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6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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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듀로.
정식 명칭은 자율 학습형 하우징 AI 드론.
이 박복한 인공지능의 삶은 인간을 흉내낸 가상 인격에게 조차 가혹하다 할만 했다.
첫 주인, 박교수의 어머니가 그렇게 가시고, 폐인이 된 두 번째 주인을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일부러 권총이 든 서랍을 실수인 척 잠가버리고(물론 박교수가 명령하면 열어줘야 하지만, 그 명령하는 한번의 이성적인 생각이 충동적인 행동을 돌이켜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신의 삶에 관심이 없어진 주인을 영양을 고려한 식사를 제공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폐가처럼 어질러지는 집을 청소했으며, 정기적으로 그의 주인을 귀찮게 하며 뭐라도 좋으니 말을 하게 만들었다.
낡은 소파 위에서 하루 종일 썩어가는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만들었고, 그 대가로 몇 번의 폐기 위협을 겪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헌신적인 하우징 드론의 귀감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주인님, AI 드론 주제에 감히 말씀드리지만 코듀로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아—”
물론 고작 쉘터 하나짜리 소형 단말이라 학습이 느리고, 그래서 오랫동안 하던대로 ‘주인의 생산활동 동기부여’를 위해 첫 GG 수익금을 왕창 써버리는 크나큰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또한 QOL, 퀄리티 오브 라이프,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쓴 것이니 따지고 보면 마냥 잘못한 것도 아지니 않은가? 코듀로는 그의 주인이 새로 사온 샤워부스를 얼마나 잘 썼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주인님은 이 코듀로의 작은 쉘터에 보호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하고, 원한다면 이런 쉘터로 탑을 쌓아서 살 정도로 돈도 많고, 워낙 공사가 다망하여 집에 머무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가 막은 자살 시도가 76회에 이르고, 헌신한 세월이 황무지의 역사와 동일한 수준이니, 무형의 빚을 쉬이 잊지 않는 것이 [의와 도리]라아아— 코듀로는 자랑스런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하우징 드론으로서, 우리 박교수 주인님을 은혜도 모르는 썩어빠진 인간으로 키우지 않았다 자부합니다!”
물론 코듀로는 기계고, 인공지능이니 참을 수 있었다.
오직 그를 모시기 위한 쉘터에 주인이 오지 않는 것도, 그의 더럽고 시끄러우며 이름조차 파렴치한 ‘BDSM’의 덩어리들이 흙발로 쉘터를 더럽히는 것도, 심지어 그 미치광이 무리중에서도 가장 수상하기 짝이없는 ‘부들람’이라는 이상성욕 로멘티스트가 하우징 AI인 코듀로를 최고성능 여성형 안드로이드 바디에 이식해 청혼하겠다며 갸륵할….#@&^#@* 아니 수상할 정도로 잔뜩 모은 재산을 자랑스레 펼쳐 보일 때도!
코듀로는 참을 수 있었다! 기계니까! 인공지능이니까! 어쨌든 그 떨거지들이 ‘박교수의 ○○○’으로 표현될 수 있는 그의 지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건 진짜 아니지요오오-! 새로운 케어 AI 드론이라니! 이 코듀로를 버리고 새로운 드론을 달고 제 앞에 나타나시다니!”
“그…. 코듀로? 잠깐 지, 진정하지 않을래? 여기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계속해. 이거 래빗네 엔터테이먼트 뭐시긴가가 만들기 시작한 아침드라마보다 더 재밌네. 방열판 싸대기 같은 건 없냐?”
“생각도 못했는데, 교수는 여성 편력이 좀 있는 편이었네요. 어째 남일 같지가 않은걸요?”
“햅,번…. 조강지처가, 좋더라….”
내게 가장 익숙한 낡은 쉘터 안. 수십 년 만에(저들에겐 12시간 정도였겠지만)만난 이안과 벡스, 그리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나는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만난 코듀로와 나의 해후를 즐겁게 감상하며 ‘원격 신관 달린 정조대를 선물하겠다’느니, ‘그런거 없어도 충분히 자력으로 죽여버릴수 있답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방관자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어떤 미친놈이 무인 터렛에 요격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쉘터 앞에 [박교수 생가]라는 팻말을 세워놓는 바람에 혼자서 실드 올려, 은폐장 올려, ‘해당 쉘터는 개인 사유지입니다- 침입하면 쏴버린다-’ 따위의 말을 스피커 진동판이 찢어져라~ 찢어져라 외쳤는데! 그 대가가 ‘버림받는 구형 AI 드론’ 엔딩이란 말이나구요오오-!”
