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5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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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캠코더의 불빛이 깜빡이고, 우주복 헬멧을 쓴 게드로이츠의 물음이 저 아래 살아남은 이들에게 던져진다.
[그냥 한번 생각해 봐. 단순히 똑똑한 수준이 아니라 오컬트의 영역에 가까운, 그냥 어떤 문제라도 보는 즉시 대강의 해답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천재의 머리를 가졌다면.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이라면, 당신들은 무엇을 하겠나?]그의 고백은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
[돈? 아아, 세상에 넘쳐나는 잉여자본 말인가? 대충 하이스쿨 시절에 장난삼아 끄적거린 공식을 발표해 특허를 내도 되고, 그것으로 회사를 차려도 되고, 아니면 대충만 봐도 훤히 보이는 경제의 흐름을 따라 적당히 투자를 해도 되지. 내게 돈이란 수돗물과 같은 것이었어. 수도꼭지를 돌리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끝없이 쏟아지는 그런 것. 참 무의미했지.] [명예? 좋아. 조금 나아졌군. 나도 돈을 번 다음에는 명예를 가지고 싶었어. 그런데, 이미 가지고 있더군. 세계 최고의 발명가, 천재, 인류의 보물, 살아 숨 쉬는 특이점…. 그냥 태어나 학습한 환경에 따라 가진바 능력으로 돈을 벌어봤는데, 영수증처럼 명예가 따라붙더군. 무의미하게 쌓여가는 돈을 필요한 놈들에게 나눠줬더니 그때부턴 내가 길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어도 나를 칭찬하더군. 명예도 그리 가치있진 않았지.] [권력도 마찬가지. 앞의 두 가지를 손에 넣으니 예의 ‘권력자’라는 치들이 슬금슬금 달라붙더군. 권력은 앞의 두가지를 잘 쌓아서 만드는 왕좌 같은 것이었어. 난 굳이 그것을 열심히 쌓지 않아도 남들보다 높은 곳에 도달할 정도로 부와 명예가 쌓여있었고. 당장 이 우주기지만 봐도 알 수 있지. 이게 어디 일개 민간 기업가가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인가? 이미 60년 뒤 우주 발사체가 들어설 자리까지 예약이 끝난 지구 궤도상에 이런 대형 우주 생존시설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권력이 끼어들지 않으면 안될 일이지.] [이렇듯 당신들이, 아니 인류가 평생을 추구해왔던 그 복잡한 문제들은 내겐 너무나도 간단했어. 아주 자명했지. ‘1+1=2’ 라는 문제처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보는 것 만으로도 답이 나올 정도로 간단했다는 말이야. 쉽게 말해, 내게 인생은 시작부터 컨텐츠가 모조리 사라져버린 게임과 같았다고 할 수 있지.]젊은 날, 그에게 삶은 덧없는 것이었다. 마치 모든 치트를 사용한 계정으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가 목표로 삼을만한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 덧없는 삶에 목표를 가져다 준 것은 ‘공포’였어. 한없이 단순한 문제. 흩날리는 티끌처럼 덧없는 것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지.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불태우고 파괴하고 있었어. 내가,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겠나? 당신의 눈앞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와 같은 문제로 씨근덕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총을 뽑아들고 서로를 쏴 죽이기 시작하는 거라고! 우습지! 바보같고! 하지만 그 바보같은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는 전혀 바보 같지가 않아! 터진 머리에서 쏟아진 뇌수와 내장의 역한 냄새가 도시를 가득 채운 상황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그래서 토마토는 야채냐, 과일이냐!’를 외치며 더욱 가열차게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었으니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랬다!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단 한순간도 쉬지않고 서로를 물어뜯는 바보들의 세상! 그런데, 그 바보들에게 세계를 통째로 파괴할 힘이 주어진 그런 세상이었지!]뇌손상으로 어눌해진 말투는 우주복 헬멧 안에서 울리며 더욱 기묘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나 뛰어난 지능탓에 사회와 동떨어진 이방인이 되어버린 과학자. 그는 허무했고, 그 허무한 것들이 만든 수많은 파괴 행위에 겁에 질렸으며.
