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3
Chapter.5 인사이드 아웃(9)
불면증이라는 것은 사람이 뭔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들 한다. 그 일에 대한 부채감이 그 사람을 끝없이 자극해서, 잠들지 못하게 하는 거란 말이지. 반대로 말하면, 할 일을 한 사람은 아주 끝내주는 꿀잠을 잘 수 있다는 소리다.
“흐으으음~ 아아아아. 좋은 아침이야. 날아갈 것같이 상쾌하군!”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비록 돔 쪽 직원과 통화가 끝난 뒤 나의 작명에 대단히 불만을 가진 두 괴한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지들이 어쩌겠어? 이미 그쪽에 ‘빅 드림’ 이라는 이름이 넘어간 뒤인데. 빅 드림 캐러밴이라. 음, 좋군. 발음이 입에 아주 착착 감겨.
모든게 잘 풀리고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 잠을 깨우는 시원한 물 한잔, 그리고,
“그으읍! 으브으읍!”
단단히 묶여 옆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안까지.
“오우, 메탈-죠. 좋은 아침? 묶어놓은 부분은 좀 어때? 안 불편해?”
“그으으읍! 그아읍!”
“어…. 교수?”
“벡스! 굿모닝?”
“어? 어. 좋은 아침. 그런데…. 죠는 왜 묶어놨어?”
“아, 이거? 별거 아니야. 아침에 좀 할 일이 있는데, 예방차원에서 잠깐 진정시켜 놓은거야. 슬슬 나갈까? 오늘은 아주 바쁜 하루가 될테니까.”
황무지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전기가 부족한 만큼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곧 움직이는 시간인 만큼, 늦잠을 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교수는 해가뜨기 전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김에, 앞으로 있을 일을 더욱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자고있는 이안을 꼼꼼하게 결박한 다음 즐거운 얼굴로 벡스를 맞이한 것이다.
가각! 그가각! 가각!
“으으읍! 그브으으읍! 그으으읍! 그아으으읍!”
교수와 벡스, 두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뭔가를 긁는 소리가 날 때마다 온몸이 꽁꽁 묶여 재갈까지 물린 이안의 입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햅번, 이거 꼭 지워야 하는 거야? 저 녀석 눈을 보라고. 풀어주는 즉시 우리 둘을 죽이겠다고 달려들 거야.”
“그럼 돔의 관할구역에서 렙터 마크달린 렙터의 무장 트럭 타고 다닐래? 지나가면서 한 블록 단위로 RPG가 무더기로 날아오는 거 보고싶지 않으면 박박 지워. 돔의 감찰관이 조만간 온다고 했잖아. 돔 새끼들이 말하는 ‘조만간’이란, 전력을 다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온다는 뜻이라고!”
이게 해가 막 떠오르는 꼭두새벽부터 까슬까슬한 쇳쪼가리로 이안의 무장 트럭을 긁어대는 이유였다. 메탈죠 녀석의 차에 대한 애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 예방 차원에서 자고 있을 때 저렇게 묶어놓았는데, 그러길 천만다행이었다. 이안은 트럭에 기스가 생길때마다 자기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는 것처럼 짐승같이 울부짖었다.
“좋게 생각하라고. 좀 울퉁불퉁해지긴 했지만, 다 긁어내고 이 위에 [빅 드림]이라고 예쁘게 써놓으면 볼 만할 거야.”
기기기긱-
“그아아아아아으읍!!!”
교수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 천천히 트럭을 긁어 이안이 그 소리를 음미할 시간을 주었다. 역시, 복수는 참으로 달콤한 것이다.
***
이변이 일어난 것은 작업이 끝나고 ‘고장 난 허머를 고치는데 필요한 부품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으로 겨우 이안을 진정시킨 다음 세 사람이 수동 펌프에 달라붙어 한참 물을 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끼릭- 끼릭-
“어이 교수, 정말 이렇게까지 물이 많이 필요해? 47구역에 사람이 많이 몰린 이유 중 하나가 지하수가 풍부해서라고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퍼 올리지 않아도 쉘터에 내장된 펌프로 충분히-”
“쉬잇! 죠! 잠깐 멈춰봐! 뭔가 온다!”
