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08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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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정말로 와줬구나! 박교수!”
“그럼 30분 거리까지 다가와서 길을 묻고 있었는데 안 왔겠냐.”
흥안만두. 본명 배성주. 기름이 떡진 머리에 흔히 ‘스캐빈저 수염’이라고 부르는 나이프나 캔 뚜껑 따위로 거칠게 다듬은 수염. 군화에 정비용 점프수트, 그 위에 걸친 온갖 패치를 빼곡하게 꿰매어 놓은 항공점퍼까지, 녀석은 생긴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타내길 작정한 사람 같았다.
“47 대화방 애들이 안부 전해달라더라.”
“나도 봤어. 지금쯤 우리 얘기 하고 있을걸?”
녀석과의 만남은 인터넷 친구와 첫 만남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감 없이 다가왔다.
“어….”
“….”
물론, 만두나 내가 문자로만 대화하던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절친처럼 여길 만큼 붙임성 있는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고.
“그리고, 음. 그쪽….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의 무엇을 보고 반가운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알았다.”
어디까지나, 온라인으로나마 친분이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일면식도 없는 제3 자가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일면식도, 방문 예정도 없는 불청객은 평범한 황무지 사람인 흥안만두의 경계심을 심각하게 자극했고, 그 경계심과 어색함이 뒤섞인 마음이 눈앞에 온라인으로나마 제법 오랜 친분이 있는 인물에게 더욱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까.
“….”
“….”
“왜 둘 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지.”
콰악!
불청객의 물음에 흥안만두는 잔뜩 불만에 찬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힘껏 쑤셨고.
“아으으으-&^%#@!!”
돔 연구원들에의해 공식적으로 ‘전차용 복합장갑급’이라 공표된 내 몸을 힘껏 가격한 녀석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속삭였다.
“으으으…. 야, 뭔데 저건. 혼자 오는 거 아니었어?”
“그, 음. 성주야.”
“만두라고 불러. 그쪽이 덜 어색해.”
“그래 만두야. 우선, 미안하다.”
“우리가 친분이 있다곤 해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건 아니지. 47구역도 아니고, 여긴 황무지잖아. 약속 장소에 약속 이외의 추가 인원이 있으면 습격으로 취급해도 무방한 거 알지?”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잖아. 내가 잘못 했다고.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니까?”
“그러면 내가 지금 당장 너희 두 외부인을 상대로 군용 방어 터렛을 가동시켜도 아무 문제 없는거지?”
음. 이 녀석 진심이군. 딴에는 몰래 품속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보니 직접 입력으로 가동하는 반 자동화 터렛인 것 같은데. 되게 구형이로군.
슬쩍 녀석의 등 뒤를 살피고, 내 동행인을 보고, 한숨 한번 푹 내쉰 다음, 녀석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줬다.
“뭐. 그렇게 해서 마음이 풀린다면야. 도탄 안 맞게 좀 멀리 가서 쏴라.”
“군용 터렛이라. 대공 화력으로 두 대 정도인가.”
“어, 어어….”
만두는 위협적으로 이쪽을 향하는 터렛을 보고도 심드렁한 우릴 보고도 황당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풀었다.
“망할. 진짜 괴물들을 상대로 내가 재롱을 떨고 있었군. 너나 그쪽 손님이나 구형 군용 터렛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거지?”
“그런 것도 있고. 대공 터렛은 스마트 탄을 쓰지 않는 이상 폭발력이 강한 쪽을 많이 쓰는데, 넌 내 코앞에서 떠들고 있었잖아. 애초에 쏠 생각이 없는 허세였다는 거지.”
“제기랄. 그 박교수 앞에서 잔대가리를 굴리다니, 내가 미쳤지.”
만두가 한 것은 일종의 황무지 생존자 식 기싸움이었다. 처음 만나는 두 집단이 ‘평화적인’ 목적으로 마주할 때, 자기네가 가진 화력을 보란 듯이 선보이며 ‘우리가 이 정도 되는 놈들인데도 너희들이랑 마주보고 이야기하러 나왔다.’ 같은 뜻으로 시위하는 것. 거칠긴 하지만 나름 전통적인 평화의 제스쳐 같은 거라 이거다.