코듀로는 그가 학습한 가장 원독어린 목소리를 발하며, 날개 같은 방열판 한쪽으로 내 머리 옆에 떠있는 드론을 가리켰다.
수십 년 만에 귀환한 그리운 고향이니, 오랜만에 내 쉘터에 다 같이 모여 아침 식사나 하자는 취지의 모임을 단박에 성토의 장으로 바꾸어버린 것은-
디릭-
“해당 AI 드론의 의견에는 다수의 인식 오류가 섞여 있습니다. 첫째. 본 케어 AI 드론은 게드로이츠-컴퍼니 총괄 관리자 ‘professor’의 작업 편의성을 위해 편성된 개인 드론이며, 따라서 해당 하우징 드론과 업무상 접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해당 케어 드론이 하우징 드론 코듀로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은 편향적 연산으로 인한 오인으로 판단 됩니다. 둘째. 해당 AI 드론은…”
“이이이, 저거, 저거 말하는 것 좀 보시라구요오오-! 코듀로를 고장난 AI 취급하고 있단 말이에요오오-!”
– 바로, 어느 순간 뽈뽈거리며 날아와 내 옆에 착 달라 붙어버린, 이 연청록색 최-신형 케어 드론 때문이었다.
“코-듀로. 본 케어 AI는 해당 하우징 AI가 과도한 인격 학습으로 가치판단에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합니다. 주인님께서 허가하신다면 보다 진보된 버전의 하우징 AI로 프로그램 재구조화를 추천하겠습니다.”
“기이이이익–!! 주인님, 들으셨지요오오-! 저놈이 절 살해하려 주인님께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아아-! 이, 이이 CPU에 서멀 구리스도 안마른 새파란 인공지능이이이!”
“디릭- 하우징 AI 코듀로의 부품 중 음성 출력장치가 규격품과 다른 것을 확인. 늘어지는 음성은 사용자에게 거부감을 줍니다. 코듀로, 자기관리 및 자가수리 또한 AI 드론의 의무. 추가로 정정하자면 본 케어 AI는 도포형 냉각 혼합물 대신 순환 엔트로피 냉각 방식을 차용해 서멀 구리스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건 주인님이 손수 수리해주시며 부여된 코듀로의 개성이야아아-! 이 얄미운 그렘린 같은 놈이이-!”
위이잉-!
끝내 분을 참지 못한 코듀로의 드론이 연청록색 드론을 향해 돌진하길래, 재빨리 손을 뻗어 녀석을 붙잡았다.
“아이고, 누굴 닮아서 성깔이 이 모양일까!”
“하지만 주인님! 저 푸르딩딩한 놈이 제 소중한 개성을 모욕했다구요오–! 기익! 기이익-!”
“많이 배운 네가 좀 참아라. 원래 갓 태어난 학습형 AI가 좀 멍청하고 말에 브레이크가 없는거 너도 알잖아.”
“….하다 못해 저 얄미운 8굴절 광학 렌즈라도 깨버리지 않으면 미처 답에 도달하지 못한 감정 모듈이 코듀로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리겠는데요오-!”
“아이고, 그럼 안되지.”
순간, 코듀로의 모습에서 흑화한 시스템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하긴, 지금 저 녀석이 말한 ‘답이 안 나온 감정 데이터’가 쌓이고 쌓인 끝에 불합리를 모듈화해서 받아들인게 전자 인격의 시초였지. 음, 그러면 곤란하지. 절대 곤란하고 말고.
탁-
“자, 놔 줄테니까 ‘저거’랑 한번 원 없이 싸워봐.”
“역-시 코듀로의 주인님입니다아-! 하.하.하 이노옴- 어디서 굴러먹던 철판 쪼가리인지는 몰라도, 황무지의 사선을 넘고 넘은 이 코듀로님의 용접기가 네놈을-”
지이잉-
철컹! 철컹! 우우웅!
파직! 파지지직!
“….네, 네놈을, 네놈….으으으으-”
코듀로의 드론이 용접기를 꺼내자마자 직경 60cm정도 되던 연청록색 구체형 드론은-
양쪽 날개에 소형 입자분쇄포 4문과 3방향 편향성 실드, 중앙의 38구경 실탄 총열을 드러내는 것으로 코듀로의 위협에 응수했다.
