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19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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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터 전차병? 뭐, 렙터도 사람 사는 집단인 만큼 저마다 역량 차이는 있다만.”
“팩 단위로 움직이는 소부대 지원 차량이면 그냥 옛날 군대에서 대대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초 에이스 수준이고, 스웜 알파급 고위직 친위대 수준이면 1 : 10 전차전 같은 걸 이겨줄 수 있는 전설적인 전차병 수준이고. ‘네스트’를 구성하는 본진 그 자체인 전차 승무원이라면….”
“네스트 전차병이면 뭐. 거기서 더 나갈 데가 있냐? 전차 주포로 펜싱 경기라도 해?”
“그런 건 밑에 애들도 잘하고. 그냥 전차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차포를 라이플처럼 갈겨대는 놈들이라고. 정확도는 시모 해위해 뺨치게. 전차로 점프샷도 하고, 앉아 쏴도 하고, 트릭샷도 하고, 삼점사도 하고, 패닝샷도 하고….”
“메, 메탈, 죠…. ㄱ,기억하기 싫은 거, 물어봐서 미, 미안하니까, 개, 개같이 재미어,없는 헛소리 때려치우,고 와서 고기나 뒤집,어.”
“짜리몽땅 이새끼는 짧은 혀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아니 진짜라니까? 그놈들은 진짜로 저 정도는 한다고!”
“아아. 나 그런거 하는 전차 어렸을 때 TV에서 봤어. 뭐였더라. 녹색전차 뭐시기였는데. 막 빔도 쏘고.”
“전차가 녹색? 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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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구역을 떠나기 전, 렙터에 대한 공격을 갈등하고 있을 때.
같이 밥 먹다가 이안에게 렙터의 전력을 물어봤을 때 나왔던 대답이다.
그때는 그저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기억이라 농담으로 얼버무렸다고만 생각했다. 전차란 결국 방어력에 많은 부분을 투자한 느린 병기이고, 승무원의 기량이 중요하다 한들 기체 성능 이상의 역량을 보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쿵- 쿵- 쿵-
하지만, 쉼 없이 빗발치던 포성이 단발적이고 규칙적인 포성으로. 마구잡이로 일대를 초토화시키던 포격이 섬뜩할 만큼 정확한 간격으로 내 발 앞에 박히기 시작한 순간, 녀석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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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에서 나오면 죽는 줄 아는 놈들. 그 쇳덩이 안에서 영원히 전쟁과 함께 살아가는 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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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확!
곧바로, 발밑의 땅이 터져나갔다.
‘균형이…!’
쓰러져 균형을 잃기 전에 재빨리 발을 앞으로 내었지만, 이미 내 팔다리가 닿을 수 있는 모든 반경이 동시에 폭격으로 깎여나간 다음이었다.
카앙! 까강! 까드득, 까각!
균형을 잃은 찰나에 날아든 수십 발의 철갑탄은 마치 탄두를 손가락 삼아 촉진하듯 전신의 갑피를 밖에서부터 안으로 차례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싹!
‘다르다. 지금까지와 공격의 질이 달라! 지금 붙지 못하면, 2차는 더욱 정밀하게 조여온다!’
그런 본능적인 위기감 속에 마침내 푹 패인 땅에 발이 닿아, 조금 무리해서라도 앞으로 접근하려던 순간.
꽈과아아아앙!!!!!
마치 이곳이 목표라는 듯 둥글게 파인 크레이터 안으로, 지금껏 침묵하던 다른 모든 전차가 동시에 고폭탄을 때려 넣었다.
끔찍한 충격과 폭압에 잠시 정신이 날아가고, 곧바로 시야가 회복됐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첫 교전의 시작이었던 트리케라톱스 전차의 잔해들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마치 한 몸인 듯, 자로 잰 듯한 공격으로 저들은 상당한 유효타를 입히고 겨우 확보했던 거리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 것이다.
렙터의 전차가 나를 제1 목표로 삼았다는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그들의 역량에 대해서는 커다란 오판을 범하고 말았다.
