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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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벡스가 준비해온 엄청난 분량의 기록이 전부 내게 전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기기의 데이터 손상으로 [해피타임. avi]에 저장된 영상의 90% 이상이 소실되었습니다아아-”
“이런….”
158년이라는 시간은 아편 전쟁이 있던 시대가 21세기로 변할 만큼의 긴 시간이다.
그것은 기록된 영상 정보가 흩어져 사라질 정도의 시간이었고, 70대 노인이 된 벡스가 먼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고도 100년의 세월이 흐른 시간이었다.
벡스의 기록은 세 시간 가까이 되는 길이 중 녀석이 코듀로에게 새로운 영상 칩을 갈이 끼울 때의 순간들만 남아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이, 뚝뚝 끊어지는 3분 분량의 짤막한 이야기.
“이, 이럴수가…. 이렇게 귀한 사료가 코듀로님 안에 남아있는 줄 알았다면 교단측에서 어떻게든 확보해서 보호했을 터인데, 교수님에게 전해졌어야 할 이야기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다니.”
“됐어.”
하지만, 짧은 영상에 담긴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건 아래에서 본 네 마지막 순간이야.』
나의 죽음.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 졌을까.
『너는…. 주, 주, 죽어서…. 별이 되었어.』
한순간, 초신성이 폭발하듯 쨍한 빛이 영상을 뒤덮었다.
빛이 가신 하늘은 셀 수 없이 많은 유성우로 수놓아졌고, 불타는 금속 파편의 열기는 황무지의 하늘을 뒤덮은 두터운 모래먼지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겁에 질려있던 사람들이 핵전쟁 이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투명한 밤하늘에 공포마저 잊어버린 가운데.
9년 만에 지상에 닿은 달빛이 은은하게 밤하늘을 빛내고, 그 아래 쨍한 금속 특유의 빛을 발하는 또 하나의 작은 별이 있었다.
『아, 아무도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지 못했어. 천문학자들이 밝힌 거라곤, 빛이 터져나온 순간 네가 있던 곳의 위성우 고리가 풀리면서 지상의 모든 관측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킬 정도의 엄청난 자력이 발생했다는 것. 새로이 지구 주변을 공전하게 된 천체는 작은 질량 덕분에 달보다 훨씬 가까운 궤도를 돌고, 그래서 하루에 세 번 뜨고 진다는 것. 자연 위성과 인공 위성의 경계에 걸쳐 있지만 고인의 뜻을 따라 그것을 ‘별(항성)’으로 정의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구의 두 번째 위성인 아크레도(acreedor : 채권자)라고 명명했다는 것. 그 뿐이었어.』
『다나는 애매한 시간만 골라서 슬그머니 떠올랐다 급하게 사라지는 그 별이 너를 닮았데. 나도-』
치지이익-
내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성지(聖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군요.”
“….성지?”
“예. 위성 아크레도, 빚쟁이 별 말입니다. 저희 교단 신앙의 근원이며 저희를 지켜보고, 다그치고, 그리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박교수님의 가장 큰 이적이자 증거물이지요.”
라제르드의 설명과 내가 있는 전시관 곳곳에 자랑스럽게 전시된 광택있는 별의 관측자료가 벡스의 말을 뒷받침했지만, 그래도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기 까진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가시면 식사후 나른할 시간 즈음에 떠오르는 빚쟁이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교단 사람들은 매일 세 번 뜨고지는 성지를 보며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았는가 되새기곤 하지요.”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곤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어….”
“슬프게도 당신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지금으로선 무를 수 없는 일이 아닐런지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무려 158년간 사람들은 매일 세 번씩 하늘을 가로지르는 내 시체를 봐 왔다는 소리다.
박교수의 이적은 그렇게 매우 실존적이고 눈에 띄는 형태로 영구히 지구 궤도상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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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익-
『조카스. 노루. 홀리. 흥안만두. 그리고 우진 영감님은…. 작은 봉사단체를 만들었어.』
다음은, 친구들의 이야기.
「우라질. 그 망할 놈이 뒈지기 전에 쓸대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강제로 은퇴를 당해버렸지. 할 일 없으면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몸이니, 별 수 없이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것 뿐이다.」
꼬장꼬장한 목소리의 우진 영감은 검댕이 잔뜩 묻은 용접 마스크를 올리며 한숨처럼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는게 부담스러웠어요.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평생 해본 거라곤 아버지 돈으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식사를 하며 살아있는 것 뿐이었는데, 내가 저런 박교수 같은 사람이 저렇게 엄청난 기적까지 벌여가며 살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옆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우진 영감의 일을 배우고 있던 홀리는 전보다 지저분하지만 한층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혜 같은 게 아냐. 박교수 그 개놈이 아주 음습하고 고약한 폭탄을 우리한테 떠넘기고 간 거라고.」
「그놈, 말대로, 진짜 산더미 같은 빚이 생겼다는-말이지!」
그리고, 조카스는 그들의 작은 사무실 앞에 세워둔 철골을 이리저리 구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부담감. 그것도 목숨 빚이라는 엄청난 부담감이지. 망할 놈이, 자길 평생 따라다녔던 짐을 전세계 사람들한테 퍼트린 거야. 늬들도 겪어 보라는 거야 뭐야.」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는 것’에 어떻게든 매달렸다면, 이제는 그냥 살아 숨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져버렸다- 이거지. 나쁜 새끼. 사람, 귀찮게, 흐으으읍!」
꾸국, 끄그그극-!
