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09
Chapter. 23. 게드로이츠의 상속자, 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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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아아아앙-
[그리고, 이 기체는 또 투박한 만큼 기가 막힌게-]칙, 치익-
복엽기 특유의 프로펠러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야. 천류제.”
“음.”
“저 봐봐. 하늘이 파래.”
“생소하군.”
앞에 있는 만두 녀석이 나불나불 떠들어댄 정보에 의하면 이 AN-2라는 기종은 1947년 소련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대단히 단순한 구조로 만두 본인 같은 비전공자도 단기간 도면을 공부한 것으로 간단한 수리 및 정비가 가능하고, 자체 중량이 3톤 밖에 안되는 주제에 2.1톤 가까이 적재할 수 있으며, 전기도 따로 공급차량이 아닌 충전된 배터리를 사용하며 급유도 자체적인 연료펌프가 있어 비행기에 드럼통을 실어놓기만 하면 주유기 없이도 급유가 가능하다는 등등….
대충 요약하면 ‘망할 아포칼립스 월드에서 이만큼 간단하게 쓰기 쉬운 놈도 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심플 이즈 베스트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내가 이 비행기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무려 3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현역으로 뛴 기억이 있다는 것.
14특작대가 천덕꾸러기 취급에서 벗어난 뒤 여기저기 정신없이 오가며 작전을 수행하던 중, 지금 들리는 ‘바아아앙-’ 하는 복엽기 특유의 소리와 함께 공수부대가 뛰어내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밑에서 봤을 때 우리가 탄 것과 비슷한 형태였던 것 같았다.
“북한 애들이 띄웠지 아마?”
“기억에 있군. 종종 ‘편도 수송기’라는 이름으로 불렸지. 적 방공망에 노출되어 살아나간 적이 없다고.”
“아아, 들어본 적 있지. 내눈으로 봤을 땐 ‘버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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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군인 출신이었냐.”
“용병이다. 전쟁의 시발점이 된 북한 인근으로 팔려 오다시피 넘어왔지.”
“원래 어디 출신인데.”
“브라질 상파울루. 크라콜란지아. 지금은 없어진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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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지않고 뚝뚝 끊어지는 대화의 간극을 만두의 흥얼거림이 채워넣고 있었다.
[피가 철철, 피가 철철, 이 얼마나 개죽음인가~♪] [피가 철철, 피가 철철, 그는 이제 강하를 못하리~♬]저것도 어디서 들어본 노래다.
“군가로군.”
“가사만 들어도 그 정도는 알겠다.”
“공수부대 군가다.”
“역시. 저 녀석 그쪽이었나. 비행에 대한 집착은-”
“전쟁 후유증이겠지. 저런 이들을 많이 봤다.”
– 지금은 대부분 죽었지만.
천류제는 그렇게 첨언하며 창밖의 운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가 그렇게 우려하던 전쟁의 참상 중 하나다. 어떤 경험은 골수에 새겨지고, 그 수명은 세월과 무관하지.”
“그리고. 그러한 말뚝 같은 기억이 가슴에 박힌 자들만이 거친 황무지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남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뜬금없지만, 동시에 12인승 수송기에 14시간동안 마주보고 앉아있어야 하는 이런 순간에 어울리는 주제이기도 했다.
“너…. 말을 길게 할 줄도 알았구나?”
“선호하진 않는다.”
47구역에서 40구역까지 트럭을 몰아오는 이틀간은 나조차 기척하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쥐죽은 듯 짐칸에 박혀있었고, 산 밑에서 무임승차한 천류제를 발견한 이후로는 어떤 말을 해도 ‘그렇군.’ ‘따라왔다.’ 정도의 짧은 대답만 일삼던 녀석이다.
‘단둘이 길게 얘기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나?’
확실히, 그렇다면 좋은 선택이다. 복엽기의 비행 소음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장난 아니고, 만두 녀석도 비행용 헤드셋의 무전을 연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으며, 먼지와 전자기 폭풍 너머의 상공은 도청 따위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물론 47구역에 있을때도 그런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애초에 일반 상식으로 재단하기엔 지나치게 기인에 가까운 인물이니까. 자기만의 뭔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그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서 내 여행길에 따라 붙었다는 뜻인데….’
천류제.