나는 달려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저지당했으며, 저지 사격 사이에 여유가 남은 다른 전차는 아군에게 포구를 돌렸고, 이미 예상을 한참 웃도는 사이보그 병력에 고전하던 아군은 전차 포격까지 당하며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치이익-
[AT-06, 귀환이 힘들, 것, 같습니다…. 미사용 배터리 사출,합니다….]파지이이익!
본대의 엑소슈트 한 대가 시퍼렇게 방전하며 개미 떼처럼 달라붙은 사이보그와 함께 산화했다. 남은 배터리는 다른 엑소슈트병이 재사용 할 수 있게 사출하고, 사용하던 잔여 배터리는 과부하시켜 자폭해버린 것이다.
[이런 개-! 방금 터진 놈, 뱃속에 이상한 주사기를 잔뜩, 우우욱!] [의무병! 의무벼어엉! 중독 환자다! 놈들이 주입형 화학병기를 사용한다!] [산탄을 조심해! 파지 불릿이다! 스치기만 해도 그 자리부터 부푼 고깃덩이가 되는 생화학 탄환이다!! 빌어먹을, 이미 몇십 년 전에 자연 소멸한 저주받을 물건이 왜 렙터 놈들한테!]영상 속 게드로이츠가 그토록 원망하며 직접 폐기한 그의 실패작들은, 황무지에서 그의 손에 되살아나 돔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나는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고철이 된 중전차 더미 아래 웅크려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크아아악!]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이런 꼴로 죽고 싶지 않-그우웨에엑!! 어어, 어으….]‘침착하자.’
내가 영 총장의 시설 타격을 막았다. 내가 근거리 교전을 요청했고, 그 판단이 피해를 늘렸다. 전투 중 변수는 언제나 일어난다. 저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불리한 상황을 뒤엎을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 여기 있는 사람 중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제1 목표, 넥스트 스페이스, 마지막 보조 커넥터 분리. 발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제기랄, 이제 발사까지 5분…. 아니 3분 도 안 남았어!]‘….침착.’
렙터의 전투 총원을 아득히 웃도는 사이보그. 노예를 포함해 렙터의 생산인구까지, 렙터를 구성하는 전원을 이 전투에 밀어 넣었다는 뜻이다. 이 전투에서 렙터가 승리해도 렙터 소사이어티는 사라진다.
이 전투는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지연전을 위해 렙터의 모든 것을 갈아 넣었을 뿐.
유일한 목표는, 역시 저 우주선 너머의-
치이이이익-!
[죠! 이, 이안! 이, 이 썩은 구더기 같은 야, 약쟁이 새끼들이, 아, 안돼!] [대장이 당했다! 엄호해! 폼 블록 분사해서 시야부터 가려! 이안 대장이 당했다!!]‘….’
뜨득, 뜩, 뜩, 뜩, 뜨드드득!
어떻게 하지. 게드로이츠는 모든 것을 내다봤어. 모든 것을 준비했다. 나에 대한 완벽한 분석, 공략, 아군의 모든 행동을 읽고 한참 전에 대응해뒀어.
어떻게 하지. 죽는다. 나뿐만 아니라 이안이, 벡스가, 여기있는 모든 사람이, 47구역은 물론 남은 생존차 전체가 저 하늘의 무언가에 죽어버리고 만다. 나를 아는 사람, 나를 모르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모르는 사람, 모두 사라진다. 내 세계가 무너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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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어떻게.’
….뚝. 뚝.
‘어떻게, 내 통신에 모든 아군 병력의 단말마가 들려오는 거지?’
그것은, 입술을 물어뜯다 못해 입안에 피가 흥건해질 정도가 된 순간의 깨달음이었다.
‘별동대 이안. 본대 영 총장-통신병. 그리고 나. 셋만 있는 무전 채널에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병력이 연결됐지?’