벡스의 말에 세 사람은 모두 하던 작업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푹신한 모래 위로도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기계적인 구동음이 쉘터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 다들 나가보자고. 손님이 오신 것 같으니까.”
이제 막 오전 여덟 시가 다된 참이다. 돔의 감찰관은, 소문으로 듣던 만큼 부지런한 모양이었다.
***
기이잉- 기이잉-
“저거….. 그거냐?”
“와. 햅번, 나 저거 소문으로만 들어보고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나도 47구역에 제법 오래 살았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야.”
순식간에 무장을 마치고 은폐장의 영역 밖으로 나오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 발로 걷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은 사람인데, 투박한 느낌의 검은색 프레임이 그 사람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엑소슈트···. 돈 귀신 친구들다운 환영 인사로군.”
“그렇지. 이 세상에서 발전기보다 비싼 몇 안 되는 물건이니까.”
“죠. 저거랑 붙으면 우리 지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소문의 반만 사실이라도 저건 괴물이야.”
교수는 이안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돔에 있을 당시 저걸 실제로 몰아봤으니까. 숄더 웨폰으로 소형 미사일 런쳐는 기본에, 승용차 한 대 정도는 들어 올릴 수 있는 근력 보조 기능. 프레임만 있고 몸이 대부분 노출되어있는 것 같지만 소형 실드 발생기도 장착되어 있어서 전투 시에 출력을 높이면 사격을 무시하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 수도 있는 물건이다. 돔이 그렇게 기술문명에 집착하는 이유. 돔을 황무지 제 1의 집단으로 만들어준 전쟁 기계. 쉘터로 접근하는 것은 그런 물건이었다.
‘신장 약 2미터 30. 옛날에는 무식하게 큰 전쟁 기계만 있더니 이제는 저런 작은 모델도 생산되나 보군. 소형화시킨 것은, 역시 구동 한계를 늘리기 위함이겠지?’
저런걸 보고 있으면 렙터 소사이어티가 돔에게 비비는 게 말도 안 되게 느껴지지만 사실 저 엑소슈트라는 물건은 황무지에서 쓰기에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물건이다.
정밀한 기계장치인 만큼 고장이 나면 전문가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데 먼지투성이 황무지에서는 고장이 워낙 잦으니 오랫동안 구동하기 힘들고, 또 그런 문제가 없어도 그냥 배터리를 겁나게 잡아먹어서 최대 운용 시간이 8 시간이 넘어가지 않는 물건이다. 모래폭풍 같은 게 불면 실드를 켜야하니 그 절반. 전투 상황에 7.62mm탄을 막아낼 정도로 방어 출력을 올리면 거기서 다시 반의 반. 실질적인 전투 중 운용 한계 시간이 1시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장기전이 되는 순간 그대로 조종수의 관이 돼버리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돔은 렙터처럼 저렇게 막 쏘다니는 게 아니라, 야금야금 도시를 하나씩 늘려가며 그 주변 지역을 그들의 권역으로 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운용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되지만, 그 한 시간은 거의 무적처럼 군림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렙터가 박격포나 미니건, 화염방사기 같은 중화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다 저것 때문이지. 소총 같은 걸로는 흠집도 못 내는 물건이니까.’
지금 우리 집 앞으로 다가오는 감찰관은, 그런 물건을 입고 오는 것이다. 사용자와 슈트 둘 다 피로 아주 목욕을 한 것이, 오는 길에 변종이랑 한바탕 한 모양이다.
‘아니면, 기선제압의 의미로 일부러 피를 뒤집어 쓰고 왔을수도 있지. 엑소슈트는 돔의 무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니까.’
