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1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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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터 네스트. 수백대의 반파된 전투장비를 뜯고 용접해 만든 이 기이한 구조물은, 그 소재가 소재인 만큼 끔찍할 정도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부아아앙-!
레이저 병기와 전자기 가속탄이 활동하던 시대의 전차 장갑은 온갖 종류의 공격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 장갑이 쌓아올려진 벽의 곳곳에는 아직 살아서 그 장갑에 붙어있는 포대가 불규칙하게 사방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그 두터운 벽을 가까스로 돌파한 포탄이 내부 기관에 피해를 주더라도 고작 그 일부를 파괴한 것으로는 수백 개의 엔진과 궤도로 움직이는 기저부에 영향을 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이익-
쾅!
그래서, 다분히 그의 취향으로 개조된 무장트럭의 코뿔소 같은 범퍼가 네스트의 외벽을 들이받는 순간 이안은 터져나오는 에어백을 밀쳐내며 확신했다.
“크흐흐- 쿨럭! 크…. 이런 변태같은 전쟁병기, 벡스 그 짜리몽땅 깜냥으론 어림도 없지….”
지금, 이 전장에서 그가 아니면 이걸 해결할 사람이 없다고.
끄그그극, 텅!
우그러진 차문을 군홧발로 걷어차 날리자 나타난 것은 네스트 외벽의 안쪽, 온갖 장비의 부품이 거미줄 같은 파이프 지지대로 연결된 공간이었다.
“크흐흐흐…. 7시 방향 외벽 기반 장비. 네스트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을 때 외부 확장을 위한 기반으로 사용됐던 장비들 중 [구난2/7485] 차량. 건설 과정에서 기반 차량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됐지만, 이미 복잡하게 얽어 용접까지 끝낸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보조 지지대로 땜빵을 했었지….쿨럭!”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렙터 소사이어티가 막 만들어질 무렵. 저 부분을 교체해야 한다는 엔지니어들의 요청이 매일 한 번씩 날아들었고, 저 부분이 또 무너져 수리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매주 한번씩 날아들었으며, 약쟁이와 전쟁중독자들만 모인 렙터에서 그러한 요청을 숙고한 것은 이 거대한 파괴병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애쉬필드만이 유일했다.
“역시, 그때 그대로였군…. 그래, 그대로일 수밖에 없지. 그렇고 말고.”
이안은 갈수록 더 심하게 터져나오는 토혈에 벽을 짚고 서야만 했다. 자신이 뱉어낸 신선한 핏덩어리 아래, 기름과 먼지에 뭉쳐져 벽을 뒤덮고 있던 딱딱한 핏덩이가 벽을 짚은 손끝에 바스라져 묻어나왔다.
벽을 뒤덮을 정도의 혈흔 아래 있는 것은 엔진열에 바싹 말라버린 퍼석한 시체 수십구였다.
“….안녕들하셨나, 렙터의 엔지니어 제군들.”
애쉬필드는 이 취약점의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은 순간 당시 엔지니어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유일하게 소통하던 상관의 명령에 지체없이 달려온 그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이 취약점이 다른 외벽과 동일하게 보이도록 외부를 철판으로 덮었고, 그 철판이 최소한의 방어력을 가지도록 보조 지지대를 세웠으며,
작업이 끝날 무렵 그의 손에 모두 총살당했다. 당시의 그로서는 네스트의 유일한 약점을 알고있는 이들에 대해 보안상의 조치를 취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이 외벽에 뻥 뚫린 부분에 대해 알고있는 것은 이안 뿐이었으니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미안하게 됐다.”
결론적으론 개죽음이었다. 그들의 죽음에는 네스트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는데, 정작 그걸 수행한 인간이 네스트를 깨부수겠다고 그렇게 감춘 곳을 비집고 들어왔으니.
“그땐 내가 뭘 좀 몰라서. 피가 아주 차가운 새끼였거든.”
철컹!
피싯!
그의 상징과도 같은 커다란 건 케이스는 대충 때운 상처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이안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무덤가에 술을 뿌리듯 바싹 마른 시체들 위로 흩뿌렸다.
“보면 알겠지만, 지금도 슬슬 식어가는 중이고.”
