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2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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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밝아졌다고 느낀 순간, 충격은 발끝에서 이뿌리까지 순식간에 몸을 타고 내달렸다.
수분이 증발한 안구가 허옇게 익어 쪼그라들기 전, 이안의 눈에 담긴 것은 구스타브와 그, 둘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지상의 벼락이었다.
구스타브도, 우주선도 향하지 않고 허공으로 쏟아져버린 비장의 일격.
빠지지지직!
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직 형체가 남아있는 것도 제우스의 공격에 당한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흐름 주변에 방전된 곁가지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것은 극미량의 방전된 전력에 감전된 두 사람. 그리고 고압 전류에 스쳐 끊어져버린 두 사람이 서 있던 연결다리 뿐.
제우스의 공격이 빗나갔다.
콰장창!
성공이다.
‘아마, 지금쯤 영 총장 그 새끼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고 있겠지.’
무너지는 연결다리와 함께 추락하는 이안의 입가에 말라붙은 미소가 걸렸다.
기능이나 명중률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우스의 공격이 허공을 향한 것은, 그가 유도장치인 케이스를 그쪽으로 던져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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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필드. 알랙산더 영이다. 지금 연결된 채널은 자네와 나 둘에게만 노출된 보안 채널이다. 교전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작전에 대해 논의할 것이 있어 연락했지.’
‘교수에겐 그리 말했지만, 실제 작전은 변경하지 않는다. 되도록 포격전을 지양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우주선의 파괴를 목적으로 할 것이다.’
‘속였다고? 신의? 그래, 내가 또 신의를 저버렸군. 38구역 때처럼. 그럼 그 잘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박교수를 또 희생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전쟁은 적군과 아군 모두의 희망사항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만약 렙터의 전력이 우리가 상정했던 것 이상이라면? 그래서 우리 군이 수세에 몰린다면? 또 ’위대한 영웅‘님에게 살려달라며 빌붙을 것인가? 또 그의 목숨을 갉아먹으면서?’
‘그는 이미 한계다. 처음에는 왼팔, 그 다음에는 전신, 그리고 의학적으로 사망선고가 가능한 상태로 되돌아왔으며, 식물인간으로 몇 개월을 저 연구실에 누워있었지. 그 상태에서 생환한 것이 고작 얼마 전이다.’
‘그 상태에서 더 자신을 소모했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겠지. 아주 높은 확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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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장창!
끝내 구스타브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발판이 무너져버렸지만, 마지막까지 적을 향해 달려들던 다리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추락하는 그의 몸은 관성에 밀려 구스타브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이안은 탄화되고 오그라든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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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그의 가치를 믿는다. 최근 몇 달간 47구역 내 자살자의 수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소했지. 범죄율 또한 기록적으로 감소했으며,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과장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우리가 천천히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모르는 이가 황무지에 단 한명이라도 있었나? 돔, 47구역, 황무지의 모두가! 심지어 나조차! 죽음을 피부로 느껴보지 않은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 그 누구도 과거와 같이 농담으로 [죽고싶어?]같은 소리를 하지 않지! 그 단어는 이미 우리 삶에서 농담으로 취급할 수 없게 됐으니까!’
‘해가 갈수록 겨울은 길어지고, 물자는 떨어지고! 구시대가 남긴 생존물자, 태양전지 패널, 유기물 합성기, 실드 발생기는 하나둘 수명이 다해갔지! 더는 구할 방법도 없는데! 돔은 인류 재건의 전초기지가 아니었어! 그저 잘 정비된 거대한 호스피스 병동이었을 뿐! 모두가 언젠가 다가올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을 머릿속 깊숙이 간직하고, 외면하며,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꾼 것이…. 바로 그였다. 박교수. 그는 해냈어. 그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는 것도, 대단한 의지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저런 상황에서도 살아남는게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냈다는 사실 뿐이다.’
‘답이 없다고 생각한 문제에 해답이 있음을 증명한 것. 그것으로 박교수는 황무지의 모든 생존자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좌절감을 뽑아내었지. 그는 이제 살아 숨 쉬는 전설적인 우상이자 희망의 표상이다.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 데이터로 증명된 사실이지.’
‘그래서, 나는 서버룸과 박교수의 생명을 교환하는 일을 거부하고자 한다. 서버룸이라는 적의 발언으로만 증명된 불확실한 미래의 희망이 아닌, 기적처럼 이미 우리 곁에 있는 희망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유도신호기를 자네에게 맡기는 이유도 그것이지. 이안 데스몬드. 메탈죠. 애쉬필드. 자네라면, 그의 존재가 얼마나 주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테니까.’