기이잉- 기이이잉- 철컥!
성큼성큼 걸어와 우리 셋 앞에 멈춰선 감찰관은, 엑소슈트의 프레임을 열어젖힌 뒤 안에서 나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피가 흥건한 그 손을 마주 잡고 힘차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빅 드림 캐러밴의 대표, professor입니다. 교수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돔의 감찰국 소속 47구역 환경관리팀에서 나왔습니다. 그쪽이 말로만 듣던 교수 군요?”
“저를….아십니까?”
“그럼요. 팬입니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교수와 악수를 나눈 뒤 주머니에서 꺼낸 모자를 비뚜름하게 쓴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
47구역 감찰국 소속 2등 감찰관, 에젤 레이든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후배님, 정말 혼자 가도 되겠어?”
“그래 맞아, 에젤. 위험한 지역에 사는 것 같다는 정보, 너도 봤잖아.”
“하이고, 선배님, 걱정도 팔자십니다. 누구는 감찰관 자리 딱지치기로 땄답니까? 솔직히 47구역 안에서라면 그냥 맨손에 권총만 들고 가도 어디가서 자빠지지 않을 자신은 있슴다. 그런데 키미 이 녀석이 하도 지랄해대서 이렇게 슈트까지 입고 나온 것 아닙니까.”
“그야! 그 캐러밴에 43구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향신료상이라는 녀석들도 있다고 하고, 애초에 집단 이름이 BDSM이잖아! 보나마나 미친놈들일 게 뻔하다고!”
“에이, 너무 그러지 마. 취향은 존중해야지.”
기이잉- 철컥!
에젤은 자신에게 배속된 슈트에 올라타 생체 ID를 인식시켜 전원을 넣었다.
“뭣보다, 우리가 손이 그렇게 남는 조직은 아니잖습니까? 이런 일로 우르르 자리를 비워버리면 그 집행부 쪽에서 무슨 야료를 부릴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에휴. 이런 세상에서도 정치질하는 놈이 있다니.”
“흐흐흐. 민주주의를 떠안는 순간 그건 자동으로 딸려오는 겁니다. 감수해야죠. 그럼, 저 다녀올 동안 고생 좀 하십쇼!”
“그래! 조심해라!”
“에젤!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일단 비상부터 찍어! 알았지!”
에젤은 그렇게 동료들의 걱정스러운 환송을 받으며 돔에서 나왔다. 목적지는, 어제 등록을 마친 47구역 외곽의 캐러밴, BDSM의 쉘터였다.
사실 걱정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간장게이바, 아니 에젤은 생각했다.
47구역 안에 돌아다니는 1형 변종이야 슈트를 장착한 몸으로 대충 발로 차면 박살 나는 놈들이고, 사이코 갱은 구역만 잘 피해 가면 되는 놈들이고. 생존자? 돔의 도시 바로 옆에서 감찰관한테 덤비는 놈이 있으면 그게 진짜 미친 거지. 걱정을 하려고 해도 위협이 될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에젤이 바득바득 우겨서 혼자 교수의 쉘터로 향하게 된 것이다. 공식적으로 방송인 ‘professor’의 개인 쉘터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 별로 위험하지도 않음.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은 것이다.
‘사실 좀 많이 궁금하긴 했지. 목소리는 음성변조에, 캠도 안 켜, 개인정보라고는 일절 공개하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캐러밴을 창설하고 외부활동을 시작했으니까.’
돔의 감찰관은 외부 인물을 자주 만나는 만큼 필수 과목으로 심리학도 전공하게 되어있다. 에젤이 본 교수는 굉장히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전형적인 개인 생존자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돌변했는지 자기 개인정보를 까발리면서까지 외부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병이라도 걸렸나?’
이 모든 의문은, 직접 마주해서 풀어보면 될 터.
“그아아아악!”
퍼억!
