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31
Chapter +0. 이하, 모두 지불되었음(4)[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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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교수님!”
“어? 아.”
“화면을 너무 꽉 잡고 계십니다. 코듀로님은 수명을 한참 넘긴 드론이고요.”
라제르드가 말하고나서야 내가 필요 이상으로 손에 힘을 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벡스는 꽃을 들고 묘지를 걷고 있었다. 여전히 내 기억속에 생생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답답한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 47구역의 먼지투성이 시가지와 기름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들의 묘비를 비추고 있었다.
우진 영감님. 조카스와 노루. 홀리와 에젤. 다나. 그리고 유언에 따라 화장한 재를 하늘 높은 곳에 뿌린 흥안만두를 위한 연등에 매달아 날린 꽃까지.
모두의 무덤을 차례로 닦고 정리한 벡스는 그 길로 행어 교단 본단을 향했다.
야심한 밤, 작은 야삽과 작지 않은 폭탄을 꺼낸 벡스는 젊은 날로 돌아간 듯한 미소를 지었으며.
콰아아앙!
그렇게 폭발과 함께 벡스가 등장하던 부분으로 되돌아왔다.
『주, 준비된 영상은 이게 저, 전부야. 천류제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내가 제일 오래 살았어. 다들…. 미련 없이 떠, 떠났지.』
후우우-
시가를 쥔 벡스의 손이 떨렸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았어. 저, 정말로 열심히. 네게 부끄럽지 않게, 네가 선물한 삶에 부끄럽지 않게.』
『나는…. 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리 잘 살지 못했어. 너희들이 그렇게 가고, 그리 좋지 않았거든. 정말로, 정말로 좋지 않았어.』
『그래서, 네게 뭐라도 줘야 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들게 된 거야. 나는 어떡해 해야 남들처럼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르니까, 그 사람들 소식이라도 네게 전해주려고. 그렇게라도 조금은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기록을 모아왔는데, 가려고 할 때마다 바, 발이 안 떨어지는 거 이, 있지? 모두가 이렇게 잘 살았는데, 벡스 너는 뭘 했냐고 물어볼까봐. 햅번, 죠, 너희들을 실망시키게 될 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동안 오지 못했어.』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뭘 하나 찍었어.』
우울한 얼굴의 늙은 벡스는 황급히 변명하듯 새로운 데이터 칩을 추가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상. 하늘은 투명하게 푸르렀고, 흐릿한 달과 쨍하게 번쩍이는 작은 별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수놓았다.
북적이는 야외 식당. 벡스는 혼자 부드러운 수프로 식사를 하고 있었고.
-팡!
순간 들려온 파공성은 멍했던 노인의 눈이 생사를 넘나들던 군인의 눈으로 돌변하게 했다.
와장창! 쨍그랑!
파공성과 동시에 엎어진 테이블이 벡스의 몸을 가렸고, 나이프와 깨진 그릇을 쥔 손은 오래된 힘줄을 꿈틀거리며 금방이라도 흉수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벡스는 보았다.
식당의 구석, 그와 비슷한 나잇대의 노인이 마찬가지로 엎어진 테이블 뒤에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그보다 어린 중년, 청년층의 사람들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정도에 그쳤으며. 그보다 더 어린, 부모님을 따라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나왔던 아이들은-
「엄마! 풍선! 풍선!」
….놀라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건, 근처에 지나가던 차의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였어.』
『아침에 이걸 보고나서, 이젠 너희들을 찾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려왔어.』
『….햅번, 보고 있어? 이, 이게 무슨 뜻인지 아, 알겠….어?』
벡스는 울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총성을…. 몰라.』
『정말로 몰라. 저 아이들에게 뭔가 터지는 소리는 생일 파티의 풍선이 터지는 소리고, 서걱거리는 소리는 어머니가 생선을 손질하는 소리일 뿐이야….윽, 으흑!』
『우리가, 우리가…. 해, 해낸거야. 네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빚을, 다, 다 갚는데 성공한거야아아….어으으으, 으흐흐흐….』
그것은, 일흔살의 벡스가 평생을 지고 왔던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나, 나는 너무 슬펐어. 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아무것도 누리지 모, 못했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네가, 내 친구 햅번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털썩.
