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7
Chapter.5 인사이드 아웃(4)
***
“….하아. 빌어 처먹을 내 팔자야.”
그렇게 교수의 멱살을 잡고 노려보던 우진은,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탁 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이, 메탈죠.”
움찔!
“뭐, 뭐요! 치료 다 했으니까 건들지 마쇼! 깔끔해! 아주 깔끔하게 잘 묶었어!”
“헛소리하지 말고 담배나 한 대 줘 봐라.”
구석에서 놀란 눈을 하고 있던 이안의 얼굴이 와그작 찌푸려졌다.
“에이씨…. 영감, 댁이 나한테 얻어 피운 담배가 몇 대인 줄 아쇼? 대충 세어봐도 한 보루가 넘는데, 그거면 거래소에서 기깔나는 기관총을 쌔삥으로다가….”
“그래서, 못 주시겠다?”
“……”
휘익-
탁!
“고맙다.”
“핵폭탄은 귀신도 잡아가나 보오. 댁 같은 노친네가 안 죽고 살아있는 걸 보면.”
결국 이안은 주머니를 풀고 말았다. 사실 끝까지 안 주고 버티면 안 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대단히 높은 확률로 저 영감이 포악해진다. 이안은 맹수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친우를 위해 기꺼이 담배 한 개비 정도는 희생할 수 있는 남자였다.
까딱 까딱
“턱주가리.”
“아 또 뭐! 필터 달린 놈은 없수다!”
“그거 말고. 불 좀.”
빠직!
이안은 터져 나오는 욕설을 가까스로 집어삼키며 주머니에서 은색 지포 라이터를 꺼내 전력으로 집어 던졌다.
차악!
“고맙다.”
“씨부럴. 나가 뒈지쇼.”
찰칵- 퐁!
칙, 칙
우진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크게 한입 들이쉬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에 가득 찬 독기가 연기와 함께 풀려나오는 것처럼, 그의 얼굴이 평화가 돌아오고 있었다.
“후우우. 턱주가리, 너 화약 장사 망하면 담배나 키워라. 세상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아마 내가 그날 황무지에서 트럭 안에 자빠져있던 네놈을 주운 건 이 담배를 얻어 피우기 위함이었을게야. 음~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서 그런가, 맛이 아주 각별하구먼.”
“….퉤.”
이안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진료실 한 쪽에 마련된 타구(唾具 : 침 뱉는 항아리)에 침을 뱉자, 노인은 그 광경을 보고 또 웃겨 죽겠다는 듯 킬킬거렸다.
조금 전까지 사람 하나 죽일 듯 화를 내다가 또 갑자기 실실 웃는 우진을 보며, 교수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진짜 황무지에 의사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여기는 오지 않았을 텐데. 조울증 환자한테 정신상담을 받으러 오다니.”
“기준을 멸망 이전으로 맞추지 말아라 이놈아. 습관성 자해 및 자살기도, PTSD에 정신분열까지 앓고 있는 놈에 비하면 조울증은 명함도 못 내민다.”
우진은 그렇게 교수를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린 다음, 이안에게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두 사람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차고, 어디 숨었었는지 안 보이던 벡스가 슬그머니 돌아올 때쯤, 우진이 입을 열었다.
“‘잠식’이라….. 박교수, 너 그 게임 끊은 것 아니었냐? 거기 부모님의 복제된 데이터가 있어서 죄스러워서, 그러면서도 다시 거기로 달려가게 될까 봐 두렵다면서?”
