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6
Chapter.5 인사이드 아웃(3)
***
스슥-
두 사람은, 교수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너 미쳤다고?”
“ I ! 말 좀 가려서 좀!”
“뭐. 맞잖아. 정신병 걸리면 그게 미친놈이지. 내 말이 틀려?”
교수는 이안의 말에 쓰게 웃었다. 사실 저게 맞는 말이거든. 자꾸 머릿속에서 누가 말을 걸고, 심지어 그놈의 인격이 가끔 튀어나와서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면 그게 다중인격장애가 아니면 뭐겠냐고.
커뮤니티의 어떤 글에서 말했다. 황무지를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미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부디 ‘잘’ 미치기를 희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주권을 차지하려고 애를쓰는 인격이 있는 다중인격장애가 그 ‘잘’의 범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때 그 음성기호, 아직도 쓰고 있네?”
“음? 아아, 그거? 너도 알다시피 45구역 사건으로 우리 이름이 밖에 좀 알려졌잖아.”
“햅번이랑 나랑 I까지, 나름 유명해졌더라고. 장사하는데 도움이 돼서 외부에서는 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
“우리 그 이름으로 현상금 붙지 않았냐?”
“안 그래도 이 이름 쓰기 시작한 뒤로 찾아온 뜨내기들 덕분에 돈 좀 벌었다. 원래 실력도 없는 놈들이 총은 화려한 놈으로 들고 다니는 법이거든.”
“43은 워낙 분쟁이 많은 지역이니까. 렙터도 여기까지는 잘 안 와. 워낙 여기저기 적을 많이 만들어둔 녀석들이라 43구역에 뚫고 들어오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씩은 전투를 치러야 할걸?”
으음······. 명성이 생겼다고? 장사에 도움이 될 만큼?
해봤자 세 명인데 무슨 대단한 유명세를 날리겠나, 하면서 교수가 고개를 돌리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세 사람을 가리키며 수군거리는 게 보였다.
“어이, 저거…. 분명 V랑 I 맞지?”
“덩치 큰 철가방에 늙은이······. 확실해. 향신료상 놈들이야.”
“그리고 앞에 있는 놈, 분명히 햅번이라고 불렀어.”
“놈들이다. 45구역의 패자, HIV야!”
“촌구석 병원에 거물이 납시셨군······.”
“얽히지 말자고. 셋이서 수백 명에 가까운 스캐빈저와 돔, 렙터를 도살해버린 미친놈들이야.”
웅성웅성,
술렁술렁!
어째,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황무지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표적이 되기도 쉽지만 그만큼 거래를 하거나 사람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니까. 어중이떠중이를 걸러주는 효과도 있고, 좋다. 다 좋은데······.
“왜 저따위로 부르는 건데!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에이즈 병원체)라니, 기분 나빠!”
“왜? 난 괜찮은 것 같다만? 한번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 캬~ 살벌해 보이지 않냐?”
“햅번, 커뮤니티에서 우리 암호명을 조합해서 부르기 시작한 거야. 우리라고 딱히 막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팀 HIV라니, 내가 최초로 얻은 황무지 명이 성병이라니!
교수가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리자, 낄낄거리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 하다가, 어떤 식으로 미쳤다는 거냐?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으음. 어째 말을 빙빙 돌리는 분위기가 나더니. 역시 물어보는 건가.
“그게…. 게임을 하다가 좀 문제가 생겼는데······.”
“아,”
“아아.”
교수의 입에서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자, 갑자기 벡스와 이안이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뭐야, 이 자식들 왜 이래?
“게임이라······. 그때 ‘그거’ 말이지······.”
“해,햅번! 괜찮아!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니까…. 나는 열심히만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엥? 뭐야, 니들 내 플레이를 봤구나? 어때? 좀 볼만했냐?”
추우욱-
교수가 반가운 마음에 말하자 이안과 벡스는 한층 더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심사숙고해서 말을 고르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뭐야? 왜 더 숙연해져? 진짜 봤나 본데? 반응이 왜 이러지?’
“어…..음….”