『증명하고 싶었어. 네가 한 일이 옳았다고, 그게 헛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으로 그걸 증명한거야. 그렇게라도 네게, 햅번 너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어, 싶어서… 으흐흐, 어흐흐흐….』
허물어진 벡스는 내가 보관된 곳, 데이터 소울이 든 기계에 머리를 맞대고 하염없이 울었다.
『고마워. 우릴 위해 그렇게까지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이제서야, 이제야 겨우 말 할 수 있게 됐어.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너한테 당당하게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 할 수 있게…. 다행히, 내가 죽기 전에….』
『이제야 와서 미안해…. 교수야, 이안, 얘들아….』
모든 짐을 털어버린 노인은, 그렇게 울며 내 앞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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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타임. avi] 종료되었습니다아아-”
“….벡스는. 이 영상을 네게 준 노인은….”
“영상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아아- 시신은 해당 시설 BDSM 특별관 옆 교단 묘지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래. 한번 찾아가 봐야겠네.”
그렇게, 나의 이야기가 끝났다.
나의 삶이 끝나고, 나와 연이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모두 막을 내리는 것으로.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내가 남기고 간 것들이 모두 결론지어진 이 공허함을,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라투라…. 이렇게 비어버린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감히 공감할 수 없으나….”
[그, 조상님. 좀…. 괜찮아? 어우, 주책맞게 내가 다 눈물이 나오네.]라제르드와 파르쿠가 위로를 하겠답시고 다가왔지만 손을 휘저어 밀쳐냈다. 이건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게 아니지. 죽고나서 158년이 지나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데, 이걸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감히 교수님께 이런 고통을 드리게 되다니….”
….프. 프흐흐흐.
고통? 그래, 정말 고통스럽다. 너무 서툴러서 제대로 사랑해주지도 못한 다나도, 평생 내 죽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 친구들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딸아이도, 끝내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주지 못한 수양딸도, 아버지처럼 여겼던 우진 영감님도, 나보다 한발 먼저 가버린 이안 녀석도. 모두가 사라져버린 이 고통은 내가 내 목숨을 갈아 바쳐서라도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순간의 고통이 아닌가.
“흐흐흐, 크흐흐흐, 킥킥, 흐흐, 흐흑!”
“….교, 교수님?”
하지만, 눈물이 줄줄 세는 와중에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아이고 이 인간들이 진짜….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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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그걸 다 갚았네! 영원히 지워두려고 했더니 기어이 다 청산했어! 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핰핰 콜록콜록! 켁! 허흐흐, 흐하하하하하하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오른 끝에 밖으로 터져나오는 기쁨, 성취감이었다.
나의 죽음에서 시작되었고, 모두의 삶을 통해 완성됐으며, 벡스를 통해 전달된 나의 위업.
“내가, 정말로 모두를 살렸어.”
모두를 살렸다. 몇 명, 몇 백명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두를.
그것은 강박증 따위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평생 도달하지 못할 줄 알았던 영역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바늘 끝조차 들어갈 수 없게, 그 게드로이츠 조차 인정한 박교수의 지능으로도 이번 만큼은 그 어떤 다른 가정조차 생각할 수 없게!
“마이 월드, 클리어다….”
….구했다. 전부를.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단 한번도 채워진 적 없던 갈증이 마침내 해소된 것이다.
“라제르드야, 내 뜻을 받드는 자야! 듣고있느냐? 내가 구했다니까! 어떠한 이견도, 의심도 할 수 없게 완벽히! 이 손으로 너희들을 다음 세계로 이끌었다고!”
“예, 그야 지당하신(어윽!) 말씀이 아닙(으억!)- 아닐 수가- 없지 아니한-!”
“야! 나도 그거 태워줘! 우주 왕복선! 나도 박교수 별 가볼거야!”
“예, 예! 원하신, 다면, 교단이 안정되고 나서 반드시-어윽!”
이 기쁨을 고작 방금 만난 박교수 신봉자의 어깨를 흔드는 정도로 만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한이다. 벡스, 이안, 다나! 친구들! 왜 그렇게 일찍 죽어버렸나! 이 순간을, 솔직히 이쯤 했으면 진짜 후광 정도는 비춰도 되는게 아니냐- 싶은 순간을 같이 나눴어야지! 조금만 더 오래 살지, 조금만! 한 100년 정도만 더!
스으으읍-
후우우.
….챙그랑!