“하아아. 그랬었죠.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고. 그런데 황무지의 삶이라는 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교수는 씁쓸한 듯, 아련한 듯 애매한 얼굴로 지난 12일간의 대장정을 풀어나갔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발전기가 고장 나고, 컨셉플레이를 시작하게 된 일, 노툼을 만나고, 투란에 들어가 징집병으로 살아남아 샬롯과 에데오르나를 만난 일, 코듀로의 개 짓거리로 빚쟁이가 되어 43구역으로 떠나던 중 45구역의 보물쟁탈전에 끼어든 일, 그리고 지금 자신의 뒤에 앉아 토끼 같은 눈으로 그의 얘기를 듣고 있는 두 친구를 만난 일, 실험체가 되어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하이드를 만나고, 마탑을 때려부수고 이곳에 오게 된 일까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게 고작 12일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게임 속 시간이 현실의 5배는 빠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교수의 입에서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수많은 얘기를, 우진은 조용히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하이드라는 녀석이 제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저도 어떤 원리로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녀석의 말에 의하면 이미 일어난 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또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동의하긴 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만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지나간 일을 곱씹는 건 바보 같은 일이죠.”
“흠….. 대단히 인상적인······. 이야기로군. 잠식은 꽤 오래전부터 커뮤니티에 이슈가 되어온 현상이지.”
이안에게 받은 담배를 이 사이에 끼워 끝부분 까지 다 태운 다음 입안에 남은 재를 뱉어낸 우진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박교수. 해주고 싶은 얘기가 산더미 같지만, 이것 하나만 먼저 짚고 넘어가 보지. 너, 그 ‘하이드’라는 녀석을 좋아하지?”
“….예?”
아니 노친네가 끝내 정신줄을 놔버렸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뭔…. 나르시즘이나 뭐 이런 의미입니까?”
“글쎄. 내가 교수 네 녀석이 하는 얘기를 쭉 들어봤는데, 그 기생충인지 하이드인지 하는 녀석의 얘기를 할 때마다 상당히….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단 말이야.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네놈의 기억을 헤집고, 트라우마를 들춰내고, 심지어 몸의 일부를 통제하고 있는데도 말이지.”
“제가. 그랬다고요?”
당황하는 교수의 얼굴을 보며 우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그도 이런 부분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다. 그저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90%이상이 정신병자이니 자연스럽게 이런 부분에 익숙해진 것일 뿐.
“그래. 우린 제법 오랫동안 본 사이지. 그래서 내가 박교수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좀 아는 편인데 말이야….”
톡톡톡.
우진이 교수의 뒤쪽에 있는 이안을 슬쩍 쳐다보며 책상을 두들기자,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안은 아예 담뱃 갑 채로 우진에게 던져줬다.
찰칵-
“일단 교수, 너는 상당히 심각한 애정결핍증 환자야.”
담배를 입에 문 우진은 그가 알고 있는 교수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는 이런 것에 무디다고 여기고 있겠지. 전쟁도 겪어봤고, 황무지에서도 제법 오래 살아남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 거친 삶을 지금까지 이끌어준 것은, 너도 알다시피 네 부모님에게서 넘겨받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사랑의 기억이었어. 네 삶은 이정표 하나 없이, 그저 그 기억에 얽매여 살아오는 것뿐이었단 말이다.”
교수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살아온 것은 사실이니까.
“말하자면 넌 애정 결핍이라기보단······. 애정 중독에 가깝겠지. 황무지 사람다운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네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배척할 수가 없는 거야.
굳이 표현하자면 ‘엄청 쉬운 남자’라고 해야 할까? 일단 상대가 네게 손을 내밀면, 너는 그 손을 맞잡는데 주저하지 않아. 네 영혼 깊숙한 곳에,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베풀어진 사랑에 대한 기억이 박혀있으니까. 그런 애정에 대한 기대를 너는 저버릴 수가 없게 굳어져버린 거라고.”
탁, 탁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냈다. 교수는 마치 그 담뱃재를 털어낸 빨간 불꽃이 이성의 껍데기를 털어낸 자신의 속내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그 하이드라는 친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거지. 처음에는 좀 사납게 굴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까 너한테 살갑게 굴거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된 거지. ‘위험한 녀석이지만,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최근에 사귄 친구들과의 즐거운 기억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 그동안 피부처럼 여기며 달고 살아온 ‘혼자 사는 삶의 외로움’이 떨어져 버렸으니까.”