호리호리한 몸에 긴 장발. 전술적으로 완벽해보이는 외부 활동용 전천후 보호복과 등에 맨 다중 레이저 날 전기톱, 허리춤에 찬 낡은 장도.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알아낸 지금도 이 녀석에 대한 것은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제대로 알고있는 게 있다면, 누가봐도 기인인 이 녀석은 내게 꽤 관심이 많다는 것.
음, 좋아. 지금 물어보면 어제랑은 다른 대답이 나오겠군.
“어이.”
“음.”
“왜 따라왔냐?”
“관찰, 보호, 개인적인 호기심이다.”
“관찰, 보호, 호기심이라. 아마, 처음 봤을 때 말한 그 ‘한서호’라는 인물과 관련된 것이겠지?”
천류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호라는 인물이 얼마나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그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일그러지는 천류제의 표정에서 잘 드러났다.
“너는 꿈이 있나. 네가 삶을 유지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삶의 이유라…. 한 문장은 어렵겠는데?”
“나는 가능하다.”
천류제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선언하듯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숨을 집어삼켰다.
“한서호, 그와 같은 인물이 되는 것. 가장 지독한 구렁텅이에서도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는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것. 내 삶은 오직 그것을 향해 움직인다.”
“자기도야(自己陶冶)라. 꼭 티벳의 승려들 같은 꿈을 꾸는군.”
“크게 다르지 않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실존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에게 다가가려 하며, 하는 실존했던 내 유일한 친우의 형상에 다가가려 한다는 것뿐.”
“그래서. 그게 날 따라온 이유와 무슨 상관이지?”
“네가 한서호를 닮았기 때문이다, 박교수.”
그 말을 하며 천류제의 눈이,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죽어버린듯한 눈이 나를 마주했다.
“그는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에 재수없게 흘러들어온 기자였다.”
“마약과 범죄, 폭력과 음행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서도 서호는 결코 스스로의 내면에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았지. 내 눈앞에서,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래서.”
“박교수. 너는 이 살인자들이 가득한 땅에서 그들의 선망을 받는 몇 안 되는 존재다. 가장 가혹한 세계에 던져졌으며, 서호와 같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을 이끌었지. 이 시점에서 너는 내가 아는 한서호에 ‘거의’ 근접한 유일한 인물이다. 이전까지는 비슷한 인물도, 그의 발끝에 미칠 정도의 인물도 존재하지 않았지.”
“거의 근접했다고 했으니, 다른 부분도 있다는 뜻이겠지?”
“아직 살아있으니까.”
‘아직’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그는,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지금의 살아있는 상태를 바꿔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박교수, 나는 네가 지금 그대로 죽기를 간절히 바란다.”
“와우.”
복엽기의 세찬 프로펠러 소리와 뇌수가 어쩌고 하는 부분으로 넘어간 만두의 노랫소리 사이로 천류제의 담담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너는 모른다. 손을 뻗을 때마다 그만큼 멀어지는 이상을 쫓는 기분을. 나는 결코 녀석과 같은 빛나는 인격에 도달할 수 없었다. 나는 과거의 방탕한 삶이 내 뇌를 망가뜨렸음을 인정해야했다. 설령 그것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정했지.”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모방이다. 한 명만, 서호처럼 가장 추악한 구렁텅이에서도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존재가 단 한 명만 더 내 눈에 띄면 그놈의 모든 것을 모방해 그놈과 같은 인물이 되리라 다짐했지.”
“박교수, 너는 한서호와 같은 초월적인 자아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기까지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태다. 죽음의 순간, 생의 마지막 깜빡임이 스러지는 순간에도 변치 않는가.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자 네게 따라붙었다. 네 죽음을 놓칠 순 없으니.”
“그래서 생뚱맞게 나를 쫓아다녔다 이거군…. 첫 판단의 계기는, 역시 3월드 클리어 영상이겠지?”
“음.”
이야아.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한 이유로 날 따라다니고 계셨군. 꼭 내가 죽는 꼴을 자기 눈으로 봐야겠다니. 이것 참….
“괜찮은데? 따라와줘서 고맙다 야.”
-대단히 믿음직하고 쓸모있는 패가 알아서 따라붙은 격이 아닌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군.”
내 반응에 천류제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류제는 ‘죽음의 순간까지 내가 변치 않는지’를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게 확인되면, 지금까지 영상으로 기록된 내 모든 삶을 모방하는 과정에 돌입하겠지.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극성 팬이 생겼다고 할 수 있으려나.
