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16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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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우우웅-
덜컹 덜컹
[-B28….-B27….]‘보자…. 올라가면 우선 영 총장한테 연락해서 전투 준비상황부터 확인하고. 아, 기름. 수송기 연료 가져가기로 했지. 방공호 형태로 봐선 군사 시설로 병용되고 있던 것 같으니까, 지상 유류고가 하나 정도는 있겠지?’
멍하니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그것이 카운트다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 본대와 합류, 여기서 알아낸 사실을 토대로 수정해야 할 돔 원정군의 전략…. 이 전파도 통하지 않는 지하에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 실질적으로 내게 주어진 숨돌릴 시간은 콜렉터쪽 일과 돔 원정군 일의 사이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잠깐 뿐인 것이다.
“참 보잘 것 없네.”
“음?”
“아니 그냥. 주변에서 온통 성자니, 영웅이니 막 추켜세워서 나도 모르게 ‘정말 그런가? 나 정도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막상 사람들 사이에서 떼어놓고 보니 그냥 걷잡을 수 없는 흐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서.”
들들들들들들-
[-B24….-B23….]“그렇겠지.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차이?”
“보통 사람이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너는 배 위에서 그들을 건져내겠다고 악착같이 노를 젓기에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뭐, 그렇다 해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일개 개인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음.”
치직- 치지익-
짧은 휴식의 끝을 알리듯, 콘크리트 벽에 부서진 통신이 잡음이 되어 귀를 간지럽혔다.
“뭐. 할 수 있는데까지 해봐야지.”
잠깐이나마 숨을 돌려서인지, 아니면 득도한 고승처럼 잔잔해진 천류제를 보고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처음 이곳을 내려올 때의 조급함이 꽤나 진정되어 있었다.
그래. 언제나 그랬듯, 하나씩 해나가는 거다. 멀리 본다고 멀리 닿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4월드에서 배웠잖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열과 성을 다해 함께 마주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눈앞에 직면한 상황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실타레 같은 상황을 풀어나가면 되는 거다.
‘조급해지지 말자, 박교수.’
마지막 한숨을 끝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B7….-B6….-B5….]여기서 나가는 순간이 전쟁의 서막이며, 우리는 준비 되었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선에 섰다.
[-B3….-B2….-B1….]할 수 있다. 이번에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들들들들- 덜컥!
-땡!
[1층.입니다.]그렇게, 단단히 다잡은 마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 밖으로 나섰다.
치직, 치지이이익!-
방공호 밖의 퀘퀘한 먼지냄새 보다도 먼저 들이 닥치는 무수한 통신 요청들.
[….수- 야 이 샊-…. -ㅐ같은-….] [….발 좀! 이렇…. 아…. …족하다고! 없….-] [치이익! 응답…라. ….답하라! …드 ….! 반복한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어진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다른 종류의 긴박함을 담고 있었다.
치지익-!
[박교수! 박교수 이 빌어 처먹을 귀머거리 새끼야! 살아있냐! 살아있으면 답을 해! 지금 그쪽으로 좆빠지게 가고 있으니까!]처음으로 연결된 것은 벌써 목이 쉰 듯 걸걸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대는 이안의 통신.
[치익! 응답하라! 여기는 돔 사령부! 응답하라! 코드 레드! 코드 레드! 해당 지역에서 즉시 이탈하라! 반복한다! 해당 지역에서 이탈하라!]그 다음으로 들려오는 것은 그보다 더 목이 쉰듯한 돔 통신병의 긴박한 목소리.
마지막으로 들려온 것은, 어째서인지 복엽기 특유의 둔탁한 비행음과 함께 절박하게 나를 찾는 흥안만두의 목소리였다.
‘셋 다 긴박한 목소리. 이쪽으로 오고있는 BDSM. 코드레드. 먼저 이륙한 수송기?’
통신 너머로도 전해져오는 위기감이 순식간에 사고의 날을 세웠다.
‘이안은 나의 생사를 물었다. 지금 유용 가능한 아군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은 나를 구출할 의사가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코드 레드. 내가 있는 지역이 데드 존(Dead zone)이며, 아군의 화력 투사 범위에 포함되어있다는 뜻.’
