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2
Chapter.5 인사이드 아웃(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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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교수가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냥 HIV 쓰는 건 어때? 어차피 이 이름으로 나름 명성도 얻었겠다, 굳이 안 쓸 이유가 없는데?”
“이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그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돔에서 파견한 부대를 조져버렸다고···.”
“너무 지레 겁먹는 건 아니고? 자, 보자고. 그 지하 벙커에서 돔 쪽의 생존자는 없어. 그건 우리가 확인했으니까 확실한 사실이지? 그러면 돔이 보기에 자기네들이 보낸 정예가 황무지 스캐빈저 3인방에게 당했을까, 아니면 살벌하게 화염방사기 들고 안으로 뛰쳐들어간 시커먼 렙터 친구들에게 당했을까?”
“음….”
“당연히 렙터한테 당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 렙터쪽에서도 자기네 무력을 과시할 수 있는데 일부러 정정할 리는 없고. 그렇게 되면 돔쪽에 우리가 HIV라고 들통이 나도 그쪽에서는 기껏해야 두 세력 간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운 좋게 보물을 챙겨나온 떨거지일 뿐이야. 들켜서 문제가 될게 아무것도 없다고.”
“햅번, 의외로 황무지에서 명성은 정말 중요해. 막말로 이름도 모를 캐러밴이 ‘물건 판다’ 하면서 집 앞에 찾아오면 아주 선량한 집단이라도 일단 방어적으로 행동하고 본다고. 물론 여기서 방어적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납탄을 때려 박는다는 뜻이야. 그런 면에서 HIV는 최소한 렙터의 군단과 돔의 정예를 상대할 만큼 강력한 무력 집단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최소한 덮어놓고 공격당하는 일은 없을거야.”
큰일이다. 이미 두 명 다 HIV가 우리 캐러밴의 이름이 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싫다고! 나도 로망이 있어! 그동안 혼자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오다가 이제야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회사 이름이 ‘에이즈 병원균 캐러밴’이라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우리 아들 잘있나~’ 하고 보시다가 졸도하시겠어!
뭔가 반박할 거리가 필요했다. 이미 녀석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논리적인 근거를 갖췄으니, 단순히 싫어서 그렇다고 하면 녀석들도 물러나지 않을 터.
‘생각해라, 생각해….! 나 박교수, 잔머리 하나로 이 험난한 황무지를 홀로 헤쳐온 남자다….! 이번 위기도 분명히, 분명히 잘 넘길 방법이….!’
“어이, 교수. 별다른 의견 없으면, 이번에도 다수결로 정한다?”
이안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맺혔다. 잠깐만. 다수결? 다수결!!!
“잠까아아안!!!”
교수는 이안이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멈췄다.
“왜? 뭐 다른 의견이라도?”
“다수결이라….. 다수결 좋지! 안 그래도 내가 마침 방송하는 사람이라서 47구역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대화방에 나름의 발언권이 있는데 말이야, 우리가 그리 큰 규모의 캐러밴도 아니니 주 소비층은 47구역 사람들이 될 텐데, 이 사람들의 의견을 받는 게 훨씬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 HIV가 우리라는 얘기도 퍼트리면 명성 문제도 해결될 거 아냐.”
교수의 필사적인 설득에, 이안과 벡스의 의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 그건 그렇군. 47구역은 아예 돔의 관할이니 렙터놈들이 근처에 얼굴만 드러내도 전쟁이 일어날테니 HIV의 명성을 퍼트려도 문제 없을거고…..”
“그래! 그리고 돔 새끼들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자기네들이 털리고 렙터한테 홀랑 넘어갈 뻔한 시설을 우리가 미리 먹고 날라서 지켜낸 거나 마찬가지니까, 홍보가 많이 되면 많이 될수록 돔 쪽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럴수록 우리가 돔 몰래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고!”
사실 길게 말했지만 별생각은 없었다. 그저 ‘HIV 캐러밴’ 이라는 이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이름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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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HIV정도로 만족했어야 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나니.
– 간장게이바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Jokass : 바람직해, 아주 바람직해! 우리 교수님, 방송 사이즈 크니까 이런 이벤트도 열 줄 알고. 너무 훌륭한데?
– 간장게이바 : 아 작명가 너무 잘 섭외됐자너 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후회했는데. 내가 저 새끼들이랑 의견을 나눈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 지가 한 달이 안 됐는데 나는 어째서 또 이들에게 의지해버린 것인가!
– 어진광대 : 이야~ 그럼 이제 47구역에도 캐러밴 생기는 거냐?
– takealook : 사실 구역 크기만 보면 캐러밴 하나가 없는 게 말이 안 됐지.