‘그를 살려주길 바란다. 그가 먼 미래의 전 세계 인류를 위해 산화하지 않고, 우리의 작은 공동체의 곁에 이기적으로 살아있어주길 바란다.’
‘제우스는 우주선을 파괴한다. 강제로라도 그의 희생을 막고, 렙터의 행사를 방해한다. 우리의 작전은 그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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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하게, 마치 늘어진 테이프처럼 한없이 느리게 흘러나오는 기억.
‘여우같은…. 새끼.’
아마, 그래서 그였을 것이다.
영 총장은 알았다. 돔의 수장으로 이안 데스몬드의 악명을 누구보다 가슴 깊이 이해했고, 그 악행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기억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한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 총장은 이 전장에 있는 누구보다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으며, 실제로 그것은 성공할 뻔했다.
그가 마지막에 신호기를 일부러 빗나가는 방향으로 던져, 제우스의 공격을 허공으로 유도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크흐,흐…. 신실함이, 부족,하잖아…!”
제우스는 빗나갔다. 우주선은 건재했다.
렙터의 병력은 와해되었다.
박교수는 살아있다. 병신이 됐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오겠지. 어떻게든 해낼 것이고. 원래 그런 놈이 아닌가.
이안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목록이 차례로 지워지고, 가장 첨단에 새겨진 단 하나만이 그의 사라져가는 의식 위로 떠올랐다.
구스타브. 알 하르브. 렙터.
무너져 추락하던 다리는 건물 사이에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이안은, 거기에 매달려 살겠다고 버르적거리는 그를 향해 추락했다.
콰삭!
“이런 끈질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엔…. 너나 나나, 저지른 일이 좀 많지…!”
“….그 어리석음에 감사하지! 돔이 저렇게까지 하리라는 것은 예상치 못했으니까! 한 순간의 오판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지만, 네 알량한 복수심이 일을 바로잡았다! 우주선도, 나도 살아있으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계획은 완성된다! 네 덕분에! 고작 한 남자의 복수심 때문에!”
“운마저 따르는구나! 그래! 이번에야 말로 나는 정답을 찾은 것이다! 반드시 일어나야할 일이기에, 세상이 그것을 돕는 것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온몸에 감전된 흔적이 가득했지만 구스타브는 웃고 있었다.
“복수심 따위일 리가, 있나….”
그것을 마주한 이안의 얼굴에도 짙은 미소가 떠오른 것은.
“박교수도, 영 총장도, 네놈도 각자 생각한 미래가 달랐던 것처럼, 나도 나름 내가 그리던 미래가 있었거든-!”
구스타브의 웃음이 비웃음이었다면, 이안의 그것은 한없이 승리자에 가까웠다.
기울어진 난간 위, 위태롭게 선 두 남자.
흩날리는 모래바람.
아비규환 속, 아무도 올 수 없는 곳
거친 호흡. 핏발이 선 눈동자.
감전된 몸은 힘을 쓰지 못하고, 주렁주렁 매달고 온 첨단장비는 감전되어 모조리 고장 났으니, 남은 것은 품 안에 쇳덩이를 먼저 뽑는 것뿐.
썩 괜찮은 맥시칸 스텐드가 아닌가.
이안은, 마침내 그가 오래토록 기다리던 순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이안의 손이 움직이고, 구스타브의 손도 황급히 품안의 홀스터를 향했다.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지는 순간. 일촉즉발의 현실과 달리 그의 의식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흑백이라.’
흑과 백. 무채색과 같던 그의 세계를 비로소 생동감 있는 인간의 삶으로 바꿔준 아내.
그가 그토록 자극적이고 거친 것을 쫓아 왔던 것은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가 바꿔준 그의 세계가 다시 과거의 무감각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으니까. 조용했던 목소리가 거칠어진 것도, 산적처럼 호탕하게 웃게 된 것도, 독한 술과 담배를 미친 듯이 마시고 피워댄 것도 거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딸이 없는 세상에서도 과거의 ‘이안 데스몬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는 황무지의 향신료 상 ‘메탈죠’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서부극에는 흑백이 어울리지’
잠시 메탈죠를 내려놓고 데스몬드로 돌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총이라 하기도 민망한, 작고 하얀색의 [몰리 데스몬드]라는 이름을 새겨넣은 데린저를 든 지금이라면.