중요한 것은 녀석이 ‘죽음을 앞에 둔 내 감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난전중에 피하지 못한 총탄에 억! 하고 머리를 꿰뚫려 죽는다거나. 고화력 전차 사단의 집중 사격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선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관찰’이 죽음을 앞둔 내 감상에 대한 것이라면, ‘보호’는 관찰 대상을 그런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이겠지.
“천류제. 저번에 있었던 대인 전투 훈련 때 네가 대항군 역할을 해줬었지? 그때 상대가 몇 명 이었더라?”
“돔쪽 행동요원 57명. BDSM 신입 15. 베테랑 27. 도합 99명. 나까지 딱 100명을 채운 훈련이었다. 개인 수행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렙터의 사이보그 병종에 대한 시가전 수행능력을 위한 훈련이었지. 총장은 순차적으로 계속해주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더 할 필요를 못느껴 거부했다.”
이러니 쓸모 있다고 할 수밖에.
그냥 99명이 아니라 풀 무장한 돔에서 내로라하는 요원, 황무지에서 3형 변종을 때려잡으며 단련된 베테랑 용병을 다수 포함한 99명을 혼자서 진압봉 같은 걸 들고 모조리 때려잡은 재림 여포같은 녀석이 내가 비명횡사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따라붙었다는데, 얼마나 든든하냐고.
‘수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을 입어서 죽어가거나, 피를 질질 흘리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경우에는 옆에 치료제가 있어도 걷어차 버리고 기다렸다는 듯 죽어가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겠지만. 그래도 소수로 임하는 전투에서 이보다 더 괜찮은 지원군을 찾기도 쉽지 않지.’
뜻하지 않은 선물이고, 정체 불명의 3형 변종 집단을 찾아가는 지금 상황에 완벽한 우군이었다.
“….이안 그 녀석이 태워줬냐? 아니면 벡스?”
“음.”
“염병할 새끼들, 어쩐지 순순히 보내준다 싶더니.”
천류제는 BDSM 본부에 머물고 있었고, 벡스나 이안이나 황무지 짬밥을 먹을만큼 먹은 녀석들인 만큼 당연히 이 미스터리한 인간 병기가 아군에게 위험한 존재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걸쳤겠지.
천류제 이 인간은 누가 물었을 때 자기 목표를 숨기거나 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보이니, 아마 지금 내게 했던 얘기를 그 녀석들에게도 똑같이 털어놨을 가능성이 높다.
벡스야 뭐, [그놈이 천천히 내 눈앞에서 죽는 꼴을 꼭 봐야겠다] 같은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들었겠지만, 탈인간 수준의 천류제가 쉽게 죽어줄 리 없고.
대부분 시간에 뇌가 화약에 쩔어 있어서 그렇지 생각을 하면 제법 하는 편인 이안 녀석은-
나의 ‘느릿한 죽음’에 집착하는 인간 병기가 대단히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녀석은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짐칸을 열었을 때는 지금의 내 사이즈에 맞춰 개조된 총기와 장구류만 몇 박스 있을 뿐, 그 외에는 흥안 만두의 요청으로 적재한 항공유 몇 드럼과 구석에 웅크려있던 천류제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이안 녀석이 판단하기에 천류제 한 명이 완전무장한 1개 중대급 화력은 된다는 뜻이겠지.’
내 개인 무장이랍시고 챙겨 넣은 수류탄이며 탄약이 몇 박스나 되는게 녀석답다고 해야하나.
“좋아. 되도록 느리고 긴 고통 끝에 죽음을 맞도록 노력해보지.”
“고맙군. 필요할까 싶어 영상 기록매체를 준비했다. 네 죽어가는 모습은 영상으로 남겨 유족에게 전달해주도록 하지.”
“당연히, 그 영상은 천류제 네놈의 교보재로 사용되고?”
“음. 네가 추하게 죽지만 않는다면.”
“큭큭큭큭! 진짜 골때리는 새끼네 이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천류제는 그걸 흘끗 내려다보고는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하긴, 이런 녀석이지.
나도 굳이 녀석의 손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아아아아앙-
복엽기 특유의 프로펠러소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만두의 군가는 이제 ‘신발 속에 든 너를 쏟아낸다네~♪’ 하는 부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낡은 비행기는 지상의 이동속도와 비교도 안될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렀으며.