– 스피드웨건 : 마켓플레이스 때문에 그럼. 캐러밴이라고 해도 구역 내 거래량을 무시할 수 없는데 47구에는 돔이 있잖아. 웬만한 건 돔의 마켓에서 거래소에 무더기로 올려주는데 운송비가 붙는 캐러밴의 물건을 구매할 필요가 없지.
– 엔덴 : 그렇긴 해. 그래도 캐러밴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잖아. 배달 거리가 2개 구역을 초과하면 그때부터 드론 실종률이 급증하니까. 접속기 들어갔는데 [고객님의 물건이 배송중 탈취당했습니다. 죄송.] 이딴 메시지 같은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 명퇴계정 : 캐러밴이면 다 필요 없고 그것 좀 팔아줘라. 30번대 구역에서 파는 해피블라인드 산 마스크. 여기선 그거 구하는 게 너무 힘듦.
– 남바쓰리 : 그 또라이들 물건 좀 팔아주지 말라니까.
사람이 참 많이도 늘었다. 아주 바글바글한 게, 47번대 구역 사람들은 죄다 몰려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전부 방송을 본다기보단 그냥 어쩌다보니 내 방송이 이슈가 되면서 47구역 대화방이 만남의 광장처럼 돼어버렸다.
사람이 많으면 좋지. 새로 발족하는 집단으로서 이름이 많이 퍼지면 그만큼 장사에 도움이 될 테니까.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그만큼 좋은 이름이 나올 확률도 높아지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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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한 내 자신을 저주한다! 몇 분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박교수를 존나게 두들겨 패서라도 이 사단을 막았을텐데!
– 간장게이바 : 자아, 슬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많은 친구들이 좋은 의견을 내 줬습니다! 교수가 있을 자리가 대학원 말고 어디있냐, [대학원]으로 하자, 이번에 그 유우~명한 향신료상이 합류했다고 하는데, 지나가는 자리마다 스캐빈저가 한 무리씩 없어지니 [psycho robbers(미친 강도들)]라고 하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변종과 굉장히 친숙한 기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엄브렐라]로 하자, LGBT, 카니브 등등….. 너~무 좋은 의견이 많았지만!
이 중에 압도적인 표결을 받은 이름이 있었으니……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대화창을 보는 교수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야, 제발 아니야! 나도 대화창 다 보고 있었다고. 유독 채팅에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 있긴 했는데, 그것만은, 그것만은…..!
– 간장게이바 : 소개합니다! 70% 이상의 투표가 몰린, 압도적인 인기! 장난스럽게 만든 다른 이름들과 달리 캐러밴에 어울리는 의미를 담은 이름! 축하합니다! 친애하는 우리 교수님의 새로운 캐러밴의 이름은! Big Dream Small Margin! 커다란 꿈을 저마진으로 공급한다는 너무나도 훌륭한 의미를 가진! BDSM이 되시겠습니다!
– vargr : 하하하. 부끄럽네요. 저는 그저 진심으로 교수님의 장사가 번창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었는데, 이게 이렇게 많은 황무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줄이야.
– 홀리 : 짝짝짝짝!
– 노루Drug해요 : 오메데토, 교수쿤!
– 흥안만두 : 축하한다 교수야. 이제 너도 그냥 생존자가 아니라 어엿한 황무지의 일부가 되었구나. 정말 잘 녹아들었어. 아주 황무지와 한 몸이 된 듯한 이름이야.
– takealook : 완벽하게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결정된 이름임. 미사용 시 너 공산당.
– Jokass : 미사용 시 너 렙터
어째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였다고 해도, 여기가 커뮤니티인 이상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줄 리가 없는데!
“푸하하하! 이거 걸작이구만! 이야, 사람 많은 구역은 이런 재미가 또 있네?”
“햅번…. 이런 사람들 앞에서 방송을….지금까지 어떤 싸움을 해온거야….”
“말도 안돼! 이건 꿈이야! 내 직장이! 첫 직장이 BDSM이라니!”
빅 드림 스몰 마진. 의미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그런데 그걸 줄이면 ‘구속’ ‘지배’ ‘굴복’ ‘가학’이 되어버린다고!
어떻게 하지? 물릴까? 이미 일이 너무 커졌는데? 여기 모인 사람만 해도 47구역 인원의 절반은 넘을 텐데? 여론을 그렇게 개작살 내고도 장사할 수 있을까?
– Jokass : 우리 중에 돔쪽에 거주하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냐? 가서 제보하고와. 47구역에 새로운 집단 하나 생겼다고. 어차피 캐러밴 하려면 돔이랑 안면 터야될텐데 빨리빨리 하면 좋지 뭐.
잠깐 기다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띠링-
[ Player `Dome-sec47`님이 음성 연결을 신청하셨습니다.]망할! 이럴 때만 더럽게 빨라가지고는!