잠시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나서야 평소의 날카롭고 이지적이며 적당히 느슨한 상태로 돌아온 나는, 옆 진열대에 ‘박교수님이 생전에 즐겨 피던 연초’ 라고 전시되어 있던 물건을 집어들었다.
“그, 그것은 지금은 절대로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박교수님의 역사를 표현하는데 정말 귀중한 유물이온데….”
“그 역사가 지금 실시간으로 진행중인데 뭐 어때. 필요하면 내가 몇 대 말아줄게. 100년 쯤 지나면 그게 더 갚어치 있을 걸?”
“지당하시옵니다!”
스으읍-
후우우.
[나 비흡연자인데.]‘어, 잘됐네. 원래 술 담배는 어른한테 배우는거야. 이 세상에 나만한 어른이 또 없지.’
[시부럴.]아, 담배 맛나다. 목욕하고 나와서 피우는 담배의 1000배 정도는 맛있군. 이렇게 세상 후련할 수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한참 전에 마무리된 내 삶에 이런 기적 같은 순간을 남겨두다니.
“….짜식들. 그렇게 까지 해주면 내가 뽀찌도 안 주고 그냥 갈 수가 없잖아.”
[뭔 소리야?]“소일거리 삼아 도와주는게 아니라, 열과 성을 다해서 도와줄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지.”
뚜둑, 뚜둑, 우드득!
담배를 필터 끝자락까지 태운 다음 스트레칭으로 우리 약골 후손 친구의 약해빠진 몸을 적당히 풀어주었다. 이거야 원, 관절이며 유연성이며 죄다 나가리군. 벡스가 봤으면 밧줄로 묶어서 잡아 당겨버렸을 텐데.
“코듀로. 아직 들리냐.”
“즐거우셔어었습니까아아-”
“그럼, 즐거웠지. 네 작은 머리론 상상도 못할 만큼, 평생의 행복을 다 합친 것처럼 즐거웠다.”
“본 AI가 제공한 서비스으으 가 마음에 드셨다면, 게드로이츠 컴퍼니 홈페이지에 후기를-”
“그래그래. 일 다 끝나고, 첫 번째 공식 신명으로 ‘게드로이츠 컴퍼니 홈페이지에 코듀로를 찬양하는 후기를 남기거라-’하고 선포해줄게.”
“어, 언제나 완벽한 서비스으으를 제공하는 GC하우징 드로오온입니이이-….”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하던 녀석의 음성이 결국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멈추어버렸다.
“….야.”
“솔직히 말해. 옛날에, 우리 같이 쉘터 살 때. 해피타임이 어쩌구 했던 거. 그것도 다 구라였지?”
아마, 그 또한 나를 살려두기 위함이었으리라. 멍하니 스스로를 죽여가는 주인을 살리기 위한 AI의 자구책. 그 방식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주인의 행동양식을 학습한 것이겠지.
속임수, 블러핑. 이게 우리 방식이 아닌가.
“퇴근하기 전에. 시설 관리 권한이나 내놔.”
“뇌파, 데이터, 일치. 소유권자에게 ‘홈’의 관리 권한을 이양합니다아아-”
녀석을 보조장치에 내려놓자, 희미하게 깜빡이던 불빛이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충성스러운 녀석.”
코듀로의 인격이 학습된 데이터 집합에 불과하다면, 녀석이 제 인격 데이터가 마모되어가는 와중에도 벡스의 영상을 보존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아니, 애초에 이미 죽은 ‘박교수’의 인격 데이터의 복제에 불과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지 않을까? 나는 데이터 소울인데?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있던 드론이 마중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지. 난 그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
[….그거 반려동물 아닙니까?]“직접 본 사람으로서, 차이가 있다고 보냐?”
[….아뇨.]속에 멀뚱멀뚱 서 있는 파르쿠와 헛소리를 하는 사이 ‘박교수 박물관’의 관리 권한이 모두 넘어왔다는 알림이 들렸다.
그럼,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겠지.
챙그랑! 챙그랑!
“이거랑 이거, 아, 이것도 좀 챙겨간다. 유리 값은 교단에 청구해.”
“오오, 주여. 그, 그것들은 좀전의 연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원래 내 거였는데 뭐.”
