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7
Chapter. 24. 가장 위대한 채권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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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
광활한 우주공간에 내던져진 몸은 빠른 속도로 위성우에 다가가고 있었다. 궤도를 돌던 우주기지에서 안쪽으로 들어왔으니,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끊임없이 가속하게 되겠지. 굳이 게드로이츠가 특별히 준비한 멸망 같은 게 없어도 난 이미 죽은 목숨이란 말이다.
아니, 애초에 치료제를 몸에 꽂아버린 시점에서 가망이 없었지.
‘미친과학자게드로이츠님의역작인변종바이러스중에서도매우강인한정신적특이점이있어야만발현하는3형변종중에서도유일하게원래의기능을다하는형태로발현한성공작3형변종의단단하고강인하며우주공간에서도생존과적응이가능한인류역사상다시없을굴강한육체’
가, ‘그냥 인간 박교수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중이니까. 아마 조만간 기압차로 빵빵하게 부푼 다음 얼어붙은 사체가 되지 않을까.
“흠흠.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 하나둘.”
그걸 다 고려하고도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순간이다. 손익을 따져보니까 밑천이 거의 안 들더라고.
필요한 게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당시 죽어가고 있었으며, 살아남더라도 앞으로 70년간 혼자서 지구상의 모든 역사와 지식을 익히게 되는 의무/끔찍한 고문/을 앞두고 있는 불우한 몸뚱이. 세상에, 차라리 죽고 말지.
“안녕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생긴 건 좀 낯설겠지만, 박교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파를 타고 지상에 전해질 몇 마디 말이다.
그 대가로 얻는 것은 ‘불멸’이니, 이 정도면 거저나 다름없지.
“뭐, 다들 친절한 게드로이츠 덕분에 전후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지. 보다시피 내 등 뒤에 있는 쇳덩어리들이 게드로이츠가 말한 위성우고, 지금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향하는 중이지.”
“우린 다 죽게 생겼다는 말이야.”
잠시 뜸을 들였다. 지상에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돔의 병사들은 포격의 구덩이 속에서 반쯤 죽은 사람들을 꺼내고 있을까. 시민들은 정전이 된 도시에 불을 밝히기 위해 페달을 밟고 있을까. 의사는 환자의 수술을 집도할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충분한 환각제를 투여할까.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당신들을 살려준다면 나한테 뭐 해줄래?”
그들을 살린다 한들 아무것도 변치 않는다면. 이미 오랫동안 칼날 위를 걸어온 황무지의 생존자들이, 마침내 지쳐 그 위에서 내려오길 선택한다면. 그래서 내 죽음이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카메라 속에 담긴 나는 일그러지고, 장난스럽고, 당돌하게 내게 물었다. 낄낄거리는 얼굴 뒤로 발목부터 바스러져 떨어진 발이 화면의 구석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불멸’은 그러한 죽음을 앞둔 자의 망상에서 탄생한 계획이다.
“그렇잖아.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로 돌아가고, 그건 세상이 망하기 직전이라도 변함 없는데. 목숨값 정도면 나도 좀 받는 게 있어야겠다, 싶어서.”
“당신들이 내 짐을 좀 덜어줘야겠어.”
손가락이 흩어지고,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의 절반이 사라진다.
“우선 내 가족부터 시작할까? 당연한 것부터 얘기하자면, 내 소유의 재산이 전부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양의 소유로 이전되어야겠지. 사망자의 재산이 난리 통에 슬쩍 실종되는 거 여러 번 봤거든. 내 재산은 물론 도시에서 제일 큰 건물의 펜트하우스, 한도가 없는 블랙카드, 뭐 이런 것들로 삶을 풍족하게 해줘.”
펜트하우스가 있을 만큼 큰 건물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현물이 아닌 카드를 사용할 만큼 경제도 회복됐으면 좋겠다. 죽은 자가 남긴 것이 약탈당하지 않을 정도의 질서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신시아 바르바토스, 죽은 내 친구의 딸이자 지금 나의 수양딸이 내년 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지. 애가 정치 권력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고. 뭔 말인지 알지? 입학식 때 사열도 해주고, 예포도 좀 쏴주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당연히 장학생으로. 아예 애가 원하면 그냥 위쪽에도 한 자리 준비해놔. 영 총장, 이건 당신 할 일이야.”