“으, 청소쪽 애들한테 일 좀 열심히 하라고 얘기해야지. 인구 밀집 지역 근처인데 아직도 1형 변종이 돌아다니네.”
또 깜박했다. 위협이 안 되는 적이라도 실드 켜두고 싸우는 거. 덕분에 변종의 피로 슈트와 자신의 옷이 피범벅이 되어버렸다.
“가서 좀 씻게 해달라면 해주겠지?”
에젤은 저 멀리 목표지점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
손을 마주 잡은 남자의 외모는 에젤의 상상과 달리 제법 평범했다.
‘게임 하는 스타일로 봐서는 마초, 아니면 완전 지능캐. 둘 중 하나였는데?’
에젤은 교수의 양쪽에 시립한 두 인물을 살폈다. 오른쪽, 선글라스에 덥수룩한 수염. 불만스러운 듯 꼬나문 담배에 잔뜩 찌푸린 미간.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완전히 금속으로 이루어진 하관.
‘메탈죠- 이안. 43구역의 [향신료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고, 판매하는 무기보다 가끔 서비스로 넘겨주는 수제 담배로 더 유명한 무기상인. 무기상으로 홀로 활동하다, 최근 팀을 이루어 움직인다고 했지.’
일주일 전의 정보이니 신선도가 조금 떨어졌지만, 대충 맞아떨어질 것이다. 43구역은 최근 산업시설 문제로 지역을 관리하는 클랜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정보원들이 소식이 뜸해졌고, 45구역의 정보원도 스캐빈저로 위장해 지하 벙커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렙터에 휘말려서 사망. 전체적으로 이 부근의 정보는 커뮤니티를 통해 수집한 질이 떨어지는 정보뿐이었다.
눈을 돌려 왼쪽을 보자,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키가 작고 늙수그레한 남자가 있었다.
‘신원불명. 아마 이쪽이 향신료상으로 합류한 그 팀원이라는 녀석이겠지. 가벼운 무장에, 살짝 굽힌 무릎. 뒤꿈치를 들고 있는걸 보니 나를 경계하고 있군. 스캐빈저 출신인가? 제법 날래 보이는데?’
“어이, 감찰관 나으리. 뭘 그렇게 훑어보는 거야? 관심 있어?”
잠깐 훑어봤다고 눈을 부라리며 사납게 입을 여는 덩치를 보며, 에젤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여러분에게는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감찰관이잖아요? 관찰하러 왔으니 관찰하는 것뿐입니다만?”
“으음….”
“죠, 털릴 거면 입 열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넌 이따 보자 짜리몽땅.”
‘구성원 관의 관계 – 대단히 친근함.’
에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단박에 이 둘의 관계가 대단히 가까움을 간파해냈다. 황무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의 모든 사람을 향해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집단 내의 구성원이라도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면 얼마든지 칼을 들이밀 수 있을 정도로. 저렇게 공격적인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렇게 대해도 서로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며, 둘의 관계가 그 날카로운 가시 안쪽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 이렇게밖에 서있는 것도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그리고, 가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고 있는 ‘professor`,일명 교수. 인상은 상당히 평범한 황무지 사람이었다. 양옆의 개성 넘치는 두 사람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퉁퉁이와 세모 사이에 낀 진구 같달까?
‘자연스럽게 상황을 주도하고 있어. 확실히 이 집단에서 리더라는 느낌은 있군.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다. 교수는 그냥 돈 없어서 컨셉플레이나 하던 겜돌이 아닌가? 나름대로 단련은 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거야 황무지 사람이면 다 그런거고. 43구역 무기상이랑 가난뱅이 방송인이 접점을 가질 일이 뭐가 있을까? 으으, 일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이거 너무 재밌어!’
간장게이바와 professor 라는 이름으로 5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다. 그 놀려먹기 좋은 녀석이 이렇게 한 무리의 수장이 된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고 주인공을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지직- 지지직-
은폐장의 기묘한 노이즈를 들으며 에젤은 의지를 불태웠다.
