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05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0)
****
타앙!
총성은 황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소리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내쪽을 향한 총구를 수도없이 마주했으며, 마찬가지로 그쪽을 향해 수도 없이 납탄을 던져댔다는 뜻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숙련된 황무지 생존자는 총성을 듣는 순간 패닉에 빠져 혼란을 일으키는 대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타앙!
첫 번째 총성의 메아리가 떠나가기도 전에 하나같이 단단한 엄폐물을 찾아 납작 엎드렸고.
타앙!
두 번째 총성이 울릴 무렵에는 대략적인 총격전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해 그 반대편으로 도주할 생각을 끝냈으며.
콰장창!
우그러진 티캣이 방 구석에 처박힐 즈음에는, 도주하는동안 휘말릴지도 모르는 전투에 대비해 손에 닿는 곳에 있는 무기를 재빨리 하나씩 뒷주머니에 쑤셔넣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총격의 정체가 갑자기 중무장을 꺼내든 드론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이안이 총을 쏴갈기는 소리였으며. 이곳은 우진 영감의 지하 암시장이고, 좌판에 널린 것이 대부분 위험천만한 살인무기 또는 그 재료가 되는 변종 부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으로 총격전을 마주한 군중이 일으키는 혼란은 없었다.
꽈아악, 철컥!
슬금슬금-
꿀꺽!
그 대신, 언제든지 코너에서 튀어나올 신원미상자를 쏴 죽일 준비가 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극도의 긴장 상태로 좁은 암시장의 출구를 향해 전술 이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뿐.
당연히, 그 위험도는 일반적인 혼란에 비해 수백 배는 높았다. 누가 총을 쏜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총을 든 아무개를 마주한다면 황무지 사람은 백이면 백 상대의 머리통에 구멍을 뚫어 혹시 모를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을 선택할 테니까.
딱 한발, 남들보다 조금 더 긴장한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암시장은 모두가 닥치는대로 서로를 쏴재끼는 킬링필드로 변하는 그런 상황.
꼴꼴꼴꼴-
딸그락!
“자주 보게 되는군. 박교수, 그리고 데스몬트.”
“죄, 죄송합니다….”
“엿이나 드쇼.”
그게, 이안과 내가 영 총장의 집무실로 불려오게 된 이유였다.
“도시 내 인구 밀집지역. 그것도 반쯤 시야가 제한된 어두운 실내에서 주변 상품의 절반 이상이 즉시 사용 가능한 살인 도구인 상황에서 총격전을 벌이다니. 노파심에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묻겠네. 혹시 렙터의 사주를 받았나? 돔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라고?”
“크흠. 뭐, 막았으니까 된거 아뇨? 우리 영감네 암시장에 어지간히도 많이 쁘락치를 심어뒀더구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암시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열린 공간이 아닌가? 우리 요원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로 쇼핑을 하던 중이었던 것이지.”
“그으래? 과연, 정병으로 소문난 감찰부 요원답구만! 쇼핑도 분대 단위로 조를 짜서 다니고 말이야! 상황이 터지자마자 신속하게 감찰부 뱃지를 휘둘러 민간인들을 통제하고, 동시에 절반은 뒤도 안보고 ‘정확히’ 박교수가 있는 병실로 달려와서는 VIP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하며 행정부로 모시고. 아주 대-단하셔? 응?”
“칭찬 고맙군. 기왕이면 감찰부 인원들 앞에서 해줬으면 더 좋겠는데. ‘그’ 이안 데스몬트의 칭찬이라면 요원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빠드득!
지금 하는 생각이지만, 이안 저녀석은 매번 저렇게 이빨을 갈아대면 조만간 윗이빨도 모조리 금속으로 갈아끼워야지 싶다.
사실 나와 총장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이안과 총장의 관계는 꽤나 살벌한 편이었다. 38구역 사건 때 우리에게 정보를 제한하고 임무에 보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영 총장을 상당히 싫어하게 된 모양.
데이터 소울 상태로 3월드를 플레이하던 현실의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보니 영 총장은 이안을 ‘메탈죠’가 아닌 ‘데스몬트’로, 이안은 영 총장을 ‘어이’,‘너’,‘뭐시기’ 따위로 부르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살짝 물어봤더니 ‘같은 천막 아래서 보급 갈라먹는 두 군사 집단이 이 정도면 친한 거다.’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둘이 따로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는 모양.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우선 회수해온 드론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이 나왔네.”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영 총장은 불쌍한 행정부 과학자를 마구 갈아 넣어 10분 만에 받아온 보고서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해킹 징후, 없음. 무장 반응, 해킹 시도에 대한 방어 장치로 연산회로를 모두 끊으며 발생한 추가 비상시 작동 매뉴얼로 보임. 내부 회로가 모두 타서 핵심 기능은 복구 불가능. 이상이다.”
