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5
Chapter.5 인사이드 아웃(2)
***
교수는 물속을 부유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게임 쪽은 일단 잘 정리됐다. 붉은 뮤트로서의 명성이 토브룬에 퍼졌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공포를 심어줬어.’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내 시드는 뭐랄까, 굉장히 독특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단 대규모 습격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다. 원인은 당연히 에데오르나의 패배로 인한 여왕 쪽 자원수급 부족. 일단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다. 전략 게임으로 치면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상대 일꾼을 3마리 잡고 시작하는 격. 덕분에 뮤트의 진격속도가 많이 늦어질······. 뻔했다.
하지만 결과는 펠라스, 몰루딕 캐슬, 투란 3개 최전방 도시의 함락. 심지어 다른 일반적인 플레어들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시가 함락당했다. 원인과 결과가 매치가 안된다면, 뭔가 내가 놓친게 있다는 뜻이다.
‘뮤트는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종족. 그리고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생물이든 똑같지. 스트레스, 압박이 대상의 진화를 촉진시킨다. 이 경우에는, 부족한 자원이 이런 방면의 진화를 이끌어냈을까?’
내가 지금 플레이하는 월드는 여러모로 일반적인 플레이와 다른 점이 많았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뮤트쪽의 네임드와 특수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수정예 플레이.
자원도, 생산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투자한 자원의 몇 배 이상의 효율을 보여주는 특수개체들. 여왕은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고작 페일페이스 몇 마리를 이용한 땅굴 작전으로 투란을 함락시켰고, 인섬니아 크랩을 사용해 6위계 마법사라는 엄청나게 가치있는 표적을 조종하고 있었다. 이런 고급 유닛을 뽑느라 물량을 늘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확실히 투자한 만큼의 이득은 보고있는 상황.
구원 교단의 존재도 생각해볼만 하다. 뮤트를 숭배하는 집단이라니, 물론 이 정신 나간 게임이라면 저런 종교가 자연 발생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규모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켜졌다는 것은 확실히 의심할 만 하다.
쿵! 쿵!
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튼,
‘사이비 종교가 세력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기적, 또는 신앙의 대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인데…. 이놈들은 뮤트를 믿는단 말이지?’
문제는 그 증거. 아무리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라도 어디 암시장에서 사 온 8급 뮤트를 보고 기적이라고 하진 않을 것이고. 확실하게 뮤트가 아군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만한 쇼가 있었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쪽은 정말로 흑마법사나 뮤트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은 흑마법사가 뮤트 여왕을 통제할 수 있을 시기니까. 흑마법사중에는 교활한 녀석들도 많으니 그녀석들이 일을 꾸미고 있다고 보는게 좋겠지.
그리고 마지막 하나. 지금 뮤트의 모든 공격은 로드릭에 집중되어있다. 북부 영구동토의 거의 모든 지역이 뮤트의 영역인 만큼 그 영역에 국경이 인접한 국가가 상당히 많은데, 유독 로드릭에만 모든 전력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로드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번 사태를 관망하고 있지. 전 인류의 위기가 아닌, 그저 옆 나라에 생긴 자연재해처럼 여기면서 오히려 좋아하고 있게 된거야. 로드릭의 힘이 약해지면 인접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볼 구멍이 많아지니까. 지원군이라도 요청하면 온갖 이권을 요구하면서 개입하려고 들겠지.’
전략적이고, 정치적이며, 심지어 종교적인 형태를 띤 공격이라니. 이건 절대 내가 알고 있는 124년도의 멍청한 뮤트가 아니다. 심지어 자원을 쥐어짜고 있는 여왕은 평균적인 시드보다 성장이 더뎌서 지능이 아직 한참 덜 자랐을 터.
뭔가 있다. 뭔가, 흑마법사 쪽이든 뮤트쪽이든 지금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놈이 있어. 그것도 아주 더러운 수작에 통달한 놈이.
일단 적측에 사령탑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다음부터는 그쪽에 대항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긴 했다. 토브룬에서 붉은 뮤트로 움직이며 공포감을 조성한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다.
뮤트 한 마리가 단신으로 도시에 침입해, 6위계 마법사를 살해하고 탑을 무너트린 다음 도주했다는 이야기는 호사가들에게 좋은 술안줏거리가 될 테니까.
6위계 마법사와 마탑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는 사람들에게 뮤트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게 될 것이며, 그만큼 뮤트라는 존재를 경계하게 만들 것이다.
