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98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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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가 왜 조용한 곳이냐?”
놀랍게도, 이 질문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것이었다. 진짜로 조용했거든.
BDSM, 빅 드림 스몰 마진(Big Dream Small Margin)이라는 상인정신이 가득한 이름과 달리, 지금의 BDSM은 여러 가지 무력 분쟁이 필요한 곳에서 활약하는 일종의 용병 사무소 같은 집단이 되었다.
‘용병 사무소’라고. 생존자의 99.9%가 정신병자인 황무지 사람 중에서도 정착에 관심없고, 폭력에 익숙하며, 앞으로도 폭력이 난무나는 삶에 종사할 각오를 마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GG의 용병 사무소보다 더 시끄러우면 더 시끄러웠지, 절대로 조용할 만한 곳이 아니란 말인데.
지금 당장 들리는 소리는 딱 세 종류 뿐이었다.
또각 또각
저벅 저벅
래빗의 굽 높은 힐이 또각거리는 소리와 우리 발소리.
조용한 복도에 덩달아 목소리를 낮춘 우리 목소리.
까앙- 까앙- 까앙-
그리고, 건물 전체를 한 바퀴 맴돌아 온 듯한 쇳소리.
“우리 애들이야 뭐. 이안이든, 벡스든 둘 중에 하나가 줘 패서 어디 술집에 처박아 뒀다고 치자고. 우리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놈들 같은 게 BDSM 근처에도 잔뜩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당장 게시판 반응만 봐도 ‘BDSM 넣어주세요! 인류의 미래로 이어지는 길에 선봉이 되고싶다!’ 같은 대가리에 꽃밭 가득한 글이 잔뜩 올라와 있던데.”
“음? 박교수,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당장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잖아?”
“으음…. 요즘 좀 바빠서.”
당신네들에게는 겨우 며칠 전이지만, 이쪽은 내 개인 기억만으로도 30년쯤 전에 일어난 일이란 말이다.
“플레이 영상에선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전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해, 햅번은 조금, 우리끼리 있을, 때, 맹한 부분이 있, 있어….”
“흐음…. 재밌네? 아무튼 여기가 돔 주변에서 제일 조용한 장소인 이유는 하나뿐이야.”
굽 높은 힐을 또각거리며 걷던 래빗은, 자신의 손 옆에서 머뭇거리는 벡스의 손을 냉큼 잡고는 헤죽거리며 말했다.
“천류제. 그 녀석, 돔에 온 뒤로 여기 머물고 있잖아?”
“천류제?”
래빗의 대답은, 정말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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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기억은 난다.
이안과 친구들이 임무 때문에 멀리 나갔다가 천류제를 만났고, 그놈이 단신으로 무장트럭 두 대와 전차 한 대 분의 전투원을 전부 바보로 만들어버렸고, BDSM이란 말에 날 좀 봐야겠다고 47구역까지 쫄래쫄래 따라왔다고 했었지.
뭔가 ‘선의 가치는 보존되어야 한다.’느니, ‘박교수와 같은 희귀한 인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내가 본 녀석의 눈은…. 황무지에 흔하디 흔한, 타인에게서 이미 죽은자의 흔적을 찾는 사람의 눈이었다. ‘한서호’라고 했나, 천류제가 몇 번 중얼거리던걸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튼! 하루에 절반은 쇠를 두드리고(대장장이였단다) 하루의 절반은 체력단련실에서 우리 애들 패는게 일상의 전부였던 조용한 녀석인데. 그게 BDSM의 달라진 분위기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천류제,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한다더라고.”
“잘 때 빼고는 사람 패는 소리랑 귀청이 찢어지도록 쇠 두들기는 소리 속에 사는 녀석이?”
“음, 정신적인 조용함이라고 해야하나? 규칙적인 일상이 방해받는걸 싫어하는 느낌?”
“아, 그런거.”
그러고보니 수도승, 고행자 같은 녀석이라고 했지.
천류제는 BDSM앞에 모여든 군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늘 하던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120명인가? 130명?”
“배, 124명. 사망자 2, 부상자 122.”
“고마워 자기~♥ 아무튼 그랬다더라고. 박교수 당신이랑 다나, 메탈죠에 벡스까지 전부 여길 비우고 황무지로 놀러나간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야. 겁줘서 쫓아버린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인간들 얼굴을 전부 기억하고 하나하나 쫓아가서 병신을 만들어버렸다는거 있지?”
