 생사에 관계없이 사망자 처리되는지 등을 말하는게 아니었다.
“저 또한 ‘사냥물’의 가치는 인정하나…. 그것이 굳이 렙터가 지향하는 미래에 적합한 이득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각하께선, 어떤 연유로 저것을 위해 크나큰 손해를 감수하셨는지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해하면. 자네도 제 2의 렙터가 되고싶나?”
“그저 제 행사를 각하가 원하는 방향에 더욱 효율적으로 맞추기 위함입니다.”
큭큭큭큭.
진심어린 존경과 충성이 가득한 목소리에, 렙터는 목과 어깨, 절반 가까이가 금속부품으로 교체된 얼굴을 울리며 웃었다.
“아아, 이것 참. 내 입으로 말해놓고도 자네 성격을 까먹었지. 과연 자네다운 질문이로군.”
“효율. 그래. 효율만 따지면…. 이번 작전은 아주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어쩔 수 없네. 이것이야 말로 자네가 말하는 ‘렙터 소사이어티의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의 일이니까 말이야.”
“그 방향은?”
“미안하지만, 이건 내 절친한 ‘친구’가 아니면 가르쳐주지 않는 비밀이라네.”
구스타브 알 하르브 렙터는 불쾌함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케셀링을 보며 그의 떨어져나간 살점을 대신한 금속 부품을 어루어 만졌다.
그 녀석이었다면 지금쯤 모든 것을 털어 놨을 수도 있겠지. 그의 인생에 단 한명, 부러워하고 선망했던 인간. 세상에 유일하게 선명한 인간처럼 보였던, 끝내 그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고 폭발해버린 베스트 프렌드였다면…. 그 무뚝뚝한 얼굴에 그의 꿈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스웜 알파 페도어 ‘렙터’ 케셀링. 자네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스웜 알파…. 말씀이십니까.”
“그래. 레드 녀석이 죽었으니 빈 자리는 채워야지. 자! 이제 그만 떠들고 식사나 하러 가지. 슬슬 자네를 그냥 쏴버리고 밥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가 고프니 말이야.”
“모시겠습니다.”
케셀링은 더 이상 그를 거스르지 않고 뒤를 따랐다.
방사능이 가득한 대지. 감히 누구도 침입할 수 없다고 알려진 ‘한자리’ 넘버 구역 중, 6번 구역이라 불리는 곳.
38구역 돔 전체의 전력을 담당하던 막강한 중앙 발전기의 전력이 스파크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실드를 발하는 가운데, 이동 요새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쇳덩어리가 두 렙터의 수장을 삼켰다.
[애쉬필드, 나와 함께 무력 집단을 만드는 거야!] [오직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 세상에서, 목표를 잃은 전쟁광들로만 구성된 가장 강력한 군사집단을!]렙터는 피가 흐르는 살점을 곱씹듯, 여전히 선명한 과거를 돌이켰다.
친애하던, 아니 질투가 날 정도로 선망하던 유일한 친우와 나눴던, 유일한 진심을 담은 대화.
[그렇게 해서 무엇을 만들 생각이지.]그 답지 않게 되물어온 애쉬필드, 이안에게 렙터는 말했다.
[당연히, 더 나은 세상이지!]“….더 나은 세상이고 말고.”
렙터, 구스타브 알 하르브는 포격의 열기와 화약, 탄내가 이글거리는 전장의 공기를 흠뻑 만끽하며 말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게드로이츠 그 늙은이조차 생각하지 못한,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세상.
그것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며, 렙터는 기쁘게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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