탁-
“이상, 이 보고 내용에 대해 특별히 아는 정보가 있다면 공유해줬으면 하는군. 예를 들면, 지금 돔의 기술을 총망라해서 만든 드론보다 몇 세대는 앞서있는 구시대 하이엔드급 드론이라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무리 추적해도 신호의 수신지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한 드론 내부의 장거리 통신 장치라거나.”
“….알렉산더 영. 말투가 상당히 거지 같은데? 왜, 우리가 렙터 끄나풀이라도 될까봐?”
“나는 변절의 가능성이 아닌 기계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벌어진 상황처럼 박교수나 BDSM의 뜻과 관계없이 외부에서 유입된 고성능 장치가 소요를 일으키지 않았나? 그 이전에도 저 드론이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저건 언제부터 소유했지? 왜 박교수가 아니면 내부 데이터를 열람할 수 없을까. 무엇이 들어있길래 돔에 이름난 기술자를 모조리 투입해도 기능적인 변화의 흔적만 겨우 유추할 수 있을 뿐, 프로그램 방화벽에 티끌만큼의 흠집도 낼 수 없는가. 데스몬트, 나는 돔에 상주하는 모든 인구를 책임지는자로서 나 개인의 호오에 상관없이 모든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네. 한때 지도자의 위치였던 자네라면 이해해줄거라 생각했는데.”
카아아악- 퉤.
“그 계산의 영역을 덮어두고 손을 내미는걸 ‘신뢰’라고 하는 거다, 이 배우다 만 지도자 새끼야.”
영 총장이 잔을 들어 올리자, 이안은 자기 몫의 잔에 걸쭉한 가래를 뱉는 것으로 화답했으며.
“흐아암. 더 할 거면 난 가서 좀 자다 오고. 심판 필요 없지?”
챙. 채앵.
나는, 가래가 든 이안의 잔과 얼음이 든 총장의 잔 양쪽 모두에 잔을 부딪치는 것으로 두 사람의 날카로운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봅시다. 우선, 드론 T.C.A.T-3000은 어제 댁이랑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지 알아서 날 찾아왔어. 기능은 저래도, 일단 분류 자체는 GG 운송드론이거든.”
렙터. 서버룸. 나의 권한. 전쟁. 세계수의 자매.
난리통이 된 암시장에서 행정부에 도착하기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저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누군가 드론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려했다.’
잡음이 심해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필요한 키워드는 주어졌다.
[너-를 위한 해답/ Prime-완성자 박교수는 조우한다.] [해답/ 종말장치 / 콜렉터를 / 전해진다.]지금으로선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한정된 문장.
‘프라임/완성자 박교수. [너를 위한]이라고 했으니, 서버룸 권한을 획득한 나를 특정했다는 말이다.’
[해답]. [종말장치] 따위의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뒤에 하나는 알아들었다.‘콜렉터.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야. 분명 38구역 사건 때…. 자신을 W라고 소개한 3형 변종에게 들어본 기억이 있다.’
제기랄. 하이드가 있었으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대번에 찾아줬을텐데. 지금으로선 38구역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자기들끼리 ‘적합자’라고 부르던 예술가 연합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것일까.
자, 이렇게 『3형 변종 – 예술가 연합 – 콜렉터』 라는 엉성하지만 훌륭한 연관정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콜렉터. 전해진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세계수님과 똑같이 생긴 소녀.’
‘분명, 그쪽은 티캣의 시야를 통해 나를 마주보고 있었지. 정황상 세계수님과 똑같은 모습을 한 그 존재가 콜렉터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3형 변종 – 예술가 연합 – 콜렉터 – 세계수의 자매』 까지 연결되고. 세계수의 자매인만큼 당연히 세계수님과 연관되며, 세계수님은 GG의 핵심 관리자 인공지능인 관계로-
『3형 변종 – 예술가 연합 – 콜렉터 – 세계수의 자매 – 세계수(GG관리자) – 게드로이츠의 게임-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라는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마인드 맵이 완성된단 말이다.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터져나갈 즈음에- 이안과 함께 영 총장의 집무실에 들어서게 됐고. 이안이 영 총장과 불꽃 튀는 친목을 다지는 동안…. 겨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 영.