‘만두가 먼저 이륙했다는 것은…. 지상에 남아있을 경우 수송기가 공격당할 상황이란 뜻인가?’
순식간에 상황이 교차하는 가운데 깨달았다.
‘예술가 연합 입구, 그 가스.’
어쩌면, 정신을 잃었던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 수도 있다는 것.
‘지하 핵 방공호.’
콜렉터가 처음부터 외부와 차단된 환경으로 나를 초대했다는 것.
‘렙터 소사이어티 내부를 염탐 가능한 콜렉터.’
그녀의 손끝이 게드로이츠에게 닿았다면, 내게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과 교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
“그래. 양자택일이었다 이거지…!”
콜렉터는 내게 그들과 뜻을 함께할 것을 종용했고,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콜렉터도 선택했다.
“박교수. 저것은….”
“그래. 나도 보인다.”
천류제의 시선이 가리킨 곳은 하늘이었다.
어둠이 깊은 밤. 두터운 먼지와 모래바람으로 칠흑같이 어두워야 할 황무지의 밤하늘에, 별이 떠 있었다.
인공의 산물임을 뜻하는 규칙적인 깜빡임으로 조용히 먼지구름을 뚫고 밤하늘을 수놓은 그것들은 하나의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벌써 시작된 거야.”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쟁의 한복판에 스스로 발을 들인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의 중심은 박교수, 당신이에요.]“빌어먹을, 나를 격리해놓고 그 사이에 출발선을 끊었다고!”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그는 예정된 멸망에서 인류를 구할 생각이었어요.]만약 여전히 그의 목표가 그대로라면. 지금의 게드로이츠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자신이 기술을 개발하는 족족 악용하고, 선한줄 알았던 내면은 온갖 형태로 뒤틀려 있으며, 끝내 수억번의 시뮬레이션 속에서도 티끌만큼의 희망을 보여주지 않던 인류에게 마음속 깊이 실망한 지금의 게드로이츠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저 위에는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 있답니다. 변종 바이러스 치료제, 오염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테라포밍 기술, 멸종한 생물군을 복원하기 위한 유전자 은행까지-]답은, 콜렉터와의 대화에서 흘러나왔다.
멸종한 생물군을 복원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우주 궤도상의 서버룸에 보관된 수많은 유전자 샘플들.
“….정리. 정리를, 하려는거야…. 그의 관점에서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된 ‘현생 인류’를 제거하고 새로 시작하려는 거라고! 실험실에서 실패작을 폐기하고 무균실에서 배양된 새로운 샘플을 올려놓듯이!”
“다음 세대. 멸망 이후의 ‘다음 세대’를 위한 계획이니까!”
그 유전자 은행에는 멸종할 ‘인간’의 유전자도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과거. 종교, 문화, 이념, 관습따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류가, 과거의 흔적을 지워낸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오만한 계획.
우리는 출발선에 선 것도, 전쟁의 서막을 맞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전쟁의 끝자락에서, 결승선을 바라보는 상대를 이제야 마주한 것 뿐이었다.
굳게 다진 마음이, 전재부터 잘못된 그것이 산산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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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흥안만두.”
[….너! 너 이 씨발새끼-!]“지하 핵방공호에 있어서 연락이 안 됐어. 상황은? 먼저 이륙한 이유는?”
[이 새끼야! 내가 이 위에서 혼자 얼마나 피똥을 쌌는 줄 알아! 내가 사람을 잘못봐도 한참을 잘못봤-]“내 욕은 나중에 몇시간이라도 들어줄 테니까 상황부터 보고해! 상황! 적, 아군, 위험요소! 당장!”
절망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적이 나의 행동을 억제하고 싶었다는 것은, 내가 시의적절하게 움직였을 경우 적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기름! 씨발 기름내놔 기름! 그게 상황의 전부다 씹새끼야!]“연료가 얼마나 남았지?”
[30분…. 아니 20분! 목숨을 건 일생 일대의 에코드라이빙에 성공했을 경우를 계산한 시간이다!]“이륙한 이유는?”