교육. 사격과 매듭법이 아닌 수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사회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군대가 실탄이 아닌 공포탄을 장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필요에 의한 독재가 아닌, 정상적인 정치의 형태를 회복하는 것도 보고 싶다.
“그리고 또…. 아! 메탈죠! 그 녀석 동상 하나 만들어줘라!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던 예수상마냥 30미터 짜리로!”
죽은 자를 기릴 여유가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9개월 뒤에 태어날 우리 애는 유기농만 먹여라!”
방공호의 통조림이 아닌 신선식품을 먹을 수 있는 미래가 되었으면.
“우진 영감님 은퇴시켜라!”
세상에 지친 이가 마음껏 쉴 수 있었으면.
해줬으면, 되었으면.
이루어졌으면, 그렇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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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내 모습은 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살아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니까. 나는 지금, 전 세계의 생존자들에게 그들의 목숨 빚을 담보로 내 삶의 목표를 모조리 떠넘기는 중이란 말이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그리고, 어, 뭐가 있었더라….”
그렇게 신나게 말하다 보니, 어느새 살아서 이루고 싶었던 것들이 다 사라져 있었다. 변종의 강인한 육체도, 나의 남은 수명도. 모두 바스라져 내가 지나온 자리에 꼬리처럼 남겨져 있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내가 원하는 게 있지.”
얼어붙은 몸에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기적 같은 회복이 아니라 열기가 느껴질 만큼 위성우에 다가간 것이다.
“나는, 나를 기억해주길 원한다.”
내가 세상에 넘긴 마지막 짐은 나 자신이었다.
“이 순간 나의 죽음이 당신들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내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내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것처럼, 당신들도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내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주길 바란다.”
“그들의 이름이 나를 세상에 묶어뒀던 만큼, 내 이름도 당신들의 삶을 이 풍파뿐인 세상에 묶어뒀으면 한다.”
내가 짊어지고 살아왔던 것. 열일곱 이후로 평생 내 가슴을 내리눌렀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으나, 그 무게로 내가 쓰러지지 않게 지지해왔던 나의 짐. 목숨값을 당신들에게 달아두겠다.
내가 그랬던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다. 나는 혼자 짊어져야 했지만, 당신들은 눈과 귀에 닿는 모든 사람들이 그 짐을 나눠 들고 있을 테니까.
살아남은 모두가, 저 땅을 딛고 앞으로 살아갈 모두가 내게 빚을 지는 것이다! 나의 이름이 곧 당신들의 공통점이 되며, 처음 만난 사람과도 내 이름을 주제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겠지.
“부담스러워 하지 마. 목숨 빚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평생을, 그 이름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순간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빚이지.”
“당신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내 이름을 짊어지고. 자식들도 예외는 없어. 게드로이츠가 말한 지구 회복기 70년, 그리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을 인류의 성장시간까지 죄다 나한테 빚진 거니까. 적어도 손자의 손자까지는 내 이야기를 좔좔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이어져야 하겠지!”
“할 수 있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신들은 더 나아갈 수 있지?”
전자석의 여파에 화면이 일그러지는 모습에 카메라를 놓아버렸다. 카메라 속에 담긴 내 모습이,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을 향하는 간절한 눈빛이 추락하는 인공 별들의 사이로 멀어지고 있었다.
“….괜한 질문을 했군.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고말고.”
간절함은 헛웃음으로, 예의 낄낄거리는 히죽임으로 변했다.
“나는 당신들을 보고, 견디고, 그래서 살아남은, 당신들에게 비춰진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내게 가능한 일이 당신들에게 불가능할 리가 없지. 안 그래?”
쿵. 머리와 팔만 남은 몸뚱이가 전자석에 닿았다. 몸에 남은 변종의 부분이 몇 퍼센트나 될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 나를 살려두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요구사항은 끝났다. 부족한 숨을 아껴가며 전할 것은 모두 전했다.
이제 남은 것은 증명뿐이다. 당신들 앞에 희생된 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그들이 만들어낸 자가 어디까지 할 수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짊어졌는지에 대한 증명.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성우다. 각자 하나씩 빌어도 남을 테니 소원을 빌어, 친구들. 살려달라고.”
흔적처럼 남은 손이 전자석 기둥을, 다른 손은 내 심장을 향했다.
