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06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1)
****
타닥 탁 타닥
———
[47번 대화방 * 보안필 ** 암호화 3단계 *** 제발 유입 좀 가려받아 시발]+ Player ‘professor’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Jokass : 어이구우우- 이게 누구야.
– 노루Drug해요 : 월드 베스트 아이돌 프로페서 선생 아냐?
– 홀리 : 와! 박교수다!
– takealook : 간만.
– professor : 미안. 불러놓고 늦었구만.
– takealook : 늦은 걸 탓하기엔 댁이 너무 거물이 되셨지. 무려 ☆돔 원정군 참모총장★ 님한테 ‘시발 늦었으면 인당 시급 환산해서 실링으로 뿌려라 개새끼야’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음?
– Jokass : 이야, 저걸 말하네.
– 노루Drug해요 : 그의 문화 유산급 개씹상남자다움을 우리끼리 볼 수야 없지. 캡쳐해서 게시판에 뿌려야겠다.
– Jokass : 정말 멋진 생각이야. 당장 하자.
– takealook : 살려줘요.
– 흥안만두 : 내일 아침쯤엔 광신도들의 손에 수백 조각으로 분해된 떼껄룩을 만날 수 있겠군.
– Jokass : 염은 내가 해줄게. 일이 일이라 이런거 잘함. 퍼즐 맞추는 기분으로 쉬엄쉬엄하지뭐.
– takealook : 시발 살려주세요.
– 노루Drug해요 : 아 맞다. 나도 얘기 할거 있었는데. 마침 간만에 여기 모인 김에 해야겠네.
– professor : 들어보니까 주에 한번은 현실에서도 본다며. 뭘 새삼스럽게.
– 노루Drug해요 : 나 애 뱄다. 쌍둥이.
– 노루Drug해요 : 쩔지?
———
푸우웁! 콜록콜록, 켁!
“이, 이 인간은 뭔….”
———
– Jokass : ….신이시여. 어찌 저 여자를 제 짝으로.
– takealook : 이, 이 미천한 놈이 감히 천하제일의 개씹상여자 노루님 앞에서 주름을 잡았습니다.
– 홀리 : 진짜요? 언니 진짜?
– 노루Drug해요 : ㅇㅇ. 아무 생각없이 사는데 언제부턴가 생리대 빨래가 안 줄어드는거임. 모비-딕 가서 검사받아보니까 생겼다더라.
– 흥안만두 : 아니 조카스랑 너네 식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경사냐?
– 노루Drug해요 : 그럼 그렇게 붙어 살았는데 설마 안 생겼으려고? 요즘같은 세상에 결혼식 전에 안 생긴 것만 해도 정속 주행이야 임마!
+ Player ‘하이웨이나초맨’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Player ‘간장게이바’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Player ….님이-
– 하이웨이나초맨 : 퇴근!!! 삶은 감자와 칼로리 바를 전기로 바꾸는 인간 발전기 퇴근하신다아아아!!!
– 간장게이바 : 시발. 나는 분명히 BDSM으로 소속을 옮겼는데 왜 돔 공무원들이랑 같이 퇴근하는거냐.
– 노루Drug해요 : 노동이나 하는 하급 시민 녀석들. 이 몸은 귀한 인구를 늘리는 상급 시민이다! 임산부는 돔 정책상 노동 완전 해방이지롱!
– 간장게이바 : 왓?!
– 하이웨이나초맨 : 뭐요?
———
실없는 헛소리와 충격적인 경사가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곳.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지만 숨도 못 쉬게 힘든 상황일 것이다.
