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58
Chapter.5 인사이드 아웃(5)
***
우진은 무릎까지 두드려가며 실컷 웃어주고 나서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의 내면이라는 게 공포를 마주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법이거든. 교수 네놈이 방금 그 하이드란 녀석과 무슨 감정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걸 보고 있었지.”
탁탁,
메스를 거꾸로 쥔 우진은 그 손잡이로 교수의 왼손을 두들겼다.
“자, 봐라. 아까부터 투덜거리던 손가락이 지금은 얌전하잖냐. 이제 손가락이 멀쩡하게 잘 움직이지?”
교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자신의 왼손을 보았다. 우진영감의 말대로, 하이드가 가져간 뒤로는 움직일 때마다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던 손가락이 완전히 제 것처럼 느껴졌다.
“위기감을 느낌 부 인격이, 주 인격의 뒤로 숨었다는 얘기지. 놈이 너를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지금은.”
교수는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 설명하는 우진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손가락 잘리기 전에 정신 차리려고 박은 이마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있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교수의 인내심도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 내 마빡에 흐르는 피는….”
“아, 그건 좀 미안하군. 박교수 자네가 그렇게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 음…. 그리 큰 상처는 아니니 지혈제나 좀 발라주면 되겠네.”
“아니, 사람 손가락을 날려먹네 마네 하면서 연기였다, 한 마디면 끝입니까? 황무지에서 손가락 세 개 없으면 사실상 은퇴인거-”
“완전히 연기라고 한 적은 없는데? 끝까지 교수 네가 정신을 못 차렸다면 당연히 잘라버렸지.”
우진은 서랍에서 꺼낸 연고를 씩씩거리는 교수의 이마에 대충 처덕처덕 발라준 다음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손가락이 잘릴 때까지 말도 못할 정도라면 위기를 느낀 부 인격이 주 인격을 의지하기는커녕 더욱 사납게 몸을 차지하기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교수 네가 그걸 떨쳐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소리니까. 적어도 놈이 가지고 있는 감각수용체를 제거해버리면 놈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온전히 교수 네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지.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교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어버렸다. 우진 영감의 진지한 눈이 정말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릴 것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슥, 스슥-
서랍에서 꺼낸 종이에 뭔가 잔뜩 휘갈겨 쓴 우진은 그 종이를 교수에게 넘겼다.
“자, 일단 처방이다. 안정제랑, 맨날 챙겨가던 소염제랑 항생제. 끝.”
“이게 끝이라고? 평소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말했잖아. 약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볼 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타악-
교수는 진지하게 변한 우진영감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펜을 내려놓는 소리가, 교수의 귀에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느껴졌다.
“GG, 그 게임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 그 게드로이츠의 게임인 가 뭔가 하는 게 이제 프로그램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럽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네놈처럼 사람의 의식에 새로운 의식을 심을 정도의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반대로 그 의식에서 새로운 의식을 추출할 정도의 기술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니겠나? 뭐, 가장 좋은 방법은 돔 녀석들이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고 잘 정도로 목을 매는 ‘올 클리어’를 달성해서 게드로이츠 컴퍼니를 찾아가서, 그 미친 영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는 방법이겠지만.”
“게드로이츠를 찾아가서….?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음? 아, 이거 아직 눈치 못 챈 사람이 꽤 되는 사실이었지? 내가 장담하지.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그 늙은이 살아있어. 어떤 식으로든.”
***
뚜벅, 뚜벅, 뚜벅
교수는 약을 받으러 병원 3층으로 올라가며 우진영감과의 대화를 곱씹고 있었다.
‘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살아있다.’
많은 사람이 의심하고, 커뮤니티에서 토론도 꽤나 난무했던 주제.
우진 영감은 이것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다.
‘게드로이츠 컴퍼니, GG라는 이 시대 유일의 온라인 서비스의 사령탑이자, 마지막 남은 로스트테크놀러지의 본산이지. 하지만 다들 엄청난 기술문명의 잔재가 잠들어있겠거니, 하고 추측만 할 뿐 거기에 정확히 뭐가 있을지는 모른단 말이지?’