교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확인을 누르고 말았다.
삐리리릭-
[안녕하십니까. 저는 돔-47구역 지역 환경 관리팀의 델마르라고 합니다. 연결되신 분은 47구역에 거주 중이신 `professor`님이 맞으십니까?]욱씬!
순간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접속기 너머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돔의 공무원이라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이 오버랩된 것이다.
[워워, 진정해, 껍데기. 귀한 분노를 마구잡이로 쏟아부어서야 쓰나. 그 일과 관련된 녀석의 이름은 그 파일에 써있던 것 통째로 외워뒀잖아? 여기 니 머리통에 아주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네.]‘나도 알아. 이건 그냥…. 조건 반사 같은 거야.’
교수는 숨을 한번 고른 뒤, 접속기 너머의 상대에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professor`입니다.] [확인됐습니다. 최근 들어 47구역에 자리 잡으셨죠? 상황을 보아하니 단순 개인 거주자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소속된 집단의 성향과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특유의 상대를 깔보는 듯한 말투 하며, 내가 밝히기도 전에 먼저 우리 쪽 정보를 입에 담는 저 태도. 돔에서 일하는 녀석들의 특징이다. 은연중에 우리 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대화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것이다.
미리 의도하고 정보를 내어준 것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 이쪽에서 장사를 좀 해볼까 해서요.] [장사라 하심은….] [캐러밴입니다. 인원은 세 명. 여러 구역을 돌아다니며 마켓 플레이스에서 취급하기 힘든 물건을 중점적으로 판매할 생각입니다.] [캐러밴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군요. 요즘 같은 세상에 장거리 무역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하지요. 그래서, 저희 쪽에서 그쪽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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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드림.] [빅 드림? 빅 드림 캐러밴이 맞으십니까?] [예. 그걸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덜컹덜컹!
옆에서 낄낄거리며 대화를 듣고 있던 벡스와 이안은, 내 대답을 듣고 냉큼 달려와 내가 들어있는 접속기를 마구 흔들었다.
“어이, 교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뒤쪽이 생략됐잖아! 빅 드림! 스몰 마진! 당장 정정해!”
[넵! 됐습니다! 돔 지역 생존자 목록에 ‘빅 드림 캐러밴’으로 등록됐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감찰관이 한번 방문할 예정이니…..] [지금 밖에 문제가 생겨서 나중에 듣겠습니다!]삐리리릭-
교수는 접속기를 부숴버릴 듯 흔들어대는 이안 때문에 황급히 연락을 끊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푸쉬익-
드드드득-
두명 다 상당히 인상이 구겨진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 이름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어이! 교수! 왜 나왔어! 당장 정정하라니까!”
“아 못해! 못한다고! 내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저 돔 새끼들한테 이상한 놈 취급은 못 당해!”
“BDSM이 뭐가 어때서! 이미 대화방에서 투표로 그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이렇게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여론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래 맞아! 햅번! 네 이기심으로 장사 망칠 일 있어!”
“아 몰라! 누가 여기 들어와서 살라고 했냐고!”
“이 자식이, 말로 해서는 안 들어처먹-”
후다닥!
“어어, 저 새끼 튄다! 벡스, 잡아!”
부아아앙-
쿠당탕!
“으악! 이건 쬐끄만한 게 왜 이렇게 빨라!”
“놓치지 마! 주리를 틀어서라도 정정하게 만들 거니까!”
“조까!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내 다리가 뜯어질지언정 돔 새끼들한테 병신 취급은- 갸아아앍!”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닌 쉘터를 다 큰 어른 셋이 전력으로 뛰어다니니 쉘터 내부에 순식간에 뿌연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지이잉-
코듀로의 드론은 로봇팔로 렌즈를 슥 훔치며, 보안 카메라를 안쪽으로 돌려 그 광경을 전부 녹화하고 있었다. 그의 지식으론, 추억이 될만한 순간의 기록은 우울증 완화에 대단히 효과가 있다고 했다.
“쉘터 분위기가 이렇게나 밝아지다니···. 새 주인님들은 좋은 분 이셨구나….!”
떨그렁!
“죠! 창고에서 딱 쓸만한 파이프를 두 개 찾았어!”
“굿 잡, 브라더! 자아, 교수! 얼른 가서 우리 이름을 BDSM으로 정정하고 오시지!”
“사, 사나이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럼 계집으로 만들어주면 되겠군!”
“으아아악! 코듀로!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줘!”
“어허, 소리 지르지 마. 변종 몰린다.”
“후후후…. 활기찬 주인님들. 너무 보기 좋다…. 헤헤헤헤….”
적막한 황무지 한가운데 위치한 쉘터.