영 총장에게 렙터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3주. 돔은 47구역을 포함한 그들의 영향권에 보호받는 모든 생존자에게 ‘전시태세’로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전기를 무지막지하게 먹는 플라즈마 병기를 위한 배터리 비축을 위해 인력 발전소는 시간제 교대 운영에서 할당량제 24시간 운영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오랜 인력 발전으로 허벅지가 말만큼 굵어진 사람들도 허벅지가 끊어지는 근육통에 갓난아이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뮤트 테크’라 불리는 변종 화기 중 안전성이 증명된 몇몇은 돔의 제식화기로 선정되어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재료의 수급을 위해 변종 사냥꾼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47구역 외부로 차를 몰았고, 그 부산물을 처리하는 조카스 같은 해체업자도 온몸의 관절이 녹아내릴 정도로 일해야 함은 물론이었으며, 계산은 대부분 돔에서 발행한 전쟁 채권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
– professor : ….어이, 신병들. 훈련은 할만해? 돔도 나름 뿌리를 따지고 보면 옛 군부대 출신 집단인데. 똥군기 같은 거 없냐?
– 광명교황무지지부 공채4기 : 옙!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영광입니다 성ㅈ- 차, 참모총장님!
– 홀리 : 그러니까요- 아, 아니! 그렇습니다! 되려 너무 좋은 장비를 받아서 부담스러울 지경입니다!
– professor : 에이. 여기선 군례 따지지 말자니까.
– 홀리 : 여, 역시 좀 어색하죠?
– Jokass : 개빠졌네.
– 노루Drug해요 : [충격! 돔 원정군, 당나라군대? 참모총장의 지인이 말하는 그들의 실태….]
– 흥안만두 : 신병! 관등성명!
– 홀리 : 워, 원정군 이병 홀리 마르탱!
– professor : 엌ㅋㅋㅋㅋㅋㅋㅋ
———
지금껏 모병제를 통해 어디까지나 ‘요원’이라는 체계를 유지하던 돔은 전쟁을 위해 군대로 거듭났다. 적게는 열여섯 살부터 많으면 오십대까지, 돔의 보호아래 살던 무수한 사람들이 그들의 부름을 받고 군복을 입게 되었다.
젊은 생존자 비율이 높으며 저번 대규모 변종 웨이브로 대부분 47구역 인근에 모여든 47번 대화방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입대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
– 노루Drug해요 : ….홀리. 언니 말 듣지 그냥? 네 주변 사람들이 죄다 나서서 면제 해준다, 보급 담당 시켜준다는데 왜 굳이 자원한 거야? 정말 온실같이 키워져서 뇌주름 사이에 꽃이 만발했어? 내가 다 뽑아줘?
– 홀리 : 언니. 나 진짜 화낼거에요?
– 하이웨이나초맨 : 우리도 화낼건데.
– professor : 정말 진지하게 얘기한 거야. 네 아버지인 마켓 플레이스 사장님이 돔에 지원하는 군수 물자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너같은 신병을 아무리 줄 세워도 비교가 안될 정도의 보급이라고. 전장에 나가는 것만이 책임을 지는 방법이 아니야.
– 하이웨이나초맨 : 나 말이다. 오래전 뼈 부러졌을 때 심은 싸구려 전도성 임플란트 때문에 광학병기 못쓴다고, 원정군 대신 자원 보급쪽 발령받았을 때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 줄 아냐? 평생 욕만 해왔던 하늘에 대고 몇 날 며칠 동안 감사했다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예수님, 돌아가신 엄마 아부지 조상님 감사합니다! 난 또 살아남는다! 오예!
– 하이웨이나초맨 : 너 지금 그거, 나 존나게 비참하게 만드는거 알아? 나보다 여섯 살 어린 여자애도 자원입대하는데 난 좋다고 발전기나 밟으러 다니니까!
– 홀리 : 아니 그건
– 엿같은 소리 하지말고 당장 자원 취소해. 넌 마켓 플레이스 사장 고명딸이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데 넌 평생 꽃밭에 구를 수 있다고! 왜 자청해서 뒤지러 가는데! 자존심이냐? 명예? 씨발 옛 저녁에 다 불타서 없어진 노블레스오블리주, 뭐 그런거야?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그건 ‘내일’이 생겨서 그런겁니다 선배님.