[구릉 아래쪽에서 엄청난 규모의 흑먼지가 관측되었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은폐장…. 렙터의 네스트가 이쪽으로 오고있군.”
[그래! 쌍안경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면 진작에 곡사포의 사거리에 들고도 남았지! 저놈들이 쓰는건 3차 세계대전 때 현역 장비들이라 지금은 쓸모도 없는 대공 장비도 상당수 포함되어있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비행기부터 띄운 거다!]“방향은?”
[네가 있는 곳에서 정동쪽으로 4km 정도! 지금 보이는 움직임이 없는걸 보면 그 부근에서 감속했다!]동쪽. 여기서 동쪽에 있는 것이라면…. 게드로이츠의 무인 우주선기지다.
“잘했어.”
[당연히 잘했지! 그래서, 랑데부 포인트는 어디냐! 연료는? 돔쪽 피아식별 코드는?]“없어. 이대로 너와 수송기는 이탈한다. 적 관측지점의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비행한 뒤, 구조 신호를 켜놓고 기다려.”
[….뭐?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설명할 시간 없다. 흥안만두. 아니 배성주, 성주야.”
나는 통신을 끊기 전, 닉네임이 아닌 녀석이 본명을 부르며 말했다.
“살아서 보자.”
[야, 야야야야! 해도 그런 재수없는 소리를-!]뚜욱-
필요한 정보만 교환한 뒤 즉시 통신을 끊었다. 내장된 통신기에서 수송기쪽 코드로 계속 통신이 오고 있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치직-
[박교수다. 영 총장 바꿔.] [이미 한참 전부터 붙잡고 있었네.]다음으로 연결한 것은 돔 원정군의 통신이었다.
[왜, 무슨 이유로 그곳에 있으며 연락이 안 되었는지는 다 끝나고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지. 박교수, 지금 뭔가 했나?]“하늘에 움직이는 저것들 얘기라면, 제가 한게 아닙니다.”
[최악이군. 우리가 한 것도 아니니. 정황상 렙터 소사이어티에서 모종의 장비를 조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겠는데.]“그 정도를 최악이라고 생각했다면 가서 술 한잔 말아 오시죠. 제가 알기론 그보다 더 한 최악의 경우도 있으니.”
[술이라면 이미 손에 들고 있네.]“이 통화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와 목숨을 공유한다 해도 좋을 정도로 믿을만한 심복들이지.]“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렙터의 수장입니다.”
[…!]잠시,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침묵이 이어졌다.
[….술을 끊어야겠군. 환청이 들리는데.]“구스타브 알 하르브 렙터, 그는 이미 게드로이츠의 망령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접속기, 전자화된 인격, 그것이 주입된 육신. 돔에는 그에 대한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관측 데이터가 쌓여있을텐데요.”
[맙소사. 그 게드로이츠가, 그런 식으로?]“제가 여기까지 와서 확인한 정보입니다. 이 정보를 토대로 했을 때, 지금 저 하늘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지 추측 가능합니까? 만화에서나 보던 궤도 광선이라던가, 우주 파동에 의한 인류 멸종이라던가…!”
[지금껏 현실적인 측면에서 많은 가정을 배제했지만, 저 행위의 주체가 게드로이츠라면…. 불가능을 상정하는게 무의미하겠지. 일단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지구 궤도상에 위치한 위성들이 대부분이야.]“위성이라면…. 군사위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다. 민간 위성, 군사위성, 통신 위성부터 연구용 우주 망원경까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움직이고 있지.]“그게, 전부 다 말입니까?”
영 총장은 대답이 없었지만, 통신 너머의 침묵이 그들의 무거운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2055년, 천문학자들은 공식적으로 우주 망원경을 제외한 지구 표면에서의 천체 관측을 포기했다. 나날이 진보하는 우주 기술에 지구 궤도는 수도 없이 많은 우주 발사체들이 수놓게 되었고, 끝내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했을 때 보이는 것이 우주 쓰레기와 위성들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20여년 전에 이미 그 지경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게 많았던 우주 위성들이다.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수백 조의 예산을 들였지만 1% 남짓한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서 끝났을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아진, 지구의 또 다른 외벽이었다.