결국 철골 하나를 구부리는데 성공한 조카스는, 그것을 만족스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놈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론 만족해선 안 되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최소한 누군가가 저렇게 필사적으로 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면, 가만히 쉬고 있을 때마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저 빚쟁이 별이 좀 덜 부담스럽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기 시작한 거고, 이래저래 돌아다니다 보니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람 많아져서 봉사 단체도 만들고, 돔 쪽에 인가도 받고, 회원 모집도 하게 되고, 뭐 그런 거야.」
덜컹!
작업이 끝났는지 우진 영감과 홀리가 수레에 커다란 판 같은 것을 싣고 밖으로 나왔다.
[H.A.N.G.E.R.S] [자원봉사/정착지원/개척지원]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간판이었다. 철판에 쇳조각 여러 개를 용접해서 만든, 황무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간판.
「행어스(Hangers : 교수형집행인). 결국 이 아래에 있는 우리가 무능해서 교수가 저렇게까지 해야 됐으니, 박교수를 저 높은 곳에 걸어버린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이름 아냐? 기왕 부담스러워서 시작한 거, 부담 한번 아주 제대로 느껴보자는 취지지.」
「….잘 살아서, 박교수 그놈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아주 잘 살아서, 그렇게 빚을 갚는거다. 너도 몰랐겠지만 네가 살린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그 정도면, 이자까지 충분히 쳐줄 수 있지 않겠어.」
치지이익-
친구들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지만, 벡스가 그 이후에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라제르드. 이거….”
“예 맞습니다. 성실한 삶과 나눔, 스스로의 가치를 중시 하시던 ‘초대 교주 조카스’님과 ‘박교수의 7사도’ 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원봉사단체 ‘행어스’. 이 녀석들이 바로, 지금 껏 내 데이터 소울이 안치되어 있던 ‘박교수 박물관’의 주인이며, 범 지구적인 종교단체로 거듭난 ‘행어 교단’의 시발점이었다.
우리 조카스가 교황이라니. 47구역 대화방에서 심심하면 맨날 ‘아 X스 하고싶다~’ 같은 채팅이나 도배하던 순혈 온라인 휴먼 조카스가 사람들에게 선과 실천하는 삶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지상 최대 종교단체의 수장이 되다니!
“이건 말세(末世)야….”
“창세(創世)이지요. 당신께서 만드신.”
라제르드는 현실을 부정하는 나를 존경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희는 교수께서 생각하시는 종교단체와 많이 다릅니다. 분명 신앙의 영역에 닿아있지만, 그것은 실제하는 사건과 실물로서 매일 우리 머리 위를 지나는 성지에 기반하는 신앙이지요. 행어 교단은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을 추앙하는 교단입니다.”
“….그래?”
“예. 벡스님의 영상에 나온 가르침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신앙은 성실한 삶을 통해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근면, 성실, 나눔이 가르침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음.
종교단체라는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종교라기보단 이념 집단에 더 가까웠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니. 나쁘지 않네.
“당연히 단순 노동이 아닌 지적 발전과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 창출도 포함됩니다. 본 교단은 통합정부 우호 단체 중 가장 많은 학교를 설립했고, 가장 많은 연구 제단에 투자했으며, 가장 많은 고아원과 자원봉사단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부, 당신께 한 점 부끄럼 없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음!
성실한 신자는 곧 생산성 있는 신자고, 두둑한 주머니는 두둑한 기부금으로 이어지겠지. 내 교단은 끝없이 쏟아지는 돈을 물처럼 쓸 줄 아는, 그것도 아주 잘 쓸 줄 아는 녀석들이었다.
그렇게, 황무지는 매우 생산적이고 평화로운 이념이 전염병처럼 퍼진 덕분에 기록적인 속도로 안정되었으며, 그만큼 빠르게 회복하고 성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박교수 사후 7년.
게드로이츠의 우주선 발사 기지와 기존에 남아있던 자료를 통한 연구 끝에 만들어진 돔의 첫 번째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게드로이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버룸에는 현생 인류가 상상도 못할 수준의 다양한 기술과 다양한 이론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이는 7년 사이에 1년의 절반 가까이가 영하의 겨울에 가까워진 지구의 생명을 되살릴 확실한 수단이었다.