우진영감은 아득한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3년 전, 그러니까 이 병원을 개업하기 전에, 나는 내 용병 커리어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일을 받았지. 뭐, 너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돔에서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소재를 알아오는 사람에게 평생 다 쓸 수도 없을 정도의 실링을 주겠다고 했던 것 말이지. 나도 왕년에는 대전쟁 때도 활약하고, 용병으로도 이름을 좀 날리던 사람이라 정보를 제법 모았는데 말이야, 이 게드로이츠 컴퍼니라는게 파도 파도 괴담뿐이더군.’
그 뒤로 우진은 자신이 알아낸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정보에 관한 얘기를 풀어냈다. 끝없이 생산되는 드론, 거래소에 올라오는 GC에서 판매하는 구시대의 물건들,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버린 그 ‘비밀 벙커’의 설계자와 인부들…..
‘생각해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커뮤니티와 GG가 필요하니까 드론을 덮치지 않는 거지, 내일 같은 걸 생각하는 적이 없는 사이코 갱이나 일부 스캐빈저들에게 드론은 날아다니는 돈 덩어리니까. 거래소에 새로 올라오는 충전형 연료전지의 숫자만 봐도 상당히 많은 숫자의 드론이 사냥당하고 있는데. 드론이 부족해서 거래가 지연됐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우진영감은 이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비밀 서버룸은 단순히 게임 수명 연장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멸망 이후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갖춘 거대한 시설이며, 안드레이 게드로이츠는 그 시설 안에 버젓이 살아 숨 쉬며 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그래서 돔이고 렙터고 죄다 그렇게 올 클리어에 목을 매고 있는 건가…..”
잘그락-
“5만실링.”
“아, 잠시만.”
교수는 상념을 멈추고, 약국 앞에 있는 간이 생체스캐너에 손목을 가져다 대고 입금을 마쳤다.
두 겹의 쇠창살로 가려진 접수대 안에 있던 흉터투성이 남자는 입금이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작은 라벨이 붙은 유리병을 2개 건네주었다.
“아침, 저녁. 식후 한 알씩. 많이 먹어도 죽을 수 없는 물건이니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고.”
“하이고, 참. 내가 퍽이나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봐?”
“그럴 사람이 아니면 그런 약을 필요로 하지도 않아.”
무뚝뚝한 남자의 말에, 교수는 실소를 흘리며 약국에서 나왔다.
“이제 돈도 벌었고, 여유도 생겼지만, 결국 또 그 게임에 목을 매야 한다는 소리구만.”
교수는 지금은 잠잠해진, 머릿속의 하이드를 떠올렸다. 복잡한 녀석이다. 나에 대한 애정과, 나를 제거하고 내 몸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 공존하는 녀석. 녀석의 그런 상태를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놈이 내 의식에 얼마나 위험한 수준까지 파고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 게임에서 생긴 문제는 게임에서 해결하는 게 맞지.”
일단 방법을 찾아본다. 그냥 쳐내기엔 거슬리는 게 많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끝내 방법을 찾지 못하고, 녀석이 언젠가 선을 넘는다면…..
‘그땐 주저없이 적으로 간주한다.’
녀석을 좋게 보는 건 사실이지만, 내 목숨까지 넘겨주면서 살려둘 이유는 없으니까.
[거 너무하시네! 나처럼 친절한 감염 인자가 어디 있다고!]‘그야 너도 내 몸을 차지할 수단이 없어서잖아? 만약 당장에라도 나를 밀어낼 방법이 있다면, 그래도 친절할 생각인가?’
….키득키득.
녀석은 내 말에, 그저 웃고 있었다.
‘서로 피차일반이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너는 내 몸을 차지할, 나는 너를 내 몸에서 밀어낼 방법을 찾을 때까지.’
어느새 내 입가에도, 녀석을 닮은 웃음이 맺혀있었다.
역시 이녀석은 나를 닮았다.
***
교수가 상담을 끝내고 나간 진료실.
이안과 벡스는 우진의 앞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까 교수가 하는 얘기 다 들었지?”
“음.”
“다 듣고 있었지.”
