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4
Chapter.5 인사이드 아웃(10)
***
“자, 여기 있으니 마음대로 보고 가쇼.”
“하하하, 협력 감사합니다. 모두 47구역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너무 고까워하지 마시고….”
덜컹-
“어…..”
“뭐.”
“아니, 그게….”
이안의 뒤를 따라간 에젤은 양옆으로 열리는 무장 트럭의 화물칸을 보고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보관할 공간이 없어 무슨 이삿짐 적재하듯 꽉꽉 채워놓은 엄청난 양의 화기와 폭약들. 종류도 돔에서 보기 힘든 고급품부터 스캐빈저들이나 쓸법한 중고 화기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장사에 쓸 것만 보여주면 되는 거지? 미안하지만 우리가 쓸 물건까지 보여줬다간 우리 쪽 전력이 뽀록나는건데, 나도 그것까진 좀 참아주기 힘들 것 같아서.”
“그, 그럼 이게 다가 아니란 말입니까?”
“음? 당연한 걸 물어보는군? 트럭 한 대분을 누구 코에 붙여. 이건 우리 브랜드 이름도 알릴 겸, 할인한 가격에 팔 물건들이야. 이거 다 팔면 캐러밴으로서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는 있겠지. 많아보여도 포장 다 해놓은거라 얼마 안돼.”
대충 세어봐도 렙터 3개 군단을 무장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물량인데 이걸 다 판촉용으로 헐값에 팔아버릴 거란다.
‘심지어 이게 전부도 아니지. 이 메탈죠라는 사람, 나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어. 꼭 필요한 만큼이 아니면 정보를 숨기려고 할 테니, 이건 보여주기식으로 꺼내놓은 물건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눈가리고 아웅 하려고 꺼내놓은 양이라기엔, 많아도 너무 많았다.
‘43구역의 향신료상. 몇 년씩이나 이름을 날리며 장사를 했다고 하더니,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군.’
에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해두기 위해 자세히 관찰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얼굴의 절반 가까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상당히 특징적인 외모. 그런데 이상하게 어딘가 낯이 익었다.
“저기….”
“왜? 내 물건에 뭐 문제라도 있나?”
“아뇨, 상품에 대한 조사는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에젤은 감찰관 이었고, 그는 기억 속에 인물들을 두 부류로 나눠서 분류하고 있었다. 자주 보기 때문에 얼굴이 기억에 남은 인물들, 그리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겨둔 인물들.
43구역의 상인을 자주 봤을 리는 없으니 이자의 얼굴이 낯익은 것은 후자에 속하기 때문일 것인데…..
‘아무리 봐도 일치하는 얼굴이 없단 말이지?’
묘한 기시감에 에젤이 이안의 얼굴을 슬쩍 스케치 하며 훑어보는데,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혹시 제게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아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교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질끈 감는 늙은 남자. 그리고,
뚜둑, 우드드득!
더는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덩치 큰 남자.
“우리. 어디서. 본적. 없습니까….? 이야아, 이거, 돔 새끼들이 기술이 좋긴 한가 봐? 간땡이가 아주 배 밖으로 나온 게, 배양해서 대여섯 개 씩은 배때지에 쑤셔 넣어두셨나?”
“이안. 죽이면 안 돼. 우리 여기서 먹고살아야지.”
“알지. 그럼 알고말고. 걱정할 필요 없어, 교수. 난 지금 대단히 이성적이고, 충분히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태니까 말이야.”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에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죄송한데 무슨 얘기를 하시는건지…..”
“키힛! 감찰관, 작업멘트 치고는 너무 고전적이고, 직설적이였어.”
“….어?”
에젤은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오해를 샀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가 내뱉은 말을, 저 덩치 큰 남자는 다른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참아.”
“그럼. 참을 수 있지.”
“참으라고.”
“허허허. 이봐 교수, 믿으라니까? 같이 사선을 넘어온 전우를 못 믿는 거야?”
“벡스, 잡아.”
후다닥!
철컥!
타이밍 좋게 벡스가 달려듦과 동시에, 이안이 품에서 그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총 하나를 꺼내들었다.
“으아악! 죠! 참으라고! 감찰관 쏴 죽이면 우리 진짜 평생 돔한테 쫒겨다녀야돼!”
“놔 씨발! 저새끼가…. 저새끼가 날 음탕한 시선으로 봤단 말이다! 오오냐! 어울려 주지! 아주 크고 굵고 단단한 다이너마이트를 구멍이란 구멍에 다 쑤셔박아서 화려하게 극락으로 보내주마!”
타앙!
“으아악! 진짜 쐈어!”