‘벌써부터 이렇게 복잡하게 굴면 피곤한데······. 진짜 어디서부터 꼬여서 이런 시드가 된 거지? 에데오르나를 패면 안 되는 거였나?’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남들처럼 흑마법사를 패고 다닌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망한 월드가 되어버리다니-
쿵, 쿵, 쿵, 쿵!
‘그런데 아까부터 이 소리는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자신의 조용한 평화를 방해하는 소리에 짜증이 난 교수가 눈을 뜨자, 물이 꽉 차서 물빛 관처럼 되어버린 샤워부스를 향해 힘껏 돌진하는 코듀로의 드론이 보였다.
벌컥-
촤아아악!
“푸하아! 어우 숨차.”
교수가 문을 열고 쏟아지는 물 사이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오자, 코듀로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주, 주인님? 괜찮아요?”
“괜찮고 나발이고 너는 또 뭐가 문제냐? 좀 천천히 쉬면서 생각이나 정리하려고 했더니.”
“그치만 저는 주인님이 또 자살시도라도 하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자살시도? 무슨 헛소리야?”
“그렇잖아요!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잠수를 7분이 넘게 하냐구요!”
뭐?
코듀로의 말에 교수도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그 정도로 오래 있었다고? 저 안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래도 정리해야 할 문제는 게임 속에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
교수는 몸을 닦고 옷을 입은 다음, 거실로 돌아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7분. 따지고 보면 탈 인간적인 수준은 아니다. 잠수는 신체적인 부분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하니까. 물속에서 호흡이 흐트러지면서 불안해지면 심장이 빨리 뛰어서 잠수시간이 짧아진다고 하지. 심리적인 부분이 영향을 미친 거라고 하자고.’
하지만 심리적인, 정신적인 부분이 게임 속의 그것을 따라왔다면, 한가지 불안한 게 있었다.
교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속으로 놈을 불러보았다.
‘어이, 기생충.“
.
.
.
‘기생충! 감염인자! 어이! 멍청이!’
…. 아무 반응이 없지만, 교수는 그럴수록 더 불안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의 머리 안에 그것이 있다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머릿속에 묘하게 테두리가 쳐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달까.
‘….하이드?’
[드디어 이름으로 불러주는구나, 껍데기?]“제기랄.”
역시.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놈도 따라붙다니.
교수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만들어졌다곤 해도 게드로이츠의 게임은 결국 데이터와 프로그램의 나열일 뿐이다. 그런 게임이, 이렇게 직접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껍데기, 우리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어?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너는 학습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너한테 안 물어봤다.’
[하도 답답하게 구니까 그렇지. 저번에도 말했잖아. 진짜, 가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애초에 나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감염인자에서 촉발된, 일종의 의식이란 말이지? 네가 게임을 끄고 나왔다고 해서 게임 속에서 겪은 감정이나 기억이 뿅 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이게…. 그런 거야?’
[그런 거지.]기생충의 능글능글한 말투에, 교수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나저나 여긴 참 신기한데? 껍데기, 네 머릿속 지식으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야.]왼손 손가락 세 개가, 교수를 보채듯 그의 바짓가랑이를 긁었다.
[총! 나 총 한번 쏴보고 싶어! 총 쏴보자 총!]교수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왼손을 억지로 떼어낸 다음,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코듀로.”
“네?”
“나 우진 영감님네 좀 다녀와야겠다.”
교수는, 이 ‘정신병’을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
우진.
이 노망난 늙은이로 말할 것 같으면, 43구역에 사는 의사 되시겠다.
황무지의 거친 삶을 살다 보면 전투는 일상이며 상처는 없는 날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문제는, 쓸만한 항생제 하나 없이 녹슨 쇠붙이 같은 것에 긁히기라도 하면 그날로 유서와 한 발짜리 권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황무지의 야매의사 우진이 43구역에서 운영하는 [우진 비뇨기과]는 40번대 구역 만남의 광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근방의 생존자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곳이다.
이틀 동안 황무지의 거친 모래바람을 해치며 도착한 [우진 비뇨기과]는, 건물 앞에 수많은 차량이 질서정연하게 주차된 것이 오늘도 북적거리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황무지의 거친 생존자들이 이곳에서 질서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다.
위잉-
위이잉-
이곳, 주차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십 대의 구시대 급 자동포탑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시대 급 전투 AI가 포함된 이 자동포탑은, 거의 모든 종류의 공격적인 행동에 반응하게 되어있었다.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언성이라도 높이게 되는 순간,
위이잉- 철컥! 드르륵!