“그래. 너희들도 황무지에 사는 놈들이니 눈치가 없는 건 아니겠지.”
우진은 이안이 건네준 담뱃갑에 손을 넣었다가 텅 빈 것을 보고 이안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그 눈빛을 받은 이안의 손이 홀스터를 향하는 것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교수가 그 하이드인가 뭔가 하는 인격체에게 홀딱 넘어갔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역시. 장사하는 놈이라 얘기가 빠르구만.”
타각, 타각, 착.
벡스는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다가, 불안한 얼굴로 우진의 책상 위에 흩어진 펜이나 종이, 진료기록 따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복잡한 것은 다 제쳐두자고. ‘교수가 의식을 잃은 사이, 놈이 몸을 움직였다.’ 이것 하나만 봐도 교수 그 녀석은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야. 주 의식이 잠들면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니까. 막말로 자고 있을 때 목에 밧줄을 걸고 의자위에 올라서서 ‘내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이런 식으로 행동을 통제하려 할 수도 있다는 거지. 심지어 박교수 그놈은 온갖 협잡과 잔꾀의 달인이 아닌가? 그런 놈의 지식을 습득한 인격이라면, 교수를 속여넘기는 것 정도야 쉬운 일 일수도 있지.”
“내부의 적이라…. 드럽게 골치 아프군. 그냥 죽여 없애버릴 수도 없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책상을 자로 잰 듯 말끔하게 정리한 벡스는 여전히 불안했는지 이번에는 벽에 붙어있는 서가의 책을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교수 그놈 말로는 그런 녀석이 아니라지만 그걸 어떻게 아나? GG의 수많은 잠식현상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다들 알고 있잖아! 내가 볼 때 그 잠식이라는 것은 게임 안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야.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뇌 속에 무언가를 만들어낸 거지. 태생부터가 현실에 기반한 거라고. 프로그램화돼서 심어진 정신병의 일종이란 말이야! 그리고 살아남은 인류의 대부분이! 그 정신병 발생기나 다름없는 접속기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지!”
콰앙!
격앙된 목소리로 책상을 내리친 우진은, 용병 시절,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은퇴하게 만들었던 하나의 의심을 그 둘에게 털어놓았다.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어. 나는, 이 세상이 안드로이 게드로이츠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거대한 덫에 걸렸다고 생각한다네.”
그리고 우리는 그 거대한 흐름을 바꿀 힘이 없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말이야.
그 어떤 세파에도 굴하지 않을 것 처럼 보이던 강직한 노인의 입에서, 지나간 세월의 허무가 가득 찬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이, 턱주가리랑 늙은이. 니들 박교수랑 친하지?”
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우진은 자신의 서랍 뒤편에 위치한 금고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하자.”
***
“후엣취! 어우 제기랄. 이놈의 미세먼지는 정말.”
교수는 병원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벡스와 이안을 만난 김에 좀 얘기라도 하고 갈까, 했는데 녀석들은 뭔 급한 일이 있다고 하면서 먼저 자신들의 거처로 떠나버렸다.
“에잉, 아픈 친구를 두고 그렇게 쌩하니 가버리다니. 정 없는 새끼들.”
[얼굴 좀 잘 가리고 가봐. 모래 버석거리는 느낌이 짜증난다고.]“무임승차 하는 놈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직접 먹는 나도 가만히 있는데.”
교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을 감싼 터번을 더욱 단단히 조였다.
‘하필 이런 개활지에서 모래 폭풍을 만나다니. 운도 없지.’
대충 이동한 시간으로 봤을 때 43구역과 45구역의 사이 정도까지 온 것으로 추정됐다. 구조물이 있는 곳에는 매복이나 아예 그 지역에 거주하는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어서 일부러 아무것도 없는 개활지 쪽으로 넘어온 것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몇 놈 만나더라도 폭풍을 피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할 걸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그쪽으로 가자고 했잖아?]‘넌 시체를 보고 싶을 뿐이잖아. 식인종 자식아.’
[우우, 인종차별이다.]그래도 혼자 황무지를 횡단하는 것 보다는 이런 녀석이라도 말이 통하는 상대가 있으니 훨씬 시간이 잘 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놈이지만, 이미 들러붙어 버렸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장점을 찾아서 단점을 벌충해야지 뭐.