크흐, 크흐흐흐-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과거의 애쉬필드가 차갑고 냉혈한 ‘콜드 블러드’였다면, 지금의 메탈죠는 실제로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몸이 식어가는 중이다. 이미 엎어져도 한참전에 엎어졌어야 할 몸을 온갖 도핑제가 움직이고 있었고, 덕분에 기능을 잃어가는 몸은 토혈이 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식어있었다.
이곳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은 살인에 대한 것이다. 오직 폭발에 집착하던 그로서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던 전쟁에 몰두했던 나날들. 많은 적들을 죽였던 기억. 그 배가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기억. 그리고, 아내와 딸이 살해당한 순간의 기억.
수많은 죽음에 대한 기억이 잠든 이곳에, 이제 그의 죽음을 얹으러 온 것이다.
“운명. 운명이라….”
철로 된 벽 너머에 군화 신은 이들의 정제된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탄약을 장전하는 소리.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벽을 두드리는 소리. 정확히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직선으로 벽을 가로지르는 아세틸렌 용접기의 불꽃.
“거, 되게 늦게도 찾아오셨군.”
타고난 전쟁 수행자의 감각이 전선을 살폈다.
‘적. 발소리의 중량감으로 봐서는 사이보그, 심지어 중장갑. 높은 확률로 폭발물을 선호하는 그를 대비한 Lv4 이상의 방호복. 침투 즉시 도착한 5분 대기조 30, 이후 증원예정.’
‘아군. 개인. 폭발물 위주의 중화기 무장. 복합골절. 상반신 개흉. 전투수행 불능. 중년의 산송장.’
“크흐흐흐, 거 더럽게 불공평하군.”
치지지지지직-
용접기가 사각형으로 벽을 잘라내는 순간.
핑-
이안은, 그 소리들 위에 수류탄 핀 소리를 더했다.
테두리가 빨갛게 달아오른 철판이 쓰러진다. 두터운 폭발물 방호복에 내화 방패를 든 군인 둘이 철통같이 입구를 막아서고, 그 사이로 화염 방사기의 둥근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에 비해 너무도 빈약한 수류탄은 가벼운 포물선을 그리며, 적에게 절반도 다가가지 못한 곳에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급히 몸을 숨기는 이안과, 그 덧없는 저항을 비웃으며 방패를 들어 올리는 렙터의 병사들 사이에서 작은 대인 수류탄 하나가 폭발한 순간.
쾅-
-꽈아아앙! 콰앙! 쾅! 쿠아앙!
그 작은 폭발을 시작으로 마치 땅밑에서 미사일이 쏟아지기라도 한 듯 연이은 폭발이 네스트 벽면을 따라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앙!
폭발은 병사들과 철판을 찢어발기며 네스트 내부를 향해 퍼져나갔고.
꾸극, 끼이이이익-!
폭발이 만들어낸 균열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던 외벽과 내부를 겹겹이 쌓인 그 무게를 통해 찢어발기기 시작했으며.
-쿠우웅. 쿠우우웅!
끝내, 기저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네스트의 왼쪽 사면은 연결된 전차들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난방관. 지지리궁상인 렙터 새끼들은 전차 엔진열, 매연 따위로 나오는 열을 재활용해서 네스트에 난방을 돌렸었지.”
힘없이 떨어진 수류탄은 애초에 렙터 병사들을 노린 것이 아닌, 외벽 내부의 빈공간에 노출된 네스트 전체를 아우르는 난방 파이프를 노린 것이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몇 년 단위 노후화된 전차 엔진 천여 개를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렙터다. 심지어 노후화된 엔진에 사용하는 것은 경유나 휘발유가 아닌 인간과 식물에서 짜낸 기름을 섞은 ‘바이오 디젤’같은 불순한 기름이다.
“쇳덩어리 사이에 둘러싸여 겨울을 나야 하는 렙터 입장에선 그 연소 열을 재활용해 네스트를 대울 수 밖에 없지만, 사실 그 안에 든건 반쯤 불완전 연소된 기화 연료들이라 이거지. 크흐흐흐!”
그래서 그가 비집고 들어온 ‘취약점’의 보안에 그토록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귀한 엔지니어 자원을 서른 명이나 폐기할 정도로 이곳은 렙터 네스트의 역린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다른 모든 보온 파이프는 몇 겹의 금속 벽 안에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지만, 구조적 결함으로 보조 지지대를 마구 설치하며 빈 공간이 생겨버린 이곳에서는 그 가연성 기체를 잔뜩 품은 가스관이 외부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으니까.