‘아, 이런 것도 오랜만이네. 이안 녀석이 이런 걸 참 잘 했는데.’
당연히 눈꼽만큼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안전한 돔의 영역 바깥쪽 황무지는 이런 식의 거친 인사가 일상이고, 흥안만두는 처음 조우하는 무력 집단이 약속 장소에 예고에 없는 인원을 데려온 것에 합당한 항의를 한 것 뿐이니까.
‘어디보자. 일반 절차에서 이 다음에 어떻게 했더라?’
우선 두 집단이 자기네 무력을 과시하고. 만두네 대공 터렛을 우리 쪽 피지컬이 압살했으니까, 대화의 주도권은 우리가 가지는 의미에서….
“배성주. 닉네임은 흥안만두고, 이곳 우타이산(五台山, Mt. Wǔtái) 공군기지의 주인이자 무단 점거자이며, 전직 연합 공군 제 25사단 에이스 파일럿이지.”
‘아, 그래. 쫄린 쪽이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거였지.’
매번 HIV로 거래를 나갈 때면 이 과정의 중간 즈음이 항상 메탈죠의 총기난사로 장식되기 때문에 끝까지 못 갔지만, 황무지 일반 상식으로는 이렇게 하는게 맞았다.
“흠흠. 박교수, 게시판 이름은 잘 알다시피 프로페서고. GG 방송 랭킹 1위, 3월드 및 4월드 클리어 기록 보유자, 사고로 몸이 이렇게 된 하프 변종이며 최근 급격하게 성장중인 ‘광명교단 황무지 지부’의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돔의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이지. 아, 추가로 몇 주 전에 창설된 돔 원정군의 참모총장직도 겸하고 있다.”
“세상에. 뭔 우리 세대에 제일 쩔어주는 직함을 어보미네이션마냥 뭉쳐놓으신 분이군.”
저쪽에서 고개를 숙였으니, 그 모가지를 썰어버릴 의향이 아니라면 마저 숙여주고.
“그리고 이쪽은, 음…. 디테일한 설명은 안 해도 알지?”
“모르면 간첩이지.”
추가로, 리더격인 내가 분란의 원인이 된 추가 인원을 소개하면 되는 거다.
“천류제. 닉네임도 천류제고, 여기 산밑에 도착해서 짐칸 열었더니 그 안에 있었다.”
천류제. 동일한 닉네임으로 나 이전에 3월드를 클리어한 랭커이자, 게드로이츠의 완성자 보상 중 [군사 프로젝트 T-42/초감각화 훈련 프로그램]을 받아간 놈.
흥안만두와 프로페서, 두 인터넷 친구의 첫 오프모임에 난입한 불청객은 최근 돔에서 공식적인 법령으로 ‘올드픽처와 같은 3형 변종 취급할 것’을 공표한 기인 중에 기인이었다.
“트럭에…. 천류제가 몰래 타고 있었다고?”
“어. 짐칸에.”
“여기까지 오는데 이틀 걸렸다며?”
“이틀동안 전투 한번 안하고 운전만 해서 짐칸을 열어볼 시간이 없었지.”
“밥은? 물은? 화장실은?”
“참았데.”
“갑자기 47구역으로 이주한 이후로 BDSM에만 지내던 녀석이 뜬금없이 왜?”
“모르지. 나도 30분 전에 산어귀에서 짐칸 열었을 때 이 녀석을 처음 봤거든.”
사실, 열고 나서도 긴가민가했다. 이 녀석, RPG발사관 상자랑 7탄 상자 사이에 무슨 정물처럼 미동도 없이 낑겨 있었거든. 시체같은게 눈을 스르륵 뜨면서 ‘도착한건가.’ 하는데, 진짜 4월드에서 다져진 인내심이 없었다면 그 순간 손에 잡히는 걸 죄다 던졌을 거다. 트럭안에 있는거라곤 절반이 화약덩어리이니, 그랬으면 아마 장렬하게 터져나갔겠지. 고철이 된 트럭에서 나랑 저놈은 멀쩡하게 기어나올테고.