지금, 그 모든 위성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인류가 수십년동안 쏘아올린 우주의 쇳덩이들이.
[….렙터의 이동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는 자네도 알겠지.]“넥스트 스페이스. 게드로이츠가 완성자를 위해 준비한 우주기지.”
[그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은 우리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무언가를 준비중이다. 그리고 그 행위의 주체는 지금 우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의 지척까지 도착했지.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명령은 어떻게든 렙터의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 그 우주기지를 공격하는 것밖에 없었다네.] [아군이 그쪽을 향해 최고속도로 전진하고 있어. 공격 범위에 들어가는 즉시 그 우주기지를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겠지.]“돔의 광학 장비는 이런 먼지가 짙은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사거리가 떨어질텐데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연락할 시간이 생긴 것 아니겠나. 우리에게 렙터 만큼의 장거리 실탄 포격장비가 있었다면 자네의 생사유무를 무시하고서라도 그 일대를 전부 날려버렸을 테니까.]“총장님.”
[나는 돔의 수백만 인구를 책임지는 자로서 명령을 내려야 하네. 저 하늘 위의 움직임은 돔의 방어력으로 막을 수 없는 규모야. 나로선, 저것이 발동하기 전에 차단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할 의무가 있어.]“힐난하는 거 아닙니다. 그정도면 충분히 합리적인 명령이기도 하고.”
“다만, 너무 심적으로 몰려 있어서 도박수에 모든 것을 건게 아닌가, 하는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렙터. 게드로이츠. 우주 위성 군(群). 어쩌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우주로 향하는 마지막 수단.
생각과 생각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영 총장이 냉정을 되찾길 바라며 신중하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도박?]“예. 적은 이미 지상에서 위성 군(群)을 조종했는데, 만약 저 우주선 기지를 파괴했는데도 그 권한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어쩔 샘입니까?”
[그건….]“저기 있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우주행 이동수단’입니다. 파괴가 아니라 선점해야했던 목표란 말입니다!”
[저들에게 그런 수단이 있었다면 벌써 저곳을 초토화시켰겠지! 점령하고 보호하는 게 아니라!]“제발 좀! 그건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저들에겐 몇 개의 카드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에겐 저게 유일한 승리 조건이란 말이다!”
“서버룸은! 아직 게드로이츠가 인류에게 완전히 실망하기 전, 정말로 그의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라고! 모든 것! 세상을 복구하고 다시 살려낼 수단은 물론, 저 하늘에 어마어마한 개짓거리를 통제할 그런 수단까지 포함한, 모든 것! 알아들어!”
[그런 불확실한 사실에 희망을 품기엔 걸려있는 목숨이 너무 많단 말이다!]“그런 불확실한 불안감에 날려버리기엔 저기 걸려있는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저게 유일하다고!!!”
영 총장과 나. 렙터가 점령한 넥스트 스페이스를 파괴하자는 의견과 어떻게든 이용하자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총사령관과 참모총장의 고성에 싸늘하게 가라앉은 통신기 너머에서 총장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전은 속행한다. 사거리에 들어오는 즉시 해당 우주 기지를 파괴한다.]“알렉산더 영 이 병신 같은 쫄보 새끼가-!”
[단! 참모총장의 지적사항과 같이 이 지역의 환경에서 아군의 유효 사거리는 괴멸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아군 군단이 목표 지점을 타격하기까진 다소간 이동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장기전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를 생각하면, 이 환경에서 최대 효율을 발휘하는 엑소 슈트 부대가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겠지.]“….영 총장님?”
