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18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3)
****
=======
[D -00:15m]치이익-
[원정군 본대. 총사령관이다. 채널-1, 채널-2 각 부대 위치한 지점에서 적이 확인되는가.]치익-
[아아, 거 촌스럽게 채널 원투가 뭐요. 박교수, BDSM 하면 어때? 어차피 따로 보안이 필요한 작전도 아닌데.]치익-
[BDSM이 좀 부끄러운 이름이긴 하지.]치익-
[크흐흐흐! 그러는 본인께서는 왜 이름을 그따우로 붙이셨나? BDSM 수장 박교수씨?]치익-
[내가 참 후회없이 사는 사람인데, 그때 간게 그놈을 목매달지 않은 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전쟁이란, 늘 새로운 것이다.
[D – 00:07m]=========
치이익-
[이 시간 이후로 사담은 금지한다. 목표 확인보고. 채널-1. 채널-2]치익-
[채널-2. 정면으로 접근 중이고, 트리케라톱스 전차만 어림잡아 70기 이상. 그 뒤로는 더럽게 큰 전면장갑에 가려서 안 보이는군]치익-
[채널-1, 저놈보다 좀 늦게 우회 중, 놈들의 옆구리가 보인다. 애석하게도 아가씨처럼 야들야들한 옆구리가 아닌 67세 러시안 바부쉬카처럼 두텁고 튼실한 옆구리로군. 이쪽은 사이보그가 주축이 된 기계화 보병사단이다. 우회 타격이 큰 돌파로가 되긴 어렵겠어.]치이익-
[확인.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은 앞서 예상했던 바이다. 돔과 그 우군, 전병력에게 알린다. 이 전투는! 단순히 돔과 렙터, 두 집단의 알력 다툼이 아닌, 앞으로 우리의 말라붙어가는 세계에서 생존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가르는 분수령이며! 우리는 이념이 아닌 삶을 위해! 생존을 위해 소중한 것을 뒤로하고-]=========
그것이 피부처럼 익숙해질 만큼 겪은 이들에게도 언제나 새로운 이유는,
공포는 희석될지언정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쇠퇴하지 않는 것이 첫째요.
[D – 00:03m]==========
치이익-
[현 시간부로 본대 통신은 사령관 보안 차원에서 통신병이 대체합니다. 교전 준비. 교전 준비.]치익-
[아아, 간만이구만. 네스트, 나의 쇠비린내 나는 고향.] [앙? 그 새끼도 당연히 있겠지. 미리 말하는데, 벡스 너 임마 먼저 들어가서 그놈 목 따면 안 된다. 구스타브 그놈은 내 거라고.] [뭐냐 그건. 킬 리스트? 이야, 너 그런 것도 들고 다니냐? 아무리 침투조라고 해도 그렇지 뭔 데스노트도 아니고….]치익-
[가만 보면 우리 셋 중에 벡스 저 새끼가 제일 흉악하다니까. 살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목적만 부여하지.]치익-
[낟,난, 지집중력이 조좋은 것 뿐-]치익-
[그래그래. 케셀링이고 구스타브고 알아서들 잘 죽이자고. 먼저 들어간다. 채널-2, 교전 시작.]치익-
[쯧. 뒤지지 말고, 너무 사리지도 말고, 딱 중증 장애인 정도로 병원에서 만나자고. -얘들아아!!! 장비 챙겨라아아!! “이예에에!” 고철값밖에 안 나오는 싸구려 괴물 잡으러 가자아아! “우우우우우!”]=========
둘째는, 다른 전장에는 다른 이들이 내 옆에서 적을 마주하고, 사라져간다는 것이며.
[D + 00:08]=========
콰아아앙!
[화력지원! 화력지원! 엄폐물이 아니었다! 반복한다! 적 진지 교차지점은 엄폐물이 아니었다! 중전차 35기! 38기! 4….크아아악!]치이익, 치이이익-
[사이보그와 근접 교전 불가! 전원 과부하 폭발물이나 마찬가지다! 수가, 수가 너무 많다!]치익-
[채널-1이다! 렙터 전차병은 그냥 전차만 한 라이플 든 저격수라고 생각해! 무조건 적중한다! 요행돌파를 감행하지 말라고! 주 화력은 박교수가 혼자서 다 끌고 갔잖아! 본대! 장비 설치는, 지원은 어떻게 된 거야!]치이익-
[설치- 끝-니다! 하지만 엑소-가 예상 밖- 소모해서 유도 전력 충-가 아직 한참-]치이이이브즈으으으-
[47….구역, 에….레이든 부장이다! 사이보그…. 습격! 충전 장비를 부득…. 방어…. 치이이이-]치익-
[우리 별동대 쪽 사이보그에, 본대에, 47구역까지면 이건 절대로 렙터 전투원만으로 나올 수 없는 숫자다! 이 새끼들, 지들이 데리고 있던 노예며 생산인력까지 싸그리 개조해서 쑤셔 넣은 거야! 같이 죽어도 좋다는 심보라고!] [채널-2! 박교수! 살아있냐! 개 시발 살아있냐고!!]========
셋째는, 이렇게 전장에서 살아남은 숙련병에겐 전보다 더 큰 책임이 주어지기 마련이며, 그만큼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더욱 속에 담게 된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앙!!