[그래서, 그걸 멈춰보려고 했지. 어쨌든 저 바보들과 달리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있으니까. 바보같은 사람들이지만…. 어쨌든 나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게 둘 수는 없었지.]끝내, 그 끝자락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선민의식이라 봐도 좋았고, 도저히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인류의 멍청함에 대한 깨달은 자의 힐난이라 봐도 좋았다. 어쨌든 게드로이츠는 선한 사람에 가까웠으므로 이 우매한 자들의 끝없는 자기 파괴행위를 막아보려 했다.
[….잘 안되더군. 아니, 무슨 수를 써도 되지 않았어. 되려 악화만 될 뿐.]그리고 실패했다. 한없이 처참하게.
[내가 실패한 거야…. 내가! 쉬이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발견한 거라고! 한없이 덧없기만 한 것이 아닌,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내어 달려들어야 할 그런 거대한 문제가 내게도 주어진 것이지! 마치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각자 주어진 자리가 있다면, 나는 그제서야 그 자리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야!!]그 순간을 기점으로 허무와 공포로 점철된 그의 삶에 하나의 과업이 생겼다. 너무도 뛰어난 지능 덕분에 인간사에 아무것도 할 일이 남지 않은 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 그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자기 파괴적인 흐름을 되돌려, 이 모자란 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
헬멧을 뒤집어쓴 게드로이츠는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 열정적으로 살게 된 자신의 삶을 입에 담았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파지 미트’의 개발. 결과는 분쟁지역에 무수한 절단 장애 환자를 낳은 ‘파지 불릿’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실패.
노동, 일이라는 과업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면 그들도 자신과 같은 시선에 가까워질까 싶어서 시작한 강 인공지능 및 다용도 드론의 개발. 되려 노동권 박탈과 인간의 존엄성 소멸에 대한 세계적인 시위와 환경운동으로 이어지며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실패….
그 뒤로 이야기는 나도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실패. 기술적인 변화는 있을 지언정 본질은 변하지 않는 세상. 반복된 실패에 하염없이 부딪히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끝에 게드로이츠가 만들어낸 일생의 역작, GG의 모태가 된 미래 예측 프로그램.
숫자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가 하나같이 ‘인류 멸망’으로 이어지는 그 결과물 앞에 게드로이츠는 그에게 있어 단 하나 뿐인 ‘삶의 목표’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급해졌고, 그 결과 3차 세계대전에서 핵전쟁, 황무지, GG로 이어지는 ‘완성자 계획’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세계를 향해 자신의 과오를 털어놓는 상황임에도 그는 한점의 흔들림 없이 당당했다.
[그래. 내가 지금의 황무지를 만든 장본인이지. 전쟁을 부추겼고, 각국의 기밀을 서로에게 넘겨 스스로 의심암귀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인류의 90%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나, 게드로이츠일세.]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했음에도 결과는 불투명했지. 완성자 계획은 내 손을 벗어나버렸고,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으며, 세상은 조금씩 프로그램의 예측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답을 찾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이 ‘구스타브 알 하르브’라는 인물의 인격에 얹혀살게 되면서 말이야.]살인, 전쟁 중독자.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그것을 놓지 못해 렙터라는 집단을 만들어버린 이 정신 파탄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게드로이츠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구스타브 알 하르브 ‘렙터’는…. 놀랍게도 단순히 파괴 행위를 이어나가는 이가 아니었어. 놀랍게도, 자신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꿔 구하겠다는 뜻을 품은 사상가였지!] [박교수, 듣고있나? 구스타브는 상상 이상으로 자네와 비슷했다네! 비극을 겪었고, 가족을 잃었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것을 잃으며 망가졌지! 자네와 달리 운이 없었던 그는 끝없이 고통을 겪으며 추락했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 고통의 밑바닥에 닿았다는 것을 깨달았지.]텅! 털그럭!
그 말을 하며 게드로이츠는 우주복 헬멧을 벗어던졌다. 양쪽 눈은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통제를 잃은 혀는 입 밖으로 늘어져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구스타브의 깨달음을 희열에 찬 얼굴로 입에 담고 있는 그 모습은 명실상부하게 죽은 렙터의 기억을 온전히 이어받은 또다른 ‘렙터’의 얼굴이었다.