쿠우우우우!
‘제기랄. 좀 잠잠해졌으면 했는데, 더 심해지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이쪽 몸은 안에서처럼 막 다시 자라고 붙고 그런 거 못하잖아?]‘못하지. 정 안되면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서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쉬는 수밖에.’
모래 폭풍이 지나가는 데는 짧게는 1시간부터 길게는 3일이 넘게 걸리는 날도 있다. 교수가 배낭 안에든 식량과 물의 잔량을 계산하며 가방 옆에 매달린 야삽을 꺼내 드는데,
부우우웅-
그와아앙!
‘차 소리!’
뒤에서 오프로드 차량 특유의 거친 엔진음이 들렸다.
‘나보다 그쪽에서 좀 더 치는 놈이 있었나 보지! 제기랄, 엄폐물도 없는 이런 장소에서 싸웠다간 개죽음인데······!’
교수는 일단 급한 대로 야삽으로 대충 모래를 걷어내고 그 안에 납작 엎드렸다. 저 멀리, 모래 폭풍을 헤치고 달려오는 커다란 검은색 트럭이 보였다. 트럭에는 선명하게 렙터 소사이어티의 비늘무늬가 새겨져있었다.
[레, 렙터! 그거 엄청 큰 집단 아니었어? 걸리면 실탄 빼고는 다 태워버린다는 그놈들?]‘진짜 여기서 뒈질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놈들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을텐데…. 정말 지금까지 내 흔적을 계속 찾고 있었다는 건가?’
교수는 반쯤 불탄 얼굴로 원독에 차서 소리를 지르던 케셀링을 떠올리며, 등 뒤에서 장전된 샷건을 꺼내 들었다.
[오, 총이다 총. 왼손으로 들어봐. 내가 당겨보게.]‘닥쳐. 실전에서 걸리적 거리면 진짜 없는 셈 치고 손가락 다 잘라버릴 거야.’
부아아앙-!
엔진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전투는 필패. 추격을 멈추려면 타이어를 노려서 적의 기동력을 봉쇄하는 게 베스트지만….
‘저런 대형차량의 타이어에 타격을 줄 수 있느냐는 게 문제지.’
슬러그 탄을 쓴다고 해도 운전중인 대형차량의 타이어에 구멍을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정확하게 이쪽으로 오는군. 앞유리가 정면에 있다. 잘하면, 운전하는 녀석을 쏘고 시작할 수도….!’
교수는 슬며시 총구를 밖으로 내밀었다. 할 수 있다. 단 한발, 한발에 운전사를 저격하고 튄다!
[심호흡하고, 마음 차분히 먹고, 천천히,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느낌으로….]‘닥쳐봐 좀!’
총구가 앞유리의 오른쪽을 조준한다. 렙터의 무장 트럭은 전면유리도 튼튼한 놈을 사용한다고 들었으니, 최대한 근접했을 때….
‘어?’
[엥?]교수가 호흡을 멈추고, 가늠자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운전사의 얼굴을 조준하는 순간, 교수는 그대로 총구를 내리고 벌떡 일어났다.
왜냐하면, 총구 끝에 담긴 운전사의 하관이 대부분 익숙한 금속제였으니까.
“야! 니들이 왜 여기있냐!”
쿠르르르르-
빵빵!
교수가 일어나자 그제야 발견했는지, 이안이 타고 있던 무장 트럭이 클렉션을 울리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트럭의 뒤쪽에는 쇠사슬에 매달려 견인되고 있는 허머가, 그 뒤에는 온갖 액세서리가 달린 버기에 탄 벡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끼이익- 털털털털-
교수의 바로 옆에 차를 세운 이안은,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연 다음 벙찐 얼굴의 교수를 향해 말했다.
“크흐흐흐! 어이, 거기 거지꼴을 한 젊은이! 태워줄까아?”
그렇게 말하며 멋들어지게 창문에 한쪽 팔을 걸친 이안의 입가에 예의 그 윗입술만 웃는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