– 하이웨이나초맨 : 뭐 씨발? 그럼 누군 내일이 없어서 이러는 거냐?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저희 보급 통신기로 대화방 접속해 있습니다. 신병끼리는 다 한 막사에 모여있고요. 저희들끼리 훈련받으면서 얘기도 많이 했거든요. 홀리 양이야 특별한 케이스라쳐도 대부분 그냥 황무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인 만큼 전쟁의 참상도 알고, 제 목숨 귀한 줄 알죠. 그러다보니 모여서 하는 얘기도 대부분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얘깁니다. 당장 제 부모님과 형 두 명이 전쟁중에 목숨을 잃었는데요.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얼떨결에 박교수님도 계시는 이 전설적인 대화방에 들어온 제가 그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참 애매합니다만, 대부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더는 무료하게 남들 삶이나 구경하면서 하루하루 죽어갈 필요가 없다], [서버룸이 실존했고, 그걸 찾았다더라], [우리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 다음, 그 다다음까지 계속 이어질 수도 있겠다]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박교수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신처럼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저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을내 앞길을 헤쳐나가지만, 저희같은 놈들은 누가 앞길을 밝혀줄 때까지 두 팔을 휘저으며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당신께서 가져온 서버룸의 소식은 그냥 첨단 기술을 왕창 얻었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갈수록 줄어드는 일조량과 남하하는 방사능에 끝내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증거, 내일이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희망 그 자체인 겁니다!
– 광명교단황무지지부공채4기 : 그러니, 당연히 자원입대할 수밖에요. 밥먹고 숨쉬며 하루하루 죽어가는게 전부였던 삶으론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인류는 이미 희망을 잃고 죽어 있었어요. 당신께서 그들을 되살리신겁니다, 박교수님.
– professor : ….다나랑 비슷한 소리를 하네.
———
슬프게도 돔의 징병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더 슬프게도, 그 이유는 나 때문이었단다.
물론 저 녀석이야 아이디만 봐도 광명교 광신도(아직도 이게 현실에 존재하는 걸 믿을 수 없다)가 분명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원인이라더라.
‘뭐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장날 게 명확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 교수는 잘 모를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군복입은 무리에 잔뜩 우울해진 나를 보고 다나가 해준 말이었다.
‘이제야 뭔가 할 수 있게 된 거야. 어제와 같은 오늘이 숨통을 죄어오는 삶에서, 나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새로운 내일이 찾아온거지.’
‘황무지 생존자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것 잊지 마. 저들은 숨이 닿을 듯 가까워진 [나]라는 살인자에게서 도망쳐온 사람들이라는 뜻이야. 스케빈저와 달리, 쉘터 출신 생존자들은 절반 이상이 원정군에 지원할거야.’
….타닥 탁 타닥.
“일주일. 앞으로 일주일 뒤, 개전(開戰)”
새로 받은 신병은 대부분 시가전, 국지 방어전 둘 중의 하나에 통달해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이 군대가 되기 위한 제식훈련뿐이었다.
황무지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답게 돔이 작성하고 긁어모은 군수물자는 갑자기 늘어난 보급을 충분히 감당할 정도였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 장비가 대부분 거치형 포대와 엑소슈트 같은 개인형 장비에 치중된 돔은 그 많은 인원과 물자를 옮길 수송능력이 모자랐지만, 그것은 렙터의 흔적 탐색이 끝난 GG 운송드론이 전부 해결해버렸다.
———
– Jokass : 좀 아쉽긴 해. 운송 드론이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옮길수도 있었으면 원정부대 전원이 공수부대가 되는건데.
– professor : 어쩔 수 없지 뭐. 기본 사양자체가 수송칸을 완전히 밀폐하게 만들어졌다니까. 사람에 맞춰 조율되지 않은 반중력 패널은 뇌진탕이 올 정도로 멀미를 일으킨다고 하기도 하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돔에서 개조해서 쓰겠지만, 지금 같이 한시라도 빨리 적을 덮쳐야 하는 상황에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거든.