“….박교수.”
“왜.”
[오오~! 그는 이제 강하를 못-하리~♬]“저 상이군인의 입을 다물게 하면 진통제 정도의 면피는 고려해보겠다.”
“나 죽을 때? 이야~ 그것 참 대단한 혜택이구만!”
만두의 노래 실력은, 고련의 화신과도 같은 천류제도 학을 뗄 정도로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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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치익-
[아아,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고 계신 승객 여러분은 즉시 일어나시길-]치익- 하는 잡음이 들리자마자 눈이 떠졌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벌써 사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현재 시간, 21시 37분. 본 수송기는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출 예정입니다- 아래는 익숙한 모래폭풍과, 낯선 전자기 폭풍, 그리고 정신 멀쩡한 놈이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다종 다양한 방사성 동위원소로 가득한 개 지랄맞을 환경이며- 구태여 찾아온 우리 승객분들이 조만간 마주할 환경임을 알려드립니다-]흥안 만두의 신랄한 기내 방송이 알려주지 않아도 구름 아래로 보이는 두터운 모래먼지는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또한, 조종사인 본인은 착륙지에 대한 어떠한 지형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으며- 보시다시피 육안으로 착륙지점을 확인하는게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호 통제라.]치익-
[승객 여러분, 수송기 뒤편에 적재된 롤러를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아-]“롤러? 아, 캐터펄트로 사출할 때 비행기 얹어놨던 바퀴 달린 수레 같은 거 말인가?”
“여기 있군.”
천류제가 항공유 드럼통 아래에 깔려있던 커다란 수레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크기 때문인지 캐터펄트 때 비행기를 얹었던 그것을 정확히 둘로 나눠 놓은 듯한 모습.
[찾았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제공된 낙하산을 매고, 각자 하나씩 나눠 들고 강하 위치에 서보겠습니다.]어느새 방독면을 썼는지 답답해진 녀석의 목소리가 지시를 내렸다.
[준비됐으면, 후딱 롤러 들고 강하합니다. 기체 내려가기 전에 받아줘야 하니까.]“…?”
“음….”
천류제도 이번만큼은 고심하는 듯했다. 저 녀석도 나처럼 만두 녀석이 뭔 소리를 하는지 못알아들었다는 뜻이다.
“뭔 소리냐! 기체를 받고 말고가 어딨어! 너 우리 드랍해주고 회항하는거 아냐? 저 방사능 천지에 변종이 널린 동네까지 따라오란 소리는 한 적도 없다고!”
[하아아. 이래서 무식한 놈들이랑 같이 작전 뛰면 번거롭다니까.]“무식?”
치직-
[그래, 이 비행기 알못들아. AN-2는 시간당 162리터의 항공유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14시간을 비행했으니 2,268리터를 소모했군. 맞지?]“그렇….겠지?”
[아까 내가 친절히 설명했지만, AN-2의 유효 적재량은 2,140kg이야. 항공유만 해도 이미 적재량 초과인데 우리 셋에 개인 장비에 이것저것해서 아슬아슬하게 실었지. 이게 뭔 소리냐- 하면.]들들들들, 털털털털털!
“뭐?! 저만큼이나 싣고 온 걸 다 썼다고?”
[그래. 원래 비행기라는 게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름을 많이 처먹거든.]텅텅-
천류제가 확인이라도 하듯 펌프에 연결된 드럼통을 두드리자, 하나같이 속이 빈 맑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착륙을 해야하는데. 아까 말한 애로사항이 있으니 너희 두 괴물이 좀 도와줘야 겠다는 말이다.]“….이런 썅!”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슬프게도 명석한 머리는 몇가지 단서를 토대로 녀석의 의도를 이해해버렸다.
“먼저 내려가서, 롤러 위에서 3톤짜리 강하하는 비행기를 받아내라고! 나보고 인간 랜딩기어 역할을 하라고!”
[전차에 가까운 내구도! 대형 유압장치 수준의 근력! 불규칙한 지면 사정에 따라 완벽하게 전후 좌우로 균형을 유지할 생물학적 자이로 역할까지! 박교수 네 입으로 스스로 밝힌 스펙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미 현존하는 그 어떤 랜딩기어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일거다!]“그게 가능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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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익-
[아님 말고. 사실 다시 비행해본 시점에서 뒤져도 여한 없음.]로하람 맙소사. 이런 천하의 개새끼가 다 있다니.
