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4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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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보이나? 자네 등 뒤에 있는 저것이?] [아아, 이런. 미안하네. 그렇게 꽝꽝 얼어붙은 몸으로는 고개를 돌릴 수 없겠지.]게드로이츠는 어눌하면서도 유쾌한 어투로 말했다.
[자네에겐 안 보이겠지만, 자네의 등 뒤. 이곳 넥스트 스페이스 우주 생존지에서 고작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저 자그마한 원형 컨테이너 같은 것이 바로 그 ‘서버룸’일세. 그래, 핵전쟁 이후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릴 유일한 희망이라 여겨지던 바로 그것 말이야.] [서버룸이 이 우주 생존지와 같은 속도로 궤도를 돌고 있는 것도, 거리가 고작 300m밖에 안되는 것도, 이 생존지 외벽이 전부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어디에서나 서버룸을 볼 수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지. 자네도 알다시피 원래 이 우주 생존지는 GG의 클리어 보상중 하나였어. ‘50인 규모 장기 우주 생존기지 NEXT SPACE’. 이건 월드 클리어의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생존을 선택한 비겁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어.] [이 생존기지에 도달한 생존자들에겐 한 가지 업무가 부여된다네. 별것 아니야. 그냥 생존기지에 준비된 원격 버튼으로 하루에 세 번, 저 서버룸 상단의 불빛을 10분간 밝히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야. 바로 이렇게 말이지.]그 말과 함께 게드로이츠가 손을 움직이자, 환한 빛이 내 등과 기지에 드리웠다.
[별것 아닌 작업이지만, 이걸 수행하지 않으면 생존기지의 모든 전원이 순차적으로 꺼지게 해놨다네. 내가 준비한 일종의 힐난이자, 벌이지. 저 지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버리고 이곳으로 도망쳐온 놈들이 눈앞에 그들이 놓아버린 희망이 보이도록. 하루에 세 번, 10분간 기지를 환하게 밝히는 그 불빛을, 한때 애타게 갈구했던 희망이 눈앞에 떠도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놈들이 후회할 수 있도록. 이 드넓은 우주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져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죽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에 포기해버린 그 순간을 후회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게드로이츠는 등대처럼 빈 우주를 밝히는 서버룸의 불빛이 꺼질 때까지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처럼, 세상에 우연은 그리 흔치 않네.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확률, 전조등이 이미 그것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미리 나타내고 있지. GG에 사용된 미래 예측 모델은 수많은 데이터와 관측 정보를 토대로 그런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읽어낼 뿐이야. ‘압정을 엎지르고 대충 치웠다. 다음날 압정을 밟아서 발이 다쳤다.’ 와 같은 간단한 인과지. 왜, 우리도 ‘그럴 줄 알았다’ 같은 식으로 표현하지 않나?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양 말하면서 말이야. 나의 미래 예측장치는 이러한 간단한 인과를 깡그리 모아 괴물같은 연산장치로 모조리 사열해낸 것에 지나지 않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연이란 그리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지.] [‘진짜’우연이란…. 참 신비하고, 놀라우며, 때론 불쾌한 것이란 말일세.]우주기지 안, 마치 내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려는 듯 유리창에 달라붙은 게드로이츠는 자신의 미간에 선명하게 남은 상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보이나? 응? 우수한 군인인 자네라면 이게 어떤 자국인지 알겠지?]‘총상. 일반 탄환보다 구경이 더 작은 탄환. 실드를 관통하며 운동량이 감소하거나 하지 않고 정확히 미간을 관통한 흔적.’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의식이 가물거렸지만, 몸에 익은 습관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도 눈앞의 정보를 읽어내었다.
작은 탄환에 의한 총상. 유난히 작은 구경, 발사 직전 총성과 그곳에 있던 사람을 생각하면 저것이 누구에 의한 상흔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에, 아는 눈치로군! 자네 친구 말이야. 애쉬필드, 이안 데스몬드. 과연 그 악명 만큼이나 놀라운 집념을 가지고 있더군. 결국 해냈어. 이 안드레이 게드로이츠의 머리통에 기어이 총알을 쑤셔박는데 성공했단 말이지….]강화유리 너머의 게드로이츠는 그대로 작은 핀셋 하나를 꺼내더니, 지혈제 같은 것으로 덕지덕지 막혀있는 이마의 상흔을 비집고 열어보였다. 우주공간의 냉기에 안구가 얼어붙은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변종의 놀라운 시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게드로이츠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분명하게 구분해내고 있었다.
갈라진 두개골, 그 안에 가득 들어찬 피와 뇌수. 그리고, 손상된 것이 분명한 경련하는 핑크빛 살덩어리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금속의 무기질적인 광택.
[여기,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전뇌’라네. 많이 들어봤겠지? 일종의 뇌 활동 보조장치이지. 사실, 이게 구스타브 군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네.] [이건 자네도, 애쉬필드도 모르는 구스타브의 뒷 이야기지.]이야기를 하던 게드로이츠는 통제를 잃은 입가에서 흐른 침을 닦은 뒤, 경쾌한 움직임으로 여러 상자를 풀어내고 있었다.
[애쉬필드. 아내와 아이를 잃고 살 의지마저 잃어버린 그의 목숨을 도외시한 자폭은 구스타브에게 그의 생각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혔다네. 한창 황무지의 공포로 자리잡은 렙터 소사이어티의 위상을 위해 대외적으론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위중한 상처를 입었지. 가장 큰 상처는 뇌 손상이었네. 폭발 당시 뚫고 들어온 파편 하나가 뇌의 영 좋지 못한 곳으로 비집고 들어가버렸거든? 그대로 두면 뇌압으로 뇌출혈이 일어나고, 결국 죽을 팔자였다는 말이지.] [그래서 내가 살렸네. 위성과 드론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덕분이었지.] [방법도 간단했어. 크고 비싸고 튼튼한 트렁크를 렙터 소사이어티 이동 경로에 두기만 하면 됐거든! 설계도와 사용법까지 동봉된 첨단 뇌 보조 장비의 소식은 곧바로 렙터 간부진의 귀에도 들어갔고, 인간 도살자 수준으로 외과수술 경험이 풍부했던 렙터의 의사들은 고난이도 뇌 임플란트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냈지.]-덜컥!