세상을 설계한 과학자가 준비한 가장 치밀한 전장. 그는, 앞으로 모든 행동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에 수많은 우연이 존재한다 한들, 그 판의 기틀이 되는 ‘나’에 대한 변화는 단 한치의 변수도 없이 구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애초에 렙터는 노이지 팩이라는 강력한 전자전 부대를 운용한다. 전자 교란도 있고, 과거 방식이라면 납가루를 잔뜩 뿌려서라도 아군의 교신을 방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어. 통신 두절만큼 군대를 개인으로 고립시키는 것도 없는데, 렙터는 단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
‘….날 위한 거다. 내게 보란 듯이 들려준 거다. 오도 가도 못하고 엄폐물 뒤에 움츠려있는 나의 모습과, 죽어가는 전우들의 단말마, 친구들, 지인들…. 트라우마! 차후 내가 어떤 괴물이 될지 미리 조형할 생각이었나!’
‘게드로이츠, 그자의 시선에선 렙터와 돔 모두가 도구에 불과했다.’
‘정말로, 정말로 처음부터 전부 예측하고 판을 꾸몄다는 말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압박을 뚫고 나온 의심은 진실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어떻게?’라는 지점에서 답에 도달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이미 이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내다보고 있는 자에게서 어떻게 그가 바라지 않던 결과를 얻어내는가? 모든 답안을 선점한 당했다면 어디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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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드로이츠가 알지만, 모르는 것.”
“나도 알고, 그도 알지만, 이 무대를 위한 계산에 전혀 올리지 않은, 올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것.”
-쐐애애액!
콰자악!
“아.”
딴 생각을 한 탓이다. 말 도 안되는 정교함으로 전차포를 쏴대던 렙터 놈들이, 기어이 내가 엄폐한 쇳덩어리를 두들겨 팔을 날려먹을 정도의 구멍을 낸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은.
게임 속에선 잘려나간 왼팔이 금방 자라났지만, 현실의 몸은 튼튼할지언정 그런 재생력은 없다. 이 상처는 영구히 안고 가야겠지.
‘게임….속에서는?’
정말로 그것을, GG를 게임이라 부를 수 있나?
아니, 그것은 시뮬레이션이다. 어떤 시점에서 분화된 가능성을 거쳐, 수십 갈래로 갈라진 끝에 현실과 완벽히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처럼’ 완성된,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가능성의 세계라고 분명히 들었다.
가능성.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실제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힘이라면, 지금 내게 있었다.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존자에게 의도치 않게 제공되었다.
‘변종 바이러스.’
현대의 생물, 화학지식과 아득히 동떨어진 것을 만들어낸 안드레이 게드로이츠의 산물. 그것은 지구 역사상 단 한 번도 ‘불을 뿜는 생물’ 따위의 진화 계통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입에서 불을 뿜는 이족보행 파충류 변종을 만들어내었고, 주변 사체를 닥치는 대로 흡수해 복합 지휘체계로 이루어진 어보미네이션 같은 변종 또한 만들어내었으며, 워킹 케인과 같은 크기가 고층 빌딩에 가까운 생물 또한 만들어낸, [기억]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에서 파생된 변화의 원천이다.
푸후우욱-!
퍼어엉-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는 BDSM의 전문 변종 사냥꾼들의 뮤트 테크 웨폰 특유의 소리다. 특정 배합물로 순식간에 단단한 살더미 벽을 만들거나, 강산성 유탄 발사기를 연사하거나 하는 저 모습 또한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아닌가.
기적일 수도, 또다른 게드로이츠의 실수가 만들어낸 나비효과일 수도 있다. 어쩌면 미래 예측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가능성의 파생된 세계를 탐구한 게드로이츠가 저도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바스락.
나는 어깻죽지에서부터 떨어져 나간 왼팔을 들어 잘린 부위에 가져다 대었다. 마법 같은 기적의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피가 흐르는 절단면에 닿았지.’
왼팔은, 분명하게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내 몸의 죽은 부분이다. 변종화된 부분이 있지만, 아직 그 심지는 분명히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까.
죽은 사람의 기억을 토대로 몸을 재구성해야 할 변종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몸에 활성화된 덕에 ‘죽은 부분’을 변종화하게 되었다. 나의 변종화가 진행되는 원리다.
그렇다면. 피를 타고 흐르는 이 ‘변종 바이러스’는, 잘려 떨어져 나간 내 죽은 신체 덩어리를 어떻게 취급할까.
-푸화아아아악!