교수는 우악스러운 손에 억눌려 신음하며, 구국의 열사와 같은 마음으로 울었다. 그래도 HIV 도, BDSM도 아닌 정상적인 이름으로 등록했으니까. 그거면 됐다. 그거면….된거다.
***
[지금 밖에 문제가 생겨서 나중에 듣겠습니다!]삐리리릭-
“흠. 새로 자리 잡은 위치가 변종이 좀 많은 곳인가?”
델마르는 갑작스럽게 끊어진 연락에, 메모장에 [빅 드림 : 다소 위험한 지역 거주]라는 문구를 추가하며 기지개를 켰다.
“흐으으으! 어이구, 뻐근해라. 오늘 체크할 놈들은 다 확인했으니 슬슬 퇴근해 볼ㄲ-”
“오! 델마르 선배님! 아직 퇴근 안하셨슴까?”
“우왁! 깜짝이야! 너 임마! 들어올 때 노크 좀 하고 들어오랬지!”
“히히, 죄송.”
델마르가 고개를 돌리자, 항상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그의 후배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퇴근 안 하냐?”
“아유, 말도 마십쇼. 감찰국 까지 올라오면 예쁜 여비서랑 희희낙락 하면서 월급이나 타 먹을 줄 알았는데, 죽겠습니다. 아주 그냥. 이러려고 죽도록 고생에서 감찰국 올라온 게 아닌데 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투덜거리는 후배녀석의 손에는 커피가 두잔 들려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미워할 수 가 없는 녀석이었다.
“됐다. 난 이제 갈 거니까 너나 마셔라. 막 퇴근하려는데 제보가 들어와서 그거 좀 기록한다고 남은 거거든.”
“제보요? 이 시간에?”
“그래. 47구역에 새로운 캐러밴이 자리 잡았다고 하더라고. 마켓 플레이스 기록이랑 비교해보니까 개인 생존자가 살 만한 양이 아니기도 했고. 정보 신뢰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야.”
“그렇군요. 그런데 이름이…. 빅 드림? 이게 맞습니까?”
델마르는 그의 기록을 보며 의문을 표하는 후배에게 딱밤을 먹였다.
“아얏!”
“내가 기록하나 제대로 못 하는 햇병아리로 보이냐. 이건 어디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본인 입에서 나온 정보야. 확실하다고.”
“아니, 아니, 당연히 선배님 기록이야 확실하죠. 제 말은, 제가 아는 것보다 이름이 좀 짧은데, 통신 누락이 아닌가 해서요.”
“통신 누락?”
“예에! 황무지에서 음성 대화 잘 안 쓰는 이유가 뭔데요! 그놈의 모래바람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끊겨서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도 플레이어 성문(聲紋) 수집 때문에 쓰는 거지 사실 불편하잖아요, 이거.”
“으음. 그러고 보니 이름을 말할 때 말이 좀 어눌하긴 했는데.”
“확실합니다. 제가 지역 정보는 아주 빠삭한데, 그거 뒤에 생략된 거에요. 빅 드림, 스몰 마진. BDSM입니다.”
후배의 자신감에 찬 말에, 델마르의 인상이 구겨졌다.
“집단 이름이 그거라고? 진짜?”
“제가 아무리 좀 사람이 가벼워도 기록에 들어가는 거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진짜로! 걔네 BDSM 캐러밴 맞다니까요?”
“BDSM이라….. 통화했을땐 못느꼈는데, 이거 황무지에 미친놈이 또 늘었군.”
델마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감찰국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새 캐러밴의 이름을 ‘빅 드림’에서 ‘BDSM(Big Dream Small Margin)` 으로 변경했다.
“됐지?”
“옙!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그래서, 너도 지금 퇴근하냐? 나도 나갈 건데 한잔하고 갈래?”
“하하하하! 정말 감사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겠습니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서.”
“이 자식은 뭐만 하면 할 일이 있대요. 알았다 임마. 내일 보자.”
“넵! 들어가십쇼!”
그렇게 감찰국 입구에서 해어진 델마르가 골목으로 사라지고, 각진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그의 후배는 그 반대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뚜벅, 뚜벅.
가로등이 켜진 고즈넉한 거리를 걷는 남자의 입에 하얀 미소가 맺혔다.
“안 되지, 안돼. 교수 친구,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쓰나. 정의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돔의 일원으로서, 투표 결과 조작은 봐줄 수가 없거든.”
히죽거리며 도시의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감찰관의 손에는 작은 화면이 들려있었다.
입력은 불가능하지만 접속기의 화면을 볼 수는 있게 해주는 소형 디스플레이의 한쪽 구석에는 [47구역 대화방 – ‘간장게이바’] 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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