“대단히 전위적이었지······. 크흠!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정신이 나갈 정도면 그만두는 걸 추천한다, 나는.”
이 녀석들,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걸 보니 재미없는 장면을 봤나보군.
뭔가 허둥거리며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교수는 증상에 대해서 마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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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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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게임 속에서 변종 바이러스 같은 거에 감염됐는데, 그 바이러스에 생긴 인격이 게임 속에서 네 뇌를 막 주무르더니 현실에까지 튀어나왔다고?”
“어. 제대로 알아들었네.”
교수의 말에 지금까지 히죽거리며 대화를 하던 이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거, 진짜 본격적으로 미쳤는데?”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마라. 진짜 미친놈 같잖아.”
“멘탈 이슈가 있고, 사내새끼니까 미친놈 맞잖아. 다중인격이면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신기하긴 하네.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떤 놈이냐?”
“그 친구라니?”
내 물음에 이안은 내 머리를 두툼한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네 녀석 골통 안에 있는 친구지! 치료 안 되면 평생 달고 살아야 할 텐데, 우리도 어떤 놈인지 잘 알아둬야 하지 않겠어? 어느 날 반갑게 맞이한 친구가 막 식인종처럼 날뛰는데 잘 모르고 곱게 가라고 도와준답시고 쏴버리면 안 되잖아?”
살벌하지만, 황무지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얘기다. 어제 웃고 떠들던 친구가 오늘 광인이 되어 덤벼들 수 있는 세상이니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면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곱게 ‘보내’ 주는 것이 지인 된 도리인 것이다.
‘저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암.’
교수는 머릿속으로 그가 겪은 기생충, 하이드에 대해 떠올렸다.
“어디보자…. 일단 좀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 처음 봤을 때는 초등학생처럼 보였다가, 지금은 쑥쑥 성장하더니 중학생쯤 된 것 같은 말투를 사용하고. 하는 말을 보면 중2병도 좀 있는 것 같고. 처음에는 굉장히 나한테 적대적이었는데, 지금 보면 꽤 협조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어. 물론 내 몸을 차지하려는 욕망을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왼손 검지, 중지, 약지는 완전히 녀석의 통제하에 있는데, 가끔 뭔가 요구할 것이 있으면 그걸로 몸을 막 긁어대기도 하고. 아, 이름은 하이드야. 잠깐 기절했다가 깨니까 자기 이름이 하이드래. 또······. 뭐가 있었더라······.”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고, 너와 그 인간 여자의 목숨을 한번 구해줬고, 자유를 사랑하고, 호기심이 많고, 아참! 나는 생선보다 고기가 훨씬 좋아! 어저께 집에서 네가 고기를 씹을 때의 그 감각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껍데기! 그거 자주 먹자! 기왕이면 굽지 말고 생으로! 뮤트는 원래 산 채로 먹는다고!]“아익, 좀 조용히 좀 하고 있어 봐! 고기가 그렇게 흔한 건 줄 아나. 안 그래도 황무지 지나면서 말라 비틀어진 스캐빈저 시체 같은 거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던데, 한 번만 더 그런 성향을 내 머릿속에서 드러내기만 해봐. 식인 같은 걸 시도라도 하는 순간 바로 내 머리에다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버릴 거니까.”
[아, 눈치챘구나? 좀 봐줘라. 아무리 내가 어머니랑 소원해진 관계라고는 해도 일단 뮤트로 태어났으니까. 인간의 고기를 탐내는 건 본능이라고 본능. 인간은 식사대비 유전자 효율이 가장 높은 종족 중 하나니까.]“저어, 햅번?”
“아오, 이 새끼를 진짜…. 응? 벡스, 왜?”
“저기······.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던 내가 고개를 들자, 주변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옆에 있던 녀석은 아예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어기 맨 뒤쪽 줄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닌가?
“뭐야? 다들 왜 저래?”
“왜긴. 너 방금 순도 100% 미친놈처럼 보였다고. 뭐, 스캐빈저 시체를 보고 침을 흘렸다고 하질 않나, 자기 인격을 막 이름 붙여서 부르질 않나,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하질 않나······. 여기가 우진 영감 내 병원이 아니었으면 전부 다 일단 쏘고 봤을 거다.”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메고 있던 철가방에서 멋들어진 리볼버 한 정을 챙겨 교수의 품에 넣어주었다.