엑소슈트 부대가 작전을 수행한다. 이 말은, 원거리 포격이 아니라 부대 전체가 넥스트 스페이스의 지근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이동할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무슨 생각으로 거기까지 가서 단독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당 지역을 선점하고 특수 작전을 이행 중이던 정예 요원에게, 남은 이동시간 만큼의 작전 자율성은 부과할 수 있겠지.]영 총장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돔과 그 구성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는 기어이 이 우주기지를 파괴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명하듯 그 사이에 만들어낸 시간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걸릴지 얘기하지 않은 그 시간을 내게 전부 걸어보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칼 같은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그 알렉산더 영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이례적인 일.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한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로 성과를 낸 방안을 선호하지.] [너는 집행부의 반란과 렙터의 습격 때도, 38구역 전면전에서도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돔과 그 구성원들의 생명을 지켜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이 병신같은 쫄보 새끼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이상.]치익-
영 총장은 그것을 끝으로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내가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치지익-
[….이안.] [이건 뭐 집나간 와이프보다 더 연락하기가 힘들구만.]마지막으로 연결한 통신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이안의 것이었다.
[네가 총장이랑 씨부렁대는 동안 그쪽에서 대강의 상황은 전달해줬다. 살아있고, 좆됐다. 우주로 간다며?]“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한데.”
[크흐흐흐! 이거 진짜 로켓-맨이 되셨구만! 어디가서 자랑해도 되겠어!]“아아, 아무렴. 황무지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를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겠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녀석의 저 쇳소리 섞인 웃음을 듣자마자 찜통처럼 들끓던 머리에서 김이 빠지듯, 내 입에서도 웃음이 실실 기어나오며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긴장이 빠지고, 그 자리에 여유가 돌아오며, 삐걱거리던 두뇌가 기름칠한 기계처럼 부드러워졌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 우리는 돔의 엑소슈트 부대랑 같은 라인에서 진격한다.]“오케이, 확인.”
[하나만 묻자. 솔직히, 너 뭔가 한 거 아냐? 사고쳤지?]“아니라니까?”
[그래?].
.
.
.
[그럼 지금부터라도 뭔가 해라. 매번 그랬던 것처럼.]“….그래.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찰칵.
통신 넘어에서 익숙한 라이터 소리가 들려왔다.
[핏자 플래닛에서 보자고, 버즈 라이트이어. 금방 간다.]“피캣이라도 준비하고 기다려라. 너 오기 전에 갔다올테니까.”
[렙터의 전차 포신에 ‘웰컴 어스!’라고 적어서 흔들어주—-]치익, 치이이익—-
이안의 실없는 소리는 통신기의 잡음속에 묻혀 사라졌다. 이안의 것만 아니라 영 총장, 만두, 그 외 수많은 회선을 통해 연락을 시도하던 모든 전파가 산산이 흩어져 잡음이 되어있었다.
“방해전파로군.”
“체 10km도 안되는 거리에 렙터 네스트가 자리잡았으니까. 노이지 팩이 활동할 정도로 저쪽이 엉덩이를 붙였다는 뜻이지. 렙터가 넥스트 스페이스에 주둔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소란처럼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침묵속에, 인간이 만든 별무리가 인공적인 움직임으로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너는, 제법 잘 살았군.”
“….갑자기?”
“슬슬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내가 널 따라온 이유는 박교수라는 인물의 삶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같은지 관찰하기 위해서 였으니.”
천류제는 여기서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근처의 잡동사니 더미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이 세상이 지독하리만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크라콜란지아에서 한서호가 실험에 자원하고, 감염되어 죽어가던 녀석을 내가 기어이 발견하고, 황무지의 천류제로 살아오고, 박교수라는 인물을 관찰하다, 결국엔 여기와서 나만의 마무리를 짓게 되었듯이 말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여기서 이렇게 남게 되는 것도 어떤 큰 의미에서의 연결이 아닐까 여겨지더군. 그래서, 그냥 내 감상을 전하고 싶었다. 모든 것은 갚을 치른다. 어떤 식으로든.”
“여기 남으려고? 곧 전쟁터가 되는데?”
“널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너는 2km를 산보하듯 주파할 변종의 육신을 가졌지만, 지금의 나는 감각이 예민한 아주 잘 단련된 인간의 육체 정도만 가지고 있으니까.”
천류제는 아예 여기서 피로라도 풀겠다는 듯 방공호 시설위에 쌓인 잡동사니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그가 입은 방사능 보호복 위로 황무지의 먼지가 풀썩 나렸다.