돔의 첫 번째 유인 우주선 ‘팔로워 호’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무사히 지상으로 전달했고.
치직, 파즈즈즉-
「그는. 세상을. 구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인가.」
「아니면, 내 손으로. 만들어낸. 것인가.」
.
.
.
.
「나는. 결국. 또다시. 내가. 틀렸는가.」
「….내가. 편협. 했…구….나….」
서버룸 바로 옆에 있던 우주 거주지 ‘넥스트 스페이스’에서 얼어붙은 렙터-게드로이츠의 유해를 회수해 혹시나 모를 보안 절차를 위한 뇌파 데이터를 확보하고, 겸사겸사 마지막 순간 그의 전뇌속에 남아있던 기억도 추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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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본부. 본부. 여기는 팔로워 호. 빚쟁이 별이 눈앞에 보인다. 정말이지, 정신나간 경쟁률을 뚫고 우주비행사가 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군.」
「지금 보내는 영상은 지난 7년간 내게 장학금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행어 교단을 위한 선물이다. 라투라, 서버룸 데이터를 옮기고 있어 항로를 변경하지 못하는 게 한이다. 성지에 도달해 그분께 우리가 여기까지 왔음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건만.」
치이익-
「임무에 집중하라 팔로워. 그분께서도 팔로워가 그분의 마지막 의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아실테니 크게 기뻐하실…. 잠깐, 잠깐 정지! 팔로워! 팔로워!」
치이익-
「무슨 일인가, 본부.」
「카메라! 방금 촬영한 부분을 확대해! 내가 봤어! 봤다고!」
「자료와 일치하는 형태! 금속 형질 변종 피부 특유의 이질적인 광택! 분명히 거기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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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나오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것도 카메라에 담아버렸다.
『브, 블랙박스가, 남아 있었어.』
『교수, 너 말이야. 오르페우스 사태로 가슴 부분이 뻥 뚫린 채로 수복이 안돼서, 다른 변종의 금속질 피부를 이식한 부분이 있었잖아! 네 몸이 아닌, 이미 변종화된 다른 변종 개체의 이식부위! 가슴에 공간 생긴 김에 통신장비며, 구출한 데이터 소울 저장 장치며 이것저것 넣어놓았던 부분. 그게, 블랙박스처럼 남아서 빚쟁이 별에 덩그러니 박혀있던 거지.』
“아. 그거.”
영상속에서 당장 항로를 이탈해 착륙하라느니, 임무를 속행하겠다느니 하는 논쟁이 지나간 다음.
화면은 수천 명의 교인이 우주선 발사 기지에 모여있는 모습을 비추었다.
‘팔로워 2호’가 착륙하며 발생한 열기와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헬멧을 벗은 우주인이 커다란 보안 상자를 신줏단지처럼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제가…. 모셔왔, 습니다….」
우주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을 내려놓고 잠금을 푸는 순간, 민간인 한계선이 눌려 휘어버릴 정도로 몰려있던 교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치이이익-
“당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10억에 가까운 데이터 소울도 함께 회수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구나….”
그러니까, 이건 꽤나 대단한 우연이었다.
나는 오르페우스 앞에 몸을 던졌고. 고밀도 파장에 완전히 분해된 내 흉부를 수복하기 위해 우진 영감님과 돔의 의료진은 이안에게 부탁해 인간과 변종의 특성을 모두 지닌 내 몸에 호환 가능한 변종 피부를 구해달라고 했으며, 그렇게 해서 유사 사이보그처럼 가슴에 뻥 뚫린 수납공간으로 남아있던 부분은, 이미 다른 개체의 변종화로 변이가 끝난 부분이었기 때문에, 내 마지막 자폭에 휘말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저 길잡이 별의 쇳덩이들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멀쩡하게 보관된 그 내용물과 함께.
『크, 큰 사건은 여기까지고, 이 뒤로는…. 그냥 네가 봤으면 하는 일상 같은걸 녹화 해봤어….』
이 뒤에 이어진 것은 정말로 소소한, 일상의 반짝이는 한 때의 기록이었다.
돈이 썩어나는 행어 교단 놈들이 ‘그분께서 원하셨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며 정말로 30미터 규모의 ‘트루 메탈-죠’ 금속 동상을 세우는 장면.
소소하게 지나갔던 신시아의 중학교 입학식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교단의 모든 금력과 정치력을 총동원해 도시 축제 수준의 환영 인파를 준비하고, 영 총장이 친히(급조해)보낸 의장대가 내 오래된 쉘터에서 고등학교 정문까지 사열하게 했으며, 200인 규모의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게 만든 끝에 얼굴이 벌개진 신시아가 기록적인 속도로 학교까지 달려가게 만들어버린 순간의 기록.
