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7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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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생겼다. ‘전쟁 결정권’ 이라는 아주 크고 화끈한 고민이.
그리고 나는, 도합 240년 정도 걸려서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지이잉-
푸쉬이익!
“이안! 야, 메탈조! 잠깐 서봐! 야!”
바로, 큰 문제가 닥치면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구하는 것. 세상엔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주제로 고민할 사람이 꽤나 많고, 개중에는 내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니까.
하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 상담 좀 하자!”
내 친구 메탈 조-이안 씨를 말할 것 같으면, 본래는 이안 데스몬트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애쉬필드라 불렸고, 렙터 소사이어티를 창립한 최초의 스웜알파 2인 중 한 명이다.
장담컨대 이 시대 최고의 전쟁 사령관이고, 이 시대 최고의 전쟁 범죄자인 동시에, 이 시대 최고의 대량학살자 이안 데스몬트가 방금 내 쉘터를 나간 저 굴뚝같은 덩치 녀석이란 말이다.
냉혹한 학살자로서의 삶과 가정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삶, 그리고 그 모두를 잃어버린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녀석이야 말로 이러한 고민을 상담하기에 가장 적잘한 대상이 아닌가. 사람이 좀 별나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우리 셋 중에 큰 형 포지션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뒤를 따라 나섰다.
덜컹!
그리고, 그리 멀리 가지 못한 녀석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 이안! 그거, 렙터 말인데! 아무래도 당장 결정하기에는-”
“비켜 이 새끼들아!”
“이안님! 그러지 마시고 저희 얘기를 좀!”
“박교수님은 저 안에 계십니까! 게시판에 올라온 이야기가 전부 사실입니까!”
“몰라! 모르니까 달라붙지 말고 꺼져!”
“BDSM 가입시켜주세요!”
“박교수님께 이 편지를!”
“지난주까지만 해도 돔 공식 일정에 예정되어있던 ‘3월드 클리어 기념 퍼레이드’는 왜 취소된 겁니까!”
와글와글!
와악! 와아악!
쉘터의 콘크리트 벽 주변 가득한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 썩은 나무 판자로 만든 플래카드나 낡은 천으로 만든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이안이 쉘터 밖으로 나서자마자 좀비처럼 달려드는 사람들과, 무시무시한 얼굴과 무쇠처럼 단단히 쥔 주먹으로 그 인간 홍수의 중심을 헤쳐나가는 중인 이안.
[오늘 아침만 해도 웬 미친놈이 ‘박교수 생가’ 같은 표지판을 박고 튀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아, 그러고보니 코듀로가 그런 말을 했었지. 실드의 차폐막 때문에 바깥의 소란이 안들렸구나.
이안을 부르기 위해 앞으로 내민 몸이, 그대로 굳어진다.
변종 웨이브 같은 소란 속에 앞으로 뻗은 손을 회수하기까지 0.2초.
“어.”
쓰레기통 뚜껑 같은 것에 내 얼굴을 그린 것을 들고 있던 남자가, 우연이 그 뒤에서 열리는 쉘터 문에 관심을 가지기까지 0.5초.
“어?”
“어어, 어어어!”
멈춰 선 남자의 뒷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까지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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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쉘터 주변을 가득 채운 소란이 정적으로 변하기까지, 3초.
교수는, 그 3초 동안 그가 저지른 심각한 실수를 통감해야 했다.
“바, 박교수다.”
“교수님이다!” “교수님께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었다!”“재림 예수께서!”, “아니, 아기부처께서!”, “무슨 소리냐! 예언자 모함메드께서 인간 파-쿠란-수(Par-qoruan-su)의 몸으로 환생을 하신 것이-” “정숙!! 우리 모두를 신세계로 인도하실 성자님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무례한-!”
지금의 황무지에서 그의 인기가 단순한 인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의 낙이라곤 밥먹고 잠자고 GG에 빠져사는게 전부였던 황무지 인간들에게서, 그것을 빼앗고 그 대신 ‘서버룸’이라는 현실의 미래를 던져준 게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만 것이다.
“교수님!”
“선지자시여! 부디 우리에게 말씀을!”
“서버룸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겁니까!”
“우주에 100만명 규모의 집단 거주지가 있다던데! 우리도 데려가주세요!”
“교수님!”
“성자님!”
“박교수님!!”
왁! 와아악!
쏟아진다. 그 강인한 메탈조조차 이 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인간을 향하는 인의 파도속에 파묻혀 사라지고, 희망에 굶주린 이들이 ‘희망의 상징’ 앞에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좆됐다.’
슬로우 모션처럼 그를 향해 앞다투어 달려드는 인파 앞에, 교수는 수많은 사선을 뛰어넘으며 단련된 생존본능을 십분 발휘했다.
지이잉- 철컹!
‘쉘터 문. 외부의 먼지와 오염물을 차단하기 위한 이중 자동문. 방금 닫혔으니 공기 정화를 위해 3초간 고정. 다시 열리기까지 적어도 5초. 너무 늦어. 다 죽일 생각이 아니면 방어터렛은 사용 불가능. 주차된 무장트럭? 벌써 추적기를 붙여놨겠지. 개인 돌파? 움직인 거리만큼의 목격자와 흥분한 군중을 양산할 뿐. 다른 방법.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이-’
반짝!