“….계속 생각했지. 렙터를 부수러 온다면, 여기밖에 없다고.”
그러니 불공평한 것이다.
산송장. 개인. 50kg 정도의 개인 무장. 아무리 길어도 90여분 남은 수명.
그리고, 아내와 딸을 비명에 보낸 그 순간부터 모든 밤을 렙터 소사이어티에 대한 증오로 지새워온 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탄마.
“흐흐흐흐…. 그 폭탄마 애쉬필드를 상대로, 고작 5대기 30명 쪼가리라니…!”
후두둑-
코에서 피가 쏟아지며 몸이 휘청거렸지만, 이안은 억지로 풀리는 무릎을 다잡았다.
스으으읍-
후우우우우.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는 뺨과 목, 폐부에 뚫린 구멍을 통해 온몸에서 뿜어져나왔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지.”
네스트의 일부만 무너진 덕에, 무너지지 않은 곳에서 약에 취한 렙터의 노예병들이 그를 향해 개미 때처럼 몰려나오고 있었다.
“애쉬필드. 이안 데스몬드. 메탈죠. 이 셋은, 모두 여기서 죽는다.”
이안은 필터까지 다 태운 담배를 뱉어버렸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세우고, 피가 흐르는 코끝을 훔치고, 양손에 총을 쥐었다.
“그러니, 불공평해도 이해해라.”
투타앙-!
그리고, 다가오는 인의 장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죽는다. 90분쯤 뒤에, 어쩌면 지금 당장.
그러니, 그가 만들어낸 렙터 소사이어티도, 그 시궁창에 처박힌 모든 쓰레기들도 여기서 죽는다.
그는 괴물이 되지 않는다. 사무치게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이 해왔던 살인에 대한 응보라 받아들인지 오래다. 인간 이안 데스몬드는 이미 괴물이었다.
“천하에 모지리 새끼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죽어가는 상황이라도, 적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아도,
콰아앙!
“….죽여봐라. 죽여봐! 어디 한번 나를 죽여봐라!”
이곳은 과거의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새였고.
“크흐흐흐흐! 흐흐, 흐하하하하하!”
그는 인류 역사상 화약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최악의 폭탄마였으며.
-퉁
.
.
.
.
콰앙! 콰과과과앙-!
전쟁병기를 쌓아 만든 이곳은, 전체 면적의 30% 이상이 화약과 폭발물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총. 유탄. 수류탄 따위는 모두 도화선일 뿐.
그가 준비한 폭탄은, 이 ‘렙터 네스트’란 이름의 거대한 화약고였다.
그 모든 구조를 알고, 10년 가까이 그것을 터트릴 방법만 생각해온.
메탈죠 인생에 가장 커다란 폭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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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우주선 기지, 넥스트 스페이스의 첨단. 우주선과 기지를 잇는 기다란 철제 난간 위.
콰앙-!
끄기이익-
“놀랍군. 정말 놀라워…!”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우주복을 입고있던 남자는 상황의 급박함도 잊은 체 난간 너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은 네스트 뒤의 넥스트 스페이스 건물조차 뒤흔들 정도였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네스트의 일부가 허물어진다. 단단한 복합 장갑이 생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황무지를 날카롭게 후벼팠지만, 한순간에 매몰된 수백의 비명은 그 안에 묻혀 희미하게 흘러나올 따름이었다.
네스트의 왼쪽이 장엄하게 무너지고 있다면 오른쪽은 가장 정석적인 방법으로 점령당하고 있었다. 공세가 주춤한 틈을 타 접근한 엑소슈트 부대가 전차 출입구를 점령하고, 광학병기를 든 돔의 정예 요원들이 내부의 병력과 교전하며 차근차근 안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기실 이런 좁은 곳에서의 보병전은 개인 실드로 무장한 돔의 병력이 유리했다.
이 모든 과정의 시발점이 된 정면. 갑자기 기이한 포격으로 렙터의 주력인 전차병단을 와해시킨 박교수는 전신에 결정화된 핏덩이가 자라나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면, 그가 굳은 몸으로 조금씩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아쉽군. 렙터는 오늘 이후의 쓰임새도 정해져 있었건만.”