절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와 순식간에 왼팔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빨간 살덩어리 반죽 같은 것이 된 그것은 뼈와 살을 저미는 소리와 함께 독자적으로 맥동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그 끓어오르는 살더미를 부여잡았다.
‘결국엔 내 기억을 기반으로 변화했다.’
변종화된 육체는 모습도, 움직임도 어딘가 낯익었다.
“기억, 강한 기억! 가장 강한 기억! 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통수에 몰린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형태로 자라날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속이고 취한다. 그게 우리 방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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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필이면, 제일 싫은 게.”
가장 절박한 상황.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그것을 극복할 무언가.
어찌 보면, 이 모습이 기억에 박힌 게 당연했다.
저 혼자 요동치기를 그만둔 왼팔의 살더미는 얇은 피막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찌이이익-
발톱으로 거칠게 찢어낸 피막 안에 들어있던 것은.
까드드득-
철컥!
곳곳에 박힌 수정과 같은 결정과 어깻죽지에 타오르는 주황색 큰 결정이 인상적인, 총이라기엔 대포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정말,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좀 아는 사람이 봤다면 아케인 슈터라고 불렀을 물건이고.
“손에 들고 쏘는 거랑 어깨에 박아놓고 쏘는 감이 영 다를 것 같긴 하지만….”
좀 더 아는 사람, 벌써 ‘220년 녹화방송’ 중 박교수 파트를 전부 주파한 골수팬이라면 ‘그 샤드나이트가 쓰던, 워로드가 쓰던 그거!’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르는 물건.
4월드에서 무려 30년 가까이 들고 다녔지만 하나같이 악몽에 가까운 살인의 기억만 남은 실체화된 트라우마에 가까운 물건이고, 죽은 몸이 어깨에 달라붙은 거라 어깨뼈가 앞으로 연장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도 매우 마음에 안 들었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상황이 아니지. 애초에 이게 조준 좀 어긋난다고 안 맞는 물건도 아니고.”
우리 애들 포함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널렸는데 여유 부릴 시간도 없고.
적어도, 이 불리한 고착 상태를 끝내기에 가장 완벽한 무기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철컥.
애초에 마나를 응집, 방출하는 단순한 구조의 무기였고, 그래서 워로드 시절에도 단순한 만큼 압도적으로 많은 힘을 다룰 수 있어서 끝까지 애용했던 무기였지만, 내 기억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무기에 그런 기능은 없었다. 같은 무기를 만들었어도 이쪽은 배경부터가 마나가 없는 세상이니까.
“그 대신, 게드로이츠산 만능의 질료 ‘변종바이러스’가 잔뜩 함유된 피라면 있지.”
꼴꼴꼴꼴꼴꼴-
주황색으로 물들었어야 할 커다란 파편이 안에서부터 차오른 핏물의 색을 담았다.
장전이 끝난 총구가 수백 개의 검은 동공 같은 포구를 마주했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이 비현실적인 순간에 뭔가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지만.
찰칵.
마지막 무전 소리가 귀에 어른거려, 지체 없이 당겼다.
꿀렁-
총신 여기저기 박힌 수정마다 가득 차 있던 혈액이 녹아내리듯 스며들고, 다시 침묵하길 잠시.
-콰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붉은 기둥과 같은 혈사포(血射砲)는 그 흐름을 거스르는 작은 쇳덩어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전장을 관통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 정확히는 현실과 현실일 수도 있었던 가능성의 경계가, 가장 그것을 발견한 게드로이츠마저 엿보고 지식을 탐닉하는 것에서 만족했던 두터운 벽이, 이 순간을 기점으로 무너졌다.
내가 보고 겪어왔던 그 세계들이 가상이 아닌 어떤 가능성에서 분화된 다른 현실의 시뮬레이션이고.
일어날 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난다는 법칙이 정확하다면,
거기서 일어난 일들이, 여기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박교수는, 그 창조주조차 버린 ‘가능성의 세계’들을 가장 진심으로 대했던 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받아들였으며.
렙터 전차 군단의 중앙과 후열 보급대를 관통하고 우주선 발사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간 직경 10미터짜리 핏빛 발사체로 그것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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