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29
Chapter +0. 이하, 모두 지불되었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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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년. 긴 시간이고, 많은 것이 변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으며.
[에…. 대충 내가 아는 건 이 정도인데. 이걸로 설명이 됐습니까?]‘차고 넘치지.’
다행히 이 라제르드라는 영감은 고위직 종교인답게 말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크게 오해를 했다. 죄 없는 늙은이 목을 사정없이 틀어쥘 만큼 크게.
“그…. 죄송합니다. 영감님.”
“허어, 그런 말씀 마시지요!”
“아니, 진짜로. 제가 좀 험하게 살다보니 성격이 그만…. 목은 괜찮으십니까?”
라제르드. 이 광신도 늙은이는 강인공지능의 부활로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의 축도 아니고, 고대 데이터 소울을 부활시켜 세상에 혼란을 야기하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도 아니었다.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제게 하대를 해주시는건 어떠십니까? 저는 다친 목보다 제게 존대하는 교수님의 음성이 더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지. 라제르드 형제.”
“오, 오오오오!”
그는 정말로 이 ‘행어 교단’이라는 종교에 심취한 늙은이었으며,
후욱후욱!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재림서 4정 12절에 표현된 것처럼 ‘라제르드 야, 내 삶을 짊어진 자야-’ 라고 불러주시지-”
“꺼져.”
“배움이 빠르십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극성적인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무튼, 다소 취향이 수상한 것만 빼면 고위직 종교인인 만큼 아는 것도 많았고, 말재주도 괜찮은 사람인지라 설명하난 깔끔하게 잘하는 편이었다.
머나먼 고대의 성스러운 전자인격을 잠에서 깨운 이유. 그것은 바야흐로 세상에 다시금 혼돈이 도래했기 때문일지니.
이 몸을 깨운 이유는 무려-
“시설이 최고 보안경계에 들어가며 모든 격벽이 닫혀버렸습니다. 그걸 좀 풀어주실 수 없을까 하여….”
….무려, 본인인증 좀 해달라고 불렀단다. 엄중하게 보관된 죽은 성인의 전자 인격을.
허허. 허허 씨발.
“….라제르드야.”
“예! 예 교수님!”
“지금 당장 그보다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내 친히 오래전 너희들이 내게 진 목숨 빚을 지금 당장 거둬갈 거란다.”
역시 미래다. 고인 모독에서부터 우리 세대랑 수준이 달라.
내가 성인과 같은 인내심으로 라제르드의 멱살을 잡지 않고 있는 동안, 다행히도 이 말 많은 사제는 생략된 설명을 마저 추가하였다.
“2차 기계 혁명?”
“예. 저와 파르쿠, 그리고 저 구석에 겁에 질려 있는 시민들은 몰려오는 살인 기계들을 피해 이곳 성전으로 급히 피신한 것입니다. 워낙 귀중한 물건이 많은 곳이라 보안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미친 기계들을 피해 최고 레벨 보안시설에 들어오긴 했는데 경계 태세에 들어간 보안 설비를 조작할 권한이 없어서 감금되어있는 상황이라 이거군.
“흠….”
“사실 기계지능 인권법이 제대로 인정받은 게 40년 밖에 안 되다보니 여러모로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그 덕에 화약고처럼 쌓여만 가던 기계 지능체들의 의문이, 이번 ‘소행성 채굴 사태’로 폭발해 버린 것 이온데….”
“혹시 ‘월드’나 ‘시스템’ 같은 이름을 쓰는 인공지능, 혹은 수상하게 ‘오류’에 집착하는 인공지능은 없지?”
“으음…. 저도 나름 높은 지위에 있는지라 여러모로 보고듣는게 있습니다만, 그런 이름의 적대적인 인공지능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후우우우!
십년 감수했다. 기계혁명이란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만났군요, 완성자’ 같은 환청이 들렸다고. 띠링-! 띠링-! 하는 소리랑 같이.
“그럼 됐다. 지나간 얘기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부터 마저 설명하지.”
“아, 예. 그래서 저희는 지금 이곳에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고, 광기에 물든 기계들은 조금씩 격벽을 해체하며 안으로 파고들어오고 있으며,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 시설에 대한 예외적인 권한을 가졌을 것이라 추측되는 박교수님의 데이터 소울을 불러 시설 조작 권한을 확보하려 한 것입니다. 보안 시설을 조작할 수만 있으면 격벽을 열어 안전하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과연. 그런 의미의 ‘살려달라’였나. 개인적으론 조금 김이 새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사람 목숨이 걸려있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키퍼’ 라제르드라고 했지? 키퍼면 어느정도 지위지?”
