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07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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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워킹케인의 장벽이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과 그것의 주인인 3형 변종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촤아아악-
오랫동안 쓰지 않은 도로는 한껏 쌓인 모래를 흩날리고 있었다.
부아아앙!
그 위를 달리는 무장트럭은 거친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달리고 있었으며.
삑-
[전방 15km. 3형 변종 ‘워킹케인’ 관측. 알려진 인지 거리까지 약 14.2km 남았습니다.]삑-
[7시 방향 3.5km 고가도로 위 2형 변종 관측, 4체. 촬영된 화면을 전송합니다.]그 트럭 위로 십여 대의 운송드론이 저공비행을 하며 주변의 모든 위험정보를 내게 전송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러한 권한을 다룰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보안코드를 가진 운송드론 T.C.A.T-3000에 내장되어있던 통신 모듈 뿐이었으며, 그 특별한 드론은 나와 내 친구들 손에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그 통신모듈을 누군가 탈취하지 않을 정도로 보안성 있게 보관하며, 동시에 실시간으로 사용 가능하게 휴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으으. 엄마가 전자파에 많이 노출되면 몸에 안 좋다고 하던데.”
바로, 내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남아있는 금속 이식 부위에 티캣의 통신장비를 쑤셔넣는 것. 생각보다 간단했던게, 이미 내 가슴팍에는 큼지막한 군용 통신장비가 들어있었다. 저번에 암시장에서 쥐새끼 때려잡을 때 요긴하게 썼던 그 통신기 말이다. 그거 빼고 넣으니까 오히려 자리가 남더라고.
덕분에 이렇게 트럭 운전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운송드론에 명령도 내릴 수 있고, 운송드론이 찍어보낸 영상을 트럭의 디스플레이로 전송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스캐빈저가 떼몰살 당해 길만큼은 뻥 뚫렸지만 그 대신 온갖 변종이 우글거리는 황무지에서, 드론을 통해 사방을 감시하며 마음 편하게 피해다닐 수 있고.
그 결과, 친구들과 온갖 중화기를 쏟아부어가며 닷새에 걸쳐 도착한 40번 구역에 혼자서 총알 한 발 안 쏘고 이틀 만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예술가 연합. 자아를 가진 3형 변종이라.”
지이이잉-
창문을 내리자 짙은 모래바람이 세차게 운전석으로 밀려들었다.
“….나라고 딱히 다를 건 없겠지?”
이틀 동안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왔다는 것은 아무런 사건도 없이 밥 먹고 운전만 했다는 뜻이다. 황무지에선 흔치 않은 ‘지루한’ 상황이었고, 말동무 하나 없는 트럭 운전수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알싸한 모래 향기, 단 한 번의 들숨에 폐부까지 느껴지는 까슬거림, 그리고, 미약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한 가이거 계수기.
혼자 황무지로 나온 첫날 밤, 부산스럽게 알람이며 만약을 대비한 보호복 따위를 준비하다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몸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변종은 방사능 구역에서도 잘만 살았다.
나는 몸 주요 부위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단단한 갑피 때문에 운전 내내 등허리가 결려서 끙끙거리던 참이었으며.
그리 꼼꼼하지 못한 이안이 챙겨준 외부활동용 보호복은 그런 인외(寅畏)의 몸에 잘 맞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로만 느끼던 것을 피부로 깨달아버렸다. 내가 정말 달라졌구나. ‘인간 박교수’로 살았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워로드’의 기형적인 몸으로 살아왔음에도 밖으로 나와서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바깥의 몸 또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래. 방사능 낙진. 미세 중금속. 유해성 가스등이 뒤섞여 있는 바람이 세차게 운전석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느껴지는 것은 익숙한 황무지의 향기 뿐이었다. 이미 30번대 구역의 독성 대기가 40번 구역까지 내려와 돔의 모든 전초기지가 물러났다는 보고를 생각하면 이렇게 들이마셔도, 마시고 멀쩡해도 안 되는 것이다.
변종과 같은 괴물이라면 모를까.
언젠가, 나도 저기 보이는 워킹케인처럼 내 머릿속 어느 순간에 갇혀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된다면 어느 순간이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역시, 콜렉터라는 자에게 적합자가 되는 방법을 물어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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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지 않고는 못 버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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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괴물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틀 전. 막 트럭을 타고 47구역 관문을 나서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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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나? 여긴 어떻게….’