28일. 방사능 구역용 버블실드 같은 필수 전투물자를 모으고, 기존의 장비를 정비 및 분배하고, 편제를 나누고, 기초 훈련이 끝나기까지, 돔의 수많은 장교와 지식인들이 계산한 전쟁 준비에 최소로 필요한 시간이었다.
듣기론 벌써 돔 외부로 탈출하다 잡힌 렙터의 첩자가 열두 명 이라던가. 장거리 통신은 돔에서 직접 차단했고, 게시판의 글은 래빗이 직접 관리했으며, GG 서버를 통한 개인 메시지는 내 권한으로 전부 막아버렸으니 어떻게든 돔의 전파 차단 영역 밖으로 나가 우리 쪽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겠지.
앞으로 일주일 뒤면 수많은 전투차량과 운송드론이 방사능과 변종이 가득한 30번대 구역을 향한다.
“….코듀로. 마지막으로 확인된 렙터의 위치는?”
“어…. 7구역이였지요? 계속 남하하는 것으로 보였고요.”
결국 렙터 네스트, 망할 군국주의 살인자 집단은 꼬리를 드러냈다. 여전히 두터운 먼지와 전자기 폭풍의 영향으로 정확한 규모와 형태는 관측할 수 없지만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 정도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스읍-
후우우.
작고 어둑한 쉘터에 빨간 불빛이 타올랐다. 쉘터엔 나 혼자였다.
최근 나와 함께 살고있는 다나는 오늘 행정부 병원에서 자고올 것이다. 오늘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훈련이 끝난 신병들이 외박을 허가받는 날이니까. 홀리는 다나의 친구이기도 했다.
끼이익-
평소 뻔질나게 나의 쉘터와 이안의 조립식 쉘터를 이용하던 BDSM도 오늘만큼은 오지 않는다. 전쟁을 앞둔 만큼 야간에 본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까.
철컥. 푸쉬익-
그러니까, 쉘터의 싸구려 감압장치를 통과해 들어올 사람은, 언제나처럼 그녀석들 밖에 없다.
“여어.”
“시간 맞춰왔네.”
“원정군 참모총장이나 BDSM 넘버 투 쓰리를 억지로 붙잡아둘 수 있는 위인은 그리 많지 않지.”
“햅,번. 불도 안 켜놓,고 뭐해? 그것도, 바닥에서?”
“아, 그냥. 옛날 생각난 김에 옛날 분위기 좀 내보고 있었지. 그땐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전기 아끼느라 불을 끄고 살았거든.”
“하여간 궁상은.”
풀썩! 풀썩!
먼지가 잔뜩 묻은 군화를 대충 털고 들어온 둘은 자연스럽게 내 낡아빠진 쇼파에 몸을 던졌다. 내 자리였던 가운데 자리는, 몸이 커져서 쇼파가 상할까봐 비워놨다는 게 내 변명이었다.
칙, 칙.
어둑한 쉘터에 빨간 불빛이 셋으로 늘어났다.
“그놈 연락은.”
“지금 하는 중.”
“정말 혼자 움직일거냐?”
“어차피 셋 다 움직일 수 없어. 당장 내가 빠지는 것만 해도 문제가 산더미인데. 너희들이라도 커버해 줘야지.”
“니미. 가지각색으로 성가신 자식.”
“햅번은, 도파민 중,독이야.”
타닥, 탁, 타닥
———
[‘흥안만두’ 의 개인 메시지]– professor : 그래…. 만두야. 잡담은 이쯤하고. 그거, 저번에 물어봤던 건 어떻게 됐어?
– 흥안만두 : 그쪽에서 왕창 보내준 부품 덕분에 실컷 연습하고 사용할 수 있었지. 100%라곤 말할 수 없지만, 절대로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갖춰놨다.
– professor : 좌표는 확실하겠지.
– 흥안만두 : 아무렴, 우리 황무지의 영웅이자 희망이자 47번 대화방이 낳은 최고의 아웃풋 박교수씨를 모시는데 신중을 기하지 않았을까.
———
발단은, 오래전 흥안만두 이녀석이 대화창에 지겹도록 도배를 해댔던 구조요청.