‘이번 기회에 교수가 어떤 비밀을 가졌는지, 평소에 뭘 하고 지내는지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낱낱이 밝혀주마! 스피드 웨건한테 정보 교환 조건으로 넘겨도 좋겠지!’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은폐장을 통과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반쯤 부서진 차 한 대와 황무지에서 자주 보이는 버기 한 대, 그리고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렙터의…. 무장트럭?”
“거봐 임마! 렙터 마크 지워도 한눈에 알아보잖아!”
“멍청아! 아까 교수가 설명해줬잖아! 지웠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라고! 더는 렙터 소속이 아니라는 확실한 의사 표명이니까!”
또다시 툭닥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가 그의 의심을 확신시켜줬다. 렙터의 무장 트럭,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량. 이런 차가 움직일 때는 못해도 렙터 1개 군단 이상이 붙어서 호위를 하게 되어있는데,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들어오자마자 입을 떡 벌린 에젤을 보며, 툴툴거리며 다가온 이안이 대충 다 안다는 듯이 설명했다.
“들고 튀었수다.”
“….예?”
“아 젊은 양반이 귓구멍에 모래 들어갔어? 들고 튀었다고! 렙터에서 나올때!”
“아…. 그럼 지금 앞에 계신 그….”
“메탈죠라고 부르쇼.”
“메탈죠씨는, 렙터 소사이어티 출신이라는 뜻이죠?”
“당연한 걸 묻는군. 그놈들이랑 지내는 게 환멸이 나서 다 때려치고 나왔지. 이 턱은 그때 날려 먹은 거고.”
생각 없이 놀러 왔는데 생각보다 큰 정보를 건졌다. 에젤은 수첩을 꺼내 [향신료상, 메탈죠 – 렙터출신, 주의 요망] / [BDSM – 부유함] 이라고 적은 뒤 주변을 좀 더 둘러보았다.
사각사각-
[시설 방어능력 – 중하 – 방어형 터렛 한 대, 능동방어 자동포탑 한 대.]평범한 중형, 보급형 쉘터. 구성원이 세 명 인데, 차를 세대나 소유하고 있다는 대단히 호화로운 사실을 빼면 밖에서 얻을 정보는 더 없어 보였다.
에젤은 수첩에 대충 근처 모습을 스케치한 뒤,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교수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 감찰의 목적을 말씀드리는 게 순서겠죠? 돔은 아시다시피 황무지에 법과 질서를 되찾아 세상을 안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도시 인근의 구역 인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혹시 구역 환경에 해가 되는 인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죠. 우리 시대 사람들이 개인정보에 대단히 민감한 것은 저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47구역에 거주하며 돔이 만들어낸 안전한 환경을 이용하는 대가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전한 환경이라…. 모든 구역을 통틀어 사이코 갱이 가장 많은 47구역이 말이죠. 그건 무슨 농담입니까? 블랙 조크?”
“하하하, 그럴 리가요. 사이코 갱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구역의 평균 수명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 아닙니까. 보통은 저렇게 미치기 전에 다 죽으니까.”
에젤은 교수가 걸어온 신경전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착착 진행해 나갔다.
“자, 그럼 캐러밴이라고 소개한 만큼, 판매할 주력 상품부터 확인할까요?”
“그거 꼭 보여줘야 되는거요? 난 내 물건 아무한테나 안보여주는데.”
“꼭 필요한 확인절차입니다. 나쁜 일은 아닐거에요. 물건의 종류에 따라, 돔에서 매입할 수도 있으니까.”
“염병. 홀딱 벗고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불쾌하군. 따라오쇼. 그쪽은 내가 보여줄 테니까.”
에젤은 등 뒤로 꽂히는 교수와 키 작은 남자의 시선을 느끼며, 메탈죠를 따라 거대한 트럭의 뒤편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