[돌아가는 연료는…. 착륙지에서 구하던가 해야지. 목적지가 무슨 우주선 센터라며? 설마 우주선도 띄우는 곳에 비행기 하나 띄울 연료가 없겠음?]아뿔싸. 예술가 연합 본거지라고는 말하기 힘들어서 바로 옆에 있는 넥스트 스페이스 우주기지가 목적지라고 했더니. 만두 새끼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될 줄이야.
[천류제도 있잖아. 그쪽한테도 좀 도와달라고 해. 걔도 괴물이라며.]“….”
“….”
“천-”
“난 빠지겠다. 내 몸은 너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썅.”
어째 대화방에서 알고 있던 것에 비하면 멀쩡하고 좋은 녀석이 튀어나왔다 싶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중요한 순간에 ‘아님 말고’ 같은 혐성이 튀어나와버렸다.
[자자, 롤러는 최신형 전투기 복합 외장으로 만든거라 절대로 안 부서진다! 네가 잘 받아 주기만 하면 돼! 랑데부 포인트는 내가 섬세하게 운전해서 잘 맞춰 줄 테니까- 강하!]“이런-”
[더 늦으면 너보다 기체가 먼저 떨어진다! 닥치고 강하! 싫으면 돌아갈 때 걸어서 돌아가던가! 강하! 강하!!!]“에라이 씨! 천류제! 그냥 타고 있어!”
“고맙군.”
눈에 띄게 가까워진 지면의 모습에, 결국 활짝 열린 문 밖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흙먼지 섞인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확고하게 다른 맛이 느껴지는 공기. 떨어지면서 올려다보니 방독면에 보호복을 챙겨입은 만두 녀석이 뭔가 흥얼거리는 느낌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미친 자식! 정말로 이 방사능 덩어리 25구역에 착륙할 생각으로 왔다니!’
녀석의 [아님 말고]가 진심이었는지 기체는 생각보다 지상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낙하산을 펼 여유 따위는…. 없다!’
펄럭!
가방을 열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낙하산을 재빨리 낚아챘다.
쐐애애액!
그리고, 쏜살같이 추락하다 땅에 도달하기 고작 몇 미터 전,
“흐아아압!”
펴지지 않은 낙하산의 양끝을 잡고, 전력을 다해 빨래 털듯 휘둘렀다.
재생력은 없지만 근력만큼은 3월드 박교수에 근접한 몸으로 전력을 다해 휘두른 낙하산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뻐어어엉-!
순간 안쪽에 가해진 압력을 이기지 못해 엄청난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그만큼, 추락하던 내 속도가 줄었음은 물론이다.
휘이익!
위에서 천류제가 던져준 바퀴달린 수레(만두 말로는 비행기를 받을 만큼 튼튼한)가 내 발앞에 떨어졌다.
비행기와의 거리는, 거칠게 체결된 볼트의 녹이 보일 정도.
치지익-
[착륙 지점 확인 랑데부까지 5. 4. 어이, 손 말고 뒤로 돌아서 가슴으로 받아. 그래, 안아들 듯이.]“이렇게?!”
[그래. 외장에 손자국 남으면 흉하잖아.]“-*#^&!! *#^***!!!!”
[둘, 하나. 착류-]“우와아아아악!”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추락하는 비행기를 몸으로 받아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것과 같은 상태였으니까!
드드드드드드드드!
울퉁불퉁한 땅 위로 내 몸을 얹은 롤러의 바퀴자국이 한참이나 길게 이어지고, 나를 밀어내던 비행기의 속도가 차츰 줄어드는게 느껴졌다.
[어이- 된 것 같다! 이제 내려 놔! 남은 여력은 앞으로 굴러가면서 흘리면 돼!]마침내 떨어진 기장의 오케이 사인에, 나는 내 몸을 짜부라트릴 듯 눌러오는 비행기 머리를 밀어내며 옆으로 굴렀다.
“허억! 허억! 이런, 개 또라이, 같은, 허억!”
아무리 돔에서 여러 시험으로 수치적인 성능이 나왔다 한들 사람을 수레에 태워 랜딩기어로 써먹는다는 아이디어에 놀랐고.