여전히 변종이 날뛰는 외곽 개척지의 기록도 있었고, 놀랍게도 그 중에는 천류제가 촬영된 장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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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 살아있었….」
「죽은 적이 없으니 살아 있겠지.」
「하, 하지만, 분명 너는 사망자 목록에….」
「세상에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야 할 만한 지인이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나. 살아있으니 살던대로 살고있던 것 뿐이다.」
「….벡스. 너는 살아있다고 표현하기 애매한 상태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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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큼지막한 흉터가 서른 개 쯤은 더 늘어난 것 같은 천류제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함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휴대용 전기 화로에 잡철을 집어 넣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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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 하지 마라.」
「….어?」
「네가 쫓지 않아도 과거는 알아서 찾아온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그리고 미련이 많은 놈은 대게 살아남기 마련이다. 저 하늘에 빚쟁이 별의 주인이 미련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나서야 질긴 목숨을 끊어낸 것처럼.」
「넌, 아마 우리 중에 가장 오래 살 것 같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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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앙- 까앙-
천류제의 기록은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 영상은, 작은 병실의 입구에서 시작했다.
『벡스. 찾아와 줬네요?』
『….다나 양.』
『도대체가. 우리 나이가 몇 인데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는 건지.』
콜록 콜록! 후우우.
병색이 완연한 모습의 다나.
카메라를 든 벡스와 다나는 서아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야기, 결국 신시아가 영 총장이 더 늙기 전에 그를 집무실에서 끌어내고 왕좌를 차지했고, 조금 더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지역구 이름인 ‘돔’을 ‘통합정부’로 바꿨다는 이야기, 우진 영감님의 장례식 때 있었던 얘기등을 나누었다.
『아직, 교수 데이터 소울이 돌아온 뒤로는 한 번도 박물관에 못 가봤다면서요?』
『….아무래도.』
『세상에. 어쩌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래빗 같은 사람을 만난건지.』
『다나 양은…. 후회 안 해? 그때 교수가 47구역을 떠나게 한 걸, 혼자 다 짊어지고 무리할 걸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 걸?』
찻잔이 다 식을 무렵 벡스가 어렵사리 꺼낸 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그날 이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해왔고, 항상 같은 대답을 했어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라 사랑했다. 신시아한테도, 서아한테도 그렇게 말했지만.』
『….이건 벡스 당신이라 말하는건데, 정말 후회 많이 했어요.』
중년이 되었음에도, 병색이 만연함에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다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알아요. 그 사람이 가지 않았다면 그이는 물론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다 한 줌 잿더미로 사라졌을 거라는 거. 하지만 벡스, 여자는 때론 비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는 법이랍니다?』
『그냥…. 그때 내가 욕심을 부렸다면. 모두 다 같이 끝을 맞이했을지언정, 지금껏 평생을 곱씹어온 우리 두 사람의 기억에 며칠이 더 추가되지 않았을까. 혹은, 그렇게 다 같이 끝을 맞이했다면 홀로 남아 평생 그리워할 이 기억들이 쌓이진 않았을까, 하고. 그렇게 많이도 후회했어요.』
그녀의 말에선 내가 잘 아는 분위기가 묻어났다. 마지막 순간, 평생 속에 품어왔던 부담을 내려놓는 사람의 분위기가.
『하지만, 그 후회는 제 삶의 정말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신시아는 교수를 아버지로선 존경하지 않았지만, 우상으로선 대단히 존경했어요. 위성우는 떨어지는 불덩이를 가로막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짜 기적은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친 거라고 하며, 자기도 세상에 그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말했죠. 신시아는 그렇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서아는…. 아아, 안그래도 얘기 했어야 했는데. 벡스, 서아한테 천류제의 영상을 보여줬다면 서요?』
『어, 어어, 어쩌다 보니….』
하아아.
『그 아이가 군사 훈련 받겠다는 것도 겨우 말렸더니. 이번에는 애완동물용 난방 조절기로 화생방 감지기를 울려서 탈출했어요. 결국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어, 어어… 하, 하지만, 다나 양은 지금….』
『내버려 두세요. 정말 필요할 때가 되면 신시아가 알아서 붙잡아 올 테니까.』
정말 필요할 때라는건, 아마 그녀의 건강이 위독한 순간이겠지.
『신시아도, 서아도. 저렇게 건강하고 자기 하고싶은걸 찾아다닐 정도로 잘 키웠으니, 나는 그 사람한테 진 빚은 다 갚았다고 생각해요. 생색 같지만, 혼자서 저 망아지 같은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이제는 그때 살려줘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조금만 덜 서툴렀다면, 조금만 더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면 많은게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식인걸.』
그리고, 화면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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