“워어…. 그정도면 돔에서 개입했겠는데? 돔의 관할 지역에서 그정도 폭력사태를 일으켰으면 당연히 대응했을거 아냐.”
“응. 개입했지. 무장한 요원과 엑소슈트 부대를 보내는 대신, 돔의 공식 입장과 법령을 발표하는 것으로.”
BDSM 건물에 상주하는 3형 변종에 가까운 초인에 대한 총장의 대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동시에 황당했다.
[47구역 돔 행정총장 알렉산더 영은 이 시간부로 47구역 C-24지역에 위치한 BDSM 본부를 ‘치안유지 법령 13호’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공식 선언한다.]치안유지 법령 13호. 이게 뭐냐면, 옛날에 여기 돌아다니던 ‘올드 픽처’라는 3형 변종을 도시 방어용 괴물로 쓰기위해 돔이 발표한 법안이다. 해당 변종을 자극하지 말고, 변종의 성향에 맞추어 구세기 거리를 재현하고 통행 할때고 구세기 사람들의 복장을 착용하며, 그렇게 놈의 취향을 맞추어 ‘안전한 괴물’로 도시를 지키게 하겠다는 정신나간 발상.
“천류제의 실제 무위는 그와 조우했던 BDSM 부대원의 바디캠에 제대로 녹화됐어. 당연히 총장은 그걸 봤고. 자, 한번 영 아저씨 입장에서 생각해볼까?”
“영 총장의 입장이라.”
어디보자.
천류제는 보통 황무지 사람보다 더 미쳐있는 편이고, 혼자서 메탈죠가 포함된 정예 무장집단과 맞설 정도의 무력을 가졌으며, 그만의 기준에 거슬리는 상대가 있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평소에는 평화롭게 수행만 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순간 초인 폭력머신으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올드 픽쳐와 닮았고.
천류제가 47구역에 머무는 이유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귀한 인자를 보유한 박교수의 보호’였다. 나는 돔의 중요한 협력자이고, 당장 돔의 영웅으로 언론 플레이도 되어있는 상황이니 ‘박교수의 보호’는 돔 또한 매우 신경쓰는 일 중 하나이다.
3형 변종만큼 강한데, 평소에는 아무런 해가 없으며, 성향만 맞춰주면 돔이 해야할 일을 대신 해주는 존재. 추가로, 올드픽쳐와 달리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이미 돔과 협력한 전적이 있는 ‘인간’….으로 분류될만한 존재. 천류제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강력한 개인이므로 잘 대리고 있을 수 있으면 무조건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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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올드 픽쳐 때랑 닮았는데?”
“그렇지? 그래서 BDSM 본부가 이렇게 한산해진 거야. 멋도 모르고 ‘팬이에요! BDSM에 받아줘요!’ 하며 소란 피우던 녀석들은 전부 천류제가 병신 만들어서 버려버렸고, 돔 측은 ‘공식 발표로 천류제와 그의 서식지를 3형 변종 구역으로 지정했는데, 부주의하게 접근하여 그를 자극했으니 제재받아 마땅하다.’ 며 오히려 병신이 된 생존자에게 어마어마한 벌금을 부과했지. 그래서 BDSM 주변이 이렇게 조용한 거야.”
음. 다나랑 놀러나간 일주일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갔다 오자마자 4월드 플레이에 들어가서 그건 몰랐다.
BDSM의 망나니들은 100명, 200명단위 군중을 볼링핀처럼 쳐날리고 박살낸 천류제의 무위에 쫄아 자연스레 본부 뒤쪽에 위치한 술집에 모여 떠들게 되었고, 돔에서 몰래 설치한 감청, 감시 장치는 천류제가 거슬려서 모조리 제거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BDSM 본부가 47구역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되었다는 말씀.
까앙- 까앙-
래빗이 안내한 곳은 쇳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BDSM 본부의 작은 휴식공간이었다. 벡스와 래빗, 내가 자리에 앉자 어느새 따라온 T.C.A.T-3000이 휴식공간 한쪽으로 날아가 차를 준비해왔다.
“최고 관리자 및 2인. 긴박한 외부활동으로 인해 심박 상승, 기도 내 미세먼지 다량 흡입. 차-를 드십시오. 작은- 관리가 큰- 병을 예방합니다.”
“어머, 고마워라. 교수, 괜찮은 아이를 데리고 있네? 이것도 파는거야?”