“어찌됐건 일단 동행하게 됐으니 그렇게 알아달라고. 비행기에 자리 있지?”
“그럭저럭 4명까진 탈 순 있지만…. 제길. 사람이 늘면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고.”
내 설명을 들은 만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등을 돌리더니 낑낑거리며 조잡한 철판문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천년만년 거기 세워둘 수도 없으니까, 일단 들어와! 자세한 비행 일정은 안에서 하자고!”
저지력이 전무해보이는 문이 옆으로 밀려나며 드러난 것은, 아마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원래 목적으로 사용되는 공군기지.
펄럭!
“AN-2. 현대의 장난감으로 부활하신 날틀계의 조상님이시지.”
그리고, 그 공군기지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인 두 겹의 날개를 가진 작은 비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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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들들들들들- 철컹!
끼릭 끼릭 끼릭 끼릭-
“어때, 니가 봐도 대단하지 않냐?”“….어떤 면에서는?”
분명, 대단하긴 했다. 애초에 이곳은 돔의 정찰대에서 ‘더는 방문할 필요 없음’ 판정을 내릴 정도로 싹싹 털어간 장소니까. 사실상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은 곳에 흥안만두는 구식 비행기를 정비하고 이륙할 시설을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다.
삐걱 삐걱 끼릭 끼릭!
“어…. ‘나홀로 집에’에서 이런걸 본 것 같은데.”
“아아, 캐빈. 확실히 그 크리스마스 소악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문제는, 그 대단함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비행기 정비가 가능한 시설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게 아니라, ‘진짜 이런 조잡한 시설에서 비행기를 이륙시킨다고?’ 하는 불안 섞인 감탄이라는게 문제지.
일단, 활주로가 짧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내준 사진만 봐도 짧아보였고, 애초에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7세대 전투기를 위한 간이 기지였다고 하니까.
그런데, 만두 녀석은 그 짧은 활주로를 어떻게든 길게 활용하기는커녕, 그 가운데 떡하니 나무 기둥이며 낙하산 줄, 천막 같은 것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아닌가?
만두 녀석이 커다란 도르래를 낑낑거리며 돌리자 늘어선 줄과 천막이 우리쪽을 향해, 그러니까 활주로 반대편을 향해 천천히 당겨지고 있었다.
“아무리 AN-2 같은 복엽기가 이륙에 필요한 거리가 짧다지만 이정도 활주로로는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워낙 난기류가 심한 동네라 제대로 뜰지도 미지수고. 그래서, 캐터펄트를 만들었지.”
“캐터펄트면…. GG에 나오는 투석기(Catapult) 같은거?”“아, 뭐. 어원은 맞는데. 이건 항공모함에서 쓰는 전투기 사출용 고속 윈치를 말하는거야.”
들들들들- 텅!
만두는 어느새 우리 발끝까지 다가온 천막의 끝부분을 바닥의 갈고리에 걸어놓으며 말했다.
“네가 보내준 경화제 덕분에 어떻게든 활주로 끝에 경사로를 만들었어. 우리 비행기는, 자체 추력으로 이륙하는게 아니라 캐터펄트에 의해 하늘로 쏘아지는거지. 이렇게 보면 새총을 닮았지?”
“그렇네. 줄이 팽팽한 고무줄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복엽기를 쏘아낸다고 하면 꽤나 거창한 동력이 필요할텐데, 그건 어떻게 하려고?”
“저어-기 벌써 준비해놨지.”
만두 녀석의 손끝이 가리킨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등성이의 커다란 바위였다. 만두는 쌍안경을 내밀었지만 천류제나 나나 이 정도 거리는 맨눈으로도 충분했다.
“바위로군. 다소 기반이 불안정한. 제법 공들여 쇠사슬을 박아놨군.”