반쯤은 렙터, 반쯤은 게드로이츠인 그는 그의 예상을 살짝 웃도는 전개에 난색을 표하는 한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몸이 굳어가는 괴물, 완연한 ‘저쪽 세계’의 모습을 한 박교수에게 못이 박혀 있었다.
“결국, 내가 도달하지 못한 성과에까지 도달했어…! 역시 정답이었어. 정답이야! 박교수! 네가 정답이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결과를 찾아낸 것이다! 이 내가! 마침내!”
저것을 보라. 이미 그 지식으로 현 세대를 몇 단계나 초월했다 평가된 그조차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또 그를 뛰어넘은 저자를 보아라.
렙터는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결국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가 연합도, 돔도, 이 황무지도, 모두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일 뿐이다.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갈아넣어 도출해낸 결과. 인간 안드레이 게드로이츠의 유일한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이 지금 눈앞에 만개하고 있는데, 손에 익은 도구가 망가졌다 해서 그의 관심을 끌 이유는 없는 것이다.
쿵.
벌컥!
“후욱, 후억, 허억, 끄르륵, 허억!”
그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의 상념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부서질 듯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남자였다.
“침입자다!”
“각하, 뒤로 물러나십쇼! 적은-”
타타앙-!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부관 둘의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사이에 선 게드로이츠는, 여전히 난간 너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축하하네. 셋 중 누가 제일 먼저 올지 몰랐는데, 자네가 일등이로군. 데스몬드.”
“메탈죠. 개명했다, 씹새야-”
쿨럭, 쿨럭쿨럭! 카하악!
연기가 피어오르는 샷건을 힘없이 떨어트리는 남자.
이안의 모습은 게드로이츠의 학구적인 면모를 자극할 만큼 놀라웠다. 정확히는, 그가 아직 서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이했다.
“전신에 화상은 말할 것도 없고. 안와 골절에 좌측 안구 소실, 돌출된 안구는 뇌출혈이 의심되고, 다수의 복합골절에…. 이런. 그 다리에는 대체 뭘 박아 넣은겐가?”
“내 셋째 마누라 같은, 총이지, 재수없게, 다와서 다리를 날려 먹었는데, 니놈 앞에 기어올 생각은 없어서, 말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불알 한쪽같은 놈이 너무 날뛰다보니…. 이대로 밍기적거리면 들러리로 끝날 것 같아서.”
쿨럭!
“아아, 친구 새끼 들러리로 남을 순 없지. 나름 목숨 걸고 나왔는데, 다들 조연이 되고 싶진 않잖아.”
숨을 몰아쉴 때마다 목구멍에 핏물이 차는 것을 보니 폐와 내장의 손상도 심각한 모습. 살아있는게 의심스러운 모습으로 정강이 뼈가 들어갈 자리에 총기를 의족으로 박아넣은 그를 보며, 게드로이츠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복수심이라…. 과연, 그 명성처럼 대단한 인물이로군, 애쉬필드.”
“조까는, 소리, 하네.”
끄르르륵, 꿀꺽!
후우우….
이안은 차오르는 핏물을 삼키고, 구멍난 폐로 반쯤 세는 숨을 어떻게든 가다듬었다.
“구스타브 그 새끼가 미친 샌님 영감에게 잡아먹혔다는 소식은 들었지. 복수는 얼어죽을, 그런 반푼이 같은 병신한테 복수심을 불태울 만큼 내가 급이 떨어지는 놈은 아니거든.”
“그렇다면, 설마 대의…. 같은 것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다는 건가?”
“대의는 지랄.”
철컥!
이안은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의무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의 의무.”
타타앙!
정확히 머리를 노리고 날아간 탄환은 게드로이츠의 코앞에서 생성된 실드에 튕겨나왔다.
“그리고, 천국행 티켓. 내가 죽인 사람만큼 사람을 살릴 기회가, 아무리 봐도 네 모가지를 잡아 비트는 것밖에 없을 것 같더라고.”
그것은 아마도 철저한 계산을 거친, 메탈죠가 생각해낸 유일한 아내와의 재회 방법이었다.
그의 아내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에 더없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죽어서 천국에 가지 않았다면, 천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딸은 세상의 오물을 마주하기도 전에 죽었다. 당연히, 천국에 가 있을 것이다.