“현 교구의 총책임자 ‘행어 파스칼라드’ 님의 바로 아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라드 님이 변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임시로 본단을 책임지다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럼…. 대주교 급이잖아? 그런데도 본단 지하 시설을 조작할 권한이 없다고?”
“이곳의 관리인은 워낙 완고하신 분이라….”
슬슬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윤곽이 잡히고 있었다. 난리가 났고, 그걸 피해 보안 시설로 피신했고, 거기에 갇혔다. 보안 시설의 조작 권한은 ‘관리인’이라는 놈이 가지고 있는데, 종교인답게 원리주의적인 그놈이 ‘나는 이 신성한 시설을 지켜야 한다’ 같은 소리나 하며 죽어도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고 버티고 있겠지.
다행히 라제르드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라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해커…. 로 보이는 파르쿠를 대동했고, 덕분에 고대의 신성한 데이터 소울이 현세로 강림. 그래, 그렇게 됐구만.
-짜악!
“결국 관리인의 완고함도 ‘신성한 박교수의 전당’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니 내가 등장해서 ‘꺼져라, 나의 아이야-’ 한마디만 해주면 만사 형통이라 이거군.”
“방향이 조금 이상합니다만…. 당신께서 생각하신 것이니 그쪽이 맞겠지요.”
“그럼 됐네. 자, 그 관리자라는 놈은 어디있지?”
“그는 항상 박교수님이 잠든 이곳에 있으니, 아마 이 근처에…. 아, 저기 오는군요.”
대충 상황도 정리됐고, 밖에서 미친 살인기계들이 날뛰는 상황이니 서두르기로 했다.
완고한 종교인, 그것도 나를 신앙하는 종교인 하나 구워 삶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위이잉- 털털…
위이이잉- 기릭기릭, 털털털털….
시야에 들어온 ‘시설 관리인’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영감이 말했잖아. 그는 ‘대단히 완고’하다고. 행어 교단 본단에서 무려 키퍼씩이나 되는 사람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위이이잉-
털털털털…. 털컥!
[그게 사람이 아니면 모를까.]속에서 들려오는 파르쿠의 조용한 중얼거림이 낡은 기계음 사이로 흩어졌다.
바퀴가 여덟. 균형 유지장치와 외장 배터리, 그 외에 내가 모를 고급스러운 장치가 잔뜩 달린 그것은 조금 길쭉한 최첨단 휠체어처럼 보였다. 휠체어와 다른 점이라면, 사람을 태우는 대신 기계를 보조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것 뿐.
『기긱- 기기긱- 안녕하, 십니까아아-』
첨단 보조장치 위에 얹어진 것은, 외부 도색이 거의 다 닳아버린 아주 낡은 기계였다.
중앙에 작은 화면. 말을 할 때 파닥거리는 양옆의 작은 날개 같은 패널.
오래전, 내 손으로 직접 부착한 작은 로봇 팔과 용접기.
『신원 확이인— 실패. 이용에 불편을 드려어어 죄송합니다아아-』
그것은, 흙먼지 가득한 기억 속 나의 드론이었다.
“….코듀로?”
“예. 맞습니다. 행어 교단 지하 박물관, ‘박교수의 전당’ 관리인인 인공지능 코듀로 님이십니다.”
코듀로. 내 작은 쉘터를 관리하던 하우징 드론 AI.
15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녀석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해 온갖 보조장치를 단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곳 지하 박물관에 잠들어 있었을 것이며.
녀석은, 여전히 내 하우징 드론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주인이 잠든 집을 관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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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듀로.”
『기긱- 부르셨습니까아아.』
“….나 기억나? 내가 누구지?”
드득, 드드드득-
내가 살아있을 때를 포함해 170년 가까이 활동한 기계는 한참동안 데이터를 뒤진 끝에야 겨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아아. 본 AI는 게드로이츠 컴퍼니에서 만든 하우징 드론이며, 소유주의 인격과 성격을 학습해 가장 친근하고 완벽한 인격을 만들어갑니다아아-』
“….이봐.”
『본 드론은 기체 노후화로 대부분의 데이터를 상실했으므로,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불가합니다아아- 문의 사항이 있다면 게드로이츠 컴퍼니 드론 생산부로 연락해 주십시오. #45217-88-03495….』
“….”
말을 하는 대신 많은 질문을 담은 시선을 라제르드에게 던졌다.
“예. 이미 수명을 다한 AI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데이터도 마모되는 법이고, 기계도 늙어가는 법이지요.”
“….그럼 그만 쉬게 해줘도 됐을텐데. 박물관이니까, 저 녀석도 전시품의 일부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건가?”