“아, 티캣은 비매품이라.”
“어머~ 아쉬워라. 집에 한 대 쓰려고 했더니. 코듀로도 그렇고, 당신은 좋은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있네.”
호로록-
래빗은 화보에 나올 것 같은 수려한 모습으로 차를 한 모금 하더니, 김이 섞인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 그쪽 안건은…. 렙터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지? 듣자하니 감쪽같이 숨어버린 렙터 네스트를 추적할 방법을 확보했다고….?”
“그렇지. 당장 영 총장이 알게되면 짧았던 평화가 끝나고 다시 전쟁 준비에 돌입할 정도로.”
“그래그래. 확실히 고민할만한 문제야. 그 망할 3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 음….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래빗은 턱에 손을 괴며 귀엽게 끄덕이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쪽 사정에 비하면 내 쪽은 조금 가벼운 편이야. 하나는, 당연히 GG에 대한 것. GG 서비스 종료에 대한 이야기며, 게시판 운영에 대한 이야기 같은, 나의 ‘래빗 엔터테이먼트’와 관련된 이야기. 내가 게시판에 올라온 당신 글 보고 얼마나 놀란지 알아? 내가 가진 ‘게시판 최고 관리자’까진 아니어도, ‘상위 관리자’라니! 도대체 GG에서 뭘 어떻게 했길래 그런 광범위한 권한을 얻은거야?!”
아, 그거. 확실히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하긴 하지. 확실히 래빗 입장에선 당황스러웠겠다. 분명 자기가 클리어하고 얻은 권한인데, 그 바로 아랫 단계 권한을 뜬금없이 사용하는 놈이 나타났으니.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
GG쪽 관련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래빗은, 수줍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 옆에서 아직 뜨거운 차를 혀에 대지도 못하고 화닥닥 거리는 벡스를 가리켰다.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이라. 가족은 없고, 유일하게 가족처럼 여기는 이는 당신과 이안 뿐이라지?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고 싶어서.”
푸웁!
으에익!
나는 차를 뿜었고, 벡스는 심장에 칼맞은 사람이나 낼법한 소리를 내었다.
“아, 물론 예의상 묻는거 알지? 반대하면 납치해서라도 데려갈 생각이야!”
그녀의 눈은 기이한 열망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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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전쟁이라. 우선 개인적으론 조금 반대하고 싶은걸? 그쪽도 알다시피 47구역 돔은 과거의 성세를 회복하며 ‘국가’의 단계로 이제 막 도약하고 있는 실정이고. 내정은 아직 집행부를 통째로 쳐내며 생긴 균열을 회복하고 있는 단계이니까.”
“아, 예….”
“재정적인 부분도 불안해. 게임 머니인 실링이 기축통화로 사용되고 있는데, 바로 하루전에 누구 누구씨가 ‘GG는 영업종료입니다~’ 라는 말을 해버렸거든. GG가 운영되지 않으면 새로운 실링을 만들어낼 수단이 없지. 당장 시장에 풀려있는 실링이 많다지만, 점차 실링은 고갈되어가기 시작할거야. 황무지에서 비명횡사는 일상이고, 그렇게 죽은 사람의 실링은 그 사람의 계정과 함께 그대로 증발할 테니까. 당장 화폐개혁을 시작해야할 시점이란 뜻이지.”
“아, 예….”
“물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쟁인 것은 인정해. 상대는 은밀성과 기동력, 화력을 고루 갖춘 집단이고, 그 집단이 기를 쓰고 행적을 숨겼다는 것은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무언가를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니까. 전쟁은 언제나 상대의 준비가 끝나기 전에 들이닥치는 게 이득이지…. 듣고 있어?”
“아, 예…. 예? 아, 그럼. 물론이지. 잘 듣고있고말고.”
“박교수, 왜 이렇게 멍해? 지금 이야기하는건 당신 고민 아니었어?”
그렇지. 무려 돔과 렙터의 총력전이 될지도 모르는 전쟁의 시작을 상담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지.
그런데, 그걸 듣기 전에 댁이 폭탄을 던졌잖아.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이라.]우아하게 차를 홀짝이며 던진 말의 여파는 아주 극적이었다.
[우, 우아아아아아아!!!!]벡스는 여기서 처음으로 ‘결혼’얘기를 들었는지, 끝내 감정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달아나버렸으며.