렙터의 얼굴을 한 게드로이츠가, 렙터의 기억을 이어받아 말했다.
[그것은 끝없는 안도감이었다네. 더는 추락할 곳도, 더는 잃어버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안도감. 견디고, 견디고, 견딘 끝에 더는 세상의 그 무엇도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없게 된 것이지. 피안(彼岸)은 드넓은 천상에 있는 게 아니라, 되려 우리가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진창의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야.] [구스타브가 렙터 소사이어티를 만들고, 끝없는 전쟁을 추구한 것은 이 고통밖에 없는 세상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그만의 성전이었던 것이지. 나도 이러한 그의 정신세계를 받아들이며 많이 깨달았네.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해법을 찾아낼 수 있었고.]지이이잉- 찰칵!
게드로이츠가 장치를 조작하자 캠코더의 화면이 우주선 표면에 얼어 붙어있는 나를 확대했다.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황무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 사람이지. 박교수라네. 성자, 영웅, 생존의 상징….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나는 역시 완성자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는군. 아아, 오해하진 말도록.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우주공간에 얼어붙어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네. 애초에 변종 바이러스의 최초 개발 목적은 ‘인간을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면 조금은 평화로워질까-’ 였으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자신의 이상과 같은 형태의 육체로 거듭날 수 있다면, 인간 자체가 강한 생물이 된다면 대부분의 분쟁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개발한 인간 진화 프로젝트가 그 원형이거든.] [물론 목표를 너무 높이 잡은 탓인지 아주 대차게 실패했고, 지금의 괴물이나 만들어대는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말았지만…. 그는 다르지. 나의 완성자는 변종 바이러스의 최초 개발의도에 부합하는 유일한 성공사례야. 우주라는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뿐, 결코 죽지는 않아. 지금도 정신은 깨어있는 상태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게드로이츠는 나를 향해 윙크를 해보이려는 듯 했으나, 눈꺼풀에 작은 경련만 일어날 뿐 되려 이쪽으로 기울어진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한눈에 봐도 전뇌가 뇌가 기능을 잃은 몸의 통제를 잃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유일한, 유일한 나의 성공…. 나의 모든 것이 녹아든 하나뿐인 완성품이지…. 어질고, 선하고, 결코 꺾이지 않는, 그야말로 완성된 인간…! 내가 준비한 시련, 그리고 그 이상의 시련마저 당당히 이겨낸, 인류의 목자가 될 유일한 존재…!] [나의 계획은, 구스타브의 것과 비슷하나 다르다…. 원점으로 되돌린 세계를, 그 누구보다 올바른 자의 손에서 다시 탄생하게 하는 것이야…!]끝내 몸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게드로이츠가 가까스로 조작한 장비가 우주를 비추었다.
정체불명의 금속질 기둥과, 그것을 감싼 우주 쓰레기로 만들어진 금속의 고리.