“여긴 지형이 높고, 전장에서 꽤나 떨어져 있으며, 여차하면 바로 뒤에 핵폭발에도 견디는 방공호도 있지. 연합은 껄끄럽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구조물중 하나에 숨으면 그만이다. 무력해진 내가 현 상황에 남아있기 가장 좋은 곳은 이곳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수긍하자, 천류제가 하나 남은 왼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즐거웠다, 박교수.”
“그래. 썩 나쁘진 않았다, 천류제.”
“기억해라. 세상 모든 일은 어떤 식으로든 값을 치른다. 비록 반쪽짜리지만, 그래도 너 다음으로 완성자에 가까웠던 사람이 하는 말이다.”
“….몸 상태가 괜찮아지면 수송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이동해. 구조대가 그쪽 방향으로 향할 테니까.”
갑자기 이상해진 천류제의 태도.
‘아마, 괜찮다 말했지만 실제론 괜찮지 않은 몸 상태 때문이겠지.’
척추 인근의 체조직, 뇌에 연결된 살덩이에 오른팔까지 뭉텅이로 떼어놓고 온 녀석이다. 천류제의 저런 이상한 태도는 내가 그런 녀석을 짐처럼 지고 다닐까봐 걱정해서 그런 것으로 여겨졌다.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버텨봐.”
“음? 뭔가 오해했군.”
“오해는 무슨.”
인사 대신 녀석의 손을 쳐내고 몸을 돌렸다.
기억속 넥스트 스페이스의 좌표와, 이곳의 좌표를 비교하며 모래바람 너머의 목표 방향을 가늠했다.
2km 전방. 아마도 렙터 소사이어티의 본대가 진을 치고 있을.
‘….어차피 치료제는 있다.’
발에 힘을 주자, 한참 전에 군화를 뚫고 나온 발톱이 땅에 박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벌써 몇 시간을 움직였는데 피로는커녕 활력이 몸을 채우다 못해 코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인간을 벗어나고 있는 육체. 그리고, 그러한 몸을 누구보다 오랫동한, 자세히, 격렬하게 사용해왔던 나의 경험.
콰득, 콰드드득!
땅에 붙인 발뿐 아니라 두 손도 땅을 파고들었다. 파고든 사지를 지지대 삼아 끝없이 힘을 응축하며, 군복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허벅지가 부풀고.
‘그러니까, 무리한다.’
활시위처럼 당겨진 몸이 일순간 힘을 풀어내며-
‘서버룸에 닿지 못하면, 어차피 죽으니까!’
쿠아아아아앙-!
게드로이츠의 게임. 그 허구의 세계 속에서나 존재했던 ‘붉은 뮤트’의 포탄과 같은 고속 이동을 현실의 황무지에 재현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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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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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하군.”
직접 눈으로 보고도 저것이 방금전까지 그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인간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
천류제는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검은 덩어리를 눈으로 쫓으며, 몸을 눕힌 쓰레기 더미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한 외침.
“과연, 대단한 감각이로군?”
하지만, 분명한 대답이 잡동사니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낡고 찢어진 오래된 군복.
마찬가지로 오래됐으나, 잘 손질된 총기와 나이프.
세월의 흐름이 역력한 피부와, 쭉 찢어진 피부 사이로 드러나는 불길과도 같은 불길과도 같은 털가죽.
“부루…. 라는 이름이었던가.”
“너는 천류제로군. 내 개인적인 대적자 후보에서 아쉽게 2등을 차지한, 꽤나 좋게 봤던 녀석이지.”
노호(老虎) 부루, 그는 한때 자신의 죽음이 되어주길 소망했던 인물을 흥미롭게 살펴보며 말했다.
“굳이 이렇게 내 앞을 가로막을 이유가 있을까? 들어보니 이제는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난 것 같던데. 굳이 나와 같은 강적을 상대로 싸움을 자처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욱이, 그런 몰골을 해서는 말이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호랑이가 그의 헐렁한 보호복 오른팔 부분을 가리켰다.
“그렇긴 하지. 나도 이제야 나의 삶이라는 것을 되찾은 참이지, 조금은 보신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기도 하고.”
“그런데 왜?”