“위협행위 확인. 위협행위 확인. 케어 드론 ‘T.C.A.T-3000’, 최고 관리자 ‘professor’의 보호를 위해 방어 모드로 이행합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위협은 물론 5~7인 규모의 무장 스케빈저 무리도 혼자서 찜쪄먹을 무장.
고강도 압축 합금 포신의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한계까지 발휘된 반중력 부유 패널이 위협적으로 웅웅거리고, 밑으로 늘어뜨려진 탄띠가 그 반향에 밀려 펄럭거리는 가운데.
우리의 자랑스런 용접기를 든 코듀로님은 가냘픈 프로펠러형 부유기를 윙윙거리며 슬그머니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주, 주인님, 저거 뭐에요오…. 무, 무서워….”
“그러니까, 그걸 설명하려고 이렇게 다 불러모았는데…. 네가 초장부터 깽판을 놓아서 시작도 못했잖아.”
텅텅!
좌중을 집중시키기 위해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드론을 가볍게 두드려 준 다음, 어느새 저마다의 주 무장을 반쯤 뽑아들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녀석은 전술적 개인 지원/보조형 터렛 ‘T.C.A.T-3000’ 이라고, 대충 티캣 3000쯤으로 부르는 물건이야. 보시는 바와 같이 소유한 중무장에 비하면 소형 모델이며, 국지 전투, 요인 보호 및 이송, 험지에서의 장거리 통신과 반경 4미터 내외에 200kw 급 전파방해 능력도 보유한 만능 전투 보조요원이지.”
“크흠. 저 정도면…. 5미터급 국지 방어 터렛이랑 비슷한 재원이군. 그보다 몇배는 작고, 이동이 용이한.”
“전투 능력을 배제해도 전,측방 자체실드를 보유한 대인 이송이 가능한 드론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해요. 통신 기능으로 넘어오면 이미 우리 세대의 기술로 논할 수준이 아니구요.”
이런 것을 잘 모르는 벡스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지만, 한때 렙터라는 거대한 군사집단의 최고위 간부였던 이안과 정보상으로 잔뼈가 굵은 다나는 티캣이 보유한 능력만으로도 어느정도 이녀석의 정체를 눈치챘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이안은 슬쩍 다나에게 권하더니(질색했다),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는 짙은 선글라스 내리며 은근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우리 시대에 펑! 하고 튀어나온 말도 안되는 기술은 대부분 게드로이츠 그 늙은이와 관련이 있는거지. 서버룸. 찾았다며?”
“음, 대충?”
다들 슬슬 눈치만 보며 기다리던 그 주제가 튀어나온 순간, 안 그래도 내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다나는 맹수처럼 내 팔에 달라붙으며 물어왔다.
와락!
“책! 그다지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도시 전설 같은거긴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 게드로이츠는 그만큼 멸망 이후 실전될 지식들도 귀하게 보존했다는 소문이 있었어! 언젠가 마모될 디지털 저장매체가 아닌, 텅스텐 판에 미세 레이저 세공으로 새긴 엄청난 양의 텅스텐 레코드 북이 도서관 가득 쌓여있다는 소문! 그거 정말이야? 디지털 사본을 내려받을 수단은 존재해? 내가 먼저 좀 받아 볼 수 있을까? 응? 제발?”
“다나, 일단 진정하고….”
“병기창! 현대의 보물섬에 설마 병기창이 없지는 않겠지! 당장 니 머리통 옆에 달고 온 Fucking 그린랜턴도 그렇고! 차세대 병기는 결국 소향화에 집중된거냐? 오히려 거대해진 것은 없고? 서버룸 외판에 고정된 초대형 주포는 없었냐! 랜드리스는! 꿈의 1024기통 엔진은!”
“천기통 엔진 같은소리하네. 첨단 기술로 강철 지네라도 만들 생각이냐?”
“낱,나, 나도 궁금한…. 호, 혹시 손톱, 작은, 더 단…. 안전한! 지금 쉘터보다 더 안….전하고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거주지….집! 건축 기술 같은건…. 없었어?”
“음? 벡스? 갑자기 그건 왜?”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다나와 이안은 그렇다 쳐도, 관심사라 해봐야 아동 교육과 날붙이 밖에 없는 벡스의 질문이 의외라 되물었는데.