‘나 좀 구하러 와주라! 여기가 그, 산위에 있는 군사기지 같은 곳이거든? 당연히 파먹을거야 없지! 이미 옛저녁에 폭격당했고 사람 손 탄 지도 한참 됐으니까! 그…. 개인적인 일로 좀 남았다! 어차피 나 살던 곳에 남은 재산도 없었고!’
‘시, 식량이 거의 다 떨어져가는데…. 좀 도와줄 사람? 박교수, 너 캐러벤 꾸렸다며? 여, 여기까지도 장사하러 오냐?’
‘도움! 도우우움!!! 능선 아래 변종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나 죽어! 박교수님! 살려주세요! 살려줘! 나 간다! 진짜 간다!!!’
굶어 죽는다~ 하더니 고산지에 나는 풀 같은거랑 벽돌같은 군용 비스킷을 뜯어먹고 어떻게 연명한다던 녀석.
38구역 사건 때 변종 웨이브에 죽는다~ 하더니 기지 안에 남아 있던 연료를 두 통이나 쏟아부어 건조한 가을 산을 통째로 태워 또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녀석.
도대체 왜 정찰대 따라 나갔다는 놈이 혼자 폐 군사기지에 남았는지, 아무리 물어도 그놈의 개인사정이 뭔지 알려주지 않던 흥안만두.
처음엔 황무지 사람이니만큼 나름의 사연이 있어 혼자 거기서 죽을 생각으로 남은 줄 알았지만, 2.5형 변종 웨이브때 남아있던 연료를 왕창 써서 산을 통째로 태워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폭격을 당했다고 했지만, 그럼 유류고가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 폭격 이야기는 거짓말.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 남에게 빼앗길까 걱정했다는 뜻이다.
돔의 인원이 아닌데 돔의 정찰대에 합류했다는 것은 아마도 그 군사기지의 최초 보고자로 안내역을 자청한 것. 즉, 처음부터 그곳의 위치를 흥안만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
돔의 군사지도를 모조리 외워버린 내 머릿속에 산속 군사기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건, 정찰대가 그 기지가 군사적으로 무가치했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고산지에 위치한 군사기지이며, 흥안만두가 미리 알고 있었고, 돔의 정찰대가 확인했지만 군사적으로 무가치한 곳이다.
모든 군사자원이 유용한 황무지에서 무가치한 군사기지란 딱 한가지만 존재한다.
바로, 공군기지.
시야가 2미터도 잡히지 않는 끔찍한 모래바람과 전자기 폭풍은 인류에게서 하늘을 빼앗았다. 오죽하면 말도 안 되는 기술의 집약체인 게드로이츠 운송 드론조차 대기권 비행 시 높은 확률로 추락할까. 렙터를 쫓다가 그런 식으로 잃은 드론이 한두대가 아니었다.
산속 고지대에 위치해 차량 접근 불가능. 폭격을 피하기 위해 봉우리가 아닌 능선 안쪽에 건설되어 정찰기지로 사용도 힘들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최신형 전투기의 임시 착륙지로 지어져 기지 규모도, 활주로 크기도 모두 규격미달.
한마디로, 흥안만두가 돔의 정찰대까지 끌어들여 찾아간 옛 공군기지는 이 시대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콘크리트 흉물일 뿐이었단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흉물이었다.
———
– 흥안만두 : 여긴 원래 쉘터가 유행할 때 부자들이 만들어놓은 장난감이었어. 아마 좀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다들 옥상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칠 때 혼자 헬기를 탄 구세주가 되는 상상이라도 하며 만들었겠지. 그걸 연합군이 징발해서 다용도 긴급 군사기지로 개조한거고.
– 흥안만두 : 당연히 두어대 있던 개인 전용기도 다 징발 당했지만, 한 대는 그 무시무시한 징발의 손길을 피해갔지. 그건 타는 물건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당에 두기 불편한 수집품이었거든. 거의 박물관 소장품 급.