몸이 반쯤 탄 이안이 구스타브보다 빨랐던 이유는 하나였다.
상대의 총은 품 안 깊숙이 들어있었지만,
탕!
그는 오직 이 순간을 기다리며 그 총을 목에 걸고 다녔으니까.
작은 총만큼이나 작은 탄환이 뚫고 지나간 구스타브의 이마에 작은 점 같은 구멍이 뚫렸다.
“복수심 같은 뜨끈뜨끈한걸 지금까지 품고 있었으면 벌써 다 타서 재가 되고도 남았겠지.”
찰칵!
탱그랑!
허물어지는 구스타브처럼 빈 탄피가 굴러떨어졌다.
단 두 발 뿐인 약실. 하나는 자결용으로 넣어둔 탄환이 있던 자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그렇게 사용하려다 실패한 빈 탄피가 들어있는 자리였다.
이안이 꺼내든 빈 탄피 안에는 돌돌 말린 메모가 들어있었다.
[한 번 더 생각할 것!]그의 아내 몰리를 닮은 동글동글한 글자들. 그가 선물한 총에서 실탄을 빼고 저런 것을 넣어둘 정도로 폭력을 싫어했던 그녀.
이안은 그것을 손에 쥐고, 허물어지듯 난간에 기대었다.
“복수심 같은게 아니라, 가장의 의무라고 해두지. 자존심도…. 좋고….”
털그럭.
그의 손에서 총이 굴러떨어졌다. 심장도, 숨소리도, 눈꺼풀도, 차례로 가라앉으며 조용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벡스는 살렸고. 우주선도 살렸고. 방해물은 치웠고, 박교수도…. 그 새낀 알아서 하겠지.’
죽음의 순간 그토록 그리던 아내와 딸 대신 이 두 녀석의 머저리같은 얼굴이 떠오른 것은, 아마 방금 구스타브 놈을 보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딸을 죽어서 만난다면 ‘이정도면 내가 할 만큼 했지!’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저 두놈에겐 아직 이래저래 빚이 남아있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너희들과 달리…. 나는 같이 늙어가고 싶은 사람이 없거든, 이제.’
그래서 정한 것이다. 셋 중에 죽어야할 놈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됐군.”
후우우우.
이안은 참고있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와 함께 목구멍에 걸려있던 피가 흘러나왔다.
-짤각
몇 안남은 손가락으로 부러진 선그라스를 고쳐쓰고.
칙, 칙-
“시부럴….”
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담배를 찾은 기쁨도 잠시, 라이터가 죽었다는 사실에 이안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젠가 ‘인생의 돛대’라는 주제로 그녀석들과 3시간 가량 토론을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는데.
망할.
“물고 있으면, 나중에, 와서, 붙여주겠, 지….
-털썩.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무너지고 그을린 건물의 사이, 아무도 보지않는 그늘진 틈 사이의 기울어진 철제 다리 위에서.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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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끄흐윽, 후욱!
텅. 텅. 끼기긱, 터엉!
몇 분 뒤, 누군가 힘겹게 우주선을 기어올랐다. 이마에 선명한 상흔이 분명한 그는, 발음이 불분명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짐승처럼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몇 분 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승객을 태운 우주선 ‘넥스트 스페이스’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6-. 5-. 4-. 3-. 2-. 1-. 0—-]쿠우우우우우우우-!
수많은 포화, 수많은 죽음을 사이에 두고 마침내 발사된 우주선은 두터운 먼지구름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출발 직전 로켓의 폭풍 사이로 뛰어드는 누군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 뒤에 남겨진 피투성이 남자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그의 숨은 이미 멎었으며, 그는 다른 실패한 머저리들과 달리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달성하고 끝을 맞이한 사람이었으니까. 남은 일은 남겨진 이들의 것이니까.
….다만.
우주선의 발사와 함께 로켓에서 뿜어져나온 불기둥이, 무너져 그 아래 걸친 연결다리 위의 피투성이 남자에게 쏟아진 것은 얘기가 달랐다.
그 불꽃은 2천 톤에 가까운 쇳덩어리를 우주로 밀어올리고, 그 아래 남겨진 남자의 시체를 흔적도 없이 불태우며,
화륵!
그의 입에 물린 피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담배에 불을 붙일 정도로 강력했으므로.
아마, 그의 마지막 모습이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던 것에는 그러한 연유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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