“들어줄 테니까.”
그러니, 안녕.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
“라스트, 스펠.”
푸슉!
아아, 어머니. 아버지, 오트만, 알드리치.
정말로,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뼈만 남은 손가락은 너무나도 손쉽게 가슴을 뚫고 심장에 닿았다.
평생 불가능을 쫓아온 마법사의 마지막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무엇을 꿈꿀 것인가.’
생각했다. 게드로이츠 자신도 원리를 규명하지 못한 ‘변종 바이러스’가 무엇으로 육신을 구성하는가.
주변에 즐비한 시체로 몸을 만드는 것도, 화형대가 통째로 몸을 이룬 것도, 칼과 같은 금속질의 무기물 형상을 한 것도, 산처럼 거대한 것도 있었다.
생물로서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았다. 질료는, 아마도 변화하는 순간 시발점의 주변에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재료가 된다.
형태를 이루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바이러스가 도달한 기억이다. 한 줌의 뼈무더기가 될지, 걸어다니는 산악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그것이며.
유일하게 산자의 몸에서 발현한 그것은, 나의 마지막 상상을 담을 것이다.
상상을 실현하는 것은, 마법의 영역이 아니던가.
현 시대를 아득히 뛰어넘은 그 창조자조차 과학으로 규명하지 못한 것. 오늘 이후로 살아남을 인류가 이것을, 바이러스의 형상으로 몸속을 배회하며, 몸에 해를 끼치지 않고, 특정 트리거에 의해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는 이것을, 우리의 과거 어딘가에서 갈라진 가능성이 아주 먼 길을 돌아 다시 찾아온 이것을 과학의 이름으로 규명하기까지.
지금 이 순간, 인류 전체의 목숨을 구한 기현상은 ‘마법’으로 기록되리라.
[월드, 마이 월드(World, my world)]세계여, 나의 세계여.
“오랜…. 전통에 따라.”
“빚이, 있으라.”
그렇게, 짊어진 나의 이름과 함께 영원하길.
그것이 끝이었다.
모든 기억을 빨아내어 압축하는듯한 감각 속에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발 아래 푸른 별이었다.
밤의 어둠에 잠겨 총총이 피어난 전기 불빛에 수놓아진 나의 고향.
이렇게 높이 올라왔음에도, 나의 하늘은 여전히 그곳이었다.
어둡기만 한 세상에 별처럼 수놓아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고통스럽게 찬란한, 나의 세상.
부디, 홀로 떠나는 나를 용서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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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또옥.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소리.
소리가 울리는 넓은 공간.
어딘가 낯익은 편안함.
“음?”
다만, 하얀색.
눈을 떴는지 정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지한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펼쳐진 하얀 공간이었다. 하얀 색. 검은 색 말고.
“….어째 평소랑 좀 다르긴 한데.”
꿈을 꾸는 것처럼 머릿속이 불투명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이.]“….어이.”
낡은 회색 소파와 그 위에서 배를 긁적이며 알은 채 하는 덩치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비켜 임마. 좀 앉게”
[나 혼자 쓰기도 비좁은데.]“그럼 아예 꺼지던가.”
[쯧.]늑대를 닮은 주둥이가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모로 누워있던 하이드가 일어나 앉았다.
푹석-
“아아아, 이거지. 이 감촉, 이 먼지, 이 곰팡내. 끝내주는군.”
[그래, 끝내줬지. 아주 쾌속하게 끝장이 나버렸군. 왜 벌써 왔어? 한참 뒤에 오라니까.]“그러는 너는 왜 여지껏 기다리고 있냐? 벌써 한참은 멀리 갔어야 할 놈이.”
[기다린 거 아냐. 좀 쉬었다가 느긋하게 가려고 했더니, 니놈이 그 새 와버린 거라고.]“퍽이나.”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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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번엔 끝을 보고 왔어?]“….어어, 그런 셈이지.”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그런 셈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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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 찰칵!
후우우-
[나도 한 대 줘봐.]“니가? 담배는 피워봤어?”
[너보다 60년은 더 피웠어. 코리드 요새도시의 말린 버섯 연초라면 웃돈을 주고도 구해서 폈다고.]“우웩. 야, 너 이거 한갑 다 줄게. 너 다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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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딱히 중요한 질문은 아니긴 한데….]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만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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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웃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