[아으으음~ 귀여워라!]래빗은 그런 벡스의 뒷모습을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봤고,
[허, 허어어어….]그런 두 사람의 핑크빛 폭풍 사이에 낑겨버린 나는, 지금까지 말도못하고 어어거리는 참이었다.
‘벡스랑 래빗이, 결혼?’
사이가 좋다는 것은 들어서 알았지. 둘의 사이가 꽤나 진전이 있다는 것도, 벡스가 정신 못차리고 헤벌레- 한 상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래빗쪽에서 이렇게나 진심이라곤 생각못했다.
이런말 하기 미안하지만, 벡스가 막 여성에게 엄청나게 어필이 될만한 녀석은 아니잖아?
작은 키, 작은 키를 더 작게 보이는 구부정한 허리.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뚝뚝 끊기고 어물거리는 말투에, 쉬고 갈라져 듣기 거북한 목소리. 추가로, 절대 스물 넷으로 보이지 않는 늙수그레한 얼굴까지.
그에 비하면 래빗은 자타공인 황무지 최고 미녀에, 성격 좋고, 돈 많고, 두루두루 인맥도 넓어 총장을 ‘영 아저씨’라고 부를만한 사람이란 말이다.
여성으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황무지의 배우자로서 조건도 최고인 것이, GG 클리어 기록 보유자인 만큼 전투능력도 발군이라 위기시 짐덩이가 아닌 동료가 될 수 있고, 보는 사람을 다 흐뭇하게 할만큼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우울증이 사망 원인 1위인 황무지에서 저런 성격을 가진 미인은 그냥 집단에 살아서 존재하기만 해도 보배로 모실 만큼 값진 것이란 말이다.
“어휴. 내가 좀 갑작스럽긴 했나봐? 그 박교수가 이렇게 약끊은 스케빈져마냥 빌빌대고 있으니. 아, 원래 이런 쪽에 약했지?”
“아니, 좀…. 그렇네. 갑작스러워서.”
나름 종이 위에 필기까지 해가며 ‘전쟁이 시작했을 때의 이익과 지연했을때의 이익’을 고민하던 래빗은 매끈한 미간을 찌푸리며 펜을 내려놓았다.
“….뭐, 그럼 그쪽이 내 얘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으니. 내쪽부터 마무리 해볼까.”
톡. 톡. 톡. 톡….
날카로운 펜 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래빗은, 마치 펜으로 내 눈을 찌르듯 날카롭게 물어왔다.
“당신, 내가 일부러 벡스한테 접근했다고 생각했지?”
“….아니라면 미안.”
“아냐 아냐. 나처럼 엄청나게 예쁘고, 인기있고, 앞으로 봐도 거꾸로 봐도 완벽한 여자가 다소 흠이 있는 벡스같은 남자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프로치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또, 우리 박교수씨가 나름 대단한 사람이잖아?”
“….”
정확한 지적이었다. 벡스는 내게 둘도 없는 친구이며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인간성을 가진 녀석이지만, 래빗 같은 여성을 확 사로잡을 만한 매력은 없는 녀석이니까.
래빗을 처음 만났을 때가 3월드를 클리어한 이후였다. 세이브/로드 권한, GG 게시판 관리 권한을 가진 완성자 후보로서 당연히 내가 받아온 보상에 관심이 있고, 또다른 클리어 보상을 노리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경쟁심리를 가졌을 터.
그래서 벡스를 통해 내게 접근해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어?”
“그럼.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벡스씨를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인걸? 그 사람이 아니면 안돼.”
래빗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다른 누구를 데려와도 안돼. 저 사람이야 말로, 완벽한 내게 없는 유일한 결점을 채워줄 단 한 사람의 완벽한 짝이란 말이야.”
그것은 사랑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최근에 어디서 봤는데.
“그러니까, 내가 가질거야. 필요하면 방해하는 다른 년놈들을 죽여서라도. 그는 나의 ‘즐거움’이니까.”
“쿨럭!”
아, 기억났다. 시스템. 그 빌어먹을 ‘월드’가 나를 바라볼 때 딱 저런 얼굴이었지.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얘긴데….”
벌써 두 번째 찻물에 사례들린 나는 안중에 없이 래빗의 얘기는 과거로 흘러갔다.
누구나 잘 아는 그녀의 이야기. 그러니까, ‘야생 토끼 해체소녀’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던 그녀의 유년시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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