“감찰관! 엎드려! 팔 잡아 팔!”
“죽여버리겠다! 감히 내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앞으로 내 앞에서 돔이라는 이름을 올리는 놈은 모조리 척추를 뽑아버리겠어어어어!!”
타앙!
“햅번! 총 뺏어 총!”
“이 새끼 사람 물어! 턱도 없는 놈이 뭐가 이렇게 치악력이 좋아!”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난 뒤, 이안이 진정한 것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에젤이 감찰부 인명 기억 방식에 대해 낱낱이 토해낸 뒤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졌으며 그런 의미는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을 죄인처럼 고해바친 뒤였다.
***
“허억, 허억, 허억.”
아침에 썼던 밧줄을 그대로 사용해 다시 애벌레 같은 모습이 된 이안은, 재갈이 묶인 상태로도 침을 질질 흘리며 죽일 듯이 감찰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많이 놀라셨죠? 워낙 성미가 불같은 친구라.”
“허억, 허억, 아, 아닙니다. 제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해서….”
사실 에젤은 저 덩치에게서는 이미 관심이 떠난지 오래였다. 그것보다, 그는 난리통에 그의 귀에 스친 이름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부, 분명히 들었다. 한 번이었지만, 교수는 저 늙은 남자를 벡스라고, 남자는 교수를 햅번이라고 불렀어.’
사각사각사각-
에젤의 펜이 쉼 없이 수첩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햅번. 최근 45구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교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집단의 수장이 쓰는 이름. 햅번, 이안, 벡스. H….HIV. 놈들이다, 이 녀석들이, 45구역의 패자라고 불리는 그놈들이었어!’
며칠 전 발견된 45구역의 지하벙커. 온갖 구시대의 자원이 잠들어 있는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돔과 렙터의 교전이 일어났으며, 수백 마리의 변종과 스캐빈저, 돔의 정예와 렙터의 군단이 죽어 나간 그 지옥에서 살아나와 승리의 과실을 거머쥔 것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3인으로 이루어진 집단, HIV였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돔에서는 백방으로 그들의 정보를 수소문했지만 지하 벙커에 들어간 병력은 전멸.
45구역의 정보원들 또한 렙터의 학살에 휩쓸려 전멸당했고, 인근 43구역도 혼란스러운 상태라 그들에 대한 정보를 한 개도 얻지 못했다. 그 덕에 커뮤니티에 떠도는 소식에 의존하다가 미리 접촉할 타이밍을 놓쳤으며, 결국 그들이 탈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벙커의 보안키가 거래소에 올라와 경매가 붙은 상황.
감찰부와 집행부, 시 의회 모두가 그 능력을 높이 사 만장일치로 영입 대상 1호로 지정되어 생포 현상금까지 붙은 대상이, 지금 47구역에 정착해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트, 특급정보다. 방송인 ’professor`가 그 HIV의 수장이라니. 그렇다면 이렇게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이해가 가. 벌어들인 돈이 엄청나겠지. 특히 그 열쇠, 보안키는 지금도 거래소의 가장 윗줄에서 실시간으로 거래소 경매 최고가를 갱신하는 중이니까.’
“감찰관님.”
“그런….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교수가 그…. 설마….”
“감찰관님?”
“예? 아, 옛! 무, 무슨 일이십니까, 교수님?”
에젤은 교수의 부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능글능글한 그의 태도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럴 수밖에. 눈앞에 있는 교수가 그 ‘햅번’이라면, 최신형 엑소슈트 한 대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전투의 달인이다.
전투방식이나 전투력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 변종과 돔, 렙터 세 개의 세력이 맞부딪히는 전장을 유유히 돌파하며, 심지어 전리품까지 챙겨서 나왔다는 점에서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지녔다는 것은 굳이 정보가 없어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교수는 갑자기 군기가 바짝 든 에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오해가 있어서 자리가 좀 불편해진 것 같군요. 혹시 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다음에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으로 합시다. 제 닉네임은 아실 거고. 혹시 감찰관님 닉네임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연락하는 데 필요해서 그런데. 이름이야 보안상 밝히지 않는 걸 이해한다지만,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 정도는 공개해도 되잖습니까?”
“어…..어?”
잠깐만. 내 아이디?
.
.
.
.
찰칵, 찰칵, 띠링-!
‘[간장게이바]’
‘제기라아아알!!!’
순간, 에젤은 돔의 정치적인 입장 따위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장게이바. 내 닉네임. 그 익명성 뒤에 숨어서 벌인, 수많은 악행!
‘[전설적인 악취], [노출증 말기], [특이한 식단 : 오물], [습관성 구토]. 어때?’