‘벡스씨는 정말 거짓말을 못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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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정말로 화가 난 표정의 다나가 차량 검문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바로 뛰쳐나왔는지 품이 넓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환자복과 다나의 긴 머리칼이 흩날리는 모습은…. 뭐랄까. 대단히 전투적으로 보였다.
나야 뭐, 당연히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오는줄 알았지. 솔직히 다나한테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몰래 빠져나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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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있잖아. 내가 정말로 꼭 만나야 할 중요한 사람들이 있어서-’
‘불안한 거지? 그 상태로 우리 곁에 있는게.’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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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심지어 나 스스로조차 확신하지 못했던 불안을 다나는 알아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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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같은 침대를 쓰는 사이잖아.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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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나를 얕보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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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드론 T.C.A.T-3000. 분류상으론 GG 운송드론에 포함되며, 교수 당신이 운송드론 전체에 내린 명령은 관찰, 기록 및 특이사항의 전달이었지. 티캣은 항상 당신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이안씨가 실수한 게 있다면, 그때 흡연실에서 우진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통신기로 벡스씨한테 전달한 거야. 티캣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우주까지 닿을 정도로 강력한 통신기능이니까. 당연히 주변 전파를 받아내는 기능도 강력했고. 당신이 내린 명령에 따라 티캣은 수집된 외부 통신을 기록했지.’
‘….다나.’
‘당신이 나를 티캣에 대한 2차 소유권자로 지정해준 덕분에 데이터 마이닝이 그리 어렵지 않았어. 그때 흡연실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도 들었고, 이미 티캣의 [주인]이 그 통신 데이터를 열람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어.’
‘….그 정체불명의 [콜렉터]가 남긴 메시지도 확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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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는 그냥 예쁘고 병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 몸으로 황무지의 정보를 캐내고, 온갖 지독한 놈들과 거래를 해내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어엿한 생존자를, 나는 너무 무시했던 것이다.
나보다 주어진 정보가 적은 상황에서, 그녀는 훌륭히 상황을 파악하고 나의 행동을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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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육체적 자극 어느 쪽 하나라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변종화가 가속되는 상태. 이미 외부적인 변화가 도드라질 정도로 진행된 상황. 한번 죽었다 살아난 목숨인 만큼 돌려준 수명은 얼마 안 된다는 이야기겠지.’
‘변종화에 대한 기록과 콜렉터의 기록을 재생한 횟수가 유독 많았다는 것은 두 기록이 가진 정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뜻이고. 이렇게 급히, 다른 중요한 일도 많은 가운데 혼자 횡사니 사라진다는 것은 거기에 있는 무언가가 당신의 상태를 호전시킬 단서라도 된다는 뜻이겠지?’
‘어…. 다나? 나 슬슬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그걸 그 짧은 시간동안 티캣의 기록만 보고 알아냈다고?’
‘잊었어? 어리숙하던 시절 당신의 정보담당이 스피드웨건이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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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기를 두고 떠나는 거냐고 화를 낼 줄 알았던 다나는, 되려 미소와 함께 나를 전송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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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가. 가지 않고는 못 버티는 거지?’
‘당장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까. 자칫 전쟁통에 괴물이 되어버리면 당신 손으로 주변 모두를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당신 자신을 처리하려는 것 아냐. 그 콜렉터라는 수상쩍은 여자를 통해서.’
‘….4월드에서. 내 손으로 내 사람들을 많이 죽였어. 더는 그걸 버틸 자신이 없더라고. 되돌릴 방도가 없는 현실에서는.’
‘그 게임이 정신병 양산하는 것은 여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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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속으로 썩이던 문제를, 그것도 내 목숨에 남의 목숨까지 걸린 문제를 누군가 말하기도 전에 이해 해준다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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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와. 다치지 말라곤 안 할게. 나도 몇 번 겪었으니 학습이란걸 해야지.’
‘….미안.’
‘괜찮아. 나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남자를 애 아빠로 두고 싶진 않거든. 언제나 그랬듯, 만신창이가 되어서 살아 돌아와줘.’
‘이해해줘서 고마….음?’