[난 말이야, 나의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인류가 무슨 수를 써도 멸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가…. 아주 먼, 고대라 하기에도 아득한 순간에 정해진 인류의 ‘진화의 방향’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 [인류에게 진화란, 곧 야만에서 멀어지는 것. 우리가 타고난 ‘동물성’에서 벗어나 이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했지. 생존 경쟁을 위해 서로 죽이는 것이 당연한 고대에서, 소속된 부족원과 협력하여 다른 부족을 대적하는 원시로. 기사가 농노를 재미삼아 죽이는 것이 당연한 중세에서 살인 자체가 터부시되는 근대로, 더 나아가 인간의 권리, 행복 추구권 등을 보장하고자 하는 현대로.] [그렇게 타고난 동물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인류가 선택한 진보의 방향이었어. 어느 순간 부터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진 생식의 특징조차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3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육체의 틀조차 벗어나 완전 전자인격화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지.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였는지….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지. 너무 과하게 이성을 중시한 나머지,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역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거야! 그냥 배를 채울 음식으로 만족하던 인류는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고, 맛을 떠나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음식을 원하다, 다음으론 음식에 어떤 철학, 사상적 요소를 담아야 비로소 만족하게 되었지. 풀만 먹는 자, 고기만 먹는 자, 특정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을 죄악 시 여기는 자! 기실 과거의 행복과 현대의 행복을 비교했을 때 그 총량의 차이가 있겠는가? 짐승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낸 험상굳은 야만인의 행복과, 월급을 받아온 회사원의 행복에 질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 전혀! 야만의 인류와 천년의 진화를 거친 인류의 행위, 그 두 가지가 제공하는 가치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어! 그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인류는 아무 의미없는 것을 위해 발전해 왔다는 뜻이지! 그래서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영상속 그의 목소리에 헐떡이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점점 힘겨워져가는 목소리로 악을 쓰는 게드로이츠. 화면의 끝자락에 걸친 그의 모습은 창백하고, 불균형했다. 그는 죽어가는 몸 안에 갇힌 살아있는 인격은, 아직 몸이 움직일 때 그의 유일한 목표, 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타고난 동물성에서 벗어나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욱 기이하고 지독한 행위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비정상적인 종족으로 거듭나겠지. 인류의 미래를 가리키는 모든 경우의 수가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러한 기형적인 문명화를 선택한 탓이고!]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우리 구 인류가 잉태한 유일한 성공, 실로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인류 ‘완성자’에게 새로이 탄생할 인류의 운명을 넘기고자 한다…!]의자를 붙잡고 기어올라온 손가락이 바들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암호가 입력되고,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금속의 고리들, 지구를 둘러싼 다섯 개의 작은 천체에 가까운 금속 고리가 그것에 반응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인공위성. 군사위성. 세 개의 우주 정거장.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 프로젝트 실패의 잔해. 달 기지 건설 실패로 버려진 잔해. 인류가 무책임하게 버린 우주 쓰레기는 이미 한참 전부터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금씩 치워내고 있었지. 저기 저 고리의 중심에 있는 검은 기둥은 그것들 중 가장 참신한 방법 중 하나였어.]진동하던 금속의 천체들은 이 차가운 우주 속에서도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열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커다란, 아주 커다란 전자석일 뿐이야. 중심에 배터리를 넣은 전자석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쏘아내는 것이지. 그렇게 발사된 거대한 기둥 형태의 전자석은 우주 쓰레기가 가득한 지점에서 가동되어 강한 자성으로 금속질 우주쓰레기를 끌어모으고, 그렇게 자성에 이끌린 금속들과 함께 지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영원히 나아가게 되는 그런 계획이었지. 여러 외력으로 방향이 틀어져도 쓰레기만 지구 궤도에서 치울 수 있다면 성공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였어. 생각 이상으로 방향이 틀어지며 멀쩡하게 운영 중이던 위성과 우주기지가 무더기로 박살나며 천문학적인 숫자의 피해와 함께 프로젝트는 폐기되었지. 탈출속도에 이르지 못한 전자석 기둥과 거기에 휩쓸린 우주 쓰레기들은 지구 중력에 붙잡혀 정지 궤도의 또다른 우주쓰레기로 남게 되었고.]-파삭!
어느새 열기는 얼어붙은 내 몸에 느껴질 정도로 거세지고 있었다. 내가 살아있는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얼어붙은 몸이 녹으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버려진 전자석 기둥이, 바로 저것들일세. 출력을 자체 중력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였지. 그 결과, 보다시피 지구 궤도상에 남겨진 온갖 금속 파편을 저렇게 끌어모을 수 있었고.] [개당 약 1천억 톤의 금속 질량체. 다섯 개를 합해 5천억 톤.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의 6조 8천억 톤의 질량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라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나의 최선이야. 내가, 우리 인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야.]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리창에 기댄 그는 끝없는 자부심이 담긴 얼굴로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가 있는 방향으로 열어보였다.