[키득키득. 껍데기, 그렇다는데? 조금 감동인걸?]“그건 말도 안되는….!”
“오, 부정하시겠다? 그거 아나? 교수 네놈이 이 진료실에 들어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내게 ‘이 정신병을 어떻게 제거할지’ 에 관해서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냥 정신병이 생겼다고 얘기만 했지. 네놈도 혼란스러운 거야. 놈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놈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으니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 동반자. 어쩌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거지. 그래서 이곳을 찾아온 게야. 말로는 치료를 받으러 왔다지만, 정작 네놈이 원한 건 그냥 상담이었어.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그냥 좀 들어줘라. 이게 목적이었던 거지.”
나이를 스물 넷이나 처먹고 애새끼처럼 말이야.
우진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말을 흐렸다. 진료실의 자욱한 연기가 가라앉을 만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입을 연 것은 벡스였다.
“그…. 뭔가 중요한 얘기인 것은 알겠는데, 대단히.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만….”
“음? 아아, 그렇지. 이거이거, 나도 늙었구먼.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말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수 네놈의 의견에 상관없이 그 하이드라는 놈은 무조건 제거해야해.”
움찔!
우진의 말에 교수의 왼쪽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냥 평범한 자아 분열이었으면 어떻게 대충 살아가는 방법도 있었겠지.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 하이드라는 의식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더군? 무려 박교수라는 인물의 기억을 양식 삼아서 말이야. 이건 대단히 심각한 일이라네. 그 하이드라는 부 의식은 바깥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고, 심지어 육체의 일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지금껏 그 의식이 사그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자연스러운 노력보다 의식이 성장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소린데, 만약 하이드가 차지하는 부분이 박교수 자네보다 더 커지면 어떻게 되겠나?”
“….집어 삼켜지겠죠.”
“정확하네. 그때부터는 몸은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박교수라는 작은 의식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거야.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네. 여전히 자네는 자네 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24년간 쌓아온 자아가 그리 나약한 편도 아니니까. 하지만,”
우진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놈을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박교수라는 이름의 의식은 사라져버릴 거야. 그 유명한 식인노괴 플레이어나, 기타 잠식에 의해 정신을 잃고 이상행동을 반복하다 사망해버린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GG는 그저 웃고 즐기기위해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야. 뭔가, 우리는 알 수 없는 대단히 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지.”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아까부터 계속 까딱거리는 교수의 왼손을 응시했다.
톡,토옥-,톡,톡,톡,토옥-
교수가 그의 이야기에 빠져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은밀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그에게 보내는, 모르스 부호로 이루어진 메시지.
[엿이나. 먹어라. 늙은이.]“….박교수 자네, 혹시 모르스 부호 쓸 줄 아나?”
“예? 아, 예. 군에 있을 때 배우긴 했습니다만….. 다 까먹었는데?”
“그래. 그렇단 말이지….”
건방진 자식.
여전히 까딱거리는 손가락을 보는 우진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이거 진료가 너무 길어졌군. 결론을 내리겠네. 보아하니 이건 안정제 같은 약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사람의 의식을 읽어내고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GG라는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심은 놈이야. 세상이 멸망해버린 지금의 기술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파박!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번개처럼 팔을 뻗어 교수의 왼손을 책상 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메스가 들려있었다.
“크윽!”
벌떡!
“어이, 우진영감!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 칼 내려놔. 햅번을 건드리는 순간 네놈의 멱을 따버리겠다.”
“하! 해보시던가. 첫 번째 방법이다. 놈이 지금 움직이는 부분이, 이 왼쪽 손가락 세 개라고 했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메스가 피부에 닿으며, 새빨간 선혈이 흘러나왔다.