당연하다는 듯 거기에 지 목숨을 걸어버린 정신나간 마인드에 놀랐으며,
무엇보다 그걸 해낸 내 자신에게 놀랐다.
“이거…. 게임 아니지? 현실 맞지?”
어쩌면 내 스스로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도 이런 비인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막상 상황이 닥쳐오면, 수십년은 이런 힘을 써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주제에 말이다.
치익-
[야아-! 이게 되네!]한참 앞으로 나아간 비행기 쪽에서 만두 새끼의 흥분된 무전이 들려왔다.
[천류제가 이거 영상 떠놨더라고! 나도 공유해준데! 이거 우리 애들 대화방에 올려도 됨?]“염병, 그게 죽다 살아난 놈이 할 얘기냐?”
[죽다 살아났으니 하는 얘기지! 여기서 연료만 구하면 한번더 비행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거 아냐! 난 1초라도 지상에 머무르기 싫다고!]“에라이.”
황무지 생활 하면서 주변에 미친 사람 있는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어째 내 경우에는 미친놈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것 같았다.
서벅. 서벅. 서벅.
[천류제다. 네 몸에 내장된 통신기 주파수가 이쪽이 맞나.]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온 천류제는 우주복 같이 두터운 보호복을 입은 채, 오염지역에 대자로 뻗어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럽군.]“글세. 너도 언제 3형 변종이 될지 모르는 상태가 되면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것도 그렇군. 큰 부상이 없다면 일어나라. 조종사가 솜씨가 좋군.]“만두가?”
[그래. 가르쳐준 좌표에 정조준하듯 내려앉았다.]천류제의 말에 몸을 일으키자, 착륙할 때에는 정신이 없어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빌딩 숲이 사라진 도시의 폐허. 그 사이에, 누군가 길을 내어 놓았다.
작은 사탕 막대기, 녹슨 흔들의자, 망가진 괘종시계, 식당 광고판, 산더미처럼 쌓인 부서진 스마트폰,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스포츠카의 잔해 같은 것들이 한 대 모여 언덕을 형성한 가운데 그 중심을 치워 만들어낸 작은 오솔길.
치익-
“….만두야.”
[아, 그럼. 괴물 대잔치에 끼어들 생각 없다. 여기 남아서 기체 정비 하고 있을거야.]“짜식. 눈치는 빨라가지고.”
[항공유 챙겨와. 없으면 디젤.]녀석도 생존자인 만큼 어디가 죽을 자리인지 알고 피하는 정도의 감은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누군가의 향수를 자극할 온갖 옛 물건의 언덕에는 곳곳에 오래된 TV, 모니터 같은 것들이 동시에 화면을 띄웠기 때문이다.
지금 돔에서 유일하게 상영중인 GG 플레이 영상, 내 4월드 기록을.
[저쪽에서 잘 찾아왔다고 인사하는군.]“그래 보이네.”
….뒤적뒤적.
“담배 있냐? 강하하다가 어디 떨어진 것 같은데.”
[안 피운다.] [아, 나는 있는데. 갑째 줄 테니까 들어가서 피워.]“됐어. 한 대만 줘.”
만두 녀석이 힘껏 던진 담뱃갑을 받아 한 대를 꺼낸 다음, 나머지는 도로 녀석을 향해 던져주었다.
“내 기억이 맞으면, 저 안은 높은 확률로 금연일테니까.”
예술가 연합. 녀석들의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당장은 적대적인 분위기가 아니니까 어느정도 맞춰 주는게 맞겠지.
“박물관은 금연이잖아?”
나는 온갖 옛 물건들의 더미 속에서 눈에 들어온 낯익은 물건을 보며 히죽거렸다.
견고한 액자에 든 그림.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어느날, 친구들과 45구역 지하 벙커를 털어오며 노획한 구시대의 유명한 작품.
예술가 연합에게 팔았던 내 그림이 잡동사니 언덕에 파묻힌 주택 창문에 걸려 있었다.
덜컥!
와르르르!
슬쩍 잡아당기자, 이미 무너진 것으로 보이던 집의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나타났다.
치익-
[던전 같군.]“어어. 테마가 공포인 던전이 제법 있었지 아마?”
황무지 제1의 불가사의, 예술가 연합의 실체를 마주한 두 게임 랭커가 그 안으로 들어서며 표현한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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