‘하, 좆같네 야, 교수. 너 내가 봉으로 보이냐? 아앙?’
‘특성 6 : [정신쇠약]으로 가자!’
‘엌ㅋㅋㅋㅋㅋㅋ쟤 죽는다 ㅋㅋㅋㅋㅋㅋ’
아, 안돼. 과거의 나, 대체, 대체 무슨 짓을….!
지금까지 게임 안에서 교수가 한 개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고생의 원흉이 바로 나다. 45구역의 패자, 전투 초인 집단 HIV의 수장 햅번을 개처럼 대굴대굴 굴려먹은 원흉이, 바로 나란 말이다!
‘주, 죽는다. 걸리면 무조건 죽어….!’
에젤의 귓가에 ‘야 너 어디살어’ 하던 교수의 채팅이 환청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이미 겨드랑이와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감찰관님 더워요?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립니까?”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제가 다한증이 좀 있어서!”
“그래요? 그러고 보니 옷도 피범벅인데, 안에서 샤워라도 하고 가시죠? 저희 쉘터가 작긴 해도 나름 시설은 잘 갖췄는데······.”
“제가 사실 공수병도 있어서! 물, 물을 무서워해서!
“그….래요?”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제발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교수의 미간에 느릿하게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보며 에젤은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예, 옙! 그럼요! 감찰 내용에 아무 이상 없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뭐. 그럼 닉네임은-”
“저는그럼이만!”
에젤은 필사적으로 교수의 마지막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제발 자연스럽게! 제기랄, 관절은 왜 이렇게 뻣뻣한 거야! 숨 쉬는 건 왜 이렇게 의식되는 거고! 발정 난 멧돼지도 이렇게 거칠게 숨 쉬지는 않겠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은폐장의 경계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가서 슈트에 탑승하기만 하면….
“….정지.”
“아.”
‘이런@#%^%@#!!!’
고지를 눈앞에 둔 순간,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에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교수가 뭔가 눈치챘다는 것을.
에젤이 공포영화 주인공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목을 살짝 옆으로 꺾은 교수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감찰관님…. 그러고 보니 아까 제 방송을 참 잘 보고 있다고 하셨고. 당황해서 벡스 이 녀석이 저를 ‘햅번’이라고 부른 순간부터 묘하게 제 눈치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어어, 어어어어…. 그게….”
덜덜덜, 덜덜덜덜!
에젤의 손이 황급히 주머니를 더듬었다. 비상 신호기, 비상 신호기가….!
“사실 우리 쪽 정보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움직였는데, 생각해보니 45구역 스캐빈저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빈 것을 보면 향신료상이 HIV라는 정보는 아직 43구역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고. 자연스럽게, 돔은 우리 빅 드림에 향신료상이 합류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지만, HIV라는 도시 전설에 가까운 집단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고.”
덜컥.
주머니를 더듬던 에젤은 비상 신호기를 슈트에 놓고 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머리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 감찰관님이 이렇게 서둘러 돌아가시려는 것도 다 이해가 가는데…. 닉네임은 왜 그렇게 숨기려고 하는 걸까? 꼭 죄지은 사람처럼? 응? 그렇잖아? 시청자님?”
저벅, 저벅, 저벅.
터억.
쉘터 밖으로 향하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에젤의 뒤에 선 교수는,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희생자의 영혼을 사로잡은 악마같은 얼굴을 하고 물었다. 교수는 확신에 차 있었다.
“너 누구냐?”
“흐이이이익!”
에젤은 그 물음에, 공포에 찬 신음을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10분 뒤, 이안을 묶고 있던 밧줄은 그대로 재활용 되어 에젤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다.
“오호라.”
움찔!
“오호오오라아아-”
움찔! 움찔!
교수가 감탄사를 내뱉을 때마다, 꽁꽁 묶인 채 쉘터의 소파에 앉아있는 에젤은 바늘로 찌른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간장-게이바. 간게야.”
“옙, 교수님.”
“간게야?”
“예,옙?”
“왜 그렇게 겁에 질려있니? 우리가 원데이 투데이 본 사이도 아니고, 평소처럼 불러야지? 교수야~ 교수 놈아~ 교수 새끼야~ 하고. 안 그래? 간게친구?”
“아아아, 아닙니다! 그, 그냥 교수님으로 하겠습니다!”
교수는 신병처럼 바싹 얼어있는 간장게이바를 보며, 피식 하고 웃었다. 이녀석은 꼬옥-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돈 많고 돔에 사는 녀석인 것도 알고 있었지만 돔에서도 엘리트에 속하는 감찰관이라니. 그것도 무려 엑소슈트의 사용 권한을 가진 녀석이라니.