빛나는 과거의 영화를 수복하겠다는 뜻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돔 지도자에게 어디까지 밝힐 것이며,
그 뜻을 위해 올드 픽처, 언더 돔과 같은 도덕적 금기를 저지르고, 38구역때처럼 돔을 위해 아군도 속이는 그에게 어디까지 감출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말이다.
“운송 드론으로 구분하기엔 지나친 스펙으로 보이던데.”
“정확히는 게드로이츠가 남긴 대부분의 유산과 권한을 넘겨받자 ‘저쪽’에서 내게 붙여준 통신 모듈 같은 거라. 당연히 이 시대 기술이 아니죠. 무려 게드로이츠 그 양반이 망할 완성자 계획의 결과물을 위해 준비한 물건이잖습니까.”
“통신 모듈이라. 넘겨받은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권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리모컨이란 말이군.”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영 총장. 역시나 게드로이츠의 완성자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래빗을 후원하고 있던 47구역 돔이니 그녀에게서 GG의 내밀한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전해들었겠지. 상대가 내밀한 정보를 기꺼이 말하느냐, 감추느냐를 통해 나에 대한 상대의 신뢰 정도를 파악하는 간단한 심리 트랩 같은 것이다. 뭘 캐내려는 행동이라기보단, 영 총장이란 인물의 삶에 베어버린 습관 같은 것이겠지.
그래서, 영 총장에게 전부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참 좋아하고, 아군으로서 더 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어디까지나 아군일 뿐, 영 총장이 따르는 것은 내가 아닌 ‘구시대의 영광 재현’이라는 대의이니까.
“그렇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덕에 온 사방을 돌아다니는 운송 드론을 제 손과 발로, 혹은 눈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덕분에 이렇게 영 총장님이 대-단히 흥미로워 할만한 장면도 몇 개 찾을 수 있고.”
“….작지만, 분명한 전차 궤도 자국이로군. 이걸 내게 보여줬다는 것은…. 찾아낸 흔적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당장은 힘들지만 머지않아 위치를 특정할 정도로 데이터가 모일겁니다.”
“슬프군. 앞으로 5년을 바라보고 우리 행정부 친구들이 밤잠을 새워가며 만든 도시 개발 계획, 난민 수용 계획, 돔 국가화 정책 따위가 모조리 불쏘시개가 되게 생겼으니.”
렙터의 흔적을 보자마자 그의 생각이 렙터 소사이어티 추적의 가능성으로, 그리고 전쟁으로 도약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역시나, 나처럼 갈등을 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이 추락할대로 추락한 세상에서 문명 사회의 흔적을 이만큼이나 지켜낸 사람인 만큼, 그동안 버려야 할 사람들을 무수히 버려왔으니까. 나랑은 다르겠지. 확실히.
“뭐….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오시죠? 메탈죠, 너도 알겠지? 왜 드론이 해킹 시도를 감지하고, 혼자 지랄하다가 내 손에 명을 달리 했는지.”
“렙터가 추적을 눈치챘군. 광범위하게 퍼트린 운송 드론 중 하나가 놈들의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인가.”
“쯧. 렙터는 내부 군벌 간에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지. 덕분에 군단급 지도자인 스웜 알파는 ‘노이지 팩’이라는 감청, 전자전 부대를 24시간 상시 경계 상태로 돌리고 있고. 그놈들이라면 운송드론에 입력된 명령 정도는 캐낼 수 있겠지. 그게 ‘황무지에 남은 전차 궤도자국 탐색’으로 밝혀지면 당연히 방광에 핫소스라도 들이부은 놈처럼 길길이 날뛸 것이고.”
“더욱이 나는, 일반 운송드론의 렌즈로는 망할 모래바람 너머의 궤도자국을 찾을 수 없으므로, 부득이 GG 운송드론에게 저공비행을 명령할 수 밖에 없었고. 어찌보면 렙터한테 꼬리를 밟히는게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봅니다.”
드러낼 것은 드러내고, 감출 것은 감춘다.
아무렴. 렙터 소사이어티의 노이지 팩이 3차 세계대전으로 단련된 전자전의 프로라 한들, 이미 몇 세대는 앞서있는 게드로이츠의 기술력을 따라잡겠는가. 그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운송드론 신호 역추적으로 서버룸 좌표도 알아서 찾고 해킹도 하고 다 해먹었겠지.