“전부 잘라버려. 놈이 아무것도 못 하고 대가리 속에서만 빙글빙글 돌도록.”
“이, 이이이! 늙은이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벡스, 진정…. 이런 젠장!”
쿠당탕탕!
이안은 교수의 손에 맺힌 피를 보고 눈이 뒤집힌 벡스를 제압하며 말했다.
“영감님! 진짜 그 방법 밖에 없수! 야! 교수!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겠지! 자신이 차지한 지분을 잃을 위기에 처한 놈이, 날뛰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대답해라! 대답하지 못하면, 너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손가락은 잘라버리겠다!”
“크으, 으으으으!!”
우진의 말대로, 교수의 의식은 거대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조금 전까지 장난스럽게 날뛰던 하이드는 어디로 갔는지, 미쳐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 당황, 분노, 탐욕, 걱정, 그리고 약간의 슬픔 같은 것이 마구잡이로 폭주하며 교수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교수는 알 수 있었다. 하이브는 분명 자신의 몸을 노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그저 아직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 그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식 단계에서 서로 한발씩 걸쳐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그런 이해였다.
‘그걸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좀!’
몸을 움직일 수도, 입을 열 수도 없다. 하이드가 몸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그렇게 큰 게 아니라, 녀석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통에 뇌가 마비되어버린 것이다.
“셋을 세고 자르겠다! 하나!”
‘제기랄 하이드! 제발 진정해! 이대로 있다가는 너도 나도 손가락 다 날려먹는다고!’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이드는 겁에 질렸다. 촉각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유일한 감각기관을 잃게 될 거라는, 그래서 예전처럼 나의 감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불안함.
‘아니, 그게 아니야. 그것보다 더 깊은, 근본적인 불안함…. 외로움?’
그제야 교수는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이 ‘정신병’을 치료해야겠다.]쉘터를 떠나며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놈은 나의 복제된 영혼에 가깝다. 하이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온 지금, 놈은 자신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있는 것이다. 녀석은 나의 의식 속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와 얘기하고, 나를 통해 배우고, 세상을 느꼈다. 놈에게 있어서 나는 녀석의 유일한 가족에 가까운 존재였다.
“둘!”
‘그런게 있으면 진작에 얘기를해야지! 멍청하게 아무것도 아닌 척 입 꾹 다물고 괜찮은 척 멀쩡한 척 평소처럼 농담 따먹기나 하고 말이야! 꼭, 꼭…..’
나처럼. 닮았다. 녀석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전의 나를 닮았다.
‘하여튼 배우지 말라는 건 꼭 먼저 배워요! 쓸데없이 잔머리 굴리는 거나, 가진 거 하나 없이 입 털어대는 거나-’
“세에-”
“병신같이 답답하게 혼자 끙끙거리고 앉아있는 거나!!”
콰앙!
우진의 메스가 손가락을 찍어내기 직전, 터질 듯 눈을 부릅뜬 교수가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에 머리를 박았다.
뚝. 뚝.
손가락이 잘리기 직전, 몸의 주도권을 되찾은 교수는 피가 흐르는 이마를 훔치지도 않은 채 눈을 치뜨고 우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살도 안 된 애를 겁주고 그럽니까! 애가 겁먹어서 지랄 났잖아 지금!”
교수의 외침에 냉막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던 우진도, 바닥에 깔려서 꿈틀거리던 벡스도, 그런 벡스를 제압하고 있던 이안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후, 후흐흐흐, 크흐흐흐! 크흐히히힉!”
그리고, 얼음처럼 굳어있던 우진의 입이 씰룩거리더니, 곧이어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세상에! 효과가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애’란다 ‘애’! 나보고, 우리 ‘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거냐고, 크흐흐흐! 아이고 세상에나!”
우진은 멍하니 굳어버린 교수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 번 시험해본 거다 이 멍청한 녀석아! 너랑, 그놈이 어느 정도 선까지 와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