발밑에서 터져 나온 폭발이 둔중하게 내 폐부를 가격한다.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빠캉! 까앙!
폭압에 몸이 뜬 순간 정확히 날아든 철갑탄의 말뚝 같은 탄두가 몸 곳곳에 틀어박히고.
‘정말로, 내 선택이 이들 모두를 불필요한 사지에 내몰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나?’
촤아아악-!
충격에 밀려난 몸은,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어느새 다가간 만큼 다시 멀어진 적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회의에 빠진다.
전쟁은 늘 새롭다.
늘 새로운 고통을 가져다 준다.
치이이익-
[본부! 본부우우아아아악!] [후퇴할…. 방법이 없어! 애초에 최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전제로 한 작전이었다!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틈을 만들어!] [지가 죽는 줄도 모르는 사이보그 새끼들-?! 윽, 으아아아악!]전쟁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위치에 선다는 것은. 내 죽음에 다른 죽음을 현장에서 만 단위로 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드드드드, 철컹!
우우우웅-
저 멀리, 한없이 멀어만 보이는 네스트 뒤로 우주선 기지의 사일로가 열린다.
붉은색 보조 기둥이 먼저 올라오고, 뒤따라 유선형 금속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넥스트 스페이스.”
아마도,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았을 유일한 우주 궤도 이동 수단.
발사 준비를 끝내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것을 보며 나는 인정해야 했다.
당했다.
렙터의 전술은 소모적이고, 쌍방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방식이며, 지난한 전투 끝에 승리는 아마 돔의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지상에 남았다는 의미다.
우주선은 떠나고, 게드로이츠는 그가 원하던 것을 이룰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험실 위의 실험체로 전락한다.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우주선은 그 유려한 흑백의 자태로 나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
****
근거가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전차의 군집이나 다름없는 저 ‘렙터 네스트’라는 요새를 촉박한 시간 안에 돌파할 근거를 두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
‘이거, GG운송드론이 급하게 찍은 항공 사진인데, 전차 옆에 쌓아둔 탄약 저거 그거 아니냐?’
‘날탄(날개안정철갑탄)인데? 저거 대전차 관통탄 아냐. 렙터새끼들은 병신도 아니고 저걸 왜 써? 나 없어지고 나서 렙터가 전술 교범을 바꿨나? 영 총장, 혹시 렙터새끼들 똥볼 차라고 쁘락치라도 심었수?’
‘설령 그랬다 한들 개개인이 전차전의 달인인 렙터 숙련병들이 저런 기초적인 실수를 범할 리는 없지. 기이하군….’
———
첫 번째는, 네스트에 접근하던 중 확인한 적진의 정보.
날탄이라 부르는 전차탄은 폭약의 힘으로 전차 안에 쇠말뚝을 밀어 넣는 현대의 발리스타라 볼 수 있는 고관통 대전차탄이다. 렙터의 주적인 돔의 주요 방어기제가 고출력 실드를 기반으로 한 것을 생각하면 큰 폭발력으로 실드 전력량을 뭉텅이로 날려버리는 대전차 고폭탄이나 아예 탄두를 자석 덩어리로 만들어서 실드의 응집력을 흩어놓는 개조 탄환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인 탄환.
한마디로 얘들이 절대로 쓸 일 없고, 재고도 별로 없을 수밖에 없는 탄환이 전투 준비 중인 렙터의 진형에 착착 쌓여있었다는 얘기다.
———
‘이거, 아무래도 적 전차의 제1 목표는 나인 것 같은데.’
‘이 정도 규모 전투에서? 네가 아무리 개인 전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 자식 이거 접속기로 뇌를 몇 번 튀겼더니 도끼병이 걸렸네?’
‘그건 전술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추측이로군.’
‘그럼 쟤들이 왜 고관통 전차탄을 쌓아뒀겠습니까? 엑소슈트는 고출력 실드 빼면 파일럿이 노출된 프레임 워커고, 아군 보병 전력도 스퀘어급 개인 실드만 두른 고화력 보병이고. 차량이야 나름의 장갑이 있다지만 그건 원래 쓰던 HEAT탄으로 더 넓고 충분한 파괴력을 보장하는데. 아군에 대전차 철갑탄이 유용한 유닛은 저 하나뿐입니다. [변종화 박교수]. 고장갑, 고기동, 고화력. 적의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고, 적의 보급품에 급진적인 변경은 적의 행동 교리의 변경을 의미합니다. 다들 알잖아요, 이런 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같은데, 어째 말 되네 이거.’
‘흐음.’
‘개도 원래 풀 뜯어 먹어. 예술가 연합에서 얻은 정보와도 꽤 일치한다고. 현 렙터의 사령관인 게드로이츠는 내게 기이할 만큼 집착하고 있어. 모든 일의 중심이 나라면서 나를 기준으로 뭔가를 벌이고 있지. 그 정신 나간 천재 양반이 또 어떤 3차 세계대전급 헛짓거리를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그 트리거가 나라는 건 아주 높은 확률로 사실이야. 그렇다면, 저 갑작스런 탄종 변경이 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가능한 예측이지.’