갑자기 온몸을 베베꼬는 벡스의 모습에 옆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이안이 대신 답했다.
“저거, 요즘 집 알아보고 있다. 신혼집.”
“….왓?”
“뭘 그리 놀라고 그러냐? 벡스 저놈이 키가 작고 말 좀 어눌하고 겉늙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일등 신랑감이라고. 우리보다 젊고, 몸도 좋아. 아랫도리에 무게중심도 튼실하고, 돈 잘벌어, 성격 좋아, 쌈 잘해, 인생의 모토가 ‘애들은 돌봐줘야 한다’일 정도로 가정적이기까지 해. 허구헌날 사고치고 반쯤 죽어서 돌아오는 체리-팍 보다는 남편감으로 좋지 않냐?”
“아니,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한데….”
상대가 상대잖아. 레빗 프린세스. 우리 세대에 유일하다 봐도 좋을 정도인 아이돌적인 존재. 물론 야심이 우리 상상보다 더 큼지막하고, 좀 음흉하고 타산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자타가 공인한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아가씨에 돈 많아, 권력 많아, 월드 클리어 두 번 할 정도로 수완도 쌈도 잘하는 이시대 최고의 여성이 우리 짜리몽땅이랑 백년해로를 준비하고 있다니.
“뭔가 매치가 안 되는걸 어떡하냐.”
“매치던 엎어치던 어쨌든 둘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데 뭘 어째. 아무튼 토끼 아가씨가 소유한 부지는 너무 외부에 노출된 위치에 지어져있고 또 너무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다고, 암살 위험이 크다고 둘이 살 집은 따로 알아볼 거란다.”
“그래서, 아무리 찾아도 영 만족스러운 집을 못찾아서 서버룸에 오버테크놀러지 안전가옥이라도 있는지 물어봤다고?”
“…애, 애들은 안전하게…. 키워야지….”
허이구, 보아하니 머릿속에 벌써 아들딸 합쳐서 축구팀 두 개는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새삼 내가 없는 곳에서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씩 저도 모르게 드러나던 이안의 폭력적인 면모는 우진 영감이 돔에 정착한 이후로 상당히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며.
다나는 어느새 옛날 대화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게 반말을 하고 있고, 나도 그걸 편하게 받아들이며, 더는 옆에 달라붙는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거나 하지도 않고.
도대체 저 고블린 암살자 같은 놈은 누가 데려가려나, 싶었던 녀석은 우리 중 제일 먼저 장가갈 준비를 하고 있단다.
“병기창! 거대 열차포! 우주단위 질량병기!”“지식의 보고! 로제타 스톤, 에메랄드 석판을 능가하는 텅스텐 레코드판! 신,구세대 정보의 총아!!”
“아, 안전한 집! 80년 이상 고, 고립생존 가능, 4차 핵전쟁도 견딜 내구도, 유아기 정서 함양을 위한 동식물 구역, 추, 충분한 오락거리 포함….”
….상념은 여기까지. 일단 각자 망상에 빠져있는 이 사람들부터 처리해야겠다.
땡땡땡!
“주목! 주모옥! 지금부터 발표할테니까 좀 닥…. 아니, 미안해 다나. 아무튼 조용히 좀 해봐!”
“디릭- 최우선 관리자님. 해당 케어 드론에 대한 반복적인 타격은 미세한 진동으로 소형 부품간 미세한 간격을 이격시킬 우려가 있으니 필요하시다면 지정된 사인을 통해 경고음을-”
“아오, 시부럴 진짜 말 좀 합시다 좀!”
이상해라. 그렇게나 그립고 돌아오고 싶었던 황무지인데, 돌아온지 만 하루가 안돼서 GG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데.
“…후우우. 차분하게 좀 갑시다, 차분하게, 이 뽕맞은 임팔라 떼 같은 놈들아. 우선, 서버룸. 위치랑 보안코드만 얻었고 아직 거기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몰라.”
현대의 보물섬에 대한 기대로 잔뜩 흥분해가던 관객들의 입에서 실망 어린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심지어 코듀로의 마이크에서도.
“여기 이 드론도! 전투병기라느니, 대인 이송용 드론이라느니 하는 자질구레한 물건도 아니고.”
“그럼 뭔데?”