반면, 이안 그 자신은?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히틀러와 더 뜨거운 열탕을 경쟁해야할 악인이 아닌가?
그러니 이 수밖에 없었다.
죽인 만큼 살릴 방법. 지옥은 몰라도, 최소한 정상 참작으로 연옥에 떨어질 방법. 그렇게 먼 발치에서나마 아내와 딸의 흔적을 지켜볼 수 있는 방법.
“널 막으면, 박교수가 이걸 타고 그 서버룸인가 뭔가로 갈거다.”
“그놈은, 아마도 해낼거야. 경력으로 증명됐거든.”
“….쯧. 좋게 봤더니, 결국 그 유명한 애쉬필드도 정신이 나가버린 것인가.”
“크흐흐흐! 죽기 전에 사람이 할만한 생각이 이런 것 말고 뭐가 있겠냐!”
터엉!
이안은 강하게 발을 내딛었다.
총탄은 먹히지 않는다.
폭발물은 사용할 수 없다. 기지에서 우주선으로 이어지는 허술한 철제 교각, 이 위에서 뭔갈 터트리는 순간 우주선으로 건너가는 길이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다. 교수놈이 여기로 오고 있는 이상, 이걸 건드려선 안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역시, 줘 패는 수밖에 없겠지.”
이 다 망가진 몸뚱이를 내던진 육박전 뿐.
이안이 품안에 손을 넣자, 게드로이츠의 것과 비슷한 푸르스름한 실드가 몸을 덮었다.
———
[야 이 새끼야! 그래서, 우리집에 들어와 산다고?] [아니? 너 사는데 옆에 살건 데.] [….실드는. 중규모 거주지용 실드는 있고?] [그냥 원래 쓰던 소형 거주지용 실드 쓰면 되는 거 아니냐? 넌 니꺼 써. 나랑 벡스는 따로 우리거 쓸테니까.]———
오래된,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순간이다.
———
[병신아! 같은 실드끼리 겹치면 파장에 혼선이 와서 중화되잖아! 제일 기초적인 대 실드전 교리인거 모르냐?] [아.] [아….미, 미안….] [아아아악!]———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실드를 아끼고 아껴왔던 이유.
정확히 그날의 언덕에서 그가 자폭한 순간, 어렴풋이 기억하는 실드의 반탄력과 동일한 파장을 찾기 위해 우진 영감과 하나하나 파장을 달리하며 실험한 끝에 찾아낸, 구스타브가 쓰던 강력한 개인 실드와 동일한 파장으로 만들어진 그의 실드.
“실드는, 같은 실드끼리 중화된다지…!”
과거의 경험, 이미 한번 실패한 복수를 곱씹고 곱씹어 강구해낸 마지막 수단은, 전장의 악마라 불렸던 이와 현대 과학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야만의 방식이었다.
“크흐흐흐! 구스타브! 그날의 언덕, 그때처럼 해보자고!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아플거다.”
딱! 딱!
“그때보다 더 좋은 턱이랑 이빨을 박아왔으니까!”
얼굴 피부의 대부분이 폭발로 타버린 이안의 웃음은 마치 악마의 그것과 같이 보였다.
구스타브. 복수심. 박교수. 세계의 미래. 서버 룸.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아, 하….”
“이런, 애쉬필드. 내가 좋아하던 자네의 모습은 이제 모두 사라져버렸나?”
정신나간 과학자의 얼굴을 했던 게드로이츠의 얼굴이, 그가 달려든 순간 꿈에도 잊지 못할 과거의 한없이 가벼운, 모든 살인을 가볍게 여기던 그 구스타브의 얼굴로 돌아왔으니까.
“….역시, 그 안에 있었잖아!!”
곰처럼 두 팔을 벌린 이안이 달려들고, 손에 너클을 끼워 든 구스타브의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든 순간.
-우르릉!
돔 본대의 진지에서 커다란 뇌성과 함께 머리가 쭈뼛 설 만큼 강한 정전기가 피어올랐다.
이안의 등에 매달린 건케이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흡사한 정전기가.
“돔…. 설마!”
“말했잖아. 이 전장에 들러리로 남아있는 놈은 없다고.”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Boo-M”
얼굴 가죽이 다 타버린 이안의 얼굴이 사납게, 즐겁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그런 종류의 무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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