“간장게이바라….. 굉장히 인상적인 닉네임이군. 역시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나?”
에젤은 자신의 뒤편에 서서, 한 손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던졌다, 받았다 하는 이안의 말에 발작하듯 대답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진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물어봤던 것뿐입니다! 정말로!”
“그래에? 어디 한번 자세히 보시지. 정말로 이런 얼굴, 본 적 있어?”
“어,없습니다! 없어요!“
이안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찰칵거리며 얼굴을 들이밀자, 에젤은 발작하듯 대답했다. 이안은 그런 에젤의 모습에 만족한 듯 웃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안, 너무 겁주지 마. 그래도 무려! 돔의 감찰관인 데다, 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아아. 그러고 보니 컨셉플레이 시작하게 된 것도 다 이 녀석 때문이라고 그랬지?”
“그, 그렇지! 그때 내가 보내준 연료랑 돈이 아니었으면 교수는 발전기도 못 돌리고, 지금 이렇게 큰돈 벌어준 캐릭터도 못 만들었-”
샤아악- 스아아악-
그 말에 바닥에 앉아 숫돌에 칼날을 갈고 있던 벡스가 시퍼렇게 선 날을 확인하며 눈을 빛냈다.
“그럼…. 햅번의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심은 그 사단의 원인이. 저 놈이란 말이지…..”
꿀꺽.
아아, 제기랄. 사주팔자에 이놈의 혓바닥 때문에 단명할거라고 써있더니.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어이 하이드. 인사해라. 이놈이 네 대부(代父)되시는 분이다.”
[오우, 갓파더! 안녕?]에젤은 갑자기 마구 꿈틀거리는 교수의 손가락과, 그 반대편에 들린 날이 시퍼렇게 선 쿠크리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간장게이바. 아니, 에젤. 너도 알다시피, 황무지에서는 기브 엔 테이크를 확실히 해야 하잖아? 우리가 지난 5년간 묵혀둔 빚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아는데 말이야. 이번 기회에 한 번에 청산하는게…. 좋지 않을까?”
“교, 교수야…. 교수님! 잠깐만! 잠깐만!!!”
“안 죽여. 손이나 발 하나 잘리는 정도로는 사람이 쇼크사하고 그러지는 않더라고. 이건 믿어도 좋아. 내가 누구누구 덕분에 GG라는 게임을 랜덤 특성으로 시작했는데, 안에서 손발을 정말 많이 잘려봤거든. 나름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덜덜덜, 덜덜덜덜!
에젤은 눈앞에 철탑처럼 선 교수의 하얀 미소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 5년간. 덕분에 참 즐거웠다. 간게야.”
스아악!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교수의 손에 들린 쿠크리가 휘둘러졌다.
투두두둑-
크게 휘둘러진 칼 끝에 걸린 것은 에젤을 묶고 있던 밧줄뿐이었다. 교수는 쿠크리를 대충 집어넣은 뒤, 장난스럽게 에젤의 어깨를 툭 쳤다.
“흐흐흐흐. 야, 쫄았냐? 니가 지난 며칠동안 내 가슴을 졸이게 한 원흉이니, 나도 너 좀 쫄리게 만들어봤-.”
풀썩-
“….간게야? 에젤?”
“기절했는데?”
교수가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실실 웃던 벡스와 이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야, 짜리몽땅. 얘 감찰관이잖아. 이대로 기절해서 부대 복귀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어떻게 되긴! 습격당한 거로 취급돼서 마지막 목적지에 돔의 특수부대가 우르르 몰려오게 될 게 뻔하잖아!”
…..헐.
교수는 쓰러져있는 에젤의 옆으로 가, 기절한 그의 뺨을 때리며 마구 흔들었다.
“야, 간게야. 일어나봐.”
철썩 철썩.
“간게야! 장난이 심했지! 좀 일어나 보라고!”
철썩! 철썩!
교수가 아무리 힘껏 뺨을 후려쳐도, 에젤은 썩은 나무토막처럼 흔들릴 뿐이었다.
“틀렸어! 완전히 맛이 갔어!”
“물! 물 가져와 물! 이 자식 정신 못 차리면 우리 다 죽어!”
“제기랄! 박교수 이 멍청한 새끼! 장난도 적당히 쳐야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그렇게 기절한 에젤을 깨우기 위해, 교수의 쉘터안에 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에젤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다섯 시간 뒤, 그가 타고 온 엑소슈트에 미친 듯이 연락음이 울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