온갖 보조장치를 덕지덕지 붙여 겨우 기능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은 감히 기계에게 비참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였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해서 코듀로에게 이곳의 관리인을 시켜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내 목소리에 서린 은은한 노기를 느꼈는지, 라제르드는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사실, 저희도 몇 번이나 권한 교체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저 정도로 데이터가 마모된 AI는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이 소멸하며 별도의 보안 확인 없이 보유한 권한과 업무를 이양할 수 있게 되는데, 저 코듀로라는 AI는 조금 유별났습니다. 인격 데이터가 전부 마모되었는데도 개인 의사가 남아있었고, 이동을 포함한 외부 기능이 전부 고장 날 지경이 되어서도 소유권자의 보안허가 없이는 권한을 넘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이이잉-
옆에선 코듀로의 불 꺼진 렌즈가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이미 방공호 수준의 보안 설비를 가진 박물관의 권한을 코듀로님이 다 가지고 있었으니, 저희로서는 별 수 없었지요. 기능을 보조하는 장치를 달고, 저 AI의 마지막 남은 ‘고집’마저 마모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요.”
“아니….”
왜. 코듀로.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녀석의 렌즈는 쉼 없이 커지고 작아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내부 램프가 나가서 딱히 시각장치로 기능을 하지도 않을텐데.
위이잉- 기긱. 위이잉, 기긱!
쉼 없이 움직이는 눈. 학습된 데이터를 거의 상실했다면, 저런 이상 행동이 녀석의 마지막 남은 고집을 대변하는 행동일 터.
“….설마.”
허리를 숙여 녀석의 렌즈와 눈을 마주했다.
코듀로의 시각 장치는 파손되었다.
늘어진 스피커로는 성문분석 같은 섬세한 기능도 못하겠지.
하지만, 최신 드론과 달리 저가형 모델이 본판인 녀석에겐.
….찰칵!
구닥다리 방식의 홍채 인식 장치도 들어있었다.
『기기긱- 신원 확인…. 소유권자 박교수. 주인님.』
끊임없이 진동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드론이 조용해졌다. 마치, 원하던 목표를 찾은 것처럼.
“….그래, 나다.”
『좋은 아침, 입니다아- 오늘의 날씨는— 에러. 미세먼지 농도느은-』
“….됐어 임마.”
하우징 드론의 기본 멘트. 녀석에게 나와 함께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복잡한 보조장치를 뜯어내고 녀석을 들어올리자, 어째서인지 윙윙거리는 소리가 조금은 즐거워 진 것처럼 느껴졌다.
『박교수, 님, 앞으로 온 영상기록. – 1건 – 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아아-』
“….영상기록?”
[그럴 리가? 이런 학습형 인공지능은 AI가 보안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록 데이터보다 인격 데이터를 우선시하게 되어있는데? 인격이 다 날아갔는데 영상기록이 남아있을 수가 있나?]파르쿠가 말한 것처럼, 원래대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 말은, 이 영상이 지난 백 수십년을 버텨온 ‘코듀로의 고집’의 정체라는 말이겠지.
『확인, 하시겠, 습니까아아』
녀석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듯, 반쯤 고장난 마이크로 확인하겠냐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확인.”
그래. 무엇이 너를 그토록 버티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주마. 네가 너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데이터 인격보다 더 소중히 보관한 그것을.
『디릭! 영상기록 1건. ‘해피타임. avi’ 가 재생됩니다.』
그래. 그토록 내게 전하고 싶었던 ‘해피타임. avi’를….
.
.
.
.
?
“-뭔?!”
설마.
설마설마설마설마 이 집요한 새끼가-!!!!
순간 아득한 기억 저편에 묻어둔 ‘하우징 드론의 주인 협박’사건이 떠오르는 동시에 필사의 반사속도로 코듀로의 화면을 두드렸지만, 이미 화면의 터치패드 같은 민감한 장치는 고장난지 오래였다.
“기계, 혁명….”
아뿔싸. 지금이 2차 기계 혁명이라면, 1차도 있었다는 뜻인데. 그때 얘가 맛이 가버린 상태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뜻인데! 방심한 틈을 타서 이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다니!!!
깨달음은 늦었고, 코듀로는 절망한 나를 두고 기다렸다는 듯 영상을 재생해버렸다. 고장 난 줄만 알았던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코듀로의 시선으로 녹화한 듯 한 화면에 나는 몇 초 후 벌어질 금세기 최고의 신성모독에 대비하여 혀를 깨물 준비를 마쳤으나….
“이건…. 지금 저희가 있는 박물관이로군요.”
[하지마! 내 몸이야! 하지 마! 하지 마 이새끼야!!!!]생명의 위기를 느껴 필사적으로 나를 저지한 파르쿠와, 세상 더 없이 진지한 얼굴로 코듀로의 화면을 지켜보던 라제르드 덕분에 가까스로 자결은 면했다.