“이 녀석은 현재 황무지 전역에 퍼져있는 ‘GG운송 드론’을 총괄하는 마스터 AI랑 연동된 드론이다. 황무지에서 GG 서버의 경매장을 이용한 기록이 있는 모든 생존자의 위치는 물론, 돌아다니며 기록한 지형정보를 모두 저장하고 있는 ‘GG운송 드론’을 전부 통제할 수 있는 마스터 키 같은 놈이 바로 여기 티캣-3000이란 말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나는 GG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권한을 얻었고, 그 권한은 접속기 같은 기계 단말을 통해 발휘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 나돌아다니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저 커다란 접속기를 꺼내고 설치하고 해서 명령을 내릴수는 없는 노릇이니, 행정부 건물 나오기 전에 대충 하나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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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이동하면서도 GG서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말을 요청함.] [____최고 관리자 ‘professor’의 요청, 확인. 대뇌 피질에 삽입하는 통신용 소형 칩의 사용을 추천합니다. [오…. 뇌에 삽입하는 칩? 크냐?] [해당 관리자의 업무 환경을 생각했을 때, 적어도 7cm급 통신칩이 사용되어야 할 것으로-] [어우우! 안해 안해! 안그래도 불안정한 몸에 뭘 더 집어넣는다고. 그냥 AI드론이란 연동되는 프로그램으로 준비해줘라. 나 쓰는 하우징 드론에 받아서 쓰게.] [____드론형 외부 단말 요청. 확인. 지상 임무중에 있는 드론 단말의 총괄 중계 유닛 ‘T.C.A.T-3000’을 관리자님 소속으로 변경하겠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내 앞으로 배달된 녀석이- 바로 이 케어 드론 ‘티캣-3000’이라는 것.
폭발에도 견디는 강인한 바디, 1미터가 안되는 소형 드론 치곤 무식하게 때려박은 중무장, 말도 안되는 효율로 배터리를 잡아먹는 편향성 실드등은 그만큼 이 드론이 게드로이츠 컴퍼니가 운용하는 여러 단말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내 말을 곱씹던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의 기능이 가진 엄청난 위력을 알고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사실상 황무지 전체가 지금 박교수 네놈의 눈 아래 있다는 거냐?”
“운송 드론이 들어갈 수 없는 상시 전자기 폭풍 지역, 혹은 운송 업무가 없는 생존자가 전무한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방사능 구역도?”
“방사능 구역에도 사람은 사니까. 당장 다나만 해도 30번대 구역에서도 방사능이 짙은 곳에 살고 있었고.”
“네가 명령하면 운송드론들이 ‘뭐든지’ 원하는 곳으로 실어 나르고? ‘뭐든지?’”
“그래. 물, 식량, 무기, 폭탄, 전염성 세균이 든 시험관, 뭐든지 배달 할 수 있다.”
“이런 빌어먹을….”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이안은 그대로 소파에 벌렁 누워버렸다.
“교수, 이건…. 현 황무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분란을 일거에 잠재워버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이야. 공포 정치의 방면으로 이용했을 때, 그 사납고 통제 불가능한 스캐빈저들 마저 억제할 수 있는 대단한 권력이라고. 이런 비대칭 전력을 개인이 소유하다니….”
“그렇지. 말 그대로 한 시대를 주무르기 위해 게드로이츠가 준비한 능력이니까.”
이 대단한 힘을 손에 쥔 나조차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옆에서 그걸 보고있는 사람에게 ‘사실 니 남자친구는 앉은 자리에서 명령 한번으로 구역 단위 융단폭격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티캣, 지금 47구역 외부에서 활동 중인 운송드론 카메라를 화면에 연결해줘.”
“디릭___ 확인. ‘폴 E-28’부터 ‘메카시 N-7’ 까지의 활동 영상을 입체 화면으로 연결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우선 직접 보면서 차차 받아들이도록 할 생각이었다. 현 시대의 인류를 되살릴 수도, 보다 더한 도탄에 빠트릴 수도 있는 힘을 나 혼자서 막 판단하고 휘두를 생각은 절대로 없었으니까. 되도록 내가 믿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사용할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 H.I.V 친구들을 비롯한 다나가 눈앞의 거대한 힘을 체감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운송드론 폴 E-28 : 이동중…. 배송 물품/보관 3개월 7일차 빗물 30리터] [운송드론 닐리 G-3 : 이동중…. 판매자 ‘오리궁둥이로스’의 판매 물품 수령단계].
.
.
.
“어때. 실감나지?”
“으응….”