[다섯 개의 버튼.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우라늄-3 폭발물의 기폭장치로 이어져 있지. 그리고 그 폭발물은, 저 전자석 기둥의 바닥에 설치되어있다네. 작은 수소폭탄에 준하는 폭발력이니, 추진체로 모자랄 일은 없을 거야.] [….박교수. 우리 종족이 만들어낸 단 하나뿐인 성공이여, 메시아여. 나는 지금부터 저것을 지구에 떨어트릴 생각이라네.]툭, 투둑! 파삭! 까드드득!
[성급하지 말게. 자네가 해야할 일은 그 몸을 움직여 나를 막는 것이 아니야.]-툭
[사고와 선택. 그것만이 자네에게 남아있는 선택지야.]우주선 표면에 얼어붙은 채로 게드로이츠를 향해 뻗은 손. 기지에서 날아온 드론이 그 악착같고 부질없는 저항의 위에 올려둔 것은, 짙은 녹색 액체가 담긴 복잡한 형태의 주사기였다.
[변종 바이러스의 치료제일세. 자네의 몸을 인간의 것으로 되돌리고, 상당한 수명을 보장할 수 있는. 인간 박교수의 노년으로 이어지는 길이지. 그리고 여기있는 이것은….]-딸깍!
[….정확히 47구역의 중심을 목표로 떨어질 1천억 톤짜리 금속 폭풍의 기폭 스위치일세. 아마 장관일게야. 이 정도 면적의 금속이 대기권에 돌입하면 그 마찰열, 압축열이 어마어마하겠지. 발갛게 불타는 하늘에서 인류가 쏘아올린 금속이 불의 비가 되어 떨어질 것이고, 연소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유성처럼 지표면에 틀어박히겠지.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을거야.] [세이틀라이트 메테오(satellite meteo : 위성 유성우). 그렇게 이름 붙였지. 저 발밑의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라 자부하네.] [자네가, 지금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을, 47구역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거절한다면 말이지.]내 손에 치료제를 내려놓은 드론이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빈틈없이 입을 감싸고, 폐 속으로 따듯한 공기를 불어넣는게 느껴졌다.
[….늙은 과학자의 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이제, 앞으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할 자네의 소감을 들어봤으면 싶군….]-드드드득!
쿠웅!
마침내, 우주선 표면에 달라붙어 있던 몸이 떨어졌다. 반쯤 굳어있는 몸은 잠깐의 우주유영을 거쳐 게드로이츠가 기대어 있는 넥스트 스페이스의 강화유리에 도달했다.
“싸이, 코…. 늙,은이…!”
드드드득, 빠드득!
입가를 감싼 장치가 괴물의 이빨이 갈리는 살벌한 소리를 게드로이츠에게 전했다.
[마음대로 말하게. 어차피 나는 스위치를 다 눌러버려도 그만, 47구역 하나쯤 살려둬도 그만이니. 자네가 뭘 하든 바뀌는 것은 없어. 내 뜻이 바뀔 일도 없고.]심하게 헐떡이던 게드로이츠의 목소리는 언젠가부터 속삭이듯 작고 평온한 어조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살아온 육신도, 세상도 저버렸으며, 이제 마지막 남은 수명마저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평생의 염원 말고 더 바랄 게 무엇이 있겠나?]강화유리에 기대어 있던 그의 몸이 쓰러지며, 유리에 달라붙어있던 나와 게드로이츠의 눈이 마주쳤다.
더는 경련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생기 없는 눈동자.
움직이지 않는 맥박. 쉬지 않는 숨.
“이럴, 수가….”
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자아, 그렇게 놀랄 시간이 없네. 남은 시간이 별로 없거든! 거래를 하지! 자네가 선호하는 방식 말이야!]구스타브의 머리에 심어진 전뇌는, 죽은 몸을 전기 신호로 움직여 말하고 있었다. 수축된 근육이 횡경막을 잡아당기고, 뇌를 자극하고, 죽은 몸을 이리저리 움찔거리게 하는게 전부인, 내장된 배터리가 다 되는 순간…. 촛불이 꺼지듯 사라질 그런 미약한 존재로 남은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말,해라. 게드로이,츠….”
하지만, 그 움찔거리는 시체의 손가락 끝에 걸려있는 것은 내 전부였다.
나의 대답에, 죽어 움직이지 않는 구스타브의 입가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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