– 흥안만두 : 그리고, 개조된 군사기지만 보고 간 돔의 정찰대는 개조된 군사기지만 확인했을 뿐 안내자 흥안만두가 고의로 보여주지 않은 별장의 남은 한 동을 보지 못하고 하산해버렸고. 물론 여기 도착하자마자 사이코 갱이라도 된 것처럼 똥오줌을 질질 흘리며 미쳐날뛴 안내자에게서 한시라도 더 빨리 떨어지고 싶어서 못 본것도 있고.
———
흥안만두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기가 끈떨어진 연이라서 그렇지, 원래는 공군 에이스였다고.
———
– professor : 그래서, 되냐?
– 흥안만두 : 물론.
– 흥안만두 : [첨부파일 1. jpeg]
———
녀석이 보내온 이미지. 미리 통신기의 촬영 기능을 켜놓고 멀리 찍은 듯한 그것은, 자연인 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괴인이 흙과 기름 범벅이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춤추는 남자의 옆 벽면에는 인터넷에서 받은 것을 직접 숯으로 그린듯한 어설픈 설계도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뒤로는 경화성 수지로 범벅이 된 나무 경사로가 짧은 활주로 끝에 힘겹게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활주로 앞에. 춤추는 더러운 남자가 자랑스레 두 팔을 펼쳐보인 그곳에는.
모든 것이 더럽고 낡은 그곳에서 유일하게 새것처럼 빛나는, 빨간 복엽기 한 대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씨부럴, 복엽기라니. 설마 저거 현역이었던 건 아니지?”
“일종의 레저용 레플리카였다더라. 2050년산. 새거나 다름없지.”
“환장하겠네. 진짜 저것밖에 답이 없는거냐? 꼭 타야겠어?”
“괜찮아. 낙하산 튼튼한거로 가져가니까.”
“추, 추락을 전제,로 타는,데?”
“괜찮아. 난 몸이 튼튼하잖아.”
짤랑-
나는 벡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던져준 차 키를 가볍게 낚아챘다.
“오래 안 걸려. 원정군 출발 3일 전까지는 돌아올게.”
렙터 토벌전과 예술과 연합의 초대. 어느것 하나 미룰 수 없어 내려진 결정이었다.
쭉 북상하기만 하던 렙터가 남하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북쪽으로 여행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덕분에 6주로 잡았던 전쟁 준비를 2주나 더 줄였다.예술가 연합, 콜렉터의 초대는…. 조금 멍청이 같지만 내 감 때문이었다.
뭔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 게드로이츠의 게임안에 진득하게 섞여있던 그의 사상과, 그것이 현실로 마주하며 벌어지는 우연이 아닌 우연들.
이게 3형 변종의 감인지 아니면 사선을 넘다 못해 몇 번 건너편에 갔다온 박교수의 육감 같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경험을 통해 이런 목덜미가 선득한 감각을 무시했다간 좋을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건, 내가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내 무의식 어딘가에서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뜻이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의 말에 벡스와 이안은 한숨처럼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제수씨한테 우린 죽었다.”
“조, 조카스네, 가, 가있자. 임산부, 태교하니까, 죽, 죽이진 않을,거야.”
“노루? 걔 저번에 태교한다고 크라브마가 실전 영상 같은거 빌려가던데. 단검으로 막 사람 찔러대는거.”
“어, 아아….”
다소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을 뒤로하고 쉘터를 빠져나왔다.
“갔다올게.”
“착각하지 마라. 말려도 안듣는 놈이니까 보내주는거야.”
“무, 무리하지, 마.”
“오냐.”
“트럭에 일개 중대가 한달은 쓸만한 무장 챙겨뒀다. 여차하면 다 터트리고 복귀해. 갔다 왔을 때 또 커져있으면 안된다.”
“알았다니까.”
푸쉬이익-
덜컹!
야심한 밤, BDSM이 경계를 맡은 구역에서 무장트럭 한 대가 조용히 47구역을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이미 반쯤 방사능 지대가 된 40번 구역,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흥안만두의 공군기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