“옙. 나름 관광명소 취급받던 흔들바위입지요. 저거 공사한다고 팔자에도 없는 암벽하다 식은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다고요.”
“저 아래쪽에 저건…. 폭탄이냐? 원격이네?”
“….맨눈으로 그것까지 보이냐? 뭐, 아무튼 맞아. 크고 빨간 버튼을 누르면 쾅! 하고 폭탄이 터지면서, 저 커다란 바위가 아래로 추락하는거지.”
여기까지 봤으면 바보라도 이 녀석이 뭘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활주로 맞은 편에 위치 한 커다란 바위와, 거기에 단단히 고정된 쇠사슬.
활주로 아래쪽으로 뻗어있는 쇠사슬과, 활주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레일 위의 갈고리.
“뭔가 잔뜩 부산스럽게 만들어 놨지만 대부분 활주로 밑에 심어놓은 레일이 중심을 이탈하지 않게 하기 위한 고정장치지.”
바위가 떨어지고, 거기에 고정된 쇠사슬이 활주로의 윈치를 당기며, 윈치는 갈고리에 걸린 복엽기와 함께 수천 톤의 바위가 떨어지는 힘으로 활주로를 내달린다.
“결국, 투석기 맞잖아 그럼?”
“최초의 공성 투석기가 있었고, 항공 엔지니어가 그것을 본따 전투기 사출용 캐터펄트를 만들었으며, 다시 그 캐터펄트를 본따 흥안만두표 항공 투석장치를 만들게 된거지. 지식은 돌고 도는 거라고.”
“저게 가능해? 문제없어?”
“어…. 아마? 응력은 복엽기를 실은 롤러를 통해 대부분 분산될거고…. 될걸? 이론상? 되겠지?”
안될 것 같은데. 출발과 함께 산 아래로 내동댕이쳐진 복엽기가 억울하게 희생당한 흔들바위와 함께 비참하게 추락하는 게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설명을 마친 흥안만두는 기립박수를 기다리는 지휘자처럼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섰다.
“어때?”
“….”
“….”
무표정한 천류제 옆의 내 눈썹이 역 팔자(八)로 휠수록, 자랑스럽게 펼쳐진 만두의 팔이 움츠러드렀다.
“어…. 물론 아무나 태울 수 있을만큼 안전하진 않고, 사출 중 미세하게 각도가 틀어지기만 해도 계곡에 그대로 처박힐 수도 있고, 자칫 순간 가속으로 복엽기의 날개에 과도한 양력이 걸려서 이륙과 동시에 날개가 틀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비행기가 뜨잖아? 뜬다고! 항공 역사가 소멸한 시대에 다시 한번 인류가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거야!”
“어, 어때?”
“….어디 계속 지껄여봐 한번. 재밌네. 천류제, 얘 생각보다 되게 재밌지 않냐?”
“확실히. 인상적이군.”
“그렇지? 분명히 내가 필요한 지원은 다~해준다고, 원한다면 돔을 털어서라도 필요한건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굳이 마다하면서 만들어낸 게 산맥 투석기냐? 앙!”
“어, 어쩔 수가 없었다고! 네가 필요한 물건을 지원해주기 시작한건 고작 한 달 전부터잖아! 난 이미 그 전부터 이 복엽기를 하늘에 날리기 위해 이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다! 네가 메시지로 ‘혹시 너, 전부터 꿈지럭거리던거 비행기냐?’ 하고 물어왔을 땐 이미 캐터펄트의 7할은 완공된 상태였다고!”
“그럼 씨발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원시 자살머신이라고 얘기를 했어야지! 난 이제 돈이 썩어난다고! 항공 자이로 장치라던가, 엑소슈트용 부스터 팩이라던가 뭐라도 말만 했으면 아주 드론 편대로 실어와서 덕지덕지 붙여줄 수 있었단 말이다!”
“지랄마! 지금 저걸 만드는 데도 얼마나 많은 계산이 들어갔는 줄 알아? 안그래도 가볍고 빈약한 복엽기에 추가 추진장치를 몇 개나 더 달자고? 합체로봇 분리하듯 복엽기 산산조각 나는 꼴 볼래?”