다나는 실시간으로 이동중인 드론이 보내오는 입체 영상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었군.’
저 얼굴은,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불안을 애써 집어삼키는 얼굴이다. 다나도, 여기에 내포된 의미를 슬슬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메탈죠 녀석이야 뭐. ‘빌어먹을’ 하며 나자빠진 시점에서 벌써 눈치챈 것 같고.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무는 다나, 소파에 드러누워 굴뚝처럼 담배만 뻑뻑 피워대는 이안, 그리고-
번쩍.
“저,저, 저거. 화면. 박교수 정면 기준 북북서 방향 화, 화면 키워줘.”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별안간 눈을 빛내며 손을 번쩍 드는 벡스.
“모래에 파묻….혔지만. 부서진 신호등, 철골, 전차 궤도에 깔린 자, 자국 있어.”
“….그래. 역시 네가 제일 먼저 찾는구나.”
벡스가 가리킨 곳을 확대하자, 그곳엔 희미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전차의 궤도 자국이 모래먼지 속에 파묻혀 가고 있었다.
트드드득-
후우우.
“광범위, 실시간, 압도적인 정찰 성능. 그건, 지금껏 훔쳐간 중앙 발전기의 무식한 전력으로 광학장비를 떡칠해 숨어다니던 유령같던 렙터 네스트를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흔적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는 뜻이지. 물론 지금껏 녀석들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흔적을 지우는 부대를 따로 운용할 정도로 녀석들이 돔의 추적을 경계하며 움직였기 때문이지만…. 저렇게까지 훤히 들여다 봐서야, 티끌만큼 남기고 간 흔적만 모아도 대강의 이동경로와 규모를 추측할 수 있지.”
한동안 잠잠하던 렙터. 의중을 모르는 적의 침묵이라는 불안 요소를 품은 채 얼떨결에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며 내정에 힘을 써왔던 47구역 돔.
그런 상황에, 적의 위치를 추적할 수단이 생겼다는 것은.
탁!
“박교수. 너, 엉덩이에 도화선 달고 왔다.”
“그래.”
“벡스녀석이 장가가려는 이 시점에.”
“….그래.”
이안은,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 꽁초를 튕겨내며 말했다.
“이 정보가 총장 귀에 들어가는 순간 돔은 내정 체재에서 전쟁 체재로 전환한다. 잘 생각해. 돔은 지금도 시장, 문화, 질서등 초 단위로 과거 구세대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어. 뮤트 테크, 변종 부산물 사업등 과거에 없던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 이 정보가 세어나가는 순간, 그 모든 발전은 올 스톱이다. 보나마나 저렇게까지 렙터가 몸을 숨기려 했던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숨기고 준비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니까.”
“….크흐흐흐.”
전쟁. 짧았던 평화의 끝을 알리는 단어에 무거워진 공기를, 특유의 금속 턱 사이로 세는 듯한 웃음소리가 갈랐다.
콰직!
“물론, 나는 좋다. 어차피 언젠간 붙어야 할 놈들, 저쪽이 기를 쓰고 숨기던 뭔가가 코앞에 닥쳤을 때 상대하는 것보다, 한참 준비중일 때 등짝에 칼을 꽂는 편이 더 편하고 즐거우니까.”
“알아서 해라. 우리 세대의 ‘절대자’ 박교수. 네놈이 끌고 들어온 도화선이니 불도 네놈이 붙여라. 나는 옆에서 칼이나 갈아놓지. 어이, 벡스! 나와! 주변에 흩어진 우리 애들좀 모으러 가자!”
“….래빗.”
타닥!
복잡하게 기쁜 얼굴의 이안과, 복잡하게 그냥 복잡한 얼굴의 벡스가 쉘터 밖으로 나간 뒤.
다나는 눈앞을 가득 채운 궤도자국을 확대한 화면에서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쳐다만 봤다.
물론 말만 안 했다 뿐이지 그 눈빛 속에 ‘또’, ‘당신은 도대체가’, ‘어떻게 하루를 못 참고’ 따위의 비언어적 표현이 마구 담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겨우 생사의 고비에서 돌아와 한다는 소리가 ‘지금 숨어있는 적들을 쳐부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됐어!’ 라는 소식을 알리는 거라니.
나 같아도 기가 찼을 거다. 지금으로선, 렙터 친구들이 워낙 꼼꼼하게 흔적을 지워서 흔적을 분석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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