‘있다!’
생각에 앞서 무수한 사선을 넘으며 단련된 본능이 몸을 움직였다. 3형 변종의 몸은 단 한번의 도약으로 쉘터의 콘크리트 벽과 그 앞에 진을 친 군중들을 뛰어넘어 그 앞에 주차된 지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눈을 성가시게 하는 반짝임. 짙게 선팅된 창문 사이로 빼꼼하게 고개를 내민 것은 거울이고, 규칙적인 빛은 군용 거울 신호였으며, 그 신호를 보낸 작은 손과 핑크빛 머리칼은-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촤아아악!
덜컹!
“빠, 빨리 타, 빨리!”
“고맙다 벡스, 그리고 래빗!”
“인사는 저 팬-보이들 사이를 빠져나간 다음에 하지 그래! 그쪽도 그쪽이지만, 이렇게 두 랭커가 같이 있는 꼴이 사진으로 찍히기라도 하면 보통 스캔들로 끝나지 않거든!”
끼이이익-! 부아아앙!
운전석에 앉은 벡스가 거칠게 악셀을 밟자, 커다란 지프는 빠르게 골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어어!”
“교수님 어디 가십니까!”
“성자님 축지법 하신다!”
“모함메드시여!”
“교수님!”
“교수니이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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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흙먼지 속에 미치광이들의 애정 어린 외침이 멀어져갔다.
“사, 살았다….”
“살기는! 이래서 벼락출세한 것들이 문제라니까! 박교수, 이 시대의 인기인이라는 것은 말이야,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걸 자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난리가 일어나지!”
차량 뒷좌석에 엎어져 한숨 돌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앞쪽 조수석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 고맙다, 래빗.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았네.”
“당연히 고마워야지. 바쁜 시간 겨우겨우 쪼개서 벡스씨랑 데이트하러 나왔는데, 덕분에 하루종일 47구역 전체가 벌집이라도 들쑤신 것처럼 난리가 났으니까 말이야. 박교수, 넌 너라는 존재가 가지는 영향력을 좀 자각할 필요가 있어. 특히나, 어제 같은 폭탄을 떨어트린 뒤에는 더욱 말이야, 목숨이 걸렸다는 생각으로 숨어다녀야 한다고! 네 목숨뿐만 아니라 네 지인, 친척, 이것저것 다 걸려있다는 생각으로! 알아!”
“크흠. 그래도 그 정도는 좀…. 까짓거 하루 날린다 치고 잡혀서 좋은 말씀이나 내려 줬어도 됐고.”
“천~만에. 그나마 네가 거기서 기어나와서 다행이지, 도로 쉘터 안으로 들어갔으면 쉘터 장벽 안쪽까지 사람들에게 점령당했을거야. 터렛으로 다 쏴죽이지 않는 한 야생 동물용 전기 울타리건, 쉘터용 실드건 아무 소용 없지. 저래봬도 다들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인 만큼 한가락 하는 놈들이 많거든.”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네 흔적이 남은 모든 것을 탐내. 네가 마당에 심은 표지판, 쓰던 공구, 흙먼지 속에 남은 족적도 파서 가져가고, 어버버 하는 사이에 터렛 대가리도 뜯어가고, 뜯겨나간 회로를 통해 쉘터 내부 카메라 해킹 툴도 왕창 쏟아지고, 창문에 좀비처럼 달라붙어서 보이지도 않는 안을 들여다보겠다고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들거야.”
“그쯤 되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나도 막싸움은 좀 하는 편이라 꽤 여러 명 병신 만들고 몇 명은 죽이기도 했는데, 한도 끝도 없더라구. 심지어 그중에는 나한테 피 묻히는 게 좋다고, 자기 피를 뒤집어 써달라고 자기 피 뽑은 혈액 팩 같은 걸 몸에 주렁주렁 붙이고 달려드는 녀석도 있더라니까? 아니, 정말로 칼로 배때지를 쑤셨는데 세상 행복하게 웃더라구. 그때 깨달았지. ‘아, 황무지에서 인기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상종해서 될 게 아니구나, 숨어다녀야지.’ 그렇게 된거야. 그제서야 좀 사람처럼 살게 됐고.”
“와.”
“그 ‘피주머니’ 말고도 기억에 남는 녀석들이 꽤 많아. 어떻게 구했는지 내가 마시고 버린 물통을 구해서는, 거기서 추출한 내 구강 상피세포를 기반으로 세포를 배양한 살덩어리를 들고와선 ‘래빗 당신은 모르지만 이미 당신은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한 상태에요.’ 같은 소릴 지껄이던 또라이 라던가. 거주지용 실드 위에 ‘부착’되는 소형 카메라를 발명해선 내 일상을 15일 정도 녹화해서 게시판에 올린 녀석이라던가.”
“어, 으어어어….”