“그야, 너희들이 박교수를 쫓아갈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천류제는 그의 왼손에 들린 애병, 레이저 전기톱의 시동 줄을 거칠게 입으로 잡아당겼다.
철컥, 웨에에에엥-!
시동과 함께 사납게 울음을 토하는 전기톱. 하나 하나가 철판을 종잇장처럼 찢을 수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순차적으로 회전하며 드러나는 푸른 타원형 검날. 그나마 현실에서 가장 오러에 가까운 형태라 생각해 그가 사용하게 된 무기.
촤아악-
천류제의 자세가, 그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모습으로 변해갔다.
비록 뒤틀리고 어긋난 욕망이었으나, 결국은 그를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오게 만든 원동력.
자신을 한계까지 두들기기 위해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전투를 치러온 인간의 기수식.
“엿들을 생각이었다면 끝까지 들었어야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모든 것은, 갚을 치르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거기서 다시 변해간다. 텅 빈 오른팔 만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금 더 오른쪽으로 기우는 상체. 줄어든 근력을 보완하기 위해, 보다 무기의 날이 가진 파괴력에 의지하는 수비적인 전투방식.
“나는 이곳에서 삶의 염원을 치뤘다. 그러니, 박교수 그자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의 삶에서 비로소 ‘한서호’가 사라진, 오직 천류제라는 인간으로 오롯이 서게 된 순간의 모습.
“하….하. 이것 참….”
우득, 우두둑!
부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반듯한, 한계까지 정제된 인간의 형태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이렇게까지 도발하면, 개수작인걸 알면서도 걸려줄 수밖에 없는데….”
“아무렴. 여태 제 자신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한 정박아에겐 조금 과할지도 모르겠군.”
-뚜두둑!
그리고, 그렇게 느낄수록.
그의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그를 진심으로 대했던, 그를 진심으로 증오한 끝에 잡아먹은 호랑이가, 추례한 늙은 가죽을 뚫고 썩어가는 몸뚱이를 밖으로 내보이며.
“….오냐. 정 그렇다면-”
챠가악!
“어디 한번, 네 발톱이 나의 죽음임을 증명해보아라!”
스스로를 벗어나지 못해 범의 형태를 빌린 인간이, 오롯이 홀로선 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손과 발, 뿐만 아니라 가슴, 옆구리, 허벅지, 머리에서도 맹수의 발톱이 가죽을 찢고 나온, 이미 인간과 범 양쪽의 모습을 벗어난 흉측한 괴물의 모습.
천류제는 그 기괴한 돌진을 살피며 차분히 전기톱을 들어올렸다. 그의 시선은 발톱의 괴수, 그 너머의 열린 방공호에서 점차 밖을 향해 다가오는 인외의 기척을 향해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카가가가가각!
푸른 과학의 날과 썩은 고기가 붙은 발톱이 맞부딪치며 장렬하게 불꽃을 피워올렸다. 순간 다리가 휘청일 만큼 강맹한 일격이었지만.
‘충분하지 않을 만큼, 허투루 살아오진 않았으리라.’
콰차앙!
천류제의 날 끝은 되려 그 사이를 파고들어, 유려하게 짐승의 살을 찢어내었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는 박교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저 깊은 방공호 지하, 극도로 은밀하게 박교수를 뒤따르던 맹수의 노린내를 감지한 순간 계획한, 아주 짧고 간결한 ‘앞으로 남은 천류제의 삶’.
그렇게. 비록 방향이 잘못됐으나 오직 검으로 하나의 멸망을 평정한 위대한 검사. 지상에 강림한 마스터 소드의 입가에.
“….그리 원한다면.”
수많은 고련과 자기비하, 자학과 고통의 길을 넘어온 끝에.
“내 이름, 천류제가 너의 죽음이 되게 허락 해주마.”
“너 뿐만이 아니라 네 뒤에도, 그 뒤에 있는 모든 짐승들의 묘비명에 내 이름을….새겨주마!”
콰챠아앙!
비로소, 그에게 가장 익숙한 삶의 형태가 내려앉았다.
검사의 입가에, 그 날끝이 그려내는 푸른 호선과 같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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