“….박물관? 내 작은 쉘터가 아니라?”
“예. 건물의 상태나 전시물의 숫자를 보니 적어도 100년은 더 전의 박물관으로 보이는데…. 허어, 이것 참 귀한 사료로군요.”
천만다행히도, 코듀로의 ‘해피타임’은 박교수 흑역사 메들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박물관이 건설된 시점에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콰아아앙!』
코듀로가 녹화한 장면은, 100년전 이곳 박교수 박물관의 벽이 거창하게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콜록, 콜록! 빌어먹을 자, 자식들…! 내가 치, 친구보러 가, 간다는데 무슨 허, 허가를 받느니 지, 지랄이야…!』
흙먼지를 헤치고 나온 것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키가 작고. 허리가 굽고. 오래전에는 노안의 극치를 달리던, 이제는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이 된 벡스.
감회가 새롭다는 듯 전당 내의 전시물들을 구경하던 노년의 벡스는 카메라를 발견했는지 그쪽을 향해 걸어왔다.
『너도, 오, 오랜만이네, 코듀로. 자, 잘 지냈어?』
『자주, 자주 왔어야 하는데, 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
『무서…. 웠거든. 너희들한테 호, 혼날까봐.』
탁. 탁. 탁.
벡스는 가방에서 시가 세 대와 받침대를 꺼냈다. 하나 하나 입에 물어 불을 붙인 녀석은, 그중 둘을 받침대에 걸어 바닥에 세워두었다.
노쇠한 몸의 벡스가 가슴 깊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래도, 하, 한 번은 꼭 왔어야 했는데, 그래서 겨우 용기를 냈는데 이상한 녀석들이 모, 못들어가게 막아서는….』
녀석은 부끄럽다는 듯 구멍이 뻥 뚫린 벽을 가리키곤,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었다.
『….맡기고 싶은 게 있어서 와, 왔어.』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어보인 벡스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구형 드론인 코듀로에 맞춘 듯한 구형 데이터칩이 잠시 화면에 스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다른 화면이 영상을 가득 채웠다.
아마도, 수술실로 보이는 곳.
「해냈어! 정말 잘했어 다나! 정말 잘했다구!」
눈물을 펑펑 흘리며 환하게 웃는 노루.
「보여….줘…. 나한테도, 보여줘….」
땀에 젖어 녹초가 된 상태로 손을 뻗는 다나.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기는 꼬물거리는 핏덩이.
「우리, 아가….」
탄생의 울음소리.
녹화된 영상을 업로드한 듯 지직거리는 화면 위로, 벡스의 뿌듯한 목소리가 겹쳐졌다.
『해, 햅번…. 보고, 있어? 그, 그 위에서도, 잘 보일까….』
그래. 보고 있다. 한참 늦었지만 보고있어.
「크흥! 박교수, 이 천하에 책임감이라곤 없는 병신 새끼…. 태교랍시고 애 아버지 대폭발 쇼를 보여주는 미친 새끼…. 훌쩍! 이런 순간에, 이 좋은 순간에….」
화면 속의 노루는 미친 듯이 내 욕을 하며 울고 있었고, 다나는 그런 그녀를 탓하듯 지친 손으로 노루의 옷깃을 당기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
「….크흥! 몰라! 지 딸 이름도 안 지어주고 가버린 놈 따위 알게뭐야!」
딸. 딸이구나. 노루 말처럼 이름도 모르는 내 딸.
「아니. 이름이라면, 벌써 지어줬는걸….」
「훌쩍! 저, 정말? 언제? 두 줄 나왔을 때? 그때 여행가서 둘이 있을 때?」
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마치 나를 향해 보이듯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 위에서. 분명히 말했잖아. 우리들의 삶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원한다고. 그걸 위해 그렇게 한 거라고.」
다나의 눈이, 이제는 볼 수 없는 눈이 나를 마주한다.
「….서(序). 박 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의미야. 박 서. 우리 귀여운 서아.」
어느새, 나는 화면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병원의 기록이 사라지고, 담배 연기에 휩싸인 벡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예, 예쁘지? 서, 서아야. 박서. 부를 때는 서아라고들 불렀어.』
벡스의 주름진 얼굴이 환하게 미소짓더니,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뒤집었다.
『네가, 보, 보고싶어 할 것, 같아서.』
벡스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듯, 힘겹게 입을 달싹인 끝에 겨우 말했다.
『빚을, 비, 빚을 갚으러, 왔어.』
촤르르르륵!
주머니 안에서 쏟아진 것은, 한 줌은 되어 보이는 데이터 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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