‘왜? 뭐가?’
‘아, 아니 방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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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이해받는 것보다 수십 배, 수천 배는 더 기분 좋은 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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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그럼 내가 뭣 때문에 지난 몇 주간 매일 같이 병원에 들렀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 그게, 다나는 지병이, 그, 알다시피 나는 지금 육체적으로 유별난 상태가….’
‘그래요? [그런 몸]을 하고도 아주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던 게 누구셨을까? 응? 솔직히 내 체력으론 당신을 따라가는 게 힘들었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초기에 유난히 피곤했던 게 그것 때문이라고 착각했고.’
‘그럼, 그게 설마….’
‘나도, 아이도 아직은 건강하대. 다소 지나치게 건강한 감이 있어서 매일 검사한다고 병원에 다녀야 하긴 하지만.’
‘후후후. 래빗이 나한테 졌다고 분해하더라니까? 노루언니는 애들이 동갑이니 다음 세대까지 빌붙어 먹어도 되겠다며 좋아했고.’
‘어, 어어어어….’
‘임신 초기고, 여기 도와줄 사람도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소리야.’
‘어버, 어버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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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머리가 멍해져서 어떻게 관문을 빠져나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거라곤 우리 박씨 집안의 새 마나님이 되실 분이 ‘절대로 과부가 될 생각도, 우리 [작은 성자]님이 홀어머니를 모시게 할 생각도 없으니 나가서 문제를 고쳐올 것’이라 명령하셨다는 것과 추가로 아이 이름을 뭐로 할지 생각해오라고 했던 것.
이틀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생각만 해도 강렬한 태양을 마주보는 것 같아, 눈을 뜨고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
“….하이드.”
멍하니 흘러나온 이름에 대답은 없었다. 혼잣말처럼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듯 생각하는게 습관이 된 것 뿐이다.
“니 아빠 아빠됐다.”
녀석이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일단 엄청 비웃었겠지. 현실 25년, GG 28년 도합 53년을 거쳐 비로소 제대로된 남성의 반열에 오른 박교수 씨가 그만 초짜다운 컨트롤 실수로 계획에 없던 대규모 프로젝트에 돌입했다면서.
전쟁을 앞두고 애아버지라니, 아주 사망 플래그를 세우다 못해 중세 선봉기사처럼 깃발을 휘두르면서 달려 나가라고 낄낄거렸겠지.
동시에, 나만큼이나 행복한 얼굴로. 어쩌면 나보다 더 행복한 얼굴로 쉴 새 없이 나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몇 주 전에 다녀온 학부모 참관 수업 때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 앉은 신시아(13세)의 혁명적인 자태를 떠올려라. 손끝을 살짝 까딱인 것만으로 같은 반 학우들 모두를 부동자세로 만들었으며, 사열한 그들 사이를 걸어와 ‘바쁘신 와중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라 인사하며 안절부절한 선생을 진정시키는 모습을 떠올리면, 새 동생은 당분간 의붓누이와 거리를 두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같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에게 내 존재를 설명할 때 ‘하이드’의 존재가 7세 미만 유아가 으레 가지고 있는 ‘상상친구’와 어떻게 다른 존재인지를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나누거나.
혹은, 『그래서 어떤 이름이 아직 화가 난(심장 몇 개라도 걸겠다) 다나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있었겠지.
“하이드.”
대답은 없으나, 그 이름을 입에 담을 때마다 가슴 속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 작은 불빛이 켜지는 느낌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조금씩, 앞으로는 조금 더 빠르게 내가 아닌 것이 되어갈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별개인 줄 알았던 수많은 사건들이 한 점으로 수렴해가는 지금.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부아아앙-!
이틀째 아무런 위험도 없이 먼지투성이 도로를 달리는 트럭은 그 지루함이 가져온 수많은 상념과 함께 목적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40번 구역 서쪽의 수많은 산지에서 흥안만두의 전초기지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산골짝이 많아도, 몇 달 전에 누군가 변종을 쫓아낸다고 불을 질러 새까맣게 그을린 산골짝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실제론 처음 보는 친구의 얼굴을 복잡한 머리 위에 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악셀을 밟았다.
내 고민의 답은, 그 녀석이 실어다 줄 목적지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번에 하나씩. 처음 GG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처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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