병원 내부에도 다섯 걸음 단위로 설치된 자동포탑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싶으면 의사에게 목숨을 맡기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우진영감의 진료 철학에서 비롯한 구조가 되시겠다.
‘돈 하나는 오질라게 많은 영감님이지.’
뭐, 이런 이유도 있지만. 황무지에 몇 명 남지 않은 의사가 죽으면 곤란한 것은 자기들이니까. 이런저런 이유가 모여 우진 영감의 병원은 일종의 치외법권 취급이 되는 곳이었다.
벌컥-
“으아아아아아아악!!!!”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단말마의 비명.
“으으으으,”
“크으으, 아으으윽,”
길게 늘어선 줄에서 억지로 신음을 참고있는 부상자들. 놀랍게도 이 병원에서는 부상에 의한 신음도 ‘공격적인 행동’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신음소리조차 꾸욱 참아야 한다.
‘오늘 저녁쯤에는 진료받을 수 있으려나.’
교수는 줄의 가장 끝자리에 메고 온 배낭을 내려놓은 다음, 벽에 기대고 앉아 눈을 붙였다. 이렇게 가방으로 줄을 세워두면 새치기를 당할 염려도 없었다. 새치기 또한 환자들 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공격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니까. 움직일 차례가 오면 누군가 깨워줄 것이다.
습격이 없었다고는 했지만, 이틀 동안 황무지를 횡단하는 것은 대단히 피곤한 일이었다. 비록 이곳은 시끄럽고 피 냄새와 알코올 냄새에 쩔어있는 곳이지만, 적어도 이 근방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휴식하기 좋은 장소라는 뜻이지.’
교수는 금세 몰려드는 졸음을 느끼며, 천천히 잠이 들었다.
***
[껍데기]…….
[껍데기! 일어나봐! 이봐!]‘으음…. 뭐야. 이번에는 또 뭔데?’
[눈을 감고 있어서 안 보이는데, 누가 몸에 손을 댔다!]‘뭐, 뭐라고? 여기서?’
[그래! 감으로는 손가락 같은 거로 쿡쿡 찔러본 것 같은데, 빨리 일어나보라고!]교수는 기생충의 말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과연 녀석이 말한 대로, 교수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인영이 있었다.
“아.”
“오.”
“와우.”
커다란 몸에 더 커다란 철가방을 맨 근육질의 수염투성이 남자와, 늙수그레한 얼굴의 키가 작은 남자.
병원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자는 교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이안과 벡스는, 교수가 눈을 뜨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이, 브라더. 그렇게 내가 오라고 보챌 때는 오지 않더니, 제 발로 오셨네? 밀당이야?”
“햅번! 간만이다 브라더!”
“뭐, 뭐야.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야?”
잠이 덜 깬 교수가 당황해서 묻자, 이안은 호탕하게 웃으며 교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어쩐 일? 와하하하하!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소리지! 43구역에 사는 건 우리고, 47구역에 사는 건 너니까! 병원에 올 일이-”
위이잉- 철컥!
자동 포탑이 조준하는 소리와 함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우렁하던 이안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대갓집 규수처럼 얌전해졌다.
“…병원에 올 일이 치료받으러 오는 것 말고는 뭐가 있겠어.”
“다쳤어. 장사하다가 조금. 이 멍청이가 무턱대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바람에 나까지.”
“그건 네놈이 미숙해서 그런 거라니까. 우사스 정도면 적들이 반응하기 전에 이미 다 죽였어야 했다고.”
교수의 옆에 앉아 조곤조곤하게 투닥거리던 둘은, 교수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아무튼, 43구역에 잘 왔다, 브라더.”
교수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며 주먹을 마주 댔다.
“오냐, 나도 만나서 반갑다 멍청이들아.”
[야! 나도 반갑다! 나도 이 녀석들 한번 보고 싶었다고!]교수가 아무 생각 없이 왼손을 뻗어 주먹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왼손 손가락 세 개가 마구 버둥거리며 벡스와 이안의 주먹을 두드렸다.
“어…. 햅번? 이건 무슨 뜻이야?”
“너 손에 문제 있어서 왔냐? 막 벌벌 떠는데?”
“아, 그게….”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 둘에게는 말해도 되겠지.
“나 정신병 생긴 것 같다.”
“뭐, 뭐라고?!”
위이잉- 철컥!
터업!
다시 한 번 이쪽으로 돌아서는 포탑에, 두 사람은 입을 틀어막은 채 경악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