모종의 장비를 설치하는 것을 끝마친 게드로이츠는 다시금 유리창 너머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렇게 구스타브 알 하르브 ‘렙터’는 살아났다네.] [살아남은 그의 손상된 뇌는 기계의 보조를 받아 전과 같이 기능했으며.] [때때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전뇌를 컨트롤하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고.] [종국에는 그 안에 업로드 된 나의 데이터화 의식에 덮어씌워지고 말았지.]게드로이츠의 손에서 공구가 떨어졌다. 그는 침을 흘리고, 눈에 띄게 경련하고 있었다.
[노, 놀랍지 않나? 과거의 나는 황무지를 직접 움직일 생각이 없었어. 따라서 구스타브 군을 통제할 방법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 그런데, 결과를 보게!] [애쉬필드는 구스타브에게 치명상을 입혔어! 그 폭발은 나의 위성에 찍혔고, 내게 렙터의 위중함을 알렸으며, 그리하여 그를 살림과 동시에 나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게 만들었지!] [그 뒤로 나의 모든 계획은 실패했고! 결국에 나는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마지막 카드를 휘두르게 되었네! 그리고 그것의 시발점이 된 애쉬필드는 다시 내 앞에 섰어! 나를 쐈지! 그의 총알은 명실상부하게 ‘이 몸’의 뇌에 틀어박히며 그가 소원하던 대로 ‘구스타브 알 하르브’를 완전히 죽여버렸다네! 얼마나 놀라운 우연인가! 마치 모든 임무를 완수한 배역의 완벽한 퇴장과 같지 않은가!] [그리고! 죽은 뇌를 전뇌가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은 이 몸이 우주로 올라온 지금! 원래대로라면 렙터의 공세에 못 이겨 지상에 남겨졌어야 할 자네가 여기서 나와 마주하고 있지! 정말 간절히 원했어! 한 번이라도 ‘나의 완성자’와 직접 마주보고 얘기하기를! 동시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 그런 일이 일어나는 미래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쿵!
경련하는 그의 머리가 유리창을 들이받으며 허연 입김자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모두 이루어졌어! 전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야!!!!]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이 세계가 나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나를 가로막기만 해왔던 세계의 흐름이! 이제서야! 마침내 내가 올바른 궤도를 찾은 것이야!]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경련하던 그가 설치를 끝낸 장치를 이쪽으로 돌렸다.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캠코더와, 그 캠코더의 화면과 연결된 디스플레이 하나.
[아차, 이대로는 안 되지. 구스타브는 죽었지만, 일단 이건 그의 얼굴이니까.]마지막으로 벗어둔 우주복의 헬멧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그의 바쁜 움직임이 마무리되었다.
[자, 다 되었군.]게드로이츠는 작품을 완성한 예술가처럼 그것을 바라보더니, 작은 의자를 가져와 그 앞에 걸터앉았다. 피투성이 군복 위에 얼굴이 비치지 않는 커다란 우주복 헬멧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그를 어딘가 기묘한 캐릭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화면에도 전원이 들어왔다.
카메라는 경련하며 일그러진 게드로이츠의 얼굴을 비추고, 그 뒤에 배경처럼 우주선의 표면에 얼어 붙어있는 나도 담아내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메마른 세계의 생존자 여러분.]친절하게도 나를 위해 설치된 디스플레이속 모습은, 언젠가 그가 남긴 영상기록과 동일한 구도.
비스듬한 각도, 차분한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그 안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게드로이츠.
[이것은 나 안드레이 게드로이츠의 고백이자, 마지막 영상이다.]게드로이츠는 손가락을 들어 헬멧으로 가려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고.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날 세계를 짊어질 위대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그 손가락은 어둑한 우주공간 속에 얼어붙은 나를 가리켰으며.
[동시에, 당신들의 죽음이 가질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마지막으로, 내겐 보이지 않는 기지 너머의 우주를 향했다.
손가락을 따라간 카메라의 화면에 비친 것은, 우주 쓰레기로 가득해야할 인공위성의 궤도가 있는 곳이었다.
인류가 수십 년 동안 경쟁적으로 쏘아 올린 기계의 파편으로 가득 찬 공간. 2050년 이후로는 천문학자들이 공식적으로 지구 표면에서 우주 관측을 포기할 정도로 위성과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차버린, 인류가 망쳐놓은 또 하나의 환경.
그래야 할 곳이, 시속 2만 7천km로 유영하는 금속의 고리로 뒤덮여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있었다.
지상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고리가 바로 그것들이었다. 화면 속,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기둥을 중심으로 목성의 고리처럼 회전하는 우주쓰레기들. 그 이름과 달리, 손톱만한 금속 조각조차 중력이 없는 이 우주에선 레일건에 필적하는 위력을 내는, 그러한 금속들의 군집.
[자아, 그럼. 잠시 늙은이의 옛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할까.]자신과 나, 금속의 고리를 차례로 비춘 게드로이츠는 다시 카메라를 이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던 한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를 말이야.]그 말을 입에 담는 게드로이츠의 목소리는 차가운 자조(自嘲)가 어려있었다.
그렇게, 그는 황무지라는 세계의 전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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