“그럼, 지금 저 투석기 응력인지 양력인지 계산한 것처럼 그것도 계산하면-”
“시험 전 고3 수험생처럼 대가리 처박고 계산해도 3주는 걸릴거다. 항공 역학을 우습게 보지마. 나도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왔지, 아니었으면 진즉에 저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을거다. 전공 서적이랑 같이.”
녀석은 잉크가 시커멓게 번진 항공점퍼 소매를 흔들어보였다. 흔들리는 소매 너머로 나달나달해진 항공정비 서적과 직접 인쇄한 듯한 누렇게 뜬 종이 무더기가 콘크리트 벽 한쪽에 가득 쌓여 있었는 것이 보였다.
“….진짜 안 되냐?”
“안돼. 아니, 안 해. 저 망할 수학지옥으로 돌아가느니 그냥 뒈지고 말지. 대가리에 총구를 들이밀어도 안 해.”
“총구가 저 복엽기를 향한다면?”
“어, 그, 그래도 3주는 걸려! 진짜로! 무슨 장난감 만들 듯 아무대나 추진체 같은걸 붙여도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당장 천류제 한명 더 타는 것만 해도 항속 거리며 이것저것 다시 계산할 게 얼마나 많은데!”
“3주…. 망할. 그렇게는 못 기다려. 결국 ‘저대로’ 타고 가야한다는 건가….”
눈앞에 낡은 티가 역력한 복엽기가 보였다.
그 앞으로, 바닥재와 샷시 따위를 뜯어 붙여 한 단 높인 활주로와 그 단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캐터펄트 레일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경화성 수지로 엉성하게 붙인 목재 경사로가 있었으며- 그 연장선으로 조금 더 먼 곳엔 쇠사슬과 폭탄에 둘러싸인 커다란 흔들바위가 있었다.
단지 ‘활주로가 짧다’는 이유로 벌어진 사단이다.
“걱정마. 이륙은 물론 착륙까지 다 확실하게 생각해 뒀으니까.”
“으으으으. 잘 부탁드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험은 편지 드래곤 한번으로 충분했지만, 벌써 여기까지 오는데 이틀을 써버린 나로서는 [고속 + 지형무시 + 변종 위험 없음]의 3박자를 고루 갖춘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 돔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 5일 밖에 안 남았으니까.
결국, 나는 득의양양해진 만두 녀석을 따라 밤이 늦도록 비행기의 마무리 정비를 도울 수 밖에 없었다.
따앙- 따앙-
깊은 밤. 오랜만에 전기 화로를 만난 천류제가 밤새도록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럭에서 꺼내온 낙하산을 부적삼아 껴안고 잠들어야 했다.
벌써부터 다나의 포근한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고, 기어이 다음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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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털털털털!
칙, 치익-
[후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아아, 굿모닝 레이디스 앤 젠틀맨. 여러분들의 안전 운행을 책임질 기장 배성주, aka 흥안만둡니다.]“집어치우고 이륙 준비나 해!”
[저런 저런. 기내 난동은 기장을 포함한 승객 전원의 사망사고로 이어지니 자제해 주시길. 화장실은 다녀오셨습니까? 안전벨트는 매셨습니까? 발파 스위치는 들고 있습니까?]“천류제다. 박교수는 손이 커서 내가 들고 있다. 출발할 때 누르면 되는건가.”
[브라보. 승객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추락하는 바위가 캐터펄트를 당기는 순간과 비행기 자체 추력이 올라오는 시점이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그대로 본 비행기가 허리부터 두동강 날 수도 있으니, 모쪼록 잘 맞춰주시고.]“야!”
[큭큭큭큭. 쫄지 마십쇼 박교수 승객님. 황무지 대영웅의 명성이 웁니다.]치익-
배성주, 이미 몇 년 전부터 본명에 비해 ‘흥안만두’라는 이름으로 불린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은 남자는 무전을 종료한 헤드셋 너머로 승객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방송을 통해 박교수가 저런 너스레로 긴장을 푼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몇 배는 중요한 것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다시 이 자리에 앉았군.”