그 외에도 탑 클래스 추적자급 스토커라던가, 장거리 이동하는데 스캐빈저들이 캐러밴 하나를 통째로 인질로 잡고 ‘래빗, 너만 오면 얘들은 살려주마!’ 따위의 협박을 한다던가 하는 기상천외한 황무지 인기인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덧붙이자면, 피주머니와 살덩이는 래빗이 직접 죽였고, 카메라맨은 돔에 넘겼으니 지금쯤 행정부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거라나.
“명심해. 흥분한 군중은 화난 군중만큼이나 통제가 안 되는 대상이야. 이젠 홀몸도 아니잖아? 우리 다나 양~♥ 도 있고, 신시아도 있으니까 옛날처럼 막나가선 안 되지. 개인 쉘터같이 알려진 곳에 지인을 불러모아도 안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다면 나처럼 어퍼 돔에 제일 크고 보안 잘되는 곳으로 하나 사서 쓰고. 돈 많잖아?”
“어…. 많지.”
“쓸 줄 모르는 돈은 그냥 벌레를 불러 모으는 썩은 과일이나 다름없어. 필요하면 아예 총장이랑 따로 말해서 일부 지역을 통째로 할당해 달라고 하는 것도 좋아. 중심에 안전 가옥 하나 짓고, 그 옆에 경호원 살고, 그 옆에 지인 별장 짓고, 그런식 으로 외부인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 땅을 만드는 거지. 이쪽은 돈이랑 별개로 허가 나오는데 시간 좀 걸리니까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걸? 45구역 돔은 계속 확장되는 중이라 허가도 빨리 나오고 돈도 싼편이더라. 블록 세 개 정도 통째로 구매하는데 12억 실링 정도 받았나? 그럴거야 아마.”
“며, 명심하겠습니다….”
벡스가 왜 서버룸 이야기 나왔을 때 집부터 물어봤는지 알겠다. 이런 여자랑 ‘안전한 집’을 보러 다니고 있으니, 구시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서버룸의 소식에도 ‘저 정도면 괜찮은 집이 있으려나?’ 하는 정도로 반응하게 되지.
부아아앙-
래빗의 잔소리를 듣는 사이에도 벡스는 꾸준히 차를 몰아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조, 조용한 곳.”
“조용한 곳?”
“그래. 알다시피 돔 인근은 어딜가나 시끌시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가면 흥분한 군중보다 더 집요한 돔의 감시부대가 당신을 보호겠다며 따라 붙을 테니까. 우리 자기 말로는, 아직 영 아저씨한테 얘기하기 꺼림직한 고민거리가 있다며?”
주변이 약간 한산해지자, 래빗은 지금껏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거짓말이었다는 양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당연히 나도 그만큼 진지해졌고.
“벡스, 불었냐?”
“아아~니. 아쉽게도, 아직 내 매력이 우리 벡스가 당신을 배신하게 할 만큼은 아니었나봐.”
“그럼.”
“아까 얘기 해 줬잖아? 내 스토커가 만든 감청 장치, 거주지형 실드와 동일한 파장을 생성, 실드에 붙어서 내부를 감시하는 소형 카메라. 내가 설마 걔를 쌩으로 돔에 넘겼겠어? 살살 꼬드기면 홀랑 넘어올 녀석을?”
“그래서. 도청하셨다? 내 쉘터를?”
“그냥 두기엔 우리 다나 양~♥이 너무 예쁜 걸? 임자가 있기도 하고, 벡스를 가슴속 깊이 믿고있지만. 그래도 여자 마음이라는 게 이성적으로만 움직이는게 아니라서어~”
….피식!
“개소리.”
농담하듯 말하는 눈빛도, 은근한 목소리부터 손짓, 앉아있는 자세까지. 과도한 인기에 불평하던 유명인의 모습이 한 순간에 흩어지며, 보다 치밀하고, 동시에 음흉하고 집요한 누군가의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난다.
“당신, 서버룸 먹었다며?”
래빗 프린세스. 편법이었다곤 하나 언데드가 전 세계를 뒤덮은 2월드를 클리어했고, 그런 편법 없이 원시 사회의 1월드를 클리어한 또다른 완성자.
“마침 잘됐네. 그 ‘서버룸’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거든. 박교수 당신처럼, 돔의 눈이 없는 자리에서. GG 게시판의 주인으로서, 돔보다 먼저.”
래빗은, 두 세계의 정복자로서 진심을 내어보였다.
“….나쁠 것 없지.”
히죽!
이안이 전쟁 그 자체라면, 이쪽도 만만찮은 전쟁 및 대량학살 경험 보유자이며.
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니까.
부아앙-
철판을 두드려 만든 [BDSM 본부]의 커다란 간판 밑을 지나는 차량 안, 두 사람 사이에는 GG의 고위 귀족들이 논쟁을 할때나 느꼈을 법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다, 닫,드으, 으…. 도착햍!햇!”
물론, 여자친구와 놀러 갈 생각으로 나왔다가 둘 사이에 낀 운전기사가 된 벡스에겐- 겨우 나아가던 언어장애가 재발할 정도의 압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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