———
렙터는 전쟁으로 굳어진 구시대의 군기에 약물과 세뇌까지 곁들여진 집단이며, 도덕성을 배제한 그 행위는 99%에 가까운 명령 수행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적이 옆구리에 칼을 찔러넣어도 ‘100미터 밖의 적을 저격하라’는 명령이 있다면 총구를 돌리지 않는 게 렙터의 세뇌 병사다. 그런 이들에게 최우선 목표로 지정됐다는 것은,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거의 모든 전차의 포신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뜻.
그래서 제안한 것이 기존의 별동대+본대 구조를 별동대(BDSM) + 본대 + 박교수(화력 유도지) 라는 구조였다.
——–
‘되겠냐?’
‘자,자,자살 행위, 야….’
‘희생정신은 숭고한 것이고, 전쟁에선 부득이 강요되기도 하나, 그건 개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듯한데.’
‘아니, 됩니다. 적어도 아군 주력 병단이 무피해로 적의 킬존을 돌파해 화력을 와해시킬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무엇을 근거로?’
‘내 경험. 예술가 연합 근거지에서 렙터 주둔지까지, 두 발로 차량보다 더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내 변해가는 몸뚱아리.’
‘지나치게 빨리 변하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난 이런 수준의 몸을 다뤄본 적이 있어요. 정확히 이게 어느 정도 강도를 지니고 어느 수준의 힘을 낼 수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딴딴해졌으니까, 혼자서 전차 수백 대의 포화를 몸빵하겠다고?’
‘어이, 난 개당 3톤짜리 바위를 수천 개 쌓아 만든 성벽을 몸통 박치기로 부수는 괴물들을, 이것보다 못한 상태로도 군단 단위로 쳐부쉈어.’
‘….니기럴거. 현실감이 없군.’
———
두 번째 근거는, 바로 나였다. 정확히는 변종화가 진행 중인 박교수로서의 전투력.
‘이건, 정도가 지나쳐.’
내게 남은 시간과 육체가 가지는 힘이 반비례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미 숨만 쉬어도 몸은 바뀌어가는 중이고, 거기에 내 ‘사람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쓰면 터져나간 신경과 근육만큼 뭉텅이로 변종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유 시간이 줄어든 만큼 더욱 강인한 힘을, 지금과 같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유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꽈드드득!
전차와 인간, 충돌에 으스러진 쪽은 전차였다. 형편없이 우그러진 전면장갑 사이로 조종수의 피가 배어 나오는 가운데, 해치를 열고 나온 승무원들이 약에 취한 눈으로 수류탄 다발의 핀을 뽑아 들었다.
콰아아앙!
수류탄이 터지기도 전에 전차 위로 떨어진 집중 포격은 순식간에 그들을 인간 형상의 검게 그을린 자국으로 만들었다. 튕겨 나와 나가떨어진 내게는 폐부를 강타하는 둔중한 충격 정도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과거의 질긴 근육덩어리와 달리 두터운 갑옷으로 둘러싸인 몸은 질릴 정도로 단단했다.
빠캉! 까앙!
그런 몸을 위해 준비된 철갑탄이었지만, 몇 안 되는 직격탄은 검은 갑피의 곡면을 타고 거칠게 도탄되어 흩어졌다. 내 것이 아니지만 몸에 익은 기억. 왕실 기사로서 가장 정통한 방식으로 중갑 활용술을 배웠으며 가장 치열한 전쟁에서 그것을 활용해왔던 하이드의 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무리를 한다면, 과거의 일인 군단과도 같은 힘을 전장에서 휘두를 수 있다.’
근접 교전에선 맨손으로 가장 두터운 중전차를 ‘찢어’버릴 수 있는 적이, 고속으로 전차 라인을 향해 접근해올 때, 상대의 반응은 ‘그것을 막는다’로 한정되기 마련이다.
가진바 화력을 모조리 쏟아붓지 않는 한, 지금 상태의 나를 저지할 수 없다.
화력이 내게 쏠린다면, 적 전력의 7할에 가까운 전차 화력이 묶인 틈에 돔 본대와 BDSM 별동대가 자연스럽게 이권을 가져오며 렙터를 쳐부수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포구가 돌아간다면, 정면의 내가 다시 돌진하면 그만이다.
‘늦기 전에 치료제만 얻으면 된다. 늦기 전에, 넥스트 스페이스의 우주선으로 서버룸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변종화 진행 중인 육체라는 시한부의 수명을 극한까지 갈아 넣어 확보한 힘의 격차.
교전의 초입까지 압도적으로 유지되던 그것을 뒤엎은 것은, 지나온 전쟁에서 지도부를 잃고 은퇴와 탈영, 자진 해산을 통해 흩어진 나와 같은 군인들과 달리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쟁에 임했던, 그 살육의 굴레에 남기를 자청했던 3차 세계대전의 망령들이었다.
쿵- 쿵- 쿵-
빗발치듯 쏟아지던 포성이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든 것이, 신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