항공기와는 다른 좁은 운전석. 너른 하늘을 비추기엔 심히 답답한 창문과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늘어선 수많은 버튼, 장치들. 그가 쓰던 전투기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모델이지만, 그럼에도 비행장치 특유의 복잡한 구조는 모종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탁 탁 탁
우우우웅-!
정해진 순서에 맞춰 버튼을 올리자 잠에서 깨어나듯 불빛을 깜빡인다.
기회는 한 번. 항공 관제센터도, 부사수도 없이 오직 감으로 캐터펄트가 당겨지는 순간에 맞춰 가속해야하는 순간.
[슈팅스타-2. 스텐드바이.]그는 눈을 감았다. 음속을 넘어선 고요함 속에 푸른 창공을 가르지르던 그 순간을. 육체도, 정신도 모두 기체와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그 순간을 상상하며, 신호했다.
[캐터펄트, GO]쿠우웅-
저 앞에서 험준한 세월을 버텨온 산의 일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200미터. 바위가 슬로우모션처럼 기우는 것도 잠시, 당겨진 쇠사슬과 낙하산 줄이 순간 튀어오르며 채찍과 같은 파공성을 연이어 토해냈다.
그리고.
쐐애애애액-!
마침내, 다시 한번 느꼈다. 나의 모든 것. 피와 살, 심장과 내장기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따라가지 못해 뒤로 밀리는 그 느낌. 오직 이륙하는 비행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감각!
털털털털털털털털-
터엉!
끔찍한 압력을 견뎌낸 파일럿은 비행기를 잡아당긴 롤러가 그것을 던져내는 순간을 정확히 잡아내었다.
커다란 쇳덩이의 아래를 받치는 것이 사라지고.
배를 간질이는, 골통이 섬찟한 가라앉는 순간의 긴장이 지나가며.
“떠, 떴다. 만두야, 우리 난다! 투석기로 비행기를 던졌어!”
마침내, 고요한 진동의 순간에 도달했다.
치익-
[후후- 아아, 승객 여러분. 승객 여러분?]“야! 못 믿어서 미안하다! 솔직히 뛰어내릴 준비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게 진짜로-”
[씨발 승객 여러분! 닥치고 창밖을 주시해주시길 바랍니다.]저 녀석의 기쁨을 충분히, 아니 몇 배로 공감할 수 있지만, 지금은 보다 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다.
세상에서 모든 비행기를 추방한 사악한 재앙. 섬세한 엔진을 망가뜨리는 모래먼지로 가득한 하늘과, 그 모래먼지가 일으키는 정전기들의 장막.
가장 섬세한 기체조차 망가뜨린 그것을 돌파한, 가장 투박하고, 심플하며, 그렇기에 오히려 미세한 먼지 덩어리나 전자기 펄스 따위에 멈춰서지 않는 이 기체가 도달할 수 있는 곳.
폭-
어느 순간, 눈 아래 운해(雲海)가 펼쳐져 있었으며.
눈 위로는, 몇 년째 보지 못했던 푸른 하늘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현재 시각 06시 24분. 저희 비행기 ‘하드 올드맨’이 성공적으로 이륙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목적지 25구역 [8744.09.248] 좌표까지의 비행시간은 14시간. 14시간 되겠습니다.]세상이 이렇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황무지와 모래바람이지만, 이렇게 그 너머에 아직 푸른 하늘이 남아있지 않은가.
발밑엔 끝없는 하얀 대지가. 머리 위엔 차갑고 푸르른 영원한 창공이.
숨 막힐 듯 푸르른 그 너머로 인공위성의 불빛이 반짝이는 곳.
[….슈팅스타-2. 복귀.] [늦어서 미안하다. 친구들.]서른 중반의 파일럿은 그의 점퍼에 붙어있는 패치 하나 하나를 손으로 더듬어가며 말했다.
이곳이야 말로 그가 머물러야 할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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