무려 GG 서버룸과 직통으로 연결된 티캣을 해킹하는 것은 게드로이츠 본인이 나서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말이다.
‘그리고, 3형 변종은 기존의 과학상식에서 벗어난 불가능한 일들을 마구 해내는 족속들이다.’
3형 변종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었다. 차라리 마법과 같은 신비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내 알량한 과학 지식으로 제단했다간 놈들을 잘못된 틀 안에서 판단하게 될 테니까.
적합자 W는 3월드 대마법사도 못하던 텔레포트를 자유자재로 하는 놈이다. 그게 텔레포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를 무언가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말도 안되는 일을 숨쉬듯 해내는 것은 분명했다.
노호 부루. 자기 마음에 드는 인간의 손에 죽고 싶다던 인간형 변종은 거죽 속에 썩은 호랑이를 넣어 다녔다. 마찬가지로 생물로서 지녀야할 규칙에서 벗어나도 한참은 벗어나 있는 모습.
‘그렇다면, 무수한 시뮬레이션 세계를 만들어낸 인공지능 세계수가 [밖에 있는 자매]라고 표현한 소녀가- 등짝에 무수한 전선을 달고 무식하게 커다란 기계와 화면에 연결된 모습을 하고 있다면- [세상에 어떤 기계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아주 말이 안되지는 않지.’
아마도, 이게 조금 전에 암시장 병실에서 일어난 소동의 진실. 예술가 연합 소속의 3형 변종이자 세계수의 자매인 콜렉터는, 모종의 능력을 사용해 티켓을 해킹하고, 내게 메시지를 남겼다. 하필이면 암시장의 병실에 있던 그 순간을 골라서 말이다.
우진 영감님과 이안은, 현 상황에서 돔의 인사가 아니라고 무조건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돔 내부에 각자의 민간 군사집단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방금 봤다시피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외부의 간섭이 차단된 공간에서, 절대로 돔의 협력자가 아닌 두 사람이 있는 순간에 콜렉터가 내게 메시지를 남긴 게 우연이 아니라는데 내 심장 하나라도 걸 수 있겠다.
예술가 연합이 남긴 메시지는, ‘돔이 모르게 마지막에 보여준 구조신호의 좌표로 찾아올 것.’ 정도가 되겠지.
그 의도는 아마도.
[해…..답….] [너느으으은- 위이이이로오오오-]렙터와 전쟁을 벌일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를 갈등하던 나를 관찰한 콜렉터의 대답.
그 해답은, 위에 있다는 것.
‘삑- 삑-’
고장난 드론은 단말마처럼 구조신호와 좌표를 남겼다.
하이드가 없지만, 내 기억력이 좌표 몇 자리를 까먹을 만큼 시원찮은 편은 아니다.
“위. 위로, 라….”
“음? 뭐여. 위에 뭔가 있어?”
“아, 그냥 혼잣말.”
(8744. 09. 248)
이게, 콜렉터가 내게 보낸 좌표. 계산하면, 공교롭게도 렙터가 향한 방향과 비슷한 25번 구역 변두리쯤 되는 곳.
(8744. 317. 42)
그리고 이건, 아직 나밖에 모르는 곳의 좌표다.
‘넥스트 스페이스. 게드로이츠가 안배한 무인 우주선 기지의 좌표.’
무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어 준비부터 발사까지 인원이 필요없다는 뜻일 뿐, 그 기능은 40인 정도 인원이 우주에서 몇 백년을 생존할 수 있다는 궤도상의 거주지 ‘넥스트 스페이스’로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
콜렉터가 보낸 좌표와 게드로이츠의 우주선 기지 좌표는, 고작 2.5km 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았다.
[너어어느으은- 위이이로오오-]“….우주라.”
전쟁이냐, 관망이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술가 연합은 내게 우주로 향할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저 두터운 모래폭풍 너머 별들 사이로. 지식의 방주, 희망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서버룸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미 그들이 단순한 돌연변이 괴물이 아닌 게드로이츠와 연관된 또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제안이었다.
적어도, 만나보기는 해야겠지. 알렉산더 영이 그리는 평범한 미래가 아닌, 내가 그리는 욕심 그득한 미래를 손에 넣고 싶다면 조금 무리해서 위험한 길을 가는 것 정도야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