“받아라.”
“뭔데 이건?”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튼튼한 놈이야. 힘이 빠지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으로도 쉽게 조준할 수 있지. 탄약은 묵직한 놈으로 넣어놨으니 고통 없이 갈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급하면 이걸로 직접 땡기라고?”
“그래. 아무리 나라도 친우를 내 손으로 죽이는 건 힘든 일이라고. 나까지 우울증 걸려서 따라갈 수는 없잖아. 당장 쓰라는 게 아니라, 필요해지면 쓰라고.”
뭐 이 쓰레기가.
“나 안 미쳤어!”
“아, 햅번. 방금 그 대사 완전 미친 사람 같았어.”
[야 껍데기, 너 친구들 엄청 재밌다!]밖에서는 벡스와 이안이, 안에서는 기생충이 속을 긁어대는데 아주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다. 진짜 터렛만 아니었으면 기왕 미친놈 취급 당한 김에 미친 척하고 달려들었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떠들고 있으니 혼자 있을 때보다 시간은 잘 갔다. 그렇게 황무지 얘기도 하고, 녀석들 장사하는 얘기도 듣고 내 게임 플레이에 대해 장황한 해명을 하는 사이 어느덧 창밖으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다음! 햅번! I, V! 빨리 들어와!”
“아, 내 차례….아니, 우리 차례네?”
“그거 내가 아까 바꿨어. 갔다 오면서. 화장실”
“어차피 진료 받을 건데 셋이 동시에 들어가면 좀 빠르겠지.”
“….뭐, 좋을 대로 해라.”
안 봐도 뻔했다. 농담처럼 떠들었지만 내 상태가 어떤지 듣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일행이라고 하고 같이 들어가면 영감님의 진료 내용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
끼이익- 철컥!
두툼한, 한눈에 봐도 방탄 방음 성능이 뛰어나 보이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깥의 살풍경한 모습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누가 봐도 진료실처럼 보이는 방이 나타났다.
그 방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책상 앞에 앉은 노인이, 이 거대한 시설의 주인 우진영감이었다.
우진영감을 보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매드 닥터’
바싹 마른 몸에 피가 잔뜩 묻은 햐안 가운을 입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 습관적으로 크힉힉, 하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메스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가끔씩 3류 악당처럼 칼날을 핥아대는 그런 사람이다. 저번에 왔을 때 그놈의 칼날은 왜 그렇게 핥아대는지 물어봤더니 나이 먹어서 철분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이 사람도 한참 전부터 미쳐있는 게 틀림없었다. 병원에 철분제를 쌓아놓고 살면서 칼은 왜 핥는 건데 이 변태야.
하지만 이런 기행과는 달리 실력 하나는 확실한 노인이다.
“간만입니다, 우진 영감님.”
“그래, 그쪽은 또 누구….. 음? 햅번이라더니, 박교수 네놈이었어?”
“뭐, 그렇게 됐수다.”
“크힉힉, 렙터 그 멍청이들도 한물갔구먼. 이런 애송이한테 두들겨 맞기나 하고. 그럼 같이 움직였다는 다른 두 놈은 저 뒤에 있는 멍청이들이겠네?”
“간만이우, 영감.”
“간만은 무슨. 이틀 전에도 왔다 갔으면서.”
“어쩔 수 없다. 하는 일이랑 저 멍청이 때문에.”
세상 말세라는 듯 허허로운 말투로 수염을 쓰다듬는 우진영감을 보며, 교수는 익숙하게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어이, 뒤에 있는 두 놈! 거기 찬장에 응급처치 도구 있으니까 알아서 좀 기우고 감고 해봐! 할 줄 알지?”
“제기럴, 영감 의사 맞수? 비싼 돈 내고 찾아온 환자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거요?”
“어디 부러진 거 아니면 니들도 할 줄 알잖아. 돈은 당연히 약품값이지. 나 바쁘니까 알아서 하고 있어! 하다가 막히면 다시 잘 째서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고!”