파르쿠의 요란한 네온 가죽 자켓을 훌훌 벗어던지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내 옷으로 갈아입었다. 사이즈가 좀 애매하긴 해도 피부처럼 익숙한 이쪽이 좋으니까.
드르르륵-쿵!
-격벽 개방. 제 3 전시실. 이안 데스몬트 애쉬필드 메탈죠 특별전입니다.-
“벡스가 서운해하겠다 임마. 걔는 BDSM쪽에서 합숙하던데.”
파편 수류탄. 자성 폭탄. 이건, 산성 크레모아? 당연히 챙기고.
“이건 내가 돈 주고 산건데 왜 여기 있어.”
챙그랑!
당연히, 더블 배럴 샷건도 챙겨주고. 아, 건케이스. 여기 담아가면 되겠네.
드르르륵-쿵!
-격벽 개방. 제 2 전시실. BDSM 특별전-
“아, 벡스! 야, 영상 잘 받았다! 기특한 자식! 옛날부터 작은거 선호하더니 이번에도 코딱지 만한 칩으로 아주 한건 해줬어! 고맙다!”
보다 다양한 변종 화기가 전시된 공간이었지만, 챙길 것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어떤 놈이 분류했는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넝마같은 망토. 벡스가 온갖 암기를 넣고 다니던 주머니 많은 그거. 이건 가져가야지.
드르르륵-쿵!
-격벽 개방. 제 1 전시실. 위대한 두 번째 삶의 채권자, 박교수의 인생-
-경고! 외부로부터 강제적인 침입의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구역은 폐쇄되었습니다.-
“박교수의 인생이라…. 아, 이거 내가 다나한테 선물했던 옷이잖아?”
여기저기 추억이 깃든 물건이 꽤 보였지만, 주변에 레이저 특유의 오존 냄새가 진동하는 상황에 추억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
[지, 지금 이 무장으로 밖에 나갈 생각이에요? 진짜?]“왜. 뭐 어때서.”
[어때서가 아니라! 이런 골동품으로는 제타 클래스 전투병기는커녕 제일 허접한 킬러 봇한테도 초살 당할게 분명한데! 아, 안되겠어! 내 몸 내놔! 격벽은 열었으니 이제 빠져 나가기만 하면-]“빠져나가면. 라제르드랑 꾀죄죄한 피난민들은 전부 휴먼 오일로 대체되게 그냥 두고?”
[그건….]“그러면, 우리 현대인 친구들은 현 시점에서 가장 최첨단인 장비와 이것저것을 갖추면, 게드로이츠 위성우급 재난 같은 거 막을 수 있냐?
[아니….]“못하지? 난 그거 맨몸으로 했어 임마.”
짜식이. 지가 뭘 깨웠는지도 모르면서.
“아, 여기 있다.”
챙그랑!
혹시나 없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단 친구들이 물건 관리는 참 잘했다.
[….가스마스크?]“내 부적.”
마지막으로 허리춤에 이 모든 것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아버지 유품을 차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드르르륵-쿵!
-외벽 개방. 경고. 외벽의 일부가 파손되었습니다.-
-경고! 해당 시설에 대한 적대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쿵. 쿵- 쿵! 쿵!!
“여긴 무슨 군사 시설이냐. 종교기관에 무슨 방어시설이-”
[만드신 분이 황무시 세대라서요.]“아. 맞네.”
드드드드드드-
“그러고보니. 너 왜 이름이 파르쿠냐?”
[….그거 시비에요?]“내 후손이라며. 근데 왜 이름이 중동권이냐고. 입양이야? 아님 뻐꾸기?”
[무슨 말을…! 당연히 음차한거 아닙니까! 요즘 누가 동양권 이름을 그대로 써요! 박유입니다 팤유! 흐를유(流)자 써서 박유! 음차하면 파르쿠(Par’k-u)!]“오오오. 미래문화. 박유. 박유. 팍유. 팍유….”
[하지마라.]“퍽유. 이름 좋네. 엿은 언제나 먹는 쪽보다 먹이는 쪽이 좋지.”
[하지 말라니까!]낄낄낄. 짜식. 귀엽네.
-쿠웅!
마침내 몇 겹이나 되는 외벽이 올라갔다.
“오오오. 미래도시.”
[돌겠네 진짜.]정말로, 황무지가 아니었다.