“미친 늙은이 같으니….”
벡스와 이안은 투덜거리면서도 익숙한 듯 찬장에서 붕대와 소독약, 낚싯바늘처럼 생긴 수술용 바늘을 꺼내 척척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메탈죠 저 녀석이야 워낙 이 집 단골이니 알아서 잘 할 거야. 며칠 전부터 붙어 다니던 저 작은놈도 저번에 보니까 기본은 할 줄 아는 놈이고. 자, 그러면 이제 박교수씨에 대한 진료를 진행할 시간인데….. 피 냄새가 안 나는걸 보니 어디 다쳐서 온 건 아닌 것 같고. 예의 그건가?”
우진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자, 교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하다 보니 해결됐고, 오늘은 다른 문제로 왔는데.”
“엥? 진짜? 그게 해결이 됐다고? 어이, 박교수. 정신과 상담에서 거짓말을 하면 치료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거든? 진짜로 그 트라우마를 극복했단 말이야?”
“….어쩌다 보니. 대신 그 대가로 다른 정신병을 얻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교수의 말에 우진은 대단히 흥미로운 눈으로 교수를 관찰하며 말했다.
“흐음. 혹시 모르니 확인 한번 해보지. 자아, ‘엄마’ 해봐. ‘엄마’”
“….그거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좀…. 불편한데.”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으로 직접 표현하는 데는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딱 한 번만 말해 보자고. ‘엄마’ 라고.”
“에이씨….. 엄…마.”
어머니.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가슴이 아플 뿐, 예전처럼 정신이 아득해지거나 그날의 기억이 마구 떠오를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다. 전부 안고 가야 할 내 과거임을 인정했으니까.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던 우진 영감의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제법이구나, 애송이. 정말로 그 날의 기억을 극복했어. 장하구나! 이녀석아, 아주 장해! 아주 사내 대장부야! 크흐흐흐! 이 병원에서 완치된 사람이 나오다니, 참 별일이로군!”
우진 영감과는 꽤 오래된 사이다. 혼자 살다가 팔이 크게 부러져서 이곳을 처음 찾게 된 이후, 내 상태를 단숨에 알아본 우진영감에게 설득당해서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우울증 약을 타가고 있었으니까. 내 트라우마에 대해서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한참을 기꺼운 웃음을 흘리던 우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약간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분기에 한 번씩 네놈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제 끝이로군. 그래서, 오늘은 인사라도 하러 온게냐? 그동안 고마웠다고?”
“내가 미쳤습니까? 영감한테 인사나 하러 황무지를 건너오게. 아까 말했지만, 최근에 새로운 정신병이 생겨서 상담을 좀 받을까 해서 온 겁니다.”
“아, 아까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다른 정신병이 생겼다고 했지? 뭐, 괜찮아. 그래 봤자 옛날의 그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 여기 살면 정신병 한두 개 정도야 기본이니까. 그래, 증상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들어볼까?”
따뜻한 미소와 함께 푸근하게 말을 거는 우진 영감에 교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나 그 게임 하다가 ‘잠식’당한 것 같-”
쿠당탕탕!
“이 씨발새끼야! 내가 너 그 게임 하지 말라고 그랬지!!!”
순식간에 푸근한 할아버지에서 염라대왕같은 얼굴로 변한 우진이 비호처럼 책상을 넘어 교수의 멱살을 잡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안은 최대한 구석으로 파고들었으며 벡스는 벌써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맹수처럼 씩씩거리던 우진은 교수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 모조리 실토하는 게 좋을 거다.”
으르렁 거리는 우진영감의 말에 머릿속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껍데기. 나 이 영감님 무서워…]‘나도.’
병원 전체에 빼곡하게 설치된 포탑이 이 진료실에만 없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자동 포탑 따위보다 이 영감님이 100배는 더 무섭거든.’
이 좁은 진료실에서 과거 ‘의료사고 우진’, ‘의사(意死) 우진’이라고 불리던 전설적인 용병의 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죽기 싫으면 다들 알아서 기게 되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