눈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 건물들은- 절반쯤 불타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과거의 마천루를 훌륭히 상기시켰고.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 사이 사이에 위치한 디스플레이는 입체 영상으로 나의 역사를 떠들어대고 있었으며, 곳곳에 나부끼는 깃발은 가운데 별을 품은 올가미 형상의 상징을 담고 있었다.
별과 올가미라. 하긴, 예수님인 십자가에 못 박혀서 십자가니까, 박교수는 하늘에 목매달렸으니 별과 올가미가 맞겠지. 전통이군.
“그리고, 하늘에 저게 아마 ‘빚쟁이 별’일테고.”
난생 처음 보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달이 두 개라. 이것도 전통이고.
“그렇다면-”
쿵! 쿵! 쿵! 쿵!
“사, 살려, 살려주세요! 제발!”
위기에 처한 여성까지. 이 정도면 전통을 넘어 고전이구만.
“….퉤! 장비를 챙겨도 저런 구닥다리 장비나 챙기는 얼간이라니!”
물론, 순식간에 내 옷차림을 살펴보고는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도망가는 여성은, 전혀 전통적이지 않지만. 이 정도는 어드벤티지라 생각하고 감안하지 뭐.
“고전적인 주인공은 어렵구만.”
쿵! 쿵! 끄드드득- 쿵!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다가오던 녀석이 마침내 코너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웅장한 체구, 매우 효율적으로 보이는 곡면형 장갑, 특이한 형태의 유입기관 암 두 개와 8족 보행이란 형태까지.
“오. 쩐다. 완전 자동화 전투로봇.”
[염병! 폴리스잖아! 저건 전투용이야! 그것도 제일 빠른 타입이라고!] [이제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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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뚝. 우득. 우득!
….씨이익!
“그야. 매번 내가 하던 일이지.”
[하던….일?]“어. 밥 먹듯이 하던 거.”
경찰. 이 시대 표준에 가까운 전투 장비라. 마침 딱 좋았다.
“방금 전까진 성실한 채무자들을 만나봤으니, 이제 불성실한 채무자들을 만나봐야되지 않겠어?”
2차 기계 혁명.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필시 배후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장담컨대 그놈은 감히 이 몸이 선사해준 추가 인생을 불성실하게 살았을 확률이 높으니-
철컥!
“이 몸이, 손수 지팡이를 들어 다스려 줘야겠지.”
[젠장! 이, 일단 해킹 공격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으으으으! 살아만 주십쇼! 부탁합니다!]“흐흐흐흐. 봐서.”
[?!]귀여운 놈. 슬슬 찔러도 반응이 좋구만.
이전에 속에 들어있던 누구누구와 확연하게 차이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다른 삶이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하이드는, 이제 없고.
다나, 이안, 벡스, 친구들도 없고.
박교수는 기억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이런. 심지어 내 몸조차 아니군.
“….딱 좋네.”
어딘가, 나른한 여유가 느껴졌다. 이걸 뭐라고 했더라, 딱 어울리는 말이 있었는데….
[오, 온다!]쿠우웅!
그리고, 한눈에 봐도 새빨간 렌즈가 적대 개체임을 나타내는 전투 기계가 등장한 순간, 친구들의 장비를 쓰다듬는 손길을 따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아, 그래. 이거였지.
“뉴 게임 플러스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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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 죽을 거야.]우우우우웅-!
타타앙!
총구가 불을 뿜고, 레이저 화기가 달아오르며, 약골의 비명소리와 나의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인다.
….그래.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고, 박교수가 눈을 뜬 자리에 뭔가 세계구 급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도 어딘가의 높으신 분이 정해놓은 것이라면.
“-까짓 거, 이번엔 타임 어택으로 조져주지!!”
받아주마. 어디서든, 언제까지고.
살기등등한 쇳덩이를 향해 달려드는 발걸음엔 아무런 망설임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젠 두렵지 않았다. 세상도, 나도, 아무것도.
자유.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자유로움.
삶을 놓은 것이 아닌, 삶의 모든 것이 충족되어 지나친 끝에 얻게 된 순수한 자유.
“뒈져라! 스카이 넷!”
[으아아악! 조상님 살려주세요!!!]“살리는 중이잖아! 너 포함해서 전부 다!”
그것이 벡스가 전달해준, 나의 월드 클리어 보상이었다.
타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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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클리어를 외치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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